제우스
크로노스나 제우스 모두 막내이다. 이들이 대를 잇는 형태는 말자상속제의 반영처럼 보인다. 맏아들이 성년이 될 때는 아버지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라 일정의 땅과 가축을 주어 분가시킨다. 그러다 막내가 성년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도 어지간히 나이를 먹어 쇠약해지므로 일체를 막내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한다는 것이 말자상속제이다. 신화는 이 인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스에는 강이 적어 농업은 대부분 천수답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에 비가 극히 적었다. 그래서 구름을 모으고 천둥을 치고 비를 내리는 제우스는 그만큼 고마운 신이었다.
반면 햇빛은 언제나 풍부했고 오히려 마른 밭이나 목초지는 도움이 되지 아니하여 태양을 신격화한 아폴론은 그만큼 중시되지 않는 신이 되었다.
제우스는 신들의 가장이자 인간 사회의 가장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이며 로마 신화의 유노와 동일하다.
헤라는 크로노스의 셋째 딸이며 제우스의 친 누님이다. 그러나 천지가 창조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신들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아 친족 결혼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헤라는 주부의 상징 여신인데 그 질투심이 아주 대단하기로 유명하다. 천하제일의 제우스도 아내에게는 끽소리 못했으며 언제나 바람피우다 꼬리를 잡혀 닥달질을 당하곤 했다.
가장권이 강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주부는 은연한 발언권과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외도는 대단하였다. 신, 거인족, 인간 할 것 없이 예쁜 여성만 보면 당장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게 하였다.
제우스가 정숙하기로 유명한 알크메네에게 반했을 때 웬만한 수법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제우스는 그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 개선해 오기 전 날 남편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알크메네를 찾았다.
남편을 맞이한 알크메네는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였고 그날 밤 해후를 풀었다. 그런데 이튿날 또 한 사람의 남편이 먼지 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의문이 오고간 끝에 전 날 찾아온 자가 제우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이 차서 알크메네를 쌍둥이를 낳았는데 하나는 신성을 갖추었고 하나는 인성을 갖추었는데 신성을 갖춘 자가 나중에 그리스 신화의 최대 영웅으로 부각되는 천하무적의 헤라클레스이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의 헤라클레스
때는 봄, 제우스가 여느 때처럼 올림프스 산 위 궁궐에서 무료하게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페니키아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혼자 들꽃을 꺾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까지는 무려 1200키로가 넘었지만 역시 신인지라 시력이 좋았다.
부인 헤라에게는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 하고는 하늘을 날아 곧장 페니키아 해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흰 숫소로 둔갑하여 어슬렁어슬렁 처녀에게 다가갔다.
처녀는 보기 드문 흰 숫소에게 흥미를 느껴 꽃을 꺾어 주었다. 처녀는 숫소를 올라타고는 해변을 산책하였다. 숫소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가를 걸어가다 느닷없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처녀는 안 떨어지려 숫소의 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 처녀는 크레타 섬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제우스와 친해졌는데 그녀가 낳은 세 아들 가운데 하나가 나중에 크레타 왕이 된 미노스이다. 그 처녀의 이름은 에우로페인데 여기서 유럽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레다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한 숲속의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고운 백조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녀는 “어머나, 귀여운 백조!” 하고 그 백조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 백조는 제우스가 둔갑한 것이었다.
레다는 곧 아기를 배었는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제우스가 백조로 둔갑한 영향 때문인지 두 개의 알을 낳았다. 그 하나에서는 카르토스와 풀룩스라는 쌍둥이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다른 한 개에서는 헬레네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로마 캄피톨리오 언덕의 카르토스와 풀룩스 상
헬레네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스파르타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트로이로 달아나는 바람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밖에도 제우스는 각지에서 많은 미녀들을 치지하여 아이를 낳게 하였는데 이런 신화가 생겨난 것은 그리스인들이 점령한 타 지역의 토착신들을 제우스를 정점으로 본래 자신들의 신들의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방법에서 기인되었다 볼 수 있다.
트로이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