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휘트먼[Whitman, Walt, 1819.5.31~1892.3.26]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인.
휘트먼은 가장 미국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수필가·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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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출생하였다.
1823년 브룩클린으로 이사하였다. 1846년 민주당계 일간지 <이글>의 편집자 역임하였다.
1855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풀잎> 초판 발행하였다. 1882년 산문집 <자선일기 기타>를 출판하였다. 논문<민주주의의 미래상>에서도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북소리>를 출판하고, 이듬해 그가 존경하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를 발표하였다. 1892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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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회의 새로운 상을 노래한 시인
휘트먼은 미국 사회의 새로운 상을 노래한 시인이다. 당시까지 미국은 유럽이라는 일종의 '모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나, 휘트먼은 비로소 미국 고유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 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유와 평등이 될 것이다. 대표 시집 <풀잎>에서 나타나는 평등주의, 민주주의, 동포애, 그리고 육체에 대한 찬미 등이 점은 바로 미국 정신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문에서도 나타나듯이, 그의 생애나 시 속에는 동성애적인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5년간의 공식 교육을 마친 후에 인쇄소 직공을 하다가 신문 편집일을 하던 30세가 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는 포우, 디킨슨과 더불어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 특히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발간한 <풀잎>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동등한 존중, 열린 정신, 정치적 자유 등을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시 형식의 정형성을 깨뜨리는 자유시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것이다. 또한 일상언어에 대한 찬양과 함께, 비어와 은어, 토속어 등을 사용함으로써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지속했다. 문학 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는 휘트먼. 그는 '자연'이라는 일관된 주제와 질서를 통해 나와 너의 관계, 즉 인간 사회를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권경우/김포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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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캡틴 마이 캡틴!'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웰튼 고등학교 학생들은 키팅 선생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책상 위로 한 명씩 올라간다. 책상 위로 올라가면서 학생들이 외치는 구호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은 미국의 국민시인 월트 휘트먼이 링컨 대통령에게 바친 추모시다.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꼽히는 월트 휘트먼은 한명 한명의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가치를 지닌 우주로 인정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동등한 우주라고 생각한 휘트먼에게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나 노예를 해방시키고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링컨은 말 그대로 '선장'이었다.
휘트먼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자연을 사랑했다. 농부, 마부, 뱃사공 같은 주변 사람들과 꿀벌, 떡갈나무, 공기, 흙 같은 것들이 휘트먼 시의 소재였다. 그의 삶은 경건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평생 단 두 권의 책을 냈다. 시집 '풀잎'과 일기인 '나 자신의 노래'가 그것이다.
최근 '나 자신의 노래'(바움 펴냄)가 국내에 새롭게 출간됐다.
"손때로 더럽혀진 페이지마다, 우연히 끼적거린 짧은 글귀마다 내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음성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구겨진 종잇조각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역사학자들이 미국 역사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 100인을 뽑았을 때 휘트먼은 22위를 차지했다. 정치가도 군인도 아닌 시인이 미국역사에 기여했다고 인정을 받은 까닭은 그의 사상이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큰 의미로 남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는 휘트먼의 범시민적 세계관은 미국 시민사회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링컨 진영인 북군의 지지자였던 휘트먼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일기에 이런 말을 썼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기록하지 않는 한, 그 역사는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 만약 이 전쟁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면 남군의 이야기도 함께 적어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아들과 남편과 친구를 잃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 문학 역시 신변잡기적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세상이 변한 이유도 있겠지만 문학가들의 기개가 옛날만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품이 아닌 큰 문학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월트 휘트먼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허연의 북카페 / 신변잡기문학의 시대, 휘트먼을 돌아본다 / 매일경제>
월트 휘트먼의 삶과, 풀잎 시문학 탐구
/ 황 경 락 엮음
1)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은 롱아이랜드(West Hill, near Huntington)
에서 5월 31일에 빈농의 8남매가운데 둘째로 태어 났다. 1855년(36세)에 초판이 출판
된 '풀잎'(Leaves of Grass) 최초의 자유시집 이라는 의의가 있다.
휘트먼은 미국 낭만주의 시대의 최대의 시인이다. 휘트먼은 미국에 있어서의 자유시
에 의한 국민적인 시인이 된것은 평생작업이었던 시집 '풀잎' 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풀잎'은 1855년 7월에 12편의 시를 수록하여 출판한 후 1892년 죽기전 까지 아홉차례
에 걸처 개정판을 내며 이후 자꾸 시가 불어서 어느듯 대시집(400편)이 되였다.
이 '풀잎'은 휘트먼의 사상을 모조리 쏟은 시집이며, 민중을 사랑하고 자유를 존중
하며 바른 길을 걷는 휘트먼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 '풀잎'은 휘트먼의 위대한 대표작 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흙에 뿌리를 내린
미국 문학의 위대한 선구적 작품이며 이 시집이 전세계의 후대 문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헤아릴 수 가 없다. 그러나, '풀잎'은 형식이나 내용이나 당시로서는 너무 독창적이며
대담하고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에머슨이 여기에'인간이 탄생했다'고 격찬한 것 말고는
부도덕한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음운과 각운'을 무시한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스타일, 종교적인 도덕의식을 염두에
두지 않는 대담하고 소박한 인간관, 자기를 예사인간으로 알면서 그 예사인간의 상징
이라고 하는 신념, 민주주의적 평등과 사회의 제약에 대한 개인의 반역, 남성에 대한
힘찬 예찬등이 휘트먼의 시의 주요특징 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김희보)
2) 시인의 삶이 작품이해를 위한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시인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작품이해에 빛을 던저 준다고 생각한다.
휘트먼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실로 우리는 몇가지를 지적할 수 가 있다.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목수노릇을 했던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8남매중 둘째로
태어 났으나, 제대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11세에 학업을 중단한 휘트먼은 법률
사무소와 의사집에서 사환노릇을 하기 시작했고, 14세때에, 집을 나와 자립 하게 된다.
첫주인이 독서를 권장하고 순회 서관에 등록시켜 준 덕분에 '아라비안 나이트'도,
통독하고, 월터 스콧의 작품을 탐독하여 문학에 재미를 부쳤으나 기초교육의 수준에
있어서도 학교를 마치지 못한 독학자란 사실이 변경되는 것은 아니였다.
어려서 부터 시인이외의 아무것도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시인들과 달리, 서른살이
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것도 휘트먼의 별난 점이다. '풀잎'의 초판을 자비출판
한 것은 36세 때의 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를 위한 선거
운동에도 참여한 정도의 활동가로서의 이력을 쌓고 나서의 일이였다.
휘트먼은 처음으로 신문에 선보인 작품은 남부와 북부의 대립이 날카로워진 시기에
남부의 노예 소유자에게 장단을 맞추던 의원들을 공격하거나 야유한 정치시 였다.
민주당에게서 '위대한 원리'의 실현을 기대 했던 휘트먼은 현실정치의 실상에 환멸
을 느꼈는데 시인으로 전신한 것에는 이러한 현실경험이 크게 작용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휘트먼에게서 동성애적 경향을 찾아내고, 거론하는 일이 많은데, 사실
휘트먼은 정식 결혼을 하지않은채 일생을 마쳤다.
(1) ' 한 그루의 참나무' ( Isaw in Louisiana a live-oak Growing )
(2) ' 낯모르는 사람에게' (To a stranger )
(3) ' 보라 이 거무튀튀한 얼굴을 ' (Behold this swarthy Face )
'캘러머스'시편들을 남성끼리의 동지애를 노래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기서 동성애적
경향을 찾아 휘트먼의 생애 일화와 결부시켜 애기하는 경우도 많다.
위의 적은 몇가지는 휘트먼 개인사의 별난점으로서 일단 작품세계의 보충설명이 될
만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도 좋을 것이다 .
3) 1920년대에 김석송에 의해서, 그리고 8.15이후에는 정지용에 의해서 소개되고,
번역되면서 휘트먼은 민주주의의 시인, 자유와 평등의 시인, 인도주의의 시인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바 있다. 이러한 통속의 이미지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국민시인이란 이 시인의 공식적인 칭호와 동전의 앞뒤를 이루는
것으로서 실상에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철학자 산타야는 미국사람들이 휘트먼을 미국의 여러 경향의 대변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직 외국인들만이 휘트먼을 미국의 대표자,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휘트먼이 직업적 문인이나, 지식층보다도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이 큰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한소리 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미국의 진정한 대변자라는 칭호가 보다 성숙한 차원에서 수용되고 있다.
즉 아메리카의 민주주의가 외부의 단조한 단일성으로 비쳐지고 있을때, 날카로운
모순과 대조야 말로 아메리카 현실의 요체라는 통찰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휘트먼은 "아메리카의 여러경향의 진정한 대표자"라는 것이다.
휘트먼은 우선 무엇보다도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의 찬미자로 출발
한다. 휘트먼은 "지체와 의식에 대한 아메리카의 멸시" "구속을 참지 못하는 성품"
을 찬양하고, "복종은 조그만큼, 저항은 큼지막 하게" 라고 저항의 복음을 소리높이
외치고 있고 그러한 면에서는 에머슨등과의 초월주의자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혹평 일변도였던 '풀잎'의 세평속에게 유독 에머슨이 격려의 편지를 저자에게 보내
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함께 개인은 동포와의 연대를 통해서
만 자기완성을 도모 할 수 있다는 신렴을 키워 갔다.
'대중속에서' '연대' '단결' '앙상불' 등은 휘트먼이 되풀이 애용한 어휘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아메리카의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믿음, 위대한 나라를 건설
하는 데, 불가결한 수단으로서의 물질적 번영에 대한 물음을, 휘트먼은 에머슨이나,
소로등과 같은 동시대인 들과 공유하고 있었으나 휘트먼은 초월주의자들과 같이,
어떤 개종의 기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휘트먼은 "우리 세계의 근로자들의 무리"
를 "우리의 민주주의 의 희망" 이라 부르고 있고, "일상의 군중을 믿는다 "고 술회
하고 있다. 휘트먼은 자기소신을 시어에 대한 배려, 독자들의 도덕적 편견에 대한
고려없이 대담하게 이른바 '사고' 의 리듬으로 노래하고 있다.
휘트먼은 점점 예언자 혹은 현자의 모습을 키워갔고 따라서 휘트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메시지의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의미하는 시"보다, "존재하는 시"의
미학에 경도하고 시에서 메시지 사냥을 금기로 알고 있는 "시의 이해"의 저자들이
그 많은 영시작품을 해설하고 엮으면서, 그 초판에서, 휘트먼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그럴법한 일이기도 하다.
뒷날, 개정판에서 휘트먼이 구제된 것은 휘트먼에 대한 높아진 평가와 저자들의
유연성의 증대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일부 문인들의 경원에도,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가
휘트먼과 '협정'을 맺게 되고, "네개의 사중주"의 T.S. 엘리엇( Eliot 1888-1965)
이 휘트먼의 메아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은 휘트먼의 그릇 큼을 증거해 준다고 ,
하겠다. 조금쯤 호들갑스럽다던가,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8-1939)
가 지적한 대로 "악 혹은 재앙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도, 큰 그릇에
내재하게 마련인 아쉬운 결여라 보아도 틀림 없을것이다.
끝으로, 우리 한국의 독자로서 휘트먼은 민주주의의 실제보다는 추상적인 원리
만을 노래했다든가, 시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미래상"이 반민주적 보수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든가, 휘트먼의 철학에 일관성이 없다든가 하는 비판을 접어두고, 휘트먼
이 그리는 자유와 평등과 해방과 사랑의 노래에 허심탄회하게 귀기울여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사람됨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향유에 너무나 굶주려 왔고
한편, 삶의 풍요에 기여하는 이러한 여러 가치에 대하여 계속되는 평가 절하노력에
시달려 온 우리의 처지에서는 각별히 그러하다 '풀잎' 초판의 서문에서 인용해 본
다음과 같은 대목은 휘트먼의 자가 해설로서 독자들에게는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 미국의 진가를 남김없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행정부도 입법부도 아니다----
동서 남북의 모든 주에, 그 풍요한 국토의 도처에 살고 있는 민중이야 말로 항상
최대의 대표자인 것이다. ]
[ 예술의 기법, 즉 표현의 요체이고 문학을 비쳐주는 별 구실을 하는것은 단순성
이다--- 단순성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 영어는 강력한 저항의 언어이다, 그것은 상식의 방언이다. ]
* 참고 문헌 : 휘트먼, 풀잎 ( 유종호역 )
김희보, 세계의 명시
By Justin Kaplan
With an introduction Leaves of Grass by Walt Whitman.
<미주이민문학회>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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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의 초판이 나온 것은 1855년 휘트먼의 나이 36세 때이다. 이 초판은 불과 95페이지의 얄팍한 것으로, 표지에 저자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일종의 자비 출판 형식으로 나왔다. 저자의 이름은 없었으나 책 머리에 노동자풍의 휘트먼 사진이 실려 있었고 시 속에 '월트 휘트먼, 하나의 우주, 맨해턴의 사나이'라는 귀절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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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노래
“환희의 노래” 중에서
오 강적과 맞서 싸우고 싶어라,
용감한 적수를 만나고 싶어라
그들과 홀로 대적하고 싶어라,
사람이 얼마나 버틸지 알고 싶어라!
투쟁, 고문, 감금,
대중의 악평을 직접 대면하고 싶어라!
처형대에 오르고 싶어라,
그지없이 태연하게 총구 앞으로 가고 싶어라!
정말이지 신이 되고 싶어라!
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싶어라!
이 하염없이 견딜 수 없는 땅을 떠나고 싶어라
지겹도록 똑같은 거리와 인도와 집들을 떠나고 싶어라
너를, 오 견고하게 움직일 줄 모르는
너 육지를 떠나 배에 오르고 싶어라,
항해하고, 항해하고, 항해하고 싶어라!
오 지금부터 한 편의
새로운 환희의 시 같은 삶을 갖고 싶어라!
춤추고, 손뼉치고, 기뻐 날뛰며, 소리치고,
깡충거리며, 뛰어오르고, 구르고, 떠다니고 싶어라!
모든 항구를 목적지 삼은 세계의 선원이 되고 싶어라.
한 척의 배가 되고 싶어라
(내가 태양과 대기에 펼치는 이 돛들을 보라)
풍성한 언어 가득한,
환희 가득한 재빠르고 부푼 한 척의 배가 되고 싶어라.
A Song of Joys
from "A Song of Joys"
O to struggle against great odds, to meet enemies undaunted!
To be entirely alone with them,
to find how much one can stand!
To look strife, torture, prison, popular odium, face to face!
To mount the scaffold,
to advance to the muzzles of guns with perfect nonchalance!
To be indeed a God!
O to sail to sea in a ship!
To leave this steady unendurable land,
To leave the tiresome sameness of the streets,
the sidewalks and the houses,
To leave you O you solid motionless land,
and entering a ship, To sail and sail and sail!
O to have life henceforth a poem of new joys!
To dance, clap hands, exult, shout, skip, leap, roll on, float on!
To be a sailor of the world bound for all ports,
A ship itself,
(see indeed these sails I spread to the sun and air,)
A swift and swelling ship full of rich words, full of joys.
19세기 미국 초절주의 시
-에머슨과 휘트먼의 비교-
조 규 택
I
클레렌스 고데스(Clarence Gohdes)는 휘트먼의 이상주의와 개인주의가 에머슨의 영향이라고 지적하며, 말콤 카울리(Malcolm Cowley), 차리(V. K. Chari), 제임스 밀러 2세(James E. Miller, Jr.) 등은 휘트먼 사상을 인도 철학과 비교하고 있다. 이는 휘트먼이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힌두교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에머슨적인 초절주의 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에도 휘트먼을 에머슨과 같은 초절주의와 연관지어 논한 평자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초절주의의 부분적인 영역에 국한하여 휘트먼을 언급한데 불과하다. 그 예로 페리 밀러(Perry Miller)는 「초절주의자들」(The Transcendentalists)에서 에머슨을 비롯한 초절주의 클럽 회원들만 언급하고 있으며, 그의 또 다른 저서 「미국초절주의자들: 그들의 산문과 시」에서 휘트먼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367-70).
그러나 1950년 이후 알렌(G. W. Allen)에 의해 초절주의자로서 휘트먼의 시작품들이 에머슨과 연관되어 재조명되었으며, 조셉 비치(Joseph W. Beach)도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에서 칼라일, 에머슨, 그리고 휘트먼의 초절주의적 특성을 매우 체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300-94). 비치는 특히 자연 시인들과의 관계에서 휘트먼의 위치를 독특하게 평가했다. 그는 휘트먼이 지닌 초절주의의 미덕으로 인해 코울리지와 에머슨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으며,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휘트먼은 초절주의의 정점에 있다고 보았다(393-4).
초절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과 자연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인식하고 인간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우주적 지식을 직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일종의 관념론이다. 이는 신, 인간, 자연을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는 관점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존재를 통합하는 구심력은 우주적 영혼이다. 에머슨은 이를 대령(Over-Soul)이라 불렀다. 에머슨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가장 작은 요소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모든 자연 법칙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경배하였으며, 인생의 교훈으로 삼았다(Callow and Reilly 91).
하지만 휘트먼과 기존 초절주의자 에머슨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휘트먼의 경우 시적으로 확산된 자아의 어떠한 요소도 다른 경험 앞에서 격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경우 개인의 영혼과 자연물의 정체성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대령인 바다에 흡수되어 버리지만, 휘트먼에 있어서 개인의 영혼과 자연의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Westbrook 59). 에머슨의 인간에 대한 궁극적 인식은 대령의 명령에 대한 개인의 완전한 복종으로부터 나온다(Howard 83)는 데서 출발하지만, 휘트먼의 개인적 개성은 우주적 관계의 인식과 조화에서 출발한다. 휘트먼 시에서의 시적 화자인 나는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우주적인 것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19세기 뉴잉글랜드에 만연했던 초절주의 개념을 파악하고, 초절주의자들의 대표이며 초절주의에 대한 개념을 설정했던 에머슨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초절주의가 휘트먼 특유의 시와 산문과 비교하여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는 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휘트먼 시에 나타난 특징은 일인칭 화자, 목록, 반복 그리고 열거와 같은 시적 모티브를 사용하여 그의 초절주의 시를 대변하고 있다. 결론에서는 에머슨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휘트먼 시의 초절주의적 특성이 곧 그의 시의 요체임을 밝히고, 동시에 에머슨과 휘트먼의 초절주의는 그들의 유사성 만큼이나 또한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II
휘트먼의 사상은 뉴잉글랜드 초절주의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에머슨을 비롯한 미국 뉴잉글랜드 초절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비록 스미스(F. M. Smith)는 휘트먼이 초절주의자 에머슨보다는 칼라일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하지만, 휘트먼은 일차적으로 초절주의적 사상을 에머슨으로부터 도입했다. 알렌 슈카드(Alan Shucard)는 에머슨이 휘트먼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밝히고 있다(160-71). 또한 로젠펠드(Rosenfeld)는 에머슨과 휘트먼의 밀접한 관계를 문학적인 동일 선상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1-6).
초절주의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에 걸쳐 뉴잉글랜드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18세기 유럽의 합리주의, 과학적 실증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종교적으로 뉴잉글랜드의 칼빈주의적 청교도 주의와 같은 보수적 종교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신대륙의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직관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이 편찬한 「다이얼」(The Dial)과 「브룩 팜」(Brook Farm)등을 통해 당시의 진보적인 사상을 발표했다.
에머슨은 새로운 자연관과 인간관을 바탕으로 하여 새 사상의 탄생을 기대했고, 그 결과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사상을 설정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에머슨의 이 사상을 초절주의라 부르고 있다. 초절주의는 본래 미국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에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학습되었을 뿐이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 사상이 시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일반 사회 생활 가운데서도 태동하고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새로워져야 한다는 당시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이 사상을 실생활에 직접 적용하였다(Buell 1-20).
이런 맥락에서 휘트먼은 바로 에머슨이 갈망하던 이상 국가의 건설과 함께 당시의 산업주의, 물질주의의 팽창, 정치적 모순성을 개혁하여 자연과 합일된 초절주의적 사상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대변한 시인이었다. 에머슨은 이런 휘트먼의 위대성과 재능에 대해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휘트먼은 이 찬사의 편지에 대한 답을 일년 뒤인 1856년 자신의 「풀잎」(Leaves of Grass) 제2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휘트먼은 에머슨을 친구로, 그리고 스승으로 호칭한다. 휘트먼의 「풀잎」 출판에 대한 에머슨의 격려의 편지는 먼 훗날 미국의 대시인으로서 휘트먼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Callow and Reilly 161).
에머슨은 또한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을 휘트먼에게 인식시켜준 스승이었다. 그는 하바드대학 재학시절부터 자신의 기독교 사상의 토대 위에 인도, 중국의 고전과 힌두교 경전에 몰두하였다. 에머슨은 휘트먼의 「풀잎」이 출판되자 먼저 그의 시집 내에 동양적 요소를 발견하고 「바가바드 기타」와 「뉴욕 헤럴드」와의 훌륭한 혼합(Asselineau 89)이라고 논평했다. 또한 소로(Thoreau)역시 「풀잎」을 “놀라우리 만큼 동양적”(Allen, New Handbook, 260)이라면서 실제로 휘트먼이 그것들을 읽었는지 묻고 있다. 휘트먼 자신은 「여정에 대한 회상」(A Backward Glance O\'er Traveled Roads 1888)에서 힌두 시가는 자기 시집의 맹아적 요소가 되었으며, 실제로 참선 및 요가 같은 명상을 통해 우주의 신비와 자아를 체득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1) 휘트먼은 에머슨이나 소로와 동일하게 브라만식 우주 발생론과 조화와 통일의 세계관을 체득했으며 자신의 진술처럼 더 고차원적이고 원대한 “세계주의적이고 우주적인” 초절주의적 사상을 설정했다(Gohdes 3-7).
휘트먼이 수용했던 초절주의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에머슨에 의해 종교적 성격을 띠고서 창시되어 휘트먼에게 전수되었다. 휘트먼은 스승 에머슨의 이론을 단순히 전수 받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관을 확립하여 미국 문예부흥기(1830-65)에 적합한 미국 초절주의 문학을 확립하였다. 모든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의식을 앞세운 교회의 중재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에 의해 직접 이루어져야 할 개인적인 문제이다. 초절주의자들은 인간 존재는 그들 자신의 내면에 신성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당시 뉴잉글랜드의 칼빈주의적 청교도주의 교리에 반대했다. 그래서 초절주의자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신성함을 주장한다. 에머슨은 독일의 이상주의적 관념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 낭만주의를 다시 받아들여 초절주의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기존의 청교도의 전통을 뛰어넘어 신(神)의 영역과 함께 개인의 무한성을 중시했다.
하야트 와그너(Hyatt H. Waggoner)가 보여준 것처럼 휘트먼은 이런 에머슨의 관념과 이미지와 언어를 이용하고 변형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로, 알콧, 파킨슨과 같은 당시의 또 다른 초절주의자들의 영향도 깊이 있게 수용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드(Reed)가 지적하듯이 이들은 “목록” (Catalogue)형식과 “일인칭 화자”(first person persona)형식과 같은 것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148). 초절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인칭 화자를 빈번히 사용한다는 점이다.
알렌은 휘트먼의 신비주의를 러셀(Russell)의 신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으며, 휘트먼이 직관적 신비적 투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의 영속성, 인성의 신성함을 감지하였다고 보았다. 이런 휘트먼의 통일적 세계관의 신비주의는 미국 초절주의의 본질이 된다고 한다(Handbook 245). 이 역시 에머슨의 사상에서 그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와그너도 이런 맥락에서 휘트먼을 “에머슨주의 시인”(Emersonian Poet)으로 보고 있다(150-61). 휘트먼의 초절주의는 에머슨에게서 그 맥락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소로를 동요시켰듯이 휘트먼을 동요 시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소위 “에머슨주의 시인”이라고 학자들은 인정한다. 이러한 초절주의적 신비주의를 이어받은 휘트먼은 우주적 인식과 자유로운 직관으로 삼라 만상의 본질을 직관하고 터득하게 된다.
로버트 스필러(Robert Spiller)도 휘트먼을 에머슨, 소로, 호손(N. Hawthorne), 그리고 멜빌(H. Melville)과 같은 19세기 미국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취급하면서 이들은 전시대의 문학 사상에서 벗어나 미국 문학사에 새로운 미국적 문학의 형식과 이론을 완성했다고 간주한다. 이들은 소위 순수 형식아래 개성주의, 도덕, 발전의 이념을 토대로 미국 문학 전체의 지성화와 도덕화, 그리고 민족 및 국가의 통합을 이루어 냄으로써 미국 문학사의 초석을 이룩했다(48-9)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경향들에 대해 로젠펠드는 그의 학위 논문의 서문에서 에머슨과 휘트먼의 관계 전체를 전기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인 이해를 동반한 하나의 재조명을 제시한다(1-6). 로젠펠드의 연구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에머슨과 휘트먼에 관련된 모든 역사적 특징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자료 문서들을 이용하여 증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풀잎」 시작품에 대한 에머슨의 작품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로젠펠드는 실제로 에머슨의 작품들과 휘트먼의 시작품 사이의 많은 병치 구조를 지적하였고, 많은 구어적 표현들은 자연과 그 자연의 영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5).
III
우선 초절주의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써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목록 형식을 통하여 휘트먼과 에머슨의 유사성을 이해 할 수 있다. 목록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특별한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초절주의 이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Buell 331), 에머슨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그의 “보상”(Compensation)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은 한 방울의 이슬 속에서도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미경을 통해서도, 작기 때문에 불완전한 미생물이란 찾아볼 수 없다. 눈, 귀, 미각, 후각, 운동력, 저항력, 식욕 그리고 영원을 포착하는 생식기관-이런 모든 것이 미생물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행하는 하나 하나의 행위 속에 자신의 생명을 경주한다. 신의 편재(遍在)를 외치는 참된 교의는, 신이 한 조각의 이끼에도, 한 가닥의 그물에도 그 완전한 전모를 그대로 반복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주의 진가는 모든 점에 가치 그 자체를 애써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가령 선이 있다면 그 곳엔 반드시 악이 존재해 있으며, 친화에는 배척이 따르고 있으며, 힘이 있는 곳에는 제한도 있다.
The world globes itself in a drop of dew. The microscope cannot find the animalcule which is less perfect for being little. Eyes, ears, testes, smell, motion, resistance, appetite, and organs of reproduction that take hold on eternity, - all find room to consist in the small creature, So do we put our life into every act. The true doctrine of omnipresence is that God reappears with all his parts in every moss and cobweb. The value of the universe contrives to throw itself into every point. If the good is there, so is the evil; if the affinity, so the repulsion; if the force, so the limitation.1)
문체적으로 이 구조는 그 길이에서도 휘트먼의 목록과 다르고 그들의 지적 호소력도 현저하게 다르다. 하지만 휘트먼 목록의 문체와 같이 에머슨의 문장도 독립적이고 상호교환 가능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특별한 자연은 영적 상징이기 때문에 유추에 의해 서로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본질은 흐르는 것이지 얼어붙은 것이 아니다(Buell 332). 이런 산문을 통한 목록 형식에 대해 휘트먼이 운문에서 쓰고 있는 목록 형식을 그의 서정시 “켈러머스”(Calamus)의 “뿌리와 잎새들 그들만이”(Roots and Leaves Themselves Alone)라는 시를 통해서 목록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뿌리와 잎들 그들만이 있다,
야생의 숲과 연못가에서 남자와 여자들에게로 향기가 전해온다.
속속이 풀과 패랭이 꽃, 덩굴 풀보다 단단히 휘감긴 손가락,
태양이 떠오르자, 무성한 나뭇잎에 숨어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지저귐들, 육지의 미풍과 사랑을, 살아있는 해변으로부터 살아있는 바다 위의 그대들에게 보낸다.
오 선원들이여!
Roots and leaves themselves alone are these,
Scents brought to me[n] and women from the wild woods and pond-side,
Breast-sorrel and pinks of love, fingers that wind around tight than vines,
Gushes from the throats of birds hid in the foliage of trees as the sun is risen,
Breezes of land and love sent from living shores to you on the living sea, to you
O sailors. (LG 124)
위의 시는 “켈러머스” 가운데 13 번째에 속하는 시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휘트먼의 목록 형식은 그의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휘트먼은 성경에서부터 블레이크까지의 예언적 시의 긴 선행전통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이 형식을 수용하였다. 휘트먼의 목록은 미학적 고안과 초절주의적 개념의 표현으로써, 그리고 에머슨의 경우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이론적 측면에서 주로 고려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휘트먼이 사용한 목록의 주된 목적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끝없는 생산성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부엘(Buell)은 휘트먼의 목록이 우주의 끝없는 연속성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328).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제 1연은 에머슨의 “역사”(History)의 모방이다. “역사”에서 “참된 시는 시인의 마음이다” (Emerson Vol. II 22)라는 말은 19세기 초절주의자들의 작품에서라기보다는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시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진술이지만, 에머슨의 확신에 찬 초절주의를 휘트먼이 수용하고 있는 예이다(Rosenfeld 174). 휘트먼은 이를 이어받아 한 인간의 역사가 모든 인간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과 완전한 인간은 한 인간 속에 있다는 신념 아래 자기 방식의 시를 탄생시키게 된다. “나 자신의 노래”는 이런 휘트먼의 생각을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로젠펠드는 에머슨의 “미국의 학자”(American Scholar)에서 “개인에게 새로운 중요성이 주어졌다”라는 말을 19세기 중엽 대부분의 미국 시인들이 수긍했다고 하지만 휘트먼만큼 그것을 진지하게 수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한다(176). 휘트먼은 새로운 종류의 시를 쓰고 있었다. 즉 휘트먼의 자아는 대표자가 되며 우주적이다. “나 자신의 노래” 제 1연은 휘트먼의 이러한 사고를 잘 대변하고 있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는 나를 노래한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그대도 믿게 되리라.
나에게 속하는 모든 원자는 또한 그대에게 속한 것이니.
나는 한가로이 지내며 내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몸을 기댄 채 한가롭게 여름풀의 새싹을 바라본다.
이 땅과 대기로부터 형성된 나의 혀와 내 핏속의 모든 원자,
나는 이 곳에서 내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그들은 부모로부터, 또 그 부모로부터,
나, 이제 서른 일곱 살의 건강한 몸으로
죽을 때까지 중단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시작한다.
교의와 학파는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한 채 잠시 돌아와,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고,
나는 선과 악을 모두 용납하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말하리.
원칙적인 에너지를 가진 거리낌 없는 자연을.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ings to you.
I loafe and invite my soul,
I lea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My tongue, every atom of my blood, form\'d from this soil, this air,
Born here of parents born here from parents the same, and their parents the same,
I, now thirty - seven years old in perfect health begin,
Hoping to cease not till death.
Creeds and schools in abeyance,
Retiring back a while sufficed at what they are, but never forgotten,
I harbor for good or bad, I permit to speak at every hazard,
Nature without check with original energy. (LG 28-29)
대표자아로서 시적 화자는 “내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나 자신의 노래” 제 5연에서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무한한 잠재성을 언급하고 있다. 단 에머슨과 같은 초절주의자들이 대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애를 추구했다면, 휘트먼은 보다 인간주의적 관점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형제애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그대를 믿는다. 내 영혼이여, 타자인 나 자신 그대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대 또한 타자에게 스스로 낮추지 말아라.
나와 함께 풀밭 위에 머물러라. 그대 목구멍으로부터 억제를 풀어 버려라.
지상의 모든 논쟁을 능가하는 평화와 지식이 빠르게 일어나
내 주위에 널리 퍼진다.
그리고 나는 신의 손이 내 자신의 약속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신의 성령이 내 자신의 형제임을 안다.
그리고 여태껏 태어난 모든 남자들 역시 내 형제요,
여자들은 내 자매이며, 연인임을 안다.
그리고 창조의 틀은 사랑임을 안다.
그리고 들판의 꼿꼿하거나 고개 숙인 풀들의 무한함을,
그리고 그 아래의 작은 웅덩이의 갈색 개미들을,
그리고 벌레의 울타리인 이끼 낀 딱지들, 쌓인 돌더미, 양딱총 나무, 현삼과의 식물 그리고 아메리카 자리공.
I believe in you my soul, the other I am must not abase itself to you,
And you must not be abased to the other.
Loafe with me on the grass, loose the stop from your throat,
Swiftly arose and spread around me the peace and knowledge that pass all the argument of the earth,
And I know that the hand of God is the promise of my own,
And I know that the spirit of God is the brother of my own,
And that all the men ever born are also my brothers, and the
women my sisters and lovers,
And that a kelson of the creation is love,
And limitless are leaves stiff or drooping in the fields,
And brown ants in the little wells beneath them,
And mossy scabs of the worm fence, heap\'d stones, elder,
mullein and poke-weed. (LG 32-33)
뉴잉글랜드의 초절주의 운동에 의해 지배되었던 사조로 볼 때, 위의 시는 초절주의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현상학적 자연과의 조우로 말미암은 황홀한 의식, 무한한 자기 확신, 인간의 보편적 위엄에 대한 인식 등은 초절주의의 복음주의적 특성이다. “나는 안다”(I know)라는 말은 “또 다른 나”(another I am), 즉 각성하지 못한 자들과의 결합을 촉구한다. 휘트먼의 친구이자 열렬한 추종자인 리차드 벜(Richard M. Bucke)은 이 발췌된 시를 「풀잎」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벜은 이 시에서 휘트먼은 단테, 발작, 과터마(Gautama), 예수, 폴(Paul), 그리고 모아메드(Mohammed)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특징 지우는 “우주 의식”을 습득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비록 전체 문제에 대한 벜의 의(疑) 과학적 토론이 본질적으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의 해석은 초절주의자 에머슨에 의해 표현된 경험에 대한 묘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Howard 82). 즉, 휘트먼의 무한성과 개별 영혼과의 교감에 대한 견해는 많은 평론가들이 제시한 해석과 동일한 맥락을 유지한다. 휘트먼은 자신의 시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A Noiseless Patient Spider)에서 구체적으로 에머슨의 영향을 보여준다. 로마의 公道가 모든 길로 연결되어 제국의 핵심이 되듯이, 거미도 삭막한 주변을 어떻게 정복해 가는지를 나타내 준다. 휘트먼은 거미라는 퍼소나를 내세워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데 이는 초절주의의 특징이다. 이 시는 길의 확산 이미지를 영혼의 확산 이미지로 대체하여 거미가 보여주는 영혼의 탐색과정을 묘사한다.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
조그만 돌출 구에 매달려 있는 거미를 나는 보았다.
그가 어떻게 삭막한 주변을 정복해 가는가를,
거미는 자기 몸에서 가는 실, 가는 실, 가는 실을 계속 뽑아내고
쉴새없이 뽑아내며 지칠 줄 모르고 속도를 더 해 가는 것을.
그리고 너, 오 나의 영혼이여 네가 서 있는 곳은
한량없는 공간의 대양에 둘러싸여 격리되어 있는 곳,
쉬지 않고 생각하며, 나아가며, 실을 던지며,
연결할 구체(球體)를 너는 찾고 있다. 다리가 놓이고 부드러운 닻이 내려질 때까지,
내던진 너의 가느다란 실이, 어디엔 가 걸릴 때까지, 오 나의 영혼이여.
A noiseless patient spider,
I mark\'d where on a little promontory it stood isolated,
Mark\'d how to explore the vacant vast surrounding,
It launch\'d forth filament, filament, filament, out of itself,
Ever unreeling them, ever tirelessly speeding them,
And you O my soul where you stand,
Surrounded, detached, in measureless oceans of space,
Ceaselessly musing, venturing, throwing, seeking the spheres to connect them,
Till the bridge you will need be form\'d, till the ductile anchor hold,
Till the gossamer thread you fling catch somewhere, O my soul. (LG 450)
위의 시를 설명하면서 로젠펠드는 휘트먼이 에머슨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를 구상하였으며,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거미에 대한 인용을 고려했음을 언급하고 있다(175). 로젠펠드의 말대로 휘트먼은 에머슨의 에세이 모음에서 “역사”를 읽었으며 이를 그의 시에 응용했다고 본다. 휘트먼은 은유를 사용하여 로마제국의 오만이나 거만을 자신의 시에서 거미의 오만함으로 변용 시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을 중앙에 위치시킨다거나 “모든 길은 로마로 이어진다”라는 잘 만들어진 격언을 반복하고 있다(175). 다음에 오는 에머슨의 문구들은 위의 설명을 구체화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 있어서는 중앙 공회(公會) 광장에서 시발되는 공도(公道)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제국의 모든 영토의 중심부까지 관통했으며, 그것은 곧 페르시아. 스페인 및 영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각 시장 도시로 수도의 군대가 상시로 통과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대상물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고속 도로가 틔어있어서 만물을 인간의 지배하에 둘 수 있다. 인간이란 결국 무수한 관계의 한 다발이며 많은 뿌리의 매듭으로서 그의 꽃과 열매는 바로 이 세계이다.
In old Rome the public roads beginning at the Forum proceeded north, south, east, west, to the centre of every province of the empire, making each market-town of Persia, Spain and Britain pervious to the soldiers of the capital: so out of the human heart go as it were highways to the heart of every object in nature, to reduce it under the dominion of man. A man is a bundle of relations, a knot of roots, whose flower and fruit age is the world. (Emerson, Vol. II 38-9)
휘트먼과 에머슨의 두 인용작품을 통해서 보았듯이 휘트먼의 시는 에머슨의 에세이들을 참고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 영혼의 세계를 초절주의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에머슨과 휘트먼의 이러한 관계는 사제간의 모습을 잘 나타내준 서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에머슨은 “자연의 질서”(The Method of Nature)에서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환유적 어법으로 초절주의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은 하나의 특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존재하도록 인지 될 수 있다. . . .
따라서 보편적인 특성은 모든 잎이
이 세상의 대표자가 되게 한다.
Nature can only be conceived as existing to a
universal and not to a particular end . . . .
Hence the catholic character which makes every
leaf an exponent of the world(Emerson, Vol. I 192).
휘트먼도 “나 자신의 노래” 도처에서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헤리스(M. Harris)도 휘트먼이 “나 자신의 노래”에서 전체로 상징되는 대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과 같은 소우주를 수용하고 있음을 밝힌다(87). 이런 방식의 인식은 합리적 추상성이 아닌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나 자신의 노래” 제 31연은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하나의 풀잎이라 해도 별들의 운행 못지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개미도 똑같이 완벽하고, 한 알갱이의 모래나, 굴뚝새의 알도 그러하다.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땅 위로 뻗어 가는 딸기 덩굴은 천국의 응접실에도 가히 어울린다.
그리고 내 손의 가장 작은 관절이라도 모든 기계보다 우월하다.
그리고 고개를 수그린 채 풀을 뜯는 암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훌륭하다.
그리고 한 마리의 쥐는 몇 억조의 불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기적이다
I believe a leaf of grass is no less than the journey-work of the stars,
And the pismire is equally perfect, and a grain of sand, and the egg of the wren,
And the tree-toad is a chef-d\'oeuvre for the highest,
And the running blackberry would adorn the parlors of heaven,
And the narrowest hinge in my hand puts to scorn all machinery,
And the cow crunching with depress\'d head surpasses any statue,
And a mouse is miracle enough to stagger sextillions of infidels. (LG 59)
위의 인용된 시 구절을 통해 휘트먼은 작은 하나의 사물이 우주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즉, 휘트먼은 블레이크와 마찬가지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고, 개미 한 마리에서 완벽한 우주적 법칙을 발견한다. 이와 같은 휘트먼의 견해를 칼로우(Callow)는 신, 인간, 자연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는 그의 초절주의의 관점이라고 해석한다(91).
에머슨은 「시인」(The Poet)에서 모든 자연물은 상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사물도 커다란 상징적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에머슨의 태도는 휘트먼이 사물을 인식하는 토대가 되었다. 휘트먼은 이를 제 30연에서 “모든 사물들은 제 각기 모든 진실을 품고 있다, 하잘것없는 것도 나에겐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하다”(LG 58)라고 표현하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지나친 신성의 추구에 반론을 제기한다. 곧 자아는 신의 신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왜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을 나타낸다. 휘트먼은 인간의 신성을 그의 시 여러 군데에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인간의 신성은 “나 자신의 노래” 제 24연의 “나는 겉이나 속이나 신성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지는 것, 또는 내게 닿는 것, 모두를 신성하게 한다, 양 겨드랑이의 냄새는 기도하는 자보다도 훌륭한 향기이다, 내 머리는 교회나 성경이나 그 어떤 교리보다도 훌륭하다”(LG 53)에서 절정을 이룬다.
에머슨의 신성에 비하여 휘트먼의 육화된 신으로서의 자아 개념은 다음에 오는 에머슨의 “역사”(History)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만물을 창조한 영(靈) 앞에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이 있는 곳에 만물이 존재하고
또한 영은 모든 곳에 온다.
There is no great and no small
To the Soul that maketh all:
And where it cometh, all things are
And it cometh everywhere. (Emerson, Vol. II. 7-8)
이 시는 에머슨의 중심 사상으로 에머슨적인 초절주의를 취급하고 있다. 정확한 각운의 정형시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이 시에서 에머슨은 인간의 자아보다는 신의 신성을 한 단계 상위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자아를 믿는다는 휘트먼의 시종일관된 지론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워드(Howard)도 휘트먼의 초절주의가 에머슨의 초절주의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84). 휘트먼과 에머슨의 문학적인 성향은 많은 점에서 일치하면서도 인간의 신성을 강조하는 휘트먼의 문학관과는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론을 수용하여 이를 자신의 시작품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초절주의적인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1855년경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상적인 시인관의 개념에 몰입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인생살이의 특색은 무운시와 같았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삶을 무운시로 잘 나타낼 수 있는 올바른 대표 시인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인들은 초절적이며 새로운 것, 간접적이며, 묘사적이며, 서사적인 방법으로 노래한 것이다(Shucard 161).
시인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휘트먼도 모든 것으로 모든 것을 용해시킨다. 대표자로서 휘트먼은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예언자가 될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마침내 그들이 보게 될 때, 어떠한 사제(司祭)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슈카드는 결과적으로 에머슨의 사상은 휘트먼의 시론에 영향을 주어 휘트먼의 의도와 정신으로 재생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164). 그러나 휘트먼의 시적 태도는 에머슨의 시적 태도와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1855년 초판 “나 자신의 노래” 제 20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내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 왜 공손해야 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가? 나는 내가 강하고 건전하다는 것을 안다. 우주의 집중하는 물체들은 영원히 내게로 흐른다. 모든 것은 나에 대해 쓰여지고, 나는 그들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LG 47).
이것으로 볼 때, 휘트먼은 스승 에머슨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시에 맞추어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휘트먼은 에머슨의 지나친 신성의 추구에 반론을 제기한다. 곧 자아는 신의 신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왜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을 나타낸다. 휘트먼은 인간의 신성을 그의 시 여러 군데에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인간의 신성은 “나 자신의 노래” 제 24연의 “나는 겉이나 속이나 신성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지는 것, 또는 내게 닿는 것, 모두를 신성하게 한다, 양 겨드랑이의 냄새는 기도하는 자보다도 훌륭한 향기이다, 내 머리는 교회나 성경이나 그 어떤 교리보다도 훌륭하다”(LG 53)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확한 각운의 정형시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에머슨은 인간의 자아보다는 신의 신성을 한 단계 상위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자아를 믿는다는 휘트먼의 시종일관된 지론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워드도 휘트먼의 초절주의가 에머슨의 초절주의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휘트먼과 에머슨의 문학적인 성향은 많은 점에서 일치하면서도 인간의 신성을 강조하는 휘트먼의 문학관과는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론을 수용하여 이를 자신의 시작품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초절주의적인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머슨과 같은 기존 초절주의자들과 휘트먼의 차이점은, 에머슨의 경우 개인의 영혼과 자연물의 정체성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대령(大靈)인 바다에 흡수되어 버리지만, 휘트먼에 있어서 개인의 영혼과 자연의 정체성은 다른 경험 앞에서 격하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한 휘트먼의 확신과 에머슨의 신념간에도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에머슨은 개인의 영혼은 신이라는 대령의 영역 속에 완전히 귀속할 때 인간의 궁극적 인식이 실현됨을 믿었지만, 휘트먼은 육화된 인간의 영과 신의 대령을 동등하게 보면서 개개의 개성과 우주적 관계의 동시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한다.
초절주의적 관점을 나타내기 위하여 휘트먼은 동양과 서양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기존의 정형시 스타일을 과감하게 탈피하여 새로운 미국적 스타일의 자유시를 창조하게 된다. 이는 현대시의 사실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인간의 신성을 인정하고 신의 관점에서가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로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에머슨을 비롯한 당시 19세기 미국의 보편적인 초절주의자들의 성향에서도 어느 정도는 나타나지만 휘트먼처럼 영과 육의 합일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휘트먼의 시에서 정신과 육체는 온전히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의 초절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며 중요시하고 있다. <계명대>
<Abstract>
Transcendentalism in Nineteenth-Century American Poetry
Cho, Kyu-Taek
This study compares transcendentalist Emerson\'s works with Whitman\'s works. Although several critics refer to transcendentalism in Emerson\'s works and Whitman\'s poetry, there are few in-depth studies on this subje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Emerson\'s works and Whitman\'s works in terms of transcendental vision and to demonstrate that their works do not reveal a romantic or mystical vision but rather suggest a clear transcendental vision.
Based on doctrines of European philosophers such as Kant, Carlyle and Goethe, and of Oriental thought, Emerson and Whitman also start from an intuitive and personal revelation within the nature of human beings that transcends human experience.
There are, however, striking differences between Whitman\'s conviction and that of Emerson. Emerson believes that the ultimate realization of man comes from the complete obedience of the individual to the dictates of the Over-Soul. On the other hand, Whitman affirms the simultaneous and harmonious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 personality and the cosmic relationship.
Whitman\'s poetry treats the essential divinity of self by means of the integrity of human beings and the union of Man and God unlike Emerson who emphasizes the fact that human divinity is subordinate to that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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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lt Whitman, “Preface” Leaves of Grass ed. Sculley Bradley and Harold W. Blodgett. A Norton Critical Edition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Inc., 1973) 575. 이하 인용은 모두 LG 라고 약칭하고 면수를 쓴다.
1) R. W. Emerson. The Works of Ralph Waldo Emerson. Vol. Ⅱ (Boston and New York : Thicknor & Fields 1883), 99. 이하 인용은 모두 Emerson Vol. Ⅱ로 약칭하고 면수를 쓴다.
<촐처: 벨라들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