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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작품

정호승 / 작품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06.02|조회수998 목록 댓글 1

 

정호승 시인

 

 

정호승 鄭浩承 (1950.1. 3 -   )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대구 계성중학교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당선되었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로 당선되었다.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79년 첫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였다.

이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편지》(1987) 등을 통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을 따뜻한 시각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는 암울한 분단상황에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내었다.

《샘터》 편집부와 《월간조선》에서 근무하였고, 2000년 현대문학북스 대표가 되었다.

1989년 제3회 소월시문학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199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1999),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2000),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0) 등이 있고,

수필집 《첫눈 오는 날 만나자》(1996)와 동화집 《에밀레종의 슬픔》 《바다로 날아간 까치》(1996), 《연인》(1998), 《항아리》(1999), 《모닥불》(2000),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1993) 등이 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 호 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첫키스에 대하여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바다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 않으려다 보지 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의 눈물이었다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갈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구두 닦는 소년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담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담는다

    이 세상 별빛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메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별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사랑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 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별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소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 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보소서

     

     

     

     

     

     

     

     

     

    강물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사라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
    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길이다
    흐느끼는 푸른 댓잎 하나
    날카로운 붉은 난초잎 하나
    강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면 그뿐

    그동안 강물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회망이었다



    강변 옆에서

    별에 쌓여있는 희미한 전설같이
    내가 언젠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걸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먼 훗날
    우리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전설같이
    남아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끔찍이 사랑했었다는
    그 진실이 희미한 별빛에 아롱아롱 박히어
    영원히 이 세상에 고이고이 존재하는
    전설로 남을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부터 알고있는
    희미한 별의 전설처럼
    예전의 나의 맹세도 그렇게 밝게 빛나는
    저기...
    저 어디인가에 있는
    어느 별엔가 갇혀있을 줄 믿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였고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을
    저 별빛에 대고 맹세합니다..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파도타기

    눈 내리는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눈 맞으며 파도 위를 걸어서 간다.
    쓰러질수록 파도에 몸을 던지며
    가라앉을수록 눈사람으로 솟아오르며
    이 세상을 위하여 울고 있던 사람들이
    또 이 세상 어디론가 끌려가는 겨울밤에
    굳어버린 파도에 길을 내며 간다.
    먼 산길 짚신 가듯 바다에 누워
    넘쳐버릴 파도에 푸성귀로 누워
    서러울수록 봄눈을 기다리며 간다.
    다정큼나무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 밖으로
    지난 가을 산국화도 몸을 던지고
    칼을 들어 파도를 자를 자 저물었나니
    단 한 번 인간에 다다르기 위해
    살아갈수록 눈 내리는 파도를 탄다.
    괴로울수록 홀로 넘칠 파도를 탄다.
    어머니 손톱 같은 봄눈 오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발.
    사라졌다 솟구치는 우리들의 생(生).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와 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와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님 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끝끝내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가에
    흰 싸리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안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너에게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질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옆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잇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등신불

    강물도 없이 강이 흐르네
    하늘도 없이 눈이 내리네
    사랑도 없이 나는 살았네
    모래를 삶아 밥을 해먹고
    모래를 짜서 물을 마셨네
    잘 가게
    뒤돌아보지 말게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네
    눈이 오는 날
    가끔 들르게
    바람도 무덤이 없고
    꽃들도 무덤이 없네


     

     






     

     

    별들은 따뜻하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별똥별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내가 너를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순간에
    내가 너의 눈물을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내가 너의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줄
    넌 모르지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날

    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에 냉이꽃은 하얗게 피었습니다
    그 아무도 자기의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천지는 개동백꽃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무심코 새 한마리가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우리들 인생도 어느새 날이 저물고
    까치집도 비에 젖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내 무덤가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의 새똥이 아름다운 봄날이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이별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첨성대(瞻星臺)              

                           -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一平生 꺼내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 단 한 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불던 그믐밤

    첨성대 꺽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繡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밤마다 할머니도 첨성대되어

    댕기 댕기 꽃댕기 붉은댕기 흔들며

    벌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冬至날 흐린 눈물 北極星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 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방울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위에

    버려진 버선 한 짝 남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무덤 몰래 하나 파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논 할머니 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은 산여우 울음소리.


    첨성대 창문턱을 날마다 넘나드는

    동해바다 별 재우는 잔물결소리

    첨성대 앞 푸른 봄길 보리밭 길을

    빚장이 따라가던 송아지 울음소리.


    빙 빙 첨성대를 따라 돌다가

    보름달이 첨성대에 내려 앉는다.

    할아버진 대지팡이 첨성대에 기대놓고

    온 마을 石燈마다 불을 밝힌다.


    할아버지 첫날밤 켠 촛불을 켜고

    첨성대 속으로만 산길가듯 걸어가서

    나는 홀로 별을 보는 日官이 된다.


    지게에 별을 지고 머슴은 떠나가고

    할머닌 小盤에 새벽별 가득 이고

    인두로 고이 누빈 베동정같은

    반월성 고갯길을 걸어오신다.


    端午날 밤

    그네 타고 계림숲을 떠오르면

    흰 달빛 모시치마 홀로선 누님이여.

    오늘밤 어머니도 첨성댈 낳고

    나는 繡놓은 할머니의 첨성대가 되엇다.

    할머니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부치지 않은 편지 1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이슬에 새벽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새벽편지

    죽음보다 괴로운 것은
    그리움이었다
    사랑도 운명이라고
    용기도 운명이라고
    홀로 남아 있는
    용기가 있어야 있어야 한다고
    오늘도 내 가엾은 발자국 소리는
    네 창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별들도 강물 위에
    몸을 던졌다



     

     


     

    슬픔으로 가는 길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쓸쓸한 편지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 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때까지
    잠시 나그네 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소리 그친 뒤에도 ..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 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 머물곳도 필요하다



    윤동주의 서시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그루의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이별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잎새에게

    하느님도 쓸쓸하시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사랑을 바라다가 쓸쓸하시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소리없이 지나가는 들녘에 서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지 알 수 없어라

    그대는 광한루 돌담길을 홀로 걷다가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나니
    미소로서 그대를 관통하던 밝은 햇살과
    온몸을 간지럽히던 싸락눈의 정다움을 기억하시라

    뿌리째 뒤흔들던 간밤의 폭풍우와
    칼을 들고 설치던 병정개미들의 오만함을 용서하시라
    우듬지 위로 날마다 감옥을 만들고
    감옥이 너무 너르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나니
    그대 가슴 위로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어
    하느님도 쓸쓸한 저녁 무렵
    삶은 때때로 키스처럼 반짝거린다








    저녁별

    빈 손을 들고 무덤으로 간다

    국화 몇 송이 문득 강가에 내던지고
    오직 빈 손으로 저녁날 무덤가에 가서
    마른 풀들의 가슴에 내 가슴을 묻는다

    분노가 있어야 사랑은 있고
    희망이 있어야 노래는 있는가

    검정딱새 한 마리 내 뒤를 따라와
    눈물의 붉은 비 거두어가고

    어느덧 무덤가에 스치는 저녁별



    정동진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성큼 떠오르고 나면 눈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다
    우리가 누가 누구의 해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의 햇살이 될 수 있을 뿐
    우리는 다만 서로의 파도가 될 수 있을 뿐
    누가 누구의 바다가 될 수 있겠는가
    바다에 빠진 기차가 다시 일어나 해안선과 나란히 달린다
    우리가 지금 다정하게 철길 옆 해변가로 팔장을 끼고 걷는다 해도 언제까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을 수 있겠는가
    동해를 향해 서 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바다에 한쪽 어깨를 지친 듯이 내어준 저 소나무의 마음을 보라
    내가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대었던 그 어깨처럼 편안하지 않은가
    또다시 해변을 따라 길게 벋어나간 저 철길을 보라
    기차가 밤을 다하여 평생을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형행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굳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평행을 이루어 우리의 기차를 달리게 해야 한다
    기차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늘 혼자 남는다
    우리를 떠나보내고 정동진은 울지 않는다

     

     

     

     

    정호승 시 ...

     

     

     


     

     

     

     

     

 

<출처: 어둠속에갇힌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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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이야기 
 
순결한 동심의 정서와 맑고 아름다운 서정의 결

 

                        류신/문학평론가


평론가 하응백의 간명한 표현처럼 정호승은 '사랑'의 시인이다. 눈사람처럼 순백한, 그래서 눈사람과 사랑의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순도 높은 서정 세계는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서부터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인 특유의 순결한 동심의 정서가 맑고 아름다운 서정의 결을 일관되게 유지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는 값싼 감성을 자극하는 싸구려 산파극이나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시와는 자못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의 순정한 사랑과 동화적 시심의 뒤란에는 가난과 소외, 불행과 고통에 대한 동정과 타자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하고 그 생채기를 치료하는 어머니 젖가슴과 같은 '따뜻한 슬픔'!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에서도 사랑을 위한 기다림의 끈기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아직도 사랑할 자유밖에 없는/너희는 날마다 해 뜨는 곳에/그리움과 기다림의 씨를 뿌려라"('서울 복음 2'). 세 번째 시집 <새벽 편지>에서 시인의 사랑은 사회 전체로 확대 ·변주 ·일반화된다. 그는 전태일의 고귀한 희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허연 최루가스를 뒤집어쓰고/홀로 울고 있는 꽃다발 하나"('꽃다발')을 영전에 바친다. 네 번째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에서 시인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좌절과 절망에서 촉발된 통렬한 자기 반성을 시작한다. 엇갈리는 사랑과 죽음을 동시에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어떤 사랑').

 

이후 7년만에 상자한 다섯 번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서 시인은 사랑의 본성과 존재 원리에 대한 체득이 외로움과 숙명적으로 결합하여 우주적인 교감의 세계로 확산되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외로움이 내재된 슬픔 사랑을 그의 시적 영토로 이주시켜 다음 같은 절창을 낳는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수선화에게').

 

최근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를 간행했다. 사랑의 본질은 비움과 채움, 감춤과 드러냄의 끝임 없는 길항(拮抗)임을 간결한 시행에 담아 낸, 그야말로 이 시집에 진주처럼 박혀 있는 빛나는 소품 하나.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반달') 어쨌든,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의 행복한 조화를 누리는 시인이다.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별그리고...그리움
 
1. 간절한 사랑 
정호승은 1979년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이후 
1999년 일곱 번째 시집『눈물 나면 기차를 타라』까지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있으며 '민중의 한을 서정으로 감싸안는다'는
평가를 모으는 단단한 시편들은 
그를 1970년대의 중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정호승의 시는 무엇보다 잘 읽히는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이는 전통시가의 율격, 구어 혹은 민요체의 사용,
시적 소재를 일상의 친숙한 대상에서 구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또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꾸밈없는 위로의 목소리도 이에 한 몫 한다.
 그의 시편들은 한 경지에서 삶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삶과 꽉 엉겨붙어 있다. 그의 시를 읽음으로써 막연한 위로가 
아닌 구체적인 위로와 힘을 얻게 된다. 

사실 정호승은 소외된 주변인들으 고단하고 사연많은 삶을 
아궁이에 지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을 시의 세계로 옮겨놓고 있다. 
고단한 삶을 마치 땔감처럼 지피는 그의 마음은
 제 사정의 그것처럼 간절하다. 
그는 결국 이 세상을 덥히는 땔감은 다름 아닌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주변인들, 
거대한 힘에 눌러 사는 소시민들의 애절한 삶임을 설파한다.

애절한 삶은 이 세상의 결핍을 드러내는 삶이며, 
기다림과 그리움의 삶이다.
 정호승은 서럽고 억울한 삶들이 기다리는 것과 
자신의 기다림을 섞어 버무리며 우리에게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법을 가리켜 보인다.
 이는 그가 직접 얘기했던 
"나는 인간이 이루는 삶의 비극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내 시의 출발점이자 귀결점"
(시와 반시, 1999 가을호)이라는 데서
 다시금 확인된다.

시인의 대부분의 시는 다수를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지만 
너를 향한 개별적 사랑의 노래도 틈틈이 끼여든다. 
한편 그는 개인적 사랑의 간절함을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에너지화한다. 
이 때문에 간절한 슬픔의 사랑이 탄생한다. 
자연히 그가 대중의 슬픔을 대상화할 경우와 
자신의 슬픔을 대상화할 경우 그 감동의 편차는 없다. 
그들의 설움이 내 설움이 되고 내 설움이 
그들의 설움이 되는 한바탕 설움의 잔치를 완결해 가는 데서 
그의 시편들은 폭넓은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별들이 따뜻하다>에서는 
민중의 한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서부터는 
개인적 정서가 두드러진다는 편의상의 구획은 가능할 것이다.

 정호승의 주조음은 '간절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애끓는 나의 기다림과 우리의 기다림이 혼효되어 지향된다. 
결핍된 인생들이 처연한 눈빛으로 지향하는 사랑, 
끝내 오지 않는 사랑 때문에 그의 시에서 슬픔은 
일용할 양식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이 이렇기에 그의 시에서 반복되는 사랑,기다림,외로움,
 그리움, 슬픔, 눈물은 동일한 의미망 안에 있다.


2.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이 자신의 대표시로 즐겨 내세우는 
「슬픔이 기駙“棹뭅?슬픔의 길을 향한 시인의
 출사표로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야겠다.

-「슬픔이 기쁨에게」전문

이 시의 핵심 구절은 "슬픔의 평등"이다. 
슬픔이라는 정서는 만인이 부둥켜안을 수 있는 계기를 베푸는 큰 힘이다. 
이것이 "슬픔의 힘"이다. 이 슬픔은 지금 부재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슬픔"이다. 
따라서 '슬픔'은 '기쁨'에게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말한다. '
사랑의 소중함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나 사랑도 슬픔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이시는 암시한다.

이렇게 던져진 '슬픔'의 역설은 이후 정호승 시의 곳곳에서 
그 자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정호승 시의 처연한 목소리가 감동력을 더하는 것은 
전통 리듬의 차용한다기보다는 한국인의 생래적 어조가
 시인의 정조와 자연스럽게 만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리듬 덕분에 지독한 슬픔도 노래가 되고, 
비극적 인물에게 의지력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옥양목 옷보따리 보리밭에 내던지고 
보리밭에 숨어서 봄밤을 팔아
버선발로 뛰어오는 봄비를 팔아
치마끈 풀고 오는 봄바람을 팔아
누이는 눈 파이고 귀를 잘리고

군데군데 보리밭은 쓰러지고
빨가벗고 빨가벗고 보름달은 도망가고
소버짐 마른버짐 번지는 이땅
능골 논마지기 빚값에 팔아
송아지 핥아주던 어미소 팔아

상투깍고 통곡하던 할배도 팔아
꽁치 두마리 사들고 오던 애비도 팔아
누이는 소나무에 명주댕기 걸어놓고
벗으세요 벗으세요
군데군데 보리밭은 나뒹굴고 나뒹굴고

종다리 치솟는 아지랭이 팔아
호롱불에 하늘대는 젖가슴 팔아
호롱불은 넘어지고 보리밭은 타올라
활활 타올라 누이는 미쳐
실꾸리 반짇고리 보리밭에 내던지고

-「매춘」전문

시대의 노고한 삶이 처절하게 녹아 있다. 
화자는 누이의 매춘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말할 수 없는 비통한 것을 이토록 4.4조의 리듬과 
반복 어구를 통해 여유 있게 노래하는 것은 화자가 
시적 대상과 유지하는 거리에 있다. 
이러한 형식상의 특성은 위의 시를 비롯하여 정호승 시의 전반적 특징이다.
 정호승의 시들은 서러움의 정조에서 촉발되는 것이면서도 감상적이지 않다.

슬픔이 그냥 슬픔이 아니라 칼의 슬품이 되어야 하는 까닭에 
시인은 대상과 엉켜붙으면서도 대상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거리를 확보한다.
 이 때문에 지독한 슬픔도 태연하게 대상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슬픔을 마다하지 않고 슬픔에 직면하여 
슬픔을 '칼'로 바꾸어 길을 떠나는 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쓰러진 짚단을 일으켜 세우고
평화시장에서 돌아온 저녁
솔가지를 꺾어 군불을 지피며
솔방울을 한 줌씩 집어던지면
아름다운 국화송이를 이루며 타오르는 사람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늘과 가까와져
이제는 새벽이슬이 내리는 사람

-「전태일」전문

한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와 맞섰던 전태일의 죽음은 
마치 시지포스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삶의 부조리는 끝이 없을 것이지만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위대함은 삶을 질을 바꾸어 놓는다. 부조리에 맞서는 것은
 비극적 조건에 맞서는 것이고 맞서는 힘과 칼이 곧 슬픔인 것이다.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구절은 
정호승 시의 곳곳에서 슬픔의 기능으로 자리하는 셈이다.

정호승이 대상화하는 처참한 삶은 대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공간위에 부려진다. 
그의 시에서 '서울'은 고통스러운 삶이 영위되는 
인간의 거소에 대한 제유다. 
비정한 삶이 영위되는 산업화 시대의 서울은
 신의 부재를 절감해야 하는 공간이다. 
「서울의 예수」는 이러한 추이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서울에 나타난 메시아는 어떤 비전도 던져주지 못하고 탄식한다.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을 불행하고 
내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서울의 예수」중에서

어떤 힘도 우리의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비관이 깊다. 
그러나 이 시는 예수의 통한어린 독백,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에서 보는대로
 이 시대를 치유할 연민의 힘을 환기키는데 그 초점이 있다. 
예수의 자책은 우리의 자책을 대변하는 속죄양의 그것이기도 하다. 
또한 서울에서의 예수의 역할은 시인의 역할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국 예수와 시인은 동일한 의미망 안에 있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와하는
아름다움의 길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 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시인예수」전문

각 연의 마지막 두 행을 타자의 불행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자의 
면모가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다. 
1연에서의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2연에서의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사람의 바람", 
3연에서의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와하는/아름다움의 깊이",
 4연에서의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은 인간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온 
사람의 아들,예수의 진정한 모습이다.
「서울의 예수」에서의 예수는「시인예수」에 와서 
그 실상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진정성을 갈파하기 위해 길 위에 나선 메시아와 시인은 
이렇게 해서 등가관계에 놓인다. 결국 '시인예수'는 
우리가 기다리는 사람이며 우리가 마침내 되어야 할 진정한 사람으로 자리한다.


3. 사랑과 따뜻한 목소리

이에 정호승이 슬픔의 예리한 가락을 끌고 돌진하는
 '사랑'의 뜨거움에 가 보기로 하자. 
슬픔의 사람들을 슬픔의 어조로 보듬어 간다는 데서 
이미 그의 사랑은 뜨겁다. 사랑의 부재에서 슬픔은 작동되고 슬프기 때문에 
사랑의 기다림이 절실한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그의 시편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드러나는 다수에 대한 사랑과 너에 대한 사랑이 
상승효과를 자아내 간절한 노래를 얻게 되는 계기를 엿보려 한다.

대략 네번째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에서부터 
서서히 개별적 정서로 발현되는'사랑'과 마주칠 수 있다.

나는 너의 시체다
5월의 푸른 강물 위로 떠오른
차디찬 너의 죽음이다
너와 나의 끝없는 사랑을 위하여
그 누군가가 강가로 끌어올린
꽃다운 너의 시체 위에 내리는 햇살이다
너는 나의 시체다

봄날의 강물 위로 말없이 떠오른
너는 나의 분노의 시체다
너와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죽음의 눈물을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눈부신 너의 주검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다.
-「사랑」전문

강렬하고 비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해부하고 있다. 
한편이 한편을 시체로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 중의 주체는 부풀고, 부푸는 만큼 대상을 자신의 실존 속에 
종속시키려 한다. 사랑을 목말라 하는 나는
 "눈부신 너의 주검 위로 지나가는 바람"이 된다. 
"나는 너의 시체"가 되고 "너는 나의 시체"가 되는 
사랑은 그가 또 다른 시'어떤 사랑'에서 보여주는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너는 이미 숨져 있었고/
 네가 나를 사랑했을 때/ 나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탄식하는 가혹하는 사랑이다.

이는 죠르부 바따이유가 '에로티즘'에서 말하는 
"결렬한 융합은 대부분 고통을 낳는다. 
서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그 고통"을 상기시킨다. 
시인은 차츰 서로가 서로에게 시체가 되는 사랑의 가혹한 열정을 물리치고
 사랑의 다른 모습을 고요히 보여 주기에 이른다.

떠나간 기차를 용서하라
기차도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
굳이 수색쯤 어디 아니더라도
그 어느 영원한 선로 밖에서
서로 포기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기차」전문

사랑의 상대를 배려하는 웅숭깊은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기차도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고 떠나간 기차,
 부재가 된 사랑을 조용히 관망한다. 
결국 "영원한 선로"인 사랑을 수긍하며 
"서로 포기"하는 사랑의 방법을 떠올린다. 
여기서 "포기'는 이해의 다른 말일 것이다. 
이 시의 문법 안에서 서로 포기한다는 것은 
서로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포기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랑의 포기가 아니라 사랑의 이해인 것이다. 
이러한 사랑에 조용한 성찰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이르러 
한껏 빛을 발한다. 
사랑의 지순한 속성 쪽으로 시인의 정서가 한 껏 기울어 있는 것이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키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자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리기다소나무」전문

이 시에 투영된 사랑은 말한 바와 같이 지순한 마음의 지향을 드러낸다. 
정호승이 즐겨 아름답운 이미지로 차용하는 나무를 
비유어로 삼아 사랑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한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다른 존재자를 맞아 
비로소 존재 가치를 회복하는 절차를 보여준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는 모두 만남의 첫 순간을 예리하게 쪼갠 단면들이다.

그만큼 첫 순간에 의미가 집중되어 있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완성하려는 화자의 의지이며 이 의지는 당신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사랑하는 겅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 
시인의 개별적 사랑과 다수를 향한 사랑이 함께 
어우려져 '사랑'은 그 완성형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의 시편들은 사랑의 어쩔 수없는 속성인 외로움을 
또한 아름답게 꽃피워 준다. 외로움은 사랑이 시작되는 동인이기에, 
사랑의 숙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라는
 자신과 타인을 토닥이는 꾸임없는 사랑의 목소리를 체득한다.

이 목소리는 이웃을 향한 대승적 사랑과 
너에게의 열정을 섞어 만든 따뜻한 목소리다. 
독자들은 이 느꺼운 목소리에 많은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리라.


4. 맺음말

이상 정호승의 그간 시편들을 통하여 처절한 
슬픔의 칼날이 사랑을 향하여 작동되어 가는 추이를 간단히 살펴본 셈이다. 
시대의 곤궁함과 곤궁함을 더욱 힘겹게 짊어진 이웃들과 
개인적 정서로 발현되는 사랑의 고통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슬픔의 진정한 힘이 뽑아 올린 사랑의 지순성에 이르기까지를
 다소 거칠게 밝혀 보았다. 이는 그의 많은 시편들을 오가며 본 
하나의 길에 불과함을 밝힌다.


내용출처 : [기타] 도서 : 한국시인론(백년글사랑,2003)  



그는 분명 예술지상주의자는 아니고 효용론자였다 
             
                     글 : 김영탁 <시인>] 
3호선 대청역과 지하로 연결된 
나산 오피스텔은 덩치만 큰 쓸쓸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다. 
그는 여기에 개인 작업실을 두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1438호.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적당한 중키의 정호승 시인이 
따뜻한 웃음으로 방문객을 맞이해 준다. 
커피향이 좋다. 작업실은 작은 방이지만 정갈했다. 
창문 쪽으로는 시야가 탁트이고 책상은 창가에 위치하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고독하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창문으로 이루어졌고 
창문을 통해서 봐야하고 그렇다면 
고독한 사람들 뿐인 것이다. 


시인 정호승의 작업실은 
시인 자신만의 방이었다. 그는 언제나 혼자일 것 같은 
고독이 자연스러운 듯했다. 
그래서 필자는 고독한 외로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김요섭 선생님이 
세상을 뜨셨는데 평소에 선생님께서 
'시인은 고독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고독을 견뎌한 한다'는 말씀이 제 가슴에 닿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라고 말하며 
명랑하게 웃는다. 따뜻한 허무주의자 같다고 말하자 
종래엔 모든 것이 허무하지만 삶은 가치있고 
그중엔 사랑하는 것이 아니, 
사랑이 없어서는 살 수 없고 사랑해야 
어떠한 궁극 (이 부분은 조금 추상적이지만 
시인의 화법(話法)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정호승은 정확하게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데뷔했다. 
경희대 시절 문단에 데뷔해야 장학금이 지급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장학금을 노리고 시를 열심히 쓴 것이었다. 
그는 그 이후에도 현대시학과 신춘문예 
(1973.대한일보)에 시가 당선되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도 당선된다. 당선복이 많다고 한다. 
(시를 잘 썼다기보다 운이 따라준 거라는 겸손의 말) 
70년대 시인으로서 바로 위의 세대인 60년대 
시인들의 난해한 모더니즘과는 변별성이 있었다고 한다. 
70년대는 전태일과 유신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시인 자신의 시대, 
즉 90년대 시인이며 그렇게 되도록 살며 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난해한 시보다 
쉬운 시가 좋을 뿐, 시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다양성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 예로 지나간 작품에서 
의고체를 빈번하게 진술한 것은 시의 품격 때문인데 
지금은 진부성도 있고 해서 가급적 안 쓰려고 한단다. 
이렇게 조금씩 시의 경향이 변화되는 것도 
그가 강조하는 바대로 시가 시대에 민감한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하는 
'효용적 가치'는 70년대와 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시집(<슬픔이 기쁨에게. 1979>, 
<서울의 예수. 1982>,<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들이 말해 준다. 
그때를 생각하며 그는 분명 예술지상주의자는 
아니고 효용론자였다고 한다. 시집<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나서 젊은 신학자가 한국기독교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정호승의 시 <서울의 예수>를 인용했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 <서울예수(소유격 '의'가 빠진)>란 
영화도 제작에 들어갔다. 묘하게도 필자는 
광화문 육교에서 <서울 예수> 영화촬영 장면을 봤다. 
그때가 80년 초반인데 연도는 확실치 않지만 
예수로 분장한 배우가 상의를 벗고 어린 거지를 
안고 있는 장면이었다. 무슨 곡절인지 
영화는 개봉되지 못했다. 


정호승에게 영향을 준 
시인은 다형(茶兄) 김현승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시인으로는 서정주. 김수영. 
정현종. 황동규. 신경림 등이다. 노자와 장자는 가슴에 
와 닿아서 좋고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성서는 통독한 적이 없어도 언젠가 완독하고 싶은 책으로, 
시인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그이 가계는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는 모태신앙이지만 신앙 면에선 솔직히 약하다고 한다. 
신앙과 다른 면에서 인간의 영역밖에 존재해 있는 
신의 영역을 그는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싱크대 서랍 속에서 흙묻은 조그만 고구마를 
하나 달랑 들고 와서 필자에게 쑥 내민다. 
"서랍 속에 넣어두고 한참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열어 보니 싹이 돋았는데 너무나 신기합니다.
" 그러면서 어린애처럼 웃으며 "깎아줄까요? 
맛있는데."라고 말한다. 
그는 고구마를 즐겨 먹지는 않으나 좋아하는 듯했다. 
아마 서랍 속에 넣어두고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하면 
고구마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은 고구마를 별미로 먹지 않고 
주식으로 먹어보았던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아무튼 그의 시적 정서의 토대는 도시 변두리다. 
대구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변두리를 전전하는 
신산스러운 가족사가 있다. 그의 시에 자주 출몰하는 
똥, 모래, 칼등은 육화된 현실의 장치들이다. 똥; 
그는 똥에 대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새의 똥은 얼마나 아름답고, 
똥이 없으면 어떻게 생명이 순환이 있느냐고, 
똥에 대한 의미론자가 되었다. 


이제 세간의 관심과 
시기 그리고 시집이 좀 팔려서 약간의 돈이 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 대하여 고백을 좀 하라고 했다. 
"저는 기독교적 문화와 정신의 토대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시와 삶의 정서를 관류하고 있는 것도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시의 상상력은 무한한 우주와 
세계 속에 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시의 질료는 풍부할 뿐만 아니라 
시적 차용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불교와 선(禪)의 이미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목도 불가의 화도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불교는 저와 생래적인 친숙함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제 자신에게 와서 다시 시화(詩畵)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대학 교수 한 분께서 모 신문 칼럼에, 
저의 시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이냐고 
다소 원색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오로지 제목 하나만 갖고. 그리고 그 유명한 
현대문학의 <죽비소리>에서도 한 대 맞았죠. 
그 이후에 <죽비소리> 필진들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들 중에 한 분이 맛이 어떠냐고 묻길래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시에 대해서 
누가 무어라 해도 상관치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담담하면서도 약간 상기된 것 같았다. 
그는 말한다. "사실 어는 큰스님의 이야기인데 
- 사랑해라 이놈들아. 너희는 아직도 
사랑하나 제대로 못하나. 이 병신! 사랑하다 죽어라. 
- 충격이었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너무 많이 
쓰니까 바랜 느낌이 있지만 저는 지금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가 
'사랑'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부분을 
다소 상업적으로 생각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 이쯤에서 그는 강아지의 눈을 바라보면서 
뭔가 느낌이 온다고 한다. 천진무구한 본능이 
슬프게 살아 있는 강아지의 눈동자. 
아끼고 토닥거려 줄 때, 강아지 역시 느낌을 알고 
몸짓할 때, 왈칵 밀려오는 애틋함. 그러한 것들이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오죽하겠습니까. 
서로 다른 언어코드가 충돌해도 수용의 폭을 넓힐 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트인다고 생각합니다. 
시도 시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허구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겠지만, 진실은 문학의 바탕이고 
그것은 감동과 연결되어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필자에게 묻는다. 필자는 시론(時論)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겸연쩍어 하며 평생동안 시를 쓰면서 
간단명료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도 문학의 한 장르일 뿐, 시인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테고 시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방법일 것이라고 한다. 
정호승은 아직 마음에 있는 시를 못 쓴 것이 많다. 
박정만 시인이 작고할 때 소설가 이윤기씨와 같이 
그는 관(棺)머리를 들었다. "왜 이렇게 무겁노. 
이 인간은 아직도 시가 머리 속에 꽉 찼나."라는 
이윤기 선생의 말을 듣고 그는 써야 할 시를 쓰고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열심히 쓰고 싶다고 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전통의 뿌리가 약하다고 한다. 
그는 고전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공부가 튼실하다. 
군대시절 서정주 시선집을 베껴서 보았는데 
노트가 너덜너덜해서 글씨가 지워질 정도였다. 
모던함도 전통에 뿌리하고 있을 때 살아 있으며, 
한 예로 개량 한복도 전통 한복에 기초하지 않을 땐 
기형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며 어쨌든 시도 
전통의 맥과 뿌리에 닿아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나 너무 전통에 경도되는 것도 
정신과 감각이 노화(老化)할 수 있으니까 
적절한 중도(中道)가 필요하다고 한다. 
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시인이 주는 애정 어린 
한마디는 등단에 연연하지 말고 독서와 체험, 
그리고 오랜 시간의 바탕이 중요하니까 차분한 
자기 공부가 제일이라고 한다. 
따뜻한 커피와 향이 좋은 사과의 과육, 달콤한 감을 베어먹었다. 
유쾌한 허무주의자와 헤어질 시간이 됐다. 
전동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뭔가 잊어버리고 온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아! 그것은 처음부터 애를 먹이던 녹음기, 
결국 작동이 안되어서 인터뷰를 육필로 했지만 
녹음기에 연결시키는 이어폰이었다.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 사랑한다고 쓰고 물을 마신다 /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 비가 그친 뒤 
/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 강물을 내려다본다 
/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 사랑한다 
/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 정호승의 시 사랑한다-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남은 발자국들끼리 /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 남은 발자국들끼리 / 서로 뜨겁게 한 몸을 이루다가 
// 녹아버리는 것을 보면 /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정호승의 시 발자국- *'시인학교'중 발췌하였습니다 
<출처: 인생주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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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둥치 | 작성시간 09.06.11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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