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태지 (정현철)
출생 1972년 2월 21일
신체 키173cm, 체중55kg
직업 국내가수
학력 대동중학교
데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난 알아요', 1998년 1집 앨범 'SEO TAI JI' 솔로 데뷔
경력 1992년 4월~1996년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1989년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 베이스 연주자
수상 2004년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락부문상
1996년 MTV뮤직비디오 Asian Viewer's Choice Awards 대상
팬카페 서태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돌아온 서태지가 12년 만에 게릴라 콘서트를 열고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피라미드 광장에 마련된 서태지 게릴라 콘서트의 야외 무대 주변은 낮부터 몰려든 팬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경찰 추산 4천여 명의 팬들이 몰렸고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한 팬들이 삼성역 주변을 가득 메웠다. 일부 팬들은 공연장 입장을 위해 전날 밤부터 대기하기도 했다.
어둠이 내린 오후 8시30분 드디어 서태지가 U.F.O 모형의 뚜껑을 열고 나타났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서태지는 첫 곡으로 8집 첫 싱글에 수록된 ''T'IKT'AK(틱탁)'을 불러 팬들을 열광시켰다.
곡을 마친 서태지는 "안녕~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죠"라고 말문을 연 뒤 "나도 4년 동안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 모습 보고 너무 감동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12년 전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서태지와 아이들로 '필승'을 부른 게릴라콘서트 때도 여러분들이 주인공이었죠"라며 "12년이 지나서 또 모였어요"라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또 "오랜만에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해요. 이제 8집 활동 시작이잖아요. 이제 우리 가는 거야~"라면서 "많이 와줘서 고맙고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흉흉했는데 2008년 '시대유감'을 들려드릴게요"라고 소개한 뒤 히트곡 '시대유감'을 불렀다.
이후 "12년 만의 게릴라 콘서트 대성공!"을 외치며 서태지가 퇴장했지만 팬들은 무대가 이어지리라 예상하고 한동안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나와 공연 종료를 알리고 나서야 팬들이 귀가하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 15분만이었다.
연출을 맡은 MBC 강영선 PD는 "시민안전을 고려한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장에서 노래 수를 줄였다"면서 "애초 계획은 앙코르 무대도 준비한 상태였지만 예상한 것보다 너무 많은 팬들이 몰려 현장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는 전ㆍ의경 3개 중대 300여 명이 배치돼 안전사고 방지와 질서 유지에 나섰으며 120여 명의 교통경찰이 주변 교통정리를 맡았다. 또 서태지 측이 고용한 경호원들도 경호와 질서 유지를 담당했다.
이날 공연은 6일 방송 예정인 MBC '서태지 컴백스페셜-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를 통해 소개된다.
< 영상취재.편집: 김태호PD, 이재호PD >
서태지, 그가 승자가 되는 이유
다시 서태지다. 90년대만큼의 '강도'는 아니지만 음반시장의 상황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오히려 놀랄 정도다. 4년만의 컴백. 그리고 10만장의 사전주문량 완전 매진. 놀랍다. 서태지는 흥행에 대한 절대 보증수표임을 또 한번 증명했다.
하지만 서태지가 '슈퍼스타'임은 분명하지만 그가 '절대적으로 사랑받는' 가수가 갖추어야 할 능력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노골적으로 말해 서태지의 가창력에 '최고'의 타이틀을 붙이는것은 거의 망언에 가깝다. 그가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 능력을 가졌다고도 할 수 없다. 무대매너가 '가장으뜸'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물론 그가 보여준 능력의 놀라움은 이미 16년 전에 검증된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결국 주관적인 '공명'의 문제 아닌가?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의 흥행은 언제나 절대적이다. 그는 실패한적이 없다. 도대체 왜일까?

<서태지>는 무조건 흥행한다.
그에 대한 온갖 잡음이 있을지라도 지난 16년간 '흥행'에는 실패해본적이 없다.
(사진은 세계일보에서 펌)
철저한 '승자'의 이미지로 <문화적 공명>에 성공한 서태지
많은 이들이 이미 분석했는것처럼 '서태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서태지와 아이들>시절의 그에게 모든것을 의탁했던 매니아들이 충분한 소비력을 갖춘 계층으로 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창 활동하던 1992-1995년의 가요계, 더욱 넓게 1990년대 가요계 전반에는 서태지를 제외하고도 나름 10대들의 마음을 울리는 여러 가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회용'이었고 서태지는 장수하고 있다. 즉 서태지와 팬들의 '문화적 공명'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서태지 자체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른 가수와의 경쟁체계에서 항상 승리하는' 비교우위적 '영웅'으로서 서태지가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서태지 사랑'은 상당히 분석적이었다. 모두가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정'을 단순한 '빠순이, 빠돌이'로 취급당하는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태지가 대단한' 이유를 여러각도에서 제시했다. 서태지에게 '혁명'이라는 단어가 별다른 제약없이 응용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팬들의 '의미주기'가 과잉화 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은 '음악'을 '정서'로서 사랑한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에 '철학'을 부여하고,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음악 속에 대입했다.
그들의 이러한 '의미주기'는 서태지와 다른 가수들과의 '경쟁체제'를 고의적으로 이끌어내는데 일조한다. 즉 '난 서태지가 좋아~', '넌 넥스트를 좋아해라~' 라는 자기만족의 의미가 아니라 "서태지가 넥스트보다 좋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겠다는 일종의 비교우위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중,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서태지>, <신해철> ,<이현도> 등을 비교하는 토론장이 늘상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서태지>가 약간의 우위를 차지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우위'가 절대적인 능력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서태지의 팬들이 각인한 '서태지'는 단순히 '우상'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도 월등한 대장'의 존재였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싸움의 승전보는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건 스포츠에서 '기록경기'보다 '대항경기'에 월등한 자본의 집적성이 형성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서태지'가 대단한것을 떠나서 서태지를 '대단하게' 증명하였던 자신에 대한 만족이 바로 '서태지 열풍'의 핵심코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팬들 스스로의 '증명'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자신의 분석이 '올바르다'는 것이 증명되는것처럼 세상에 기쁜일은 없다. 서태지는 그러한 '상생'의 코드다. 아마도 서태지는 그의 음악성을 떠나서 팬들과 그렇게 '공명'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무조건 흥행하는 것이다. 음악성은 두번째 문제라는 것이다.
철저한 '학습성'이 강요되는 서태지 음악 듣기
그의 음악성을 살펴보자. 물론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음악적 평가요소'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접근되는지에 주목하자. 우선 음악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중음악에 '절대적 수준'의 음악성을 고려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대중음악에서 음악성을 따지는 것은 특정한 시대적 조건에 따라 대중들과 호흡하는 음악적 트렌드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즉 서태지 음악이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그럼에도 서태지의 '높은 음악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한다.
여기에는 서태지 팬들이 '서태지 음악'을 어떻게 향유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 음악'을 '의무적으로 구입'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치 음악성에 상관없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구입했다는 '광신도'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태지 팬들은 그의 음악이 '수준'이 있기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그 음악적 수준은 어떻게 확인되는 것일까?
서태지 음악듣기의 핵심은 '반복학습'이다. 이것은 16년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서태지팬들만의 '서태지 음악듣기' 방법이다. <난 알아요>도 그랬다. <하여가>는 더욱 그랬다. <교실 이데아>는 심각했다. <컴백홈>은 무슨말인지 들리지도 않았다. <take 시리즈>는 가사가 없는줄 알았다. <울트라매니아>는 팝송인줄 알았다.
이렇게 서태지 음악의 '첫대면'은 항상 생소했다. 대중음악에 있어서 이러한 '생소함'은 곧 대중과 멀어지는 절대적 이유가 된다. 하지만 서태지 음악은 달랐다. "계속 들어보면! 달라진다!"는 모종의 압박이 늘상 존재했다.
<난 알아요>가 처음 등장했을때 이를 비평했던 평론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하여가>에서 뜬금없는 태평소 소리에 흥행실패를 점쳤다는 언론들이 있었던 것처럼, <서태지 음악>은 순간의 감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이해할때까지는 서태지음악은 듣고 또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서태지 음악'을 폄하하다가는 언제나 논리적으로 패배했다.
음악에 대한 '반복듣기'가 강요된다는 것.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음악은 '감성'에 의존하는 것인데 이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함을 어떻게 강요한다 말인가? 하지만 서태지 음악듣기는 달랐다. 서태지 팬들은 이를 '즐거운 자율학습'으로 받아들였다. 팬들은 그렇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그러면서 '의미'를 찾아갔다. 그렇게 서태지음악은 학습된다.
문화적 '감성'을 자극해야 될 대중가요가 학습적 '논리'를 자극하면서 서태지 음악은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수학공식, 혹은 영어단어같은 개념으로 팬들에게 각인된다. 이것은 '내가 잃어버려도 되는 그런 감각적인 단순함'이 아니라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소중함'을 말한다. 서태지 팬들에게 '서태지 음악'은 일종의 '지식'이다.
서태지음악은 이런 것이다. 자연스럽게 '의미를 찾아가주는' 팬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의 음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팬들은 자신의 해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찾는것에 더욱 더 집착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대장을 지킬 것이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아이돌 팬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들이 훨씬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가장 본질적인 차이다.
by och7896(20080731)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단독 인터뷰
[뉴스데스크]
◀ANC▶
4년 만에 새 음반을 내고 게릴라 콘서트를 연 가수 서태지 씨.
요즘 가요계의 최대 화두죠.
다시 돌아온 서태지 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김현경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VCR▶
4년 7개월 만의 컴백과 단 15분의 게릴라
콘서트.
◀SYN▶서태지
"예~...또 모였어요~"
4천명 팬들의 함성이 도심을
뒤흔들었습니다.
◀SYN▶이지은(17)
"너무 좋았어요. 진짜 짱 멋있어요.
짱이에요."
◀SYN▶천경환(19)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8집 싱글은 발매 6일만에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 싱글앨범사상 최초로 10만장판매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시절의
경쾌하고 대중적인 느낌을 주는 이번 앨범은,
우주와의 교감을 시도하는 서태지의 열망을
담았습니다.
◀SYN▶ 서태지
"자연을 두드린다 같은 느낌.. 여행 갔을 때
팬들한테 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난데없는 은퇴 선언과 홀연한 복귀,
그리고 다시 잠적..
◀SYN▶서태지
"진지한 인터뷰나 음악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없고 다른 쇼 프로라던지 음악
아닌 프로에 나가는 것은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소질도 없고.."
늘 변신을 거듭하는 그의 음악에
기존 팬 뿐 아니라 지금의 10대들도
열광합니다.
◀SYN▶서태지
"우리 팬들의 장점이 굉장히 흡수력이 빨라요.
내가 좋으면 팬들도 좋아할거라고 확신을
가져요. 그래서 지금은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고.."
서태지는 오는 15일 록 페스티벌과 다음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로 팬들과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MBC 뉴스 김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