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 1875.12.4~1926.12.29)

아명(兒名)은 르네(René). 보헤미아의 프라하 출생.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고급관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9세 때 양친은 이혼하였다. 1886~1890년까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장크트푈텐의 육군실과학교를 마치고 메리시 바이스키르헨의 육군 고등실과학교에 적을 두었으나, 시인적 소질이 풍부한데다가 병약한 릴케에게는 군사학교의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1891년에 신병을 이유로 중퇴하고 말았다. 그 뒤 20세 때인 1895년 프라하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문학수업을 하였고, 뮌헨으로 옮겨 간 이듬해인 1897년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알게 되어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1899년과 1900년 2회에 걸쳐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를 여행한 것이 시인으로서 릴케의 새로운 출발을 촉진하였고, 그의 진면목을 떨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900년 8월 말 2번째의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뒤 북부 독일의 브레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화가 부락 보르프스베데로 화가인 그의 친구를 찾아갔다가 거기서 여류조각가 C.베스토프를 알게 되었고,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1902년 8월 파리로 가서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어 한집에 기거하면서 로댕 예술의 진수를 접하게 된 것이 그의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6월 스위스의 어느 문학 단체의 초청을 받아 스위스로 갔다가 그대로 거기서 영주하였다. 만년에는 셰르 근처의 산중에 있는 뮈조트의 성관(城館)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나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Sonnette an Orpheus》 같은 대작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1926년 가을의 어느 날 그를 찾아온 이집트의 여자 친구를 위하여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패혈증으로 고생하다가 그 해 12월 29일 51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시인으로서의 릴케의 생애는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그의 향리인 프라하에서 시인으로 출발을 한 때로 《인생과 소곡》(1894) 《가신봉폐(家神奉幣):Larenopfer》(1896) 《꿈의 관(冠)》(1897) 《강림절:Advent》(1898) 등 몽상적이고 낭만적인 신낭만파풍의 시집을 냈는데, 이 중 후자의 세 시집을 1913년에 《제1시집:Erste Gedichte》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엮어 펴내었다. 제2기는 릴케가 자기의 개성에 눈을 뜬 시기로서 러시아 여행의 체험은 그의 시세계에 깊은 종교성을 가미하게 하였다. 《나의 축일에:Mir zur Feier》(1899)는 그의 개성이 처음으로 확립된 시집으로 새로운 생(生)의 개화와 그에 대한 불안을 노래한 것인데, 이것은 1909년에 《구시집(舊詩集)》이라는 이름으로 증보 ·개정되어 간행되었다. 《형상시집(形象詩集):Das Buch der Bilder》(1902)과 《시도시집(時禱詩集):Das Stundenbuch》(1905)에서는 그의 개성이 한층 더 아름답게 전개되어 독자적인 시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제3기는 파리시절로서, 조각품처럼 그 자체가 독립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사물(事物)’로서의 시를 창작하려고 하였는데, 《신시집(新詩集)》(1907)과 《신시집 별권》(1908)은 그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은 그로 하여금 인간 실존의 궁극의 모습에 눈뜨게 하여 사랑과 고독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말테의 수기(手記):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1910)는 이러한 내적 묵상(默想)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로댕의 조각수법을 산문에 적용한 것이다. 제4기는 1910년 이후 생애를 마칠 때까지로, 10년이나 걸려서 완성한 대작 《두이노의 비가(悲歌)》(1922)와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1922)는 인간 존재의 긍정을 희구하는 예술정신의 흔적을 보이고 있으며, 보들레르 이래 내면화의 길을 걸어온 서구시의 정점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만년에는 프랑스어로 시를 쓰고 발레리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Rainer Maria Rilke의 어릴 적 모습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보
* 1875년 프라하에서 출생 부는 농민출생 모는 시민계급 출생
* 1885년 아버지의 강권으로 상크트 폴텐 육군유년학교에 입학
* 1890년 메리쉬 봐이스르헨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지만 1년 후 퇴학
* 1987년 L.A 살로메를 만남, 릴케의 생애와 예술에 크나큰 영향
* 1899년 시집 [축제를 위하여 출간]
* 1900년 톨스토이 만남 시집 [사랑스러운 신과 안드레스] 출간
* 1902년 시집 [조형시집] 출간
* 1905년 로댕의 개인 비서로 들어감 시집 [기도책] 출간
* 1906년 로댕의 비서 그만둠 시집 [‘c.c릴케의 사랑과 죽음] 출간
* 1907년 시집 [신시집] 발간
* 1908년 시집 [신시집 후편] 출간 키에르 케고르의 철학에 심취, 신에 대한 관점이 바뀜
* 1910년 소설집 [말테의 수기] 출간
* 1923년 시집 [두이노의 비가] 출간 시집 [오르포이스에의 소네트] 출간. 서구 기독교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 혐오에 빠지다
* 1926년 12월 29일 스위스 발몽에서 사망. 10월초순 뮈조트 성에서 장미를 꺾던 중 가시에 왼쪽 손가락이 찔린 후 그것이 악화, 급성 백혈병의 증세가 나타남. 그의 임종에는 의사와 간호사 및 분델리 폴카르트 부인 뿐이었다
* 1929년 산문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유고집 출간
* 1927년 1월 2일 유언에 따라서 라몽에 매장, 그의 묘비명이 있다

Rainer Maria Rilke와 그의 아내 Clara Westhoff Rilke가
조각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함께 기거할 때 저녁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서로 담소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 당시에는
Clara가 로댕의 제자로 일할 때 Rilke도 함께 로댕의 비서로
일하며 숙식을 함께 하게 된다. (1906년)
릴케의 생애
본명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으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라이너로 고치게 되었다.
그는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는데,
젊은 시절 장교로서의 화려한 생애를 펼치려던 꿈이 좌절되고
지방철도국의 하급관리로 근무하던 아버지 요셉 릴케와
큰 가문출신이며 사회적으로 큰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
소피 엔츠는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순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부성적 권위와 모성적 포근함의 균형을 상실한 릴케는 출생시부터 불안한
상태였고 1884년 릴케가 9살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하고 말았다.
1900년 자신의 이름으로 『경구집 Ephemeriden』이란
소책자를 낼 정도로 활동적인 어머니는 정신질환에 가까울 정도의
울화증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오죽하면 훗날 릴케가 29세 되던 해에 그런 어머니에 대하여
'바지저고리처럼 속이 텅빈 망상적이고 역겨운' 여인이라고
증오 섞인 어휘를 내뱉었을까. 신앙적 독선의 어머니에 대하여
1915년 10월 14일 뮌헨에서 쓰여진 시구에서 릴케는 이렇게 절규한다.
아 슬프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허문다
돌이 채곡채곡 나에게 쌓여
하루해가 큼직하게 움직이는 작은 집처럼 벌써 서있다
혼자 뿐이었지
이제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허문다
릴케의 어머니는 낳자마자 죽은 딸을 결코 잊지 못하여
자신의 상실감을 메꾸어 줄 대용물로 릴케를 키운다.
여자옷을 입히고, 머리를 땋아주고, 소꼽장난을 하게 하며,
남자 아이들과 노는 것마저 금지시킨다.
여자 이름인 '마리아'라는 영세명을 받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어린 릴케는 곧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1886년 11살 되던 해 릴케는 부모의 이혼에 따른 후속책으로
쌍 폴텐에 있는 소년 군사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890년에는 메리쉬―봐이쓰키르헨의 고등군사학교에 들어간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충족시켜 주기 위해서였지만,
릴케는 튼튼한 소년들이 모여있는 환경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
세상적 욕심이 강한 어머니는 성실한 가문의 막연한 귀족신분의
흔적을 가지고 릴케로 하여금 특수의식에 빠지게 한다.
원래 릴케의 집안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성하는 매우 자유주의적
의식을 지닌 시민계급이었다. 이런 과정이 산문시 작품
'코르넷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Die Weise von Liebe und Tod Cornets Christoph Rilke'로
표현되고 있다. 바람이 몹시 부는 11월 밤 백일몽상태에서
단숨에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소년시절의 억눌린 자아의식과
소망을 꿈의 형태로 체험하는 청년 릴케의 심리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891년 계속되는 질병과 허약한 체질로 인하여 릴케는 군사학교를
그만두고 린츠(Linz)에 있는 실업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대학입학을 위한 인문교육과정을 준비,
1895년 7월 대학입학자격 국가시험에 합격한다.
이때 발리(Vally David―Rhonfeld)라는 소녀에게 향해진 첫사랑이
실연으로 끝난다. 이것은 어머니의 포로일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對연인관계에 가중된 장애요인이 된다. 평생 릴케는 남성 친구보다
여성들이 에워싸고 있었던 것도 남성으로서의 역할부재와 무관치 않다.

Lou-Andreas Salome의 가족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Rainer Maria Rilke의 모습 (1900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문학
- 金 天 雨(월간 '문학세계' 발행인, 시인)
입추, 그리고 가을 문턱에서 찾아보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현실에서의 탈출과 진정한
자유를 위해 뗏목을 타고 낙원을 향해 떠나는 헉크와 같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일까.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조국을 등
지고 떠나는 젊은 예술가 스티븐 디덜러스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생애와 가을은 우리들에게 이미 각인화
된 사실이다. 1902년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생애
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조각가인 아내 클라라 릴케의 소개로 청년 시인 릴케가 근대 아버지로
불리우는 오귀스트 르네 로댕(1840~1917)을 만난 해이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로댕은 서신연락을 하면서
부터 인연의 고리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 릴케의 나이 27세, 파리에서
의 일이다. 청년과 노인(당시 로댕의 나이 62세)과의 만남, 참으로 보편
적으로 보면 분명 충격적인 이슈가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문학의 천
재와 조각의 천재가 한 자리에 합류를 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이 마련한 축복의 자리였다. 시인 릴케와 조각가
로댕의 만남은 20세기 현대 예술사에서 하나의 기이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인 릴케와 조각가 로댕의 사이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국
경을 넘어선 우정, 아니 우정 이상의 특이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릴케
는 무엇보다도 창조자, 탐구자로 돋보이는 로댕이기에 찬탄한 나머지
스스로 사사(師事)하였다. 즉 그들의 만남에서 로댕은 릴케에게 깊고
도, 내면으로부터 영향을 끼친 유일한 동 시대인으로 릴케가 작품을
제작해가는 과정에서 정신에 따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귀중한
정신적 동지였던 것이다.
로댕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릴케는 꿈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로 발길
을 옮기게 되었고, 주관에 사로 잡힌 감정세계에서 벗어나 세계와 사
물에 대한 경지를 뚜렷하게 꿰뚫어 보고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전날의 흐릿하기만한 현상적 꿈의 세계를 버리고 사물의 본질
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로댕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그의 작업을 거드는 릴케에게 항상 강조
하는 말이 있었다 “일하게!” 이것은 언제나 릴케한테 들려준 로댕의
신조이며 신념이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일한다는 것은 창조 활
동을 뜻하는 것이고, 생을 실현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생 그 자체이다.
로댕의 예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손으로 하는 일
에 있다고 릴케는 생각하게 된다. “손으로 일하는 것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 자체로만 독립해서 존재하는 사물. 즉. ‘자율의 존재’”
자율의 사물을 만들어 내는 것 - 릴케식 표현법은 이른바 ‘예술 사물’
로 이런 근본 여건은 손으로 하는 일이라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얻
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손으로 하는 일이란 집중을 뜻한다. 이런 손일
과 집중은 바로 로댕 예술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신념을 언어적 표현 수단에 응용하는 것은 곧 시인의 과제라고 릴케는
굳게 믿었던 것 같았다. 이런 신념에서 잘 조화된 그만의 조형세계 즉,
환상의 세계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그 결론은 다름 아닌 [神 시집]
(1907)의 세계이다. 이런 든든한 예술 즉 바탕이 있었기에 릴케 문학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후기의 대작 좥두이노의 비가좦(1912~1922)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14행시(1922), 프랑스어 시집 과수원
(1924~1925)], [장미]같은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토대로 볼 때 직관과, 감성의 시인 릴케의 언어의 거대
한 힘은 곧 위대한 근시대의 거목이었던 로댕의 조각사상 바탕을 접목
하면서 소산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라이너 마리
아 릴케의 삶은 궁극적인 자아를 포기한 채 일생동안 정신적인 방랑생
활을 하면서 이 체험을 통하여 모든 사물에 대한 사랑과 죽음을 그의
작품 속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정신적인 여인 루살로메와 러시아를
여행하였고, 러시아 종교적 체험은 그를 신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 시
켜준 절대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다.
산문소설 [말테의 수기]는 죽음, 파멸, 궁핍, 몰락, 질병, 공포 등에서
느낀 체험으로 절망적인 현대인의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릴케가 그의
작품 속에서 선택했던 주제는 사랑과 죽음의 문제였다. 그의 애정관은
소유욕을 버린 사랑, 억제된 사랑, 먼 곳에 대한 에로스란 관념 속에
머물고 있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서 영글어 그 열매의 핵
이 될 때 시인은 죽음을 가장 잘 파악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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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네 로댕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의 숙명적인 만남과 이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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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에 관한 책을 쓸 정도로 릴케의 로댕에 관한 생각은 각별하다. 이는 시인으로써의 릴케가 그의 창작활동 과정에서 로댕이라는 거장을 염두해 두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실제로 릴케는 저명한 시인으로 출발하게 되는 전환기에서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창작 방식과 그의 조각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1902년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해로서, 조각가인 아내 클라라 릴케의 소개로 청년 시인 릴케가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오귀스트 르네 로댕(1840-1917)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로댕은 서신연락을 시작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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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로댕의 향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詩작품

Leonid Pasternak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잠깐 머물고 있는
Rainer Maria Rilke의 모습을 그린 스케치 작품 (1900년)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럽게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Herbsttag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고아의 노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아무 것도 되지는 않으렵니다
지금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몸
그러나 훗날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머님들 아버님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정말 키워주신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잘려지는 몸입니다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신세입니다. 지금은 너무 이르고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내가 걸친 이 옷은 이 옷 한 벌 뿐
해어지면 빛이 바랩니다
영원을 간직하는 옷입니다
어쩌면 신 앞에서도 지킬 수 있는 영원입니다
나한테 남은 것이라고는 이 한줌 머리카락 뿐입니다
(언제까지나 똑같은 것이지만)
한때는 사랑하는 이의 것이었어요
이제는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그 사람이어요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부/ 3편)
A god can do so. But tell me how a man
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말 해다오.
is supposed to follow, through the slender lyre?
어떻게 인간이 가냘픈 수금을 통해 신을 따라갈 수 있는지를?
His mind is riven. No temple of Apollo
그의 마음은 찢겨졌다.
stands at the dual crossing of heart-roads.
이중의 마음의 십자로엔. 아폴론의 사원이 서 있지 않구나.
Song, as you have taught it, is not desire,
노래는, 당신이 가르쳐 준 것처럼. 욕망이 아니다.
not a winning by a still final achievement:
묵묵한 마지막 성취에 의한 승리도 아니다:
song is being. A simple thing for a god.
노래란 존재이고. 신에겐 단순한 것.
But when are we in being? And when does he
그러나 우리는 언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언제
turn the earth and stars towards us?
대지와 별을 돌려서 우리에게 향하게 해 줄 것인가?
Young man, this is not your having loved, even if
젊은이여, 이것은 네가 사랑을 간직하는것만으로 될 수 없다.비록
your voice forced open your mouth, then – learn
그때, 네 목소리가 네 입을 열도록 만든다 할지라도.
to forget that you sang out. It fades away.
네가 불렀던 노래를 잊어버리도록 배워라. 그건 사라질것이다.
To sing, in truth, is a different breath.
노래한다는건. 사실은, 또 다른 호흡이며
A breath of nothing. A gust within the god. A wind.
아무것도 호흡하지 않는 것이며. 신 안의 돌풍이고. 바람이기 때문이다.
엄숙한 시간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슬퍼 울고 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자신이 직접 쓴 릴케의 묘비명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Rose, oh reiner Widersprl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나를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삼아 주소서.
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소서.
나에게, 바다의 고독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소서.
양 기슭의 맞부딪치는 소음 속에서
멀리 밤의 음향 속으로
나를 당신의 텅빈 나라로 보내 주소서.
그곳을 지나 끝없는 바람이 불어
큰 수도원의 승복처럼
아직 살아 보지도 못한 삶의 주위에 서 있는 그곳에
어떤 유혹에 의해서도 다시는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거기서 나는 순례자 쪽에 서렵니다.
눈 먼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모르는 사람뿐인 길을 가렵니다.
피에타
이렇게, 예수여, 저는 당신의 발을 다시 봅니다,
제가 가슴 떨며 벗기고 씻겨드렸던,
그 때는 한 젊은이의 발이었지요.
내 드리운 머리카락 속에 당황하여 서 있던 모습
마치 가시덤불 속에 하얀 야수 같았지요.
이렇게 저는 당신의 사랑 받은 적 없는 팔다리를 봅니다
처음으로 이 사랑의 밤에.
우리는 아직 함께 누워 본 적도 없는데,
이제는 경이로와 지켜볼 뿐이로군요.
그런데, 보아요, 당신의 손이 찢겨 있군요-:
사랑하는 이여, 저 때문에, 제가 찔러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당신의 심장은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군요:
어찌 저만 들어갈 수는 없었던가요.
이제 당신은 지쳤고, 당신의 지친 입술은
제 슬픈 입술에 아무런 욕구도 없군요-.
오 예수여, 예수여, 우리의 시간은 언제였나요?
어쩌면 기이하게도 우리 둘 다 몰락하는지.
Pieta
So seh ich, Jesus, deine Fusse wieder,
die darmals eines J nglings Fusse waren,
da ich sie bang entkleidete und wusch;
wie standen sie verwirrt in meinen Haaren
und wie ein wei es Wild im Dornenbusch.
So seh ich deine nie geliebten Glieder
zum erstenmal in dieser Liebesnacht.
Wir legten uns noch nie zusammen nieder,
und nun wird nur bewundert und gewacht.
Doch, siehe, deine Haende sind zerrissen-:
Geliebter, nicht von mir, von meinen Bissen.
Dein Herz steht offen und man kann hinein:
das haette duerfen nur mein Eingang sein.
Nun bist du muede, und dein mueder Mund
hat keine Lust zu meinem wehen Munde-.
O Jesus, Jesus, wann war unsre Stunde?
Wie gehn wir beide wunderlich zugrund.
서시(序詩)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
Entrance
- Rainer Maria Rilke (Translated by Edward Snow)
Whoever you are: in the evening step out
of your room, where you know everything;
yours is the last house before the far-off:
whoever you are.
With your eyes, which in their weariness
barely free themselves from the worn-out threshold,
you lift very slowly one black tree
and place it against the sky: slender, alone.
And you have made the world. And it is huge
and like a word which grows ripe in silence.
And as your will seizes on its meaning,
tenderly your eyes let go. . . .
(김재혁 / 고려대학교 교수 / 옮김)

Rainer Maria Rilke와 염문을 낳았던
Lou-Andreas Salome(1861-1937)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잡을 것입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나의 뇌가 심장으로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당신을 핏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두이노의 비가-제 4 비가 (1-18)
오 생명의 나무여, 겨울은 언제이뇨?
우리는 한 마음이 아니다. 철새들처럼 그렇게
때를 알지도 못해 뒤쳐지고 늦어서야 우리는
느닷없이 억지 바람을 일으켜
무심한 못 위로 떨어질 뿐이다.
피고 지는 것을 우리는 동시에 의식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고 있는 사자들은 무기력을 모르련만.
그러나 우리가 서로 아주 하나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이미 상대편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적대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것, 여인들도
언제나 서로 안에 하나가 되어
가장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
거기 아득한 넓이와 사냥과 고향이 약속되어 있건만.
한 순간의 그림을 위한 여기에도
애써 대조의 바탕이 마련된다.
우리가 그것을 보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아니까. 우리는 감정의 윤곽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밖에서 그것을 형성해 주는 것일뿐.
Die vierte Elegie 1-18
O Baeume Lebens, o wann winterlich?
Wir sind nicht einig. Sind nicht wie die Zug-
voegel verstaendigt. Ueberholt und spaet,
so draegen wir uns ploetzlich Winden auf
und fallen ein auf teilnahmslosen Teich.
Bluehn und verdorrn ist uns zugleich bewusst.
Und irgendwo gehn Loewen noch und wissen,
solang sie herrlich sind, von keiner Ohnmacht.
Uns aber, wo wir Eines meinen, ganz,
ist schon des andern Aufwand fuehlbar, Feindschaft
ist uns das Naechste. Treten Liebende
nicht immerfort an Raender, eins im andern,
die sich versprachen Weite, Jagd und Heimat.
Da wird fuer eines Augenblickes Zeichnung
ein Grund von Gegenteil bereitet, muehsam,
dass wir sie saehen; denn man ist sehr deutlich
mit uns. Wir kennen den Kontur
des Fuehlens nicht: nur, was ihn formt von aussen
두이노의 비가
내가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주리오? 설령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보다 사뭇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에 다름아니니까.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소리를 꿀컥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부릴 수 있을까? 천사들도 아니요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런지.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에의 뒤틀린 맹종, 그것들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모든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드리운,
약간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한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우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찬 날갯짓으로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수많은 별들은
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혹은
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
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줄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밤이면 어김없이 네 안에 머무르는데.)
그리웁거들랑, 사랑을 하는 자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라.
네가 시기할 지경인 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의
만족을 맛본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에 빠진 자들을,
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스탐파의 드높은 모범에서
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 된 고통들이 우리에게
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
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
무릎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
더 견디기 어려우리.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전언을.
이제 그 젊은 주검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교회든 로마든 나폴리든
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碑文처럼
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
순수한 움직임에 가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옳지 못한 인상일랑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지상에 더 이상 살지 않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겨우 익힌 관습을 다시는 행할 수 없음과,
장미들과 그밖의 무언가 나름대로 약속하는 사물들에게
인간의 장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아님이,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죽어 있다는 것은
점차 조금이나마 영원을 맛보기 위한 힘겨움과 만회로
가득 차 있는 것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
모든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
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
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의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니,
우리는 어느 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
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 그들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단단함 사이를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깜짝 놀란 공간 속에서 비로소 공허함이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Duineser Elegien - The First Elegy
- Rainer Maria Rilke
Who, if I cried out, would hear me among the angels"
hierarchies? and even if one of them suddenly
pressed me against his heart, I would perish
in the embrace of his stronger existence.
For beauty is nothing but the beginning of terror
which we are barely able to endure and are awed
because it serenely disdains to annihilate us.
Each single angel is terrifying.
And so I force myself, swallow and hold back
the surging call of my dark sobbing.
Oh, to whom can we turn for help?
Not angels, not humans;
and even the knowing animals are aware that we feel
little secure and at home in our interpreted world.
There remains perhaps some tree on a hillside
daily for us to see; yesterday"s street remains for us
stayed, moved in with us and showed no signs of leaving.
Oh, and the night, the night, when the wind
full of cosmic space invades our frightened faces.
Whom would it not remain for -that longed-after,
gently disenchanting night, painfully there for the
solitary heart to achieve? Is it easier for lovers?
Don"t you know yet ? Fling out of your arms the
emptiness into the spaces we breath -perhaps the birds
will feel the expanded air in their more ferven flight.
Yes, the springtime were in need of you. Often a star
waited for you to espy it and sense its light.
A wave rolled toward you out of the distant past,
or as you walked below an open window,
a violin gave itself to your hearing.
All this was trust. But could you manage it?
Were you not always distraught by expectation,
as if all this were announcing the arrival
of a beloved? (Where would you find a place
to hide her, with all your great strange thoughts
coming and going and often staying for the night.)
When longing overcomes you, sing of women in love;
for their famous passion is far from immortal enough.
Those whom you almost envy, the abandoned and
desolate ones, whom you found so much more loving
than those gratified. Begin ever new again
the praise you cannot attain; remember:
the hero lives on and survives; even his downfall
was for him only a pretext for achieving
his final birth. But nature, exhausted, takes lovers
back into itself, as if such creative forces could never be
achieved a second time.
Have you thought of Gaspara Stampa sufficiently:
that any girl abandoned by her lover may feel
from that far intenser example of loving:
"Ah, might I become like her!" Should not their oldest
sufferings finally become more fruitful for us?
Is it not time that lovingly we freed ourselves
from the beloved and, quivering, endured:
as the arrow endures the bow-string"s tension,
and in this tense release becomes more than itself.
For staying is nowhere.
Voices, voices. Listen my heart, as only saints
have listened: until the gigantic call lifted them
clear off the ground. Yet they went on, impossibly,
kneeling, completely unawares: so intense was
their listening. Not that you could endure
the voice of God -far from it! But listen
to the voice of the wind and the ceaseless message
that forms itself out of silence. They sweep
toward you now from those who died young.
Whenever they entered a church in Rome or Naples,
did not their fate quietly speak to you as recently
as the tablet did in Santa Maria Formosa?
What do they want of me? to quietly remove
the appearance of suffered injustice that,
at times, hinders a little their spirits from
freely proceeding onward.
Of course, it is strange to inhabit the earth no longer,
to no longer use skills on had barely time to acquire;
not to observe roses and other things that promised
so much in terms of a human future, no longer
to be what one was in infinitely anxious hands;
to even discard one"s own name as easily as a child
abandons a broken toy.
Strange, not to desire to continue wishing one"s wishes.
Strange to notice all that was related, fluttering
so loosely in space. And being dead is hard work
and full of retrieving before one can gradually feel a
trace of eternity. -Yes, but the liviing make
the mistake of drawing too sharp a distinction.
Angels (they say) are often unable to distinguish
between moving among the living or the dead.
The eternal torrent whirls all ages along with it,
through both realms forever, and their voices are lost in
its thunderous roar.
In the end the early departed have no longer
need of us. One is gently weaned from things
of this world as a child outgrows the need
of its mother"s breast. But we who have need
of those great mysteries, we for whom grief is
so often the source of spiritual growth,
could we exist without them?
Is the legend vain that tells of music"s beginning
in the midst of the mourning for Linos?
the daring first sounds of song piercing
the barren numbness, and how in that stunned space
an almost godlike youth suddenly left forever,
and the emptiness felt for the first time
those harmonious vibrations which now enrapture
and comfort and help us.
삶의 평범한 가치
이따금 나는 륨 드 세인 같은 거리의 조그만 가게의
윈도우 앞을 어정거리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고물상이나 조그만 헌 책방의 동판화를 파는 가게로
어느 윈도우에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나는 손님이 한 사람도 들어가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마 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역시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앉아서 무엇을 읽고 있다. 정말 한가한 모습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려고 억척을 피우는
모습이란 눈곱만치도 없다.
발치에는 살이 찐 개가 배를 깔고 누워 있다.
개가 아니면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꽂혀 있는 책에
몸을 비비며 표지의 등 글자를 지우듯이 걸어 다닌다.
그것은 주위의 조용함을 더욱 깊게 하는 것 같다.
아아, 이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구닥다리 물건이 차 있는 윈도우를
고스란히 사들여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서
20년쯤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가을
잎이 떨어집니다. 멀리서인 듯 떨어집니다.
하늘의 저 먼 정원이 시든 것처럼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밤이면 저 무거운 대지가
모든 별들에서 고독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떨어집니다. 이 손도 떨어집니다.
다른 것을 보십시오.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지요.
하지만 이 떨어짐을 부드러운 손으로
끝없이 맞아주는 누군가가 계십니다.
Autumn
The leaves are falling, falling as if from far up,
as if orchards were dying high in space.
Each leaf falls as if it were motioning "no."
And tonight the heavy earth is falling
away from all other stars in the loneliness.
We"re all falling. This hand here is falling.
And look at the other one. It"s in them all.
And yet there is Someone, whose hands
infinitely calm, holding up all this falling.
Translated by Robert Bly
조두환 번역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고독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Einsamkeit
DIE Einsamkeit ist wie ein Regen.
Sie steigt vom Meer den Abenden entgegen;
von Ebenen, die fern sind und entlegen,
geht sie zum Himmel, der sie immer hat.
Und erst vom Himmel fallt sie auf die Stadt.
Regnet hernieder in den Zwitterstunden,
wenn sich nach Morgen wenden alle Gassen
und wenn die Leiber, welche nichts gefunden,
enttauscht und traurig von einander lassen;
und wenn die Menschen, die einander hassen,
in einem Bett zusammen schlafen mussen:
dann geht die Einsamkeit mit den Flussen....
만년의 밤
밤이여, 오 그대 나의 얼굴에서
깊이 속으로 녹아든 얼굴이여.
그대여, 내 경탄하는 관조의 가장 위대한
과중(過重)함이여.
밤이여, 나의 응시 속에 전율하며,
그러나 스스로 그토록 확고한 ;
고갈되지 않는 피조물,
대지의 잔해(殘骸) 위에 영원한;
저네들의 가장자리의 도피로부터
중간영역의
소리 없는 모험 속으로 불길을 던지는
어린 별들로 가득한;
그대 다만 존재함 자체만으로도, 우월한 존재여,
나는 얼마나 왜소한 모습인가 ― ;
허나 어두운 대지와 한 몸 되어
내 감히 그대 안에 존재하려 하노라.
Aus dem Umkreis : N chte
Nacht. Oh du in Tiefe gel stes
Gesicht an meinem Gesicht.
Du, meines staunenden Anschauns gr tes
bergewicht.
Nacht, in meinem Blicke erschauernd,
aber in sich so fest;
unersch pfliche Sch pfung, dauernd
ber dem Erdenrest;
voll von jungen Gestirnen, die Feuer
aus der Flucht ihres Saums
schleudern ins lautlose Abenteuer
des Zwischenraums:
wie, durch dein blo es Dasein, erschein ich,
bertrefferin, klein ― ;
doch, mit der dunkelen Erde einig,
wag ich es, in dir zu sein. (SWII 178f.)
과수원
1
내가 만일 빌려온 언어로 그대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과수원이라는 이 소박한 명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명사 하나에 사로잡혀 오래 전부터 고통스러워했다.
이 명사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너무나 막연한 하나의 의미나,
또는 그보다 못한 방어하는 울타리라는 의미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가엾은 시인이여.
과수원 : 오, 너를 단순하게 이름 부를 수 있는
리라의 특권이여 ;
꿀벌들을 매혹하는 비할 데 없는 말,
숨쉬고 기다리는 말...
고대의 봄을 숨기고 있는 명료한 명사,
가득 차 있으면서도 투명한 말,
그 대칭적인 음절 안에서
모든 것을 배가시킴으로써 풍요로워지는 말.
VERGER
- Rainer Maria Rilke
1
PEUT-ÊTRE que si j"ai osé t"écrire,
langue prêtée, c"était pour employer
ce nom rustique dont l"unique empire
me tourmentait depuis toujours : Verger.
Pauvre poète qui doit élire
pour dire tout ce que ce nom comprend,
un à peu près trop vague qui chavrre,
ou pire : la cloture qui défend.
Verger : o privilège d"une lyre
de pouvoir te nommer simplement ;
nom sans pareil qui les abeilles attire,
nom qui respire et attend ...
Nom clair qui cache le printemps antique,
tout aussi plein que transparent,
et qui dans ses syllabes symtriéques
redouble tout et devient abondant.
- 릴케전집 3. 「완성시(1906 ~ 1926). 프랑스어로 쓴 시」(책세상 , 2001, 옮긴이 김정란)에서
(원문: "Rilke Werke", Zweite Auflage, Insel Verlag, 1982)
Rainer Maria Rilke 의 그림엽서
말테의 수기
- 국립 도서관에서 7
사랑하는 에리크. 아마도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 나에게 친구라곤
없었으니까 말야. 네가 우정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네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마도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네 초상화가 그려진 때를 기억하고 있단다. 할아버지가 네 그림을
그려 줄 누군가를 부르셨지. 매일 아침 한 시간씩 말이야. 그 화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마틸데 브라에가 매번 그 이름을 반복했는데도 그
화가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구나.
그 화가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네 모습을 보았을까? 넌 혈옥석 빛깔의 벨벳으로
만든 양복을 입고 있어. 마틸데 브라에가 이 옷에 아주 정신을 빼앗겼었지. 하지만
지금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화가가 너의 모습을 보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진짜 화가라고 가정해 보자. 자기가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네가 죽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결코 그 일을 감상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그림만 그렸다고 가정해 보자. 너의 갈색 두 눈이 똑같이 않은 데 대해 그 사람이
매력을 느꼈다고 가정해 보고, 그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를 한순간이라도 꺼린
적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네가 약간 기대고 있을 탁자 위에 네 손밖에는
아무것도 더 늘어놓지 않을 만큼 분별력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밖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정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그림이 있게 된다. 너의 초상화, 그것은
우르네클로스트 화랑의 맨 마지막에 걸리게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모든 그림을 다 보았다면, 한 소년의 그림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생각한다. 누구더라? 브라에 집안의 사람일 것이다. 그 순간 생각한다.
누구더라? 브라에 집안의 사람일 것이다. 어두운 들판에 세워져 있는 은빛 말뚝과
공작의 깃털을 너는 보고 있니? 거기에는 이름도 씌어져 있다. 에리크 브라에.
처형당한 에리크 브라에를 말하는 건가? 물론 그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 소년은, 소년일 때 죽었다.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볼 수 없단 말인가?)
방문객이 있어서 에리크가 불려가면, 마틸데 양은 매번 에리크가 브라에 노백작
부인, 즉 나의 외할머니와 얼마나 닮았는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라고 말했었다.
외할머니는 풍채가 매우 큰 부인이셨다고들 했다.
나는 그분을 뵌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울스가르의 실제 여주인이셨던 내 할머니의
기억은 생생하다. 어머니가 수렴관의 아내로서 집으로 들어온 것에 할머니는 얼마나
화가 나셨던지 끝내 여주인의 자리를 내놓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신
후로 할머니는 항상 뒷전에 물러나신 것처럼 행동하셨다. 그렇지만 당신이 중요한
일들을 조용히 결정하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처리하시는 동안에, 할머니는 하인을
시켜 자질구레한 일들을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보내셨다. 내 생각으로는 어머니께서도
달리 여주인의 자리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큰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중요한 일과 부차적인 일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말해 주는 것을 어머니는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러면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도 그것을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었다. 하기야 불평하려고 해도 붙잡고 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지극히 공손한 아들이었고 할아버지는 말씀이 적으신
분이셨다.
내가 기억하기에, 마르가레테 브리게 할머니는 키가 크고 범접하기 힘든 노인이셨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할머니가 시종관 할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는
것뿐이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들 가운데에서 살아가셨다. 할머니는
우리들 중에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신 적이 없었고 일종의 말동무로서 백작의 늙은 딸
오크세를 가까이에 두셨다. 오크세는 어떻게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없이
그 책임을 다하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살아 생전 선행이라곤 모르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유일한 예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귀여워하지도 않으셨고, 동물들도 가까이 두려고 하시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 밖에
어떤 것을 사랑하시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들리는 얘기로는, 할머니가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 펠릭스 리히노포스키라는 잘생긴 청년과 약혼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참하게 죽었다고 했다. 실제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공작의
초상화가 발견되었다. 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 그림을
가족에게 돌려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할머니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해 가는 이 고독한
울스가르의 전원 생활에 묻혀 할머니의 본성에 맞는 삶의 다른 면, 즉 찬란한 삶을
등한시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가 그 점을 애석해하셨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아마도 할머니는 재능과 재치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당신께 오지 않았거나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을 대신해서 찬란한 삶을 경멸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이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묻어 두셨고 그 위를 껍질로 덮으셨다. 그것은 매우 여러
겹이었고 깨지기 쉬웠으며 약간 금속성의 빛을 띠었고, 그때마다 맨 위의 껍질이
새롭고 차갑게 보였다. 물론 이따금 소박한 초조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당신을 충분히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식탁에서 갑자기 사레 들린 시늉을 하시곤 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비록 한순간이나마 이목을 집중시키고
긴장시키는 분명하고 복잡한 형태의 사레였다. 너무 자주 발생하는 이 우연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아마 아버지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는 공손하게
몸을 숙이고 할머니를 쳐다보셨다. 아버지는 마음으로나마 자신의 정상적인 기관을
할머니에게 드리고 사용하시도록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시종관 할아버지도
식사를 멈추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시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할아버지가 식탁에서 할머니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고집하신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심술궂고 은밀하게 계속 전해졌다. 물론
금시초문인 사람도 어디에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얘기인즉슨, 언젠가 시종관
할아버지의 부주의로 인해 식탁보에 생긴 포도주 얼룩을 두고 할머니가 몹시 화를
내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생긴 얼룩이건 간에 얼룩은 할머니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심한 핀잔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그날은 저명한 손님들이 여러 명 초대된
날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전혀 악의 없이 만들어 놓은 몇 개의 얼룩에
대해 지나치게 조롱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할아버지가 눈에 띄지 않는 표시와
농담조의 말로 경고하려고 애쓰셨건만 할머니는 고집스레 잔소리를 계속하셨다.
그러자 좌중에서 할머니가 잔소리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시종관
할아버지께서는 좌중에 돌아가고 있던 적포도주를 가져오게 해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이제 막 당신의 잔을 채우시려던 참이었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잔이 넘치는데도 술병을 내려놓지 않고 숨죽인 듯 조용한 가운데 서서히
조심스레 계속해서 술을 따르셨다. 결국 참다 못해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리셨고, 그
웃음으로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사람들을 쳐다보고 하인에게 포도주병을 건네셨다.
그 후 할머니에게는 다른 성격이 두드러졌다. 할머니께서는 집 안에서 누군가가
아프다는 것을 참지 못하셨다. 한 번은 부상당한 요리사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시고는 요오드 포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런 일로 사람을 해고시킬 수는 없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셨다.
할머니에게 질병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존재였다. 만약 누군가가 부주의하게도 할머니
면전에서 사소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면, 그것은 할머니에게는 개인적인 모욕이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그 사람을 원망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 가을에 할머니는 소피 오크세와 함께 당신 방의 방문을
걸어 잠그시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당신의 아드님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죽음이 시기적으로 적합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방은 불이 들어오지
않아 꽁꽁 얼었고, 난로에서는 연기 냄새가 났으며, 쥐들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쥐들 앞에서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르가레테 브리게 할머니의 화를 북돋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말하기조차 싫은 일이 번듯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할머니는 화가
나셨다. 받아 놓은 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보다 앞서서 젊은 부인이 감히 우선권을 주장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주 생각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독촉 받는 입장이
되고 싶지는 않으셨다. 할머니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이 내키실 때 돌아가실 테고, 그런
다음이면 모두들 서둘러 가더라도 편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죽음이 우리 탓인 듯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그 해
겨울을 나는 동안 할머니는 눈에 띄게 노쇠해지셨다. 걸어가실 때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훤칠했지만, 소파에 앉아 계실 때에는 푹 가라앉은 모습이었고 귀도 점점
멀어져 갔다.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어도 할머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셨다. 마치 어떤 곳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아주 가끔씩 그 곳에서
나와, 더 이상 할머니가 살고 있지 않은 텅 빈 할머니의 정신으로 잠깐 동안 돌아오는
듯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외투를 내미는 백작의 딸에게 뭐라 말씀하시고는
깨끗하고 큼직한 손으로 옷을 받으셨다. 마치 물이 엎질러져 있기라도 한 듯, 아니면
우리가 불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할머니는 봄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밤 시내에 있는 집에서 숨을 거두셨다. 문을
열어 놓고 있던 소피 오크세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침에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그때는 이미 할머니의 몸이 유리잔처럼 차가워진 후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시종관 할아버지의 그 끔찍한 병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죽음을 맞기 위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신
듯했다.
내가 아벨로네를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였다. 아벨로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아벨로네는 붙임성이 없는
여자였다. 나는 일찍이 어떤 기회에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고, 그리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검토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아벨로네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묻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아벨로네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함부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아벨로네가 여기 있는 거지? 우리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 있어야 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비록 오크세 부인처럼
그다지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벨로네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휴식을 취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잠깐 나온 적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곧 잊어버렸다. 아무도 아벨로네가 휴식을 취하도록 신경을 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노래를 잘 불렀던 것이다. 그 말은 그녀가
노래하는 시간이 있음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강렬하고 혼돈 되지 않은 음악이 있었다.
천사가 남성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녀의 목소리에는 남성적인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빛나는 천사의 목소리였다. 내가 비록 어릴 때부터
이미 음악에 대해 불신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음악이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나를
고양시켜서가 아니라, 음악이 내가 있던 곳에 나를 되돌려 놓지 않고 심오한 곳으로,
미완성의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여자의 음악은
정말이지 들을 만했다.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잠시나마 나 자신이 곧바로
위로 솟아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결국에는 이것이 아마도 천국의 세계임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벨로네가 나에게 또 다른 천국의
문을 열어 주리라는 것은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 관계의 본질은, 그녀가 나에게 어머니의 처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데에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얼마나 용기 있고 젊었던가를 나에게 확신시켜 주려
애썼다. 그녀의 확언에 따르면 그 당시 춤추기나 말타기에서 어머니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용기가 철철 넘치고 결코 지치는 일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결혼을 하시더라구요"라고 아벨로네는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벨로네가 왜 결혼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비교적 나이가 들어 보였고
아직도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고, 그럴 때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아벨로네가 정말 아름다운가? 나는 깜짝 놀라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집을 떠나 귀족들을 위한 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견디기 힘든 답답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소레시에서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조금이나마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면, 나는 창가에 서서 그 너머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나 밤이면, 내 마음속에 아벨로네가 아름답다는 확신이
자라났다. 그러고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길고 짧게 쓴 편지, 그리고
울스가르 시절에 대해 쓰거나 나는 지금 불행하다고 쓴 많은 비밀편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연애편지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방학이 마침내 오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약속이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마차가 정원으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마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집 앞까지 마치를 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미 여름이 한창이었다. 나는 한길로 들어가 금잔화가 피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아벨로네가 있었다. 아름답디 아름다운 아벨로네가.
나는 네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의 광경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너의 시선을,
고정되지 않은 어떤 것을 뒤로 젖혀진 얼굴에다 붙잡고 있는 그 모습을.
아, 기후가 바뀐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온기로 가득 차서 울스가르 주변이 더
온화해진 것은 아닌가? 이제 정원의 장미꽃들은 한겨울까지 피어 있지 않을까?
아벨로네, 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여, 네가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잊지 못할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한 데 반해, 나란 사람은 그저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말이란, 항상
부당한 결과만을 낳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벨로네, 여기 융단이 있다, 벽걸이용 융단이. 네가 여기 있다고 상상해 본다. 이건
여섯 폭의 벽걸이다. 그럼, 우리 한 번 둘러볼까? 하지만 우선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보자. 정말 평화로운 풍경이지, 그렇지 않니? 그 안에서는 거의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말야.
이 타원형의 푸른 섬이 붉은 바탕에 둥둥 떠 있는데 바탕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고, 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자그마한 동물이 살고 있다. 마지막 벽걸이에만 좀
가벼워진 듯 섬이 약간 솟아올라 있다. 섬은 항상 한 인물을 담고 있는데, 같은 여자가
여러 가지 옷을 갈아입고 있다. 때때로 그녀 곁에는 작은 인물이, 다시 말해서 하녀가
있다.
그리고 섬과 줄거리에 걸맞게 문장 모양의 큼직한 동물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
왼쪽은 사자이고 오른쪽은 밝은 빛의 유니콘이다. 그것들의 머리 위 높은 곳에는 같은
모양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깃발에는 막 솟아오르는 은빛 다링 세 개 그려져 있다.
붉은 바탕의 그것은 푸른색 끈으로 묶어져 있다. 너도 보았니? 자, 이제 처음부터
시작해 볼까?
그 여자는 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다. 옷자락이 흘러내린 손 위에 매가 앉아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새 쪽을
쳐다보면서, 새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 하녀가 가져온 접시로 막 손을 뻗고 있다.
오른쪽 아래 옷자락에는 비단결 같은 털을 가진 조그마한 개가 지키고 있다. 개는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쳐다보고 있다.
섬 뒤로 나지막이 장미 울타리가 쳐져 있는 것을 너도 보았겠지. 문장 모양의
동물들은 말 그대로 용기백배해 있다. 동물들은 문장이 그려진 망토를 몸에다 다시
한번 두르고 있다. 아름다운 브로치가 채워져 있다. 바람이 분다.
굳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죽여 그 다음 벽걸이로 가지 않아도, 곧 여자가 생각에
골몰해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여자는 화환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작고 둥근
화관이다. 자기 앞의 꽃을 엮는 동안, 여자는 하녀가 들고 있는 얇은 대야에서 다음에
어떤 색깔의 패랭이꽃을 고를까 생각에 잠겨 있다. 뒤에 있는 벤치 위에는 원숭이가
찾아온, 장미꽃이 가득한 바구니가 아직 사용되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이번에도
패랭이꽃이어야만 하는 모양이다. 사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에
있는 유니콘은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적 속에 음악이 필요 없다면 그것은 이미 음악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는 무겁고 단아하게 치장을 하고(아마 천천히 걸어가겠지, 그렇지 않니?)
파이프 오르간 앞으로 걸어가서 선 채로 연주를 한다. 저 건너편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는 하녀와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나뉘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여자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적은 없었다. 머리를 두 갈래고 땋아서 머리핀으로 올린 모습은 너무나
멋지다. 머리끝이 투구 장식처럼 짧게 머리끈에서 솟아 올라와 있다. 사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울음을 참느라 입을 깨물고 묵묵히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나 유니콘은 파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섬이 넓어진다. 천막이 쳐져 있다. 푸른 비단으로 만든 천막에서 금빛이 난다.
동물들이 그것을 걷어치울 것 같은데, 그 여자가 왕후의 옷을 입고 순박한 얼굴로
등장한다. 그녀에 비하면 진주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하녀가 조그마한 상자를 열었고
여자가 이제 목걸이를 꺼낸다. 그것은 늘 간직해 두었던 무겁고 빛나는 장신구겠지.
여자 곁에 있던 자그마한 개가 몸을 높여 제자리에서 그것을 지켜본다. 천막 테두리
윗부분에 씌어진 글을 넌 보았니? "나의 사랑하는 단 한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작은 토끼가 왜 저 아래에서 뛰어나오는 걸까? 그것이 왜
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모든 것이 너무 소심해 보인다. 사자는 상관하지
않는다. 여자 스스로 깃발을 들고 있다. 아니면 거기에 기대고 있는 걸까? 다른
손으로는 유니콘의 뿔을 잡고 있었다. 상중일까? 상을 당한 사람이 이토록 꿋꿋할 수
있을까? 군데군데 주름이 잡힌 이 검은녹색의 벨벳 옷처럼 이토록 말없는 상복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다시 축제가 벌어지고 거기에 초대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대해도
소용없다. 없는 것이 없다. 영원히 그러하다. 사자가 위협적으로 둘러본다. 아무도
와서는 안된다는 눈치다. 그 여자는 전에 없이 피곤해한다. 피곤한 것인가? 아니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어서 축 쳐져 있을 따름인가? 들고 있는 것은 성체현시대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한쪽 팔을 유니콘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그 동물은 아양을
피우듯 우뚝 서서 무릎에 기대고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거울이다. 그녀는
유니콘의 모습을 비춰 주고 있다.
아벨로네, 나는 네가 거기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해하지, 아벨로네? 네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출처: 시 아닌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