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테베레
테베레 강너머 성 베드로 교회
테베레 강가 로마 대법원
테베레 강 위 천사의 성
테베레 강을 볼 때마다 냇가같은 강에서 어떻게 위대한 로마 문명이 피어났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보통 찬란한 문명은 거대한 강줄기를 통해 피어났다.
그러나 이렇게 빈약한 테베레 강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항상 물로 가득찬, 물이 항상 흐르는 도시였다. 이미 기원전 33년에 500이상의 분수와 700개의 샘이 조성되었다.
이는 답을 테베레 강이 아닌 천혜의 지형과 배수로 공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 수로 건설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로마인은 40Km가 넘게 떨어진 주변 산악과 호수에서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왔는데 이는 로마인들의 탁월한 토목 건축술의 한 면이었다.
로마 전성기인 1-2세기엔 인구가 100만을 넘었는데 11개의 수로가 매일 9억8천만리터 이상의 물을 공급하였다.
로마 첸토첼레 지역에 남아 있는 로마 수로
로마의 수로 건설은 로마인들의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거대한 목욕장 문화를 꽃피웠다. 수로를 통해 사방에서 강줄기처럼 들어온 대량의 물이 목욕 문화의 만개를 가져온 것이다.
기원전 33년 아그리빠가 조사시 로마의 대중 목욕장은 170개였는데 100년 후는 너무 많아 세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고 4세기에는 1000개를 육박했다.
카라칼라 목욕장
목욕장의 압권은 카라칼라 목욕장이다. 카라칼라 황제 당시 217년 개장된 이 목욕장은 정원, 체육관, 도서관등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동시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8만 리터의 용량의 거대한 조수조가 있었다.
디오클리티아누스 목욕장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장은 3세기 말 즉위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298년에 건설한 당시 3000명 이상을 수용했던 로마 최대의 목욕장이었다.
1561년 교황 피우스 4세의 요청으로 당시 이 목욕장 건설하다 목숨을 잃은 그리스도교도들을
기리기 위해 목욕장을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와 순교자들의 교회(Santa maria degli angeli degli martiri) 로 탈바꿈시켰는데 이는 미켈란젤로의 걸작이다.
교회의 정면
미켈란젤로는 그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해 목욕장의 미온탕과 중앙홀 자리에 교회를 놓았는데
교회의 정면은 온탕의 둥근벽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로마 빅토리아 광장에 있는 세베루스 분수 유적
공화정 말기 로마 시내에 수백개의 분수가 물을 뿜어냈는데 4세기에는 그 숫자가 1000개를 넘었다. 현존하는 분수 유적으로는 네로 분수와 세베루스 분수가 대표적이다.
1453년 고대 수로 수원을 1000년만에 부활시켜 건설한 트레비 분수
기원전 4세기 이미 고가 수로를 건설한 로마인들은 150년이 지난 후에야 테베레 강에 돌다리를 놓았는데 그 이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강의 경계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테베레 강에 최초의 교각은 기원전 179년에 세운 에밀리우스 다리이다. 이 다리는 2000년 세월을 견뎌오다 1880년 강둑 설치 공사중 폭발의 충격으로 무너져내려 현재는 시내쪽 교각 일부만 남아있다.
파브리지오(Ponte fabricio)다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기원전 62년에 건설되었고 길이 62미터 폭 5.5미터로 현재는 보행구간으로만 사용된다.
체스티오 다리는 기원전 46년에 축조 후 여러 차례 무너졌다 복구되었으며 370년에 완전 재건되었는데 현재 자동차도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