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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파스테르나크 / 닥터 지바고

작성자靑野|작성시간09.12.03|조회수434 목록 댓글 0

 

 

보리스 파스테르나크(Pasternak, Boris Leonidovich)

(1890.2.10 - 1960.5.30)

 

러시아 시인, 소설가   

 

장편소설 〈의사 지바고 Doctor Zhivago〉로 195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소련 내에서 커다란 반대가 야기되어 수상을 거부했다. 러시아 혁명의 잔혹함과 그 여파 속에서 펼쳐지는 방황, 정신적 고독, 사랑을 서사적으로 기술한 이 소설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소련에서는 비밀리에 번역본으로만 유포되었다.

그는 교양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레오니드는 미술교수였으며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이들은 모두 이 집안을 자주 찾은 손님이었음), 그리고 레닌의 초상화를 그렸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로자 카우프만이었다. 어린시절 파스테르나크는 조숙한 시인이었으나 음악가가 될 작정이었다. 6년간 음악이론과 작곡을 공부했으나 갑자기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어 모스크바대학교와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강좌를 수강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신체상의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는 대신 우랄 지방의 화학공장에서 근무했고 혁명 후에는 소비에트 교육부 도서관에서 일했다.
첫번째 시집은 1913년에 출간되었다. 1917년에는 놀랄 만한 2번째 시집인 〈장벽을 넘어서 Poverkh baryerov〉를 펴냈으며, 〈누이, 나의 삶 Sestra moya zhizn〉(1922)을 출간하면서 역량 있는 신인 서정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시는 상징주의의 영향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기준으로 볼 때는 비록 전위적이고 비교적(祕敎的)이었으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33~43년의 작품은 공식적인 작품양식(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너무 동떨어져 출판이 불가능했으며 1930년대말의 대숙청 기간에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가 스탈린의 고향 그루지야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했기 때문에 숙청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셰익스피어, 괴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 베를렌, 릴케 등을 번역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1956년 파스테르나크는 큰 기대에 부풀어 모스크바의 유력한 월간지에 소설 〈의사 지바고〉를 기고했으나 "10월혁명과 혁명의 주역인 인민, 소련의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비방과 함께 거부당했다. 1957년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출판사를 통해 서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인 그 출판사는 '수정을 위해' 원고를 되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영역본이 출간된 1958년에는 이미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소련에서는 파스테르나크 탄핵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으며 생계유지의 수단마저 빼앗겼다. 공공 모임에서는 그를 국외로 추방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제1서기장 흐루시초프에게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써보냈다. 그는 페레델키노의 집에서 암과 심장병에 시달리며 여생을 보냈다. 영어로 번역된 작품으로는 단편소설과 자전적 작품 〈안전 통행권 Okhrannaya gramota〉(1931), 그리고 엄숙함과 고요한 내적 관조로 끝나는 그의 시작품 전체가 있다. 1987년에야 소비에트 작가동맹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사후 복권을 허락함으로써, 1958년 작가동맹에서 추방된 이후 불법으로 되어 있던 작품들의 적법성이 인정되었고, 드디어 〈의사 지바고〉가 소련 내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주도한 평가위원회는 복권에 덧붙여 페레델키노에 있는 그의 집에 기념관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자료: 브리태니커>

 

 


1958 -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파스테르나크(Pasternak, Boris Leonidovich, 1890~1960)는 1890년 2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였다. 톨스토이의 《부활()》의 삽화 등으로 유명한 화가를 아버지로, 피아니스트를 어머니로 하여, 유대계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A.N.스크랴빈에게 사사하며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1909년 모스크바대학교의 역사·철학부에 들어갔고, 1912년 독일의 마르부르크대학교에 유학하여 신칸트파 철학을 공부하였다. 1914년 처녀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출간한 후, N.N.아세예프 등과 함께 미래파계의 시 그룹 ‘원심력()’에 참가하였다. 초기의 시작에는 A.A.블로크와 R.M.릴케의 영향이 강하였으며, 또 동시대의 시인 V.V.마야코프스키의 존재가 항상 의식되었다. 1917년 여름에 쓴 시집 《나의 여동생―인생》(1992년 발표)은 자연과 현실세계와의 교감()·융합() 속에서 시의 본질을 찾으려 하였다. 상징주의()를 극복한 ‘연상()’의 방법으로 그 본질을 표현하려 한 그의 독특한 시작법()이 명확하게 나타난 작품이며, 난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사시()의 장르로 기울었고, 《1905년》(1926) 《슈미트 대위》(1927) 등에서는 혁명과 개인의 운명에 대하여, 시인의 사색()을 말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운문체() 소설인 《스펙토르스키》(1931)에 계승되었는데, 거기에는 후년에 발표한 《의사 지바고 Doktor Zhivago》에 나오는 주인공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서정시에서는 1932년의 《제2의 탄생》에서 1943년의 《1번 열차에서》로 고전적인 명석함이 더해가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그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 격화되어,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그루지야 시인집》(1946) 《파우스트》(1953) 《셰익스피어 희곡집》(1953) 등은 명역()으로 알려졌다.

스탈린이 죽은 후, 그는 창작의욕을 되찾아 1957년 유일한 장편 《의사 지바고》를 완성하였으나 소련 내에서의 발표가 허락되지 않자 이탈리아에서 출판하였다. 이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놓고, 또다시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 러시아 작가동맹으로부터 제명처분되었다. 그는 당시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에게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죽음과 같다. 부디 엄한 조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탄원하여 국외추방을 면하고, 노벨문학상을 거부하였다. 1년 반 후 모스크바 교외 작가촌에서 외롭게 죽었다. 그 외에 시집 《마음이 밝아질 때》(1959), 자서전 《안전통행증》(1931) 《사람과 상황, 자전적 에세이》(1958) 등이 있다. /naver

 

노벨상을 거부한 수상자들
1938 - 쿤 (Richard Kuhn, 1900-1967), 화학상, 독일
1939 - 부테난트 (Adolf Fridrich Johann butenandt, 1903-1995), 화학상, 독일
1939 - 도마크 (Gerhard Johannes Paul Domagk, 1895-1964), 생리학 의학상, 독일
1958 - 파스테르나크 (Boris Leonidocich Pasternak, 1890~1960), 문학상, 소련
1964 -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문학상, 프랑스
1973 - 레 둑 토 (Le Duc Tho, 1911~1990), 평화상, 베트남 
 

지금까지 노벨상을 가장 많이 거부한 나라는 어디일까? 1938년 쿤(Richard Kuhn, 1900∼1967)이 화학상, 1939년 부테난트(Adolf Fridrich Johann Butenandt, 1903∼1995)가 화학상, 1939년 도마크(Gerhard Johannes Paul Domagk, 1895∼1964)가 생리의학상을 거부했는데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일인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언론가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 1889∼1938)가 1935년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결과를 국제 사회에서 자신과 나치 독일을 탐탁치않게 여긴 증거로 생각해 그 후로 독일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세계인들이 자신과 나치독일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도마크의 경우엔 체포되어 수상을 거부한다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당했고, 그로부터 8년 후 나치 독일이 패망한 뒤에야 비로소 상장과 메달을 받아갈 수 있었다. 1958년 소련의 파스테르나크 (Boris Leonidocich Pasternak, 1890∼1960)가 문학상을 이와 비슷한 이유로 거부했고, 1964년엔 프랑스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가 가장 최근인 1973년 베트남의 레둑토(Le Duc Tho, 1911∼1990)가 평화상을 거부했다. 이중 레둑토가 가장 명확한 수상 거부 이유를 밝혔는데 그가 수상을 거부한 것은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 공동수상자로 선정되었던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납죽 받아간 것은 두고두고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단상) 바람구두 2003-01-02 /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windshoes.new21.org/bbs

 

<자료: 필라테리아>

 

 

 

 파스테르나크 작품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재빠른 나날의 핵심에까지
그것들의 원인과
근원과 뿌리
본질에까지

운명과 우연의 끈을 항상 잡고서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다.

아, 만약 부분적으로라도
나에게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여덟 줄의 시를 쓰겠네.
정열의 본질에 대해서
오만과 원죄에 대해서
도주나 박해
사업상의 우연과
척골과 손에 대해서도
그것들의 법칙을 나는 찾아내겠네.
그 본질과
이니셜을
나는 다시금 반복하겠네.

 

 

 

도시의 여름

 

나는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고,

내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헤어졌는데,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외로움은

자연과 내 마음을 가득 채우니.....

덤불에서 낙엽들이 지듯

그대는 옷을 벗어던진다.

은빛 술이 담긴 가운을 입고

그대는 내 품에 안긴다.

삶이 질병보다 더 병들게 될 때

그대는 파멸의 길이 준 선물

무모함이 아름다움의 근원이니

우리들을 그토록 밀착시키누나.

 

*1958년 <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나 구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사퇴한 파스테르나크는 소설가라기 보다는 러시아문학사상 푸시킨과 맞먹는 러시아 최후의 순수예술파 시인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위 시는 <의사 지바고>에 나오는 여주인공 '라라'에게 바치는 노래인데, '지바고'는 파스테르나크 자신이며, '라라'는 실존인물인 '올가 이빈스카야'라는 미모의 여인....그녀가 34살, 그가 56살 때인 1946년 유명 문예지 사무실에서 처음 만나자 마자(그녀는 그 문예지의 편집기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사회관습적으로는 당연히 불륜관계)....올가는 그의 원고를 타이프하고, 작품출판에 따른 모든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였으며, 1960년 그가 죽을 때까지 14년 동안 그녀의 헌신적인 노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접할 수도 없었겠지요.... '지바고' 원고를 이탈리아에서 지하출판 되게 하여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한 올가는 12년 동안이나 강제수용소에 감금되기도 하였답니다.

 

***구소련치하의 압제와 질곡, 정신적 고통이 묻어나는 귀절에 주목하게 됩니다.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한 불륜관계, '삶이 질병보다 더 병들게 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파멸의 길이 준 선물'로 인식되기에 '무모함이 아름다움의 근원'임을 공감하는 연인들의 절박한 '밀착'에서 우리는 한계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을런지요?

 

<자료: bg38>

 

 

 

시의 정의

이것은 한순간 흘러 넘치는 휘파람,
이것은 짓눌린 얼음조각이 튀는 것,
이것은 잎사귀가 얼어붙는 밤,
이것은 꾀꼬리 두 마리의 논쟁.

이것은 달콤하게 시든 완두콩,
이것은 콩깍지 속 세상의 눈물,
이것은 플루트와 악보에서 화단으로
우박처럼 떨어지는 피가로의 결혼.

이것은 욕조의 깊은 바닥에서
꼭 찾아내야 하는 밤의 모든 것 ,
젖은 손바닥을 떨며
새장까지 옮겨가야 하는 별.

물 속의 널빤지보다 넓은 것은 무더위.
오리나무에 의해 무너진 창공.
이 별들의 표정으로 어울리는 것은 웃음.
하지만 우주는 소리 없는 곳.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는 『의사 지보고』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본업은 물론 소설이 아니라 시다.

<나는 미친 듯이 마야코프시키에게 빠져버렸다. 벌써 그가 그리웠다.>

마야코프스키가 자살하던 1930년, 그는 자기가 가야 할 길이 마야코프스키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깨닫는다. 그는 격정으로 가득한 마야코프스키의 삶과 죽음을 <로맨틱한 영웅주의>라고 적는다. 마야코프스키와 예세닌은 당대의 이미 하나의 전설이었다. 그네들의 자살은 이 전설의 완성이다. 하지만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이 좀 더 온건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영웅주의와 피의 냄새를 요구하지 않는 온유함>을 택했다.

확실히 파스테르나크는 <순수>의 시인이었다.


'이장욱 해설 중'
-[현대시학] 2004년 1월호에서-

 

 

 

무엇이 소중한가

유명해진다는 것은 추한 노릇이다
그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하지도 않는 것
문서로 만들어둘 필요가 없고
완성되지 않은 채 아쉬워함이 좋다.

창조의 목적은 헌신에 있는 것
명성도 아니며 성공도 아니다
어느새 쉽게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 거짓된 명성에 살아서는 안된다
단순하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우주의 사랑을 자기에게 끌어당기고
미래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삶의 흔적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그대의 길을 올 것이다
하지만 패배와 승리를
네 자신이 구별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행복

저녁의 소나기는 씻어졌다.
정원에 의하여. 결론은 이렇다.
행복은 우리들을 만나게 할 것이다.
구름 떼 같은 그런 괴로움에.

틀림없이 폭풍같은 행복은
악천후를 씻어 버린 여기저기 한길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양지꽃의 환희 같은 그런 것이다.

거기서는 세계가 갇혀있다, 카인처럼.
거기서는 변경의 따스함에 의하여
스탬프가 찍히고 잊혀지고 헐뜯기고 있다.
그리고 나뭇잎에 의하여 천둥은 비웃음을 받고 있다.

그리고 하늘의 높이에 의하여, 물방울은 딸꾹질에 의하여.
또 명료함에 의하여, 하물며
조그만 숲이 무수함에 있어서랴.
여러 개의 체가 전면적인 하나의 체로 합류된 것이다.

일단의 잎 위.
용해된 꽃봉오리의 대양.
상공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휘몰아치는 숭배의 밑바닥

덤불의 더미는 짜내어지지 않고 있다.
호색적인 솔잣새도 새장에 온통
인동덩굴이 별을 흩뿌리듯
그처럼 열정적으로 모이를 튀기지는 않는다.

 

 

 

광야의 노래

 

날개치는 소리 물방울 소리 울음소리에 맞추어
키를 두드리며 나는 새들을 길렀다.
나는 두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밤이 팔꿈치에 와 닿았다.
어둡기도 했다. 그것은 못일 수도 있고,
물결일 수도 있었다. 나는 너희들 순종의 새를 사랑했고
그 시끄러운 새까맣고 딱딱한 부리는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그것은 못일 수도 있고, 어둡기도 했다.
한밤중의 칠혹 속에서, 샛노란 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그만 보우트 밑바닥을, 물결이 갉아먹고 있었다.
새들은 서로 팔꿈치를 물어 뜯고 있었다.
어둠은 제방 목구멍에서,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새의 새끼들을 기르기 전에는
시끄러운 일그러진 목구멍 속의 탄주가,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음악의 신비


스크리야빈이 도착하자 곧 <황혼> 의 공연준비가 시작되었다. 비누갑 속의 기름종이 냄새 같은 것이 풍기는 이 공연 주제를 보다 나은 것으로 바꿨으면 했다. 공연 연습은 아침에 했고 음악학교에 가는 길은 후로가소브스키가(街)와 크로네츠카가(街)의 냉기 도는 곳을 지나 어두운 암로를 거쳐야한다. 안개 속에 잠든 거리에는 시계탑의 긴 해가 놓여져 있다. 각 탑에서는 한결같이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모든 탑은 두 번째 종소리를 갈망하고 있었으나 다른 탑은 약속이나 한 듯이 금속의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

둔중한 음향으로 수라장을 이룬 가제트노이가에서 니키츠가이가가 짓이겨진 달걀처럼 뒤범벅이 되었다. 시끄럽게 대장간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발걸음이 덜럭거렸다. 아침 청소시간에 연주회장은 마치 서커스 극장 같았다. 반 원형 극장의좌석들이 텅 비어 있었다.

차츰 일층앞 특등석이 손님으로 찼다. 어느덧 동반기로 들어가 음악은 목재 올갠에서 흘러나왔다. 이때 갑자기 일반 손님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마치 시가를 적에게 깨끗이 내주고 피난이나 하는 듯이 음악이 풀려나왔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색점들이 가지가지로 반짝이고 연탄 위에서 튀고 있었다. 이 음편들은 졸아들었다가 재빨리 하모니를 취하고 어느덧 어쩔 수 없는 체념에 이르러 심히 깊은 회오리 바람 속에서 부서져, 잦아지고 사라져 버렸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국내 발표가 허용되지 않자 1957년 이탈리아에서 출판, 다음 해에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그 후 작가는 소련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고 끝내는 노벨상을 사퇴해야 되는 궁지에 몰렸다.

 

   이 소설은 시와 산문이 교차하는 지점에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작자의 숙원이 실현된 작품이라 하겠다.

 

   소설의 주인공은 의사 유리 지바고로, 러시아혁명이 정치적.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자유의 세계로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지식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으며, 자연과의 교감, 영원한 러시아를 상징하는 여성 라라에 대한 그의 사랑, 시대의 편승자와 낙오자로 구분되는 수많은 작중인물의 운명을 통해 혁명과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환멸, 종교적인 새로운 통일적 원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 후 1965년 미국 MGM사(社)에 의해 영화화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줄거리】

   유리 지바고는 시베리아의 부유한 사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 때 어머니마저 병사하자 지바고 가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고아가 된 지바고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모스크바의 상류 지식인 가정인 화학자 그로메코 댁에 입양되었다. 그로메코 가에는 지바고와 나이가 비슷한 토냐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는 러시아에서 바로 혁명의 물결이 뒤덮던 시기였으며,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이윽고 1905년에는 모스크바 브레스니야 지역에서 무장 봉기까지 일어나는 위험한 사태로 발전되었다.

 

   지바고는 의학을 공부한 뒤, 소꼽동무인 토냐와 결혼했다. 제1차대전이 일어나자 지바고는 곧 소집되어 군의 야전병원으로 배치되었다. 거기서 부상을 당한 지바고는 간호사로 일하던 라라를 만나게 된다.

 

   라라는 소녀시절 지바고 일가를 파산하게 한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에게 능욕당한 후 계속해서 육체 관계를 가지며 그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였다. 그녀는 그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후 그녀는 성실한 청년 파샤와 결혼했으나 전쟁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을 찾고자 간호원으로 자원하여 일선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바고와 라라의 만남에서 둘은 숙명적인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덧 전쟁은 혁명으로 바뀌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지바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모스크바로 3년만에 돌아오지만, 혁명 직후의 모스크바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생활에서 가망이 없음을 느끼고 가족과 함께 우랄의 시골 마을 바투이키노로 이사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농사일에 힘을 쏟고 시를 쓰며 인생과 예술에 대한 의미를 갈구했던 지바고는 이웃 읍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지바고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신의 조화와 자연스러운 언행을 잃지 않은 라라를 사랑하게 된다.

 

   아내 모르게 라라와의 재회의 기쁨을 누리던 지바고는 어느 날 라라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되었다. 거기서 강제로 의사 일을 맡은 그는 그들의 군의관으로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빨치산 부대와 함께 생활하면서 지바고는 백위군과 빨치산,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배반과 복수의 잔인한 행위를 직접 목격한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탈출한다. 지바고는 바투이키노로 가서 폐허가 된 마을에 숨어 살았다.

 

   라라는 그때까지 지바고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사랑은 한층 더 깊어졌다. 지바고의 가족들은 이미 유럽으로 떠나 있었다. 지바고와 라라의 샐활은 깊은 애정으로 맺어졌으나, 새 정권하에 그들의 사랑은 어울리지 않았다. 바투이키노의 숲 속으로 피신한 이들 두 사람 앞에 지난날  라라에게 큰 상처를 남겼던 코마로프스키가 나타났던 것이다. 지바고는 코마로프스키가 그들을 극동의 안전지대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하자 라라 모녀를 넘겨주고 만다. 결국 지바고와 라라는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라라와 헤어진 지바고는 걸어서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의 생활과 건강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지바고는 모스크바에서 다른 여자, 옛날 하인이었던 사람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직업적으로는 의사였으나 그의 정열을 온통 문필에 쏟아 시를 쓰고 번역하는 일로 궁핍한 생활을 꾸려나갔다. 가끔 유럽에서 토냐로부터 편지가 왔으나 지바고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8월 하순, 그는 취직한 병원에 출근하려고 전차를 탔다. 허탈한 가슴을 안고 지나온 과거의 영상을 되새기면서... 그러다 그는 길바닥에 뛰어내려 쓰러진 채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모스크바에 들렀던 라라는 우연히 지바고의 상가(喪家)를 발견하고는 슬픔에 오열하고 만다.

 

【감상】

   <닥터 지바고>는 역사의 거센 풍랑에 휩쓸려 희롱당하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10년 동안 이 작품을 위해 공들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결국 포기해 버린 작품이기도 하다.

 

   닥터 지바고의 일생은 소련의 인텔레겐차의 생애와 죽음의 이야기이며, 인텔리겐차가 혁명 속으로 들어가 혁명을 거치는 과정과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줄거리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우연에 의한 사건이 지나친 감도 있으나, 주인공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있다. 옛 소련의 인텔리겐차의 모습으로 지바고는 등장하지만 그는 국민의 고뇌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일반 대중들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혁명 속에서도 자신의 진리와 예술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였던 인물이다.

 

   이는 자신을 둘어싼 전쟁과 혁명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정신의 독립을 찾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자신의 생의 목적을 삶을 지키는 것에 두고 있지만, 혁명에 대한 소외감은 차츰 적대감으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면서 혁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삶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파스테르나크는 지바고를 자신의 분신 같이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장편이고, 이전에는 시인으로 일관해 왔던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 작품에 나오는 시대 상황의 묘사와 현장감의 사실성은 소련 대륙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체는 너무도 시적(詩的)인 것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지만 파스테르나크가 193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에 대해 결정적으로 영향받은 것은, 혁명의 그늘과 인간적인 삶에 대한 어두움이었다. 작가는 이로써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자유에 대한 인식을 이 작품을 통해 던져 주려 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러시아 혁명이 정치적, 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 상황 속에서 개인적인 자유의 세계를 영위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료: 碧 空 無 限>

 

 

 

영화 <닥터 지바고>

 

 


나는 한번도 발을 헛딛지 않는 낙오하지도 않고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은 좋아할수가 없소.
그런 사람의 미덕이란 광활한 설원을 가르며 기적소리만 남긴 채 달리는 기차의 질주와 러시아 들꽃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내 사랑 어디에'(Somewhere my love)의 선율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를 우리는 기억한다.

사랑은 끝없는 절망감을 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이 작품의 작가는 시인이며 소설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그는 닥터 지바고의 집필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같은 걸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나는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요
생명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 사람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단 말이요

영화 "닥터지바고" 중 "지바고"의 말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57) 작가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L.Pasternak)

1890년 모스크바에서 출생하여 모스크바대학 법학부와 문학부를 마치고 독일 말부르크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했다. 구름속의 쌍둥이,방벽위로등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시를 발표했으며, 혁명후 난해한 시를 쓴다고 정부의 비난을 받아 한동안 시 작업을 중단하고
주로 셰익스피어의 시 번역에 종사하기도 했다.

1958년 ;닥터 지바고가 노벨상을 받았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수상이 거절되고 작가동맹에서 추방, 1960년에 5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소설 닥터 지바고는 한마디로 말해서 철학적인 관념소설...
작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지바고에게 러시아 인텔리의 양심을 대변시키고, 여주인공 라라에게 러시아의 국토와 민중을 상징 시키고 있다.

닥터 지바고는 상징된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순수한 지식인과 러시아의 민중이 공산주의 혁명과 전체주의적인 횡포에 의해서 무참히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한 현대의 비극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의 기초라고 말하는 지바고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명력의 최고 형태로 보면서 선은 반드시 선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역설한다. 지바고는 소용돌이 치는 역사의 혼돈 속에서 인생의 실패만을 거듭하다가 허무와 실의속에 비참한 일생을 마치고 만다.

결국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폭력배에 의한 러시아 혁명의 배신과 인간부정에 대한 지식인의 무력한 항의로 빚어진 비극이라고 할 수있다.

한편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서정시적인 아름다움과 서사시적인 전개, 극도로 세련된 문체와 철학적인 사색, 심오한 종교관은 이 작품을 불멸의 고전으로 승화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감독 : 데이비드 린
주연 : 오마샤리프,제랄드 체플린,시오반 멕켄나


1999 어린 유리 지바고는 눈이 몹시 오는 어느 날 부모의 장례를 치른다. 그날 밤 천둥과
눈보라가 치는 유리창에 어리는 소년의 슬프고 맑은 눈동자는 그 소년이 시인의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듯하다. 다른 가문에 입양된 유리는 성장하면서 격동하는 조국의 급격한 변화의 현장을 직접 보고 몸소 체험하게 된다.

차츰 앞날에 대해 꿈을 꾸던 유리 지바고는 가난한 민중을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성장하면서 그는 의학공부와 시작(詩作)을 병행하게 되고 양부모의 딸인 토냐와 약혼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여인 라라를 만나게 된다.

라라는 강하면서 부드럽고 정열적이면서도 지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능욕한 사내 코마로프스키에게 무도회장에서 총을 쏴 부상을 입힌다. 이 현장에 있던 지바고는 라라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었다. 


 

 



현장에서 그녀를 데리고 간 애인은 조국 러시아의 개혁을 꿈꾸는 파샤라는 청년이었다.
지바고는 토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의사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시를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얼마 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전장에 나간다.

마침 종군 간호사가 된 라라가 그의 부대로 오게 되어 두 사람은 기쁘게 재회한다. 라라는 애인 파샤와 결혼했으나 전장에서 파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후 그녀는 종군 간호사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적 사랑을 느끼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두 사람은 다시 이별을 맞는다.
붉은 군대가 러시아 전역을 장악하게 되고 자신이 써놓은 시들 때문에 숙청 대상에 오른 것을 새로운 혁명 세력의 간부인 이복형 예브그라프를 통해 전해들은 지바고는 이복형의 도움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우랄산맥 근처 오지인 바리끼노로 피신한다.

오지이지만 고즈녁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던 지바고는 시내에 나갔다가 도서관에 들르던 중 다시 라라와 재회한다.

이들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고
설원을 오가며 두 사람은 일생 최고의 정열과
사랑을 경험한다.

지바고는 토냐와 라라 사이를 오가며 불안하지만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본다.

오랜만에 마음껏 시도 쓴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오래가지 못하고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시대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바고를 에워싼다.

또한 아내 토냐에 대한 죄책감이지바고를 억누른다.  그리고 라라의 남편 파샤가 사실은 죽지않고 붉은 군대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라라를 찾아오다가 살해당했음을 코마로프스키에게 듣게 된다.
이제 드넓은 설원에서 꽃피웠던 사랑을 멈추고 라라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권력을 쥐고 있는 코마로프스키에게 지바고는 라라의 안전을 부탁한다.

그들은 다시 너무나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된다. 이별이 못내 아쉬운 지바고는 이층으로 올라가 떠나는 라라 안티포바를 바라본다.
지바고는 그후 다시 빨치산에 붙잡혀 강제로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다.

가족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유리 지바고는 전차에서 막 내려서는 라라의 모습을 보고 서둘러 달려가다 심장마비로 길바닥에 쓰러진다.
라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혼란의 와중에 잃어버린 사랑하는 지바고와 자신의 핏줄인 딸을 찾아 여기 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역사의 격동기, 혁명의 혼란 속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휘말려 들어갔던 연인들은 사랑과 가족과 핏줄과 청춘을 잃고 덧없이 스쳐갔던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라라와의 여섯 번 째 만남. 차를 타고 지나가던 지바고는 어 디론가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라라를 보고 내린다.
그러나 세월의 흔적은 그를 이미 많이 쇠약하게 만들었다. 따뜻한 햇살의 오후,

스카프를 쓰고 걸어가는 종종걸음의 라라, 떠나는 라라를 부르려 하지만 그에게 운명은 돌아선지 오래.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리는 지바고. 이제는 고난의 세월이 온몸에 젖어 있는 지바고의 늙은 모습, 차가운 시베리아 오후의 햇살은 차라리 뜨겁고 그래서 지켜보는 관객은 가슴 아프다.

영화 내내 그려지던 아름다운 영상이 어느 것 하나 잊혀지질 않는다. 물론 本妻 토냐와의 사랑도 애틋하지만 역시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눈물겹다.

마지막 장면엔 「닥터 지바고」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라라가 머리를 흔들며 코너를 돌아 가고 지바고가 라라를 부르면서 심장이 멎어 쓰러질 때 우리는 닥터 지바고와 함께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한참 동안 눈을 뜰 수가 없다. 


 

 

 

Main Theme - Somewhere My Love / Connie Francis

 

<자료: 14k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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