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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시인 鄭芝溶(정지용) / 생애와 작품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04.27|조회수366 목록 댓글 0

시인 정지용 (鄭芝溶)

- 아명은 지용(池龍).

 

(1902. 5. 15 충북 옥천~?)

 



[생애와 활동]

 

정지용
정지용 생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한의사인 아버지 태국(泰國)과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송재숙(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문했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박종화·홍사용·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이일·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도쿄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 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 간행에 참여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으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인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던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강연에 종사했다.
1950년 6·25전쟁 이후의 행적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이 통설로 알려져 있다.


[문학세계]

 
그의 문학세계는 대략 3가지로 구분될 수 있으며, 섬세한 이미지 구사와 언어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보여준 것이 특징이다.
 
첫째는 1926~33년으로,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보인 모더니즘 계열의 시이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23년경이었다고 하나, 발표되기는 1926년 〈학조〉 6월호에 실린 시 〈카페 프란스〉·〈마음의 일기에서〉 등에서 시작된다. 이어 이미지 시의 면모를 보여준 〈바다〉(조선지광, 1927. 2)와 〈향수〉(조선지광, 1927. 3)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했다.
이런 경향은 〈시문학〉의 향토적 정서, 섬세한 이미지 표현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 시기의 시들은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면서도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아울러 보여준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 리야"(〈향수〉 1연)와 같이 곱게 다듬어진 우리말의 언어적 세련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감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형상화하고 있다.
 
둘째는 〈가톨릭 청년〉에 관여하던 1933~35년에 보여준 종교적인 시이다.
이 시기에는 절대적인 신에게 관심을 갖고 시대적 상황에 무력한 자신의 정신적 허기와 갈증을 신앙을 통해 메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시인의 정신적 방황을 드러내는 것이며, 특히 〈나무〉(가톨릭 청년, 1934. 3)의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발이 항상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라는 표현에서 보이듯이, 한갖 나무만도 못한 욕되고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참회와 나라를 잃은 민족의 정신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셋째는 1941년까지 발표한 동양적 전통과 정신에 바탕을 둔 산수시이다. 이 시기에 그는 동양적 정신과 산수의 풍경을 그리는 여행을 떠남으로써, 시적 소재가 〈바다〉(시원, 1935. 12)를 거쳐 〈옥류동〉(조광, 1937. 11)·〈비로봉〉(청색지, 1938. 8)·〈장수산〉(문장, 1939. 3)·〈백록담〉(문장, 1939. 4)으로 바뀐다.
바다를 거쳐 산으로 오르는 이런 시세계의 변모는 즉 일제강점기 말의 암울한 현실에 구애됨이 없이 자연에 몰입하고자 하는 시인의 정신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시어의 조탁(彫琢)과 섬세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독특한 시세계를 표현했는데, 이러한 성격은 한국의 서정시를 계승한 것으로서 이후 제자격인 청록파의 시세계로 이어졌다.
 
100여 편이 넘는 시 외에도 소설 〈3인 三人〉(서광, 1919. 11)과 평론 〈조선시의 반성〉(문장, 1948. 10)·〈문학으로 사는 길〉(세계일보, 1949. 1. 5) 등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지용시선〉(1946)과, 이론서로 〈문학독본 文學讀本〉(1948)·〈산문 散文〉(1949) 등이 있고, 1988년 민음사에서 〈정지용선집〉을 펴냈다.

 

 

생애와 작품소개(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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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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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1세)음력 5월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연일정씨 정태국과 하동정씨 정미하 사이에 독자로 태어남.

지용의 아명은 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용이란 발음의 한자를 맞춘 것임.

 

<출처: 청산아 청산아 / 청산아>

 

 

 

 

정지용 시모음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72년>

 

 

 

 

 호수1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하니

눈감을 밖에.

 

 

 

 

 유리창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고 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발 열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러

포도순이 기어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믈음 땅에 스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아 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 쉬노니, 박나비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하여라.

 

 

 

 

 

옛 이야기 구절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 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펐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펐노라.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

기름불은 깜박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고이신 대로 듣고
니치대든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웃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고을 밤은
찾아온 동네 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 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위어다 붙인 밤 하늘이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

 

 

 

정지용은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해 본 한국 최초의 시인이다. 그 이전의 거의 모든 시들이 한탄, 슬픔 등의 감정적 표현으로 가득차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저항으로 그의 시는 시작한다. 그의 시에는 그러므로 감정의 생경한 노출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초기시에 보이는 것은 엄격한 감정 규제이다. 그의 초기의 시적 이상은 유리같은 영혼이 되어 뼈만 앙상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아이의 죽음을 노래한 <유리창1>에서도 슬픔은 뼈만 앙상하게 보인다. 아이를 산새처럼 날려 보내고, 밤에 유리창 앞에 서 있는 시인의 정경이 아름답게 묘파되어 있는 이 시는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 따위의 감정의 대위법에 의해 생경한 감정을 완전 무결하게 감추고 있다. 슬픈 것과 아름다운 것, 쓸쓸한 것과 황홀한 것을 대립시키는 그의 시작법은 시평가들에 의해 감각의 단련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특수교육 / 대한>

 

 

 

 

옥천 '정지용 문학관'(사진)

 

 


 



 

 

                         <출처: 후뇨리 story>

 

 

 

시인 정지용 생가(사진)

 

시인 정지용은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혀 그와 그의 문학이 묻혀 있다가 해금되면서 이름이 공개되고 관심을 쏟게 된 것인데, 향수어린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금빛 게으른 울음”,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감각적 언어 표현이 뛰어나다.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의 시를 조용히 감상해보면 넓은 공간이 보이고 고향에 대한 평화로운 풍경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농가의 정서가 흐르고 아버지에 대한 육친애의 그리움은 유년시절 꼭 나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만 같아서 정지용의 이 시를 읽을 적마다 어린시절이 반추되며 심한그리움에 사로잡혀 잠시 눈을 감아 향수에 젖으며, 낙동강이 흐르고 태백산 줄기 벋은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 정지용 생가를 둘러볼 요량으로 부지런히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유난히 맑고 높은 가을하늘, 따사한 햇살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옥천을 인터체인지를 빠져서 5km쯤 가다보면 정지용 생가에 다다른다. 생가 바로 옆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나지막한 담이 둥글게 초가를 감싸 않은 채 사립문 두개가 있다. 하나면 족할 것을 두개씩이나 문을 낸 것은 한 개의 문으로 드나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하여 그랬는지는 지도 모른다.

 

사립문 밖에는 물레방아가 있고 그 옆에는 텃밭이 있다. 사립문 언저리에 감나무의 풍경은 초가와 잘 어우러져 가을 고향의 운치가 더욱 살아나있다. 생가는 소박한 전형적인 시골 초가삼간이었고 부엌을 제외하면 정면 2칸으로 마주보는 곳에 일자형 창고가 있는 특이한 구조다. 장독대가 우물가 담장 밑에 다소곳이 놓여있고 우물곁에 돌과 흙으로 쌓은 나지막한 굴뚝이 겸손해 보인다.

 

옛날부터 남여가 유별했던 우리나라는 반상의 구분 없이 금남의 구역이 바로 부엌인데, 부엌에는 쌍으로 동솥 두개가 나란히 걸려있고 부뚜막에 놓여있는 밥상에 밥상보를 덮어둔 것을 보니 불현듯 어머니 생각에 가슴 울컥해진다. 부엌 문 옆에는 돌 호바 나무절구와 절구공이가 놓여있는 자리 언저리 이곳이 정지용 생가임을 알리는 동판 표시판이 부착되어있다.

 

표시판은 정지용의 모습과 함께 그의 태어난 년도와 날짜, 생가가 언제 허물어지고 다시 집이 지어졌다는 내용을 동판에 돋을새김 해 놓았다. 초가삼간 집을 짓고 텃밭에서 푸성귀 뜯어먹고 빙 둘러 야트막한 담을 치고 싸리가지 꺾어다가 사립문 하나내어 툇마루에 걸터앉아 탁주 한 사발 마시고 풍성한 마누라 무릎 베고 박 익고 감 익는 것 바라보며 한시름 잊고 싶다.

  

선교장 같은 고래등 기와집에 여인네 버선코처럼 살짝 치켜 올려진 처마, 용마루가 높다랗고 팔작지붕으로 위엄을 부린 솟을대문 집 보다는 가난은 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우리네 전통민가 초가집을 바라보면 그래도 행복을 엮어가던 민초를 닮은 질박한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할까, 초가지붕에 달덩이 같은 둥근 박이 환하게 웃어주는 풍경은 추억 저 멀리서 그리웁게 다가온다.


 


(정지용 시인 문학전시실, 밀납 인형옆에 함께 앉아 있으니 시인이 된 기분이다)


(삽작문 들어가는 입구, 감나무에 열린 감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제법 굵어졌다)


(윗쪽에난 또다른 삽작문 드나들기 편리하게 문을 하나 더 낸 것이다. 본체와 창고사이에 보이는 담 너머가 문학전시관)


(맨 좌측에 흙과 돌로 둥글게 쌓아놓은 것이 우물이고, 그 옆에 나지막한 굴뚝이 보인다)


(허리높이의 담은 방범용이 아니라 구획을 표시하는 용도로 쌓은것 같고 우측 도로 바로 밑에 실개천이 흐른다)


(절구통 안에 절구공이가 놓여있고 그 옆에 돌 호바는 디딜방아 용이다)


(검정 동솟 안에는 식은 옥수수, 식은 고구마가 들어있을 것이다)

 

<춘우 / 안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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