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
(1945 - )본명 이명숙
가톨릭 수녀이자 시인이다.
1945년 강원 양구 출생
1964년 김천 성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1968년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근무하면서 시(詩)를 발표했다.
1981년 제9회 새싹 문학상
1985년 제2회 여성동아 대상
1998년 제6회 부산여성 문학상
2004년 제1회 「울림예술대상」 한국가곡작시상 부문 수상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1979), '민들레의 영토'(1981), '시간의 얼굴'(1989) 등
<백과사전>

이해인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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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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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와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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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께
스님,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 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이 남기는것들 이었 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 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 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서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물미역도
많이 드릴테니까요.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 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 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 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 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 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 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 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 니다
<출처: 법정스님편지글>

이해인 시인론
Ⅰ. Prologue
이해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신앙 안에서 고결하고 순수하게 사는 수녀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발표하여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가슴 한 구석이 진한 감동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대중을 많이
확보한 시인과 신이 울타리 안에서 소명을 받고 사는 수녀 사이에서 이해인의 시를 연구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속세에 찌들어 하루하루 일상에 휘둘려 사는 사람이 어찌 연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문학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 낸 산물일 것이고, 각 시의 행간을 읽어내는 것이 시를 통해
이해인 수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이해인 시인이 발표한 시를 토대로 어떤 문학세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Ⅱ. Characters of Haein's poem
1) 이해인과 문학
이해인 시인은 수녀이다. 다른 시인과 달리 특이한 점이다. 우리 시단에서 수녀로서 시를 슨 사람이 많지 않다.
이전에 수녀 시인이 있었다 해도, 이해인 수녀처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유명해진 사람은 없었다. 이해인의 시를 읽는
사람은 많아도 시인으로서의 이해인을 논한 글이나 시를 정밀히 읽고 그에 대해 논한 글은 찾기 쉽지 않다. 단편적인 서평이나
시집의 서문이나 결문에 붙어있는 글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이유는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살펴보면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그는 천주교 수도자다. 세속의 틀에 매여 사는 일반인에 비해 세속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려서는 안 될 점이
많을 것이다. 본명은 이명숙이지만,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지만, 깊이 연구한 사람이거나 지기가 아닌 이상 알 리
만무할 것이다.
둘째, 특정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시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 시문학의 전통이 이해인의 시에 대한 논의를 제약하였다.
특정 교리나 그 교리를 지향하는 세계관에 통달한다는 것은 상당한 연구와 시간이 걸리는 과제이다. 이는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러한 세계관을 언어로 승화시키고 변형시켜 놓은 시를 분석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해인 시인은 수도자로서 평생을 정결하게 살며, 청빈하게 살며 순명하여 살기를 서약한 사람이다. 이런 서약을 한
수도자가 쓴 시를 종교에 대한 교양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이 감히 다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원인이 이해인 연구의 적음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셋째, 이해인 시인은 문단과 거의 연결이 없는 시인이다. 사회의 어느 영역이나 직업이나 관심의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이루게 된다. 문인도 서로 모여 문예지를 만들고 문단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해인 시인은 문예지나 문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문단에 불었던 순수 참여 논쟁 같은 것이나, 암울한 시대의 민중투쟁과 같은 것은 이해인 시인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이미 100만부가 넘게 시집이 팔렸으나, 사적인 인연이 있는 홍윤숙, 구상, 박두진, 이어령, 구중서 등을 제외하면 문단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면 그의 시세계를 분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2)이해인 시인이 말하는 시를 쓴 동기와 시 철학
시인에게서 시는 애틋하고 순결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날마다 노래 부르듯 시를 낭송하는 가족 사이에서 행복함을 느꼈다고 한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아름답고 시적인 삶을 꿈꾸곤 했다고 한다. 중학교에서는 문예반 활동을 했고, 여고시절에는 입상을 하며 스승으로부터 인정과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수도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문학을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해서 혼자 적어두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6년에 수도원 원장이
원로시인에게 시를 보여주었고, 그 시인이 출판을 권유하여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이해인 스스로 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로 나 자신에게, 이웃에게, 신에게 그리고 사물에게 보내는 진솔하고 겸허한
사랑의 편지라고 생각된다.
시의 주제들은 자연, 사랑, 기도, 고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소하고 무상한 사물이나 인정을 불멸과 무한, 즉 연원 속에다
연결하려는 노력이다. 독자들이 시를 읽고 보내주는 편지를 잘 모아두었다. 이 수많은 편지들 중에 수도원과 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 주는 역할을 하고 그런 소재들을 시에 이용하기도 한다.” 시인은 시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웃을 이해하고
신을 섬기고 일생을 섬기는 한 송이의 민들레가 되겠다고 했다. 자신이 사는 공간을 민들레의 영토와 바다라고 정하고 늘
잠들면서도 깨어 있는 사랑의 시인이자 구도자가 되겠다고 했다.
이해인 시인이 지향하는 민들레의 의미는 무엇인가? 민들레는 키가 작고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민들레는 자유롭고 다시
피어오르는 희망을 나타낸다. 민들레는 카가 작다. 키를 낮추는 일은 스스로 겸손해지려는 태도이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디에나 피는 평범함과 소박함을 좋아하는 시인의 성격을 시에 담고 있는 것이다.
3)이해인 시의 언어와 비유법
이해인 시인이 지향하는 어법은 ‘그대, 당신, 너’와 같은 2인칭 지향화법이다. 이런 기법은 대부분의 서정적 연시에서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감정표현의 개인의 지향이기도 하다. 2인칭 지향 화법은 주체와 객체의 거리가 가까이 밀착되거나 또는
동일화된 어울림을 주는 형식인데, 이것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어울려 이해인의 시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즉, 비인간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울림을 준다.
또 하나는 시에 어미 ‘~ㅂ니다.’는 경건한 시적 분위기를 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어법은 굳건한 신앙의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인의 시에서 슬픔, 그리움, 인내, 외로움, 기다림, 겸허, 정열 등, 사랑의 심리적 요소들은 사랑의 심리적 요소들은 은유적
원리보다 환유적 원리에 의하여 식물로 환유되고 있고, 환유적 원리에 의하여 너무 상식적이고 평범한 변용에 머무른다는
한계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나, 그의 시에서는 친화력을 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어조와 친밀한 화법은 세상을 힘들게 사는 독자들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Ⅲ. Categories of Haein's poem
1)가톨릭 시인 - 신앙 안에서 추구하는 구도자(求道者)의 삶
이해인 시인은 수녀로서 성직을 수행하며 자신의 생활을 수도하며 생활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고자 하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敬畏心)과 철저한 가톨릭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시 창작을
통하여 구도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선인장
사막에서도 / 나를 / 살게 하셨습니다.
쓰디쓴 목마름도 / 필요한 양식으로 / 주셨습니다.
내 푸른 삶을 / 고통의 가시들로 / 축복하신 당신
피 묻은 / 인고의 세월 / 견딜힘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 살아 있는 / 그 어느 날
가장 긴 가시 끝에 / 가장 화려한 꽃 한 송이 / 피워 물게 하셨습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을 선인장에 감정이입을 시켜 고통까지도 축복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인고의 세월을 겪어낸 결과
마침내 화려한 꽃 한 송이를 피워 물게 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 시에서 쓴 선인장이라는 식물 이미지는 참고 인내할 줄
아는 존재로서 죽음을 거쳐 영원한 재생의 순환운동을 지니고 지상으로 되돌아오는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러한
식물이미지는 다른 시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물, 달, 여성 이미지 등의 원형 이미지와 더불어 영원한 재생의 신화를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보여주고 있는 신화적 원형이다. 「보름달에게1」에서 보름달의 신성하고 완벽한 영원의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 엄청난 당신보다는 / 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습니다.
나의 뜻과 어긋나는 당신이기에 / 나는 놀라서 도망치다 / 신들린 바람
내가 만약 죽어서 / 다시 태어난다면 / 사랑이신 당신을 모르고 싶은 / 죄스런 바램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문(呪文) 외며 달아나다 / 내가 쓰러질 곳 또한 / 당신 품안일 것을
이 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의 자녀가 되기로 약속하고, 수녀로서 서원을 한 후 더욱 깊어지는 신앙심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이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인간의 한계와 그의 아픔을 느끼면서 수녀
시인은‘엄청난 당신보다는 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직선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선적 표현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간곡한 의지의 역설적 표현이다. 그 역설의 마지막에서‘내가 쓰러질
곳 또한 당신의 품안일 것을’이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당신의 품안을 벗어나지 못한 역설인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예수를 경험대상의 근본으로 하고 있다. 한 인간의 평범한 목소리를 통하여 종교적인 인간의 정직성을 겸허하게
증거 하는 표현을 이룩한다. 시인은 초월자 앞에서 자기 자신의 좌절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좌절,
인간의 한계 그 자세의 본래적인 근거로 신의 존재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당신을
나에게서 당신을 빼고 나면 / 아무것도 남지 않을 / 가난뱅이 여인
나에게서 당신을 옷 입히면 /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 궁전의 여인
하느님 / 아무래도 당신은 / 기적의 신입니다.
이해인 시인으로부터 당신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가난뱅이 여인”이지만, 임의 옷을 입고 보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이 된다. 신 앞에서 인간은 미미하고 하찮은,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임이 크게 보일수록 그 임을 우러러
보는 나는 그만큼 어리석고 못나고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나는 한 번도 숨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흰 깃을 치며 / 무인도(無人島)로 날아 버린 시인(詩人) 같은
물새였을 때
뽕잎을 갉아 먹고 긴 잠에 취해 버린 / 꿈꾸는 누에였을 때
해초(海草) 내음 즐기며 모래 속에 웅크린 / 바다빛 껍질의 조개였을 때
깊은 가슴 속으로 香을 피우던 / 수백 만 개의 햇살 찬란한 / 당신 앞엔 눈 못 뜨는 나
부르시는 그 사랑을 듣게 하소서 / 무량(無量)의 바다 위에 두 팔을 벌리고 / 소리치는 태양이여
당신에겐 순명(順命)하여 피리 부는 바람 / 춤추는 파도로 뛰어가게 하소서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을 한낱 물새, 누에, 바다빛 껍질의 조개로 아주 작거나 소소한 미물로 숨어버리려고 해도 수백만
개의 햇살로 찬찬히 비쳐오는 당신 앞에선 눈 못 뜨는 피조물로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이제는 그 사랑을 피하지 않고,
부르시는 그 사랑을 듣게 하고, 당신에게 순명하여 살도록 간구하고 있다. 즉, 이 시에는 수녀 시인의 소명의식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수도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해인 시인은 마음의 평정을 얻고 기다리던 님을 만나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위의 작품 『해바라기 연가』나 『부르심』외에도, 『장미의 기도』,『유월엔 내가』,『산에서 큰다』등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기쁨과 찬미를 서정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비의 연가(戀歌)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나는 / 한 마리의 순한 나비인 것을
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도 / 슬픔의 노란 가루가 남몰래 / 묻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눈멀 듯 부신 햇살에 / 차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 / 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 / 빛나는 하늘이 훨훨 날으는
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가난한 마음임을 / 가르치는 풀잎들의 합창 / 수 없는 들꽃에게 웃음 가르치며
나는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입니다.
부디 꿈꾸며 살게 해 주십시오 / 버려진 꽃들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들릴 듯 말 듯한 나의 숨결은 / 당신께 바쳐지는 무언(無言)의 기도 / 당신을 향한 맨 처음의 사랑
불망(不忘)의 나비입니다. 나는
이 시에서 시인은 나비를 통해서 시인 자신과 절대자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곧 나비는 나 자신이 되어 절대자에게 향한 기구와
긍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절대자이신 당신께서 ‘가르쳐주시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향해 날으는 한 마리 순한 나비’임을
인정하면서‘슬픔의 노란 가루’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에게 묻어있음을 긍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날들이 절대자의
‘황홀한 은총’이었고, 그래서 그 한 마리 나비는‘수없는 들꽃에게 웃음을 가르치며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임을 순명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가 자신을 나비로 표현한 것은 죄인과 구세주의 만남 후에 이루어진 신분의 변화요, 하나님 안에서의 새로운 존재
발견, 즉 거듭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비의 연가」는 ‘하나님 앞’에 ‘그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창조주 앞에 피조물로서의 존재 발견이요, 또한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신분의 변화요, 사람의 주체가
자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민들레 시인 - 낮은 자리에서 따스함을 전파하는 시인
이해인의 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민들레 시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시인 스스로도 민들레 시학이라고 말했듯, 작은 당
조금의 햇빛에도 피어나는 민들레를 예찬하고 있다. 광안리 수녀원을 산책하다가 극히 좁은 빈틈을 비집고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보고 시인은 감격하였다고 한다. 시인은 자신이 안주해야 할 땅을 확인시켜주고 사랑의 슬기를 깨우쳐 준 민들레처럼
의연히 앉아 해를 보며 담담한 표정 밑에 뜨거운 언어를 감춘 기다림의 결연한 민들레 사상을 자신의 노래 축으로 삼은 것이다.
은총의 기적은 위대하고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흔하고 좁은 땅에 제멋대로 꽃을 피우지만 샛노란 희망과
민들레씨앗의 바람에 의한 자유와 낭만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이해인 시의 서정적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민들레의 영토
기도는 나의 음악 / 가슴 한복판에 꽃아 놓은 / 사랑은 단 하나의 /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 좁은 길이었다 해도 / 고독의 진주를 캐며 / 내가 /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 인정의 고움도 /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 노래를 하면 / 푸른 하늘에게 /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 하얗게 여위기 전 /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 내 땅에 떨어지면 / 바람에 날려 보낼 /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 세월의 눈시울에 / 원색의 아픔을 씹는 /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위의 시는 이해인이 수녀로서 수련기를 보냈을 때 쓴 시이다. 아직까지는 세상에 입각하여 살고 있고 그래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3연의 경우에는 부모가 된 어릴 적 친구들이 눈부셨다고 하면서 그런 세상 친구들 앞에서 검은
수도복을 입고 수도의 길을 걷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며 주눅이 들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1연에서 그는 가슴 한복판에 ‘사랑’이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을 꽂아 놓음으로서 수도 생활에 대한 회의와 갈등에
종지부를 직고 있음을 보여준다. 2연에서는 자신이 갈 수도자의 길은 편하다기 보다는 험한 길이며 가진 것 없이 빈 마음으로
생활해야 하는 힘든 삶의 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수도자의 길이 비록 외롭고 좁은 길이지만 꿋꿋하고 의연하게
수도 생활을 잘 해서 자신의 사랑도 꽃으로 피워내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기도는 나의 음악’이라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글의 노래는 시이고 시는 기도인 것이다. 시인이 민들레를 보고 처음 발견한 것은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
모두를 사랑하되 하나를 갖지 않고 하나인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초연히 모두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사랑이다.
길가 좁은 영토에 피는 고독한 민들레꽃이지만 예뻐 보이는 하느님의 맑은 눈물이 빗방울인양 떨어지면 민들레는 기쁘게
꽃씨를 날려 보내려 한다.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이, “보고 싶은 얼굴이여”원색의 아픔 속에서 연인을 기다리듯 보고 싶어 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사뭇 인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시에서 중요한 단어는 사랑과 고독이다. 그것은 성직자의 길 나아가 우리 인생 그 자체에 연결되는 단어이다. 이해인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시를 “민들레에서 반달가지의 틀을 못 벗어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민들레 시학’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는 이 나라 어디에라도 작은 땅 조금이나마 햇볕이 들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민들레를 예찬하고 있다.
수녀가 되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정결하게, 재산을 갖지 않고, 청빈하게,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순명하여 사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생활’이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천사로만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보통 6개월의 지원기, 1년의 청원기,
2년의 수련기, 4년 만에 첫 서원을 하고 66년간 유기 서원기를 거쳐 10년간 종신 서원을 하게 된다. 종교에 몸을 담고 수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인 시인도 예외는 아닌 것인데, 힘들지만 자신의 길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시에서 볼 수 있다.
민들레의 연가
은밀히 감겨 간 생각의 실타래를 /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 날마다 봄 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이 노래는 이해인 수녀 혼자 불러 보는 노래라고 시인 스스로 말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민들레는 이 시인에게 독특한
의미를 가진 대상으로 쓰여 진 자연적 심상 이다. 이 시인이 밝혀 놓았듯이 전설을 가지고 있는 민들레는 시인이 성직자의 길을
택하여 확고한 신념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던져 준 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백적, 체험적, 회상적 성격을 보여주는 시로 세속적인 고뇌와 갈등을 극복하고, 종교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깨달음을
주제로 삼아 말하고 있다.
'민들레 여인'은 겉으로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내면적인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간직한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에 비해
'장미 여인'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차림새의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좁은 땅에서 꽃으로 피어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를 풀고 솜털을 날리며 다시 한 번 하늘에서 피는
민들레의 숙명은 어떻게 보면 시인 자신의 운명이며 그가 처한 민들레의 영토에 대한 자부심, 바람과 하늘에 바친 말없음의
간절한 기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들레의 꽃핌에 감격한 이해인 시인은 자신이 안주해야 할 땅을 확인시켜 주고 사랑의
슬기를 깨우쳐 준 민들레처럼 의연히 앉아 책을 보며 살고 담담한 표정 밑에 뜨거운 언어를 감춘 기다림의 결연한 민들레
사상을 자신의 노래 축으로 삼게 된 것이다.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 치유할 수 없는 / 내 불치의 병은 /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실로 /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 고개 숙이면 /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 어둠에 숨지지 않고 /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이해인의 시에서 보면, 시에 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삶이 목적지를 향해서 한 마음으로
사는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지금 쓰라면 못 쓸 것 같지만 그 말을 지키려고 한 내 삶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내 삶이 한 마음으로
나가는 지침서가 된다.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한결같은 정성으로 나가겠다는 자신의 사랑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시를 볼 때, 당신과 나와의 관계를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로 빗대고 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죽을 것 같은 열병’처럼
절실하고 당신에의 사랑은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처럼 깊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해바라기의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들은 바로 나의 ‘당신께 바치는 언어’들이다. 이미 둘은 믿음과 지향과 사랑 안에서 하나로 합일된 상태이지만 나는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해인 시인은 여느 시인과 마찬가지로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임의 비단 옷을 짜고 싶고, “빛나는 얼굴에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안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가 연결되어 있다. 이 꽃이 바로 님에게 바치는 시가 된다고 말한다.
이해인 시인에게서 하느님은 절대적인 것이다.
꽃으로 봉헌된 삶의 길을 지향하는 시편들 가운데 특히 「해바라기 연가」에 이해인의 영성이 집약되어 있다. 그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정신서원을 앞두고 해바라기 꽃의 입을 통해 고백한 기도 연가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이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 기다림과 그리움을 꽃 시로 익히는 해바라기 마음입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연인으로 남기 위해 바친 시를 통해, 그녀가 “사랑 그 자체”가 되는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름날 태양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해바라기의 열정에 수도자의 서원을 담은 이 시는 성서의 「아가서」를 연상시킨다.
당신 아닌 그 누구도 나의 마음을 차지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진리를 향한 굳건한 서원, 사랑의 불꽃에 타오르는 영혼의
고백은 성령의 불꽃을 연상시킨다.
3) 서정적 연시 -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수녀가 되었다는 이해인의 시의 색채가 사랑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나님, 많은 사람,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시인인 이해인의 시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은 일관되게 흐르는 그의 시의 주제이다. 이해인이 추구하는
인류와 자연을 향한 아가페적인 사랑이지만, ‘당신’으로 칭하는 또 다른 빛깔의 사랑의 시인 것이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그의
시를 많이 읽는 것은 지칭 대상을 ‘하나님이나 주님’보다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제비꽃 연가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 아껴 둔 나의 향기 /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 웃을 수 있고 / 감추어진 향기도 /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 내 작은 가슴 속엔 /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 가장 작은 꽃이지만 /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 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아주 작은 제비꽃의 고백처럼 사랑하는 이의 눈길과 손길이 닿으면 금방 하늘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겸손한 순명이며, 스스로를
낮추고도 비굴해지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는 아름다운‘자기비하’라고 시인은 밝히고 있다. 이 시는 사랑하는 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작은 꽃이 되겠다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꽃의 노래이다. 시인의 신분만을 내세워 모든 시의 임을 하나님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이것 역시 연인에게 연모를 고백하는 순수시로 봐도 좋을 것이다.
상사화
아직 한번도 / 당신을 /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 가슴 아픈 일인가를 /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 만나지 못하고 /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침묵 속에서 /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 어둠 속에서 /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 당신을 만나야 지요 /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 오늘은 어제보다 / 더욱 믿으니까요
상사화 (Lycoris squamigera Max). 관상용으로 심는 수선화과 다년초. 잎은 봄에 나오고 봄에 선명한 녹색 잎이 구근의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주 붙어 나지만 꽃을 보지 못하고 6-7월이면 말라죽는다. 8월에 꽃대가 나와 길이 60cm 정도
자라며 끝에 4-8개의 꽃이 달리고 씨가 맺히지 않는다. 상사화란 이름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상사화는 마치 사랑의 숨바꼭질을 하는 연인마냥,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을 보는 듯하다.
Ⅳ. Epilogue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에서 군부독재가 지배한 세월이었다. 이 기간에 문학은 한편으로 치열하게 저항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차원을 지니는 종교적 심성의 글들이 상처받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원한 가치에 향하는 희망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위로와 희망에서 그동안 이해인 수녀의 시와 산문들이 한국
사회에 이바지 한 바 있는 것이다.
확고한 시의식(詩意識)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라는 씨줄과 신앙적 차원의 날줄이 서로 얽혀 엮어지고 있다는 데서 이해인의
시는 오늘날 현대시가 안고 있는 난해성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시가 가진 빼어난 강점은 민들레와 같이 작고 하찮은
사물 속에서 시인다운 감수성과 정서를 통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초적인 힘인 사랑을 발견하고 노래했다는 점이다.
이해인은 삶의 진실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한국 여류시인 가운데에서 희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시에서 뛰어난 수사나
기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식이나 제작 의식이 소홀하지 않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것을 현대시의 언어로
재창조하기 위해 무서운 집념을 지니고 정성을 기울여 왔다. 시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더불어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인식하며
작업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더욱 순수한 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인의 시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괄목할만한 형식상의 실험이나 위대한 사상, 경탄할만한 언어구사력, 날카로운 문제의식,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신앙고백에 부리를 두고 있는 감정, 사상의 진실성과 순수성은, 즉 현실생활의 구체적인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어떤 초월적 원리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아무리 진지하고 성실한 것이라고 해도 공허한 관념으로 전락할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해인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여성시인이고, 문단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종교 시인이다. 이해인의 시를 연구함에 있어서,
종교와의 관계, 신앙과 고독의 문제, 사랑, 시어와 스타일, 자연관, 이미지의 분석 등에 관심을 두고 진행하면 보다 폭넓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 분석도 좋지만 시를 있는 그대로 마음의 정화를 느낄 수 있는 시라면 오래도록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어느 시가 안
그렇겠는가마는, 이해인의 시는 오늘날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카페의 차 한 잔과 매우 잘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 Question
이해인의 시는 신앙고백에 뿌리를 두고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현실생활의 구체적인 모순에 대한 해결책은 초월적인
원리에서 찾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자칫 공허한 관념으로 떨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톨릭 시인이 종교의 서술성에만 매달려 그 개념과 형식에 도취되어 있다면 그 무엇도 벌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치열하게 극복해야할 사회 현실은 그저 종교인이란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출처: 시쓰는 사람들 / lynx>

이해인 시론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영원을 향해 은혜롭게 기도하는 한 수녀 시인의 청정한 목소리가 목마른 사람들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이해인의 시집들, <민들레의 영토>, <내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며 10만명
이상의 독자에게 그리움의 가슴을 전달해준 그녀의 작품을 통하여 수녀 시인 이해인의 사랑과 종교의 세계를 알아본다.
영원에의 그리움에 가슴 앓으며 고독과 슬픔을 종교시로 승화시킨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슬픈 일이 생겨도 그저 은혜로운 가을날'에 '몰래 숨어 들어온 감기 기운 같은 영원에의 그리움'에
가슴을 앓으며,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듯 청정한 간구와,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의 사랑을, 종교시의 전통이 일천한 이 땅에 종교적인 테두리를 방패로 한 순
수 긍정적인 소명감적인 헌신의 노래. 그러한 기구이기보다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깊은 갈등, 종교적 헌신으로
도달될 수 있는 영원한 법열과,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정직한 고민, 고독감, 슬픔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종교시로
승화시키고 있는 시인이 있다.
이해인이 바로 그 시인이다. 내가 최근에 입수한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가 11판. <내 혼에 불을 놓아>가 8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5판을 찍고 있다. 시집은 안팔리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한국의 출판풍토에서 이것은
분명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기작가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문인주소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무명의 한
수녀가 쓴 시집이 독자들에게 '조용한 충격'을 가하면서 그렇게 폭넓게 읽혀져 왔다는 것은 이 땅의 문화적 전통과 풍습에
비추어 보더라도 비상한 일이며, 가히 '신화'적인 일이다.
나는 이것을 '이해인 신화'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그렇다면 그 '이해인 신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해인 시의 어떤 매력이 그렇게 오래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을까.
먼저 이해인 수녀는 어떤 사람이며, '이해인 신화'를 가능케 한 그녀의 시집들의 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이해인은 누구인가. 이해인은 서른 아홉 살의 수녀이고, 본명은 이명숙이며, 하도 새초롬해서 친구들이 붙인 '석고상'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소아시아의 순교성인인 클라우디아라는 수녀명을 갖고 있으며, <민들레의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라는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며 지금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 다니는
대학원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동자동 언덕에 있는 성분도병원 수도원에 살고 있다. 그 병원은 6.25때 전쟁의 폐허에서 병들어
신음하는 피난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세운 자선병원이었는데, 지금은 산부인과와 소아과만 있는 병원으로 수녀들이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이해인 수녀는 주로 대학원 과정의 공부에 전념하며 한달에 한 번 정도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고 모여서 기도하고
성가도 부르고 묵상도 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임에 참가한다. 그녀의 오빠의 기억에 의하면 이해인 수녀의 가족은 아버님이
납북되시고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창경국민학교에 다니던 이해인 수녀는 원남동에서 가회동까지 꼭 걸어
다니며 책가방을 든 채 한쪽 손에는 늘 무슨 책인가를 눈 앞에 높이쳐든 채 길을 걸으면서도 책에 열중하곤 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시인이신 이모부 이태극씨와문학청년이던 오빠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문학에의 꿈을 남몰래 키우며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엄격하면서도 깊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수녀에의 꿈을 갖게 된다. 4남매의 세째인 그녀가 11살 되던 해 숙대 국문과에
다니던 친언니가 깔멜수도원의 수녀가 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아 여고 1학년 때 언니의 소개로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지원 담당수녀를 만나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수도자가 되고 싶다'라고 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그녀의 오빠는 두 누이가 수녀가 되어 집을 나가는 것에 충격을 받아 문학도 하고 수녀가 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글로 쓴
동생의 원고를 가지고 명동의 '갈채다방'에 나가 한 문학평론가에게 보였다고 한다.
그 글을 꼼꼼하게 읽고 난 그 평론가는, '이형의 동생은 절대로 수녀가 안될테니 안심하십시오. 수녀가 되기엔 개성이 너무
강하고 글재주가 출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1964년 김천 성의여고를 졸업하고 부산의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수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녀는
수녀가 된 개인적인 동기를 '사랑 때문' 이라고 밝힌다. 그녀의 말을 좀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수녀가 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느냐고 반문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보다 더 사랑의 완성을 지향하고 전적으로 사랑만을 위해 살고 싶었어요!'
그녀가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의한 도피'나 수도원을 '개인의 상처나 슬픔을 씻어주는 곳'으로
잘못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녀가 된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정결하게. 재산을 갖지 않고 청빈하게,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순명하며 사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생활'이다. 그 과정 역시 단순한 '천사처럼 살고 싶다는 꿈' 만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보통 6개월간의
지원기, 1년반 동안의 청원기, 2년 동안의 수련기를 거쳐 4년만에 첫서원을 하고, 6년 동안의 유기서원기를 거쳐 10년만에
종신서원을 하게 된다. 종신서원 때의 모습을 그녀의 오빠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수녀들의 성가소리가 천상의 소리인 듯
울리고 너는 제대 저쪽에서 조용히 춧불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눈을 곱게 내려뜬 네 모습에서 너의
지난날을 떠올리고 그만 어처구니 없게도 주책없이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구나.
식이 끝난 뒤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울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와 '참 별일이네, 오빠가 다 울다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도생활 중에도 시작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남모르게 계속해왔다.
그럼 어떻게 그녀의 시들이 비밀스런 서랍에서 나와 세상의 햇빛을 보게 되었을까. "제가 필리핀의 세인트 루이스대학
영문과에 유학 중일때 스위스에 계시던 임남훈 수녀님이 제게 들러서 시를 열심히 쓰라고 격려하셨어요. 그 뒤 귀국한 뒤 제가
김병도신부님께 편지를 해서 제 시 열 몇 편을 시인이신 홍윤숙선생님께 보내드린 게 계기가 됐어요. 홍선생님께서는 제가
있던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찾아오셔서 하룻밤 묵으시면서 제 시작노트를 읽으신 후 '내 혼자읽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어요. 저는 그때 수녀가 무슨 시집을 내느냐고 극구 반대했으나 임원장수녀님께서
종신서원 기념시집을 하나 묶자고 결단을 내리셨어요. 해인이란 이름은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 하면서 제 스스로 지은
이름이예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해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와 막막함
무궁무진한 결핍을 바라보게 되고, 기도하듯 시를 쓴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시는 신을 향한 절대의 사랑과 인간의 미소함에
대한 겸손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녀가 선택하는 시어들은 어떠한 화려한 일체의 장식성을 폐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단순함과 범속함과 정직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들이 빼어나게 깊고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무기교의 담백함, 맑고 투명한 서정성.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거기에 응축된 진실과 열화 같은 사랑이 한데
조화롭게 직조되어 하나의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의 의식에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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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향내 나는 사각사각 소리나는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 '살아있는 날은' 전문 |
이 시는 이해인의 시세계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있는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갈색 연필과 나는 일정한 객관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갈색 연필은 글을 쓰는 나의 행위를 완성시키는 도구이며, 나는 이 갈색 연필의 매개에
의해 하나의 경이로운 생의 지평, '몇번이고 지우며/다시 쓰는' 창조를 통하여 새로운 우주를 열어간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져 있던 창조의 주체인 나와 그 도구인 갈색 연필이 세째연에 와서 돌연 '정직'이라는 삶의 빛나는 가치 안에서
그 목적의 동일성으로 하나로 통일 수렴된다. 시인은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단정하고 꿋꿋한 한 자루의 연필'에서
정직한 삶이라는 가치를 이끌어내어 나의 바램과 그것을 합일시켜 시적 울림을 불러 일으킨다.
다음에 이어지는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이라는 귀절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나와 갈색 연필의 관계는 당신과 나의 관계로
전화된다. 갈색 연필이 나의 도구였던 것처럼 나는 당신의 목적의 성취에 쓰이기를 소원하는 도구이다. 이때 글쓰기란 다름
아닌 거룩한 당신의 빛나는 이념의 별이 내게 부여하는 거룩한 소임에 따라가는 삶의 길, 활동, 궤적이다.
그 삶의 궁극은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당신을 위하여/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날'이란 남김없이 자기희생의 길을 기꺼이 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도정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는 것은 시인에게 부여된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목적이며, 끝내 추구해야 궁극의 가치인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나와 당신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어둠이 표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희망이
고갈된 상태, 역사적으로는 비진정한 가치의 억압적인 지배의 시대적 상황,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삶의 바람직한 지향과 추구를
가로막는 장애의 요인, 절망의 암울함을 환기시키는 이미지이다.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그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말'로 글을 쓰겠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기독교적 삶의 명제 '빛과 소금'됨의 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시에서의 당신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 이라고 말함으로 님의
의미를 어떤 특정 대상에 고정 폐쇄시키지 않는 것처럼 기독교적 유일신이라고 한정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의 체험 배경에 따라 당신은 다양한 의미와 대상이 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가진 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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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아침을 헌신으로 쏟아내는 당신 앞에 |
왜 나는 당신 앞에서 이처럼 고통스런 몸짓과 해체되는 듯한 아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당신은 '문신같은 그리움을/
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봄 아침')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선한 뜨락에 피워올린/한송이 소망끝에/내 안에서
종을 치는/하나의 큰 이름은/언제나 당신'('나팔꽃')에서 보면 당신은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주고, 그것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발현시켜주기 때문에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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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고의 깊은 땅에 |
처럼 그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내 삶의 일체를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잘 보이는 당신'('주일에 나는')이란
표현에 의지한다면 당신은 빛 그 자체이거나 빛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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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음보다 갑갑하고 어둡던 시간 |
당신의 부재는 나에게 어둠과 고통을 함께 가져다준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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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전부를 은총이게 하는 |
내 신산스런 삶을 은총이게 하고, 내 매일의 삶을 환희이게 하는 당신을 향한 앎에의 의지,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는
너무나 자연스런 바램이다. 그 너무나 자연스러운 바램의 성취가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역설적 고백의 시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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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뜻과는 어긋나는 당신이기에 내가 만약 죽어서 |
이것은 역설적인 사랑의 고백이다. 다시 태어나면 '엄청난 당신보다는/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의 돌이킬 수 없는 깊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간곡한 의지의 역설적인 표현법인 것이다. 이 시는 나의 진심을 아무 수식 없이
벌거벗은 그대로 드러내는 '하나의 찬양이며, 영혼의 법열, 혹은 그 아픔의 고백이며, 그 모두를 바로 신에게 바치는 불사르는
향불이요, 제물이요, 꽃떨기요, 무릎 꿇음인 것'이다. 그 역설의 마지막마저 '내가 쓰러질 곳 또한/당신 품안일 것을'이라는
귀절에서 보듯이 당신의 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역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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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
아무런 설명이 필요가 없을 만큼 쉬운 시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다는 이 예사로운 구절에는 사람의 실체가 조건없는 헌신, 전적인 헌신에 있다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깨달음이 숨어
있다. 이해인 시집의 도처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에의 몸바침, 종신서원, 열정, 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이며, '당신 아닌 누구도/치유할 수 없는/내 불치의 병'이라고까지 고백하게 한다. 그러므로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손짓을 하면/나도 잘 익은 과일로/떨어지고 싶습니다/당신 손 안에' ('가을 편지' 2)와 같은 서원의
진솔성, '너무 많이 사랑함도 죄일 수 있다면/ 죄인이게 하소서' ('밤의 기도')와 같은 차라리 통속적이기조차 한 사랑의
적나라한 표현 따위가 감동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
이 시에 다른 말을 덧붙인다는 것은 공연한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래밭에 물이 소리 없이 스며들듯 우리의 전신에 그대로
배어드는 시적 기쁨을 허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이해인 수녀의 시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이, 정말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사랑은 마음을 고요하게 비워놓고 난 다음에 이는 정열 속에 있다.
증오나 질투나 분노 속에는 괴로움과 흔들림과 혼란스러움만이 깃들뿐이다.
완전한 사랑은 그래서 죽음과 같다. 거기에는 어떤 욕망도, 의심도, 괴로움도, 의무도, 권리도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온
마음과, 온 몸과. 온 심장과, 온 영혼을 다해 그에게 다가가는 것, 내게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을 때까지 내 전존재를 그에게
바치는 것이므로 그것은 죽음과 같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우리 마음속에. 심장속에, 몸속에, 영혼속에 찾아드는 것은 고요한 평화와 분별과 사려가 깃든 정열과 이
세상 모든 고귀한 것들의 있음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행복한 충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
한 잎의 외로운 혼' ('바다여 당신은')이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 생의 무의미성과 허망함에 대한
각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랑은 더욱 진한 빛깔의 싱싱하고 풍요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라는 식물이 뿌리를 박고 있는 비옥한 대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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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엔 내가 산기슭에 엎디어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지고한 희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기심에 의한 소유욕과 충동적인 욕망에 굴복한 행위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천박하고 타락한 시대에 있어서.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사랑이 별처럼 고귀하게 빛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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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임금이여 당신 아닌 누구도 이 가슴 안에서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이미 하나인 우리가 나의 임금이여 |
이해인 수녀는 사랑의 부재의 시대에 사랑의 부활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랑의 사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는,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로 묘사된다. 당신에의 그리움은 '죽을 것만 같은 열병'처럼 뜨겁고 절실한 것이며, 당신에의
사랑은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처럼 깊고 고통스런 것이다. 해바라기의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들은, 바로
나의 '당신께 바치는 언어'들이다. 이미 둘은 믿음과 지향과 사랑 안에서 하나로 합일된 상태이지만 나는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정말 사랑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것, 막막한 허기와 같은 것인가. 한 시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경험들의
퇴적과, 그것들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추억이 되기 위한 시간의 경과와, 또 그 추억들이 철학적 사유와 명상 속에서 저마다의
무게와 빛깔을 갖기까지의 기다림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랴. 수도자라는 남다른 생의 길로 접어들어서도 시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사랑의 약속과 함께 시와 더불어 살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며, 우리 앞에 이렇듯 맑고 투명한 시세계를
꽃피운 이해인 수녀를 알게 된 것을 우리의 행운이라고 하자.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읽는데 이런 따위의 글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의 말들은 부질없는 허사일
뿐이다. 독자들은 이런 글들을 건너 뛰어 직접 시집 속으로 뛰어들어 펄펄 튀는 생선처럼 살아 생동하는 감동과 만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얼마나 깊고 큰 사랑을 가져야만 거침없이 유일한 나의 삶은 사랑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다만 경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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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밤낮으로 틀림없이 이제는 죽어서 당신 목소리로 가득 찬 세상 바람을 보면 주신 말씀 당신과 함께 죽어서 기도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죽음의 쓴 잔을 마셔 당신을 닮지 않고는 당신을 사랑했기에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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