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한국의 근대 작가이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1910년 이발업에 종사하던 부 김연창(金演昌)과 모 박세창(朴世昌)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12년 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거쳤고 졸업 후에는 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취직하였다.
1931년 처녀시 ‘이상한가역반응’,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여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지만 난해시라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15회로 중단하였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의 편집을 맡아 1집만 내고 그만두고,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이해,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종생기' ,'권태', '환시기' 등을 쓰고, '봉별기'가 <여성>에 발표되었다.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도쿄 니시칸다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지만,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향년 만26년 7개월에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필명 유래
이상의 필명에 대해서는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시,현장의 일본인들이 그를 이씨로 잘못알고 李さん(이상)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림에 재주가 뛰어난 이상이 디자인한 고교의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는 서명이 있어, 건축기사 근무 이전에 이미 이상이란 필명을 쓰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작품 목록
소설
- 《날개》
- 《종생기》
- 《단발(斷髮)》
- 《실화(失花)》
- 《환시기(幻視記)》
- 《동해(童骸)》
- 《봉별기(逢別記)》
- 《지주회축(지鼄會豖)》
- 《지도의 암실》
- 《김유정》
- 《황소와 도깨비》
수필
- 《권태》
시
<자료: 위키백과>
【작품세계】
1936년 9월 <조광>에 발표한 단편 <날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며,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그의 자의식의 발로가 보다 심화된 <종생기>,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작품 <봉별기>도 그의 대표작으로서 일제시대의 작가들 중에서도 유달리 중요하게 인식되는 작가로서 시인으로서도 우수한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30년대 후반에 유행된 자의식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며, 우리 나라 최초로 심리주의 적인 수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독특한 위트와 패러독스로 근대적 자의 의식을 강렬하게 옹립하고 나섰으며, 그의 자의식의 특이한 점은 작중 인물 등이 자의식의 실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는 심리주의 기법에 의해 내면세계를 다룬 초현실주의 기법과 심리주의 경향의 난해한 실험적인 작품을 썼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시와 소설에서 공통된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난해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피해 망상적인 데’ 있으며, 그의 세계는 ‘당대의 세기말적 위기감으로부터 우러나온 현대인의 고민을 천재적 재능을 빌어 표출한 것’이라는 찬사와 ‘자기기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 속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오감도>에서 거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언어를 실험한다든지, 그 외의 작품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나 고등 대수의 수식까지도 사용했다.
▶그의 초현실주의 시들은 몽환의 분위기와 의식의 착란이라고 하며, 이상의 이런 시작 태도는 당대에 심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문학의 특징이 개성화에 있다고 한다면, 그의 문학적 특징이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문학사상의 위치】
1935년 전후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자의식 문학 시대에 있어, 이 땅의 대표적인 자의식의 작가이며, 초현실주의의 시인으로 그는 우리 문학사상 가장 이채로운 존재로 평가된다.
<자료: 이상의 등단시가 실려있는 잡지 / 장석주>
이상의 작품(詩)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잇소
내말을못알라듯는딱한귀가두개나잇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握手를바들줄몰으는 - 握手를몰으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만은
거울아니엿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햇겟소
나는至今거울을안가졌소만은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잇소
잘은모르지만외로운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만은
또꽤닮앗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자화상
여기는도무지 어느나라인지 分간을할수없다. 거기는 太古와繼承하는 版圖가있을뿐이다. 여기는 廢허다 피라밋드와같은 코가있다. 그구녕으로는 悠久한것이드나들고있다. 空氣는 퇴色되지않는다.그것은先祖가혹은 내前身이呼吸하던바도그것이다. 瞳孔에는 蒼空이凝固하여있으니 太古의影像의略圖다. 여기는 아무記憶도 遺言되어있지는않다. 文字가 달아없어진 碑石처럼文明의 雜踏한 것이 귀를 그냥지나갈뿐이다. 누구는 이것이 떼드마스크(死面)라고 그랬다. 또누구는 떼드마스크는 盜賊맞었다고 그랬다. 주검은서리와같이 내려있다 풀이말러버리듯이 수염은자라지않는채거칠어갈뿐이다. 그리고 天氣모양에 따라서입은 커다란소리로외우친다-水流처럼
아침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肺壁)에 그을음이 앉는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실어 내가기도 하고 실어 들여오기도 하다가 잊어 버리고 새벽이 된다. 폐에도 아침이 켜진다. 밤 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나 살펴본다. 습관이 도로 와 있다. 다만 내 치사(侈奢)한 책이 여러 장 찢겼다. 초췌한 결론 위에 아침 햇살이 자세히 적힌다. 영원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이런 시
역사를 하느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꺼집어 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 날 밤에 한 소나기하였으니, 필시 그들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틋날 가 보니까 번괴(變怪)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럼이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화로
방거죽에극한(極寒)이와닿았다. 극한이방속을넘본다. 방안은견딘다. 나는독서의뜻과함께힘이든다. 화로를꽉쥐고집의집중을잡아당기면유리창이움푹해지면서극한이혹처럼방을누빈다. 참다못하여화로는식고차갑기때문에나는적당스러운방안에서쩔쩔맨다. 어느바다에조수가이나보다. 잘다져진방바닥에서어머니가생기고어머니는내아픈데에서화로를떼어가지고부엌으로나가신다. 나는겨우폭동을기억하는데내게서는억지로가지가돋는다. 두팔을벌리고유리창을가로막으면빨래방망이가내등의더러운의상을두들긴다.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 -- 기적이다. 기침약처럼따끈따끈한화로를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위에올라서면독서는겁이나서곤두박질을친다.
소영위제(素榮爲題)
1
달빛속에있는네얼굴앞에서내얼굴은한장얇은피부가되어너를칭찬하는내말씀이발언하지아니하고미닫이를간지르는한숨처럼동백꽃밭내음새지니고있는네머리털속으로기어들면서모심드키내설움을하나하나심어가네다.
2
진흙밭헤매일적에네구두뒤축이눌러놓는자죽에비내려가득고였으니이는온갖네거짓네농담에한없이고단한이설움을곡(哭)으로울기전에땅에놓아하늘에부어놓는내억울한술잔네발자국이진흙밭을헤매이며헤뜨러놓음이냐.
3
달빛이내등에묻은거적자국이앉으면내그림자에는실고추같은피가아물거리고대신혈관에는달빛에놀래인냉수가방울방울젖기로니너는벽돌을씹어삼킨원통하게배고파이지러진헝겊심장을들여다보면서어항이라하느냐.
정식(正式)
너는누구냐그러나門밖에와서門을뚜드리며門을열라고외치니나를찾는一心이아니고또내가너를도무지모른다고한들나는차마그대로네어버려둘수는없어서門을열어주려하나門은안으로만고리가걸린것이아니라밖으로도너는모르게잠겨있으니안에서만열어주면무엇하느냐너는누구기에구태여닫힌門앞에탄생하였느냐
파첩(破帖)
1.
우아한 여적(女賊)이 내 뒤를 밟는다고 상상하라
내 문 빗장을 내가 지르는 소리는 내 심두(心頭)의 동결(凍結)하는 녹음이거나 그 "겹"이거나......
-- 무정하구나 --
등불이 침침하니까 여적 유백(乳白)의 나체가 참 매력있는 오예(汚穢)가 아니면 건정(乾淨)이다.
절 벽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 버리고 재차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 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 - 보이지도 않는 꽃이.
척각(隻脚:외다리)
목발의 길이도 세월과 더불어 점점 길어져 갔다.
신어보지도 못 한 채 산적해가는 외짝 구두의 수효를 보면 슬프게 걸어온 거리가 짐작되었
다.
종시 제 자신은 지상의 수목의 다음 가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최 후
능금 한 알이 추락하였다. 지구는 부서질 정도만큼 상했다. 최후, 이미 여하한 정신도 발아하지 아니한다.
회한의 장
가장 무력한 사내가 되기 위해 나는 얼금뱅이었다.
세상에 한 여성조차 나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나의 나태는 안심이다.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다.
이제는 나에게 일을 하라는 자는 없다.
내가 무서워하는 지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나는 이젠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다.
봉분보다도 나의 의무는 적다.
나에겐 그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 때문도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에게도 또한 보이지 않을 게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비겁해지기에 성공한 셈이다.
날개
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아내는 손이 두고 간 돈 중에서 은화 한 푼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사다 준 벙어리에 모아 둔 돈을 몽땅 변소에 던져 버렸다. 벙어리에 돈을 넣는 것이 권태로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나는 거리로 나갔다. 번화한 거리를 걸으니 곧 피곤했으므로 생각하는 일조차 힘겨워 곧 되돌아왔다. 아내의 방문을 열어 보니 손이 와 있었다. 죄의식이 휘몰아쳤다. 밤이 깊어서 그 손은 떠났다. 나는 아내 방에 들어가서 낮에 얻은 은화와 바꾼 지폐를 도로 쥐어 주고 아내 방에서 처음으로 잠을 잤다. 며칠 뒤에도 그렇게 했다.
삼일 후엔 아내가 미닫이를 열고 먼저 나를 이끌었다. 조촐한 음식까지 차려 두었었다. 나는 어떤 선고가 내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다음날부터 나는 아내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그러나, 내게는 돈이 없었으므로 울고 있었더니 아내는 돈을 주며 자정이 넘거든 돌아오라 했다.
그 날 밤 나는 비를 함빡 맞아 기어코 감기로 앓아 눕고 말았다. 나는 그 후 얼마 동안 아내가 주는 약을 먹고는 잠들곤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내의 경대 위에서 최면약을 발견했다. 감기 약이라면서 주던 약에 틀림없었다. 나는 몹시 서운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산으로 갔다. 나는 그 약을 먹고는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아내의 방을 지나려다 기어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내 멱살을 쥐고 나를 덮치고 물어뜯었다.
나는 거리로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쓰꼬시(和信百貨店)로 갔다. 나는 거기서 스물 여섯 해를 회고했다. 피로와 공포 때문에 오탁의 거리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굽어보니 현란한 현실 속에 사람들이 수선을 떨고 있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 나는 이렇게 외쳤다.
날개는 한 인간이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된 개인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것이다.
이는 소설 첫부분에서 '나는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는 구절이 나와 화자인'내'가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는 개인임을 밝힌다.
이런 인간관계는 공동체적 의식이 소멸된 근대 도시 사회 특유의 인간관계이다.
근대 사회에서는 인간이 소외와 고립이라는 현상이 생겨 나며, 자아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과 함께 심할 경우 정신분열 현상의 증후까지도 나타난다. 날개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근대사회의 특수한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외부의 세계,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도 맺지않는다. 그에게는 이름이 없고(끝까지 소설에서 밝혀지지 않고), 개인으로서는 역사가 없고 , 직업이 없으며, 생활도 없다. 그를 외부의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끈은 아내이다.
아내가 매개 역할을 하고 있을 때에만, '나'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진다. 은화를 모아다 아내에게 주면 그의 방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기 전에는 은화란 주인공에게 반짝거리는 장난감 이상이 아닌 것이다. (돈을 장난감으로 취급하는데서 보이듯, 그의 사물의 일상적 용도나 가치를 뒤집는다. 그의 세계에서는 가치가 전도되어 나타나며, 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사회적 가치가 아닌 본래적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나'와 아내의 관계라는 것도, 서로 다른 방에서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아내는'나'남편으로서라기보다는 식객으로서 대우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에 의해 먹고사는 무기력한 인간이다.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그의 욕망은 모두 아내를 향하는 왜소한 것이다. 다른 어떤 욕망이나 이상은 그에게 남아 있지 않다. 아내에게 수모를 당하고 거리로 나왔을 때, 미쓰꼬시 옥상에서 '나'는 문득, 날고 싶어진다. 이상과 욕망을 되찾고 자신의 날개로 '한 번만 더' 날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설 전반에서 드러나듯,그의 자아는 이미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미쓰시꼬 옥상에서 날아보겠다는것이 현실적으로 그에게 의미하는 것은, 비상이 아니라 죽음이다.
즉 '나'에게는 애초에 ,죽음에의 은밀한 욕망 역시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李箱)의 문학세계
― 그는 내게 암호였고, 암초였다
/ 윤대녕
이상(李箱). 한일합방이 되던 해인 1910년 음력 8월 20일 서울 사직동에서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1937년 4월 17일 27세의 나이로 동경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이것이 자연인 이상(李箱), 아니 김해경의 호적부다.
시인 고은(高銀)은 그의 <이상평전>에서,
"이상은 그의 시대를 정규적인 상황의식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 자신의 고민을 시대에 만화처럼 투여함으로써 그가 산 시대 전부를 희극으로 몰수해 버린 예술가의 광태를 유감없이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우 행복한 파산자였다."
라고 쓰고 있다.
오만과 천재성에서 비롯된 자의식과 일제의 식민지가 되던 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식민지의 주민으로 근대라는 화두(話頭)와 부딪치며 살다간 그는 아닌 게 아니라 이 땅에 출현한 최초의 모더니스트였다.
그의 문체는 흔히 점토질로 불리거니와 국한문혼용체는 그만 두고라도 기하, 아라비아 숫자, 일본어, 그리고 선과 각의 무수한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기호들의 실험실에 갇혀 박제의 문학을 낳게 되었다.
돌아보건대 고등학생인 나이에 나는 저 식민지의 잔재인 삭발머리와 검정교복 차림이었으므로 '삼중당'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이상 시소설집>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허장을 부리고 다녔으니 이상(李箱)이 곧 내게는 암호였고 암초였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으랴. 피로에 극(極)한 새벽엔 또 누군들 그의 시 <거울>이나 <꽃나무>를 한번쯤 외지 않았으랴. 그 바닥 모를 권태와 허무의 쓰디쓴 맛봄 없이 어찌 이십대의 저 어둠침침한 교각 밑을 지나왔으랴. 우리는 그이처럼 조숙과 과속으로 살 수 없었으므로 아주 느리게 미완성의 질곡을 지나오면서 꼽추 화가 구본웅이 그린 <책임의사> 이상(李箱)의 환영을 얼핏얼핏 바라보지 않았던가.
그가 전후문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한국문학 또한 카프와 함께 그의 피를 수혈해 생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달린과 아스피린으로 연명하며 카프의 저쪽에서, 가의식(假意識)만으로 혼자 근대라는 회색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자 했던 그는 그리하여 자칭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문학에 있어서 '이상(李箱)의 발견'은 한 연호(年號)의 발견이며 동시에 근대의 발견이란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다.
그의 소설 <날개>의 끝머리에서 한국 현대문학은 이렇게 되풀이하며 무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은 누구인가
/ 고은
이상은 누구인가. 그는 반민족의 사람이 아닌가. 그는 퇴폐의 사람이 아닌가. 이러한 물음과 함께 이상의 문학과 삶은 현대 한국 문학에 있어서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주 부닥친다.
말이 문학 또는 사상의 바탕이라면 그의 문학은 일단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익힌 일본어로 된 그의 문학이 번역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쾌한 원죄를 그의 시와 소설, 그리고 산문 따위의 모든 의식의 작희(作戱)에 뒤집어씌울 수 있다. 그의 문학은 그의 짧고 불행한 삶만큼이나 불행하다는 사실을 그가 누려온 온갖 영광과 함께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은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요.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열자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領收)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릴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날아 보자꾸나.
1910∼1937년의 이 상이 남겨 놓은 이단자적인 업적과 암담하기 짝이 없는 추문, 오만하여 자기 폐쇄적인 자의식의 허장성세는 바로 그 때문에 이상과 오늘의 문학이 만나는 충동을 낳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첫째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한 민족적 저항의 큰 줄기들이 해체되거나 유망(流亡)한 1930년대의 몇 해 동안을 그의 기괴한 문학 활동으로 살다가 중단된다. 이 점은 퍽 역사 단계와 한 문학인의 병적적(病跡的)인 삶의 관계라는 눈으로 본다면 상징적이게 하고 있다. 말하자면 민족의 뜨거운 회복 명분의 잠적과 함께 그 같은 민족의식을 형성하지 못한 이상 또는 그 동시대 문학인들이 출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동시대 자체로부터도 소수자의 찬성과 동의를 얻었을 뿐 식민지 민중과는 동떨어진 일제 총독의 문화정치(文化政治)라는 반민족적 부르조아 문학의 첨단에서 그의 부정 정신에 의한 문학적 실험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이상의 모든 것은 그의 당대뿐 아니라 훨씬 뒤의 1950년대 전후 문학에서까지 프랑스 실존주의적 행태와 비교될 만큼 이단자 또는 이방인적인 매혹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전후 세대로서의 새로운 문학을 외치는 자들이나 대학의 문학 지망자들의 대부분이 이상의 모사자 또는 추종자가 되는 일로서 '뭔가 새로운 문학'에 대한 동질화를 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상은 이러한 대상이 되기에 집중적으로 충분한 여러 현상을 갖추고 있다. 첫째 그의 비전래적, 비토속적인 모더니티가 무한하게 사로잡고 있는 자아의식이다. 아마도 민족의식의 완전한 결핍으로서 그는 그러한 자아의식을 거의 퇴영적으로 심화시킨 것 같다. 이런 점은 1950전대 전후 세대는 민족상잔이라는 비극, 분단의 비극, 적대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전혀 민족적이지 못한 실존주의 현상에는 썩 먹히게 된다. 바로 이런 이상의 매혹이 1970년대 민족 문학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생사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실로도 반증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에게는 문학인의 어떤 숙명 따위를 암시하는 절망적인 삶이 있다. 그것은 매우 서구적인 그의 인상과 함께 세기말의 도취적 예술 지상주의와도 관련되며 특히 그의 문학과 함께 조선조 한양 중인 계층의 후예인 그의 신분과는 전혀 단절된 다다이즘 때문인 성싶다.
셋째 그의 생애와 문단 생활의 짧은 기간이라는 사실이 요절 또는 어떤 특이한 불행을 애호하는 자들의 우상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상 문학이 발휘하고 있는 관념적인 찌꺼기를, 의식의 굴절된 모양, 잘 암기된 에그조티즘과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서 숨기는 뻔뻔스러운 위장술 그리고 그의 비여성적 여성 유희와 딱딱 잘라지는 진행 마비의 수사와 화술 따위는 더할 나위 없이 요구되는 문학 입문의 극치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시대를 정규적인 상황 의식이나 역사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그 자신의 절망 고민과 선택되어진 인간적 모멸감 따위로써 모든 삶의 건강한 표면을 희극적으로 부정함으로써 그는 예술가의 광태를 유감없이 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들어서 필자는 1천 6백 장의 <이상평전>에서 그를 '행복한 파산자'라고 낙인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는 그의 시대와 그가 산 식민지 사회를 전혀 문화적 귀족 계층을 자임하면서 일종의 근대적 낙후현상으로만 오만불손하게 폄하했다. 그것은 그가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중단되기 전후에 보여 준 그의 태도로도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그는 그의 문학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면서 그 한탄을 적절하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이 말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소갈머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즉, 이상의 자아의식은 일종의 선진국 문학을 지향, 추수(追隨)하는 근대 의식이라는 것, 그것이 민족의 삶에 값하는 역사 또는 상황에 대한 의식과 결합되지 못하는 단순한 모더니즘이라는 것으로 밝혀진다.
이 같은 모더니즘 이론은 그 근거지였던 최재서에게 기다리고 있는 함정이 친일 문학 및 의사(擬似) 일본인이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철저한 식민지 지식인의 애완물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 문학을 통틀어 식민지 문학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이상의 경우는 가장 그 특징의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민족 내부의 삶을 나누어 가지는 외상도 일제에 대한 정치적 갈등도 또는 일제하의 사회 현실에 대한 현실 설정이 불가능한 채 일본어와 건축 물리 분야의 외국어 차용의 취미가 곧 모더니즘의 조건이 되었다.
그는 민족어로서의 국어에 대한 문학의 궁극의 명제를 가지지 않고 도리어 그런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난 모더니티만이 시간적으로 그의 문학을 가장 앞선 것이라는 자기도취에만 전념한 것이다.
사람이란 그가 사는 시대가 뒤떨어진 시대일 때는 그 뒤떨어진 상태에 그 자신의 의식의 기점을 두고 그 시대를 정당하게 극복하는 조건을 얻게 된다. 그런 경우 이상은 그의 시대와 사회를 그가 만들고 있는 독단적인 문학 밖으로 방기해 버린 범죄가 남겨진다. 여기에서 이상은 이상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황과 역사를 마취시킨 근대 문학의 한 문예주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이제야 겨우 정리된 실정에 있다. 이상 문학은 이른바 문학의 초기 단계의 문학적 징후에 체험되는 첫걸음이 되며 그것이 우리에게 이상의 원죄와의 동질화라는 함정에 빠지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학의 모델 개선으로 이상을 만나고 있으나 이러한 이상 체험자들은 다시 이상에게 돌아가는 일이란 없다. 여기에서 그가 우리 문학에 대한 회의적 원천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문학의 장기화는 결국 이상 문학의 무효화에 기여하는 사실을 우리는 문학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 앞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어떤 뜻에서 그는 바로 이러한 무효화된 문학의 비밀에 그의 진실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 슬픈, 젊은 문학인에게 지나친 기대와 짐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이광수이래 한국의 식민지 작가 또는 근대 작가의 특질이 현실을 감당하고 역사를 발전하는 주체의 운동으로 인식하며 문학을 문학의 밖, 비문학의 곳에 실천적으로 확대시키는 일을 할 수 없는 데 있다. 기껏해야 연애나 몇 번 하는 것 방랑하는 것 따위로 문학적 체험을 장식해 온 터이다. 이상은 그의 숙명적인 폐병, 조루증과 성기능 퇴화가 그의 문학을 만들어 낼 때의 신체 의학적인 절실성을 가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전형적인 서울 사람, 중인 계층이라는 사실이 선대 문학, 토착 문학의 지방적 체질을 가지지 못하는 조건이 되어서 민족의 밑바닥으로부터 말을 굴착하지 못하고 바로 근대 의식의 중심지에서 그 의식으로 호도되고 만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에게는 자연도 없으며, 어쩌다가 부닥친 자연으로서의 시골 녹음의 녹색에 절망하는 실태밖에 없을 경우 그에게는 전래하는 자연 사상의 폐습조차도 틈입할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 '최후의 모더니스트' 이상의 최초적 반자연적 문학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최소한 자연 발생적으로 자연에 귀속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적 증상에 귀화한 최초의 근대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箱)은 부정과 더불어 시작된 현대 문학과 현대인을 성찰함에 있어서 동시대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작가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문학사적 의의를 넘어서는 것임을 말해준다."
라고 정명환의 <부정과 생성>이 기술한 일은 바로 이러한 이상의 문학 외적 진동폭에 대한 이해인 것 같다.
이상은 여기서부터, 그에게 민족 또는 역사에 대한 무의식 상태와 함께 자연이나 사회의 기존 가치들로부터 독립된다. 그 독립이란 물론 변증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관념적 이미지적 유희 안에서 습관의 영광을 이루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상의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문학이라는, 식민지 세속 사회의 어떤 호응과도 절연된 그의 실험 문학을 정당화시키기에는 그의 문학이 당대에 이해되지 않았던 것 이상으로 모자라고 있다.
이를테면 문화 이식사적(利殖史的)인 측면을 강조할 경우 근대화, 또는 근대라는 개념들은 중국.베트남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시아 정체 사회가 받은 크나큰 서구 침략주의의 충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아시아 여러 나라가 식민지 정책에 의한 근대화 과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 근대화 과정 자체가 식민지 정착화, 영구화를 목적으로 하는 타율적인 원칙이 숨겨져 있게 된다. 근대화란 결국 식민지화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그러므로 지나친 것만은 아니다. 이상의 모더니즘은 바로 이러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문학 내용에는 민족 단위의 고민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아직까지도 한말 이래의 항일 운동이 완전히 절멸된 것은 아닌 1930년대에 이상은 철저하게 일본화된 것이다. 여기에서나 그의 중인 계층의 기질이 드러나는 슬픔이 있다. 중인이란 간단히 말하면 아전 떨거지다. 기회주의 현실주의 실지에 민감한 델리커시가 부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꼭 이상을 거기에 조합시키려는 것은 아니나 그에게 있어서는 유교 정치 5백 년의 어떤 양반적 위의도 전래적인 불교의 무상감이나 관용도 보이지 않고 서울 중인으로서의 한계가 잘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문학은 문학에 깊이 간여함에 따라 민족 및 민족적 특수성에 대한 편집을 해소하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특수성과 보편성은 결코 대립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서로 보완하는 가치의 경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말을 빼앗겨 가고 글을 불온한 기록으로 인식해야 하는 일제 시대의 사회에서 이상은 그가 속해 있는 식민지 사회의 전체상으로서의 비극을 한 번도 정면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서 절실한 문학의 방법이 찾아지지 못한 것이라는 귀결에 이른다.
그의 절망은 아마도 그의 삶을 좀먹어 가고 있기는 했으나 감미로우며 가장 편안한 절망이었을 것이다. 모더니스트로서의 문학적 예술적 선진은, 진정한 근대적 자아의 발견이 반봉건ㆍ반외세ㆍ반제라는 원칙적 명제와 함께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은 후자의 고난으로부터 도피하여 전자의 비현실적 자기 정체 안의 누에고치로 존재한 것이다.
아마도 그의 동시대에 그와 함께 술을 마셨거나, 그와 함께 몇 마디 말을 한 사람들은 추억의 미화를 통해서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그가 천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한 회고는 어떤 이름 없는 사기꾼이나 변호사법 위반자의 회고에도 그대로 해당할 뿐이다.
이상은 절대로 '천재'일 뿐이지 괄호가 벗겨진 뒤의 천재는 아니다. 그를 그의 유가족 부스러기들이 도덕적으로 모범화시키려 들지만 그의 짧은 삶은 철저하게 부도덕하며 퇴폐적이다. 이 말은 단순한 품행 문제가 아니다.
이상은 끝내 이상(異常)이라는 동음의 다른 뜻을 남겼다. <이상한 가역 반응>이라는 그의 시 이름은 어떤 뜻에서 그 자신에 대한 단서를 표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이상한 사람일 뿐 아니라 병든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폐결핵 환자였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 문학은 근본적으로 병자의 문학이다. 그 자신의 폐병은 그의 삶을 파괴하기는 했으나 그의 병든 문학을 뒷받침하는 조건이 되었으며 도리어 그가 그렇게나마 살게 한 의지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그의 어떻게 보면 화려하며 음습한 것 같으나 실지로는 아무런 매혹거리도 아닌 몇 개의 여성 편력도 그가 외부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수단이다. 도구로 쓰여진 것이다. 이상에게 있어서 여자는 기구였다. 그런 기구로 자기 자신을 외부와 차단시켰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건전한 부부 관계나 영부인적인 아내보다는 비정상적인 여자, 창녀, 여급 따위의 여자가 훨씬 그의 비현실 반사회의 삶에는 적격자가 되는 셈이다.
이상 문학은 필자의 의견으로는 일종의 의식이 깔려 있는 아동 문학이라고 본다. 그것은 현대 한국 문학사가 이상 문학에 너무 방대한 중요항을 설정한 것까지도 크게 반성해야 하는 의도까지 포함된다. 20대의 문학이란 랭보니 뭐니 해서 떠들어대지만 철저하게 미완성의 것이며 유치한 것이다. 이상의 조숙ㆍ조로 현상 역시 완숙이나 노숙과는 다른 아동 또는 청소년으로서의 그것일 뿐이다.
그가 육중하고 현학적인 서술의 재능을 발휘하고 그의 복합적인 관념의 차조어(借造語)들의 진술ㆍ묘사에 압도당할 만하더라도 그것들의 정체는 유치한 것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만 이상은, 그가 없는 1930년대, 그가 없는 현대 문학사를 생각할 때, 그 과정 안의 구체적인 한 기원이 없어진다는 공허감 때문에 놓칠 수 없는 문학인이다. 여기에 그가 한국 문학에서의 불가결의 작가가 된다. 이런 실감은 그가 남긴 논 미니트(未完成)로서의 매혹, 에스키스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는 생생한 삶의 파편과 이삭이 풍기는 이상한 자력 그리고 그의 분열증이 이루는 끈적끈적한 삶의 파멸 따위가 반 이상 문화의 어떤 모서리에서도 그를 침몰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상 문학 총 1백 30편의 시ㆍ소설ㆍ산문들은 아직까지 그것을, 문학의 마지막 비평인 문학사의 대상으로 지속시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문학은 이상 이후 어떤 문학의 새로운 '이후(以後)'도 완벽하게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위대해서 그의 문학이 중단된 이래 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의 문학에 대한 지나친 허장성세의 관심밖에는 그의 문학이 진정한 한국 문학 내부에의 기여가 없기 때문이다.
오해와 편견은 이상 쪽에도 있었으나 그를 보는 우리에게 더 많이 후진 사회의 의식으로 작용했다. 그를 추앙하는 1950년대적인 치정(癡情) 역시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상 문학상이라는 게 제정되고 그 상을 받은 사람이 시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영예스럽다고 고백할 정도인 것이다.
이상은 양파 껍질을 자꾸 벗기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을 그에게 적용하면 이상 문학이란 결국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다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실감과 똑같은 것이다. 여기에 이상의 허망한 공동(空洞)이 그의 폐 침윤에서 보여진 허파의 구멍처럼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중요성은, 문학이 문학인의 것만으로 되며 문학이 모든 비문학의 대상이 아니라 문예주의적인 것만의 대상으로 오도된 식민지 문학 안에서의 진실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상은 식민지 문학의 행운을 통해서 가장 잘 발달한 자유의 함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일본 동경에 가서 일본 경찰에 구금된 일이 있고 그로 인해서 병사한 사실을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민족적 명분에 반영시키려 하고 그가 마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작소(鵲巢)라는 그의 별명처럼 봉두난발을 하고 껄렁껄렁 드나드는 괴상한 한 젊은이를 상투적인 경찰의 눈으로 본다면 틀림없는 어떤 피의(被疑)가 들씌워질 수 있는 대상이며 더구나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틀림없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도매금이 먹여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남긴 말이 레먼 향기 어쩌고 저쩌고였다. 이 따위 유치한 사치 따위보다 차라리 '어머니!' '이 금홍이년아!' 따위가 참다운 것이다. 그의 삶이 현학적이었던 것처럼 그의 죽음 역시 어린아이처럼 현학적이었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어(終生語)는 끝나지 않는다.
그의 '종생기'의 이 절어는 이상 문학이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음직하다. 그것은 이상에 대한 많은 오류를 지양하고 그의 문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역사 비평적 과제 앞에서 이상이 더 많은 희생물이 되어져야 하는 의미를 거느리고 있다.
이상은 찬란하도록, 딱하디딱한 사람이다. 그리고 문학이 천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믿는 봉건 시대의 누습을 폐기하여 사회의 요청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문학적 양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창조만이 곧 문학임을 알 때 거기에 이상의 허상은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상은 우리에게 진실을 밝히는 천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이상은 그러나 우리에게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현대 문학의 요괴이다. 이 요괴를 극복하느냐, 그냥 동반하면서 그와 함께 부식되느냐라는 문제는 굳이 여기서 해명할 필요는 없다.
이 해설은 예의상 이상 문학을 위한 해설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은 이러한 해설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으로서의 다다이스트인지도 모른다.
거부하는 몸짓으로-문학천재 "이상"
/ 이보영
이상의 문학은 항거의 문학이다. 그의 전례적인 창작수법을 거부한 실험성은 바로 인간과 생활과 예술에 대한 그의 한 단계 높은 희구의 결과였다. 그의 부정적 시선은 긍정적 가치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철저할 만큼의 의식적인 작가였다. 그는 자신의 반역성의 이면, 가령 그의 너무도 인간적인 반인간성이라는 자기모순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의 창작활동은 의식적인 자기기만 위였다. 그래서 <봉별기>, <종생기>에는 문학을 한 것에 대한 회오의 말이 나오곤 한다 천재의식, 범죄충동, 과대망상증, 삐뚤어진 항거의 자세로의 죄의식, 해학적인 인정 등이 빈번이 섞인다.
그의 소설은 대충 두 가지로 나뉜다 작가의 현재 생활상과 심상풍경을 다룬 <봉별기>, <지주회시>, <동해(童骸)> 같은 작품과 그 현재의 생활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쓰여진 <날개>, <종생기> 같은 아류의 작품이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두 개의 중요한 테마는 가난 속에서의 돈과 바람 같은 계집(아내)이며,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증오와 반항심을 감춘 경멸, 우롱, 자조이다 먼저 돈의 경우, 가난으로 인한 수모와 여기에 대한 복수인데 가령 <지주회시>의 주인공은 아내가 취인소 전무한테 받은 모욕적인 위자료의 반을 취인소 오의 정부 마유미에게 팁으로 줌으로써, 혹은 <날개>의 아내가 장사(매춘)하는 동안 잠자코 있으라고 준 욕된 돈을 아내에게 장난감으로 되돌려 줌으로써 복수하려는 따위이다. 다음으로 왕복엽서처럼 가출하고 돌아오고 또 나가는 아내에 대한 태도는 복종과 저항의 이중성을 보여 준다. ‘나’는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도 꼼짝 못하는 기생자의 복종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생활에는 짐짓 무관심하고 밤낮 없이 잠만 자려고 하는 소극적인 저항으로도 표시된다. (이불 속에서 뭘 연구한다는 것은 이불 속의 저항을 은연 중 암시한 말이다.)
그는 한편으로 아내를 의심하면서도 <종생기>에서는 "불의는 귀인답고 참 즐겁다"라며 간음을 찬양한다. 왜 이런 모순 현상이 생기나? 그는 아내를 의심한다. 그렇다고 그걸 표면에 나타낼 수도 없다. 그는 막다른 골목이어도 좋고 �돋� 골목이어도 좋은 무서워하고(아내가 공격할 때) 무서운(자신이 공박할 때) 아해로 위장하며, 아내가 외출을 기화로 이상적, 원초적인 순수한 여성을 꿈꾼다. 그래서 이상의 이데아적 여인상은 거개가 지고지순한 마돈나인 것이다 이상은 이처럼 그의 근본 문제로서의 돈과 여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 즉 금전고에 대한 우롱과 바람난 계집에 대한 자조적인 복종과 저항을 통해 비인간적인 사물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소극적인 항거를 시도하였다.
지금까지 말한 이상의 실상 또한 가난과 매춘으로 인한 말다툼과 성적 쾌락의 혼란 그리고 이상 스스로의 드높은 문학에 대한 열정 등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은 날개에서 타처로의 비상에 의해 <종생기>에서는 죽음, 혹은 자신의 생매장에 의하여 현재의 궁지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 비상의 현실적, 상징적 목적지는 이상이 그의 36년작의 여러 수필과 소설등의 작품에서까지 입버릇처럼 가고 싶다고 한 동경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 <종생기>는 편지에서 말한 ‘구역질이 날’ 정도의 동경에 대한 환멸까지가 그의 곤궁한 생활에 겹쳐 쓰여진 절망적인 작품이다. 여하튼 <날개>엔 기묘한 복합적인 정신상태가 나온다. 그는 자의식의 과잉 반응을 보인다. 그는 모든 사물을 결코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나, 무조건으로 어떤 대상 속에 몰입되거나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기에는 그는 너무나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비판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하지 못한다. 자신의 하나하나의 행동까지도 스스로 감시하고 비판해 가는 사람에게 행동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자의식의 과잉이 나타난다. 즉, 의식 세계는 복잡해지고 확대되는데 반비례해서 행동 세계는 단일화돼가고 축소되는 것이 그것이다.
<날개>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인 ‘나’는 이 세상이 싱거워서 못 살겠다는 권태의 심리는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나’는 아이이다 아이는 아이니까 장난을 잘하며, 장난감은 안해의 화장품과 휴지, 저금통 심지어 돈이다. 그러나 그 심층부엔 염증과 권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까 비판적으로 세상을 바라다보는 것이다. 그의 권태와 낮잠도 기실 현실에 대한 불안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아해적인 장난과 염증의 원인은 아내와 돈이다 그는 아내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한편으론 그녀를 무서워한다. 아내는 곧 생활이기도 하며 생존의 젖줄이기도 하다. <날개>에는 생활에 대한 공포와 은근히 비판적인 염기를 깊숙히 감추고 있다. 그것을 아해적인 아이러니로 감추고 있는데 생활은 끝끝내 그를 쫓아온다.
아달린 사건이 그것이다. 아내는 감기약이라고 속이고 장사(매춘)의 방해물을 없애려 한다. 그처럼 손발이 안 맞는 아내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그는 백화점 옥상에서 이 세상을 벗어 날 수 있는 날개를 원하는데, 의식적으로 퇴화된 아해의 원망이어서 매우 절실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에는 구차한 변명이나 집요한 원한, 증오, 질투, 시기 같은 진부한 감정적 요소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해가 되어 자신을 우롱한다. 그러나 그 알량한 우롱은 그러나 너무 유약해서 풍자적인 요소가 없고 서글프고 섬세한 자의식이라는 헛점이 따른다. 우리는 그 헛점을 동정하고 그는 피에로의 포우즈를 취한다. 이상의 의도는 결국 종생에 있다. 세상을 경영할 줄 몰랐던 바보인 자신의 종생이다. 단, 이상은 늘 그래 왔듯이 <종생기>에서도 한 가지 지킬 것은 지켰다. 그것은 자조다. 타인을, 세상을 경멸하고 우롱하기 이전에 비록 작가에게 바람직한 자아실현의 대안은 없었을 망정 자신부터 경멸하고 우롱했다. 그는 구구한 변명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이 싫으면 자버린다. 아내가 무서우면 이불 속으로 숨어 버린다. 끝판에는 자신을 생매장한다. 이상은 순결하다! 누구 못지않게 삶의 질서와 내면적인 조화를 희구하다 번번이 실패한 이상은 자페증이 심해졌고, 거기에 대한 소극적인 항거로서 반인간, 반생활, 반예술의 작품을 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