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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 '미실' 명대사 - 명장면

작성시간09.07.07|조회수1,579 목록 댓글 0

 

'미실' 떠나고 / 명대사 - 명장면

 

< 조이뉴스24 >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 고현정은 죽음으로 떠났지만 미실의 명장면과 명대사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남았다.

고현정은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선덕여왕' 인기에 일등공신이다. 미실의 소름 끼치는 카리스마와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고현정의 열연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눈썹의 꿈틀거림 등 미세한 표정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여장부 미실. 방영 6개월 동안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미실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모아봤다.

◆"미실의 시대이옵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고현정의 사극 연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봤던 드라마 초반, 미실이 자신의 시대를 선포하는 장면을 인상깊게 각인시키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장면에서 미실은 숨을 거둔 진흥대제를 앞에 두고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하셨습니까. 보십시오. 미실의 사람이옵니다. 미실의 시대이옵니다."고 말한다. 그렁그렁한 눈물과는 반대로 소름 돋는 목소리로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은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미실과 덕만의 '100분토론'

 

 

덕만과 미실은 서로에게 운명의 맞수이자 강력한 경쟁자였고 또 다른 의미의 동지였다. 첨성대 건립을 둘러싸고 '희망의 정치'와 '환상의 정치'등 서로 다른 정치관을 내세우면서 팽팽하게 진행된 두 사람의 설전은 이후 '100분 토론'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어록으로 회자되고 있다.

덕만이 과학을 등에 업고 무지한 백성들을 속이지 않겠다고 말하자 미실은 "백성들은 환상을 원한다. 가뭄에 비를 내리고 흉사를 막아주는 초월적인 존재를 원한다. 그 환상을 만들어야 통치할 수가 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다. 희망이 가장 잔인한 환상이다. 공주께서는 이 미실보다 간교하다"고 자신의 뜻을 펼쳤다.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합니다"

 

 

미실과 유신의 불꽃 튀는 대결도 관심을 모았다. 미실이 유신에게 자신의 사람이 되라고 회유하는 장면과 윙크하는 모습은 네티즌 사이서 패러디되며 크게 화제를 모았다.

미실이 유신에게 자기 사람이 될 것을 부탁하자 유신은 "저를 가지시려거든 제 시체를 가지셔야 할 것"이라며 단번에 거절한다. 미실은 하늘의 뜻을 상징하는 단어를 쓰고, 이 글귀를 보며 놀라는 유신랑에게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합니다"라며 야릇한 미소와 함께 윙크를 날렸다.

훗날 상황이 역전되어 미실을 찾아가 무릎을 꿇는 유신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유신은 "이제야 제 그릇의 크기를 인정합니다. 이제 세주님의 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고 말한다. 미실은 "내가 젊었더라면 직접 품었을 것을 이리도 안타까울 때가 있나"며 간교하게 웃었다.

◆ "왜 난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미실이 늘 강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였지만 성골 출신이 아니라는 신분의 한계에 부딪혔던 미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특히 덕만이 미실의 신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첨성대를 건축해야 한다고 하자 겉으로 담담하게 대응했지만 속으로는 덕만의 지혜를 인정하며 부러움을 내비쳤다.

미실이 설원랑을 향해 "덕만의 신선한 발상이 부럽다. 서라벌 황실에서 나고 자란 이 미실은 할 수 없는 생각이다. 또 젊음이 부럽다... 왜 난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내가 쉽게 황후의 꿈을 이뤘다면 그 다음의 꿈을 꿀 수 있었을텐데...난 다음 꿈을 볼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키는 장면은 미실의 행동을 미워할 수 만은 없게 만들었다.

◆미실의 자결 "미실의 시대여 안녕히"

 

 

고현정의 하차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은 미실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떤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을 펼쳐왔다. 많은 기대감과 관심 속에서 베일을 벗은 미실의 죽음은 단연 놓치기 아까운 명장면.

미실은 신라를 자기 손으로 무너트릴 수 없어 자결을 택했다. 미실은 음독 후 죽음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아들인 비담에게 욕망을 불어넣었다.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덕만을 사랑하면 그리해야 한다. 연모, 대의, 이 신라 어느 것 하나 나눌 수가 없는 것들이다. 유신과도 춘추와도 그 누구와도 말이다. 나는 사람보다 나라를 가지려고 했다. 너는 나라를 얻고 사람을 가져야 한다."

거친 세상 속에서 미실로 인해 더욱 강하게 성장했던 덕만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미실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미실의 시대 안녕히'라며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그렇게 찬란했던 미실의 시대는 막이 내렸다.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조이뉴스24 포토DB>

 

 

 

선덕여왕 / 역사 속의 미실의 난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현재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선 정적인 덕만공주(이요원 분)를 제거하기 위한 미실(고현정 분)의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미실은 덕만을 제거하기 위해 상대편에게 술을 먹이고 속임수를 쓰고 군대를 동원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포정치를 시행하고 있다. 정적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 판을 크게 벌려 온갖 술수를 다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실은 때로는 '명분과 합법'을 내세우고 때로는 '야비하고 치사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미실이 더 중시하는 쪽은 전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진평왕(조민기 분)과 옥새를 확보한 것도 명분과 합법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드라마 속의 미실은 정적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가지가지의 술수를 다 동원하는 한편 명분과 합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 실제의 미실도 과연 그러했을까? 역사 속의 미실은 정적을 제거할 때에 어떤 수단을 동원했을까?

실제 미실은 어떤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했을까

필사본 < 화랑세기 > 에 따르면, 미실이 제거한 주요 정적은 2명이었다.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년)의 장남인 동륜태자가 하나요, 진흥왕의 차남인 제25대 진지왕(금륜왕자, 재위 576~579년)이 또 하나였다. 진흥왕의 아들들이자 미실의 연인들이었던 동륜과 금륜이 모두 미실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여기서 진지왕 제거는 미실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도태후(진흥왕의 왕후)와 함께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사도태후-미실 연대의 주도권은 사도태후 쪽에 있었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벌인 데다 사도태후가 주도하는 일인지라, 진지왕 제거의 경우에는 미실 특유의 일처리 방식이 드러나기 힘들었다.

이에 비해 동륜태자 제거는 미실의 '단독범행'이었다. 미실이 자기 수하들을 동원해서 단독으로 벌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의 경우에는 미실의 일처리 방식이 잘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륜태자는 드라마 속 덕만처럼 국정을 사실상 총괄하는 후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실제의 미실이 후계자 동륜태자를 제거한 방식과 드라마 속의 미실이 후계자 덕만을 제거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럼, 미실은 동륜태자를 어떻게 제거했을까?

'태자' 살해하고도 별다른 타격 받지 않은 미실

< 화랑세기 > 제6세 풍월주 세종 편에서는 "홍제 원년(572) 3월에 동태자(동륜태자)가 보명궁의 맹견사건 때문에 죽었다"고 기록했다. 연로한 진흥왕에 이어 조만간 차기 국왕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던 동륜태자가 엉뚱하게도 개에 물려 사망한 것이다. 경호원들이 얼마든지 태자를 보호할 수 있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경호원들은 무사하고 경호원들 틈에 있던 태자만 죽음을 당했다.

이상하다 싶어서, 진흥왕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지휘했다. 알고 보니, 이 사건의 범인은 후궁인 미실이었다. 진흥왕이 미실을 범인으로 판단한 것은 태자의 경호원들 중에 미실의 부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실의 명령을 받은 경호원들이 일부러 경호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서 누군가가 맹견을 태자 쪽으로 풀어놓았던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이었다.

태자를 살해했는데도 불구하고 미실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실이 화랑도의 원화(源花) 자리에서 물러나고 풍월주 자리가 다시 설치되었지만, 새로운 풍월주의 자리는 미실의 측근인 설원랑에게 돌아갔다. 미실 입장에서는 아무 손실 없는 정변이었던 것이다.

미실이 개를 풀어 동륜태자를 제거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실이 왜 그를 살해했으며 미실이 그러고도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를 일단 추적해 보기로 하자.

미실과 동륜태자가 과거에 진흥왕 몰래 밀애를 즐긴 적이 있기 때문에 '혹시 치정 때문에 미실이 동륜태자를 살해한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동륜태자와의 관계가 들통 날 것을 우려한 미실이 태자에게 미인들을 많이 소개해줬고 태자 역시 새로운 여자들에게 마음을 주며 미실과의 관계를 이미 정리했기 때문에, 사건 당시에는 두 사람의 애정관계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실이 동륜태자를 살해한 본질적 동기는 < 삼국사기 > 권4의 진흥왕본기·진지왕본기·진평왕본기 속에서 규명될 수 있다. '동륜왕자가 태자가 된 시점'과 '동륜태자가 살해된 시점'의 전후에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해보면,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문화 수입해 왕권 강화하려 했던 진흥왕과 태자




진흥왕~진평왕 시대의 조공 기록은 동륜태자 살해사건이 대외관계의 노선과 관계 있음을 보여준다.

ⓒ 김종성

진흥왕·진지왕·진평왕 시대의 조공 기록을 보여주는 위의 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진흥왕은 재위 25년(564)에 가서야 중국에 조공을 하기 시작했다. 조공의 본질은 외교와 무역이었다. 따라서 진흥왕은 재위 25년에 가서야 대(對)중국 외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재위 25년 이전까지 진흥왕이 외교에 신경을 쓰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구려·백제와의 전쟁에 온 신경을 다 기울였기 때문이다.

진흥왕이 접촉을 시도할 당시의 중국은 남북조 분열기(4~6세기)의 막바지에 처해 있었다. 북중국 즉 북조(北朝)에는 북주(557~581년)와 북제(550~577년)가 있었고, 남중국 즉 남조(南朝)에는 진(陳, 557~589년)이 있었다. 당시 남조와 북조는 서로 정통성 경쟁을 벌였다. 여기서 신라가 접근하기 쉬운 나라는 북제와 진이었다. 지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북주는 북제보다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동륜태자 피살 당시의 중국 정세. 지도 속의 글씨는 편집의 결과임.


ⓒ 중국사회과학원, < 간명중국역사지도집 > .

북제와 진 가운데에서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를 놓고 처음에 진흥왕은 외교적 혼선을 빚었다. 앞의 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564년에 북조의 북제에 조공을 한 진흥왕은 2년 뒤인 566년에 조공의 대상을 바꾸었다. 남조의 진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진에게 조공을 하기 직전에 동륜왕자가 태자로 책봉된 것이다. 말년의 진흥왕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채 승복을 입고 살았다는 < 삼국사기 > 의 기록을 놓고 볼 때, 이 시기의 신라 정국은 실질적으로 동륜태자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진과의 외교관계는 실질적으로 동륜태자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흥왕과 동륜태자가 북제 대신에 진을 선택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신라의 왕권강화에 기여하는 불교문화가 주로 진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과 동륜태자는 외교력 강화와 불교문화 수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귀족들을 누르려 했던 것이다.

이런 왕권강화 시도를 귀족들이 그냥 묵과할 리는 없다. 그 점은 어느 시대건 간에 다 마찬가지다. 진과의 외교관계가 한창 강화될 때에 동륜태자는 갑자기 죽었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진과의 관계도 중단되고 말았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동륜태자가 죽자마자 신라의 외교 파트너는 갑자기 진에서 북제로 바뀌고 말았다.

미실이 개를 풀어 태자를 죽인 이유

이와 같이 < 화랑세기 > 와 < 삼국사기 > 를 종합해보면, 미실이 개를 풀어 동륜태자를 죽인 것은 진흥왕과 동륜태자가 주도하는 외교사업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실은 왕권강화를 반대하는 귀족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다. 자기 아들을 죽인 미실을 진흥왕이 처벌하지 못한 것은, 진흥왕이 미실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실 배후에 귀족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륜태자의 동생인 진지왕 역시 북제와의 관계를 끊고 다시 진과 관계를 열려고 하다가 그 이듬해에 폐위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 화랑세기 > 에서는 복잡한 여성관계가 진지왕 폐위의 원인이라고 했지만, 여성관계와 함께 외교관계 역시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외교문제로 진통을 겪은 신라는 진지왕 폐위 이후로 근 20년 동안 중국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았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589년)하고도 7년이나 지난 596년에 가서야 신라는 비로소 수나라에 조공을 하기 시작했고, 수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당나라에 조공을 하기 시작했다. 남북조의 대결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최종 승자에게 줄을 댄 것이다. 이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반의 동아시아 격변기 때에 신라 지배층이 대외관계에 상당히 신중한 동시에 소극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누구와 외교관계를 체결한 것인가를 놓고 신라 지배층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했고 그 와중에 미실이 귀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동륜태자를 살해했음을 알려주는 동륜태자 살해사건은 드라마 < 선덕여왕 > 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미실에 관한 또 하나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어떤 정보일까? 그것은 미실이 단독으로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판을 그렇게 복잡하게 벌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분과 합법을 그다지 존중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의 미실은 정적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 상대편에게 술을 먹이고 속임수를 쓰고 군대를 동원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포정치를 실시하는 등의 갖가지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실제의 미실은 아주 '명쾌'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그냥 개를 풀어서 정적을 단번에 죽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의 미실은 자신의 행동을 명분과 합법으로 치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대담하게 행동했다. 귀족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편으로는 명분과 합법을 중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온갖 '야비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하려는 드라마 속의 미실과 달리, 실제의 미실은 아주 '명쾌'하면서도 대담한 방법으로 정적을 제거했다. 그는 판을 복잡하게 벌이지 않았다. 아주 노골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그는 사나운 개를 풀어 정적에게 달려들도록 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덕만 앞길 가로막은 사람은 따로 있다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서 대권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 '미실'.


ⓒ MBC


드라마 < 선덕여왕 > 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여기서 역사를 새로 쓴다는 것은, 어떤 획기적인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를 '마음대로' 쓰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26일과 27일에 방영된 < 선덕여왕 > 제45부 및 제46부에서는 소위 '미실의 난'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여성인 덕만공주와 비(非)성골인 김춘추의 대권도전에 자극을 받은 미실이 일련의 정치조작과 쿠데타를 통해 서라벌과 왕궁을 장악하고 여왕의 길에 도전한다는 것이 '미실의 난'의 줄거리다.

가까스로 왕궁을 빠져나온 덕만은 춘추·유신·비담·월야 등과 함께 비상캠프를 차려놓고 미실에 일대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귀족·화랑들이 미실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데에다가 덕만 쪽의 대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실의 난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예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근거는 물론 개연성도 없는 '미실의 난'

그런데 드라마 < 선덕여왕 > 에 묘사된 '미실의 난'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 쓰는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느 사료에서도 그 근거는 물론 개연성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실 같은 걸출한 여인이라면 한번쯤 쿠데타 등을 통해 여왕의 길에 도전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또는 "여걸이 일으킨 정변이라 하여, 남성 중심의 역사가들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겼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건이 있더라도, 역사가는 그것을 무턱대고 은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턱대고 은폐하다가는 불신만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기록을 불신하는 것만큼 역사가에게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들이 사실을 은폐하는 방법 속에는 '은폐의 법칙'이라고 불릴 만한 어떤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은폐의 법칙'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사건이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숨길 수 있다. 둘째, 쿠데타나 정변처럼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 자체를 숨겨서는 안 된다. 아니, 숨길 수도 없다. 이런 경우에는 사건의 발생을 인정하되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만약 '미실의 난' 같은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고 김부식이나 일연 등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다면, 그들은 분명히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반군이 서라벌과 왕궁을 점거하고 진평왕까지 연금할 정도의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런 사실을 완전히 숨기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은폐의 법칙'을 굳이 운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실의 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기록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실에 관한 유일한 기록인 < 화랑세기 > 에 따르면 실제의 미실은 드라마 상의 미실보다 능력이 작았을 뿐만 아니라, 노년의 미실이 중점을 둔 것은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자손의 출세였기 때문이다.

< 선덕여왕 > 이 범한 결정적 오류는...





드라마 < 선덕여왕 > 속 덕만.


ⓒ MBC


물론 사극 작가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는 전혀 발생하지 않은 사실일지라도, 사극 작가는 그것을 실제 사실처럼 다룰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상상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에도 사극 작가가 반드시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건의 본질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순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이순신이 일본군이 아닌 명나라 군대를 물리쳤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드라마는 사극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또 안중근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안중근이 이토우 히로부미가 아닌 원세개(위안스카이)를 저격했다고 한다면, 이런 드라마를 사극으로 받아들일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타 부분에서는 픽션을 가미할 수 있겠지만, 이순신이 누구와 싸웠고 안중근이 누구를 저격했는가 하는 부분만큼은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다. 덕만의 왕권 도전을 다룬 드라마에서 반드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덕만이 누구와의 경쟁 혹은 투쟁을 거쳐 왕위를 획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은 < 선덕여왕 > 의 기획의도에서도 이미 표방된 적이 있다. 여타 부분에서는 상상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상상의 자유가 크게 제약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 선덕여왕 > 은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선덕여왕의 등극과정을 묘사하겠다는 기획의도를 표방해놓고도, 정작 그 등극과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을 멋지게 재해석해보겠다는 장인 정신이 아니라, "40%냐 50%냐" 하는 시청률에 대한 집념만이 오로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의 라이벌은 미실 아닌 용수와 승만왕후 모자

그럼,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서 놓쳐버린 덕만의 등극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덕만은 누구와의 경쟁 혹은 투쟁을 거쳐 왕위에 올랐을까? < 화랑세기 >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따르면, 이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제1단계. 덕만이 후계자로 지정되기 이전의 시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덕만이 상대한 라이벌은 진지왕의 아들이자 진평왕의 사촌인 김용수였다. 용수는, < 화랑세기 > 에 따르면, 용춘의 형이자 춘추의 아버지였다.

고구려·백제의 공격이 본격화된 603년경에, 진평왕은 서둘러 후계구도를 결정했다. 적자(嫡子)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혹시라도 전쟁 중에 죽게 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는 장녀인 천명공주를 용수에게 시집보낸 뒤에 용수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덕만 역시 왕위를 꿈꾸었던 모양이다. '덕만이 점차적으로 제왕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 화랑세기 > 의 기록은, 덕만이 왕이 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왕자도 아닌 공주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제왕의 면모를 갖추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진평왕은 제왕의 면모를 갖춘 인물인 동시에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친딸인 덕만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그리고는 용수-천명 부부를 왕궁에서 내보냈다. 이는 덕만이 용수를 상대로 선의의 경쟁을 벌였고, 이 경쟁에서 덕만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승만왕후 모자와 '투쟁' 뒤 왕위에 오른 덕만

다음으로 제2단계. 덕만이 후계자로 지정된 이후의 시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덕만이 상대한 라이벌은 새엄마인 승만(僧滿)왕후 모자였다.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왕후는 덕만이 후계자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여인이 바로 승만왕후였다.

그런데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음에 따라, 덕만과 승만왕후 모자 간에 자연스럽게 갈등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승만왕후가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 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덕만 대 승만왕후의 관계는 광해군 대 인목대비의 관계와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덕만의 입장에서 볼 때에, 제2단계는 제1단계에 비해 훨씬 더 힘든 과정이었다. 제1단계에서 덕만은 용수와의 대결을 아름답게 끝냈다. 덕만이 용수를 제치고 후계자가 된 뒤에도 이들의 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용수의 동생인 용춘은 계속해서 덕만을 보좌했고, 용수의 아들인 춘추 역시 훗날 덕만을 충실히 보좌했다. 덕만과 용수의 대결이 추하게 종결되었다면, 이런 아름다운 일이 발생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의 기획의도.


ⓒ MBC < 선덕여왕 > 홈페이지


그러나 제2단계는 결코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왜냐하면,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승만왕후가 낳은 아들, 다시 말해, 덕만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왕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다.

왕자가 죽은 뒤에 승만왕후가 덕만의 정치참모인 용춘을 미워했고 이로 인해 용춘이 지방으로 좌천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에, 용춘이 왕자의 죽음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으리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덕만의 핵심참모인 용춘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덕만 역시 어떤 형태로든 그 사건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승만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가 죽지 않고 성장했다면, 여자인 덕만의 왕위계승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왕위에 오르기 위한 덕만의 제2단계 투쟁에서 그 왕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덕만의 왕권 가도에 장애가 될 만한 주요 인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상대한 실제의 라이벌은 용수 및 승만왕후 모자였다. 덕만이 미실과의 투쟁을 거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저 드라마 속의 허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덕만의 왕권도전을 다룬 드라마라면, '덕만 대 용수'의 대결과 '덕만 대 승만왕후 모자'의 대결을 반드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이 덕만의 왕권도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제대로 소개해주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마치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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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난  

 

'미실의 난'. 이번주 방송된 MBC TV '선덕여왕'의 핵심은 미실이 일으킨 정변입니다. 정변의 기본은 누군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세력이 등장했다'고 크게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함께 진짜 거병이 이뤄집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의 난은 이런 기본 원칙에 아주 충실하게 진행됐습니다. 유신과 알천의 무력 도발이 유도됐고, 이어 석품에 의한 세종 습격 자작극으로 혼란을 유발한 뒤 수도 서라벌 인근의 정규군이 수도로 진격, 일시적인 계엄 상태를 만드는 것 하나 하나가 쿠데타의 기본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사건을 보는 눈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것 정도.

그런데 미실의 난이 정말 일어났다 해도, 금세 정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지금 시작은 대단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이 난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볼 때 이 난 이후에도 미실과 그 측근 인물들은 멀쩡히 살아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고, 덕만공주와 그 측근인 유신이나 알천, 비담 가운데서도 이 난으로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누가 이 난의 희생양이 될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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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포스팅에서는 '화랑세기'의 미실 관련 기록들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과 최대한 맞춰 보는 걸로 시도해 보겠습니다.

작가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미실의 난'을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칠숙/석품의 난'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반란이든 이 반란은 실패합니다. 실제 역사가 이 반란을 진압하고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미 결과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반란을 미실이 주도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미실과 미실의 남편인 세종, 그 아들인 하종, 정부인 설원, 역시 그 아들인 보종, 미실의 동생 미생 등은 모두 참살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세종이 난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건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거대 사건입니다.

하지만 세종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것은 단 한번, 그것도 진지왕 2년의 무훈에 대한 기록입니다.

겨울 10월, 백제가 서쪽 변경의 주군을 침범하자, 이찬 세종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게 하였다. 세종은 일선 북쪽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3천7백 명을 목베었다. 내리서성을 쌓았다. (冬十月, 百濟侵西邊州郡, 命伊찬世宗出師, 擊破之於一善北, 斬獲三千七百級. 築內利西城)

그리고 아무런 기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화랑세기'에도 미실이 반란에 관여했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죠. 미실과 설원은 잘 늙어 죽었고, 이들의 아들 보종 또한 유신의 뒤를 이어 풍월주에 오를 몸입니다.

한마디로 '난은 무슨 난?'입니다. 반란의 주모자들이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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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역사의 기록이 지목하고 있는 반란의 주범은 칠숙과 석품입니다. 이미 이 부분은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삼국사기 원문을 한번 확인합니다.

여름 5월,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반역을 도모하였다. 왕이 이를 알고 칠숙을 잡아 동쪽 시장에서 참수하고, 구족을 처형하였다. 아찬 석품은 백제 국경까지 도망하였으나, 처자가 보고 싶어 낮에는 숨고 밤이면 걸어서 총산까지 돌아왔다. 그는 그 곳에서 나무꾼 한 사람을 만나 그의 헤어진 옷과 바꾸어 입은채 나무를 지고 몰래 집에 돌아왔으나 곧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夏五月, 伊찬柒宿與阿찬石品謀叛, 王覺之, 捕捉柒宿, 斬之東市, 幷夷九族. 阿찬石品亡至百濟國境, 思見妻子, 晝伏夜行, 還至叢山, 見一樵夫, 脫衣換樵夫衣, 衣之, 負薪潛至於家, 被捉伏刑)

석품의 말로가 참 불쌍합니다. 아무튼 반란은 미실이 일으켰는데 칠숙과 석품은 척살당하지만 미실과 주변 인물들은 멀쩡하다.... 이건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만, 과연 작가들이 어떻게 드라마를 풀어 나갈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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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덕만공주와 비담의 활약으로 미실은 큰 무력 충돌 없이 스스로 병력을 거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미실이 난을 일으킨 이유가 비담의 장래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담의 요청에 따라 난을 거두는 것도 가능할 듯 합니다. 애당초 '미실이 직접 왕이 된다'는 황당무계한 목표는 무시해도 좋았을 듯 합니다.

그러고 나면 덕만공주와 미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겠죠. (혹은 아래 댓글로 다른 분이 지적하셨듯 진주군 사령관 주진공과 덕만 사이에 먼저 합의가 타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강요하려 했던 것과 반대로, 미실과 미실의 측근들이 모든 정무에서 손을 떼고 재야에 칩거하는 대신 난의 주모자로서의 처벌은 모면하게 해 주는 선에서 대략 대화가 끝날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정변이 있었고 군이 출동했는데 그냥 덮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기선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겠죠. 그리고 칠숙과 석품이 그 굴레를 뒤집어 쓰게 될 겁니다. (아마 드라마 속 칠숙의 충성심으로 봐선 스스로 죄를 자처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이렇게 해서 비담과 유신, 춘추는 덕만공주를 옹립하는 세 축이 되고, 선덕여왕의 즉위에는 걸림돌이 사라집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유신과 춘추가 한 편이 되어 비담을 배척하고, 결국 궁지에 몰린 비담이 난을 일으키는 지경에 다다르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입니다. 당장은 가장 확실한 같은 편일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번에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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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역사를 바꾸지 않는 한 필연입니다. 다만 남은 궁금증은 대체 덕만공주가 어떤 제안으로 미실로 하여금 뽑은 칼을 거두고 반란을 무마시킬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어떤 명분을 대든 참 황당무계한 진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담과 덕만의 혼인...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만, 그 정도로 뽑은 칼을 스스로 거두고 정국에서 물러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21세기도 아닌 7세기에 말입니다. 고작 몇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변을 마무리한다는 건 그만큼 정변이 신속하고 별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됐을 때에나 가능한 일인데, 과연 무엇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부디 작가진이 지혜를 발휘해서 보다 설득력있는 스토리를 보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출처: 송원섭의 스핑크스>

 

 

 

 

실제 천명공주는 해피엔딩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11일 방영된 드라마 < 선덕여왕 > 제24부에서 '뜻밖의' 아니 '좀 생뚱맞은' 부고가 날아들었다.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루던 천명공주(박예진 분)가 독화살을 맞고 갑작스레 불의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덕만을 생포해 오라"는 미실(고현정 분)의 명령에도, "덕만은 미실을 극복할 운명이니 덕만을 죽여야 한다"는 신녀 서리(송옥숙 분)의 말을 들은 미생(정웅인 분)은 아들 대남보(류상욱 분)를 보내 덕만을 죽이도록 했다. 그런데 저 멀리 서 있는 천명공주를 덕만(이요원 분)으로 착각한 대남보는 그만 천명을 향해 독화살을 쏘아 올리고 말았다.

온몸에 독이 퍼져 동굴 바닥에 쓰러져 누운 천명은, 덕만이 비담(김남길 분)과 함께 해독제를 구하러 나간 사이에 김유신(엄태웅 분)에게 "덕만을 잘 부탁한다"면서 그동안 마음속에 감춰둔 감정을 고백했다. 실은 너를 좋아했다며 유신에게 뒤늦은 고백을 하고는 천명은 젊은 나이에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그동안 드라마 < 선덕여왕 > 의 핵심 축을 이루던 천명은 위와 같이 덕만의 공주 신분이 판명된 때에 맞춰 유신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채 독화살을 맞고 고통 속에 숨을 거두었다. 드라마 속에서 천명의 최후는 말 그대로 '언(un)해피엔딩' 즉 비극적 결말이다.

최후 맞은 드라마 속 천명, 실제 역사서는?

그런데 드라마에 나온 천명의 최후는 실제 역사와는 너무나 정반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드라마 < 선덕여왕 > 의 부고가 '좀 생뚱맞다'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 실제 역사에서는 어떠했을까?

천명공주의 최후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추동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원동력이 최후의 순간까지 천명의 삶을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 화랑세기 >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따르면, 천명공주는 어려서부터 오촌 당숙이자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을 마음속으로 연모했다. 바로 이 용춘에 대한 애정이 천명의 일생을 이끌고 간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할 나이에 접어든 어느 날, 천명은 어머니인 마야왕비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런 이야기를 던졌다. "남자는 용숙(龍叔)만한 이가 없습니다." 누가 자신의 이상형인지를 그런 식으로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용숙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럼, 용숙은 누구였을까? 이후의 정황을 볼 때에, 천명이 '용춘 당숙'을 줄여서 용숙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마야왕비는 '용숙'이란 말을 '용수'(용춘의 형)로 잘못 이해했다. 딸의 마음이 용수에게 있다고 착각한 그는 딸과 용수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이렇게 해서 천명은 뜻하지 않게 용수의 아내가 되고 말았다. 천명이 원한 사람은 용춘이었지만, 마야왕비의 착오와 그의 권력에 의해서 엉뚱하게도 용수가 천명 곁으로 이끌려오고 만 것이다.

용수와의 엉뚱한 결혼이 성사되는데도 천명 본인이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은 왕실의 권위적인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천명의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용춘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명과 용수의 결혼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마야왕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런데 마야왕비는 또 한 번의 엉뚱한 짓을 저질렀다. 천명이 사랑하는 대상이 용춘임을 눈치 챈 마야왕비는 밤중에 궁정 파티를 연 다음, 천명과 용춘이 은밀히 함께 밤을 보내도록 주선했다. 지난번에는 용수가, 이번에는 용춘이 마야왕비의 권력에 의해 천명 곁으로 이끌려오고 만 것이다.

'권력'까지 버리며 천명공주를 택한 용춘공

한편, 아내인 천명의 마음이 아우 용춘에게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용수 역시 슬며시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 화랑세기 > 에 따르면, 용수는 늘 몸이 아프다면서 용춘에게 "네가 공주를 모시고 그 마음을 위로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남들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천명은 어머니 마야왕비와 남편 용수의 도움으로 용춘과의 사랑을 은밀히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덕만공주가 아버지의 총애를 입어 천명공주를 제치고 제1공주의 지위를 차지한 뒤부터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덕만이 용춘을 원하고 그런 덕만의 뜻을 진평왕도 지지했기 때문이다. 진평왕과 덕만은 천명과 용춘의 관계를 몰랐던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용춘은 덕만 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권력에 힘입어 비록 비밀스럽게나마 용춘과의 사랑을 얻은 천명은, 이번에는 아버지의 권력으로 인해 용춘이 덕만에게 옮겨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천명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덕만 곁으로 간 용춘이 천명에 대한 의리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덕만에게 마음이 없었던 용춘은 어떻게든 그 곁을 떠나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핑계가 '덕만공주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용춘은 진평왕의 허락을 받아 덕만의 곁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용춘이 보인 행동은 웬만한 로맨틱 소설의 소재가 되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천명이 더 좋아서 덕만의 곁을 떠나긴 했지만, 덕만에 대한 의리 역시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평왕의 계비인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는 바람에 덕만공주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상황 속에서 승만의 아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용춘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스스로 지방으로 좌천됨으로써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가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덕만이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용춘은 천명과의 사랑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덕만과의 의리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역사 속 천명공주 최후는 전형적인 '해피엔딩'





< 선덕여왕 > 속 용춘공. 실제 역사와는 달리 드라마에선 천명공주를 지원하는 역할로만 등장한다.

ⓒ MBC


어쨌든 용춘이 덕만의 곁을 떠남으로써 천명과 용춘은 둘의 사랑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이 사랑은 진평왕의 사후에 또다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이 용춘을 남편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왕명이기 때문에 용춘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만의 등극과 함께 덕만과 용춘은 정식으로 부부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마야왕비의 힘에 의해 천명 곁으로 갔고 나중에는 진평왕의 힘에 의해 덕만 곁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용춘은, 이번에는 덕만의 힘에 이끌려 덕만의 남편이 되고 만 것이다. '운명이려니'하며 그냥 여왕의 남편으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용춘은 이번에도 천명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여왕의 남편이 되면 국정 총괄자의 지위까지 겸할 수 있는데도, 용춘은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자식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여왕 곁을 떠나려고 했다. 용춘의 뜻이 확고함을 알게 된 여왕 덕만은 할 수 없이 용춘을 다시 한 번 놓아주었다. 용춘의 뒤를 이어 을제가 여왕의 남편 겸 국정총괄자의 위치에 올랐다.

여왕이 된 덕만이 용춘을 포기함에 따라 천명은 오랫동안 고대하던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껏 남의 힘에 이끌려 천명과 덕만 사이를 오고갔던 용춘이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천명을 당당히 선택한 것이다.

"물러나 살라"는 여왕의 허락이 용춘에게 떨어진 뒤에 천명공주와 용춘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예전에 마야왕비와 용수의 양해 하에 밤에 몰래 만나던 두 사람이 세상에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부부가 된 것이다.

천명공주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인 용춘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해서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야말로 온갖 우여곡절 끝에 얻은 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천명공주는 용춘과의 사이에서 딸 다섯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 화랑세기 > 용춘 편에 따르면, 만년에 천명공주는 용춘과 함께 거문고 소리가 흐르는 산궁(山宮)에서 시첩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상을 차려 놓고 인생을 즐겼다고 한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서는 덕만의 공주 신분이 판명된 때에 천명공주가 유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천명공주는 실제로는 덕만이 등극한 후에 결국 용춘과의 사랑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다가 편안하게 인생을 마쳤다. 그러므로 천명공주의 최후는, 동화로 말하면,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다.

[☞ 오마이 블로그]

 

 

 

 

사다함의 매화 / 친숙, 소화 재등장

 

[뉴스엔 박선지 기자]
MBC 월화사극 '선덕여왕'이 미스터리물을 방불케 하는 서스펜스(긴장감)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선덕여왕'은 당초 등장인물들의 생사를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시켜왔다. 국선 문노(정호빈 분),

덕만(이요원 분)의 양모인 소화(서영희 분), 미실(고현정 분)의 수하인 칠숙(안길강 분) 등 중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들의 생사여부와 재등장 시기를 의문에 부침으로써 극에 꾸준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던 것.

 

 

6일 방송된 '선덕여왕' 13회분에서는 그간 생사의 의문에 쌓여있던 인물들의 재등장이 예고되는가 하면, 미실의 절대 권력의

배경이 되는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가 그 베일을 하나하나씩 벗어가며 최고의 긴박감 넘치는 전개를 선보였다.

을제(신구 분)는 천명공주(박예진 분)에게 문노가 남긴 글을 보여주며 미실이 궁중 내 권력자로 등극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고,

이 과정에서 천명과 유신(엄태웅 분), 덕만(이요원 분)은 미실이 빼돌린 왕에게 물려져야 할 권력이 그녀의 첫사랑이 남긴

'사다함의 매화'와 관련이 있단 사실을 간파했다.

유신과 덕만은 천명의 명을 받들어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곧 서라벌을 방문하는 사신이 이

'사다함의 매화'를 가져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또 미생(정웅인 분)을 목격한 절에 '사다함의 매화'와 관련된 무엇이 있음을

알아 차렸지만,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미실과 맞닥트리고 아무런 물증도 찾아내지 못한 채 돌아섰다. 이들이 황망하게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미실은 "사다함의 매화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것을 모를 것"이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처럼 이날 방송은 '사다함의 매화'를 놓고 벌이는 극의 미스터리 해결식 전개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긴박감을 선사했고,

밝혀질 듯 말 듯한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가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다음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또 이날 방송 말미에서는 그동안 생사 여부를 알 수 없었던 칠숙이 사신단에 끼어 등장하며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고 14회

예고편에서는 사막의 유사 속에 빨려 들어갔던 소화 역시 사신단에 포함돼 서라벌로 돌아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두 인물이 모두 재등장하면서 극은 새로운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

방송 후 시청자들은 '선덕여왕'의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사다함의 매화'의 정체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드디어 칠숙과

소화가 등장했다. 앞으로 극이 훨씬 더 흥미진진해 질 것 같다" "문노는 언제쯤 등장할지 궁금하다" 며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선지 sunsia@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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