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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작가 황석영 / 작품세계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04.26|조회수1,05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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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편 황석영, 우편 홍석중(북, 소설 '황진이' 작가) / 백두산 한 호텔에서> 

 

 

황석영 / 작품세계

 

1.황석영의 삶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는 1944년에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1962년에 <사상계> 신인상을 수상했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황석영씨는 창작집 『객지』『삼포 가는 길』『돼지꿈』, 장편소설 『어둠의 자식들』『무기의 그늘』 등을 발표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사람으로 꼽혀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74년 7월부터 84년 8월까지 17세기 말 숙종시대의 의적을 그린 대하소설 『장길산』을 한국일보에 연재하며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황석영씨는 최근 『장길산』을 새로 손질해서 펴냈는데 초판에서 누락된 부분을 보충하고 수백 군데를 첨삭했으며 고증이 잘못된 곳은 국문학자 최원식 교수의 자문을 받아 바로잡는 등 심혈을 기우려 개정을 했다고 합니다.

 

황석영(본명 황수영)

1943년 만주 신경 출생
해방후 평양을 거처 6.25전쟁후 영등포에 정착
1962년 고등학교 3학년때 ‘사상계’신인문학상에 단편 “立石附近(입석부근) ”입선.
1966-67년 해병대원(청룡부대)으로 베트남전쟁 참전, 제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塔”,희곡 작품이동시 당선.
1974년 첫 소설집 “객지”간행, “장길산”연재 시작
1976년-85년 해남,광주로 이주, 민주화운동 전개. 소설집 “歌客”(1978),희곡집“장산곶매”(1980),광주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장편소설“장길산”(1976-84),“무기의 그늘”(1985,88)간행.
간척공사장에서 수개월동안 밑바닥 인생 경험,구로공단에서 일당 130원짜리 직공‘시다’노릇,
마산 자유수출공단에서 노동.-->이때의 경험들이 소설 “객지”나 “잃어버린 순이”등의 여러편의 르포지로 나타남.
1989년 3월 평양 방문, 이후 독일 예술원 초청작가로 독일 체류.“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90년 한겨레신문에 장편소설 “흐르지 않는 강”연재.
1991년 11월 미국으로 이주,롱 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뉴욕 체류.
1993년 4월 귀국, 방북사건으로 7년형 받음.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출간.

 

 

2.작품세계와 그 평가

- 작품 세계...
작가 황석영은 70년대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이정표를 세워놓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는 한 작가의 문체와 함께 그 작가의 체질이 있는데 그 또한 껄껄하고 씩씩한 남성적인 모습이 보여진다. 작품에서 보면 상황과의 부딪침에서 한발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작가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 작가의식은 그의 문학이 행동적이고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전개한다. 그의 여러 작품들은 대중과 영합하는 말초적 감각도 아니고 예술 지상주의적 미문 의식도 아니다.
그의 소설을 대할때 읽는 이는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또는 약간 지루한 듯 차분히 읽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소설이 진전되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거친 말과 욕설 또는 칙칙하고 추하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장면이 스스럼없이 제시되기도 한다.
황석영의 작품을 살펴 보면서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느껴보기로 한다.
(단 그의 소설을 편의상 관심 분야로 노동, 서민, 전쟁, 역사 등으로 분류했다.)

 

1)노동의식: “객지”
1971년 발표한 중편 <객지>는 근로자의 삶과 사회 기본 이념의 문제를 부상시킨 것으로 시대의 암벽을 뚫고 나가려는 행동정신이 보인다. 특히 <객지>는 해방이후부터 70년대에 이르는 한국문학에서 처음으로 근로 대중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작품화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객지>는 해안 간척 공사장 날품팔이 근로자들의 현실을 다룬 소설로써 언제부터인가 가 정과 고향을 떠너와 객지를 떠돌며 거친 사연과 끼니를 위한 노동에 몸을 맡기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그들은 공사장에서 인간적인 삶과 감독과 깡패들의 횡포에 저항한다. 강한 현장성과 생동감으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거의 르포 소설처럼 경제적 현실 여건에 대한 올바른 예술적 반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객지>는 저항의 표현만이 아닌 현실안에서 어우어지는 인간적인 씀씀이외 인간 옹호의 애정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그의 소설의 강점이 아닌가 싶다.

 

2)서민의식: “삼포 가는 길”,“돼지꿈”
또 다른 작품으로는 민중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사회 현실을 파헤쳐 보려는 작가 의식이 표현된 <森浦 가는 길>과 <돼지꿈>이 있다. 그 두 작품은 사회와 도시에서 밀려난 밑바닥 인생의 쓰라림과 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건강한 생명력을 읽을 수 있다.

 

<森浦 가는 길>은 영화화하였듯이 전반적인 배경이나 내용이 영화와 같은 장면을 보여 준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 공사판의 떠돌이 일꾼인 영달이 등장한다. 일자리가 없는 그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며 궁리를 하고, 우연히도 또 한사람의 막벌이 일꾼 정씨가 나타난다. 그들은 초면이지만 서로 인간적인 우애를 느끼고, 고향에 일가 친척도 없는데 정씨는 고향인 삼포로 가는 길인데 오갈 데 없는 영달도 막연히 동행한다. 그들은 계속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다 화류계의 신세를 벗어나려고 도망쳐 나온 백화라는 술집 작부를 만난다.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고향 상실적인 존재라는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그 공통점은 인간적인 유대의식을 만들고, 그들은 거점을 잃은 현재의 삶에 슬퍼하지 않고 내일은 오늘과 다른 삶이 펼쳐지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그들은 갈 길이 달라 헤어지지만, 잠시 동안이 나마 맺어졌던 그들의 인간적인 애정은 고달픈 사람들이 느끼는 훈훈함을 더 깊게 느끼게 한다.

 

<돼지꿈>은 서울 변두리 판자촌의 하루살이 생활에 대한 모습을 그렸다. 작가는 관찰자 나 외래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온갖 문화적 혜택에서 제외된 하층민의 생활 속에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상을 애처로운 遠景으로 그리거나, 주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황석영 그자신의 의식이 그 세계에 깊이 개입하고 밀착되어 표현한다.
거친 상소리와 욕설, 은어.속어가 왕성하게 발산되지만 그 안에 숨어 흐르는 연민과 사랑, 굳건한 의리와 넉넉한 인정이 생동하고 있어 여유와 익살을 느끼며 독자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작품들은 아주 사실적이다. 주변의 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그 현실들은 조금은 우리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는 당시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현실들은 대부분이 소외되고, 잊혀진 현실들이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전국토적, 전민족적 실향상태’라고 규정하였고 작품 곳곳에 노동자 중신의 뿌리 뽑힌 삶에 집착한다.

 

가) 당시의 시대상황(1970년대 한국소설)...
특색으로는 ‘사회의 밑바닥 삶’을 다루는 작품이 지배적으로 많아 졌다는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 문단 일부에서는 ‘밑바닥 인생을 그리는 것만이 소설인가’라는 비판적 견해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이 현상은 하나의 분명한 추세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의 등장은 당시 우리 사회의 이른바 급격한 국가 정책적인 산업화 추세와 거기에 따르는 이농(離農)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도시 빈민화’현실의 반영이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보이기에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듯하였지만 정작 그 속의 인간들은 그 다수로 그로 인해 오히려 소외되는 현상까지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당시 작가들에게 문제로 제기되며 그러한 현상들은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외 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러한 조류는 현대 산업사회까지도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 “삼포 가는 길”의 “길”의 의미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에서 길의 의미는?
백화
잃어버린 사람들..
무엇을 잃어 버렸을까?
결국 그들이 가려 했던 삼포는 없어졌다. 아니 원래 없었는지 모른다.
70년대말 산업의 격변기를 거처 안정화에 다다르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잃어 버렸다.
“무엇”인가? 고향인가? 인간성인가?
그들(백화)은 “무엇”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럼 여기서 “길”이란 무엇인가?
“길”은 생활 현장에서도 있지만 “길”은 그곳(생활 현장)을 떠나는 도구가 된다.
“길”은 떠남이다. 현실로부터의 탈출이다.
“길”은 장소와 장소를 이어준다.
“길”에는 목적성이 있다는 것이다.
“삶”(생활 현장)을 떠났음에도 길을 가는 것은 오히려 더 치열한 “삶”의 열망인 것이다.
어떤 “삶”일까?
그것은 “진실한”, “참” 삶이다.
“소모”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백화와 그들은 공통적으로 산업 자본 사회에서 축복의 수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받지도” 못하고 “잃어”버리기만 했다.
“길”은 그들에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다.
그 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른다.
“길”은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일 뿐이다.
부정적인 의견일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현실에의 구원이 아니라.희망은 현실을 “호도”할 수 있다.
그들에게서 작가는 “희망”(삼포)을 빼앗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혹독한 짓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그들에게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애정”으로 이상의 “단감”이 아닌 현실의 “쓴잔”을 주었다.
작가는 그들의 현실 자각을 통한 처절한 절망으로 오히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란다.
그들은 길을 떠나왔고 그것은 삶에 대한 처절한 의지의 표현이다.
“처절한”절망은 새로운 삶은 향한 시작이다.
더 이상 낙원은 없다.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3)전쟁의식: “무기의 그늘”
이 소설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황석영씨의 소설입니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황석영 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은 아시겠지요. 객지, 장길산, 한씨연대기, 어둠의 자식들 등등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도 황석영씨는 철저하게 현실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익은 이념성이나 구호를 안으로 잘 갈무리 하고 있지요.
도대체 우리에게 월남전은 무엇인지요. 월맹군, 베트콩, 빨갱이들이 들고 일어나 민주와 자유를 압살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학살한, 람보의 배경으로만 인식되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냉전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침략자들의 용병으로 그 전쟁에 참여했던 슬픈 과거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미화되어서도 안되고, 지금 우리 세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일제의 한국 침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드높을 때마다 왠지 그것이 왜소한 종족 주의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자꾸 두려워집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반성할 줄 모르는데...

“…몇 년 전의 할리우드 영화는 이 모티브(월남전)를 가지고 가해자들인 자기들이 받은 영혼의 상청 대하여 괴로워하고 우는 시늉을 했다. 전장의 비인간화 현상을 육혈포를 머리에 대고 돌리는 자살 도박(러시안 룰렛)을 포로들에게 강요한 베트남 게릴라들에게로 돌린다. 이에 이르면 2차대전 때에 전 연합군에 한달 동안 소모한 폭탄을 단 하루에 퍼부은 가해자가 영혼과 휴머니티마저 백인 전용의 것이라는 허위 의식을 퍼뜨리고 있음을 본다. 할리우드는 최근에 뿌리는 같지만 다른 두 가지의 허위의식을 만들어냈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의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자의 살육과 증오를 감상적인 귀환병의 고독과 그럴듯하게 섞은 끔찍한 오락물이다. 다른 하나는 '진실'을 드러낸다는 식으로 자기 사회 내부에서 앞으로 척결해 나가야 할 문제의 초점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일면적인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자기의 문제까지도 똑바로 보자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4)역사의식: “장길산”
이 소설에서는 구전민요, 설화, 민담, 야사 등을 거의 줄거리나 원형 그대로 도입하고 있어 구수한 우리말 쓰임과 단순하면서 명쾌한 문장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문학계의 산문 정신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에 걸쳐 연재되었고 최근 현암사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창작과 비평사에서 재 출간했다. 조선 후기 시대, 황해도 의적 장길산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다. 무협지를 능가하는 호쾌한 싸움과 재미가 넘친다. 피지배층의 다양한 삶과 모습을 그린 민중사소설이다.

 

나)“장길산”에 얽힌 이야기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종학 PD가 <장길산>을 드라마와 영화로 동시에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1996년에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극본은 송지나 씨가 쓴다고 한다. [국민일보 1995년 4월 22일자]

이 소설은 무려 3백 50만 부가 팔리고 매달 1만질씩 신규독자를 창출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인세는 어이없게도 위자료로 지불되었다고 한다. 한편 <장길산>을 인수한 창착과 비평사에서 현암사판을 고려해 1 년 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고 한다. [국민일보 1995년 2월 3일자]


* 20년 만에 재 출간된 대하소설 <<장길산>>
10 년 간 연재되었던 황석영 대하 장편소설 『장길산』8년 동안 1년에 한권씩 발간되어 2백만부 판매 기록 세우고 최근에 작가가 새로 손질해서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 한국의 대표 대하 장편소설 가운데 하나인 『장길산』.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이 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널리 알려진 우리 현대문학의 고전. 모든 고전이 다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잠깐의 화제에서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고,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떼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로 꼽히는 작품이다.
저자 황석영씨가 한국일보에 이 소설의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74년 7월. 그리고 연재를 끝마친 것이 84년 7월. 이 소설은 꼭 10년의 세월에 걸쳐 쓰여진 셈이다.
황씨는 이 소설을 쓰는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했고, 원고를 쓰는 장소도 처음에는 서울에서 시작하여 팔당․해남․광주․제주도․내장산 등으로 옮겨다니며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이며 힘겹게 완성한 작품.
그런데 이 소설은 툭하면 연재가 중단되어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이유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 황씨는 작품을 쓰는 도중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고, 건강 상태가 나빠서 부득이 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생겼다. 황씨는 그때마다 아무 연락 없이 원고를 보내지 않았고 신문사 문화부에서는 이 때문에 번번이 골치를 앓아 심지어는 연재를 완전히 중단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이 워낙 엄청났고 신문사 자체에서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이 정해진 터라 어렵게 연재가 이어진 형편.
신문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단행본 작업이 진행되어 『장길산』 제1부 첫권 초판이 발간된 것은 76년 5월. 10권 모두가 완간된 것은 84년 7월. 8년에 걸쳐 연 1권 꼴로 발간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첫 권이 나오면서부터 꾸준한 반응이 있었고, 책이 완간된 후에도 줄곧 같은 속도로 팔려 나가 현재까지 나간 부수는 2백만부. 책이 모두 10권이니까 20만질이 나간 셈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작가가 최근에 다시 손질을 해서 새롭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서점에 나왔다. 예전에 출간되었던 출판사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의 발행일은 95년 7월 20 국 그러니까 『장길산』의 초판본 첫권이 나오고 나서 꼭 20년 만에 재출간된 것이다.

 

맺음말
그의 모든 소설들을 관심 분야가 무엇이든지 간에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한국적 리얼리즘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평자에 의하면 그의 리얼리즘은 “이상주의(낭만)”과 통함이 있다고 한다.“삼포”로 대표되는 그의 이상향은 질퍽한 현실과 거친 대사 속에 잘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란 “인간애(휴머니즘)”이다. 그의 동자와 떠돌이와 전쟁에 상처받은 사람과, 천민에 대한 따스한 시각을 통해 우리는 그의 휴머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진부한 얘기가 되어 버렸지만 죽음의 극한이 삶에 통하듯이 리얼리즘의 끝은 이상주의며 “낭만”인 것이다.


-참고문헌-

“돼지꿈 외”,황석영,문예비평사
“장길산”,황석영,현암사
“무기의 그늘”,황석영,창작과 비평
“현대문학비평”,이호근,예운사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이문구,열린세상
“국민일보” 1995.2.3일,1995.4.22일자 문화란.
<남북한 독자로부터 함께 사랑받고 싶다>, 신동아 89년 6월에 실린 인터뷰 내용
<나는 작가의 양심으로 이 자리에 섰다>, 사회평론 91년 9월에 실린 인터뷰 내용
<임꺽정, 장길산, 우리식의 리얼리즘>, 사회평론 91년 10월에 실린 인터뷰 내용
<통일을 위해 문학의 길을 걷다보면 어디나 조국이었네>, 노둣돌 92년 가을호에 실린 대담
-위 자료는 <작가 황석영석방대책위원회 엮음, ꡔ사람이 살고 있었네ꡕ, 시와 사회사, 1993>에 모두 수록돼 있다(171-346쪽).

 

<출처: 신지식>

 

 

 

 

 

장편소설 「바리데기」 펴낸 작가 황석영의 외출

작가 황석영이 돌아왔다. 지난 2004년부터 유럽에 머물고 있던 그가 새 장편소설 「바리데기」(창비)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황석영은 이전보다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유쾌했던 그와의 인터뷰를 꾸밈없이 옮긴다.

“젊어 보이는 비결이요? 제 멋대로 사는 거죠.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7년 감옥살이도 즐겁게 했습니다”


역시, 황석영(64)이다. 「바리데기」의 흡인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몰입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소설 「바리데기」는 ‘작가 황석영의 힘’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문득,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북한에 갔다 온 황석영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하던 1993년, 많은 사람들이 ‘문학 천재’가 썩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찬반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당시 상당수의 문인들이 ‘살아 있는 국보를 내놓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황석영을 가둬두는 일은 생동하는 모국어를 가두는 일이라는 의미에서였다. 황석영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싶다.

 

제멋대로 사니 젊을 수밖에
올해 나이 예순넷. 그러나 황석영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참 젊으세요”라는 말에 “제멋대로 살아서 그래!”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를 따라 기자도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시원한 웃음 소리 덕분에 대작가를 만난다는 부담감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황석영의 입심과 친화력은 국보급’이라던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감옥살이를 할 당시 황석영의 별칭은 ‘총장’이었다. 황석영이 교도소의 최고 위치인 ‘소장’보다 더 높은 ‘총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입심과 친화력 덕분이었으리라. 학창 시절에도 그의 입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황석영이 결석이라도 하는 날이면 교실이 조용했을 정도. 그는 “반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하면 꼭 내 책임인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다”며 껄껄 웃었다.

“성격 자체가 낙천적이에요. 무슨 일이 생겨도 오래 고민하지 않지요. 아주 안 좋은 상황이 닥쳐도 딱 하룻밤 고민하면 끝이에요. (북한에 다녀와서) 처음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나중엔 7년형을 선고받았잖아요. 감옥에서 보낸 7년 동안 별 탈 없이 지낸 것도 다 이런 성격 덕분이었을 거예요. 그 당시 ‘감옥살이도 내 인생의 한때니까 즐겁게 잘 지내보자’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성격 아니었으면 좌절하거나 무너졌을 거예요. 분명히.”

 

‘바리’는 ‘생명의 공주’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리데기」는 바리데기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바리데기 신화는 버려진 한 여자아이가 남의 손에 자란 뒤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와 죽은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이야기. 효를 강조한 전설이기도 하고, 무당에게는 원형신화로 여겨지기도 한다. 먼저 ‘바리데기’의 의미가 궁금했다.

“‘바리’를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버린 공주’로 보기도 하고, ‘바리’를 ‘발’의 연철음(連綴音)으로 여기기도 해요. ‘발’은 우리말에서 광명 혹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생산적인 의미이므로 ‘바리’는 ‘광명의 공주’ ‘생명의 공주’ ‘소생의 공주’라고 볼 수 있어요. 접미사 ‘데기’는 주로 부녀자를 낮춰서 가리키는 말이고요.”

황석영은 바리데기 신화를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바리데기」는 가족과 함께 탈북한 ‘바리’라는 소녀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런던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 속 런던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피지배국 노동자들이 몰려들면서 온갖 문제를 양산하는 업보의 도시다. 바리는 중국 음식점의 루 아저씨, 통킹네일숍의 탄 아저씨, 숙소 관리자인 파키스탄인 압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발마사지 일을 하면서 산다. 그러다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인 택시 운전사 알리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잠시.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바리의 삶은 다시 요동친다. 바리의 남편 알리는 사라진 동생을 찾겠다며 파키스탄으로 떠나고, 남편이 떠난 후 바리는 딸을 낳는다. 그러나 바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온 샹의 방치로 바리의 딸이 죽고 만다.

증오에 휩싸인 바리는 생명수를 찾기 위해 서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정화된 바리는 샹을 용서한다. 그즈음 남편 알리가 돌아온다. 둘째를 임신한 바리 부부 앞에서 런던 폭탄 테러가 터지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21세기의 화두는 ‘이동’과 ‘조화’
황석영은 「바리데기」의 주제는 ‘이동’과 ‘조화’라고 말했다. ‘이동’은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음을 뜻하고, ‘조화’는 그 세계 안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모양을 의미한다. 그는 다시 되풀이되는 전쟁과 갈등의 세기에 문화, 종교, 민족, 빈부 차이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다원적 조화의 가능성을 엿보고 싶었노라고 강조했다.

“동서로 갈라져 있던 냉전시대가 무너지면서 세계화 체제로 재편성됐어요. 생존력이 있는 나라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세계화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의 나라들은 새로운 분쟁과 굶주림에 빠져들 수밖에 없지요. 그 결과 이동이 일어난 거예요. 왜 우리나라도 한때 먹고살겠다고 시골에서 서울로 막 올라오고 그랬잖아요. 그거와 똑같은 거지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요즘 시대, 조화를 이루고 살기가 쉽지 않아요. 내가 망명해서 베를린에 살 때였는데, 김치찌개를 하면 위층 치과에서 간호원들이 번갈아 내려왔어요. 냄새 난다고. 그래도 최근에는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파리나 런던에서 된장찌개를 끓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나도 가끔 다른 집에서 풍겨 나오는 카레 냄새를 맡을 때가 있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사는 것. 그게 바로 평화의 기본이 아닐까요?”

취재하다 여권 잃어버려 고생해
황석영은 「바리데기」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는 소녀 바리의 눈을 통해 기아, 전쟁, 세계화의 병폐 등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에는 그가 경험한 세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한반도 안과 바깥의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중국에 가니 마침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고, 독일에 가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어요. 미국에 갔더니 LA폭동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폭탄 테러가 터졌지요. 이런 일들이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설에서는 특히 1990년 중·후반 끔찍한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과 북한과 중국 국경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그는 소설 집필을 위해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취재했다. 「바리데기」를 집필하기 직전이던 지난해 6월 한 달 동안 백두산 부근에서부터 두만강을 따라서 러시아, 중국, 조선의 세 국경이 맞닿은 곳까지 답사한 것.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들은 동구 붕괴 이후 10여 년 이상의 오랜 기근 속에서 죽어갔어요. 풍요롭기만 한 우리나라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요. 요즘 저 멀리 아프리카를 돕는 손길도 많은데, 그보다는 우리 동포인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북한과 중국 국경 일대를 답사하던 중 여권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고생한 기억도 생생하다. 여권을 분실해 야간열차를 탈 수밖에 없었던 것. 통로까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꼼짝없이 15시간을 서 있어야 했다. ‘반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겨웠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소설의 신이 좋은 소설을 쓰라고 그런 거다. 넌 고생을 해야 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늘 망설여
바리데기 설화에서는 바리가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린다. 그렇다면 과연 소설 「바리데기」에서는 바리가 생명수를 구한 것일까.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냐는 물음에 황석영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쎄요. 이 소설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리는 생명수를 찾은 걸까요? 이것은 독자들에게 주는 질문이에요. 한마디로 열려 있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설의 마지막에 바리가 ‘아가야, 미안하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것은 바리가 겪은 일들이 아가에게도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독자들 마음대로 생각하면 돼요.”

사실, 소설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건 황석영의 스타일이다. 「객지」와 「장길산」에서도 그랬다. 그는 소설을 쓸 때 결말 부분에서는 늘 망설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본인은 담백하게 끝맺음하는 걸 좋아하지만 독자들은 ‘어떻게 어떻게 됐다더라’는 후일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젊은 독자들일수록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길 원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내친김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집 사려 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라’고 말하는 아버지예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집 사려고 안달하지 않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안 그래요? 인생의 절반은 집 사는 거에 허비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식 교육에 허비하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모든 아이를 엘리트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대학 가서 공부하는 아이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찌감치 직업 가진 아이를 동등하게 대접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겠지요.”

조만간 귀국해 시골에서 글 쓸 것
황석영은 귀국 전까지 런던과 파리에서 4년 가까이 지냈다. 정확하게는 3년 8개월이다. 이번 외국 생활은 베를린과 뉴욕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와는 달랐다.

“망명 생활을 할 때는 지인들을 만나지 못해 굉장히 외로웠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지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기 때문에 감옥살이할 때보다 더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었지요. 파리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지난 7월, 「바리데기」 출간에 맞춰 귀국한 그는 8월 중 다시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2개월 뒤인 10월 중순경, 그동안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다. 2년 정도 시골에 칩거하면서 집필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다음 작품으로 생각해놓은 게 두어 가지 있긴 해요. 철도원 3대 이야기와 강남 형성사지요. 모두 감옥에 있을 때 구상한 작품들이에요. 감옥에서 글을 못 쓰게 하니까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생각해놓은 이야기를 바로 쓸지 아니면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지, 거기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혹시 이번에도 충남 예산에 머물 것인지 물었다. 그는 2002년경 충남 예산 가야산 자락에 머물며 글을 썼다. 그곳에서 쓴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으로 상을 세 개나 받는 영광을 누렸다. 아직 귀국 후 머물 장소는 정하지 않은 상태이나 조용한 시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어 기운이 떨어지는데 소설 쓰는 게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황석영. 그의 말에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작가 황석영이 또 어떤 소설로 우리의 문학적 갈증을 해소해줄지, 기대와 기다림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협찬 / 동감(031-924-5662)

 

<자료: 청산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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