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사람 마음의 핵심 기능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을 통하여 감정이 부풀면
그 사람에게 다 퍼주고 싶은 욕구가 올라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말로 감정을 다쳐
상처를 입게되면 미움과 저주가
나옵니다.
세상에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들뜨게 하여 사리 분별을 못하는 맹인으로 만든 다음 자기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 일수록 감정 기복 차가 크기에 사기 당할수 있는 조건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을 들어내지 아니하여 숨기고 입술로 선한 말을
하는 자를 위선자로 잠언 26장에 표현 하고있습니다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며 그기능은 말씀과 만날때 악함이 제어되고 또한 감동으로 표출 되여집니다.
초림시 예수의 말씀으로 감정이 상한 바리새인들은 속에서 미워함을 숨기고 자기들 만이 선한 자들로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마다 인정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 중심에 ♡자기를 높이 세우려는 뜻(=죄)♡을 두고있습니다.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은 감정과 하나로 연결되어 사람들로 인정 받지를 못하고 무시를 당하면 미움의 악이 나오고 인정 받게 되면 사랑의 선이 나옵니다.
이와같이 하나의 마음에서 상황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의 제사에 드린 예물 속에는 하나님께 자신이 인정 받아 높이려는
마음이 들어 있기에 열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자신의 예물이 인정 받지 못하니 그 속에서 미움과 원망이 나와 결국
아벨을 때려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요셉이 옥살이 할때 떡굽는 관원장의
꿈은 떡 세광주리 위에 자기가 만든
각종 구운음식을 올려 가지고 왕께
나아갔습니다.
각종 구운 음식 속에는 왕에게 잘보여 인정 받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 결과는 사망을 당하였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으로 인하여 자신이 사람들로 부터 인정 받지 못하자 나라를 구한 은혜를 모르고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인정 받아 높이 세우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수
없는 맹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욕심 중심에 돈이 있듯이
보이지 않는 욕심 중심에 자기를 높이
세우려는 교만(죄의 씨)가 있습니다.
자기가 인정 받으려는 마음은 분명한
댓가를 갈망하며 그 댓가가 없으면 미움과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이른 아침에 들어간
포도원 품군들은 주인으로 부터 인정
받으려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인정 받으려는 그 마음이 강할수록
맹인이 되어 주인과 분명하게 약속한 한데나리온의 하루 품값을 보지 못하여
그들의 마음에는 미움과 원망 뿐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먹은 증상으로 나 자신의 중심을 보는 눈을 맹인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의 겉 모양을 보는 눈을 밝게하여 놓았습니다.
그 결과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죄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의 겉모양은 잘 보임으로 겉은 선한 모양으로
포장하고 속에는 서로 미워하고 정죄 하여 악을 행할 뿐입니다.
(중심에 용서와 사랑이 없는 세상 )
사람들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맹인이고 남의 티는 잘 보기에 자신 속에 실체를 보여 서로 정죄하지 않고 용서하는 세상을 이루시려고 율법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 자신의
중심을 비추어 죄의 실체를 발견하려
하지 않고 더욱 더 잘 지켜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율법의 목적한 바와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니 율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티를 보는 눈이 더 밝아지고 자신 속에
들보를 보는 눈이 더욱 더 어두워져 완전한 맹인 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을 사망으로 가지 못하게 막고
생명으로 인도하려는 율법이 결국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감각없는 완전한 맹인으로 만들어 사망의 저주로 끌어가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선한 의도로 내려 주신 율법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려 결국 사람들에게 저주와 사망의 율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맹인되어 사망으로 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한분 하나님은
율법을 새롭게 개혁하여 스스로
자신을 보는 영적 눈을 열어 주려고 친히 이땅에 강림 하셨습니다.
하나님 그대로 강림 하시면 죄에 속한 사람들이 몽땅 한방에 즉사 하기에 사람의 모양인 초라한 아들 예수의 옷을 입고 이땅에 직접 내려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겉 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눈이 밝으므로 풍채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고 흠모할 것이
전혀 없는 겉 모양을 보고 누구도
한분 하나님의 현현 하심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도 성령을 받은 후 초라한 예수 속에 숨겨진 실체가 모든 만물을 지으신 영생의 주제이신 한분 하나님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담은 흙 그릇으로 지으셨으며
그 안에 죄가 담겨지니 쓸모가 없어
폐기 처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겉사람=육)
둘째 아담은 참 말씀의 보배로운 그릇으로 지어 그 안에 죄가 담겨지지 않으니 하나님을 담을수가 있었습니다.
(속사람=영.거듭난 새사람)
초라한 둘째 아담의 그릇 속에 생명으로
들어온 하나님은 버림 받는 저주의 십자가와 새 언약의 피로 영생 구원의
사역을 펼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뜻에 따라 버림 받는 십자가로 자신 중심 속에 죄들의 실체를 발견하여 못박아 죽이고 예수의 피로 온전한 가리움(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버림 받는 자들이 자기 속에
죄들의 실체를 쉽게 발견 하지만 세상에서 버림 받지 못하고 영광을 받는 자들은 죄들의 실체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죄들의 실체를 발견한
버림 받은 자들(상한 심령)의 마음을 향하여 달려 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