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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월트 휘트먼 / 문학과 작품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09.30|조회수3,176 목록 댓글 0

 

월트 휘트먼[Whitman, Walt, 1819.5.31~1892.3.26]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인.

휘트먼은 가장 미국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수필가·시인이다.

 

 

 

 

   

 

 

 

 

 

 

 

 

 

 

 

 
 
 
 
 
 
 
 
 
 
 
1819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출생하였다.
1823년 브룩클린으로 이사하였다.  
1846년 민주당계 일간지 <이글>의 편집자 역임하였다.
1855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풀잎> 초판 발행하였다.
1882년 산문집 <자선일기 기타>를 출판하였다.
논문<민주주의의 미래상>에서도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을 소재로 한<북소리>를 출판하고,

이듬해 그가 존경하던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를  발표하였다.

1892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사회의 새로운 상을 노래한 시인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1855년 7월 4일 나온 휘트먼의 첫 시집 <풀잎>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미국인은 지상의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시적 자질이 뛰어나며 미합중국은 그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미국 시인이 할 일은 미국인의 이상을 노래하고, 민주주의를 사회와 정치의 바탕으로 여기며 그 기초를 개성의 평등한 결합인 동포애에 두는 미국인의 신념을 강조하는 일이다. 개개인은 우주와 연결되어 생명은 불멸한 것이며, 인간에게는 혼 못지 않게 육체도 소중하며, 동성애도 찬양한다."

휘트먼은 미국 사회의 새로운 상을 노래한 시인이다. 당시까지 미국은 유럽이라는 일종의 '모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나, 휘트먼은 비로소 미국 고유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 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유와 평등이 될 것이다. 대표 시집 <풀잎>에서 나타나는 평등주의, 민주주의, 동포애, 그리고 육체에 대한 찬미 등이 점은 바로 미국 정신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문에서도 나타나듯이, 그의 생애나 시 속에는 동성애적인 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5년간의 공식 교육을 마친 후에 인쇄소 직공을 하다가 신문 편집일을 하던 30세가 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는 포우, 디킨슨과 더불어 19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 특히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발간한 <풀잎>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었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동등한 존중, 열린 정신, 정치적 자유 등을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시 형식의 정형성을 깨뜨리는 자유시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것이다. 또한 일상언어에 대한 찬양과 함께, 비어와 은어, 토속어 등을 사용함으로써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지속했다. 문학 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는 휘트먼. 그는 '자연'이라는 일관된 주제와 질서를 통해 나와 너의 관계, 즉 인간 사회를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권경우/김포대 강사)

 

 

 

'오 캡틴 마이 캡틴!'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웰튼 고등학교 학생들은 키팅 선생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책상 위로 한 명씩 올라간다. 책상 위로 올라가면서 학생들이 외치는 구호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은 미국의 국민시인 월트 휘트먼이 링컨 대통령에게 바친 추모시다.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꼽히는 월트 휘트먼은 한명 한명의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가치를 지닌 우주로 인정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동등한 우주라고 생각한 휘트먼에게 가난한 산골에서 태어나 노예를 해방시키고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링컨은 말 그대로 '선장'이었다.

휘트먼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자연을 사랑했다. 농부, 마부, 뱃사공 같은 주변 사람들과 꿀벌, 떡갈나무, 공기, 흙 같은 것들이 휘트먼 시의 소재였다. 그의 삶은 경건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평생 단 두 권의 책을 냈다. 시집 '풀잎'과 일기인 '나 자신의 노래'가 그것이다.

최근 '나 자신의 노래'(바움 펴냄)가 국내에 새롭게 출간됐다.
"손때로 더럽혀진 페이지마다, 우연히 끼적거린 짧은 글귀마다 내가 살아온 시대와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음성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구겨진 종잇조각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역사학자들이 미국 역사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 100인을 뽑았을 때 휘트먼은 22위를 차지했다. 정치가도 군인도 아닌 시인이 미국역사에 기여했다고 인정을 받은 까닭은 그의 사상이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큰 의미로 남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는 휘트먼의 범시민적 세계관은 미국 시민사회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링컨 진영인 북군의 지지자였던 휘트먼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일기에 이런 말을 썼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기록하지 않는 한, 그 역사는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 만약 이 전쟁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면 남군의 이야기도 함께 적어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아들과 남편과 친구를 잃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 문학 역시 신변잡기적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세상이 변한 이유도 있겠지만 문학가들의 기개가 옛날만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품이 아닌 큰 문학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월트 휘트먼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허연의 북카페 / 신변잡기문학의 시대, 휘트먼을 돌아본다 / 매일경제>

 

 

 

 

월트 휘트먼의 삶과, 풀잎 시문학 탐구

                     / 황 경 락 엮음

1)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은 롱아이랜드(West Hill, near Huntington)
에서 5월 31일에 빈농의 8남매가운데 둘째로 태어 났다. 1855년(36세)에 초판이 출판
된 '풀잎'(Leaves of Grass) 최초의 자유시집 이라는 의의가 있다.

휘트먼은 미국 낭만주의 시대의 최대의 시인이다. 휘트먼은 미국에 있어서의 자유시
에 의한 국민적인 시인이 된것은 평생작업이었던 시집 '풀잎' 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풀잎'은 1855년 7월에 12편의 시를 수록하여 출판한 후 1892년 죽기전 까지 아홉차례
에 걸처 개정판을 내며 이후 자꾸 시가 불어서 어느듯 대시집(400편)이 되였다.
이 '풀잎'은 휘트먼의 사상을 모조리 쏟은 시집이며, 민중을 사랑하고 자유를 존중
하며 바른 길을 걷는 휘트먼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 '풀잎'은 휘트먼의 위대한 대표작 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흙에 뿌리를 내린
미국 문학의 위대한 선구적 작품이며 이 시집이 전세계의 후대 문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헤아릴 수 가 없다. 그러나, '풀잎'은 형식이나 내용이나 당시로서는 너무 독창적이며
대담하고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에머슨이 여기에'인간이 탄생했다'고 격찬한 것 말고는
부도덕한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음운과 각운'을 무시한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스타일, 종교적인 도덕의식을 염두에
두지 않는 대담하고 소박한 인간관, 자기를 예사인간으로 알면서 그 예사인간의 상징
이라고 하는 신념, 민주주의적 평등과 사회의 제약에 대한 개인의 반역, 남성에 대한
힘찬 예찬등이 휘트먼의 시의 주요특징 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김희보)

2) 시인의 삶이 작품이해를 위한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시인이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작품이해에 빛을 던저 준다고 생각한다.
휘트먼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실로 우리는 몇가지를 지적할 수 가 있다.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목수노릇을 했던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8남매중 둘째로
태어 났으나, 제대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11세에 학업을 중단한 휘트먼은 법률
사무소와 의사집에서 사환노릇을 하기 시작했고, 14세때에, 집을 나와 자립 하게 된다.
첫주인이 독서를 권장하고 순회 서관에 등록시켜 준 덕분에 '아라비안 나이트'도,
통독하고, 월터 스콧의 작품을 탐독하여 문학에 재미를 부쳤으나 기초교육의 수준에
있어서도 학교를 마치지 못한 독학자란 사실이 변경되는 것은 아니였다.
어려서 부터 시인이외의 아무것도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 시인들과 달리, 서른살이
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것도 휘트먼의 별난 점이다. '풀잎'의 초판을 자비출판
한 것은 36세 때의 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를 위한 선거
운동에도 참여한 정도의 활동가로서의 이력을 쌓고 나서의 일이였다.

휘트먼은 처음으로 신문에 선보인 작품은 남부와 북부의 대립이 날카로워진 시기에
남부의 노예 소유자에게 장단을 맞추던 의원들을 공격하거나 야유한 정치시 였다.
민주당에게서 '위대한 원리'의 실현을 기대 했던 휘트먼은 현실정치의 실상에 환멸
을 느꼈는데 시인으로 전신한 것에는 이러한 현실경험이 크게 작용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휘트먼에게서 동성애적 경향을 찾아내고, 거론하는 일이 많은데, 사실
휘트먼은 정식 결혼을 하지않은채 일생을 마쳤다.

(1) ' 한 그루의 참나무' ( Isaw in Louisiana a live-oak Growing )
(2) ' 낯모르는 사람에게' (To a stranger )
(3) ' 보라 이 거무튀튀한 얼굴을 ' (Behold this swarthy Face )

'캘러머스'시편들을 남성끼리의 동지애를 노래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기서 동성애적
경향을 찾아 휘트먼의 생애 일화와 결부시켜 애기하는 경우도 많다.
위의 적은 몇가지는 휘트먼 개인사의 별난점으로서 일단 작품세계의 보충설명이 될
만한 것이라고 받아 들여도 좋을 것이다 .

3) 1920년대에 김석송에 의해서, 그리고 8.15이후에는 정지용에 의해서 소개되고,
번역되면서 휘트먼은 민주주의의 시인, 자유와 평등의 시인, 인도주의의 시인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바 있다. 이러한 통속의 이미지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국민시인이란 이 시인의 공식적인 칭호와 동전의 앞뒤를 이루는
것으로서 실상에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철학자 산타야는 미국사람들이 휘트먼을 미국의 여러 경향의 대변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직 외국인들만이 휘트먼을 미국의 대표자,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휘트먼이 직업적 문인이나, 지식층보다도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이 큰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한소리 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미국의 진정한 대변자라는 칭호가 보다 성숙한 차원에서 수용되고 있다.
즉 아메리카의 민주주의가 외부의 단조한 단일성으로 비쳐지고 있을때, 날카로운
모순과 대조야 말로 아메리카 현실의 요체라는 통찰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휘트먼은 "아메리카의 여러경향의 진정한 대표자"라는 것이다.

휘트먼은 우선 무엇보다도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의 찬미자로 출발
한다. 휘트먼은 "지체와 의식에 대한 아메리카의 멸시" "구속을 참지 못하는 성품"
을 찬양하고, "복종은 조그만큼, 저항은 큼지막 하게" 라고 저항의 복음을 소리높이
외치고 있고 그러한 면에서는 에머슨등과의 초월주의자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혹평 일변도였던 '풀잎'의 세평속에게 유독 에머슨이 격려의 편지를 저자에게 보내
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함께 개인은 동포와의 연대를 통해서
만 자기완성을 도모 할 수 있다는 신렴을 키워 갔다.

'대중속에서' '연대' '단결' '앙상불' 등은 휘트먼이 되풀이 애용한 어휘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아메리카의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믿음, 위대한 나라를 건설
하는 데, 불가결한 수단으로서의 물질적 번영에 대한 물음을, 휘트먼은 에머슨이나,
소로등과 같은 동시대인 들과 공유하고 있었으나 휘트먼은 초월주의자들과 같이,
어떤 개종의 기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휘트먼은 "우리 세계의 근로자들의 무리"
를 "우리의 민주주의 의 희망" 이라 부르고 있고, "일상의 군중을 믿는다 "고 술회
하고 있다. 휘트먼은 자기소신을 시어에 대한 배려, 독자들의 도덕적 편견에 대한
고려없이 대담하게 이른바 '사고' 의 리듬으로 노래하고 있다.

휘트먼은 점점 예언자 혹은 현자의 모습을 키워갔고 따라서 휘트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메시지의 시인으로 남아 있었다. "의미하는 시"보다, "존재하는 시"의
미학에 경도하고 시에서 메시지 사냥을 금기로 알고 있는 "시의 이해"의 저자들이
그 많은 영시작품을 해설하고 엮으면서, 그 초판에서, 휘트먼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그럴법한 일이기도 하다.
뒷날, 개정판에서 휘트먼이 구제된 것은 휘트먼에 대한 높아진 평가와 저자들의
유연성의 증대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일부 문인들의 경원에도,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가
휘트먼과 '협정'을 맺게 되고, "네개의 사중주"의 T.S. 엘리엇( Eliot 1888-1965)
이 휘트먼의 메아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은 휘트먼의 그릇 큼을 증거해 준다고 ,
하겠다. 조금쯤 호들갑스럽다던가,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8-1939)
가 지적한 대로 "악 혹은 재앙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도, 큰 그릇에
내재하게 마련인 아쉬운 결여라 보아도 틀림 없을것이다.

끝으로, 우리 한국의 독자로서 휘트먼은 민주주의의 실제보다는 추상적인 원리
만을 노래했다든가, 시와는 달리 "민주주의의 미래상"이 반민주적 보수성향을 보여
주고 있다든가, 휘트먼의 철학에 일관성이 없다든가 하는 비판을 접어두고, 휘트먼
이 그리는 자유와 평등과 해방과 사랑의 노래에 허심탄회하게 귀기울여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사람됨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향유에 너무나 굶주려 왔고
한편, 삶의 풍요에 기여하는 이러한 여러 가치에 대하여 계속되는 평가 절하노력에
시달려 온 우리의 처지에서는 각별히 그러하다 '풀잎' 초판의 서문에서 인용해 본
다음과 같은 대목은 휘트먼의 자가 해설로서 독자들에게는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 미국의 진가를 남김없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행정부도 입법부도 아니다----
동서 남북의 모든 주에, 그 풍요한 국토의 도처에 살고 있는 민중이야 말로 항상
최대의 대표자인 것이다. ]
[ 예술의 기법, 즉 표현의 요체이고 문학을 비쳐주는 별 구실을 하는것은 단순성
이다--- 단순성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 영어는 강력한 저항의 언어이다, 그것은 상식의 방언이다. ]


* 참고 문헌 : 휘트먼, 풀잎 ( 유종호역 )
김희보, 세계의 명시
By Justin Kaplan
With an introduction Leaves of Grass by Walt Whitman.

 

<미주이민문학회>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에 대하여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의 초판이 나온 것은 1855년 휘트먼의 나이 36세 때이다. 이 초판은 불과 95페이지의 얄팍한 것으로, 표지에 저자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일종의 자비 출판 형식으로 나왔다. 저자의 이름은 없었으나 책 머리에 노동자풍의 휘트먼 사진이 실려 있었고 시 속에 '월트 휘트먼, 하나의 우주, 맨해턴의 사나이'라는 귀절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무명의 한 신문기자가 출판한 이 시집에 대한 반향은 묵살이 아니면 비난이었다. 어떤 시인은 이 책을 불 속에 집어넣었다고 했고 어떤 시인은 그것은 무의미한 언어의 나열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어떤 비평가는 '휘트먼이 예술에 어두운 정도는 돼지가 수학에 대한 것 같다'고까지 혹평했다. 단 한 사람 에머슨만은 그의 공적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당신의 위대한 여정의 출발에 있어서 인사를 보낸다'고 휘트먼의 전도를 축복했다.
휘트먼은 힐책과 냉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시를 '특이한 방법으로 밀고 나가 그것을 완성하고자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1881년 <풀잎> 제6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의 내용을 수정하고 편집의 순서를 바꾸고 새로운 시를 첨가하는 등 한 군의 시집의 완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휘트먼의 단 한 권 뿐인 시집 <풀잎>에는 모두 39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초판본에는 12편이던 시가 판을 거듭하는 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완성되어 나간 결과이다.
<풀잎>에는 39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나 어떤 면으로는 시집 전체를 하나의 단일한 시로 볼 수도 있다. 하나의 나무가 자라듯이, 혹은 하나의 숲이 완성되듯이 근 30년간에 걸쳐 <풀잎>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가 완성된 것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평생동안 쓴 여러 작품을 모아 시집 혹은 시전집이라고 내는 경우와는 달리 <풀잎>은 그 주제가 비교적 단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4편의 링컨 대통령 추모시처럼 주제를 약간 달리하는 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풀잎'이란 큰 주제로 보았을 때엔 그 어느 시편이나 사실상 동일주제의 변주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풀잎>이 가지고 있는 포괄적인 주제란 무엇인가. 휘트먼 자신은 '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 책에 손을 대는 사람은 인간을 만지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인 작품의도에 대한 시인 자신의 분명한 언급인 셈이다. 시인은 <풀잎>에서 결국 인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의 첫머리에 <인간의 자아를 나는 노래부른다>라는 시를 싣고 있는 것도 이 시집 전체의 주제를 천명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자아는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며 동시에 '대중과 더불어'있는 민주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미국인이다.
시인이 <풀잎>에서 노래하는 인간은 우선 철저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다. 우주 안의 일체 만상의 중심이며 자존자족의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그는 <나 자신의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나는 충실하고 건전하다.
나를 위하여 이 우주의 집중된 사물들이 영원히 유전한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쓰여졌으니 나는 그 글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내가 장엄함을 안다
나는 자기 변명을 하거나 남에게 이해받기 위해 노심하지 않는다.
...........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 뿐이다.
세상사람이 아무도 나를 알아차리지 않는다 해도 나는 만족해서 앉아 있다.
또는 누구나 모두 알아차린다 해도 나는 만족해서 앉아 있다.

휘트먼에게 있어 개인은 곧 우주이고 신이다. 개인은 무한의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존엄하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시인의 최대 장시이며 최고 걸작인 <나 자신의 노래>는 이러한 존엄하고 신비로운 인간의 찬가이다.
그 인간은 도시적이고 인위적으로 세련된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밀착된 '짐승과 더불어 생활하고 바다와 숲의 냄새를 그대로 지니는' 원초적 인간이다.
이 원초적인 인간은 건강한 육체를 지니며 식욕과 성욕을 사랑하는 '유유한 야인'이다. 휘트먼은 유유자적한 야인을 사랑하고, 스스로 빈둥대는 사람임을 자부한다. 천지간에 얽매임이 없이 왕성한 육체의 욕망에 따라 마음껏 먹고 떠들어대고 껄껄대고 생산하는 자유인이 곧 휘트먼의 로퍼(부랑자)이다. 이런 로퍼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수월하고 지극히 사귀기가 쉬운 평범인이다.
<풀잎>에는 이러한 평범인의 건강한 생활과 그들과 일체화되어 함께 호흡하는 싱싱한 자연이 묘사되어 있다. 거기에는 기계공이 있고 선원이 있고 사냥꾼이 있고 어부가 있고 농부가 있고 병사가 있고 구두공이 있다.
휘트먼은 워즈워드와 마찬가지의 범신론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자연을 신성시하고 그 영원불멸을 믿고 이름없는 평범인의 생활을 찬미한다. 그러나 휘트먼의 경우는 워즈워드보다 한층 남성적이고 현실적이고 범인류적이다. 휘트먼의 인물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명상하는 '시적'인 인물이 아니라 움직이고 생활하는 양성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그 자연은 추상화된 관념의 자언이 아닌 생활의 현장이고 환경이다. 또한 휘트먼의 '인간'은 개인이지만 대중 속으 ㅣ개인, 대중과 함께 있는 개인이다. 현실과 유리된 추상적인 인간이 아닌 사회 속의 인간이며 남과 더불어 생활하는 현실의 인간이다. 휘트먼이 묘사한 살아 있는 인간들의 세계를 조금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계공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경관은 자기 순찰구역을 순찰하고 문지기는 통행인을 주목한다.
젊은 녀석이 화물운반차를 몰고
혼혈아가 경주에 나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조른다.
서부지방에서의 칠면조 사냥에서 늙은이 젊은이가 모인다. 어떤 이는 엽총에 기대고 어떤 이는 통나무에 걸터 앉는다.
군중 사이에서 명사수 하나가 걸어나와서 자세를 취하고 총을 겨눈다.
새로 온 이민의 무리가 선창과 부두를 뒤덮는다.
사탕수수밭에서 양털 머리의 흑인 노예가 풀을 뽑고 감독은 그것을 말타고 지켜본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중엽 미국의 생활풍속도이다. 휘트먼은 활기에 넘치는 이 생동하는 대중의 세계를 외경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그 '대중과 더불어'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철저한 민주시민이다. 그는 자신이 '세인의 위에 초연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들에게 격리되어 있지도 않다.'고 말하며 '나는 원시적인 암호말을 하고 데모크라시의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한다. 그가 원시적인 암호말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 신성한 영감의 발언이라는 뜻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거룩한 것이니 직업이나 종족이나 외형상의 구별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똑같이 하나하나의 우주이고 신의 대표자라고 생각할 때에 그가 말하는 데모크라시의 사상은 자명해진다.
그는 '내게 속하는 일체의 원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한다'고 믿는 민주 평등 사상의 신봉자이다. 그는 인간 위에 인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검둥이와 흰둥이를 구별하지 않았고 '캐나다인과 버지니아인, 국회의원과 흑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민주주의의 기본요소인 자유와 다양성을 찬미했다. <풀잎>은 바로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황홀한 찬가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사상을 그의 논문 <민주전망>에서도 역설해 우주 안에서의 자연의 최고의 교훈은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 시인의 미주주의 사상은 그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국한되지 않고 산천초목의 자연과 짐승과 벌레의 세계에까지 확대된다. 그가 시집의 이름으로 사용한 풀잎은 그의 범신론적 민주사상의 상징이다. 그는 한 가닥의 풀잎을 찬미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 아이가 두 손에 가득 풀을 가져오며 "풀은 무엇입니까?"라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애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필연 희망의 풀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거나
신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나는 기념의 선물일 것이고
소유주의 이름이 구석 어딘가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풀잎이 바로 신의 구현체이고 인간과 같은 바탕의 것이라고 그것을 신성시하고 신비롭게 보고 있다. 그는 이런 태도로 청개구리를 찬미하고 짐승을 찬미하고 인체를 찬미했다. 그에게 있어 살아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계의 일체의 것이 경건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흔히 문화인이 터부시하는 성기와 성행위까지도 거침없이 찬미해, 시집이 한때 외설물로 취급되어 판금된 일도 있다. 그 점에서 그는 로렌스의 경우와 그 자연관과 인간관이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휘트먼의 신에 대한 생각도 로렌스와 거의 같은 점이 있다. 휘트먼에게 있어 신은 자기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만물을 추월하는 영원불사의 존재도 아니다. 인간 혹은 자연물 그 자체가 신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정한 형제이고 친구'이다. 성경이나 종교같은 신성한 것도 결국은 절대적이 못되며, '자연신'이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휘트먼의 사상은 에머슨의 초절주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거기에 다시, 그가 인도의 고대시 <바가바드기다>나 기타 바라문 성전을 읽고나서 동양의 범신론적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끝으로 휘트먼이 <풀잎>을 쓴 시의 형식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한다면, 그는 이 시를 쓰는데 있어, 전통적인 운율형식에 자기의 생각과 호흡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생명력의 맥박이 제한없이 표현될 수 있는 형식 아닌 형식을 취했다. 휘트먼의 시의 운율은 재래의 영시 형식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래서 흔히 그러한 시인 특유의 운율을 자유시라고 부르고 휘트먼을 자유시의 창시자라고 한다. 휘트먼은 시는 생명체처럼 자연히 발생하여 스스로 제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과 같은 말에 그의 시관이 잘 나타나 있다.

'완전한 시의 운율과 균제는 운율법칙의 자연적 성자의 결과이고 그것은 라일락이나 장미가 숲에서 자유롭게 싹트는 것과 같이 생겨 나온다. 그리고 밤이나 오렌지나 멜론이나 배처럼 알뜰한 형체를 취하고 미묘한 향기를 그 형체에 가한다.

이런 시관은 시를 지성에 의한 제작행위라고 생각하는 고전주의 시인들의 시관과는 아주 상반되는 생각이다.
그러나 휘트먼의 경우 그의 힘차게 터져나오는 생명력의 기쁨에 싸늘한 지성의 통제가 가해졌던들 그의 시는 살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시의 세련미 없는 야성적인 스타일, 오만가지 잡다한 생활상의 묘사, 속어와 비어 등 일상용어의 대담한 사용, 그리고 되풀이 되풀이 나열하면서도 권태를 모르고 전진하는 대행진과 같은 리듬 - 그런 속에서 그의 시는 나무처럼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풀잎>은 분명 하나의 거목이다. 어디까지가 나무의 열매이고 어디까지가 잎이고 뿌리인가를 구분하기 어렵다. <풀잎>의 사상과 그 형식 역시 구분하기 어렵다. 그 운율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찬미의 리듬이고 생명의 외경을 전하는 맥박 소리이다. 분명히 그 리듬은 신의 내부에서 솟아나와 결실을 맺은 과일의 외형이니, 그 과일이 아니고서 어찌 그 과일나무를 찬미할 수 있겠는가.

*휘트먼이 찬미하는 인간은 본연의 개체로서의 인간이면서, 동시에 대중 속의 인간, 민주적인 인간이다. 본연의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상하귀천이 없는 대중적인 인간이고 민주적인 인간이다. 시인은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구분하여 정신은 고상하고 육체는 동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와 정신의 구분이 없는 완전인이 보여 주는 무한한 생명의 세계를 노래 부른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풀잎』휘트먼/이창배 譯註 (혜원출판사, 2000)



인간의 자아를 나는 노래부른다

인간의 자아를 나는 노래부른다. 하나의 개체 인간을,
그러면서도 나는 ‘민주적’ 이란 말, ‘대중과 함께’ 라는 말을 발언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인체이 조직에 대해서 나는 노래한다.
詩神에게 가치 있는 것은 용모만이 아니다, 또 두뇌만도 아니다.
나는 완전한 인체야말로 훨씬 가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동등하게 나는 노래한다

그 정열, 그 맥박, 그리고 그 활력에 들어 있는 무한한 ‘생명’과 그리고
신성한 법칙 하에서 형성된 그 자유분방한 행동 때문에 상쾌한
‘현대인’을 나는 노래한다.




의연한 나

‘자연’ 속에 유유히 서 있는 의연한 나,
만유의 주인이고, 또한 만유의 여주인이고, 모순된 만상의 한복판에 태연자약하게,
그들처럼 침투되어 있고, 그들처럼 수동적이고, 감수성 풍부하고, 말없이
나의 직업 빈곤 허명 약점 죄악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를 멕시코의 바다에, 혹은 맨해턴에, 혹은 테네시에, 혹은 멀리 북방이나 혹은 내륙으로 사는 사람으로,
하나의 강 위의 사람으로, 또는 숲의 사람으로, 혹은 이 여러 주의 어디에나 있는 농장 생활의, 또는 해변의, 또는 호수에 사는 사람으로, 또는 캐나다인으로서 생각해도
나는 어디에서 자기의 일생을 산다 해도, 아, 뜻밖의 사고에 마음 동하지 않고,
저 수목이나 동물이 그러하듯이, 밤과 폭풍과 기아와 조소와 뜻밖의 사건과 좌절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이 노래하는 것을 듣는다

나는 미국이 노래하는 것을 듣는다. 가지각색의 즐거운 노래를 듣는다.
기계공들의 노래, 누구나 자기의 노래를, 쾌활하고 힘차게,
목수는 널판이나 대들보를 재면서 자기의 노래를 부른다.
석고은 자기 일에 착수하려고 준비하면서, 또는 자기 일을 파할 때에 자기의 노래를 부른다.
선원은 배 위에서, 자기에 관한 것을 노래하고, 갑판수부는 기선 갑판에서 노래하고,
구도공은 벤치에 앉아서 일하면서 노래하고, 모자공은 서서 노래한다.
나무꾼의 노래, 밭갈이 소년의 아침에 일하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 또는 점심 참에, 또는 해질녘의 노래,
엄마나 일하는 젊은 아내의, 또는 바느질하고 빨래하는 아가씨의 달콤한 노래,
제각기 남자나 여자, 다른 사람의 노래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한다.
낮은 낮의 노래를, 밤에는 건강하고 다정한 젊은 패거리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그들의 힘차고 운율 고운 노래를 부른다.




나 자신의 노래 1

나는 나를 예찬하고 나 자신을 노래한다.
그리고 내것은 네것이기도 하다.
대체로 내게 속하는 일체의 원자는 마찬가지로 네게도 속하는 것이다.

나는 빈둥빈둥 시간 보내며,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마음 편히 몸을 기대록, 빈둥대며 여름 풀의 싹을 응시한다.

나의 혀, 내 피 속의 일체의 원자는 이 땅에서, 이 대기에서 만들어진 것,나는 여기에서 내 양친에게서 생겼고, 양친은 또 그 양친에게서, 또 그들은 양친에게서,
나는 지금 37세의 완전한 건강체로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중단 없기를 바라면서.

종파나 학파는 잠시 두어 두고,
그것이 어떻든 지금 상태로 족하니, 잠시 거기에서 물러나, 그러나 결코 잊진 않고
나는 선악을 다 용납하고 만난을 무릅쓰고 마음껏 말하련다,
본유의 정력으로 거리낌 없이 자연을, 나의 천성을




나 자신의 노래 2

집이란 집, 방이란 방은 모두 향기로 가득 차고, 선반도 모두 향기에 차 있다.
나는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분간하고 그것을 좋아한다.
그 향기를 증류하면 그것이 날 취하게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진 않겠자.

대기는 향료가 아니다, 그것은 증류수 같아서 맛도 향기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내 입에 맞아서 나는 그것에 심취한다.
나는 숲가의 둑으로 가서, 순수하게 벌거숭이가 되리라.
나는 나에게 와 닿는 것을 미친 듯이 갈망한다.
내 숨결의 연기,
메아리, 잔물결, 은밀한 속삭임, 사랑뿌리, 비단실, 나무 아귀와 덩굴,
나의 내뱉는 숨결과 들이마시는 숨결, 내 심장의 고동, 내 폐부를 드나드는 피와 공기,
푸른 잎과 마른 잎의 냄새, 바닷가와 거무스레한 바닷돌의 냄새, 창고의 건초 냄새,
선풍의 소용돌이 속에 풀리는 내 목소리의 토해내는 언어의 음향,
몇 번의 가벼운 키스, 몇 번의 포옹, 허리를 감싸는 팔,
연한 가지가 흔들림에 따라 나무 위에 춤추는 빛과 그늘,
혼자 있는가 아니면 거리의 혼잡 속인가 들판이나 언덕 기슭에 따라 갈 때의 기쁨,
건강체의 감촉, 대낮의 떨리는 소리, 침상에서 일어나 태양을 맞이하는 내 노래.

너는 천 에이커의 땅을 크다고 생각하는가. 이 지구를 굉장하다고 생각했는가.
너는 읽기를 배우는 데 그렇게 오래 연습했는가.
너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오늘 하룻밤 하룻밤,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모든 시의 근본을 파악한다.
너는 이 지구와 태양의 정수도 파악한다(기타 천만의 태양이 있다),
너는 이제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통하여 물건을 받아선 안 된다. 그리고 죽은이이 눈을 통하여 보든지, 책속이 도깨비에게서 밥을 얻어 먹어선 안 된다,
너는 이 내 눈을 통하여 보아서도 안 된다, 내게서 무엇을 얻어도 안 된다,
너는 널리 귀를 기울여야 하고, 네 자신의 체로 걸러내야 한다.




나 자신의 노래 6

한 아이가 두 손에 가득 풀을 가져오며 “풀은 무엇입니까” 라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애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필연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거나,
신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나는 기념의 선물일 것이고,
소유주의 이름이 구석 어딘가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한다, 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일 것이라고.

혹은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도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검둥이 사이에서도, 흰둥이 사이에서도 자라며
태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니그로,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그들에게서 그것을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난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는 너를 고이 다룬다.
너는 젊은이들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르겠고,
만일 내가 그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마 너는 노인을, 혹은 생후 곧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머리에서 나온 것으로선 너무 검다,
노인의 색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엷게 붉은 입천장 밑에서 나온 것으로서도 너무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발언이 아무 의미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싶다,
또한 노인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너는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서 살아서 잘 지내고 있다,
아무리 작은 싹이라고 그것은 진정 죽음은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생을 추진하는 것이고,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생을 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진전할 뿐 죽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죽는 것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며, 훨씬 행복한 것이다.




나 자신의 노래 7

태어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 자가 있는가.
나는 당장 그나 그녀에게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행복하다고 이르리라,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임종하는 자와 더불어 죽음의 문을, 산욕하는 갓난아이와 더불어 생의 문을 통고한다, 나는 자기 모자와 신발 사이에 한정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사상을 음미한다, 한 가지도 같은 것은 없고 모두가 선하다.
지구도 좋고 별도 좋다,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것들도 모두 선하다.

나는 지구도 아니고, 지구의 부속물도 아니다,
나는 민중의 벗이고, 반려자다, 그들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멸이며, 무한히 깊다,
(그들은 어떻게 불멸인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세상 만물은 동류끼리 모인다, 나에겐, 나의 남자와 여자,
나에겐, 일찍이 청춘이었던 자들과 여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자들,
나에겐, 연인과 노처녀를, 나에겐, 모친을, 그리고 모친의 모친을,
나에겐 미소 지은 일이 있는 입술을, 눈물 흘린 일이 있는 눈을,
나에겐,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옷을 벗어 던져라. 너희들 누구나 나에게 죄가 없다, 재미었는 자도 배척받은 자도 아니다,
나는 검은 나사천이건, 목면이건 그 옷을 통하여 너희들의 인물을 투시한다,
나는 근처에 있어, 끈질기게 추구하고, 권태를 모르고 흔들려 떨어져 버리지 않는다.




나 자신의 노래 9

농가의 곡간의 대문은 열려서 준비가 돼 있다,
수확철의 건초가 천천히 끌리는 마차에 높이 실리고,
밝은 햇빛이 그 황갈색과 녹색이 교차하는 짐 위에서 넘실거린다,
쌓인 건초의 느슨한 곳에 한 아름이 더 채워진다.

나도 거기에 있어 돕는다, 나는 건초 짐 위에 사지를 펼치고 돌아온다,
한쪽 도리를 다른 쪽에 포개고서 나는 마차의 가벼운 동요를 느낀다,
나는 외양간 가로대에서 뛰어내려 클로버와 큰조아재비풀을 움켜쥔다,
그리고 거꾸러져 머리가 건초를 뒤집어쓰고 헝클어진다.




나 자신의 노래 10

홀로, 멀리 황야로, 산으로 나는 사냥간다,
자신의 경홰함과 쾌활함에 경탄하며 방황한다,
해질 무렵이면 밤을 보낼 안전한 곳을 찾고,
불을 피워서 갓잡은 사냥감을 굽고,
엽총을 옆네 놓고 긇어모은 낙엽을 깔고 사냥개와 함께 잠이 든다.

양키 캐속정이 돛을 하늘에 닿게 달고 번쩍이는 파도와 물안개를 뚫고 달린다,
내 눈은 육지를 응시하고 뱃전에 걸터앉거나 갑판에서 환희의 소리를 지른다.

가공과 조개 파는 이가 일찍 일어나 나를 찾아왔다,
나는 바지 끝을 장화 속에 구겨넣고서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너도 그 날 우리와 함께 있어 조개 남비 주변에 모였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먼 서부의 야외에서 벌어진 한 덮엽사의 결혼식을 보았다. 신부는 미국 토인의 아가씨였다,
신부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은 가까이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모두 사슴가죽의 신을 신고 어깨엔 큰 두꺼운 모포를 걸치고 있었다.
거의 가죽옷으로 차림하고서, 멋진 수염과 곱슬머리가 목을 덯ㅍ고 있는 덮엽사는 신부의 손을 잡고 둑 위에 쉬고 있었다,
신부는 긴 속눈썹에다, 머리엔 아무 장식도 없고, 빳빳한 머리털은 그녀의 풍만한 팔다리에 처져 발까지 닿았다.

도망친 노예가 내 집에 와서 문밖에 멎었다.
그가 움직여서 쌓아놓은 땔아무에서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열린 반쪽 부엌문으로, 나는 지쳐서 다리를 저는 그를 보았다,
나는 그가 통나무 위에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심시켰다,
그의 땀에 젖은 몸과 상처난 발을 씻도록 통에 물을 가득 퍼주었다,
그리고 내 방으로 통하는 방 하나를 그에게 주고서 거친감의 깨끗한 옷가지를 내주었다,
그때 그가 눈을 휘둥글게 뜨고서 주저주저하던 것이 잘 기억난다,
또한 그의 목과 발꿈치의 상처에 고약을 붙여 주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서 북으로 달아날 때까지 일주간 내게 머물렀다.
나는 식탁에서 그를 내 곁에 앉히고, 방 구석에는 화승총을 세워 두었다.




나 자신의 노래 11

28인의 젊은이가 해변에서 멱감는다,
28인의 젊은이가 모두 사이가 좋다,
28년간의 여자의 생애는 모두 고독하다,

그녀는 강둑 고지에 좋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곱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창문 발 뒤에 숨는다.

그녀는 젊은이들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가.
아, 그 중에서 제일 못난 남자가 그녀에겐 아름답다.
부인, 어디로 가시나요. 내겐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은 거기 물속에서 물을 튕기며, 그러나 당신은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있다.

해변을 따라 춤추며 웃으며 29세의 여자 수영객이 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안 보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보고 그들을 좋아헀다.

젊은이들의 수염이 물묻어 번쩍였고, 물이 긴 머리에서 흘렀다,
작은 물줄기가 그들의 전신을 흘러내렸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 손이 관자놀이에서 가슴으로 떨리면서 내렸다.
젊은이들이 자빠져서 둥실 떠 있고, 그들이 흰 복부가 해를 향하여 부풀어 있다, 그들은 누가 그것을 꽉 잡아 주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몸을 늘어뜨리고 구부려서 훅훅 불거나 가라앉는가를 모른다,
그들은 누구에게 물을 끼얹는가를 모른다.




나 자신의 노래 15

아름다운 콘트랄토이 가수가 오르간 놓인 단상에서 노래한다.
목수는 재목을 손질하고, 그의 대패날이 사납게 밀어올리는 마찰음을 울린다.
기혼의 또는 미혼의 자녀들이 감사절 만찬에 참석하려고 마차로 귀향한다,
키잡이가 키바퀴를 잡고서 힘센 팔로 배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운전사는 포경선에 긴장해서 서서, 창과 작살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냥꾼은 발자국 소리 안 나게 조심껏 몸을 뻗치고 걷는다,
집사는 제단 앞에서 십자를 그으며 임명을 받고 있다,
실 뽑는 여공은 큰 물레바퀴의 소리에 맞추어 일진일퇴한다,
농부는 일요일 산보에 목책 옆에 서서 연맥과 호맥의 작황을 본다,
광인은 증세가 확인되어 드디어 수용소로 운반된다,
(그는 지금까지처럼, 어머니 침실의 침대에서 다시는 자지 못하리라)
머리가 하얗고 턱뼈가 앙상한 견습 인쇄공은 활자 케이스 옆에서 일한다,
그는 흐릿한 눈으로 원고를 보면서 씹는 담배를 입안에서 돌린다,
기형의 수족이 수술대에 결박되어 있고,
제거된 것이 흉하게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다.
흑백 혼혈녀가 경매대에서 팔리고, 주정뱅이가 술집 난로가에서 졸고 있다,
기계공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고, 경관은 자기 순찰구역을 순찰하고, 문지기는 통행인을 주목한다.
젊은 녀석이 화물운반차를 몰고(그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좋다)
혼혈아가 경주에 나가기 우하여 운동화의 끈을 조른다,
서부지방에서의 칠면조 사냥에는 늙은이 젊은이가 모인다, 어떤 이는 엽총에 기대고, 어떤 이는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군중 사이에서 명사수 하나가 걸어나와서, 자세를 취하고 총을 겨눈다.
새로 온 이민의 무리가 선창과 부두를 뒤덮는다,
사탕수수밭에선 양털머리의 흑인노예가 풀을 뽑고, 감독은 그것을 말타고 지켜본다.
무도장에서 나팔소리가 울리자 신사들이 파트너 쪽으로 달려가고, 춤추는 짝들이 서로 인사를 한다,
삼나무 판장의 지붕밑 방에서 젊은이가 눈뜨고 드러누워서 음조 고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휴론호로 흘러드는 지류에서 미시간주의 어부가 덫을 장치한다,
노란 테를 두른 옷을 입은 여자가 사슴가죽 구두와 구슬백을 팔고 있다,
미술 감정사는 몸을 옆으로 구부리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 전시장을 보며 돌아다닌다,
갑판에서 일하는 선원이 배를 묶어매는 동안 널판이 다리 놓여져서 상륙개을 건너게 한다.
누이동생이 실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고, 언니는 그것을 실패에 감으며, 때때로 실이 얽히면 손을 쉰다.
결혼 후 일 년의 아내는 일 주 전에 첫애를 낳고 건강이 회복되면서 행복하다.
두 발이 깨끗한 양키 소녀는 재봉틀에서, 혹은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일한다,
포도공사의 인부는 손잡이가 둘 달린 메에 기대고 있고, 기자의 연필은 수첩 위를 빨리빨리 움직이고, 간판장이는 푸른색과 금색의 글씨를 써간다.
운하공은 뱃길을 총총걸음으로 걷고, 부기사는 책상에서 계산하고 구두공은 실에 초칠을 한다,
지휘자는 악대를 지휘하고 연주원들 모두 그를 따른다,
유아는 세례를 받고, 개종자는 그의 최초의 신앙을 고백한다,
범주경기가 만 위에서 전개되어 경주가 시작됐다(번쩍이는 흰 돛!)
가축 몰이꾼은 우리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놈에게 큰소리를 지른다,
행상인은 등에 진 짐으로 땀을 흘리고, (고객은 한 푼 두 푼을 깎는다)
신부는 흰 드레스의 주름을 펴고, 시계의 초침이 더디기만 하다,
아편 흡연자는 굳어진 머리로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 몸을 기울인다,
창녀는 숄을 질질 끌고, 그녀의 모자는 흔들흔들하는 여드름 투성이의 목 위에 매달려 있다.
군중이 그녀의 욕지거리를 비웃고, 사내놈들은 조롱하며 서로 눈짓한다,
(가엾은! 나는 너의 욕을 비웃거나 조소하지 않는다)
각의를 열고 있는 대통령은 훌륭한 장관들에 에워싸여 있다,
광장에는 부인 셋이 팔짱을 끼고 으스대며 다정하게 걷고 있다,
어선의 선원들이 선창에 넙치를 채곡채곡 쌓아올린다,
미주리주이 남자는 상품과 소떼를 끌고서 평야를 건너간다,
차삯을 거두는 차장은 열차 안을 통과할 때 거스름돈을 달랑거리며 주의를 끈다,
마루를 까는 목수는 마루를 깔고, 양철공은 지붕에 양철을 씌우고, 석공은 모르타르를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노동자들의 일단이 일렬로 각자 어깨에 벽돌상자를 지고서 나아간다,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말할 수 없이 많은 군중이 군집했다, 오늘 7월 4일, 도립기념일(대포, 소포의 예포소리!)
계절은 계절을 쫓아가고, 농부는 밭을 갈고, 풀 베는 이는 풀을 베고, 겨울 씨앗은 땅에 떨어진다.
호수 안창에서 열기잡이가 얼은 수면에 뚫은 구멍 옆에서 지켜보며 기다린다,
그루터기가 개간지 주변에 빽빽이 서 있고, 벌목꾼은 도끼를 깊이 찍는다,
평저선 선원들이 저녁 무렵, 사시나무나 호두나무 근처로 배를 몬다,
곰 사냥꾼은 레드강 유역에, 또는 테네시강이나 아칸서스강이 흐르는 유역을 찾아다닌다,
차타후치강, 혹은 알타마호강에 깔린 어둠 속에 횃불은 타고,
늙은 노인들은 자식, 손자, 증손을 거느리고 저녁식탁에 앉아 있다,
어도우비 벽돌 담 안이나 캔버스 천막 안에, 사냥꾼과 덫꾼들이 그날의 사냥을 끝내고 쉬고 있다,
도시도 쉬고 시골도 쉰다,
산 자는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자고, 죽은 자도 주어진 자기 시간을 잔다,
늙은 남편은 아내 곁에서 자고, 젊은 남편도 아내 곁에서 잔다,
그리고 그것들은 안으로 향하여 내게 오고, 나는 밖으로 향하여 그들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런 것들은 많건 적건 나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가져와서 나는 내 노래를 짠다.




나 자신의 노래 21

나는 육체를 노래하는 시인이고,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천국의 기쁨이 나와 더불어 있고, 지옥의 고통이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전자를 내게 접목하여 키워 가고, 후자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한다.

나는 여성을 노래하는 시인이며 똑같이 남성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여자가 되는 것이 위대한 것과 같이 남자가 되는 것도 위대하다고,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인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나는 팽창과 긍지를 노래한다,
우리는 머리 숙이기와 애원을 너무 해왔다,
나는 물견의 크기는 다만 성장의 자취임을 보이고자 한다.

너는 남을 능가하고 있는가, 너는 대통령인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나 모두 거기에 도달할 뿐 아니라, 더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가벼이 깊어 가는 밤과 더불어 걸어가는 그다,
나는 반쯤 밤에 가리워진 육지와 바다에 말을 던진다.
바싹 다가오너라, 가슴 드러낸 밤이여-바싹 다가오너라, 매력 있고 자양분 풍부한 밤이여,
남풍 부는 밤이여-큰 별 몇 개 있는 밤이여!
조용히 머리 끄덕이는 밤이여-미친 벌거벗은 여름밤이여.

미소하라, 아, 서늘바람 부는 요염한 대지여!
이슬에 젖어 졸고 있는 나무들의 대지여!
가라앉은 낙조의 대지여-정상에 안개낀 산맥의 대지여!
다소 푸른빛 물들은, 유리 같은 만월의 달빛 쏟아지는 대지여!
강물에 빛과 그늘에 반점 주는 대지여!
나를 위하여, 한층 찬란하고 청명한 은호색 구름 이끄는 대지여!
미소하라, 너의 애인이 왔으니.

아낌없이 주어라, 너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그러므로, 나도 너에게 사랑을 준다.
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렬한 사랑을.




나 자신의 노래 24

훨트 휘트먼, 나는 하나의 우주, 맨해턴 태생의 한 사나이,
성미가 거칠고, 살집 좋고, 욕정이 넘치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생산하고,
감상주의자는 아니고, 남의 위에 서 있는 자 아니고, 그러나 그들과 유리된 자 아니다,
방종하지도 않고, 그렇대서 도학자도 아니다.

문이란 문에서 자물쇠를 떼어 버려라!
옆기둥에서 문 그 자체를 떼어 버려라!
누구나 다른 사람을 내리깎는 사람을 나는 내리깎는다,
무엇이고 동작이 가고 말이 가면 그것은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통하여 영감의 물결은 오고 가고 나를 통하여 흐르는 조류와 지표.

나는 원시적인 암호말을 하고, 데모크라시의 신호를 보낸다,
단호히!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조건으로 그들의 분신적 상대물을 취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련다.

나를 통하여 오랫돋안 입다물던 목소리들이 들린다,
무수한 세대에 걸치는 죄수와 노예들의 목소리,
병자와, 절망자와, 도둑과 난장이의 목소리,
중비와 증대의 순환의 목소리,
그리고 별들을 연결하는 맥락의 목소리, 자궁과 정자의 목소리,
다른 이들에게 짓밟혀지는 자들의 군리의 목소리,
불구자와 쓸모없는 자와 평범한 자와 어리석은 자와 경멸받는 자의 목소리,
대기 속의 안개, 변 덩어리를 굴리는 풍뎅이의 목소리.

나를 통하여 나가는 금지된 목소리,
성과 욕정의 목소리, 베일을 쓴 목소리, 나는 그 베일을 제거한다,
점잖지 못하 목소리, 그 말은 나로 말미암아 명백해지고 훌륭해진다.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지 않ㄴ느다,
나는 두뇌와 심장에 대하여 하듯이, 창자 둘레를 곱게 보사핀다,
성교는 내게 죽음이나 다름없이 추악하지 않다.

나는 성욕과 식욕을 다 인정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모두 기적이다, 그리고 나의 어느 부분이나 내 옷자락 하나도 모두 기적이다.
나는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신성하다, 나는 내가 손대는 것, 내게 닿는 것을 무엇이고 신성하게 한다,
이 겨드랑이에서의 냄새는 기도보다도 훌륭한 방향이다,
이 머리는 교회보다도, 성경보다도, 그리고 어느 신조보다도 그 이상이다.

만일 내가 어느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숭배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의 육체의 전부이거나 그 일부일 것이다.
반투명의 나의 모형, 정액 그것은 너다!
그늘에 있는 선반과 휴식처, 그것은 너다!
타탄한 남성의 보습날, 그것은 너다!
나의 생식충동을 이루는 것은 무엇이고, 너다!
너, 나의 짙은 혈액이며, 너의 젖 같은 흐름은 나의 생명의 창백한 긴 가닥이다!
남의 젖가슴에 몸을 부벼대는 젖가슴, 그것은 너다,
나의 두뇌, 그것은 너의 유현한 뇌의 회전이다,
씻긴 창포 뿌리여! 비겁한 연못 도요새여! 잘 지켜진 한 쌍의 달걀이 들어 있는 둥우리여! 그것은 너다!
헝클어진 건초 같은 머리칼, 수염, 근육, 그것은 너다!
자비로운 태양, 그것은 너다!
내 얼굴에 명암을 던지는 공중의 수증기, 그것은 너다!
땀흘리는 개울과 이슬, 그것은 너다!
부드럽게 간질이는 음부로 내 얼굴을 문질러 주는 바람이여, 그것은 너다!
넓은 광대한 들판, 떡갈나무 가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가는 어여쁜 산책자, 그것은 너다!
내가 쥔 손, 재가 키스한 일이 있는 얼굴, 내가 일찍이 접촉한 일이 있는 인간, 그것은 너다.

나는 내 자신을 뜨겁게 사랑한다, 거기에 풍부한 나 자신이 있고, 모두 감미롭다,
하나하나의 순간도, 그리고 무엇이 일어나든, 나는 기뻐서 몸을 떤다,
나는 나의 발꿈치의 굴절을 설명할 수 없고, 나의 가냘픈 소망의 원인을 말할 수 없다,
또한 내가 발산하는 우애의 원인도, 그리고 내가 다시 받아들이는 우애의 근원도 설명할 수 없다.

집의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서 발을 멈추고 이것이 과연 내 집인가를 생각해 본다.
내 차악에 핀 나팔꽃이 책 속에 쓰인 형이상학 이상으로 만족을 준다.

동트는 하늘을 바라본다!
희미한 빛이 무한한 투명한 음영을 지워 간다,
대기는 내 미각에 상쾌하나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며 회전하는 세계의 중량이 조용히 올라오고, 신선하게 발산하고,
높고 낮게 비스듬히 달린다.
내게는 안 보이는 무엇인가가 그 음탕한 뾰족끝을 위로 내민다,
찬란한 액체의 바다가 하늘에 충문하다.
대지는 하늘 가에서 그 밤을 유숙했던 것이다, 양자가 매일 회합한 결과,
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동쪽에서 솟아오른 도전,
조롱조의 말, “그렇다면 네가 천지의 지배가자 될 것인가, 아닌가!”




나 자신의 노래 31

나는 믿는다, 풀잎 나하가 별의 운행에 못지 않다고.
그리고 개미도 역시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렇다,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땅에 뻗은 딸기 덩굴은 천국의 객실을 장식할 만하다.
그리고, 머리를 푹 숙이고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낫다.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 억조의 불신의 무리들을 아연하게 할 만한 기적이다.

나는 자기가 편마암이나, 석탄, 길게 이어진 이끼, 과일, 곡식용 풀뿌리와 일체가 되고,
또한 나는 전신이 네 발 짐승과 조류의 색과 모양이 된다,
내 뒤에 있는 것은 충분한 이유에서 멀리멀리 뒤쳐져 있지만,
내가 필요할 때엔, 무엇이고 다시 불러오게 할 수 있다.

속력을 내는 것이나 주저하는 것이나 헛된 일이다,
나의 접근에 대하여, 화성암이 그 옛날의 열기를 방출해도 헛된 일이다,
역사 이전의 거상이 가루가 된 자신의 백골 밑으로 물러가도 헛된 일이다,
물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존재하고, 각양각색의 형상을 취하는 일도 헛된 일이다,
대양이 지구의 텅빈 곳에 자리잡고, 큰 괴물들이 해저 깊이 누워 있어도 헛된 일이다,
말똥가리 매가 몸으로써 하늘에 집을 친들 헛된 일이다,
배암이 담장이나 통나무 사이를 미끄러져 가도 헛된 일이다,
큰 사슴이 숲속의 뒤안길로 달려가도 헛된 일이다,
부리가 예리한 바다오리가 멀리 라브라도르의 북쪽으로 날아간들 헛된 일이다,
나는 재빨리 뒤쫓아, 벼랑의 틈새에 지은 둥지로 올라간다.




나 자신의 노래 32

나는 몸을 바꾸어 동물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아주 태평하고 자족하다,
나는 서서 그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들은 애쓰지 않고, 저희들의 상황에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일어나, 저희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신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한 놈도 불만인 놈은 없고, 한 놈도 소유욕으로 미쳐 있지 않다,
한 놈도 다른 놈에 대하여, 또는 수천 년 전에 살은 동류에 대하여 무릎을 꿇지 않ㄴ느다,
온 세상에서 한 놈도 존경할 만하거나, 부지런한 놈은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들과 나와의 고나계를 밝히고, 나는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내 자신의 흔적을 내게로 가져와서, 그것이 그들의 소유인 것을 분명히 표시한다.

그들은 어디에서 그런 흔적을 입수했을까,
그 방면을 내가 먼 옛날에 통고하여, 무심코 그것을 떨어뜨렸던 것이 아닐까.

나 자신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영원히 전진한다,
항상 더욱 많이 모으고 드러내 보이며, 속력 있게,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재창조된다. 내 노래하는 것이 그 속에 들어 있고,
나의 기념물에 가까이 오는 자 누구도 제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려내어, 그와 형제간처럼 사이좋게 가련다.

내 애무에 응하는 한 마리 새뜻하게 아름다운 종마의 거대한 아름다움,
앞이마 훠닐한 머리, 귀와 귀 사이가 넓고,
사지는 번들번들 유연하고, 꽁지는 질질 땅에 닿고,
눈은 반짝반짝 악의가 가득하고, 귀는 잘 서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내가 발꿈치로 동체를 껴안으니, 두 콧구멍이 부푼다,
내가 일주하여 돌아오니, 그 잘 발달된 사지가 기쁘게 떨린다,

나의 종마여, 나는 다만 잠깐 너를 탈 뿐이니, 그리고선 놓아주마,
내 자신이 너를 앞질러 달릴 수 있는데, 왜 너를 탈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서 있건 앉아 있건, 너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나 자신의 노래 35

너에게 옛날의 해전 이야기를 들려 줄까
달과 별빛 아래에서 누가 이겼는가를 알고 싶은가.
선원이었던 나의 조모의 부친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들어 봐라.

자기들의 적이 배 속에 숨는 비겁자는 아니었다(고, 그는 얘기하기 시작했다,)
적은 무서운 영국혼을 가진 놈이었다, 이보다 강인하고 진실한 놈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저녁 무렵에, 적은 맹렬한 사격을 가해 왔다.

우리는 바싹 접근하여, 돛개가 서로 얼키고, 대포가 맞붙었다, 저희들의 선장은 손수배를 적선에 꽉 묶어맸다.

자기들은 배 밑으로 약 18파운데의 탄환의 발사를 받았다,
아래 갑판의 포대에는, 두 대의 큰 포가 첫 발 쏠 때에 파괴되어 주변의 병사를 다수 살해하고, 천정까지도 폭파하였다.
해질녘의 전투, 암야의 전투,
밤 열 시, 만월이 중천에 올라왔을 때, 침수는 늘어나, 5피트라고 보고되었다,
위병하사관은 뒤 선ㅅㄹ에 감금된 포로들을 풀어 주어, 그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했다.
화약고의 통로는 이제 보초에 의하여 차단되고,
낯선 얼굴이 하도 많아서 누가 아군인지, 전연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들의 군함에 불이 붙었다,
누군가는 살려 달라고 해봤으면 하기도 했다.
자진해서 깃발을 내리고 항복하면 어떨하 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크게 웃었다, 나의 그 작은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그는 태연하게 외쳤다 “우리는 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전쟁을 막 시작한 것이다.”

불과 세 기의 대포가 사용 가능히었다,
하나는 선장이 손수 적의 중심 돛대를 향하여 쏘았다,
적의 갑판을 일소했다.

이 작은 포대를 원조하는 것은, 장루, 특히 주잘우 뿐이었다,
그들은 전투 중 시종 용감하게 견뎌냈다.

전투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침수는 증가하여 펌프로는 되지 않았다, 불은 화약고 쪽으로 타들어 갔다.

펌프 하나가 탄환에 날아가 버렸다, 모두 이제는 침몰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장은 태연하게 서 있다,
서둘지 않고,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전함의 등불보다 더 형형한 불빛을 우리에게 비추었다,
자정 가까이, 달빛 휘황한 속에서 적은 우리에게 항복해 왔다.




나 자신의 노래 36

한밤중이 긴장 속에 고요하다.
구 개의 큰 선체가 어둠의 한복판에 꼼짝 않고 있다,
그 중의 한 척 자기들의 것은, 관통되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노획한 군함으로 옮겨 탈 준비,
홑이불처럼 창백한 얼굴의 선장이 뒷 갑판에서 냉정하게 명령을 내린다,
근처에 사관실에서 일하던 소년의 시체가 눈에 뜨이고,
긴 백발에 곱게 손질한 구레나룻을 가진 늙은 해병의 얼굴도 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염이 배의 아래 위로 퍼진다,
아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2, 3명의 사곤의 목쉰 소리,
사지가 없는 시체, 또는 시체 그대로이 것, 돛대나 돛 가로대에 붙은 살조각들,
밧줄의 단편, 매달려 있는 색구, 고요한 파도에서 오는 가벼운 충격,
머리 위에서 말없이 슬프게 비치는 큰 별,
해풍의 미묘한 소리, 바닷가 갈대풀과 들판의 냄새, 생존자에게 남겨진 유언들,
외과의의 메스 휘드는 소리, 그의 수술용 톱의 쓸어 들어가는 톱니,
힘든 호흡, 울음 소리, 떨어지는 핏방울의 튀김, 짧고 거친 비명, 길게 둔하게, 점차 날가로와지는 신음 소리,
이런 것들,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이런 것들.




나 자신이 노래 44

이제 나 자신을 설명할 때다- 자, 우리 모두 일어서자.

이미 아려진 일체의 것을 내던지고서,
나는 모든 남녀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로 돌진한다,
시계는 이 순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들은 지금까지 수억조의 겨울과 여름을 겪어 왔다,
앞으로도 수억조의 세월이 있고, 그 앞에도 수억 조가 있다.

탄생은 우리에게 풍요와 다양을 가져왔다,
그리고 또다른 탄생이 우리에게 풍요와 다야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어느 하나를 더 크다고, 그리고 다른 것은 더 적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시간과 장소를 점유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동등하다.

나의 형제여, 자매여, 인류는 너희에게 잔혹하거나 시기스러웠던가.
그렇다면, 안됐구나, 그들은 나에게는 잔혹하거나 시기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는 친절했다, 나는 슬픔을 말할 만한 것이 없다.
(슬픔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나는 완성된 사물의 극치이고, 일어날 일체의 것을 포괄하는 자이다.

나의 발은 계단의 정점의 다시 그 정점을 밟는다,
층마다에 시대의 다발, 그리고 그 층과 층 사이에 더 큰 다발이 있다,
발 아래의 것은 모두 내가 걸어온 자국, 나는 다시 오르고 또 오른다.

오르고 오르는 데 따라서, 뒤에는 지난 날의 환영들이 고개 숙이고 있다,
멀리 밑으로 나는 거대한 태초의 無를 본다, 거기에도 내가 있었음을 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언제나 기다렸다, 그리고 혼수상태의 안개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떄를 기다렸고, 악추를 내는 탄소의 해를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꼭 껴안았다-오래 오랫동안.

나를 위한 준비는 엄청난 것이었다.
나를 도운 팔은 성실하고 친절했다.
시간의 회전은 쾌활한 뱃사람 모양 노젓고 노저어 나의 요람을 실어 보냈다,
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별들은 저희 궤도를 벗어나 운행했다,
그들은 나를 떠받칠 것을 지켜 주기 위하여 온갖 힘을 보내 주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탄생하기 전에, 여러 세대가 나를 인도했고,
나의 태아는 언제나 생동했고, 어떤 것도 그것을 압도할 수 없었다.

나의 태아를 위하여 이 한 구체에 집중했고,
태아를 그 위에 앉히기 위하여 오랜 완만한 지층이 쌓였다,
풍요한 식물이 거기에 양분을 주고,
거대한 도마뱀이 그것을 입으로 운반하여, 조심껏 땅에 내려 놓았다,

온갖 힘이 나를 완성하고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쓰였다.
그리하여, 이제 이 자리에 나는 튼튼한 영혼을 갖고 서 있다.




너를 위하여, 아 민주주의여

자, 나는 난공불락의 대륙을 만들리라,
나는 태양이 지금까지 비친 중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을 만들리라,
나는 수려하고 매력있는 국토를 만들리라,
동포의 사랑으로써,
동포의 평생 변치 찮는 사랑으로써.

나는 미국의 모든 하천을 따라서, 그리고 큰 호수의 물가를 따라서, 그리고 모든 대초원 위에 널리, 수목처럼 빽빽이 우애를 심으리라,
나는 그 팔들로써 서로의 목을 껴안고서 헤어지지 않는 도시들을 세우리라,
동포의 사랑으로써,
동포의 남성적인 사랑으로써.

아, 민주주의여, 나의 여성이여, 너를 섬기기 위하여, 나에게서 이른 것들을 너에게 바친다.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나는 이 노래들을 목청 떨면서 노래부른다.




브루클린 도선장을 건너

1
발 밑을 흐르는 조수여! 나는 너를 정면으로 본다!
서녘하늘의 구름-해지기 반 시간 전의 태양-나는 너를 또한 정면으로 본다.

일상 차림을 한 남녀의 군상이여! 너희들은 참으로 기이하게 보이는구나!
도선을 타고 건너서 집으로 돌아가는 몇 백 또한 몇 백의 사람들은 너의 상상 이상으로 기이하다,
앞으로 몇 년 후, 해안에서 해안으로 건너는 너희들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내게, 그리고 더욱 내 명상 속에서 기이하다.

2
하루 온 종일 내게 대한 무형의 지지는 온갖 물상에서 온다,
단순하고 치밀하고 잘 짜여진 계획, 나 자신 거기에서 분리되어 있고, 누구나 분리되어 있으나, 누구나 그 계획의 일부이다,
과거의 유사형과 미래의 유사형,
나의 아주 약한 시각과 청각에, 거리의 포도에, 강의 수로 위에, 천상의 영광은 염주알처럼 꿰어 있다.
조수는 아주 빨리 흐르고, 나와 함께 멀리 헤엄쳐 간다.
내 뒤에 따라올 다른 사람들, 나와 그들을 맺는 유대,
그들의 확실성, 그들의 일생과 사랑과 시각과 청각의 확실성

그들은 도선장의 문을 들어와 해안에서 해안으로 건너리라,
그들은 조수의 흐름을 지켜보리라,
그들은 맨해턴의 선박을 북쪽과 서쪽으로 보고, 또한 남과 북으로 이어진 브루클린의 구릉들을 보라보리라,
그들은 크고 작은 섬들을 보리라,
50년 후, 다른 사람들은 도선할 때에 그것들을 바라보고, 해지기 반 시간 전의 태양을 바라보리라,
백 년 후, 그리고 다시 몇 백 년 후에 다른 사람들은 똑같이 그것들을 보고,
낙조를 즐기고 조수의 밀려 들어오는 것을, 썰물이 바다로 밀려 나가는 것을 바라보리라.

3
시간도 장소도 상관없다, 거리도 상관없다,
너희들, 어느 시대의 그리고 더욱 몇 시대 후의 남자와 여자들이여, 나는 너희들과 함께 있다,
마치 너희들이, 강과 하늘을 바라볼 때에 느끼듯이, 나도 그렇게 느꼈었다,
마치 너희들 중 누구나가, 활기 있는 군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나도 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마치 너희들이 강물의 기쁨과 그 빛나는 흐름으로 활기를 얻는 것처럼, 나도 활기를 얻었다,
마치 너희들이, 서서 뱃전의 난간에 기대고서 빠른 조류와 함께 달렸듯이, 나도 서서 달렸었다,
마치 너희들이 무수한 돛대와 기선의 굵직한 통풍통을 바라보았듯이, 나도 바라보았다.

나도 또한 수없이 많이 옛날의 이 강을 건넜다,
나는 12월의 갈매기를 바라보고, 그것들이 하늘 높이 날개를 정지시키고, 몸만을 움직여서 둥실 떠가는 것을 보았다,
번들번들하는 황금빛이 그것들의 몸의 어느 부분을 비치고, 그리고 다른 부분은 짙은 음영으로 남겨 두는 것을 보았다,
나는 서서히 선회하는 원이, 남쪽으로 점차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물에 여름하늘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나의 눈은 길게 끌리는 반짝이는 햇빛으로 눈부셨다,
나는 햇살 쪼이는 강물에 비친 내 머리의 형체를 에워싸는, 아름다운 원심적 광륜을 바라보았다,
남쪽과 남서쪽의 구릉에 어리는 안개를 보았다,
자색으로 물들여진 양모처럼 되어 날아가는 안개를 보았다,
입항하는 선박을 보기 위하여, 항만 아래 쪽을 바라보았다,
그 배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배 위에 탄 나의 친지들을 보았다,
스쿠너나 외돛배의 흰 돛을 보고 닻을 내린 배들도 보았다,
색구에서, 또는 가로대에 걸터앉아 작업을 하는 인부들,
둥근 마스트, 선체의 동요, 가느다란 배암 같은 장기,
달리고 있는 크고 작은 기선, 조타실에 있는 키잡이들,
항로 뒤에 남는 하얀 물자국, 타륜의 급속한 진동에서 오는 회전,
여러 나라의 국기, 해질녘의 그 국기의 강하,
황혼의 빛을 받는 부채꼴로 날선 물이랑, 물 퍼낸 컵 같은 희롱하는 물마루와 그 섬광,
점점 희미해져 가는 저쪽의 전망, 부두의 화강함, 석조 창고의 회색 벽,
강 위의 희미한 무리들, 양쪽에 짐배가 바싹 다가붙어 있는 예인용 중기선, 건초 실은 배, 길 늦은 거룻배,
가까운 기슭에, 주물공장 굴뚝에서 높이 시뻘겋게 밤하늘에 타는 불,
집들의 요란한 빨강 노랑의 불빛과 대조되는 아물대는 어둠이 집집의 옥상에, 그리고 거리거리의 틈새에 덮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4
이런 것, 기타 모든 것이, 내게 있어, 그것이 너희들에 대해서와 꼭 같았다,
나는 그 도시들을 사랑했고, 그 웅대한 급류도 진정 사랑했다,
내가 본 남자 여자는 모두 내게 친근했다,
다른 사람들도 같았다- 내가 그들을 즐거이 기다렸기 때문에 그들으 ㄴ지금 나를 회상하는 것이다,
(비록 오늘 오늘밤, 내가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 해도, 때는 올 것이다)

5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있는 간격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사이에 몇 십 년, 몇 백 년이란 계산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거리도 문제가 아니고, 장소도 문제가 아니다
나도 또한 살아왔다, 많은 구릉이 있는 브루클린은 내 도시였다,
나도 또한 맨해턴 섬의 거리를 걸으며, 그 섬 둘레의 물에 멱감았다,
나도 또한 이상한 뜻밖의 의문들이 심중에 이는 것을 느꼈다,
낮에 사람들 들끓는 속에서 때로 그런 의문이 내게 엄습해 왔다,
밤에 늦게 집으로 걸어갈 때, 혹은 밤에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에, 그 의문이 내게 엄습해 왔다,
나도 또한 영원히 용액 속에 있는 부유물에서 만들어졌다,
나도 또한 나의 본성을 육체에서 받은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나의 육체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고 또한 내가 무엇이어야 하는 것도 내 육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알았다.

6
검은 천이 덮어 씌워지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만 아니다,
암흑은 그 천을 내게도 또한 내리씌운다,
내가 성취한 최선의 것이, 내게는 공허하고 의아스러운 것으로 보였다
내 자신의 위대한 사상이라고 생각된 것이, 실은 빈약한 것이 아니었던가,
악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너희들 뿐이 아니다,
악이 무엇이었는가를 안 그가 다름아닌 나다,
나도 또한 모순이라고 하는 낡은 문제에 골치를 썩었다,
쓸데없이 지껄여대고, 낯을 붉히고, 분개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원한을 품고,
사기 분노 욕정 그리고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욕망을 가졌었다
고집스럽고, 잘난 체하고, 탐욕스럽고, 경박하고, 교활하고, 비겁하고, 악의가 있었다,
이리와 뱀과 돼지와, 내게 결한 것이 없었다,
교활한 눈초리, 경솔한 말, 부정한 욕망도 갖추어져 있었다,
거부 증오 위배 비열 나태 그런 것도 결해 있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일체였고,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우연과도 일체였다,
내가 접근하거나 지나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은 그 낭랑한 큰 목소리로 나의 가장 친근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었다
내가 서 있을 때, 나는 목에 그들의 팔을 느꼈고, 앉아 있을 때엔 그들의 육체가 제멋대로 기대어 옴을 느꼈다,
거리에서, 배 위에서, 혹은 공중집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보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과 같은 생호라을 하고, 똑같은 웃음을 짓고, 괴로워하고 잠을 잤다,
나는 아직도 남녀 어떤 배우들을 상기시키는 역을 연촐했다,
그 똑같은 역, 그것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대로 주역에게도,
또한 우리들이 생각하는 대로 단역에게도, 혹은 주역과 같은 단역 양쪽 모두에게도 맡길 수 있는 역이었다.

7
더욱 가까이 나는 너희들에게 접근한다,
너희드이 지금 어떻게 나에 대하여 생각하든, 나도 너희들에 대하여 똑같은 생각을 갖는다- 나는 미리 그것을 마음 속에 가졌었다,
나는 너희들의 탄생 전에 오랫동안 진지하게 너희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내가 깊이 느껴야만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누가 알았으랴,
나만이 깊이 이것을 즐기고 있음을 누가 알랴,
어떤 간격이 있든, 그리고 너희들이 조금도 나를 모른 체 한다 해도, 나는 지금 똑똑히 너희들을 보고 있음을 알랴

8
아, 돛대에 에워싸인 맨해턴과
강과 낙조와 밀물의 부채꼴 파도,
몸을 흔들며 나는 갈매기, 황혼의 건초 배, 그리고 길 늦은 거룻배, 그런 것들보다 더 장려하고 훌륭한 것이 달리 있겠는가,
내 손을 잡고 또한 내가 접근하면 당장 큰소리로 나의 가장 친숙한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내가 좋아하는 음성의 주인공들보다 어떤 신이 더 우월하겠는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남자와 여자들과 나를 하나로 묶는 것, 그것 이상 미묘한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지금 나를 너희들과 융합시키고, 내 뜻을 너희들 속에 부어넣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이해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에 대한 언급이 없이 내가 약속한 것을, 너희는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학문이 가르칠 수 없는 것-설교가 이룰 수 없는 것,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9
흘러라 강이여! 밀물과 더불어 차고, 썰물과 더불어 줄어라!
희롱하며 가라, 물마루의 부채꼴 파도여!
화려한 낙조의 오색 구름이여, 너의 장려한 빛으로, 이 나를, 내 뒤의 여러 세대의 남녀들을 적셔라!
기슭에서 기슭으로 건너가거라, 수많은 승객의 무리여!
솟아 있어라, 맨해턴의 높은 돛대여! 솟아 있어라, 브루클린의 아름다운 구릉이여!
맥박 울려라, 당황한 호기심 많은 두뇌여! 내던져라, 질문과 대답을!
여기저기에 영원히 끝 안 나는 해결의 표류를 막아라!
사랑스런 갈구의 눈이여, 집안을, 거리를, 또는 공공집회를 응시하라!
울려라, 젊은이들의 목소리, 드높이, 가락맞게, 나의 가장 친근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라!
살아라, 정다운 생명이여! 남배우나 여배우를 상기시키는 역을 연출하라!
그 오랜 역을 연출하라, 주역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따라서,
나의 시를 읽는 이들이여, 내가 남모르게 너희들을 바라보고 있지나 않는가를 생각하라,
강가의 난간이여, 견고하라, 그리고 부질없이 기대로 빠른 흐름 따라 서둘러 가는 자들을 떠받쳐라.
날아가라, 해조여! 옆으로 날고, 혹은 하늘 높이 큰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아라.
여름 하늘을 비쳐라, 흐르는 물이여, 그리고 굽어보는 사람들의 눈이 그것을 너희에게서 받을 때까지 충실히 비쳐라.
아름다운 빛살이여, 햇빛 어린 물에 비친 내 머리의 형상에서, 또는 누구의 머리의 형상에서, 갈라져 비쳐 나가라!
항만 입구의 선박이여, 이리 오라, 오고 가라, 흰 돛의 스쿠터배여, 외돛배여, 거룻배여,
펄럭여라, 만국의 국기여, 해질 무렵에는 바르게 내려질지어다,
주물공자의 연돌이여, 높이 불타라, 저녁에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라! 붉고, 노라 빛을 집들 위에 쏟아라,
현상들이여, 지금 있고, 앞으로 있을 너희가 무엇인가를 보여라,
너, 반드시 필요한 막이여, 계속 영혼을 싸감아라,
나를 위해서는 내 몸 주변에, 그리고 너를 위해서는 네 몸 주변에, 가장 신성한 향기를 피워라,
번성하라, 도시여, 너희들의 짐을 운반하고, 너희들의 장관을 운반하라, 풍요한 강이여,
크고 넓게 뻗쳐라, 아마 이보다 더 영적인 것이 달리 없을 존재여,
이 이상 항구한 것이 달리 없을 너의 지위와 물체들을 간직하라.

너희들은 기다렸다, 너희들은 언제나 기다린다, 너희들 말없는 아름다운 사절이여,
우리들은 이제 드디어 자유로운 생각으로 너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만족을 모르리라,
이제 너희는 우리를 물리칠 수 없다, 그리고 너희들을 무리에게서 떨어져 있게 할 수 없다.
우리는 너희를 이용한다, 그리고 너희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영구히 너희를 우리 마음 속에 심는다,
우리는 너희들을 재고자 하진 않는다-우리는 너희를 사랑한다-너희에게는 안전이 갖추어져 있다,
너희는 영원의 미래에 대하여 너희의 역할을 마련한다,
크건 작건, 너희들은 영혼에 대하여 너희들의 역할을 마련한다.




쳐라, 쳐라, 북을

쳐라 쳐라 북을-불어라, 나팔을 불어라,
창이란 창에 모두-문이란 문에서 모두-무자비한 힘처럼 터져라,
엄숙한 교회에 들어가 신도들을 헤쳐 버려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쳐들어가라
신랑을 조용히 두어 두지 말라- 그는 지금 저의 신부와 행복하게 있어선 안된다
평화스런 농부에게도, 밭을 갈고 곡물을 수확하는 안일을 갖게 해선 안된다,
그렇게 격렬하게 너는 힘껏 북을 치고-귀를 찢을 정도로 나팔을 불어라

쳐라, 쳐라, 북을, 불어라, 나팔을 불어라
도시의 거리 위로-거리의 차량들 우루룽거리는 위로
집집에선 밤에 잠잘 사람들 위해서 침상이 준비되어 있는가
잘 사람들은 그 침상에서 자선 안된다
낮의 거래꾼들의 거래-주식꾼들, 투기꾼들도 그렇다-그들은 흥정을 계속할 것인가
연설가들은 연설을 계속할 것인가 가수들은 노래를 부르려는가
변호사는 법정에서 일어나 재판관 앞에서 변호를 하려는가
그렇다면 더 큰 북을 더 빨리 치고-나팔을 더 사납게 불어대라
쳐라, 쳐라, 북을. 불어라, 나팔을 불어라.
상담을 집어치워라- 충고에도 귀기울이지 말라
소심한 자를 걱정말라- 우는 자나 기도하는 자도 염려말라
젊은이에게 간청하는 노인을 상관마라,
어린이도 소리지르지 못하게 하라, 엄마의 간절한 소원도 듣지 말라,
영구차를 기다리는 동안, 높여 있는 사체와 함께 棺臺까지를 뒤흔들어라,
아, 힘차게 너는 난타하라, 아 가공스런 북이여, -그토록 큰소리나게 너 나팔을 불어라.




찬란한 무언의 태양을 내게 다오

1
그 눈부신 빛의 찬란한 무언의 태양을 내게 다오
과수원의 익어서 새빨간 식욕 돋구는 가을의 과일을 내게 다오,
베지 않은 풀이 무성한 들판을 내게 다오,
정자를 내게 다오 격자 꼴 정자에 열린 포도를 내게 다오,
신서한 옥수수와 밀을 내게 다오,
자족을 가르치는 조용히 움직이는 동물을 내게 다오,
미시시피강 서쪽 고원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다시 없이 고요한 밤을 내게 다오,
거리낌없이 산책할 수 있는, 새벽 향기 고운 아름다운 꽃밭을 내게 다오,
평생 싫증 안 나는 호흡 상쾌한 여성과의 결혼을 내게 다오,
완전한 아기를 내게 다오, 세상의 소란에서 떨어진 전원의 가정생활을 내게 다오,
혼자 칩거하며 자기 귀에만 들리게 스스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도록 해다오,
내게 고독을 다오, 자연을 내게 다오,
아, 자연이여, 다시 너의 원초적 건강을 내게 다오
이런 것들을 갖고자, 그것을 소망하며(쉼없는 흥분에 피곤하고, 또한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얻고자, 끊임없이 구하는 것이 내 가슴에서 외침 소리로 되더 울려나온다,
이처럼 쉴새없이 구하면서도, 나는 내 도시에 집착하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올해도 내년도, 아 도시여, 나는 너의 거리들을 걷는다,
거기에서 너는 어느 기간 나를 묶어매어 놓아 주기를 거부하지만,
그러나 나를 만족시키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너는 영원히 인간의 얼굴들을 내게 준다.
(아, 나는 내가 거기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것이 내게 대면하고, 나의 외침을 뒤집어 엎는 것을 본다.
나는 내 자신의 영혼이, 그것이 구하는 것을 짓밟고 있음을 본다)

2
너의 그 찬란한 무언의 태양은 간직하여 두어라,
너의 숲은 간직하여 두어라, 아, 자연이여, 그리고 숲가의 조용한 장소도,
너의 클로버와 큰조아재비가 자라는 들판과 그리고 옥수수밭과 과수원은 두어 두어라,
9월의 꿀벌 웅웅대는 꽃피는 메밀밭은 두어 두어라,
그리고 나에겐 사람들의 얼굴과 거리르 다오-나에게는 보도를 오고가는 끝없는 환영들을 다오.
내게 끝없는 사람의 눈을 다오- 내게 여성을 당- 수천의 동지와 애인을 다오.
내게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보게 하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의 손을 쥐게 해다오.
내게 이런 광경을 다오-맨해턴의 시가를 내게 다오.
군대가 행진하는 브로드웨이를 다오-내게 나팔소리와 북소리를 다오.
(중대나 연대의 병사들- 어떤 자들은 흥분하여 무모하게 떠나 버린다)
어떤 자들은 만기가 되어 수가 적어진 대원들과 함께, 젊으면서 늙어가지고, 지쳐서 방심자가 되어 행진하며 돌아온다)
해안과, 정비한 검은 배들로 꽉 찬 부두를 내게 다오
아 이런 것들을 내게 아, 충만하여 변화있는 긴장된 생활을
나에게는 극장과, 주점, 거대한 호텔의 생활을
나에게 기선의 담화실을, 많이 떼지어가는 소풍을, 횃불의 행렬을.
높이 짐을 질은 군수차를 뒤에 거느리고 전장터로 향하는 밀집한 군단을.
힘찬 목소리, 정렬, 장관이 함께 하는 끝없는 사람의 물결,
지금 보는 것과 같은 힘차게 맥박치며, 북소리 울리는 맨해턴의 시가,
끝없는 잡음의 합창, 소총이 스치는 소리(부상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 소란한 음악의 합창이 있는 맨해턴의 군중을,
맨해턴의 사람들의 얼굴과 눈들을, 영원히 내게 다오.




지난 봄 라일락이 일찍 앞마당에 피었을 때

1
지난 봄 라일락이 일찍 앞마당에 피었을 떄,
그리고 밤에 큰 별이 일찍 서녘하늘에 질 때,
나는 서러워했다. 그리고 여전히 서러워하릴, 해마다 돌아오는 봄과 더불어.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여, 너는 분명 세 가지 것을 내게 가져오리라,
해마다 꽃피는 라일락과, 서녘에 지는 별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분의 생각을.

2
아, 서쪽에 지는 힘찬 별!
아, 밤의 음영- 아, 우울한 눈물겨운 밤!
아, 사라진 큰 별- 아, 그 별을 가리는 어둠!
아, 나를 잡아 무력케 하는 잔인한 손- 아, 어찌할 바 없는 나의 영혼!
아, 나의 영혼을 풀어 주지 않고 에워싸는 무정한 구름장!

3
하얗게 칠한 담장 근처 낡은 농가 맞은편 앞마당에,
심장 모양의 짙은 녹색 아파리 달린 키가 큰 라일락 숲이 있다,
섬세하게 피어난 뾰족한 꽃을 많이 달고, 내가 좋아하는 짙은 향기 뿜으며,
이파리마다 기적- 앞마다 이 숲에서,
섬세한 색깔의 꽃과 짙은 녹색의 심장 모양의 이파리 붙은,
가시 하나를 꽃과 더불어 나는 꺾는다.

4
한적한 후미잔 곳 늪에서,
수줍은 한 마리 새 숨어서 노래부른다.

티티새는 외로이,
그 숨어 사는 티티새는 세간을 피하여 몸을 숨기고,
혼자서 노래부른다.

목에서 피를 쏟는 노래를,
목숨을 내뱉는 죽음의 노래를(왜냐하면, 사랑하는 형제여, 나는 안다,
네가 노래마저 못 부른다면 너는 필시 죽으리라는 것을)

5
봄의 한복판 땅 위로 도시를 누비며,
좁으길 사이로 그리고 땅에서 갓 솟아나온 오랑캐꽃이 잿빛 바위 언저리에 반점을 찍는 해묵은 숲 사이로,
소로길 양켠 논밭의 풀 사이로 끝없는 풀밭을 지나,
암갈색 들판에서 낟알 하나하나가, 그 껍질에서 비여져 나오는 노란 밀밭가를 지나,
과수원 안의 흰빛 분홍빛의 사과나무꽃을 지나,
유해를 무덤 속 안장될 곳으로 싣고서,
밤과 낮으로 관 하나가 여행을 계속한다.

6
좁은길과 거리를 지나는 관,
큰 구름이 대지에 그늘을 드리우는 밤낮으로,
검은 상장에 싸인 도시의 깃대에 달린 조기의 장관과,
검은 베일을 쓰고 서 있는 부인들과 같은 합중국 그 자체의 모습과
길게 구불구불한 행렬과 밤의 횃불과
무수히 불붙은 횃불과, 사람과 얼굴과 모자를 쓴 머리들의 말없는 바다와,
기다리고 있는 정거장들, 도착하는 관, 그리고 침울한 얼굴들과
밤새 그치지 않는 애가와, 힘차게 장엄하게 들려오는 수천의 목소리와,
관을 에워싸고 쏟아지는 슬픈 애가의 목소리들과,
희미하게 불 밝혀진 교회들과 떨리는 오르간- 이런 것들 사이를 당신을 간다,
울리는 울리는 종소리의 끝없는 울림과 더불어,
서서히 지나가는 관이여, 자,
나는 당신에게 이 라일락 가지를 바치노라.

7
(당신에게, 다만 당신 하나에게만은 아니다,
꽃과 푸른 가지를 모든 관을 위하여 가져온다,
아침처럼 상쾌하게, 이리하여 나는 당신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아, 건전하고 거룩한 죽음이여.

온 천지의 장미의 꽃다발,
아, 죽음이여, 나는 장미와 일찍 핀 백합으로써, 당신을 덮는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맨 먼저 피는 라일락을,
한아름 꺾어, 그 가지를 숲에서 꺾어,
한 아름 안고 와서, 당신을 위하여 쏟는다,
당신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관을 위하여 쏟는다, 아, 죽음이여)

8
아, 하늘을 항해하는 서녘의 별이여,
나는 걸어다닌 지 한 달 되는 오늘, 이제야 나는 네가 뜻한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내가 청정한 그늘진 밤을 걸었을 때
밤마다 내 쪽으로 몸을 굽히고, 내게 말하고자 하는 너를 보았을 때,
내 곁으로라도 오라는 듯이 네가 하늘에서 몸을 가라앉혔을 때, (그때 다른 별들은 모두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가 그 장엄한 밤을 함께 방황했을 때,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무엇인가 나도 모를 것을 찾아)
밤이 깊어, 서녘 하늘 가에 네가 근심에 차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서늘한 청정한 밤에 미풍에 불려, 내가 높은 땅 위에 섰을 때,
네가 지나가, 밤의 어둠 밑바닥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영혼이 근심에 싸여 가라앉아 버렸을 때, 그교에서 너의 슬픈 천체가
운행을 마치고, 밤에 내려 모습을 가렸을 때,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알았었다.

9
저기 늪에서 노래불러라,
아 수줍은 상냥한 가수여, 나는 네 노래를 듣고, 너의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듣자마자 달려와, 너를 이해한다,
그러나 잠시 나는 머뭇거린다, 그 눈부신 별이 나를 분들었기에,
떠나는 나의 친구 저 별이 나를 잡고 만류한다.

10
아, 저 세상에 간 나의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나는 어떻게 노래해야 하나.
그리고 가버린 위대한 다정한 영혼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내 노래를 장식할 것인가.
그리고 사랑하는 그 분의 무덤을 위하여 어떤 향료가 어울릴 것인가.
바닷바람이 동에서 그리고 서에서 불어온다,
저쪽 대초원에서 마주칠 때까지, 동해에서 불어오고 서해에서 불어온다,
이것들과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그리고 나의 노래의 숨결로써
나는 사랑하는 그의 무덤을 향기롭게 하련다.

11
아, 방안 벽에, 나는 무엇을 걸면 되겠는가,
그리고 나서 사랑하는 그분의 유택을 장식할,
벽에 거는 데는 어떤 그림이어야 하겠는가.

짙어 가는 봄과 논밭과 가정의 풍경,
거기에는 석양의 사월과 저녁과, 그리고 맑게 빛나는 잿빛 연기와,
대기를 불붙여 부풀리는 화려하고 느슨한 지는 해의 호아금빛 물결과,
발치의 신선한 상쾌한 풀과 그리고 풍성한 수목이 엷푸른 잎이 있고,
멀리에는, 흐르는 번쩍이는 수면 여기저기 잔물결 짓는 강물의 수면,
여러 개의 선을 하늘에 긋는 둑 저쪽엔 연달은 구릉과 그 음영과,
또한 빽빽한 집들과, 많은 굴뚝이 있는 도시와,
또한 생활과 공장의 모든 풍경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2
보라, 육체와 영혼의- 이 국토를,
첨탑 있는 우리 고을 맨해턴, 그리고, 반짝이며 급히 흐르는 조수와 선박을,
다양하고 풍요한 땅, 햇빛 받는 남쪽지방과 북쪽 지방, 오하이오주이ㅡ 해안과 번쩍이는 미주리강을,
그리고 잡초와 옥수수로 덮인, 언제나 까마득히 펼쳐진 대초원을,

보라, 저렇게 침착하고 오만한 가장 훌륭한 태양을,
쾌적한 미풍을 거느리는 오랑캐꽃 빛과 자색의 새벽을,
부드럽게 가볍게 탄생하는 헤아릴 수 없는 빛을,
펼쳐져서 만물을 적시는 기적을, 충복된 정오를,
상쾌하게 찾아오는 저녁을, 즐거운 밤과 별들을,
이것들은, 나의 도시들 위에서 모든 것을 비치고, 인간과 대지를 두루 덮는다.

13
노래하라, 계속 노래하라, 회갈색의 새여,
늪에서, 그 으슥한 숨은 곳에서 노래하라, 숲에서 네 노래를 줄줄 쏟아내라,
으스름에서, 삼나무와 소나무 숲에서 끝없이 불러.

아, 영롱하고 거리낌없고 상냥하게!
아, 내 영혼에 자연스럽고 너그러운- 아, 절묘한 가수여!
너만을 나는 듣는다-그럼에도, 별이 나를 붙든다, (그러나 떠나겠지,)
그럼에도 라일락이 그 강한 향기로써 나를 붙든다.

14
이제 내가 낮에 앉아 머리 내다볼 때,
햇빛이 아직 남으 채 해가 저무는 것을, 봄의 들녘을, 그리고 수확을 채비하는 농부들을,
호수와 숲이 있는 우리 국토의 그 광대한 무심한 풍경을,
하늘나라 꿈 같은 아름다움을, (불안한 바람과 폭풍 후의,)
빨리도 지나가는 오후의 창궁 아래, 많은 아이들과 여인들의 목소리를,
자꾸자꾸 움직이는 바다의 조수를, 몇 척의 배의 항해를 나는 보았다,
그리고 풍성하게 다가오는 여름과, 모두가 일로 분망한 전원을,
그리고, 무수한 하나하나의 집들, 식사와 일상적 관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거리들이, 그 고동이 맥박치는 모습을, 그리고 갇힌 도시들을 보았다, 그러나 보라, 당장
그것들 모두 위에, 그것들 모두 사이에 내려거 다른 모든 것과 함께 나를 덮어 싸면서
구름장이 나타났다. 긴 검은 구름자락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나는 죽음을 알고, 그 사상을 알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거룩한 확증을 알았다.

이윽고 걸어가는 내 한켠에 죽음의 지혜를,
그리고 나의 다른 한쪽엔 바싹 붙어 걷는 죽음의 사상르 거느리고,
그리고 나는 한복판에, 동료들이나 되는 듯이, 그리고 그 동료들의 손을 쥐고 있는 듯이,
말없는 밤을 맞이하여, 그 숨을 곳으로,
물기슭으로 내려가, 희미한 속을 늪가의 좁은 길을 지나,
엄숙한 그늘 같은 삼나무와, 아주 고요한 환영의 소나무밭으로 나는 도망쳐 갔다.

그러자 다른 이에게는 그렇게 수줍은 이 가수가 나를 받아들였다,
내가 아는 이 회갈색 새는 우리 세 반려들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죽음의 찬가를, 내가 좋아하는 그를 위한 시 한편을 노래해 주었다.
으슥한 숨은 곳에서,
향기로운 삼나무와 아주 고요한 환영의 소나무밭에서,
새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이 밤중에 그드르이 손을 잡듯이 그 동반자를 붙잡고 있을 때,
그 노래의 매력은 나를 황홀케 했다,
그리고 내 영혼의 목소리는 새의 노래에 잘 부합했다.

오라 사랑스런 마음 편한 죽음이여,
이 세상 싸고 출렁이며, 살며시 오라, 살며시 오라,
낮에도 밤에도, 모든 이의 하나하나에게,
조만간 찾아오라, 신묘한 죽음이여,

심원한 우주여, 찬양받을지어다,
생과 기쁨을 위하여, 그리고 만상과 신묘한 지식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 향기로운 사랑을 이ㅜ하여-다만 찬양하라! 찬양하라! 찬양하라!
그리고 싸늘하게 싸감은 죽음의, 반드시 휘감은 팔을 위하여.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끄러지듯이 조용히 다가오는 암흑의 어머니여,
아무도 지금까지, 진정한 환영의 노래 당신 위하여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당신 위하여 부르리라, 내가 무엇보다도 잘 당신을 찬양하리다,
당신이 꼭 와야만 할 때엔, 아무 주저없이 올 수 있도록 나는 노래 하나를 당신에게 드린다.
가까이 오라 힘찬 해방의 여인이여,
때가 와서, 당신이 사람들을 데려갈 때에, 나는 기쁘게 그 죽는 이들을 노래하련다.
아름답게 떠도는 당신이 大海 속에서 모습을 잃고
당신의 행복의 물결 속에 씻기우는 그 죽는 이들을, 아, 죽음이여

나에게서 기쁨의 소야곡을 당신에게 바친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여 무도를 드리고자 한다, 장식과 향연을 당신에게 바친다.
또한 광활한 산야의 풍경과 높이 펼쳐진 하늘,
또한 생활과 전원, 그리고 광대한 사려 깊은 밤고 당신에게 어울린다.

수많은 별 아래 정적의 밤,
바다 기슭과 내가 익히 들은 그 쉰 목소리의 속삭이는 파도,
그리고 당신 쪽으로 향하는 영혼, 아, 거대한 깊이 가리워진 죽음이여,
그리고 육체는 즐거이 당신에게 다가든다.

나무 꼭대기 위에 당신 위하여 노래 하나를 띄운다,
일고 가라앉고 하는 파도 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논밭과 광막한 대초원 위에.
인가가 조밀한 모든 도시들과, 풍성한 부두와 도로 위에,
아, 죽음이여, 나는 당신에게 기쁘게 기쁘게, 이 찬가를 띄운다.

15
내 영혼에 부합시켜 부르는,
밤하늘에 퍼져 충만하는, 순결하고 정결한 울음을,
드높이 힘차게 그 회갈색 새는 울어댔다.

침침한 소나무와 삼나무 숲에서 드높이,
상쾌한 습기와 늪의 샹기 속에서 맑은 노래 소리,
그리고 나는 그 날 밤, 나의 반려와 함께 거기에 있었다.

내 두 눈에 한정되었던 시계가 풀렸을 때,
환영의 긴 파노라마가 거기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희미하게 많은 군대를 보았다.
나는 소리없이 꿈 속에서처럼 몇 백의 군기를 보았다,
전장터의 포연 속으로 끌려 다니며 비탄에 찢기운 그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초연 속을 여기저기 운반되면서 찢기우고 피묻고,
그리고 최후엔 몇 가닥 조각만이 깃대에 남고(그리고 모두가 말없이)
그기고 그 깃대도 모두 산산히 부서지고 꺾여 있었다.

나는 전장터의 시체를, 수없는 그 많은 시체들을 보았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하얀 해골을 나는 보았다,
나는 전쟁의 파괴물, 살해당한 시체들의 파고물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상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들은 모두 편안히 안식하고 있을 뿐 고통받고 있진 않았다.
살아 있는 자는 살아남아서 고통받는다, 어머니도 고통받는다,
그리고 그 처자도, 생각에 잠기는 전우들도 고통받는다,
그리고 뒤에 남은 군대가 고통받는다.

16
환영을 지나서 밤을 지나서
내 반려자들의 에워싸는 손을 풀고서, 지나와서,
티티새이 노래와 내 영혼과 부합되는 그 노래를 지나서,
그것은 승리의 노래, 죽음의 내뱉는 노래, 그리고 다양하게 항상 변화하는 노래,
낮게 그리고 비통하게, 그러나 드높았다 가랑ㄴㅈ았다 하는 맑은 가락은 밤하늘을 충만시키고,
슬프고 가라앉고 꺼지며, 경고하듯이 경고하듯이, 그러나 다시 기쁨으로 벅차
내가 으슥한 곳에서 들은 그 밤의 힘찬 성가처럼,
대지를 덮고, 광막한 하늘에 퍼진다,
지나면서 나는 하트 형의 잎이 달린 라일락, 너를 두고 간다,
나는 봄마다 돌아와서 꽃피는 너를, 저기 앞마당에 놓고 간다.

나는 너를 위한 노래를 그친다.
서쪽을 향하여 너와 마음을 통하면서 서쪽에 있는 너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다.
아, 밤하늘에 은빛 얼굴로 빛나던 반려자여,

그러나 밤에서 되찾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간직하자,
노래를, 저 회갈색 새이 기묘한 노래를,
그리고, 거기에 부합시키는 노래, 내 영혼 속에 일어난 메아리를,
그것과, 비통에 찬 얼굴을 한 빛나는 지는 별을,
새의 부르는 소리에 다가와 내 손을 잡은 그 사람들을,
나와, 양펀에 세운 두 사람의 나의 반려자와, 내가 그토록 사랑한 죽은 이를 위하여 그들의 추억은 간직하고,
나의 시대와 국토 안에서 제일 다정하고 제일 총명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 시를 그리운 그에게 바친다,
저기 향기로운 솔밭과 어둠침침한 삼나무밭 속에,
라일락과 별과 새가 내 영혼의 송가와 뒤얽혀 있다.




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무서운 항해는 끝났다.

배는 온갖 난관을 뚫고

추구했던 목표를 획득하였다.

항구는 가깝고,

종소리와 사람들의 환성이 들린다.

바라보면 우람한 용골돌기,

엄숙하고 웅장한 배.

그러나 오오 심장이여! 심장이여! 심장이여!

오오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있는

우리 선장이 쓰러진 갑판 위.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 종소리 들으오, 일어나시라-

깃발은 당신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 위해 울리고 있다.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환도

당신을 위함이요-

당신 위해 해안에 모여든 무리.

그들은 당신을 부르며,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자,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 놓으오.

이것은 꿈이리라.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지시다니.

우리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닫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뛰지 않고 의지도 없으시다.

배는 안전하게 단단히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났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온다.

 

 

O Captian! my Captain!

 

O Captian! my Captain! our fearful trip is done,

The ship has weather'd every rack, the prize,

  we sought is won,

The port is near, the bells I hear,

  the people all exulting,

While follow eyes the steady keel,

  the vessel grim and daring;

But O heart! heart! heart!

O the bleeding drops of red,

Where on the deck my Captian lies,

Fallen cold and dead.

O Captain! my Captain!

  rise up and hear the bells;

Rise up-for you

the flag is flung-for you the bugle trills,

For you bouquets and ribbon'd wreaths-

for you the shores a-crowding,

For you they call,

  the swaying mass, their eager faces turning;

Here Captian! dear father!

This arm beneath your head!

It is some dream that on the deck,

You've fallen cold and dead.




인도를 향한 항로

1
우리 시대를 노래하고
현재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하고
기사들의 힘찬 경쾌한 작업을 노래한다.
우리 근대의 경이로운 것들(옛날의 둔중한 세계7대불가사의 이상의)
동방의 구세계에는 수에즈 운하가 있다,
신세계에는 대철도가 관통하고,
해양은 웅변적이고 친절한 해저전신이 수놓여 있다.
그러나, 아, 영혼이여, 우선 당신과 함께 소리쳐 볼 영원히 울릴 외침은,
과거! 과거! 과거

과거여- 어둡고 깊이를 잴 수 없는 회상이여!
풍요한 심연이여- 잠든 사람들이여! 음영이여!
과거여- 과거의 무궁한 위대여!
현재란 것이 결국 과거에서 생성한 것에 불과하지 않나.
(발사체가 만들어져, 발사되어, 어느 선을 지나, 아직 날아가고 있듯이,
현재도 과거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발사된 것이다)

2
아, 영혼이여, 인도에의 항로여!
아시아의 신화, 원시적 전설을 해명하라.
너 세계의 온갖 위대한 진리뿐 아니라,
너 근세과학이 온갖 사실뿐 아니라,
상고이 신화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전설을
멀리 날아가는 영혼의 빛을, 제멋대로의 공상을,
깊이 마음에 파고드는 성전과 전설을, 시인의 분방한 구상을, 옛 종교를.
아, 너 솟아오르는 태양을 온몸에 받는 백합보다도 아름다운 사원들이여!
아, 너 알려진 것을 일축하고서, 알려진 것의 속박을 벗어나 하늘에 오르는 전설이여!

너 머리에 첨탑을 이고 장미처럼 붉고 황금빛 불타는 의연한 눈부신 탑들이여!
인간의 상상에서 만들어내진 불멸의 전설의 탑이여!
너희들을 또한, 나는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환영한다!
너희들을 또한 나는 기쁘게 노래한다.
인도에이 항로!
보라, 영혼이여, 당신은 처음부터 신의 의도를 보지 않았는가.
세계는 일대광맥으로 연결되고 걸쳐져 있다.
여러 민족과 이웃은 혼인하고 혼인해 가고,
대양은 횡단되고 먼 곳은 가까워진다.
육지는 서로 한데 뭉쳐진다.

새로운 숭앙을 나는 노래한다!
너희들 선장들 항해자들 탐험가들이여, 너희들의 숭앙을,
너희들 기사, 건축가, 기계공들이여, 너희들의 숭앙을,
무역이나 운송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아, 영혼이여, 당신을 위해서 숭앙한다.

3
인도에의 항로!
보라, 영혼이여, 당신을 위한 한 쌍의 활화를,
그 하나 속에, 나는 착수돼서 개통된 수에즈운하를 본다.
나는 유제니 황후께서 타신 배가 선도하는 기선의 긴 행렬을 본다.
나는 갑판 위에서, 갑판에서 낯선 풍경, 맑은 하늘, 아득한 평지를 본다.
나는 그림 같은 사람 떼와 군집한 노동자와
거대한 준설기를 신속히 지나간다.

지금 또하나의 별세계에(아, 영혼이여, 이것도 당신의 것, 모두가 당신의 것)
나는 내가 사는 대륙 위에 모든 장애를 타고넘는 태평양 처로를 본다,
나는 화물과 승객을 실어나르는 프래트강 따라 구불구불 달리는 현명한 열차를 본다,
나는 우렁차게 달리는 기관차와, 귀를 찢는 기적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풍경 속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라라미평야를 횡단하며 괴기한 모양의 바위와 외딴 산들을 본다,
나는 무성한 참제비고깔과 야생양파의 불모의 살풍경한 사재발쑥의 황야를 본다,
나는 멀리 흘낏흘낏 보이거나 머리 위에 돌연히 솟아오르는 큰 산맥을 보고 윈드강과 워사취 산맥을 본다,
나는 모뉴먼트산과 이글 네스트를 보곤 프로몬토리 융기를 지나 네바다봉에 오른다.
나는 장대한 엘크산을 살펴보고 그 기슭을 감돈다,
나는 험볼트 산맥을 본다, 나는 산협을 누비고 강을 건넌다,
나는 타호호의 맑은 물을 보고 장엄한 소나무 숲을 본다,
혹은 대사막 알칼리 토성의 평원을 횡당하여 나는 강물과 목장의 요염한 신기루를 본다,
이러한 것으로 경계를 삼고 결국 두 개의 가느다란 선로로,
삼사천 마일의 육로 여행이 다리 놓여져,
동해와 서해가 묶인다,
그것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길.

(아, 제노바인이여, 당신의 꿈! 당신의 꿈!
당신이 그 무덤에 묻힌 후 몇 세기에,
당신이 발견한 해안은 당신의 꿈을 입증한다)

4
인도로의 항로!
많은 선장들이 고투, 죽은 많은 수부들의 이야기,
그것은 아득한 저 하늘의 구름이나 잔구름처럼
나의 정서 위에 살며시 펼쳐져 다가온다.

모든 역사를 따라, 비탈을 내려,
흐르는 실개천처럼 가라앉았다, 다시 표면으로 나타나,
한 가닥 끊임없는 생각, 변화있는 행렬- 보라, 영혼이여, 당신에게, 당신 눈앞에,
계획들과 다시 여러 항해와 여러 원정이 나타난다,
다시 바스코 드 가마는 출항하고,
다시 획득한 지식, 항해자의 나침반,
발견된 국토와 탄생한 국가, 너 태어난 미국이여,
원대한 목적을 위하여, 인류의 기나긴 견습기는 충족되고,
너 세계의 구체는 드디어 완성되었다.

5
아, 허공중에 헤엄치는 거대한 구체여,
可視의 힘과 아름다움으로 전면이 덮여,
빛과 낮과 풍요한 영의 암흑이 교체하며,
하늘에는 태양과 달고 숱한 별의 필설로 말할 수 없는 고도의 행렬,
대지에는 각종 풀과 물과 동물과 산과 수목,
어느 것이나 헤아릴 수 없는 목적과 어떤 숨은 예언적 의도가 들어 있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상념이 너에게 다리 걸쳐지는 것 같다.
아시아의 동산에서 팔방으로 내러퍼져
아담과 이브가 나타나고 이어서 그 뒤로 그들의 무수한 후예가 나타난다.
방황하고 동경하고 호기심에 차고 쉬지 않는 탐구를 하고
어쩔 바 모르는 막연한 초조스런 회의와 언제나 편안 없는 마음을 품고서 ‘어찌하여 만족하지 않는 영혼이냐’ 또는 ‘아, 우롱하는 인생이여, 어디로 가나’ 의 그 끊이지 않는 슬픈 후렴을 되풀이한다.

아, 도대체 누가 이 초조한 자식들을 달랠 것인가,
누가 이 쉬지 않는 탐구르 시인하는가.
누가 이 무감각한 대지의 비밀을 말해 주는가.
누가 그것을 우리에게 연결시키는가. 이렇게 부자연한 이 별개 자연은 무엇인가.
이 대지는 우리의 애전에 무슨 관계가 있나(우리 가슴의 고동에 응하는 하나의 고동도 없는 무정한 대지,
무덤뿐인 이 차디찬 대지)

그러나 영혼이여, 최초의 목적은 반드시 그대로 남아 달성되리라,
아마 이제야 그때가 도달한 것이다.

바다를 모조리 건너고 나서(그것은 이미 건너진 것으로 생각된다).
위대한 선장과 기관사들이 그들의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우수한 발명가들 뒤에 과학자 화학자 지질학자 인종학자 뒤에
취후로 그 이름에 가치 있는 시인,
신의 참된 아들이 제 노래를 부르며 오리라.

그때서야 아, 항해자여, 아 과학자와 발명가여, 너희들의 업적이 시인받을 것이고,
안달하는 아이들 마음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은 위안받으리라,
모든 애정은 충분히 보답을 것이고 그 비밀은 밝혀지리라.
모든 이러한 구분과 간격은 막히고 서로 걸쳐지고 연결되리라.
신성한 삼위일체는 신의 참된 아들인 시인에 의하면 훌륭히 완성되고 결합되리라,
(그는 반드시 해협을 통과하고 산악을 정복하라리
그는 그 목적을 향해 희망봉의 곳을 회항하리라)
자연과 인간은 이제 분리되거나 흩어지지 않으리라,
신의 참된 아들이 그것을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다


 


환희의 노래
“환희의 노래” 중에서

 

오 강적과 맞서 싸우고 싶어라,
용감한 적수를 만나고 싶어라
그들과 홀로 대적하고 싶어라,
사람이 얼마나 버틸지 알고 싶어라!
투쟁, 고문, 감금,
대중의 악평을 직접 대면하고 싶어라!
처형대에 오르고 싶어라,
그지없이 태연하게 총구 앞으로 가고 싶어라!
정말이지 신이 되고 싶어라!


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고 싶어라!
이 하염없이 견딜 수 없는 땅을 떠나고 싶어라
지겹도록 똑같은 거리와 인도와 집들을 떠나고 싶어라
너를, 오 견고하게 움직일 줄 모르는
너 육지를 떠나 배에 오르고 싶어라,
항해하고, 항해하고, 항해하고 싶어라!

오 지금부터 한 편의
새로운 환희의 시 같은 삶을 갖고 싶어라!
춤추고, 손뼉치고, 기뻐 날뛰며, 소리치고,
깡충거리며, 뛰어오르고, 구르고, 떠다니고 싶어라!
모든 항구를 목적지 삼은 세계의 선원이 되고 싶어라.
한 척의 배가 되고 싶어라
(내가 태양과 대기에 펼치는 이 돛들을 보라)
풍성한 언어 가득한,
환희 가득한 재빠르고 부푼 한 척의 배가 되고 싶어라.

 

 

A Song of Joys

from "A Song of Joys"

 

O to struggle against great odds, to meet enemies undaunted!
To be entirely alone with them,
to find how much one can stand!
To look strife, torture, prison, popular odium, face to face!

To mount the scaffold,
to advance to the muzzles of guns with perfect nonchalance!
To be indeed a God!


O to sail to sea in a ship!
To leave this steady unendurable land,
To leave the tiresome sameness of the streets,
the sidewalks and the houses,
To leave you O you solid motionless land,
and entering a ship, To sail and sail and sail!


O to have life henceforth a poem of new joys!
To dance, clap hands, exult, shout, skip, leap, roll on, float on!
To be a sailor of the world bound for all ports,
A ship itself,
(see indeed these sails I spread to the sun and air,)
A swift and swelling ship full of rich words, full of joys.

 

 

 

 

19세기 미국 초절주의 시

     -에머슨과 휘트먼의 비교-

   조  규  택

 

I

클레렌스 고데스(Clarence Gohdes)는 휘트먼의 이상주의와 개인주의가 에머슨의 영향이라고 지적하며, 말콤 카울리(Malcolm Cowley), 차리(V. K. Chari), 제임스 밀러 2세(James E. Miller, Jr.) 등은 휘트먼 사상을 인도 철학과 비교하고 있다. 이는 휘트먼이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인도의 힌두교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에머슨적인 초절주의 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에도 휘트먼을 에머슨과 같은 초절주의와 연관지어 논한 평자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초절주의의 부분적인 영역에 국한하여 휘트먼을 언급한데 불과하다. 그 예로 페리 밀러(Perry Miller)는 「초절주의자들」(The Transcendentalists)에서 에머슨을 비롯한 초절주의 클럽 회원들만 언급하고 있으며, 그의 또 다른 저서 「미국초절주의자들: 그들의 산문과 시」에서 휘트먼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367-70).

그러나 1950년 이후 알렌(G. W. Allen)에 의해 초절주의자로서 휘트먼의 시작품들이 에머슨과 연관되어 재조명되었으며, 조셉 비치(Joseph W. Beach)도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에서 칼라일, 에머슨, 그리고 휘트먼의 초절주의적 특성을 매우 체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300-94). 비치는 특히 자연 시인들과의 관계에서 휘트먼의 위치를 독특하게 평가했다. 그는 휘트먼이 지닌 초절주의의 미덕으로 인해 코울리지와 에머슨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으며,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휘트먼은 초절주의의 정점에 있다고 보았다(393-4).

초절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과 자연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인식하고 인간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우주적 지식을 직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일종의 관념론이다. 이는 신, 인간, 자연을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는 관점을 유지한다. 여기에서 존재를 통합하는 구심력은 우주적 영혼이다. 에머슨은 이를 대령(Over-Soul)이라 불렀다. 에머슨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가장 작은 요소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모든 자연 법칙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경배하였으며, 인생의 교훈으로 삼았다(Callow and Reilly 91).

하지만 휘트먼과 기존 초절주의자 에머슨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휘트먼의 경우 시적으로 확산된 자아의 어떠한 요소도 다른 경험 앞에서 격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경우 개인의 영혼과 자연물의 정체성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대령인 바다에 흡수되어 버리지만, 휘트먼에 있어서 개인의 영혼과 자연의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Westbrook 59). 에머슨의 인간에 대한 궁극적 인식은 대령의 명령에 대한 개인의 완전한 복종으로부터 나온다(Howard 83)는 데서 출발하지만, 휘트먼의 개인적 개성은 우주적 관계의 인식과 조화에서 출발한다. 휘트먼 시에서의 시적 화자인 나는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우주적인 것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19세기 뉴잉글랜드에 만연했던 초절주의 개념을 파악하고, 초절주의자들의 대표이며 초절주의에 대한 개념을 설정했던 에머슨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초절주의가 휘트먼 특유의 시와 산문과 비교하여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는 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휘트먼 시에 나타난 특징은 일인칭 화자, 목록, 반복 그리고 열거와 같은 시적 모티브를 사용하여 그의 초절주의 시를 대변하고 있다. 결론에서는 에머슨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휘트먼 시의 초절주의적 특성이 곧 그의 시의 요체임을 밝히고, 동시에 에머슨과 휘트먼의 초절주의는 그들의 유사성 만큼이나 또한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II

휘트먼의 사상은 뉴잉글랜드 초절주의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에머슨을 비롯한 미국 뉴잉글랜드 초절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비록 스미스(F. M. Smith)는 휘트먼이 초절주의자 에머슨보다는 칼라일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하지만, 휘트먼은 일차적으로 초절주의적 사상을 에머슨으로부터 도입했다. 알렌 슈카드(Alan Shucard)는 에머슨이 휘트먼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밝히고 있다(160-71). 또한 로젠펠드(Rosenfeld)는 에머슨과 휘트먼의 밀접한 관계를 문학적인 동일 선상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1-6).

초절주의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에 걸쳐 뉴잉글랜드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18세기 유럽의 합리주의, 과학적 실증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종교적으로 뉴잉글랜드의 칼빈주의적 청교도 주의와 같은 보수적 종교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신대륙의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직관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이 편찬한 「다이얼」(The Dial)과 「브룩 팜」(Brook Farm)등을 통해 당시의 진보적인 사상을 발표했다.

에머슨은 새로운 자연관과 인간관을 바탕으로 하여 새 사상의 탄생을 기대했고, 그 결과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사상을 설정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에머슨의 이 사상을 초절주의라 부르고 있다. 초절주의는 본래 미국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에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학습되었을 뿐이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 사상이 시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일반 사회 생활 가운데서도 태동하고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새로워져야 한다는 당시 분위기에 따라 사람들은 이 사상을 실생활에 직접 적용하였다(Buell 1-20).

이런 맥락에서 휘트먼은 바로 에머슨이 갈망하던 이상 국가의 건설과 함께 당시의 산업주의, 물질주의의 팽창, 정치적 모순성을 개혁하여 자연과 합일된 초절주의적 사상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대변한 시인이었다. 에머슨은 이런 휘트먼의 위대성과 재능에 대해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휘트먼은 이 찬사의 편지에 대한 답을 일년 뒤인 1856년 자신의 「풀잎」(Leaves of Grass) 제2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휘트먼은 에머슨을 친구로, 그리고 스승으로 호칭한다. 휘트먼의 「풀잎」 출판에 대한 에머슨의 격려의 편지는 먼 훗날 미국의 대시인으로서 휘트먼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Callow and Reilly 161).

에머슨은 또한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을 휘트먼에게 인식시켜준 스승이었다. 그는 하바드대학 재학시절부터 자신의 기독교 사상의 토대 위에 인도, 중국의 고전과 힌두교 경전에 몰두하였다. 에머슨은 휘트먼의 「풀잎」이 출판되자 먼저 그의 시집 내에 동양적 요소를 발견하고 「바가바드 기타」와 「뉴욕 헤럴드」와의 훌륭한 혼합(Asselineau 89)이라고 논평했다. 또한 소로(Thoreau)역시 「풀잎」을 “놀라우리 만큼 동양적”(Allen, New Handbook, 260)이라면서 실제로 휘트먼이 그것들을 읽었는지 묻고 있다. 휘트먼 자신은 「여정에 대한 회상」(A Backward Glance O\'er Traveled Roads 1888)에서 힌두 시가는 자기 시집의 맹아적 요소가 되었으며, 실제로 참선 및 요가 같은 명상을 통해 우주의 신비와 자아를 체득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1) 휘트먼은 에머슨이나 소로와 동일하게 브라만식 우주 발생론과 조화와 통일의 세계관을 체득했으며 자신의 진술처럼 더 고차원적이고 원대한 “세계주의적이고 우주적인” 초절주의적 사상을 설정했다(Gohdes 3-7).

휘트먼이 수용했던 초절주의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에머슨에 의해 종교적 성격을 띠고서 창시되어 휘트먼에게 전수되었다. 휘트먼은 스승 에머슨의 이론을 단순히 전수 받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관을 확립하여 미국 문예부흥기(1830-65)에 적합한 미국 초절주의 문학을 확립하였다. 모든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의식을 앞세운 교회의 중재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개개인에 의해 직접 이루어져야 할 개인적인 문제이다. 초절주의자들은 인간 존재는 그들 자신의 내면에 신성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당시 뉴잉글랜드의 칼빈주의적 청교도주의 교리에 반대했다. 그래서 초절주의자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신성함을 주장한다. 에머슨은 독일의 이상주의적 관념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 낭만주의를 다시 받아들여 초절주의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기존의 청교도의 전통을 뛰어넘어 신(神)의 영역과 함께 개인의 무한성을 중시했다.

하야트 와그너(Hyatt H. Waggoner)가 보여준 것처럼 휘트먼은 이런 에머슨의 관념과 이미지와 언어를 이용하고 변형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로, 알콧, 파킨슨과 같은 당시의 또 다른 초절주의자들의 영향도 깊이 있게 수용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드(Reed)가 지적하듯이 이들은 “목록” (Catalogue)형식과 “일인칭 화자”(first person persona)형식과 같은 것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148). 초절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인칭 화자를 빈번히 사용한다는 점이다.

알렌은 휘트먼의 신비주의를 러셀(Russell)의 신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으며, 휘트먼이 직관적 신비적 투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의 영속성, 인성의 신성함을 감지하였다고 보았다. 이런 휘트먼의 통일적 세계관의 신비주의는 미국 초절주의의 본질이 된다고 한다(Handbook 245). 이 역시 에머슨의 사상에서 그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와그너도 이런 맥락에서 휘트먼을 “에머슨주의 시인”(Emersonian Poet)으로 보고 있다(150-61). 휘트먼의 초절주의는 에머슨에게서 그 맥락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소로를 동요시켰듯이 휘트먼을 동요 시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를 소위 “에머슨주의 시인”이라고 학자들은 인정한다. 이러한 초절주의적 신비주의를 이어받은 휘트먼은 우주적 인식과 자유로운 직관으로 삼라 만상의 본질을 직관하고 터득하게 된다.

로버트 스필러(Robert Spiller)도 휘트먼을 에머슨, 소로, 호손(N. Hawthorne), 그리고 멜빌(H. Melville)과 같은 19세기 미국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작가로 취급하면서 이들은 전시대의 문학 사상에서 벗어나 미국 문학사에 새로운 미국적 문학의 형식과 이론을 완성했다고 간주한다. 이들은 소위 순수 형식아래 개성주의, 도덕, 발전의 이념을 토대로 미국 문학 전체의 지성화와 도덕화, 그리고 민족 및 국가의 통합을 이루어 냄으로써 미국 문학사의 초석을 이룩했다(48-9)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경향들에 대해 로젠펠드는 그의 학위 논문의 서문에서 에머슨과 휘트먼의 관계 전체를 전기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인 이해를 동반한 하나의 재조명을 제시한다(1-6). 로젠펠드의 연구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에머슨과 휘트먼에 관련된 모든 역사적 특징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자료 문서들을 이용하여 증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풀잎」 시작품에 대한 에머슨의 작품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다. 로젠펠드는 실제로 에머슨의 작품들과 휘트먼의 시작품 사이의 많은 병치 구조를 지적하였고, 많은 구어적 표현들은 자연과 그 자연의 영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5).

 

III

우선 초절주의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써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목록 형식을 통하여 휘트먼과 에머슨의 유사성을 이해 할 수 있다. 목록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특별한 방법을 설명하는 것으로 초절주의 이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Buell 331), 에머슨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그의 “보상”(Compensation)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연은 한 방울의 이슬 속에서도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미경을 통해서도, 작기 때문에 불완전한 미생물이란 찾아볼 수 없다. 눈, 귀, 미각, 후각, 운동력, 저항력, 식욕 그리고 영원을 포착하는 생식기관-이런 모든 것이 미생물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행하는 하나 하나의 행위 속에 자신의 생명을 경주한다. 신의 편재(遍在)를 외치는 참된 교의는, 신이 한 조각의 이끼에도, 한 가닥의 그물에도 그 완전한 전모를 그대로 반복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주의 진가는 모든 점에 가치 그 자체를 애써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가령 선이 있다면 그 곳엔 반드시 악이 존재해 있으며, 친화에는 배척이 따르고 있으며, 힘이 있는 곳에는 제한도 있다.


The world globes itself in a drop of dew. The microscope cannot find the animalcule which is less perfect for being little. Eyes, ears, testes, smell, motion, resistance, appetite, and organs of reproduction that take hold on eternity, - all find room to consist in the small creature, So do we put our life into every act. The true doctrine of omnipresence is that God reappears with all his parts in every moss and cobweb. The value of the universe contrives to throw itself into every point. If the good is there, so is the evil; if the affinity, so the repulsion; if the force, so the limitation.1)


문체적으로 이 구조는 그 길이에서도 휘트먼의 목록과 다르고 그들의 지적 호소력도 현저하게 다르다. 하지만 휘트먼 목록의 문체와 같이 에머슨의 문장도 독립적이고 상호교환 가능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특별한 자연은 영적 상징이기 때문에 유추에 의해 서로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상력의 본질은 흐르는 것이지 얼어붙은 것이 아니다(Buell 332). 이런 산문을 통한 목록 형식에 대해 휘트먼이 운문에서 쓰고 있는 목록 형식을 그의 서정시 “켈러머스”(Calamus)의 “뿌리와 잎새들 그들만이”(Roots and Leaves Themselves Alone)라는 시를 통해서 목록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뿌리와 잎들 그들만이 있다,

야생의 숲과 연못가에서 남자와 여자들에게로 향기가 전해온다.

속속이 풀과 패랭이 꽃, 덩굴 풀보다 단단히 휘감긴 손가락,

태양이 떠오르자, 무성한 나뭇잎에 숨어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지저귐들, 육지의 미풍과 사랑을, 살아있는 해변으로부터 살아있는 바다 위의 그대들에게 보낸다.

오 선원들이여!


Roots and leaves themselves alone are these,

Scents brought to me[n] and women from the wild woods and pond-side,

Breast-sorrel and pinks of love, fingers that wind around tight than vines,

Gushes from the throats of birds hid in the foliage of trees as the sun is risen,

Breezes of land and love sent from living shores to you on the living sea, to you

   O sailors. (LG 124)

위의 시는 “켈러머스” 가운데 13 번째에 속하는 시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휘트먼의 목록 형식은 그의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휘트먼은 성경에서부터 블레이크까지의 예언적 시의 긴 선행전통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이 형식을 수용하였다. 휘트먼의 목록은 미학적 고안과 초절주의적 개념의 표현으로써, 그리고 에머슨의 경우는 그의 에세이를 통해 이론적 측면에서 주로 고려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휘트먼이 사용한 목록의 주된 목적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끝없는 생산성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부엘(Buell)은 휘트먼의 목록이 우주의 끝없는 연속성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328).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제 1연은 에머슨의 “역사”(History)의 모방이다. “역사”에서 “참된 시는 시인의 마음이다” (Emerson Vol. II 22)라는 말은 19세기 초절주의자들의 작품에서라기보다는 월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시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진술이지만, 에머슨의 확신에 찬 초절주의를 휘트먼이 수용하고 있는 예이다(Rosenfeld 174). 휘트먼은 이를 이어받아 한 인간의 역사가 모든 인간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과 완전한 인간은 한 인간 속에 있다는 신념 아래 자기 방식의 시를 탄생시키게 된다. “나 자신의 노래”는 이런 휘트먼의 생각을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로젠펠드는 에머슨의 “미국의 학자”(American Scholar)에서 “개인에게 새로운 중요성이 주어졌다”라는 말을 19세기 중엽 대부분의 미국 시인들이 수긍했다고 하지만 휘트먼만큼 그것을 진지하게 수용한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한다(176). 휘트먼은 새로운 종류의 시를 쓰고 있었다. 즉 휘트먼의 자아는 대표자가 되며 우주적이다. “나 자신의 노래” 제 1연은 휘트먼의 이러한 사고를 잘 대변하고 있다.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는 나를 노래한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그대도 믿게 되리라.

나에게 속하는 모든 원자는 또한 그대에게 속한 것이니.

나는 한가로이 지내며 내 영혼을 초대한다.

나는 몸을 기댄 채 한가롭게 여름풀의 새싹을 바라본다.

이 땅과 대기로부터 형성된 나의 혀와 내 핏속의 모든 원자,

나는 이 곳에서 내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그들은 부모로부터, 또 그 부모로부터,

나, 이제 서른 일곱 살의 건강한 몸으로

죽을 때까지 중단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시작한다.

교의와 학파는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한 채 잠시 돌아와,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고,

나는 선과 악을 모두 용납하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말하리.

원칙적인 에너지를 가진 거리낌 없는 자연을.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ings to you.

I loafe and invite my soul,

I lea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My tongue, every atom of my blood, form\'d from this soil, this air,

Born here of parents born here from parents the same, and their parents the same,

I, now thirty - seven years old in perfect health begin,

Hoping to cease not till death.

Creeds and schools in abeyance,

Retiring back a while sufficed at what they are, but never forgotten,

I harbor for good or bad, I permit to speak at every hazard,

Nature without check with original energy. (LG 28-29)


대표자아로서 시적 화자는 “내가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나 자신의 노래” 제 5연에서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무한한 잠재성을 언급하고 있다. 단 에머슨과 같은 초절주의자들이 대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애를 추구했다면, 휘트먼은 보다 인간주의적 관점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형제애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그대를 믿는다. 내 영혼이여, 타자인 나 자신 그대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대 또한 타자에게 스스로 낮추지 말아라.

나와 함께 풀밭 위에 머물러라. 그대 목구멍으로부터 억제를 풀어 버려라.

지상의 모든 논쟁을 능가하는 평화와 지식이 빠르게 일어나

  내 주위에 널리 퍼진다.

그리고 나는 신의 손이 내 자신의 약속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신의 성령이 내 자신의 형제임을 안다.

그리고 여태껏 태어난 모든 남자들 역시 내 형제요,

여자들은 내 자매이며, 연인임을 안다.

그리고 창조의 틀은 사랑임을 안다.

그리고 들판의 꼿꼿하거나 고개 숙인 풀들의 무한함을,

그리고 그 아래의 작은 웅덩이의 갈색 개미들을,

그리고 벌레의 울타리인 이끼 낀 딱지들, 쌓인 돌더미, 양딱총 나무, 현삼과의 식물 그리고 아메리카 자리공.


I believe in you my soul, the other I am must not abase itself to you,

And you must not be abased to the other.

Loafe with me on the grass, loose the stop from your throat,

Swiftly arose and spread around me the peace and knowledge that pass all the argument of the earth,

And I know that the hand of God is the promise of my own,

And I know that the spirit of God is the brother of my own,

And that all the men ever born are also my brothers, and the

   women my sisters and lovers,

And that a kelson of the creation is love,

And limitless are leaves stiff or drooping in the fields,

And brown ants in the little wells beneath them,

And mossy scabs of the worm fence, heap\'d stones, elder,

   mullein and  poke-weed. (LG 32-33)


뉴잉글랜드의 초절주의 운동에 의해 지배되었던 사조로 볼 때, 위의 시는 초절주의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현상학적 자연과의 조우로 말미암은 황홀한 의식, 무한한 자기 확신, 인간의 보편적 위엄에 대한 인식 등은 초절주의의 복음주의적 특성이다. “나는 안다”(I know)라는 말은 “또 다른 나”(another I am), 즉 각성하지 못한 자들과의 결합을 촉구한다. 휘트먼의 친구이자 열렬한 추종자인 리차드 벜(Richard M. Bucke)은 이 발췌된 시를 「풀잎」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벜은 이 시에서 휘트먼은 단테, 발작, 과터마(Gautama), 예수, 폴(Paul), 그리고 모아메드(Mohammed)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특징 지우는 “우주 의식”을 습득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비록 전체 문제에 대한 벜의 의(疑) 과학적 토론이 본질적으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의 해석은 초절주의자 에머슨에 의해 표현된 경험에 대한 묘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Howard 82). 즉, 휘트먼의 무한성과 개별 영혼과의 교감에 대한 견해는 많은 평론가들이 제시한 해석과 동일한 맥락을 유지한다. 휘트먼은 자신의 시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A Noiseless Patient Spider)에서 구체적으로 에머슨의 영향을 보여준다. 로마의 公道가 모든 길로 연결되어 제국의 핵심이 되듯이, 거미도 삭막한 주변을 어떻게 정복해 가는지를 나타내 준다. 휘트먼은 거미라는 퍼소나를 내세워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데 이는 초절주의의 특징이다. 이 시는 길의 확산 이미지를 영혼의 확산 이미지로 대체하여 거미가 보여주는 영혼의 탐색과정을 묘사한다.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

조그만 돌출 구에 매달려 있는 거미를 나는 보았다.

그가 어떻게 삭막한 주변을 정복해 가는가를,

거미는 자기 몸에서 가는 실, 가는 실, 가는 실을 계속 뽑아내고

쉴새없이 뽑아내며 지칠 줄 모르고 속도를 더 해 가는 것을.

그리고 너, 오 나의 영혼이여 네가 서 있는 곳은

한량없는 공간의 대양에 둘러싸여 격리되어 있는 곳,

쉬지 않고 생각하며, 나아가며, 실을 던지며,

연결할 구체(球體)를 너는 찾고 있다. 다리가 놓이고 부드러운 닻이 내려질 때까지,

내던진 너의 가느다란 실이, 어디엔 가 걸릴 때까지, 오 나의 영혼이여.


A noiseless patient spider,

I mark\'d where on a little promontory it stood isolated,

Mark\'d how to explore the vacant vast surrounding,

It launch\'d forth filament, filament, filament, out of itself,

Ever unreeling them, ever tirelessly speeding them,

And you O my soul where you stand,

Surrounded, detached, in measureless oceans of space,

Ceaselessly musing, venturing, throwing, seeking the spheres to connect them,

Till the bridge you will need be form\'d, till the ductile anchor hold,

Till the gossamer thread you fling catch somewhere, O my soul. (LG 450)


위의 시를 설명하면서 로젠펠드는 휘트먼이 에머슨의 “역사”에서 자신의 시 “인내심 있는 조용한 거미 한 마리”를 구상하였으며,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거미에 대한 인용을 고려했음을 언급하고 있다(175). 로젠펠드의 말대로 휘트먼은 에머슨의 에세이 모음에서 “역사”를 읽었으며 이를 그의 시에 응용했다고 본다. 휘트먼은 은유를 사용하여 로마제국의 오만이나 거만을 자신의 시에서 거미의 오만함으로 변용 시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을 중앙에 위치시킨다거나 “모든 길은 로마로 이어진다”라는 잘 만들어진 격언을 반복하고 있다(175). 다음에 오는 에머슨의 문구들은 위의 설명을 구체화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 있어서는 중앙 공회(公會) 광장에서 시발되는 공도(公道)가 동서남북으로 뻗어 제국의 모든 영토의 중심부까지 관통했으며, 그것은 곧 페르시아. 스페인 및 영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각 시장 도시로 수도의 군대가 상시로 통과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대상물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고속 도로가 틔어있어서 만물을 인간의 지배하에 둘 수 있다. 인간이란 결국 무수한 관계의 한 다발이며 많은 뿌리의 매듭으로서 그의 꽃과 열매는 바로 이 세계이다.


In old Rome the public roads beginning at the Forum proceeded north, south, east, west, to the centre of every province of the empire, making each market-town of Persia, Spain and Britain pervious to the soldiers of the capital: so out of the human heart go as it were highways to the heart of every object in nature, to reduce it under the dominion of man. A man is a bundle of relations, a knot of roots, whose flower and fruit age is the world. (Emerson, Vol. II 38-9)


휘트먼과 에머슨의 두 인용작품을 통해서 보았듯이 휘트먼의 시는 에머슨의 에세이들을 참고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간 영혼의 세계를 초절주의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에머슨과 휘트먼의 이러한 관계는 사제간의 모습을 잘 나타내준 서한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에머슨은 “자연의 질서”(The Method of Nature)에서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환유적 어법으로 초절주의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은 하나의 특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존재하도록 인지 될 수 있다. . . .

따라서 보편적인 특성은 모든 잎이

  이 세상의 대표자가 되게 한다.


Nature can only be conceived as existing to a

   universal and not to a particular end . . . .

Hence the catholic character which makes every

   leaf an exponent of the world(Emerson, Vol. I 192).


휘트먼도 “나 자신의 노래” 도처에서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다. 헤리스(M. Harris)도 휘트먼이 “나 자신의 노래”에서 전체로 상징되는 대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과 같은 소우주를 수용하고 있음을 밝힌다(87). 이런 방식의 인식은 합리적 추상성이 아닌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나 자신의 노래” 제 31연은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하나의 풀잎이라 해도 별들의 운행 못지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개미도 똑같이 완벽하고, 한 알갱이의 모래나, 굴뚝새의 알도 그러하다.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땅 위로 뻗어 가는 딸기 덩굴은 천국의 응접실에도 가히 어울린다.

그리고 내 손의 가장 작은 관절이라도 모든 기계보다 우월하다.

그리고 고개를 수그린 채 풀을 뜯는 암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훌륭하다.

그리고 한 마리의 쥐는 몇 억조의 불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기적이다


I believe a leaf of grass is no less than the journey-work of the stars,

And the pismire is equally perfect, and a grain of sand, and the egg of the wren,

And the tree-toad is a chef-d\'oeuvre for the highest,

And the running blackberry would adorn the parlors of heaven,

And the narrowest hinge in my hand puts to scorn all machinery,

And the cow crunching with depress\'d head surpasses any statue,

And a mouse is miracle enough to stagger sextillions of infidels. (LG 59)


위의 인용된 시 구절을 통해 휘트먼은 작은 하나의 사물이 우주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즉, 휘트먼은 블레이크와 마찬가지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고, 개미 한 마리에서 완벽한 우주적 법칙을 발견한다. 이와 같은 휘트먼의 견해를 칼로우(Callow)는 신, 인간, 자연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보는 그의 초절주의의 관점이라고 해석한다(91).

에머슨은 「시인」(The Poet)에서 모든 자연물은 상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사물도 커다란 상징적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에머슨의 태도는 휘트먼이 사물을 인식하는 토대가 되었다. 휘트먼은 이를 제 30연에서 “모든 사물들은 제 각기 모든 진실을 품고 있다, 하잘것없는 것도 나에겐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하다”(LG 58)라고 표현하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지나친 신성의 추구에 반론을 제기한다. 곧 자아는 신의 신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왜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을 나타낸다. 휘트먼은 인간의 신성을 그의 시 여러 군데에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인간의 신성은 “나 자신의 노래” 제 24연의 “나는 겉이나 속이나 신성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지는 것, 또는 내게 닿는 것, 모두를 신성하게 한다, 양 겨드랑이의 냄새는 기도하는 자보다도 훌륭한 향기이다, 내 머리는 교회나 성경이나 그 어떤 교리보다도 훌륭하다”(LG 53)에서 절정을 이룬다.

에머슨의 신성에 비하여 휘트먼의 육화된 신으로서의 자아 개념은 다음에 오는 에머슨의 “역사”(History)와는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만물을 창조한 영(靈) 앞에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이 있는 곳에 만물이 존재하고

또한 영은 모든 곳에 온다.


There is no great and no small

To the Soul that maketh all:

And where it cometh, all things are

And it cometh everywhere. (Emerson, Vol. II. 7-8)


이 시는 에머슨의 중심 사상으로 에머슨적인 초절주의를 취급하고 있다. 정확한 각운의 정형시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이 시에서 에머슨은 인간의 자아보다는 신의 신성을 한 단계 상위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자아를 믿는다는 휘트먼의 시종일관된 지론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워드(Howard)도 휘트먼의 초절주의가 에머슨의 초절주의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84). 휘트먼과 에머슨의 문학적인 성향은 많은 점에서 일치하면서도 인간의 신성을 강조하는 휘트먼의 문학관과는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론을 수용하여 이를 자신의 시작품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초절주의적인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55년경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상적인 시인관의 개념에 몰입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인생살이의 특색은 무운시와 같았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삶을 무운시로 잘 나타낼 수 있는 올바른 대표 시인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인들은 초절적이며 새로운 것, 간접적이며, 묘사적이며, 서사적인 방법으로 노래한 것이다(Shucard 161).

시인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휘트먼도 모든 것으로 모든 것을 용해시킨다. 대표자로서 휘트먼은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예언자가 될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마침내 그들이 보게 될 때, 어떠한 사제(司祭)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슈카드는 결과적으로 에머슨의 사상은 휘트먼의 시론에 영향을 주어 휘트먼의 의도와 정신으로 재생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164). 그러나 휘트먼의 시적 태도는 에머슨의 시적 태도와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1855년 초판 “나 자신의 노래” 제 20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내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 왜 공손해야 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가? 나는 내가 강하고 건전하다는 것을 안다. 우주의 집중하는 물체들은 영원히 내게로 흐른다. 모든 것은 나에 대해 쓰여지고, 나는 그들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LG 47).

이것으로 볼 때, 휘트먼은 스승 에머슨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시에 맞추어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휘트먼은 에머슨의 지나친 신성의 추구에 반론을 제기한다. 곧 자아는 신의 신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왜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라고 의문을 나타낸다. 휘트먼은 인간의 신성을 그의 시 여러 군데에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인간의 신성은 “나 자신의 노래” 제 24연의 “나는 겉이나 속이나 신성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만지는 것, 또는 내게 닿는 것, 모두를 신성하게 한다, 양 겨드랑이의 냄새는 기도하는 자보다도 훌륭한 향기이다, 내 머리는 교회나 성경이나 그 어떤 교리보다도 훌륭하다”(LG 53)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확한 각운의 정형시 스타일을 취하고 있는 에머슨은 인간의 자아보다는 신의 신성을 한 단계 상위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자아를 믿는다는 휘트먼의 시종일관된 지론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워드도 휘트먼의 초절주의가 에머슨의 초절주의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휘트먼과 에머슨의 문학적인 성향은 많은 점에서 일치하면서도 인간의 신성을 강조하는 휘트먼의 문학관과는 차별성을 나타내고 있다. 휘트먼은 에머슨의 이론을 수용하여 이를 자신의 시작품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초절주의적인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머슨과 같은 기존 초절주의자들과 휘트먼의 차이점은, 에머슨의 경우 개인의 영혼과 자연물의 정체성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대령(大靈)인 바다에 흡수되어 버리지만, 휘트먼에 있어서 개인의 영혼과 자연의 정체성은 다른 경험 앞에서 격하됨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또한 휘트먼의 확신과 에머슨의 신념간에도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에머슨은 개인의 영혼은 신이라는 대령의 영역 속에 완전히 귀속할 때 인간의 궁극적 인식이 실현됨을 믿었지만, 휘트먼은 육화된 인간의 영과 신의 대령을 동등하게 보면서 개개의 개성과 우주적 관계의 동시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한다.

초절주의적 관점을 나타내기 위하여 휘트먼은 동양과 서양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기존의 정형시 스타일을 과감하게 탈피하여 새로운 미국적 스타일의 자유시를 창조하게 된다. 이는 현대시의 사실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인간의 신성을 인정하고 신의 관점에서가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로 우주와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에머슨을 비롯한 당시 19세기 미국의 보편적인 초절주의자들의 성향에서도 어느 정도는 나타나지만 휘트먼처럼 영과 육의 합일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휘트먼의 시에서 정신과 육체는 온전히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의 초절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며 중요시하고 있다. <계명대>


<Abstract>

Transcendentalism in Nineteenth-Century American Poetry

Cho, Kyu-Taek

 This study compares transcendentalist Emerson\'s works with Whitman\'s works. Although several critics refer to transcendentalism in Emerson\'s works and Whitman\'s poetry, there are few in-depth studies on this subje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Emerson\'s works and Whitman\'s works in terms of transcendental vision and to demonstrate that their works do not reveal a romantic or mystical vision but rather suggest a clear transcendental vision.

 Based on doctrines of European philosophers such as Kant, Carlyle and Goethe, and of Oriental thought, Emerson and Whitman also start from an intuitive and personal revelation within the nature of human beings that transcends human experience.

 There are, however, striking differences between Whitman\'s conviction and that of Emerson. Emerson believes that the ultimate realization of man comes from the complete obedience of the individual to the dictates of the Over-Soul. On the other hand, Whitman affirms the simultaneous and harmonious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 personality and the cosmic relationship.

 Whitman\'s poetry treats the essential divinity of self by means of the integrity of human beings and the union of Man and God unlike Emerson who emphasizes the fact that human divinity is subordinate to that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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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lt Whitman, “Preface” Leaves of Grass ed. Sculley Bradley and Harold W. Blodgett. A Norton Critical Edition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Inc., 1973) 575. 이하 인용은 모두 LG 라고 약칭하고 면수를 쓴다.


 1) R. W. Emerson. The Works of Ralph Waldo Emerson. Vol. Ⅱ (Boston and New York : Thicknor & Fields 1883), 99. 이하 인용은 모두 Emerson Vol. Ⅱ로 약칭하고 면수를 쓴다.

 

<촐처: 벨라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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