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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시인 나희덕 / 작품

작성자靑野|작성시간10.05.31|조회수1,280 목록 댓글 0

 

 

 

나희덕(羅喜德, 1966년 ~ )

 

대한민국시인이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 1998년 17회「김수영문학상」, 2001년 12회 「김달진문학상」, 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부문, 2003년 48회「현대문학상」, 2005년 17회「이산문학상」, 2007년 22회「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자료: 위키백과>

 

■ 작가 이야기

뿌리로부터 길어올려진 따뜻한 교감
나희덕 시인은 첫 시집 '뿌리에게'에선 전교조 탈퇴 서약서를 둘러싸고 벌이던 갈등과 양심적 고뇌를 시로 육화(肉化)시키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분위기는 사회적 모순과 한심한 교육 현실에 대한 죄의식과 분노였다. 그 내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러 시인은 "깎아도 깎아도 가벼워지지 않는 형벌"(「손톱」)이라 부르짖는다. 그런데 두 번째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서부터 시인은 무표정하고 덤덤한 일상 속에서 삶의 쓸슬함과 고통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시적 변화를 감행한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 하루 일과가 아침과 저녁이란 시간대에 따라 이중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점은 주목에 값한다. 신예 평론가 허정의 예리한 지적처럼 혼돈과 분열을 겪는 아침의 시간대와 안정감과 자아 인식을 가능케 하는 저녁의 시간대, 이것은 근본적으로 직장 여성과 어머니라는 그녀가 처한 환경의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여기서 시인은 저녁의 시간대를 지향하는데, 그 선택은 해뜬 후에 비웠던 모성의 자리를 채우는 부단한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제 나 종일 밭을 갈다가/집에 돌아오면 문득 몰매기인 나를 보네./젖무덤 아래 울고 있는 아기를 보네"('몰매기를 기억함'). 해가 뜬 시간이 아기와 가정을 떠나는 불안의 시간이라면, 어둠이 깔려 외부와 차단되는 황혼녘은 안정과 평안의 시간일 터이다.

세 번째 시집 <그 곳이 멀지 않다>의 해설을 쓴 평론가 황연산은 나희덕의 시에 잘 어울리는 꼬리표 하나를 달아 주었다. '단정한 기억'! 대상에 대한 따뜻한 응시와 교감이 기억이라는 집 속에 정갈하게 담겨져 있는 그의 시세계를 잘 요약한 말이다. 그녀는 벗어 놓은 스타킹을 하루 동안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고 표현한 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며 삶의 실천과 욕망의 건겅한 외화(外化)만이 사물에 그 기억의 날을 세운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저녁이란 시간대는 삶을 반추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희덕 시인의 쉼 없는 시적 행보를 기다려 보자. 어쨌든,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닌가. (류신/문학평론가)

■ 대표작

「 어두워진다는 것 」 창작과비평사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창작과비평사
「 뿌리에게 」 창작과비평사

 

 

 

나희덕 작품

 

 

해일

     

숲은 만조다

바람이란 바람 모두 밀려와 나무들 해초처럼 일렁이고

일렁임은 일렁거림끼리 부딪쳐 자꾸만 파도를 만든다

숲은 얼마나 오래 웅웅거리는 벌떼들을 키워온 것일까

아주 먼 데서 온 바람이 숲을 건드리자

숨죽이고 있던 모래알갱이들까지 우우 일어나 몰려다닌다

저기 거북의 등처럼 낮게 엎드린 잿빛 바위,

그 완강한 침묵조차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숲은 출렁거린다

아니라 아니라고 온몸을 흔든다 스스로 범람한다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 숲은 육탈肉脫한다

부러진 나뭇가지들 떠내려간다

 

* 어느 겨울 초입 소백산 정상 휴게소에서 들었던 바람소리, 마치 파도소리 같다 느끼며

   꼭 표현해보고 싶다던 생각이 이 시인이 먼저 선점해버렸다. 그러나 내 마음이 통한 듯

   순간을 함께 했다는 그런 우애가 느껴지는 건 좀 우스운 비약이겠지?

 

 

이 복도에서는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울움마다에는 병아리 깃털 같은 결이 있어서

들썩이는 어깨를 짚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병을 마악 알았을 때의 울음인지

죽음을 얼마 앞둔 울음인지

싸늘한 죽음 앞에서의 울음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 엄마의 병환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체험을 했던 공간, 병원.

   특히 수술실과 중환자실 앞의 풍경은 슬픔이 기쁨과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진정 아는 사람만 안다.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밧방울, 빗방울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빗물은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 달리는 버스안에서 이 시를 떠올리며 적용시켜보았던 적이 있다.

   비를 바라보며 시인은 하나도 헛으로 보지 않았나 보다.

   이 시인의 시집은 맨 끝장 까지 흥미와 여운을 주었다는 인상이다.

   차분한 말씨로 이어지는 편안함이 매력이다.

 

- 나희덕 시집 [ 어두워진다는 것 ] 중에서 - >

<자료: 서정문학>

 

 


 
달팽이는 왜 날아오르지 못할까
붉은 먹이는 붉게
푸른 먹이는 푸르게
그렇게도 정직한 배설을 한다는데
진실은 그런 거라는데
왜 날개가 돋아나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젖은 흙 속을 파고들어 연한 생살을 부비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느리게 다만 느리게
흔적 없이 기어가는 일 말고는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일 말고는 도리가 없어
이파리 한 구석에 숨은 것일까
고요히 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달팽이의 전 생애를 싣고도
왜 이파리는 흔들리지조차 않는 것일까

 

 

귀뚜라미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어두워진다는 것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찔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낯선 편지

  

오래 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 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

 

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
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

 

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
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
온몸이 눈이거나
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

 

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
네 편지를 다시 접어넣는 순간
나는 듣고 말았다
검은 포도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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