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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 / 작품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09.30|조회수884 목록 댓글 0

 

예이츠
예이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 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

 

1865년 6월 13일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출생.

아일랜드의 시인, 극작가로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예술가인 잭 버틀러 예이츠의 형이며 존 버틀러 예이츠의 아들이다.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영국계 아일랜드인의 후손으로 태아났다. 아버지는 화가였고, 어머니는 아일랜드 서쪽 슬리고(Sligo) 부근 Follexfens 출신으로 예이츠는 유년시절의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예이츠의 아버지는 종교적 회의론자로 예술을 종교로 삼았는데, 아들인 예이츠의 경우 기질상 종교적이었으나 기독교의 전통성을 믿지는 못하여서 그의 전 생애동안 자신에게 결여된 종교성을 대신할 것을 찾았다. 이런 탐구는 그를 다양한 종류의 신비사상, 민담, 심령술, 신新플라톤 사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1890년 런던에서 그 시대의 중요시인들을 만나 시인 클럽을 결성하였고, 후기 낭만주의 시를 습득하고 라파엘 전파前의 영향을 받으며 낭만적 주제와 몽환적인 심상을 즐겨 묘사하였다. 고대 아일랜드의 영웅 전설과 아일랜드의 전원 등과 같은 민족의 전통적 의 묘사는 그의 초기 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1891년에는 동지들과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하여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에 참가하였고,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해 1899 애비 극장(아일랜드 국민극장) 더블린에 창립하였다. 이 동안 환상적이고 시적인 《캐서린 백작부인》을 비롯하여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 아일랜드 극 발전을 위해 힘쓰는 한편, 그가 사모했던 민족주의자 모드 곤등을 통해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극장 경영, 정치 참여 등으로 그의 시인으로서의 생의 중기에는 실천적인 면이 강조되었고,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사상은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비주의의 성향 또한 계속되었고 1917년 결혼한 그의 아내 또한 그의 상징체계에 공감하고 기여하였다.

그의 복잡한 후기의 시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1921) 《탑() (1928)등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던 여성적이고 우미적인 스타일은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환상적이던 심상은 구체성을 지닌 심상으로 변화하였다.

<고대 현대영국시 / 지은>

 

 



예이츠의 생애와 문학  

대립되는 전통의 계승

 

예이츠의 아버지 존 버틀러 예이츠는 변호사였지만 나중에 초상화 화가가 되었다. 처녀시절 이름이 수잔 폴렉스펜인 어머니는 아일랜드 슬라이고의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다. 사람들은 예이츠가 아일랜드의 압도적인 로마 가톨릭교도 사이에서 강력한 소수를 대표하는 영국계 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이어받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런던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아일랜드의 영상으로 가득 차 있어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낄 정도였지만 아일랜드에서도 2가지 역사적 전통에서 분리된 채 있었다. 왜냐하면 가톨릭교도들과는 신앙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프로테스탄트들은 '출세만 생각하고 있는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조너선 스위프트, 에드먼드 버크, 올리버 골드 스미스, 조지 버클리 같은 유명한 영국 문인들의 문학과 사상에 나타나 있는 18세기의 찬란한 프로테스탄트 앵글로아일랜드 전통을 존중했다. 그러나 이 전통은 이제 쇠퇴해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부상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시대는 가톨릭 전통에 유리하며 영어보다 게일어로 표현되는 시대였다. 예이츠는 자신의 엄격한 예술적 취향과 조화시킬 수 있는 이 운동을 지지했지만 아일랜드가 영국 정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것을 주창하는 애국단체에서의 그의 행동은 자주 애매한 것이었다. 예이츠는 그 두 아일랜드 사회 중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기 전에, 자기 자신의 입장을 주목할 만큼 애매한 자신의 고국의 입장과 관련지어 명백하게 밝혀야 했다. 이러한 시도는 그의 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최고의 희망은 가톨릭 전통이나 프로테스탄트 전통보다 더욱 깊은 전통을 계발하는 것이었는데 그 전통은 그리스도교보다는 더 이교도적인 성격을 띠며 아직까지 남아 있는 관습·신앙·성지 같은 인류학적 증거 속에서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숨겨진 아일랜드의 전통이다. 1886년부터 발표된 예이츠의 많은 수필과 평론들은 시기가 적당했으므로 진정한 아일랜드를 알려야겠다는 시도였다.

1867년 예이츠가 불과 2세였을 때 가족은 런던으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아버지는 더블린에서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기를 희망했다. 1880년 가족은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고 거기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휴일에는 슬라이고에 있는 외삼촌 조지 폴렉스펜과 함께 지냈는데 이 슬라이고는 많은 시의 배경이 되었다. 1883년 더블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예술학교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받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 시인과 예술가들을 만난 것이었다.

탐미주의자·신비주의자·민족주의자로서의 예이츠

그동안 예이츠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발표한 것은 2편의 짧은 서정시로 1885년〈더블린 유니버시티 리뷰 Dublin University Review〉에 발표되었다. 같은 해에 예이츠는 비술(秘術)에 관심이 있는 단체, 즉 더블린 연금술협회의 결성을 도왔다. 1887년 가족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자 예이츠는 '신지학(神智學)협회'에 가입했다. 이 협회는 신비주의를 통해 지혜와 형제애를 추구하는 국제적인 운동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마술은 일상 세계에서 멀리 떠난 상상의 삶의 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를 사로잡았다. 반면 과학의 시대는 혐오스러웠으며 천문학보다 점성술에 훨씬 관심이 많았던 신비주의자로서 자신이 시적 영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언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런 모험은 플라톤 철학, 신플라톤 철학, 스베덴보리 신학, 연금술 등의 다른 신비주의 전통과 접촉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예이츠는 이미 자긍심이 강한 젊은이였고 이런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취향과 예술 감각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신적 오만함이 잘 드러나곤 했다.〈오이신의 방랑기 외(外) The Wanderings of Oisin, and Other Poems〉(1889)에 수록된 초기 시는 탐미주의 작품으로, 아름답지만 난해하며 사소한 문제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한 영혼의 외침이었다. 1889년 예이츠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미모의 아일랜드 여인 모드 곤을 만났다. 그는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되었다"라고 기술했다. 예이츠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 사랑은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모드 곤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열정을 아일랜드에 아낌없이 바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목소리와 몸으로 몸소 구사하는 반항자이며 웅변가였다. 예이츠가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을 때 부분적으로는 신념 때문이었으나 대부분은 모드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 시절 아일랜드에 대해 쓴 많은 글들은 모드를 향한 속삭임이었다. 1902년 더블린에서 희곡〈캐슬린 니 훌리안 Cathleen ni Houlihan〉이 초연되었는데, 모드가 캐서린 역을 맡았다.

1891년 논쟁의 여지가 많은 아일랜드의 지도자 찰스 스튜어트 파넬의 급속한 몰락과 죽음 이후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계가 희망을 잃었다고 느꼈다. 정치가 남긴 텅빈 공간을 문학·예술·시·희곡·전설이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에세이집〈켈트의 여명 The Celtic Twilight〉(1893)은 이런 목적을 향한 예이츠의 첫번째 노력이었지만 1896년 오거스타 그레고리 부인을 만날 때까지는 진전이 없었다. 그레고리 부인은 귀족으로서 극작가가 되었고 그의 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이미 서부 아일랜드 지방의 민간전승인 옛날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이 전승 지식이 고대 의식 및 자신의 감정과 그리스도교가 완전하게 파괴하지 못한 이교도 신앙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민간전승이 농촌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몰두하여 연구하면 사람들과의 명백한 관계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예이츠가 아일랜드의 민속을 엄격하고 고매한 문체로 표현하면 순수한 시를 창작할 수 있고 개인적인 용어로 그 자신의 정체성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상을 정치에 적용하면 농부와 귀족을 연결시키는 것인데, 즉 경험은 농부의 것, 문체는 귀족적인 것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연결은 도시와 부의 산물인 미움받는 중산층을 비난하게 된 것이고 이것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도덕적 효과는 가져올 것이다. 1897년부터 예이츠는 카운티 골웨이의 쿨파크에 있는 그레고리 부인 집에서 여름을 보냈고 쿨파크를 사라져가는 우아함의 세계와 결부시켰다. 그 공원이 농부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그 시각을 완벽하게 해주었다.

1899년 예이츠는 모드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4년 후 그녀는 아일랜드의 애국 동지이며 영국의 압제를 함께 증오하던 아일랜드 군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과 결혼했다. 그는 1916년에 일어난 부활절 봉기에 참여한 죄로 사형당한 항거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한편 예이츠는 시와 연극이 아일랜드 전 국민을 변모시킬 수 있으리라 믿고 문학과 희곡에 전념했다. 그런 활동은 더블린에 그 유명한 애비 극장을 설립하면서 절정에 다다랐고 이 극장은 1904년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아들과의 반목을 주제로 한〈베일 해변에서 On Baile's Strand〉는 첫 상연 계획에 들어 있었다. 그후 수년 간 예이츠는 애비 극장의 일반적인 운영에 몰두해 있었다.

그당시는 논쟁이 빈번한 시기였다. 그의 작품들은 비종교적이고 반가톨릭적이어서 반아일랜드적이라고 비난받았다. 배우·제작자·신문 등과 논쟁도 잦았다. 1907년 존 밀링턴 싱의〈서부의 난봉꾼 Playboy of the Western World〉의 초연 때는 극장 안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언제나 자긍심이 강하고 당당했던 예이츠는 논쟁시 만만찮은 투사였다. 그는 또한 과거의 상처를 빨리 잊지 못해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으며, 중산층, 상인 및 대부분의 더블린 사람들처럼 인습적인 성공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멸했다. 현대의 시민들, 가톨릭교도, 프로테스탄트 등은 모두 예이츠가 영웅적 가치관에 호소한다는 사실을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했다. 점차 중산층의 관심사에서 멀어져갔고, 애비 극장도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애비 극장에서 상연된 많은 연극들이 그의 눈에는 천박하고 통속적인 것으로 보였다. 예이츠는 대중의 변덕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연극으로 마음을 돌렸다. 1913년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비서로 일하며 서식스 주에 있는 스톤카티지에서 그와 몇 개월을 보냈다. 파운드는 그당시 일본의 고전극인 노[能]의 번역 원고를 교정하고 있었고 예이츠는 그 극으로 인해 큰 자극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극들은 대중보다 조신들을 기준으로 한 귀족문화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점차적으로 노극에 해당되는 대응물로 간주될 수 있는 극들을 고안해냈는데 그것은〈무희를 위한 4개 극 Four Plays for Dancers〉(1921)으로 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응접실에서도 상연될 수 있는 일련의 짧고 형식적인 극이었다. 예이츠는 이러한 연극들을 새로운 종류의 연극, 즉 말·가면·춤·음악, 모방이 아니라 상징적인 동작의 조화로 생각했다. 그 연극들은 상류 사람들, 즉 그런 형태의 장점을 즐기는 소수들에게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16년 초연된〈매의 우물에서 At the Hawk's Well〉는 그가 믿어왔던 많은 가치관을 구현한 작품이었다. 돈과 대중을 위한 부르주아 극장은 고대 그리스 연극이 일으킨 동정과 공포보다는 '신경질적인 흥분'의 장소일 뿐이었다. 이 시기에 예이츠가 관심을 가졌던 예술은 관객들을 잠시 동안이나마 '지금까지 너무나 미묘해서 우리가 들어가 볼 수 없었던 마음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도록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아일랜드 생활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존속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1913년 휴 레인 경이 수집한 39점의 프랑스 인상파의 그림 처리문제에 대해 벌어졌던 분쟁은 예이츠의 눈에는 사악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인은 그 그림들을 더블린 시립현대미술관이 한 화랑을 마련해 그것들을 전시한다는 조건 아래 기증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자 레인은 화가 나서 런던의 국립미술관에 빌려주었고, 1915년 그가 죽자 두 미술관이 이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1913년 예이츠는 이 논쟁에 개입했다. 왜냐하면 레인의 훌륭한 행동이자 귀족적 조치가 한 비천한 더블린인에 의해 능멸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이츠의〈책임 Responsibilities〉(1914)에 실린 많은 시들은 레인 논쟁에 의해 고취된 작품으로 매우 통렬한 작품들이다. 이것은 예이츠와 아일랜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1907년 그레고리 부인과 함께 피렌체·밀라노·우르비노·페라라·라벤나 등지를 여행했고 이탈리아 마을과 도시들이 나타내는 귀족적 우아함의 증거를 결코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다. 1913년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즉 예의와 정중함을 존중하던 완전히 사라져버린 왕국에 대한 갈망이 그의 작품 속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성숙한 시인이며 상원의원

1917년 예이츠는 모드 곤의 딸 이졸트 곤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몇 주 뒤 조지 하이드 리스에게 청혼해 1917년 결혼했다. 1919년 딸 앤이 태어났고 1921년 아들 윌리엄이 태어났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설립되어 예이츠는 아일랜드 상원의 새 일원이 되어달라는 요청에 수락했고 6년간 봉사했다.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유명한 인물이 되어 현대의 가장 탁월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명예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상상력, 역사, 비술의 관계에 쏠려 있었다. 그는 그의 생각을 한 위대한 책, 즉 예술에 관해 신성시될 만한 책으로 재현하고 싶었다. 그결과 1925년〈비전 A Vision〉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예이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몇 년 간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1937년 결정판을 냈다. 한편 그의 시는 날이 갈수록 기량을 더해가고 있었다.〈탑 The Tower〉(1928)은 그가 고트에서 구입한 무너진 노르만 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제목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도도한 것 중의 하나이며 매우 노련한 예술가의 작품이다. 그 작품 속에는 일생의 경험이 완벽한 형태로 구사되어 있다. 그렇지만 예이츠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그뒤에 씌어진〈나선층계 The Winding Stair〉(1929)로 나왔다.

예이츠는 60대 후반에 이르러서도 계속 작품을 썼다. 그의 감정은 예전처럼 강렬했지만, 이 시기의 시는 대부분 상상력의 병적인 흥분 때문에 손상되었고 현실과 정의 사이의 균형도 불안정했다. 세계는 산산 조각나는 것 같았고, 예이츠는 그것을 혐오했지만 자주 세상의 몰락에 매혹되기도 했다. 귀족적 스타일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독재적인 이데올로기에 봉사해 말년에는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신이 존중해온 가치관이 파괴되고 있다고 느끼며 예이츠는 그 가치들이 위대한 인물, 즉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구출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예이츠는 활력과 독재주의적인 명쾌함 때문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숭배했다. 산문으로 된 소책자〈보일러에 관하여 On the Boiler〉(1939)에서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부패한 세상에 토로했다. 이것으로 인해 그는 정치 권력을 갈망하며 그 권력을 갖게 되면 폭력적으로 사용하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예이츠의 분노는 시인의 분노였고 삶에 대해 갖고 있던 시각은 시인의 시각이었다. 그는 단지 도덕의 힘, 즉 어떤 위대한 상징들이 만들어내는 힘을 원했다. 그는 아일랜드 상원의원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실질적인 것에 쏟았다. 즉 검열, 레인의 그림들, 건강 보험, 이혼, 아일랜드어, 교육, 저작권 보호, 아일랜드의 국제연합 가입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상원의 화폐위원회 의장이기도 했다.

예이츠의 말년은 긴장의 연속이었었다.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아일랜드의 습한 겨울을 피해 여행을 다녔으나 은퇴하지는 않았다. 1930년대의 폭력이 끝내 전쟁을 몰고올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한편으로는 그 전망에 두려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매혹되었다. 그는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군대의 행진소리가 사랑·예술·미·예의범절의 주제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 시절 예이츠의 삶의 감각은 계시적인 것이었다. 가끔 그는 두려워 그 계시로부터 도망치기도 했으나 또 어떤 때는 그 계시에 동조했다. 1936년 자신이 사랑했던 시이며 대부분 자기 친구들이 쓴 시모음집〈옥스퍼드 현대시 모음집 1892~1935, Oxford Book of Modern Verse 1892~1935〉가 발간되었다. 여전히 그의 마지막 연극 작품들을 쓰면서 예이츠는 그의 시 중 가장 귀에 거슬리는 시〈헌의 알 The Herne's Egg〉을 1938년 완성했다. 그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외국에서 죽었다. 아일랜드에 매장하기 위한 최종적인 준비는 성사될 수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로크브륀에 묻혔다. 그의 시신을 슬라이고에 매장하려는 의도는 1939년 가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좌절되었다. 1948년 그의 시신은 슬라이고로 결국 넘겨져서 드럼클리프에 있는 작은 개신교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곳은 그의〈마지막 시집 Last Poems〉(1939)에 수록된 시〈벤 블벤 아래에서 Under Ben Bulben〉에 명시된 장소로 그의 묘 비문에는 자신이 직접 썼던, "삶과 죽음을 냉정히 바라보라. 그리고 지나가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D. Donoghue / britannica 사전>

 

 

 


                           <사진: 예이츠의 고향 슬라이고 박물관에 있는 예이츠의 흉상>  

 

 

예이츠 작품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鋪道)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The Lake Isle Of Innisfree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u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낙엽(The Falling of the Leaves)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머리 위 로웬나무 잎사귀도 노랗게 물들고
젖은 들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시간이 닥쳐와
이제 우리들의 슬픈 영혼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자 우리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입맞추고 한 방울 눈물을 남기고서...



AUTUMN is over the long leave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s;
Yellow the leave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orn are our sad souls now;
Let us patt, ere the season of passi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y drooping brow.



 
술노래(Drinking Song)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실은 그것 뿐.
나는 입에 잔을 들며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버드나무 정원에서(Down By The Salley Gardens)

버드나무 정원에서 그녀와 나 만났었네.
눈처럼 흰 작은 발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나뭇가지에 잎이 자라듯 사랑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난 젊고 어리석어 그녀의 말 들으려 하지 않았네.

강가 들판에서 그녀와 나 서 있었네.
기대인 내 어깨 위에 눈처럼 흰 손을 얹으며
그녀는 내게 일러주었지. 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수월히 여기라고.
그러나 젊고 어리석었던 나에겐
지금 눈물만 가득하네.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덧없어라(Ephemera)

「예전엔 지칠줄 모르고 내 눈을 들여다 보던 그대의 눈이
이제는 망설이는 눈꺼풀로 서글프게 내려뜨네요.
우리의 사랑이 이울어 가는겁니다」

그러자 그녀는
「우리의 사랑은 이울었지만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서 봅시다.
처량하게 지친 아이, 정열이 깊숙히 잠이 든
온화한 이 시간에 둘이 함께.
별들은 어찌나 멀어 보이는지,
우리의 첫 키스도 얼마나 아득한지 참으로 늙었군요.
나의 마음은」

그들은 생각에 잠긴 채 낙엽을 따라 걷다가,
남자가 천천히 여자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정열은 곧잘 방황하는 우리 마음을 피곤하게 했지요」

나무가 그들을 에워싸고 노란 나뭇잎이
빛 바랜 별같이 어스름 속에 떨어지는데
늙은 토끼 한 마리가 다리를 절며 오솔길을 달려 온다.
그에게는 가을이 오고,
그들은 다시 한 번 호젓한 호숫가에 섰다.
돌아보니 그녀는
그녀의 눈같이 이슬 맺힌 고엽을 말없이 주워 모아
가슴과 머리에 꽂고 있었다.

「아, 슬퍼하지 말아요」
그는 말했다.
「우리가 지친 것은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기 때문이요.
미움과 사랑으로 후회없는 시간을 밀고 나가요.
우리 앞에는 영원함이 가로 놓였고,
우리의 영혼은 사랑 그리고 끝없는 이별의 연속이니까」


"YOUR eyes that once were never weary of mine
Are bowed in sotrow under pendulous lids,
Because our love is waning."

                             And then She:              
"Although our love is waning, let us stand
By the lone border of the lake once more,
Together in that hour of gentleness
When the poor tired child, passion, falls asleep.
How far away the stars seem, and how far
Is our first kiss, and ah, how old my heart!"

Pensive they paced along the faded leaves,
While slowly he whose hand held hers replied:
"Passion has often worn our wandering hearts."

The woods were round them, and the yellow leaves
Fell like faint meteors in the gloom, and once
A rabbit old and lame limped down the path;
Autumn was over him:  and now they stood
On the lone border of the lake once more:
Turning, he saw that she had thrust dead leaves
Gathered in silence, dewy as her eyes,
In bosom and hair.

"Ah, do not mourn," he said,
"That we are tired, for other loves await us;
Hate on and love through unrepining hours.
Before us lies eternity; our souls
Are love, and a continual farewell."



 
그대 늙었을 때(When You Are Old)

그대 늙어 머리 희고 잠이 많을 때
난로가에 앉아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 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읽으며, 한때 그대 눈이 지녔던
그 부드러운 눈길이며 깊은 그늘을 생각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다정하고 우아했던 시절을 사랑했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거짓 혹은 진실함으로 사랑하였던가를.
다만 한 남자가 그대 순례자의 영혼을 사랑하였고
그대 변하는 슬픈 얼굴을 사랑하였던 것을.

그리고 빛나는 창살가에 고개 수그려
조금은 슬프게 중얼거려요.
어떻게 사랑이 달아났고 높은 산을 거닐며
별들의 무리 속에 그의 얼굴을 감추었는가를.



WHEN you are old and grey and full of sleep,
And nodding by the fire, take down this book,
And slowly read, and dream of the soft look
Your eyes had once, and of their shadows deep;

How many loved your moments of glad grace,
And loved your beauty with love false or true,
But one man loved the pilgrim Soul in you,
And loved the sorrows of your changing face;

And bending down beside the glowing bars,
Murmur, a little sadly, how Love fled
And paced upon the mountains overhead
And hid his face amid a crowd of stars.




쿨 호수의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THE trees are in their autumn beauty,
The woodland paths are dry,
Under the October twilight the water
Mirrors a still sky;
Upon the brimming water among the stones
Are nine-and-fifty Swans.

The nineteenth autumn has come upon me
Since I first made my count;
I saw, before I had well finished,
All suddenly mount
And scatter wheeling in great broken rings
Upon their clamorous wings.

I have looked upon those brilliant creatures,
And now my heart is sore.
All's changed since I, hearing at twilight,
The first time on this shore,
The bell-beat of their wings above my head,
Trod with a lighter tread.

Unwearied still, lover by lover,
They paddle in the cold
Companionable streams or climb the air;
Their hearts have not grown old;
Passion or conquest, wander where they will,
Attend upon them still.

But now they drift on the still water,
Mysterious, beautiful;
Among what rushes will they build,
By what lake's edge or pool
Delight men's eyes when I awake some day
To find they have flown away?



 
흰 새들(The White Birds)

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이여, 우리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흐르는 별들의 불꽃에 우리는 지쳐버렸구나. 미처 그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하늘가 낮게 걸린 황혼녘 푸른 별
그 불꽃이 우리들 가슴에 끝없는 슬픔을 일깨웠네

피로가 찾아든다 이슬에 젖어 꿈꾸는 저 백합과 장미로부터
아, 꿈꾸지 마라 사랑하는 이여, 흐르는 별의 불꽃은 사라지리니
푸른 별의 불꽃을 꿈꾸지 마라. 이슬은 내리는데 낮게 걸려 서성이니
될 수만 있다면 떠도는 물거품 위 두 마리 흰 새가 되련만. 그대와 나는

수많은 섬들과 수많은 다나안 해안으로 내 마음 이끌린다
시간이 우리를 잊고 슬픔도 다가오지 않는 곳
장미와 백합 그리고 가슴 태우는 불꽃도 이내 멀리 사라지리니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물거품 위를 떠도는 두 마리의 흰 새가 될 수만 있다면



I would that we were, my beloved, white birds on the foam of the sea!
We tire of the flame of the meteor, before it can fade and flee;
And the flame of the blue star of twilight, hung low on the rim of the sky,
Has awaked in our hearts, my beloved, a sadness that may not die.

A weariness comes from those dreamers, dew-dabbled, the lily and rose;
Ah, dream not of them, my beloved, the flame of the meteor that goes,
Or the flame of the blue star that lingers hung low in the fall of the dew:
For I would we were changed to white birds on the wandering foam:  I and you!

I am haunted by numberless islands, and many a Danaan shore,
Where Time would surely forget us, and Sorrow come near us no more;
Soon far from the rose and the lily and fret of the flames would we be,
Were we only white birds, my beloved, buoyed out on the foam of the sea



 
방황하는 인거스의 노래(The Song Of Wandering Aengus)

내 머리 속에 불이 붙어
개암나무 숲으로 갔었지.
개암나무 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딸기 하나를 낚싯줄에 매달았지.
흰 나방들이 날고
나방 같은 별들이 깜빡일 때
나는 시냇물에 딸기를 담그고
작은 은빛 송어 한 마리를 낚았지.

나는 그것을 마루 위에 놓아 두고
불을 피우러 갔었지.
그런데 마루 위에서 무엇인가가 바스락거리더니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지.
그것은 머리에 사과꽃을 단
어렴풋이 빛나는 소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
빛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나 비록 골짜기와 언덕을
방황하며 이제 늙어 버렸지만
그녀가 간 곳을 찾아 내어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고 손을 잡고서
얼룩진 긴 풀밭 속을 걸어 보리라.
그리고 시간이 다할 때까지 따보리라.
저 달의 은빛 사과를
저 해의 금빛 사과를...



I WENT out to the hazel wood,
Because a fire was in my head,
And cut and peeled a hazel wand,
And hooked a berry to a thread;
And when white moths were on the wing,
And moth-like stars were flickering out,
I dropped the berry in a stream
And caught a little silver trout.

When I had laid it on the floor
I went to blow the fire aflame,
But something rustled on the floor,
And some one called me by my name:
It had become a glimmering girl
With apple blossom in her hair
Who called me by my name and ran
And faded through the brightening air.

Though I am old with wandering
Through hollow lads and hilly lands.
I will find out where she has gone,
And kiss her lips and take her hands;
And walk among long dappled grass,
And pluck till time and times are done
The silver apples of the moon,
The golden apples of the sun.



첫사랑(First Love)

하늘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잔인한 아름다움의 종족으로 자라긴 했지만
그녀는 잠시 걷다 얼굴을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나 내 손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돌의 심장임을 알아낸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였으나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달 위를 지나가는
모든 손은 미치고야 만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변해서
그만 시골뜨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며
달이 나타날 때
하늘에 떠도는 별들보다
한층 더 공허한 마음이 되었다.



THOUGH nurtured like the sailing moon
In beauty's murderous brood,
She walked awhile and blushed awhile
And on my pathway stood
Until I thought her body bore
A heart of flesh and blood.

But since I laid a hand thereon
And found a heart of stone
I have attempted many things
And not a thing is done,
For every hand is lunatic
That travels on the moon.

She smiled and that transfigured me
And left me but a lout,
Maundering here, and maundering there,
Emptier of thought
Than the heavenly circuit of its stars
When the moon sails out.



 
오랜 침묵 후에(After Long Silence)

오랜 침묵 후에 하는 말 -
다른 연인들 모두 멀어지거나 죽었고
무심한 등불은 갓 아래 숨고
커튼도 무심한 밤을 가렸으니
우리 예술과 노래의 드높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함이 마땅하리.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무지했어라.



SPEECH after long silence; it is right,
All other lovers being estranged or dead,
Unfriendly lamplight hid under its shade,
The curtains drawn upon unfriendly night,
That we descant and yet again descant
Upon the supreme theme of Art and Song:
Bodily decrepitude is wisdom; young
We loved each other and were ignorant.

 

 

 

하늘의 융단(He wishes for the clothes of heaven)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의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오직 꿈만 지녔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lc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나의 딸을 위한 기도

 

또다시 폭풍은 포효한다.

이 요람 덮개와 이불에 반쯤 가리워

내 아기는 잠자고 있는데. 대서양에서 불어와

건초더미와 지붕을 납작하게 쓰러뜨리는

이 바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그레고리네의 숲과

한 벌거벗은 언덕뿐,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걸으면서 기도했다.

내 마음속의 크나큰 우울 때문에,

 

나는 한 시간 동안 걸으면서 이 어린 자식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바다 바람이 탑 위에서, 다리의 아치 밑에서

비명을 지르며, 넘쳐 흐르는 시냇물을 덮는

느릅나무 숲에서 절규하는 소릴 들었다.

미래의 세월이,

광란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며 바다의 지독한 순수에서 나타난 것을,

흥분한 명상 속에서 상상하면서.

 

이 아이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하소서.

그러나 처음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히거나.

거을 앞에서 제 모습에

제 눈이 어지럽게 되는 미는 아니기를

그런 미인은 아름다움이 지나쳐,

다만 아름다움만으로 만족하게 생각하여

타고난 친절을 잃고 또한,

옳은 것을 택하고, 흉금을 털어놓는 친밀함을 잃어

결코 친구 하나 얻지 못하리라.

 

선택된 여자 헬렌은, 삶이 단조롭고 멋없다 생각했고,

나중에는 바보들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한편, 그 위대한 여왕은 바다의 물보라에서 생겨나.

아버지가 없어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지만,

남편으로 택한 것은 무릎이 굽은 대장장이.

미인은 고기와 같이 먹는 샐러드가 썩어서

'풍요의 보각'이

쓸모없어졌음은 확실하다.

 

그 아이에게 주로 예절을 배우게 하고 싶다.

은정은 천부의 것이 아니고, 애써서 얻어지는 것이다.

전적으로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미 자체를 위하여 바보짓을 한

여인들도 매력적으로 현명하게 산 사람이 많다.

그러나 떠들면서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 많은 가엾은 남자들은

즐거운 친절함에서 그의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이 애가 무성하면서도 숨겨진 나무가 되고,

그 애의 생각이 모두 홍방울새 같이 되어

넓은 아량의 소리만을 주위에

뿌려주는 일에만 전념하기를 바란다.

흥겨운 일은 좋지만 남자를 쫒는 일 없고,

흥겨운 것은 좋지만 다투는 일이 없기를,

아, 이 애가 푸른 월계수같이 살게 해주소서

영원한 정다운 땅에 뿌리내린.

 

내가 사랑하는 마음, 내가 인정하는 류의 아름다움은

번창하는 일이 적기 때문에

내 마음은 끝내 말라버렸다. 그러나

증오심으로 숨막히는 것은, 모든 악운 중에서

으뜸가는 것임을 내 마음은 알고 있다.

만일 마음속에 증오심이 없다면

바람이 휘몰아치고 매질을 한다 해도,

홍방울새가 가지에서 결코 우는 일 없으리라.

 

지적인 증오심이 가장 나쁜 것이다.

그러나 고집은 저주스러운 것임을 이 아이에게 알리자.

'풍요의 보각'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아름다운 여인도

그의 독단적인 고집 때문에,

그 풍요의 보각과, 차분한 천성으로써

이해되는 모든 선을 버리고

분노의 바람으로 가득 찬 낡은 풍구를

차지하는 것을 내 보았지 않았던가?

 

증오가 모두 몰려나가면

영혼이 본연의 순수를 되찾아.

드디어 스스로 기쁨을 찾게 되고,

스스로 자제하고 스스로 놀라움을 발견하며

영혼 자체의 고운 뜻이 하늘의 뜻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록 만인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해도

그리고 사방에서 바람이 포효하고,

모든 풍구가 폭발하더라도, 이 아이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이 아이의 신랑이. 이 애를 만사가 관습화되고

의식화된 집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오만과 증오는

보도에서 팔리는 상품이니,

관습과 의식이 아니고서

어떻게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생겨나겠는가?

의식은 풍요한 보각의 별명이고,

관습은 가지 뻗은 월계수의 별명이다.

 

 


여인의 마음( The Heart of the Woman)

기도와 안식으로 가득 찬
그 작은 방이 내게 무엇이랴
그이가 날 어둠 속으로 불러내어
내 가슴 그이의 가슴 위에 있나니

내 어머니의 보살핌과
걱정 없고 따뜻한 집이 내게 무엇이랴
그늘 어린 꽃과 같은 나의 머리칼이
모진 풍우에서 우리를 가리어 주리

가리어 주는 머리칼과 이슬 어린 눈이여
내겐 이제 삶도 죽음도 없어라
내 가슴 따뜻한 그의 가슴 위에 있고
내 숨결 그이의 숨결과 얽혀 있나니

 

 

O what to me the little room
That was brimmed up with prayer and rest;
He bade me out into the gloom,
And my breast lies upon his breast.

O what to me my mother's care,
The house where I was safe and warm;
The shadowy blossom of my hair
Will hide us from the bitter storm.

O hiding hair and dewy eyes,
I am no more with life and death,
My heart upon his warm heart lies,
My breath is mixed into his breath.

 

 

 

나의 아들을 위한 기도

 

굳센 정령을 머리맡에 세워두소서

내 아들 마이클이 깊이 잠들고

다시 아침 식사를 할 때까지

잠자리에서 울거나, 구르거나 하지 않도록.

그리고 바라노니. 아침이 올 때까지

떠나는 황혼이 모든 두려움을 멀리 하게 하고,

어머니의 잠 부족함이 없이

충분히 자게 하소서.

 

정령에게 칼을 주먹에 잡도록 하소서

분명 세상에는 훙악한 일들이 있으니.

아들의 앞날에 고귀한 행동과

사상이 함께 할 것을 알고,

아들을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흉악한 것들도 있을 것이니

영예에 대한 증오에서 그의 천진을

무無로 이끌어 가려는 것들이 있으려니.

 

당신은 매일매일 무에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아침이 별들에게 노래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당신은 지극히 간단한 소망조차 나타낼

분명한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여자의 무릎에 매달려 울면서

살과 뼈에 대한 가장 더러운

오욕의 모든 것을 알아 버렸습니다.

 

 당신의 적의 하인들이

온통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을 때,

성서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면,

한 여인과 남자가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인간의 사랑으로 보호하면서

평탄한 곳과 험한 곳을

비옥한 곳과 황폐한 곳을 급히 지나갔습니다.

 

 

 

 

예이츠의 고향 슬라이고


 





아일랜드 북서부 슬라이고주의 주도. 인구 5만 6000명(1990). 슬라이고만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아일랜드 주요 항구의 하나이며, 아일랜드 북서부의 철도교통 요충지이기도 하다.
목축·어업이 주산업이며, 양조업 및 베이컨·제분 등 식품가공업도 성하다.
경치가 아름답고 거석기념물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예이츠의 박물관
매년 이 곳에서 국제 예이츠 하계학교가 열려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예이츠는 고향인 슬라이고 북쪽 드럼클리프교회 묘지에 묻혔 있다.

 

<출처;yahoo 이니스프리 (innisfree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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