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ㆍ최승희 등 `친일명단' 4천776명 발표
- 민족문제硏 "60일간 의견수렴 후 8월 발간"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9일 안익태, 최승희, 반야월 등을 포함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천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해방 이후 최초로 시도된 `친일인사' 선정 작업을 통해 발표된 친일인사들은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군, 사법, 종교, 문화예술, 언론출판 등 16개 분야에 걸쳐 설정됐다.
분야별로 매국인사 24명, 수작.습작 138명, 중추원 335명, 일본제국의회 11명, 관료 1천207명, 경찰 880명, 군 387명, 사법 228명, 친일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예술 174명, 교육학술 62명, 언론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5천207명(중복자 포함)이며 중복인사를 제외하면 4천776명이다.
편찬위는 친일파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ㆍ식민통치ㆍ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해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친 자'라고 정의했다.
사전에 수록된 친일 인물들은 ▲조약체결 등 매국 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 등 민족반역자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 식민 지배의 하수인 노릇을 했거나 침략전쟁을 미화.선전한 문화예술인 등 부일협력자 등 두 부류로 나뉜다.
선정 기준으로는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를 고려했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 편찬위의 설명이다.
또 군, 경찰, 헌병 등 식민통치 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으며 생계형 부일협력자는 뚜렷한 친일 행적이 없으면 제외하되 권력과 부, 명예를 쫓았던 출세형 협력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이번 명단에는 1차 발표에서 거론된 박정희, 방응모, 김활란, 홍난파를 비롯해 시인 박팔양, `선구자'의 윤해영, 아동문학가 김영일, `고향의 봄' 이원수,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또 조선독립신문 윤익선 사장,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 고승제 전 서울 상대 교수, 3선 서범석 전 의원,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진의종,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도 교육학술 분야와 해외 친일인사 분야에 수록됐다.
국내 중앙 인물과 군장교를 중심으로 발표했던 1차 명단과 달리 이번 2차 발표에서는 추가조사에 의해 행적이 보완된 친일 혐의자와 지역유력자,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인물들이 대거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이날 수록대상자 명단 발표와 함께 앞으로 60일간 유족 또는 명단에 오른 친일인사 관련 기념사업회의 이의 제기를 받고 학계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다.
친일인명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7권으로 구성되며, 이 중 인명편 3권이 8월말 우선 발간된다.
편찬위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4권, 식민지통치기구사전 1권, 자료집 4권, 백서 1권 등 총 17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편찬위는 "친일청산은 잘못된 과거에 대한 심판의 의미보다는 민족 억압과 차별 없는 사회,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가치를 발견하고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내부의 반성이 확고할 때 또한 일본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수록대상자 명단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
다음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29일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친일 인물 4776명(중복자 포함 5207명)의 명단이다.
분야별 대상자
을사오적 [5명]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정미칠적 [7명]
고영희 송병준 이병무 이완용 이재곤 임선준 조중응
경술국적 [9명]
고영희 민병석 박제순 윤덕영 이병무 이완용 이재면 조민희 조중응
수작(습작) [138명]
고영희 고중덕 고흥겸 고희경 권중현 권태환 김교신 김덕한 김병익 김사철 김석기 김성근 김세현 김영수 김영철 김정록 김종한 김춘희 김학진 김호규 남장희 남정철 민건식 민규현 민병삼 민병석 민상호 민영규 민영기 민영린 민영소 민영욱 민영휘 민종묵 민철훈 민충식 민태곤 민형식 민형식 민홍기 박경원 박기양 박부양 박서양 박승원 박영효 박용대 박정서 박제빈 박제순 박찬범 성기운 성일용 성주경 송병준 송종헌 윤강로 윤덕영 윤웅렬 윤의섭 윤택영 이강식 이건하 이경우 이규원 이규환 이근명 이근상 이근택 이근호 이기용 이기원 이능세 이달용 이덕용 이동훈 이범팔 이병길 이병무 이병옥 이봉의 이영주 이완용 이완용 이완종 이용원 이용태 이원호 이윤용 이인용 이장훈 이재각 이재곤 이재극 이재완 이정로 이종승 이주영 이중환 이지용 이창수 이창훈 이충세 이택주 이풍한 이하영 이항구 이해국 이해승 이해창 이홍묵 이홍재 임낙호 임선재 임선준 장석주 장인원 정낙용 정두화 정주영 정천모 정한조 조대호 조동윤 조동희 조민희 조용호 조원흥 조중구 조중수 조중응 조중헌 조희연 최석민 최정원 한상기 한상억 한창수
중추원 [335명]
강경희 강동희 강번 강병옥 강이황 강필성 고영희 고원식 고원훈 고일청 고희경 구연수 구희서 권봉수 권중식 권중현 권태환 김갑순 김경진 김관현 김교성 김기수 김기태 김기홍 김낙헌 김돈희 김동준 김동훈 김두찬 김명규 김명수 김명준 김병규 김병욱 김병원 김부원 김사연 김상설 김상섭 김상형 김상회 김서규 김성규 김신석 김연상 김연수 김영무 김영배 김영진 김영택 김영한 김우영 김원근 김윤복 김윤정 김재환 김정석 김정태 김정호 김제하 김종흡 김준용 김진수 김창수 김창한 김춘희 김태석 김태집 김필희 김하섭 김한규 김한목 김한승 김현수 김화준 김희작 나수연 남궁영 남규희 남백우 노영환 노준영 노창안 문명기 문종구 민건식 민규식 민병덕 민병석 민상호 민영기 민영은 민영찬 민원식 민재기 민형식 박경석 박경양 박기동 박기석 박기순 박기양 박두영 박보양 박봉주 박봉진 박상준 박승봉 박영철 박영효 박용구 박의병 박이양 박제빈 박제환 박종렬 박중양 박지근 박철희 박필병 박해령 박흥규 박희양 박희옥 방의석 방인혁 방태영 백인기 상호 서병조 서병주 서상훈 서회보 석명선 선우순 성원경 성하국 손재하 손조봉 손창식 송문화 송병준 송종헌 송지헌 송헌빈 신석린 신석우 신우선 신응희 신창휴 신태유 신현구 신희련 심선택 심환진 안병길 안종철 양재창 양재홍 어담 어윤적 엄준원 엄태영 염중모 오세호 오재풍 오제영 오태환 원덕상 원병희 원응상 위기철 위정학 유기호 유만겸 유맹 유빈겸 유성준 유승흠 유익환 유정수 유진순 유태설 유혁로 유흥세 윤갑병 윤덕영 윤정현 윤치소 윤치오 윤치호 이갑용 이강원 이건춘 이겸제 이경식 이계한 이교식 이근상 이근수 이근우 이근택 이기승 이기찬 이도익 이동우 이만규 이명구 이범익 이병길 이병렬 이병학 이봉로 이선호 이승구 이승우 이영찬 이완용 이원보 이윤용 이은우 이익화 이장우 이재곤 이재정 이종덕 이종섭 이준상 이지용 이진호 이충건 이택규 이택현 이하영 이항직 이흥재 이희덕 이희적 인창환 임선준 임창수 임창하 장대익 장상철 장석원 장석주 장용관 장윤식 장응상 장인원 장준영 장직상 장헌근 장헌식 전덕룡 전석영 전승수 정건유 정관조 정교원 정난교 정대현 정동식 정병조 정석모 정석용 정순현 정연기 정인흥 정재학 정진홍 정태균 정해붕 정호봉 조경하 조민희 조병건 조병상 조상옥 조성근 조영희 조원성 조재영 조중응 조진태 조희문 주영환 지희열 진학문 진희규 차남진 천장욱 최남선 최린 최상돈 최석하 최승렬 최양호 최연국 최윤 최윤주 최재엽 최정묵 최준집 최지환 최창조 최창호 최형직 피성호 하준석 한규복 한상룡 한상봉 한영원 한익교 한정석 한진창 한창동 한창수 허명훈 허진 현기봉 현은 현준호 현헌 홍성연 홍승목 홍우석 홍운표 홍재하 홍종국 홍종억 홍종철 홍치업 황종국
일본제국의회 의원(귀족원, 중의원) [11명]
김명준 박상준 박영효 박중양 박춘금 송종헌 윤덕영 윤치호 이기용 이진호 한상룡
관료 [1,207명]
강경희 강계항 강규원 강근하 강대철 강명옥 강보형 강봉서 강상위 강성희 강세진 강신창 강원달 강원로 강원수 강익석 강인원 강준배 강진수 강창구 강창인 강창희 강태원 강태현 강필성 강홍대 경훈 계광순 계순 계용각 계용권 계응규 계찬겸 고관식 고긍명 고병권 고영준 고원식 고원훈 고윤수 고재열 고학진 고희승 고희준 공탁 곽인호 곽진 곽한탁 곽화태 구연복 구자경 구자록 구종명 국순옥 권갑중 권만주 권병선 권병필 권순구 권영석 권영세 권영택 권완주 권익채 권종원 권주상 권중만 권중명 권중수 권중식 권중익 권중형 권중환 권창섭 권태소 권태영 권태용 권태형 권한상 권혁병 권현섭 길원봉 김경배 김경배 김경태 김경희 김관현 김광일 김교명 김교철 김교필 김구연 김구현 김규년 김규목 김규승 김규호 김극일 김기득 김기선 김기영 김기준 김기홍 김기환 김대우 김덕기 김덕현 김도현 김돈희 김동곤 김동선 김동완 김동우 김동운 김동준 김동철 김동항 김동훈 김두천 김면수 김면필 김명련 김명연 김명찬 김백수 김병규 김병규 김병숙 김병엽 김병우 김병욱 김병제 김병직 김병태 김병필 김병호 김병호 김병희 김보현 김복규 김봉두 김봉식 김봉진 김봉진 김봉진 김상계 김상규 김상덕 김상봉 김상수 김상연 김상엽 김상윤 김상익 김상필 김상현 김상호 김서규 김석빈 김석영 김선재 김성두 김성윤 김성한 김성환 김성환 김수오 김수철 김순경 김순봉 김순조 김승운 김승원 김승표 김시권 김시명 김시욱 김신욱 김심영 김업 김연상 김연식 김연하 김염배 김영건 김영걸 김영국 김영근 김영기 김영기 김영년 김영도 김영두 김영묵 김영배 김영상 김영석 김영석 김영선 김영섭 김영섭 김영수 김영일 김영제 김영진 김영집 김영필 김영화 김영훈 김영훈 김예현 김오섭 김옥현 김완진 김용근 김용래 김용성 김용제 김우식 김우영 김우진 김우현 김원선 김원태 김원회 김윤성 김윤수 김윤옥 김윤정 김응준 김의영 김의용 김익삼 김장현 김재석 김재항 김재호 김재환 김정규 김정기 김정덕 김정배 김정제 김정태 김정현 김정희 김종석 김종섭 김종순 김종식 김종진 김종칠 김종화 김종휴 김주혁 김준보 김중삼 김진민 김진선 김진현 김진희 김찬오 김찬욱 김창균 김창두 김창수 김창수 김창영 김창욱 김창한 김창현 김처순 김천수 김철정 김철호 김태근 김태년 김태동 김태석 김태익 김태진 김태호 김택림 김학성 김학수 김학응 김한경 김한목 김한식 김한은 김현두 김형도 김형운 김형태 김홍규 김홍식 김홍채 김화준 김훈 김흥수 김희덕 김희선 김희준 나기정 나지강 나창섭 나호 남계룡 남궁영 남기윤 남기홍 남용희 남정구 남정학 남진우 남진우 남필우 남흥우 노봉익 노영빈 노일 노태식 독고위 마동규 마현희 맹건호 명인화 목원학 문동호 문명호 문무성 문병서 문작지 문정창 문창규 문태선 문태원 문태준 문학명 문혜관 민기호 민상현 민영오 민원식 민인호 민재호 박광렬 박규원 박근수 박기석 박기환 박낙승 박노태 박도순 박동익 박동호 박만수 박문웅 박민하 박봉구 박부양 박붕서 박상준 박선철 박성규 박성완 박성주 박승건 박승관 박승민 박승봉 박승수 박승원 박승장 박승준 박승호 박영근 박영근 박영빈 박영준 박영진 박영찬 박영철 박용관 박용구 박용득 박용섭 박용익 박용하 박용현 박우현 박윤동 박이순 박이순 박일경 박일헌 박재섭 박재수 박재홍 박정 박정규 박정수 박정순 박정욱 박제균 박제륜 박제승 박종만 박종선 박종순 박종식 박준성 박중양 박지양 박진영 박찬동 박철 박철희 박초양 박태병 박태순 박해령 박해주 박현모 박형균 박호근 박홍래 박희택 방규홍 방진태 방한복 방환악 배석린 배선만 배철세 백낙삼 백남일 백남준 백붕제 백원필 백정기 백철용 백흥기 변경삼 변기찬 변시붕 변영진 변영화 변정규 변종환 부완혁 부인식 상호 서극형 서기순 서병린 서병소 서병업 서병주 서병현 서상덕 서상면 서상준 서성극 서세갑 서승표 서윤석 서재덕 서재식 서정악 서회보 석명선 석봉희 석진형 선우렴 선우박 성낙영 성두식 성정수 성창기 소진우 소진은 소진하 손경수 손석도 손영기 손영목 손응린 손종권 손지현 손해진 손현수 송갑수 송문헌 송문화 송양호 송원섭 송원홍 송인섭 송주순 송주옥 송찬도 송태승 송택영 신광휴 신규선 신기덕 신병찬 신복근 신석린 신석하 신양선 신양재 신우선 신우영 신원배 신응희 신익균 신재영 신좌균 신창렬 신창섭 신창휴 신철균 신철균 신태건 신태무 신태빈 신태완 신태진 신택영 신현구 신현구 신현태 신현호 신희련 심규택 심노욱 심능익 심상국 심상준 심상희 심의승 심종석 심종순 심종협 심헌택 심환진 안국선 안기선 안배항 안병춘 안병헌 안성호 안승렬 안승복 안식 안영수 안용대 안용백 안윤옥 안정기 안종철 안창선 안창환 양관용 양봉제 양원탁 양익현 양재만 양재창 양재하 양재홍 양홍묵 어용선 어윤적 엄구현 엄민영 엄영택 엄주완 엄창섭 엄형섭 여구현 연관 염규환 오경린 오광은 오국영 오극선 오두환 오병문 오석룡 오석유 오세윤 오세흥 오수환 오영건 오영세 오영전 오유영 오재규 오재순 오종수 오찬갑 오치한 오태근 오태여 오태영 오태환 오해건 왕우순 왕종성 원대규 원은상 원응상 원의상 원정한 원진희 원훈상 위수봉 위종기 유경환 유광렬 유광준 유규정 유기덕 유기량 유기호 유대진 유만겸 유봉석 유봉환 유빈겸 유상범 유석기 유성렬 유성준 유승해 유승흠 유시태 유시환 유엽 유영준 유영호 유완종 유용진 유익렬 유인수 유진명 유진세 유진순 유진창 유진혁 유진호 유철희 유태영 유태훈 유혁로 유홍순 유홍종 유훈섭 윤갑병 윤건용 윤관 윤관일 윤길중 윤남철 윤덕명 윤명수 윤명은 윤범행 윤병희 윤사혁 윤상구 윤상학 윤상희 윤석중 윤석필 윤석호 윤성희 윤수병 윤승로 윤응규 윤자록 윤종완 윤종화 윤창현 윤태림 윤태빈 윤필 윤필구 윤필오 윤하영 윤헌구 윤형남 윤희성 윤희재 은치황 이경선 이경식 이경준 이계록 이계석 이계한 이계호 이공후 이관구 이관희 이규룡 이규완 이규진 이규한 이규홍 이근무 이근수 이근양 이근직 이기 이기명 이기방 이기백 이기상 이기원 이기원 이기주 이대용 이덕상 이덕응 이돈영 이동관 이동우 이동진 이동한 이동혁 이두황 이만식 이만용 이맹성 이면익 이명원 이명헌 이명환 이무성 이문하 이민구 이민영 이민하 이방협 이범관 이범기 이범래 이범소 이범승 이범익 이병년 이병렬 이병렬 이병민 이병석 이병숙 이병식 이병식 이병재 이병천 이병휘 이보상 이복영 이봉구 이봉종 이봉화 이사묵 이사필 이상균 이상만 이상철 이석구 이석기 이석희 이선호 이선호 이성근 이성호 이세영 이소영 이승구 이승근 이승조 이승채 이승칠 이승한 이심훈 이연회 이영식 이영준 이영태 이영택 이영화 이완직 이용수 이용수 이용학 이용한 이용휘 이용희 이우경 이우범 이운붕 이원구 이원국 이원규 이원보 이원영 이원찬 이원창 이원호 이유관 이유석 이윤세 이윤실 이윤영 이윤영 이은즙 이응원 이의풍 이인규 이인수 이인용 이인화 이일 이장우 이장희 이재성 이재신 이재탁 이재학 이재화 이정기 이종국 이종극 이종기 이종소 이종수 이종원 이종원 이종은 이종준 이종태 이종택 이종환 이준식 이준호 이준호 이준홍 이중현 이진호 이찬 이찬영 이찬용 이찬욱 이창규 이창근 이창룡 이창욱 이채욱 이탁응 이태근 이태용 이택규 이택수 이택준 이필국 이필동 이학귀 이학규 이한성 이한일 이한창 이항녕 이해용 이해익 이현재 이호승 이홍운 이화원 이훈영 이흥배 이흥우 이흥재 이희순 인태식 임관호 임대규 임동훈 임명순 임문석 임문환 임병억 임시재 임연상 임영준 임용준 임원용 임응목 임준희 임진섭 임창규 임창재 임철호 임춘성 임충재 임한덕 임헌영 임헌평 임홍순 임홍재 임흥재 장기창 장도건 장문화 장석원 장성화 장수길 장순응 장연철 장영두 장영한 장용환 장윤규 장윤식 장일정 장진석 장헌근 장헌식 장현태 장훈 장휴 전관연 전규락 전기대 전덕룡 전봉빈 전봉엽 전봉훈 전석영 전성오 전성진 전예용 전임봉 전재억 전재우 전종순 전지용 전창림 전창섭 전치덕 전태흥 전택수 전하식 전형순 전흥문 정경모 정계열 정교원 정국채 정규봉 정규원 정기창 정낙훈 정난교 정동일 정민조 정민조 정병기 정병현 정복 정수철 정순방 정연기 정용기 정용신 정용한 정우용 정운구 정운성 정원모 정응록 정인소 정인위 정인택 정일채 정자현 정재남 정재상 정재성 정종연 정종진 정직모 정진기 정진동 정찬선 정천모 정천종 정충원 정하형 정해용 정해운 정해인 정호기 정홍섭 정희찬 조경하 조경호 조구현 조긍현 조기행 조동민 조동선 조동순 조두석 조두환 조문제 조병계 조병교 조병연 조병우 조병우 조병칠 조상만 조성구 조영찬 조재풍 조정두 조정환 조제균 조종춘 조종현 조주현 조중관 조춘원 조충현 조풍호 조한욱 조한철 조희갑 조희련 조희문 주공건 주석균 주시헌 주영린 주영설 주영환 주영환 주우 주재영 주종덕 주진덕 진염종 차남하 차상열 차석민 차윤홍 차종호 차화선 채규항 채린 채선일 채수강 채수현 천장욱 최경식 최경진 최기영 최기집 최남교 최덕 최동근 최두연 최두영 최만달 최문경 최병상 최병원 최병철 최병혁 최병협 최봉기 최상봉 최상진 최상태 최석현 최승칠 최양호 최연식 최용덕 최운상 최원순 최원식 최응두 최익하 최인용 최일봉 최재익 최재호 최정덕 최주영 최준석 최중옥 최지환 최진한 최창한 최창홍 최탁 최태봉 최태현 최하영 최학래 최학수 최항묵 최형직 최홍섭 최화석 하국원 하준환 하태서 한경렬 한교 한교서 한국부 한규복 한동석 한복 한봉섭 한상용 한상헌 한석명 한승린 한영렬 한욱 한인근 한재경 한종건 한진범 한창수 한철우 한홍석 한희석 한희석 한희항 함기섭 함덕중 허강 허섭 현두영 현석호 현순관 현의섭 현장호 현정 홍난유 홍석현 홍성욱 홍순용 홍순욱 홍순일 홍승균 홍승표 홍승훈 홍영선 홍우도 홍우숭 홍운표 홍윤남 홍은식 홍응관 홍의식 홍일룡 홍재설 홍종국 홍종만 홍종무 홍종욱 홍종한 홍종희 홍창섭 홍필선 홍하규 홍한표 홍헌표 황남시 황덕순 황동준 황명수 황문연 황병희 황석교 황영수 황우찬 황운성 황윤동 황의박 황익연 황진성 황탁린 황한용 황항근 황희민
경찰 [880명]
강경희 강낙중 강난희 강남기 강노영 강덕호 강만표 강면욱 강보형 강봉서 강사영 강상혁 강영춘 강용건 강원생 강이황 강익엽 강인수 강인우 강재근 강정선 강진풍 강찬빈 강쾌열 강태규 강태만 강헌 강호순 계광순 계난수 고규윤 고원훈 고윤상 고정준 고제선 고창덕 고피득 곽두금 곽병호 곽을룡 구강 구연수 구연춘 구자경 권만진 권부용 권영대 권영중 권오용 권위상 권익채 권준상 권중익 권중철 권태형 권형철 금낙순 길병성 길소진 길옥열 길용일 김경구 김경배 김경업 김경용 김경태 김계현 김광호 김구배 김구열 김귀동 김규영 김규현 김극일 김근식 김기수 김기조 김기태 김난석 김대원 김덕기 김덕순 김덕양 김덕홍 김도식 김도원 김동선 김동설 김동숙 김동욱 김동진 김득률 김만근 김맹철 김면규 김명찬 김명환 김문용 김병렬 김병연 김병욱 김병주 김병철 김복길 김복의 김봉규 김봉문 김봉수 김봉인 김봉적 김봉준 김봉호 김봉희 김사연 김삼익 김상규 김상섭 김상순 김상욱 김상윤 김석기 김석기 김석칠 김석택 김석호 김성균 김성대 김성범 김성부 김성수 김성철 김세륜 김세보 김소복 김소직 김수만 김수일 김순 김순희 김승연 김승연 김승종 김승찬 김시욱 김양성 김억조 김영걸 김영규 김영동 김영배 김영상 김영석 김영선 김영세 김영수 김영순 김영식 김영주 김영진 김영하 김영호 김옥현 김요현 김용벽 김용선 김용완 김용우 김용제 김용헌 김용희 김우종 김운섭 김원조 김유하 김윤만 김윤복 김윤집 김윤철 김은제 김을도 김응권 김의수 김익권 김인봉 김인영 김인옥 김장환 김재덕 김재성 김재영 김재환 김정만 김정욱 김정탁 김정태 김정택 김정혁 김제병 김제성 김제현 김종가 김종관 김종구 김종두 김종석 김종원 김종주 김종진 김종현 김종환 김주환 김준권 김준홍 김중식 김중호 김증옥 김지연 김진봉 김진영 김진탁 김차봉 김찬욱 김창수 김창영 김창완 김창욱 김천리 김철수 김태석 김태형 김태희 김택근 김택원 김판동 김필수 김학규 김학석 김항곤 김해룡 김해일 김혁태 김현욱 김현철 김형권 김형수 김형순 김형조 김형진 김호우 김홍걸 김홍국 김홍식 김흥률 김희택 나구하 나규렴 나진용 남기윤 남기훈 남승희 남학봉 남효근 노기주 노덕술 노인국 노정근 노정순 노주봉 도광환 도세호 도헌 마동휘 마현희 맹해성 문경필 문관현 문대길 문성옥 문시창 문원보 문진상 문천목 문치재 문태영 박경진 박계봉 박광희 박권수 박귀환 박근수 박기남 박남주 박남진 박내창 박내춘 박달중 박덕용 박명석 박문기 박범룡 박병규 박병조 박병화 박보라 박사룡 박상용 박순상 박승관 박승수 박영근 박영수 박영우 박영화 박영환 박영환 박영환 박영희 박용 박용갑 박용암 박우빈 박운구 박원도 박윤성 박윤철 박을수 박응줄 박의창 박인종 박인훈 박장환 박재수 박재원 박정길 박정로 박정로 박정순 박제도 박제훈 박종숙 박종호 박준호 박진영 박진춘 박진하 박진항 박진호 박차숙 박찬구 박태선 박태언 박학로 박학진 박형로 박호양 박희정 방인형 방효선 배경훈 배귀암 배도준 배만수 배병모 배석린 배영원 배용표 배정자 백능수 백명갑 백성수 백영권 백원교 백의용 변성규 변영화 변종철 변훈 서기순 서기영 서상영 서상용 서소봉 서승렬 서육권 서재욱 서재익 서정국 서정국 서정진 서태하 선우갑 선우박 선우형 성낙영 성봉규 성은주 성정수 소진은 손경수 손석도 손양한 손영남 손해진 송남섭 송덕수 송병주 송병헌 송세태 송수용 송시경 송영호 송인석 송종태 송주호 송희철 신두영 신두현 신면동 신상호 신수일 신양재 신우균 신정식 신종섭 신철갑 신태균 신태현 신태희 신형수 신흥만 심능유 심두근 심상우 심재억 심형택 안경선 안병록 안수병 안승복 안정국 안정옥 안종렬 안종철 안창준 안형식 안흥준 양금룡 양성순 양익현 양재덕 양재홍 양주한 양형건 어봉룡 어윤호 엄명섭 엄의섭 엄주면 여경엽 여동춘 여태현 연성희 연태윤 염은준 오경팔 오기선 오도련 오동주 오동환 오봉수 오석근 오석유 오세기 오세영 오세윤 오수만 오연태 오영근 오영세 오용근 오이석 오준영 오치한 오태여 오학영 왕인식 왕희필 원세호 위금봉 위종기 유경시 유금열 유금용 유기룡 유남선 유만종 유명렬 유배한 유복문 유부룡 유석화 유성삼 유승운 유인근 유재춘 유정식 유진문 유진후 유창렬 유치억 유치엽 육무철 윤경로 윤만중 윤병희 윤상일 윤수현 윤시영 윤용대 윤용원 윤작로 윤정봉 윤정선 윤정희 윤종화 윤찬수 윤태남 윤학기 윤학행 윤학현 윤화규 윤훈모 은성학 은한섭 이경재 이경회 이계한 이교승 이구범 이국섭 이군돌 이규채 이규한 이근섭 이기영 이기현 이난수 이능섭 이덕근 이동섭 이동재 이두환 이면근 이면식 이명흠 이무갑 이민권 이민택 이민행 이민호 이배훈 이백규 이병면 이병식 이병호 이보운 이봉래 이봉선 이봉인 이봉재 이사은 이상배 이상섭 이상윤 이상춘 이성근 이성도 이성실 이성옥 이수달 이수협 이순만 이순재 이신규 이영관 이영근 이영근 이영우 이영춘 이완두 이용만 이용승 이용천 이원극 이원보 이원용 이원우 이원찬 이유하 이윤종 이은섭 이을룡 이응양 이응진 이인근 이인식 이인주 이재붕 이정근 이정남 이정술 이정용 이종국 이종만 이종무 이종수 이종식 이종한 이주완 이중수 이중화 이지균 이지춘 이진상 이진하 이찬익 이창배 이창순 이창우 이채순 이천주 이철봉 이춘근 이태순 이태훈 이택 이하주 이한구 이한선 이헌규 이현수 이현우 이홍순 이흥세 이흥식 이희영 임권택 임만선 임병식 임응기 임인식 임일성 임학용 임헌영 임형순 임호영 임흥재 장강선 장계택 장기석 장덕영 장두만 장성근 장성동 장세권 장우상 장우식 장준근 장춘갑 장헌근 장혜순 전규태 전기완 전남수 전문순 전병록 전봉덕 전봉설 전세엽 전영찬 전용환 전익서 전재우 전정윤 전진원 전창림 정관모 정규봉 정규혁 정기영 정기창 정낙서 정낙영 정낙주 정뇌호 정두형 정병규 정봉기 정석우 정성식 정세호 정쌍동 정연주 정우현 정운복 정운필 정이숙 정인영 정인하 정인회 정일룡 정재현 정정석 정정옥 정제봉 정준모 정준택 정진환 정창근 정충원 정치훈 정태휴 정태흥 정필화 정한영 정해인 정환선 정희영 조갈범 조갑이 조관빈 조규림 조기찬 조남재 조동흥 조성구 조연광 조익로 조익제 조익호 조인옥 조점제 조정관 조종춘 조종훈 조진원 조진호 조찬현 조창현 조천동 조태환 조희창 주익상 주찬오 주홍섭 지약영 진대성 진순길 진용섭 진형우 차대환 차원준 차정준 차창순 채규병 채규철 채규한 천경식 천규문 최경진 최관선 최규진 최금남 최기남 최기성 최동규 최동섭 최동수 최동주 최동직 최두천 최백순 최병두 최병식 최봉달 최봉오 최상덕 최상룡 최상욱 최석현 최성수 최순정 최승준 최여옥 최연 최연식 최영근 최영우 최용학 최원균 최원복 최응두 최인범 최재석 최제현 최주영 최준성 최지순 최지환 최진태 최창렬 최창학 최창한 최창홍 최치림 최탁 최태경 최태선 최태현 최한석 최형준 최흥선 표한용 하선진 하판락 한달원 한동석 한동희 한두형 한석명 한성구 한영기 한용 한용수 한인순 한 장현 한정석 한종건 한종수 한태헌 한호석 함병헌 함양수 함희창 허규원 허기엽 허섭 허현 허효연 현기언 현석준 현시달 현응팔 홍낙구 홍명후 홍병식 홍상옥 홍석창 홍성섭 홍성준 홍순관 홍순근 홍순봉 홍영언 홍재일 홍정길 홍종익 홍형표 황경준 황봉진 황산봉 황신태 황영철 황용석 황윤수 황인환 황재락 황치수 황태근 황헌성
군 [387명]
강기태 강동렬 강병일 강석호 강영태 강재순 강재호 강창선 강태민 강필룡 강필우 강혁신 강흥약 계병로 계인수(계인주) 고경수 고기범 고병억 고영균 고준봉 고준열 구동욱 구학서 권승록 권영한 권인채 권정식 권태한 권희수 김경천 김광언 김교선 김기백 김기원 김기주 김기호 김대식 김동하 김명덕 김묵 김민규 김백일(김찬규) 김복연 김부갑 김사석 김석람 김석범 김석원 김석원 김성규 김성운 김성훈 김송 김송산 김순길 김순선 김신도 김안도 김약선 김영 김영각 김영록 김영수 김영신 김영철 김영택 김영한 김옥기 김용국 김용기 김용헌 김용호 김원기 김응남 김응선 김응조 김인성 김인욱 김인욱 김일운 김일환 김임석 김재명 김재풍 김정렬 김정일 김정호 김정희 김종석 김종식 김주찬 김준원 김중규 김진길 김진무 김진창 김창규 김창룡 김천흥 김철남 김청송 김최길 김충남 김치반(김치학) 김태원 김학원 김해도 김현묵 김형섭 김호량 김홍준 김희선 김희초 나흥순 남우현 남희철 노태순 도일평 마동악 문용채 문이정 민덕호 박동균 박동준 박동춘 박두영 박문병 박범집 박병두 박봉조 박성도 박승훈 박영철 박영철 박요섭 박원석 박임항 박재흥 박정희 박준호 박창하 박춘식 박태희 박풍조 방득관 방문수 방영주 방원철 방인섭 방태욱 백겸 백경춘 백문린 백선엽 백세걸 백인섭 백인준 백창기 백홍석 서영철 서일보 서정필 석석봉 석주암 석희봉 선우갑 손병일 송석구 송석하 송오송 송진탁 신봉균 신상묵 신상철 신우균 신응균 신태영 신학진 신현준 심의진 안광수 안병범(안종인) 안영길 안영치 안옥기 안익조 안홍도 양국진 양대진 양진동 어담 엄주명 염창섭 오규범 오명복 오문강 오세훈 오준걸 오진영 왕유식 우종현 원용국 원용덕 유경식 유관희 유광렬 유기성 유병권 유승렬 유영림 유원식 유원효 유재흥 윤국상 윤덕병 윤상필 윤송남 윤수현 윤춘근 윤태일 이각 이강우 이광원 이국권 이규일 이근묵 이기건 이기영 이대영 이덕순 이덕진 이동암 이동준 이동훈 이두만 이명세 이명신 이문악 이병건 이병교 이병권 이병규 이병주 이봉수(이원길) 이봉춘 이상렬 이상묵 이상진 이선풍 이성림 이송승 이순 이승녕 이승칠 이영걸 이영산 이영춘 이용문 이용성 이용원 이용호 이용호 이원춘 이원형 이응구 이응준 이의풍 이일신 이재기 이제규 이제정 이종성 이종찬 이주일 이준(이준옥) 이준섭 이집룡(이룡) 이천택 이청갑 이춘성 이춘원 이학래 이학문 이한림 이해봉 이형근 이형석 이호연 이호진 이흥국 이흥권 이희겸 이희두 이희태 임달수 임병규 임병두 임재춘 임충식 장기섭 장기승 장기춘 장기형 장석윤 장성환 장수암 장연용 장연창 장영석 장유근 장택민 장효봉 전길룡 전남규 전영헌 전원상 정래혁 정상수 정세진 정운홍 정은용 정일권 정일평 정해붕 정현 정훈 조경성 조대호 조동윤 조명륜 조병권 조성근 조성엽 조영원 조용구 주선갑 주영걸 주재준 지인태 지장화 지진국 지치룡 차만재 차명환 채낙순 채병덕 채청송 최경만 최구룡 최귀창 최기청 최남근 최명하 최병혁 최복수 최세창 최수부 최승업 최우석 최재범 최재범 최재항 최정근 최주종 최진창 최창륜 최창식 최창언 최철근 최충의(최충희) 최학진 태용범 한광두 한기걸 한문권 한왕룡 한용현 한천봉 허수병 허영록 홍무 홍문과 홍사익 홍청파 황검추 황대천 황치삼
사법 [228명]
강동진 강병준 강신규 강영철 강완선 강중인 강철모 계명수 계창업 계철순 고운하 고재호 구자관 권중근 권태전 김갑수 김광근 김기정 김기조 김낙헌 김달호 김대경 김동현 김두일 김명수 김선득 김선태 김세완 김시두 김영렬 김영린 김영재 김영환 김용식 김용찬 김우열 김우영 김윤근 김윤수 김응모 김응식 김응준 김의균 김일룡 김장섭 김장호 김재완 김점석 김정배 김종석 김종호 김준평 김창모 김태영 김형근 김홍언 나재승 나진 나항윤 남정숙 노상구 노용호 노재승 노흥현 문석규 문승모 민경준 민병성 민병창 민복기 민부훈 민영수 박기준 박만서 박성대 박승유 박승준 박유병 박종근 박종훈 박준성 박지영 박춘서 박태병 방순원 방준경 백윤화 백한성 변기엽 변옥주 변재성 사경욱 사광욱 서광설 서기홍 서정국 석용환 석종구 소진섭 손동욱 손홍팔 송문현 송인태 송화식 신석정 신우영 신재영 심노욱 심동구 심상직 심원명 양원용 양정수 양태원 양판수 양홍기 엄보익 엄상섭 엄식 염세열 오건일 오성덕 오숭은 오승근 오완수 오용묵 오태경 원병희 원종억 유갑수 유동작 유성희 유영 유진영 유태설 유헌열 윤동식 윤성보 윤용섭 윤철균 윤학영 윤헌구 이근상 이근창 이기찬 이만준 이명섭 이병용 이상각 이상기 이선경 이수현 이용의 이우식 이우정 이원국 이원배 이의형 이정준 이정혁 이천상 이충영 이태희 이필은 이학천 이한린 이호 이호정 이홍종 이화종 이희목 이희적 임석규 임석무 임영찬 임한경 장경근 장기상 장두식 장후영 전병식 전영택 정규철 정낙헌 정문모 정봉춘 정섭조 정순석 정유섭 정윤환 정재환 정준모 정창운 조사달 조예석 조용순 조원규 조인환 조재천 조진만 조태로 조평재 지영구 진태구 진형하 차균경 채규명 채용묵 최대교 최병주 최윤모 최정묵 최종석 최창렬 최창조 탁창하 한규용 한복 한봉세 한상범 한용 함성욱 허진 형덕기 홍순용 홍승근 홍인석 홍진기
친일단체 [484명]
강근도 강병순 강병주 강성구 강영균 강영희 강용희 강이황 강인우 강일성 강홍범 고덕환 고용덕 고용종 고응민 고청룡 고황경 고희준 구연수 구창조 국기연 궁사청 궁하일 권병수 권우섭 권중기 권태동 길태홍 김갑명 김경식 김경호 김광엽 김광현 김구순 김권형 김규대 김규창 김기수 김기주 김기찬 김덕선 김동일 김동진 김동현 김두명 김두정 김두천 김명준 김명진 김명집 김몽필 김병걸 김병규 김병순 김병익 김복수 김봉기 김사연 김사영 김상익 김석연 김석진 김석태 김선술 김선재 김성렬 김세장 김세진 김시현 김신석 김연상 김연식 김영걸 김영구 김영설 김영우 김영준 김영희 김예현 김용진 김윤덕 김윤혁 김응구 김인창 김인하 김일수 김재곤 김재룡 김재순 김재익 김재홍 김재환 김정국 김정규 김정민 김정호 김제홍 김종완 김종헌 김준모 김준섭 김지련 김진태 김진하 김창도 김태섭 김태익 김태헌 김태형 김태훈 김택용 김택현 김한경 김한기 김해룡 김형태 김호중 김홍건 김환 김환성 김효순 김효진 남정관 노성석 노신근 노영근 노응린 노정규 동운경 문명기 문의홍 문익주 민영은 민원식 민재기 민정식 민태직 박계일 박구학 박규양 박규장 박규철 박병기 박병철 박봉윤 박선철 박성택 박순천 박승직 박영길 박영래 박영준 박영철 박우용 박은양 박주율 박준영 박지양 박창서 박창훈 박필원 박해묵 박혁준 박형채 박호병 박희도 방낙선 방운갑 방의석 배동운 배상하 백기수 백낙원 백동수 백윤호 백형수 변기택 사현필 서병은 서병조 서상건 서상환 서은상 서창보 서채 석문용 선우순 성원경 성준 소완규 손서헌 손영목 손응국 손재근 손치은 손홍원 송계원 송규환 송병천 송완섭 송은용 송재철 송종대 신국원 신동원 신동훈 신두현 신문언 신병휴 신석린 신승균 신영석 신영오 신의학 신재정 신태악 신태항 신효범 심도풍 심상직 심원섭 심의혁 안근모 안방렬 안순환 안익수 안인식 안종국 안준 안중수 안태영 양성식 양재익 양정묵 양주익 양지환 엄주명 엄주익 엄준원 여계보 염중모 염창순 예종석 오경식 오긍선 오기영 오두환 오성룡 오역선 오왕근 오응선 오필영 원덕상 원세기 원수남 원응태 유길수 유두환 유문경 유병문 유병의 유봉기 유봉주 유봉현 유상화 유석우 유영렬 유재한 유전 유제구 유지훈 유창만 유학주 유홍종 윤갑병 윤경순 윤귀영 윤규식 윤달수 윤대섭 윤대식 윤명진 윤범식 윤봉의 윤상우 윤상익 윤시병 윤익선 윤정식 윤창업 윤춘혁 윤치형 윤치호 이각종 이겸로 이겸제 이경렬 이경로 이경하 이규학 이규화 이근우 이기승 이기찬 이동락 이동영 이동우 이동초 이동혁 이두수 이문표 이민관 이방 이범승 이범찬 이범철 이병림 이병립 이병연 이병의 이보현 이석규 이석신 이석희 이선학 이선협 이성근 이성환 이승우 이승운 이승한 이승현 이승호 이영근 이용구 이용문 이용한 이우현 이원규 이원보 이익성 이인수 이인흡 이정봉 이정욱 이종만 이종용 이종춘 이준용 이중현 이찬모 이찬요 이창선 이창엽 이창환 이치로 이태윤 이필규 이학재 이항발 이행민 이현우 이희덕 이희두 이희섭 임병익 임봉석 임용상 장동환 장두현 장순창 장진원 장헌식 장홍식 전만영 전부일 전성욱 전영배 전영조 전위현 전창근 전태현 정경수 정계형 정교원 정규원 정규환 정대현 정도영 정병조 정석모 정세진 정연상 정용태 정원섭 정인순 정환종 조대묵 조덕하 조병렬 조병상 조선하 조성근 조승환 조용률 조인성 조진우 조흥원 주련 주병섭 주성근 주학현 지봉서 차재정 차준담 차화준 천영기 최건호 최기남 최동섭 최두환 최병창 최상익 최수길 최양호 최영구 최영년 최영욱 최운섭 최원교 최정규 최정덕 최정묵 최주현 최준집 최진현 최창학 최창호 최홍섭 탁태윤 편상영 하준석 한경원 한교연 한국림 한국현 한규복 한기방 한남규 한보순 한상건 한영호 한욱 한재익 한정규 한창회 한태섭 한화석 함창현 허균 허현 현영섭 현장호 현준호 홍규표 홍긍섭 홍남표 홍사훈 홍승균 홍승원 홍윤조 홍인순 홍종덕 홍종면 홍준 홍충현 황규현 황대원 황명중 황석건 황정헌 황종국 황종우 황철수
개신교 [58명]
갈홍기 강도원 고한규 곽진근 구연직 구자옥 김관식 김길창 김수철 김영섭 김우현 김응순 김응태 김인영 김종대 김진수 김형숙 김활란 남천우 박마리아 박연서 박현명 변홍규 송창근 신후식 신흥우 심명섭 양주삼 오문환 유각경 유일선 유재기 유형기 윤치소 윤치영 윤치호 윤하영 이동욱 이명직 이문주 이용설 임학수 장기형 장운경 장홍범 전필순 정상인 정순모 정인과 정춘수 조승제 채필근 최지화 최활란 한석원 홍병선 홍택기 황종률
가톨릭 [7명]
김명제 김윤근 남상철 노기남 신인식 오기선 장면
불교 [54명]
강대련 강성인 곽기종 곽법경 권상로 김경림 김경주 김동화 김법룡 김삼도 김영수 김영호 김용곡 김재홍 김정섭 김정해 김지순 김진월 김청암 김탄월 김태흡 김한송 박대륜 박도수 박병운 박영희 박원찬 박윤진 박찬범 변설호 손계조 신윤영 신태호 유재환 윤상범 이덕진 이동석 이명교 이보담 이석두 이종욱 이태준 이혼성 이회광 임석진 장도환 정병헌 정창윤 정충의 차상명 최취허 허영호 홍태욱 황벽응
천도교 [30명]
김동수 김명호 김명희 김병제 김종현 남증석 박석홍 박완 백중빈 손광화 손재기 신용구 오상준 이군오 이근섭 이단 이돈화 이우영 이인숙 이종린 이종식 임문호 전의찬 정광조 조기간 최단봉 최린 최안국 최준모 하상태
유림 [53명]
공성학 권순구 김광현 김동진 김완진 김유제 김정회 김황진 나일봉 남상익 박기양 박상준 박승동 박장홍 박제봉 박제빈 박제순 박치상 서재극 성낙현 송시헌 신현구 심형진 안인식 여규형 오헌영 위대원 유만겸 유정수 유진찬 윤병호 윤희구 이경식 이대영 이명세 이상호 이선호 이인직 이학노 이학재 정만조 정문현 정봉시 정봉현 정순현 정윤수 정준민 정철영 주병건 최달빈 한준석 한창우 황돈수
문학 [41명]
곽종원 김기진 김동인 김동환 김문집 김사영 김성민 김안서 김영일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 모윤숙 박영희 박팔양 방인근 백철 서정주 오룡순 유진오 윤두헌 윤해영 이광수 이무영 이석훈 이원수 이윤기 이찬 임학수 장덕조 장혁주 정비석 정인섭 정인택 조연현 조용만 조우식 주요한 채만식 최재서 최정희
음악, 무용 [43명]
강영철 계정식 고종익 김관 김기수 김동진 김생려 김성태 김영길 김원복 김재훈 김준영 김천애 김해송 남인수 박경호 박시춘 반야월 백년설 서영덕 손목인 안익태 이규남 이면상 이봉룡 이인범 이재호 이종태 이철 이흥렬 임동혁 장세정 전기현 조두남 조명암 조택원 최승희 최팔근 최희남 한상기 함화진 현제명 홍난파
미술 [26명]
구본웅 김경승 김기창 김만형 김용진 김은호 김인승 김종찬 노수현 박영선 박원수 배운성 손응성 송정훈 심형구 윤효중 이건영 이국전 이봉상 이상범 임응구 장우성 정종여 정현웅 지성렬 현재덕
연극, 영화 [64명]
김건 김관수 김성춘 김소영 김승구 김신재 김영화 김일해 김정혁 김태진 김학성 김한 나웅 남승민 독은기 문예봉 박기채 박영신 박영호 박춘명 박향민 방한준 복혜숙 서광제 서월영 서일성 서항석 송영 신경균 신고송 신정언 심영 안석영 안영일 안종화 양세웅 오정민 유장안 유치진 이광래 이금룡 이명우 이백산 이병일 이서구 이서향 이익 이재명 이창용 임선규 전창근 조천석 주영섭 최순흥 최승일 최운봉 최인규 한노단 한형모 함대훈 함세덕 허영 홍찬 황철
교육, 학술 [62명]
강영석 고광만 고승제 고원섭 고황경 구찬서 김도태 김두헌 김명식 김상용 김성수 김창균 김한경 김활란 박관수 박마리아 박순천 박영빈 박용구 박인덕 배상명 백낙준 서은숙 손정규 송금선 신봉조 신석호 양봉화 어윤적 여운홍 오긍선 유억겸 유진오 윤영구 이능화 이묘묵 이병도 이병소 이숙종 이완룡 이헌구 인정식 임숙재 장덕수 장응진 정구충 정만조 조기홍 조동식 조재호 조한직 주운성 차사백 최남선 최동 허하백 현상윤 현채 현헌 홍승원 홍희 황신덕
언론, 출판 [44명]
김동진 김상회 김선흠 김인이 김형원 김환 노성석 노익형 노창성 민원식 박남규 박석윤 박희도 방응모 방태영 변일 서강백 서춘 선우일 송순기 신광희 심우섭 양재하 유광렬 이긍종 이기세 이상협 이원영 이윤종 이익상 이인섭 이정섭 이창수 이혜구 장지연 정우택 정인익 최영년 최영주 함상훈 홍승구 홍양명 홍종인 황의필
경제 [55명]
강번 강창희 고한승 김건영 김기옥 김동원 김두하 김성호 김순흥 김신석 김연수 김영기 김영준 김일남 김정호 김한규 김형옥 김흥배 맹영옥 목욱상 문명기 민규식 민대식 민병도 박기효 박승억 박승직 박흥식 방규환 방응모 방의석 백낙승 백남신 백완혁 손창윤 신용욱 예종석 유명한 유재륜 이종만 장직상 장홍식 정명선 정재학 정치국 조병학 조진태 주성근 차남진 차준담 최승렬 최창학 한기방 현준호 홍충현
지역유력자 [69명]
강위수 강창희 권연수 김갑순 김건영 김기옥 김기홍 김동덕 김동원 김두하 김명학 김민식 김병규 김상홍 김성재 김억근 김용우 김인오 김종섭 김주한 김치구 김태훈 김한수 김홍량 김희준 목순구 문원태 문재철 박기돈 박기용 박성행 박주병 박한표 배영춘 소진문 손홍준 송병문 양성관 엄달환 엄정환 원윤수 유훈영 이강혁 이봉구 이상옥 이석구 이용석 이정재 이종준 이종필 임종상 임호상 임흥순 장기식 장지필 정명희 정상진 정태범 정태석 조규철 조병학 지정선 지창선 최주성 최해필 한만희 한원준 한인수 현용건
중국_만주 [799명]
강경해 강국진 강기홍 강동춘 강만수 강만순 강면홍 강무석 강병철 강사용 강세권 강수범 강신채 강신향 강옥림 강용준 강원명 강전열 강태구 강태권 강태범 강태섭(강태변) 강필선 강항윤 강해원 강현묵 강흥렬 계구환 계난수 고동호 고수봉 고재필 고태연 공한석 구선일 권성근 권송극 권영천 권용활 권재권 권치안 권태술 권혁주(권일) 권희수 금창수 길익선 길창실 김각부 김경로 김경률 김경심 김경재 김경춘 김경하 김경호 김경환 김계룡 김관천 김광근 김국용 김국한 김권호 김극인 김근석 김금준 김기룡 김길룡(김기룡) 김길순 김길준 김길현 김남길 김남룡 김남수 김남익 김덕수 김덕창 김도명 김도일 김동규 김동근 김동렬 김동만 김동순 김동식 김동학 김동한 김동호 김동호 김동호 김동화 김동황 김동훈 김두익 김두찬 김두현 김득연 김득황 김만옥 김만용 김만종 김명여 김명완 김명한(김명찬) 김문극 김문홍 김민건 김백록 김백률 김범주 김병권 김병권 김병섭 김병억 김병욱 김병태 김병호 김봉남 김봉렬 김봉장(김봉위) 김봉진 김산천 김삼룡 김삼수 김상권 김상렬 김상선 김상영 김상학 김석준 김석준 김석진 김선풍 김성기 김성남 김성만 김성준 김성진 김성환 김송렬 김수열 김수영 김순구 김순남 김승식 김시영 김억록 김여백 김여화 김연수 김연찬 김열 김영규 김영석 김영수 김영익 김영재 김영주 김영철 김영춘 김영한 김완묵 김용국 김용순 김용익 김용주 김용찬 김용하 김용호 김용환 김우근 김우식 김우영 김우평 김운생 김웅각 김유영 김윤언 김은성 김응두 김응호 김응환 김이규 김인갑 김인배 김인수 김일규 김일병 김일송 김임수 김장섭 김장지 김재곤 김재용 김재필 김정 김정기 김정섭 김정하 김조 김종수 김종수 김주익 김준형 김중식 김중형 김진규 김진길 김진만 김진성 김창룡 김창범 김창보 김창영 김창학 김천을 김철림 김청송 김춘학 김태경 김태복 김태옥 김태욱 김태호 김택영 김파 김하성 김하영 김학성 김학수 김행룡 김헌운 김혁종 김현수 김현식 김형년 김형준 김혜해 김호준 김홍락 김화성 김화준 김흥두 나만봉 남명수 남박 남성규 남성만 남승범 남일남 남일록 남해원 노기연 노동훈 노영득 독고욱 독고환 마등철 마용하 마창권 문관오 문국빈 문용만 문일현 문종수 문태선 문혁남 민병찬 박광석 박근수 박근영 박기홍 박기화 박남세 박도진 박동준 박동춘 박두남 박두남 박두만 박두영 박만전 박민선 박병록 박봉수 박봉순 박삼룡 박석윤 박성봉 박송원 박순 박순봉 박순열 박승우 박승하 박승호 박시리 박시화 박안식 박안중 박암 박영규 박영식 박영준 박영천 박용범 박용석(박주석) 박용일 박용찬 박용촌 박원성 박원식 박장식 박재형 박제아 박준병 박찬열 박찬옥 박춘권 박춘만 박춘범 박춘화 박택 박필근 박호길 박홍순 방두천 방명규 방학수 배문례 배인덕 배정자 백금풍 백남현 백수봉 백영모 백의현 백태운 백형린 서계연 서범석 서상용 서소철 서장길 석금룡 석기옥 석범익 석창만 석창준 선우연 소용수 손광겸 손지환 손희상 송세환 송찬도 송태희 신기석 신덕승 신석희 신성환 신영식 신옥남 신용국 신은묵 신재희 신홍덕 심득순 안기초 안덕선 안삼룡 안삼룡 안성도 안영언 안용정 안용택 안응록 안창호 안채운 안홍익 양동요 양복석(양봉성) 양영환 양재규 양재하 양정묵 양종식 양호석 엄경선 엄대섭 엄만봉 엄주익 엄창수 염남욱 염면홍 염복봉 염선우 염창섭 오국호 오기준 오두환 오명규 오상조 오영헌 오원청 오정근 오종순 오헌영(오헌수) 오현상 오현찬 욱상창 원기범 원영춘 원영희 원정환 원철범 원치상 위동백 위봉조 유남진 유병철 유선장 유영악 유이규 유익상 유중희 유찬행(유진행) 유홍순 유희장 윤귀동 윤규현 윤동훈 윤만석 윤명선 윤상필 윤세욱 윤수복 윤영만 윤재권 윤정일 윤진서 윤태동 윤하태 윤홍수 이강준 이경빈 이경재 이기술 이기한 이기홍 이남수 이대덕 이덕준 이덕진 이도선 이도일 이동붕 이동석 이동성 이동수 이동욱 이동원 이동주 이동준 이동준 이동화 이두한 이만구 이명복 이명헌 이명훈 이무평 이문규 이문상 이민창 이범석 이범익 이범익 이병인 이병찬 이병찬 이병휘 이봉근 이봉남 이봉제 이봉춘 이상묵 이석기 이설년 이성권 이성백 이성삼 이성재 이송오 이승련 이승업 이승정 이시동 이시영 이시운 이시유 이영근 이영일 이영춘 이오익 이완구 이용성 이용택 이운철 이원 이원명 이원철 이원형 이월봉 이유석 이은석 이응도 이응렬 이응범 이이순 이인기 이인수 이일 이일림 이재수 이재수 이정근 이정린 이정린 이정림 이정의 이종선 이종섭(이종변) 이종희 이준목 이증흥 이지선 이지우(이기우) 이진 이창조 이창준 이철순 이춘선 이춘원 이충국 이탁 이태인 이태종 이태진(이원복) 이풍춘 이필동 이하영 이학문 이한원 이해봉 이해수 이해윤 이형준 이호일 이홍범 이회덕 이희덕 임대성 임병권 임성봉 임순봉 임영진 임용철 임윤경 임익룡 임인익 임정석 임한룡 임호석 장광렬 장규원 장달원 장덕명 장덕선 장동인 장두칠 장병호 장선태 장성진 장영준 장영춘 장원경 장원준 장이탁 장익민 장인춘 장정옥 장준걸 장지량 장진성 장창욱 전국보 전국정 전기룡 전길룡 전남규 전병옥 전병철 전병희 전봉만 전봉운 전재학 전정현 전종극 전철룡 전태화 전흥찬 정규성 정기 정민오 정복만 정빈 정석구 정성충 정순섭 정승복 정윤호 정인채 정재명 정창규 정창우 정항식 정호준 조광선 조국서 조규팔 조기풍 조대련 조동조 조병철 조봉준 조윤걸 조춘근 조한호 주굉섭 주기준 주림 주영환 주재덕 주종우 주평로 지금룡 지동한 지영철 지재성 진양근 진학문 차강 차득순 차용준 차재정 차중길 차화선 채규국 채규남 채규철 채규풍 채규화 채근 채민석 채봉림 채원규 채창룡 최관송 최광우 최근우 최기석 최남룡 최남선 최덕만 최도권 최돈직 최돈학 최동규 최동룡 최동륜 최동수 최동활 최동훈 최만형 최명주 최문송 최병기 최병학 최봉만 최봉춘 최삼림 최삼풍 최상현 최석규 최석환 최선오 최선옥 최수원 최승일 최영부 최영재 최영춘 최영혁 최용윤 최용현 최윤 최윤주 최일호 최재범 최재항 최정규 최정훈 최창락 최창봉 최창현 최철 최청송 최탁 최하랭 최하성 최홍준 최화삼 탁춘봉 태명수 태이훈 태장만 태한규 표성천 하임산 한국진 한낙규 한노수 한백순 한봉렬 한봉현 한상우 한성림 한영수 한영은 한영휘 한웅길 한원석 한의제 한인성 한일 한주옥 한찬숙 한풍준 한흥운 함대순 함두섭 함석창 함연호 함태형 허규활 허근종 허기락 허기열 허길봉 허동환 허수병 허용범 허인진 허일 허자룡 허자룡 허진성 허태봉 허학권 현봉룡 현상묵 현시달 현영주 현학수 현학춘 홍건표 홍기만 홍대영 홍성태 홍순봉 홍순삼 홍순일 홍식 홍영선 황금룡 황기호 황도연 황명춘 황병학 황봉춘 황사성 황상순 황석준 황시준 황재락 황종률 황종욱 황진식 황하숙
중국_관내 [66명]
고문규 공돈 김병건 김상호 김서분 김수인 김우풍 김이구 김인근 김인성 김일선 김일준 김일현 김정섭 김하종 박경도 박순구 박승기 박일석 변정금 봉명석 석현구 손창식 송경호 송경환 오건일 원치복 유압 유학곤 윤기풍 윤상만 윤인택 이동욱 이동제 이두규 이면화 이상우 이승언 이여강 이영 이영구 이원업 이종운 이창조 이치운 이치현 이학로 이화성 임두욱 임훈 장찬식 정영택 정원길 정이월 정치복 조국성 조병철 진식탁 최덕렬 최일천 하윤명 한기순 한처복 홍국철 홍승호 홍이두
일본 [39명]
강용옥 강재원 강창기 고권삼 고명복 김국종 김국필 김동조 김성용 김연수 김인엽 박내수 박대복 박병인 박석헌 박재용 박춘금 신현확 이근세 이기동 이동화 이선홍 이영개 이재동 이정희 임용길 장경탁 장철수 전택영 정상택 정인학 정재봉 진기훈 진의종 최병림 표성조 허원 홍재두 홍준표
러시아 [6명]
김만건 박남규 박병일 엄인섭 조영진 함동철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시작"
[[오마이뉴스 이경태 기자]
![]() | ||||
| ||||
그러나 발표 하루 전인 만큼 사무실 안은 긴장감과 촉박함이 머무르고 있었다. 조 사무총장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29일 발표할 친일인명사전의 자구를 수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해 그와 1시간 여 2차 명단발표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안익태·최승희·김동진·조두남·이원수 등 2차 친일명단에 수록"
-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애초 5년 정도 계획이었는데? "사업계획이 방대했다. 지난 2001년 12월에 편찬위원회가 발족되고 2002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본격화됐으니깐 약 7년 동안이다. 모두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계속해서 기간이 연장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렇게 방대한 작업일 줄 몰랐다. 해나가면서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우선 1차 사료도 방대했고, 지방이나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파의 경우에는 자료도 부족하고 재정도 빈약했다. 민간연구소가 단독으로 추진하기에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지금도 자료는 계속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도 있고 일단락지어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 8월 말에 사전을 편찬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도 자료라든가 심층조사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1차적으로 정리하고 추가조사를 실시하려고 한다."
- 이번 명단 발표에 해외 인물이 대거 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이번 발표 인사 다수가 해외와 지방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1차 발표 때는 중앙단체에서 활동했던 인물 중심이었지만 이번 2차 발표 때는 지방유력자, 일본과 만주, 중국 관내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활동한 친일파 인물들이다."
- 특히 어디에서 활동한 인물이 많나? "만주 쪽에서 활동한 인물이 많다. 거기에는 지역적 특성이 있다. 우선 만주는 일본괴뢰정부인 위(僞)만주국이 건설된 사실상의 식민지 지역이었다. 조선인은 만주국에서 일본인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한 존재였다.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에서 각종 지배층을 형성한 것처럼 조선인도 만주국 통치의 일익을 담당했다. 아류 제국주의자의 역할을 담당한 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강제이주 당한 농민들이 많지만 출세를 위해 적극적으로 만주로 이주한 일제의 첨병들이 많다.
두 번째로는 만주의 구조적 환경 때문이다. 만주는 항일무장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일제는 이를 타압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활용했다. 간도특설대, 신선대 등 조선인부대를 동원해 항일세력을 탄압하는데 악용했다. 이런 조선인부대에서 일제의 주구노릇을 한 이들이 수록될 예정이다."
- 이번에도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저명한 인물들이 포함됐나. "특정 개인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지만 상당한 지도층 인사들이 있다. 새롭게 추가되는 인물 중에서 일반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분은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가곡 '가고파', '목련화' 등을 작곡한 김동진,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이 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시인이자 작사자인 윤해영 등도 수록된다. 무용 분야에서는 조택원도 있고 최승희도 있다. 최승희는 그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의 주민들이 석명서(釋明書 : 사실을 설명하여 밝힌 글)를 제출해 최승희가 국방헌금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해명해 추가조사를 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재일조선인 권일, 만주에서 활동한 윤상필이나 윤익선을 들 수 있겠다."
"반민족행위 청산 앞장 선 이들이 용공세력 몰리는 웃지 못할 상황"
![]() | ||||
| ||||
"한국의 소위 우익세력들의 정체성에 대해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한다. 사실 반민족행위에 대해 정상적인 나라라면 우익세력이 가장 1차적으로 안고 가는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독특하게 역사 바로세우기, 친일청산 등 학술운동·실천운동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용공세력으로 지탄 당한다. 해방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들이 좌파로 몰리는 그런 웃지 못 할 상황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사회의 정치현실과 역사인식이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반증이다."
- 친일명단에 수록될 인사들에 대한 기준은 어떤가. "현재 연구소가 집적한 인물정보만 100만 건이다. 이 중에서 친일혐의자 즉 조사대상으로 삼은 모집단이 2만에서 3만 정도 된다. 이 중에서 엄정하게 선정한 것이 4800명이다. 편찬위원회나 연구소는 양쪽의 공격을 다 받게 돼 있다. 기본적으로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세력은 '마녀 사냥', '전민족친일론' 등 각종 궤변으로 공격할 것이다. 또 한 쪽에서는 '일제강점기 36년과 제국주의 침략과정까지 생각한다면 무려 40~50년 가까이 되는데 고작 5천명 밖에 되지 않냐'며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찬위원회와 연구소는 가능한 객관적인 기준 아래 행동하고자 했다.
수록대상자를 선정하는 원칙도 확실하게 정해놨다. 자발성과 적극성. 즉 피치 못해 끌려간 것은 제외했고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등 얼마나 반복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부역했는지도 따져봤다. 또 교사로 넉넉히 살면서도 군 장교를 지원하는 것처럼 먹고 살 지위에 있으면서도 부나 명예를 쫓아서 친일행위를 한 이, 영향력이 큰 지식인·문화예술인들도 그 사회적·도덕적 책무를 따졌다.
특히 경찰·군인·헌병 등 폭압기구에서 종사한 이들은 다른 일제 복무자들과 다르게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해서 고문하고 살상하는 등 직접적인 반민족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순사나 면서기 등이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세대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고 명료하게 기억이 남아있지만 문헌 등 자료에서는 '순사를 했다'는 정도만 남아있어 구체적인 친일행위가 없다면 수록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단의 집행자들보다 상부에서 지휘하고 명령한 이를 더 주목해 구조적 책임을 묻고자 했다."
- '친일파'를 어떻게 규정했나? "친일파는 추상적인 용어다. 그러나 친일파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친일파는 민족반역자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됐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라 지칭하는 것은 매우 비난하는, 모욕적인 단어다. 우리는 이 '역사성'을 존중했다. 일제강점기 체험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존중한 것이다. 그래서 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반민족행위자'와 우리가 지칭하는 '친일파'는 다르다. 반민족행위자는 각종 국권을 상실케 한 조약을 맺거나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이, 또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거나 독립운동가들을 살상한 이들이지만 친일파의 개념은 좀 더 포괄적이다.
민족반역자는 친일파의 한 부류에 불과하다. 식민지배기구나 군·경찰 등 식민통치를 지탱하게 만든 하부구조에 복무하거나 매판지주나 매판자본가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제의 권력에 기생한 자,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지식인·문화예술인, 이런 부류를 부일협력자로 분류해 친일파로 본다. 우리는 원칙에 따라 등급을 나눠 이들 중 상층부를 반민족행위자와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등록했다."
"정권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미래세대에게 더 큰 부담 될 것"
![]() | ||||
| ||||
"정말 우연찮게 발견됐다. 그러나 임종국 선생님은 우리의 정신적 자산인 한편, 연구의 토대를 놓아주신 분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 남겨놓으신 자료가 방대했다. 그 때 선생님의 빈소에서 그 분의 유지를 잇고자 뜻을 모았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첫 출발이 선생님이 정리하신 방대한 양의 친일인물카드였다. 그것을 주춧돌 삼아서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친일파 총서' 계획을 살펴보면 선생님은 대략 1만명에서 2만명 내지의 친일인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셨던 고 조문기 선생도 이번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빠질 수 없는 분 아닌가. "조문기 선생께서 과분하게도 우리 연구소 직원들을 '밤낮 없이 싸우는 독립군'이라고 칭하셨다. 매순간이 '전쟁'에 가깝지만 격려가 참 많이 됐다. 이번 인명편에 불과한 사전편찬이지만, 눈 앞에 두고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다. 빈소에서 많은 이들이 울었다."
- 최근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위원회 통폐합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권철현 주일 대사가 '과거사를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등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한 기류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분명히 그런 경향이 있다고 본다. 과거사위원회 통폐합의 명분으로 예산의 절감이나 효율성 추구를 내세우고 있지만 옳지 않다.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위원회의 경우 접수된 것이 수십만 건이지만 처리된 것은 4만여건에 불과하다. 모든 위원회가 지금도 인원과 재정이 현저하게 부족한 상태다. 모든 위원회가 공히 모처럼 맞은 과거사 정리 기회를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상황이다.
과거사 문제는 정권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국가 정통성이 달린 문제다. 일제강점기 문제만 하더라도 6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민족사의 과제다. 현대사도 마찬가지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 어떻게든 풀고 미래를 위한 모색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덮는다고 덮혀질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정리할 기회를 잃으면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다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 전체 차원에서도 매우 소모적이고 근시안적인 사고다."
- 조 사무총장께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인데, 최근 친일파 후손들이 재산환수에 대해 행정소송을 내는 등 반발이 심해진 것도 최근의 사회 기류에 따른 것 아닌지 생각해본 적 없나? "오랫동안 상속 보유하고 있던 재산을 갑자기 환수하겠다고 했을 때 개인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재산은 대단히 반민족적이고, 부도덕한 경로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후손이 선대의 죄를 인정한다면 이미 제정된 법이 잘못됐다고 위헌 소송하는 것은 바람직 못하다고 본다. 재산조사위원회가 주로 환수대상으로 삼는 토지나 임야는 그들이 가진 재화 중 극히 일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사실 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환수토록 한 법이 제정됐나.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나 제3자 소유로 돼 있는 재산을 되찾아가겠다고 소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 사안이 불거졌다. 시민사회가 공연히 없는 법을 만들어서 재산을 환수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준동하면서 이 법이 추진된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이 이를 너무 소아병적으로 보지 말고 이미 후손으로서 기득권을 충분히 누린 만큼 선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란다. 더 이상 소송 등 역으로 문제제기를 해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해보자는 국가적 대의를 훼손시키거나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금운동 통해 시민들의 관점이 매우 건강하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
![]() | ||||
| ||||
"아무래도 국민모금 운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 편찬자금 모금액을 5억 원으로 잡은 것도 그렇게까지 전개될 것이라 몰랐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 에 네티즌 1명이 댓글을 달면서 시작된 모금운동이 다른 언론들도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국민모금운동이 됐다. 방송사에서 불우이웃돕기라든가, 재해모금운동도 이 정도로 단시일 내에 거액의 성금이 조성된 예가 없었다. 그를 지켜보면서 민족문제라던가 민족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점이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과 다르게 매우 건강하다는 것이 감격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 현재 연구소의 재정 상태는 어떤가. "모금운동을 계기로 회원이 배로 늘어나 5천명이 넘는다. 회원들이 매월 월회비를 내주고 있는데다 연구소도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예산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동력은 회원들의 작지만 강한 힘들이다."
- 마지막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이 사업이 이렇게 첫 결실을 내놓게 되기까지 지지해주고 곁에 있어준 국민들과 연구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러나 이 인명편 출간은 편찬사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깊은 책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조사활동을 해 나가겠다.
또 친일인명사전을 외화하는 운동도 전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활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작업 전체가 학술적인데 이를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알릴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민중생활 역사관'(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송기인 신부님이 재직 기간의 급여를 고스란히 모아 쾌척해주시는 등 기금도 모아가고 있다. 인명편 발간 이후에는 이에 좀 더 신경을 쓰려고 하고 있다."
수록대상자 선정기준은?
【서울=뉴시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월 말 출간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친일 인물 4800여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1차 명단(2005년 8월 29일 발표)은 전국적 규모의 국내 중앙 인물과 군 장교를 중심으로 발표했지만 이번 2차 발표에서는 추가조사에 의해 행적을 보완한 친일 혐의자와 지역유력자,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편찬위원회측은 "선정 기준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를 고려했으며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친일파 개념
편찬위원회가 채택한 친일파에 대한 정의는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사람이다.
편찬위원회는 일제강점기와 그 직후인 해방공간은 물론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제에 부역한 사람을 비판할 때 널리 사용됐던 '친일파'란 용어를 그 역사성과 규정성을 고려해 그대로 수용했다.
◇수록대상자 범주
사전에 수록된 친일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조약체결 등 매국 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와 같은 민족반역자(반민족행위자)가 한 부류이고,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서 식민지배의 하수인이 된 자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지식인 문화예술인과 같은 부일협력자가 나머지 한 부류다.
편찬위원회는 이 중 민족반역자 전부와 부일협력자 가운데서 일정한 직위 이상인 자, 그 외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를 수록대상으로 선정했다.
◇선정원칙
자발성과 적극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했으며 반복성과 중복성 지속성 여부도 참조했다.
편찬위원회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의 경우, 그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으며 군·경찰·헌병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생계형 부일협력자는 뚜렷한 친일 행적이 없으면 제외하되 권력과 부 명예를 좇는 출세형 협력자는 엄중하게 취급했으며, 말단의 집행자보다 상급의 지휘 책임을 더 중시했다고 덧붙였다.
◇선정 절차
편찬위원회는 객관성과 엄밀성을 사전 편찬의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엄격한 증거주의 아래 집필했으며 확증이 없는 사안은 판단을 유보했다.
또 기록의 측면에 중점을 둬 친일행위를 한 인물들의 경력과 행적 등 사실관계만을 담았고, 가치 판단과 주관적 서술은 가능한 한 배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물 정보의 집적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공문서·신문·잡지 등 문헌자료를 1차 분석 대상으로 삼았으며, 해방 후의 신문기사·회고록·증언 등은 방증으로 채택했다.
여기에는 조선총독부 관보·직원록 등 관찬사료 23종 200여권, 매일신보·만선일보 등 신문자료 40여종, 삼천리·조광 등 친일 잡지·기관지 80여종, 조선신사록·조선인사록 등 명감류 140여종, 각 도·시·군지 등 지지(志誌)류 160여종, 각종 연감·사전류 60여종, 공훈록 40여종, 일기·회고록·평전류 1500여종 등 총 2000여종의 일제강점기 원사료 등 방대한 기초자료가 활용됐다.
연구소는 이를 분석, 재정리해 100만여 건에 달하는 인물정보를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2만5000건에 이르는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 다시 정밀 분석했으며, 권위 있는 전공자들의 검증을 거쳤다.
편찬위원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축적한 자료와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관련 논문과 저술을 참고해 수록대상을 선정했다.
편찬위원회에는 귀족.관공리, 경찰, 군, 교육·학술, 언론·출판 등 20여개 분야의 전문분과위원회가 구성돼 있으며 전문분과위의 의견서를 상임위원회가 심도 있게 검토한 후 자문위원회의 지도와 조언을 수렴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배민욱기자>
애국가와 안익태 친일은 별개로 봐야
[CBS 뉴스레이다 대담]
2008년 4월 30일 (수) CBS 뉴스레이다 1부(FM98.1 MHz 매주 월~금 08:00~08:30 진행 : 임미현 앵커)
(대담 -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친일인명사전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4,776명의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간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 임미현 / 진행

거의 3년 만에 최종 명단을 발표를 하셨는데요. 고생 참 많으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준비해 오셨나요?
◆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1차 명단을 3,090명 발표한 이후에 꼭 3년 걸렸는데요. 그동안 정말 바쁘게 이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계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토론도 많이 하고 자료도 많이 수합하고 해서 일단 어제 4,776명을 친인인명사전에 수록할 대상자로 발표를 했죠.
◇ 임미현 / 진행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었을 듯싶은데요. 그 기준,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 윤경로
이 기준은 2002년부터 2002년 2003년 2004년 몇 년에 걸쳐서 여러 번에 걸친 공청회와 전문가 회의 등등 여러 번 회의를 갖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이 시간에 복잡한 기준을 다 이야기 하기는 어렵고요. 대체로 이제 일정한 일제시대에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분들, 그런 분들은 '당연범'으로 들어가는 걸로 했고, 그 외에는 구체적인 친일 행적이 드러난 분들을 대상으로 했죠.
◇ 임미현 / 진행
증거 자료가 명확한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말씀이시죠?
◆ 윤경로
그렇습니다. 한 분도, 근거 없이 한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 임미현 / 진행
하지만 후손과 기념사업회, 또 보수 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 윤경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예상을 했던 일이죠. 지난 1차 발표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수가 더 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의제기가 있을 것이다, 라고 예상은 했고. 그래서 이제 저희가 원래는 올해 8월 달에 책을 간행할 예정인데, 이렇게 4월 달에 미리 발표를 한 것은 한 4개월 정도 발표를 하고 이의제기를 받으려고요. 그래서 거기에서 설득할 부분은 설득하고 설명할 부분은 설명하고 혹 우리가 잘못할 수도 있으니까 잘못한 부분은 우리가 수용하고, 그런 절차를 거치려고 합니다.
◇ 임미현 / 진행
이번 친일 명단 발표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친일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죠?
◆ 윤경로
저는 뭐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론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공(功)과 과(過)가 있죠. 그러니까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 하는데.
우리나라의 인물사전이라 함은 지금까지 다 '공(功)'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특히 일제 식민지 시대 40여 년 간의 기간에 활동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개 그 이전의 행적이나 해방 이후의 행적만을 쓰고 있는데, 바로 이번에 친일인명사전 이것을 통해서 그 비워있던 공과(功過)의 '과(過)' 부분을 채워주는, 그런 아주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선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부분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임미현 / 진행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최종 명단에 올랐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히 친일 행위를 더 했다고 보시나요?
◆ 윤경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실 친일 행위로 말하면 그렇게 대단한 건 없습니다. 그러나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기준을 일제시대 위관급 이상을 한 분들, 말하자면 그 분이 다 아시는 대로 대구 사범학교를 나와서 교편생활을 하셨는데, 그냥 그대로 갔으면 여기 오를 이유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일본군 장교가 돼서, 그래서 말하자면 독립군과의 적대관계를 가졌다든지 그런 점에서 그것은 대상에 들어갔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 그분 개인이 무슨 전 생애에서 친일행위가 절대적이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기준을 그렇게 잡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예외 시킬 수 없으니까 제외시킬 수 없으니까, 거기에 들어간 거죠.
◇ 임미현 / 진행
또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밝히셨는데요. 안익태 선생이나 최승희 선생의 경우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선정이 된 건가요?
◆ 윤경로
저도 개인적으로는 안익태 선생이 들어간 것은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애국가를 작곡하신 분이고 국민적인 존경하는 분 중 하나였는데, 불행하게도 최근에 이 분에 관한 새로운 자료가 나왔는데, 일제 때 1938년도에 일본 천왕을 찬양하는 '에텐라쿠'라고 하는 걸 작곡하고 연주한 사실이 밝혀졌고요. 또 만주국 창설 1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만주 환상곡' 이런 것을 지휘한 일, 또 일본 탄생 2,600년을 축전하는 곡을 지휘하고 작곡한 일, 이런 등등이 나왔단 말이죠. 그럼 이 역사적 사실로 나왔으니, 이걸 어떻게 하느냐 이거죠.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사전이 나오면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친일행적만 딱 간단하게 쓴 것은 아니고, 안익태 하면 안익태 선생 전 생애의 좋은 점들에 대해 공적을 다 씁니다. 그 안에 요 시기에 이런 일도 있었다, 이렇게 들어가는 거죠. 다른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최승희도 그렇고 그 밖의 인물들 들어간 것도 그런 사연이라는 걸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임미현 / 진행
위원장님, 그런데 국가(國歌)인 애국가를 바꿔야 하느냐, 이런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 윤경로
글쎄요, 저도 참... 그렇게 되면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저는 애국가가 그 당시에 그러니까 그 이후에 이런 친일행적이 나오는 거지, 애국가는 이미 1907년을 전후한 시기에 그야말로 애국지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것에 곡을 붙인 게 안익태 선생인데, 그거 하고는 좀 별개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임미현 / 진행
애국가는 여전히 애국가로 남아 있어도 된다, 말씀이시죠?
◆ 윤경로
그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서까지... 사실 걱정은 했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들어갔을 경우에 이런 문제가 야기 되지 않겠느냐에 대해서 우려를 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 임미현 / 진행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약력]
- 고려대 사학과 졸업, 동대학원 한국사 전공 박사
-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1981~2005)
- 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중앙위원회 의장
- 현 서울YMCA 시민논단위원장
- 현 국사편찬위원회(운영위원)
- 현 국가보훈처(공적심사위원)
- 현 한성대학교 총장
당사자, 보수단체 반발
[앵커멘트]
친일 인사 4, 776명의 명단이 오늘 공개됐습니다.
오는 8월 발간되는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인데 당사자 측과 보수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전화로 연결합니다. 김지선 기자!
친일명단 공개, 지난 2005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죠?
[리포트]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오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될 인물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모두 4,776명 입니다.
이번 명단은 지난 2005년 8월 29일 발표된 3,090명에서 1,680여 명이 추가됐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1차에서 거론된 박정희, 방응모, 김활란, 홍난파를 비롯해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가수 반야월, 시인 박팔양, '선구자'의 윤해영, 아동문학가 김영일, '고향의 봄' 이원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또, 조선독립신문 윤익선 사장,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 고승제 전 서울 상대 교수, 3선 서범석 전 의원,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역시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진의종,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도 교육학술 분야와 해외 친일인사 분야에 수록됐습니다.
이번 친일 인사들은 매국과 관료, 경찰, 군, 종교, 문화예술, 언론출판 등 16개 분야에 걸쳐 선정됐습니다.
편찬위는 이들 친일파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국권침탈과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해 우리 민족이나 다른 민족에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친 자로 정의했습니다.
[질문]
앞으로 친일 인명사전 수록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답변]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앞으로 60일간 유족이나 명단에 오른 친일인사 관련 기념사업회의 이의 제기를 받습니다.
학계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명단이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친일인명 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7권으로 구성되고, 이 가운데 인명편 3권이 오는 8월말 우선 발간됩니다.
[질문]
명단 발표에 대한 반발도 잇따르고 있다고요?
[답변]
이번 명단 공개와 관련해 라이트 코리아 등 4개 보수 단체들이 프레스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박정희와 안익태 등 일부 인사들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발했습니다.
단체들은 연구소의 명단 선정이 편향적이라며 조만간 성명을 내고 이의를 제기하는 등 반대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이번 명단 발표가 국가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선진화를 위해 애쓴 인물 사전을 새로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승희 연구가인 강원대 한경자 교수는 최승희의 작품에는 일본 관련 내용이 없다며 최승희가 명단에 포함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밖에도 명단에 포함된 인사 연구 사업회나 후손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어 진통이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YTN 김지선[sunkim@ytn.co.kr]입니다.>
이대통령, "친일문제 공과 균형있게 봐야"
- 7대종단 대표 간담회..과거사관련위 정비 시사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천776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 "친일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7대 종단 대표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친일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는 데..."라며 이같이 밝혔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서울시장 재직시절 미당 서정주 선생의 후손들이 생가를 매각해 빌라를 지으려던 것을 서울시에서 사들여 복원한 사례를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인 데..."라며 "잘못은 잘못대로 보고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이런 저런 과거사 청산관련 위원회 분들이 주로 과거 정부에서 임명됐는 데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리를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한다"면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 대한 정비방침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덕 성균관장이 "새 정부가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다 보니까 자칫 인성교육, 윤리도덕에 대한 강조가 덜 된 듯한 느낌이 있다"고 지적하자 "우리가 열심히 살다 보니 국민의식이 소홀해 졌다. 가족관계나 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자랑할 만한 우리 정신유산이 좀 어설프게 서양문물에 묻힌 감이 있다"면서 "공교육을 살리고 강화하겠다는 것의 기본은 인성교육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새 정부가 가정복원 운동을 벌이려 하는 데 종교계도 적극 나서달라"면서 "우리 국민이 우수한 만큼 가정, 국민, 나라, 남북관계가 제자리를 잡으면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식을 바로잡는 것은 정부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물이 스며들듯 하는 것인 데 이런 것이야말로 종교 지도자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종교계의 적극적인 지지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언급, "미국, 일본과는 신뢰를 회복했으니 북한과도 제대로 된 관계를 정립해 신뢰를 회복하면 된다"면서 "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갖다놔야 하며 진정성과 민족애를 갖고 가슴을 열고 만나야 한다"고 대북 대화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또 "다른 나라도 돕는 데 동족끼리 돕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총리와 올해에만 5번을 만나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못 만날 일이 뭐가 있느냐.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겠다"면서 "다만 지금까지는 저쪽에서 욕하면 쫓아가서 욕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는 원칙을 갖고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강주 드림
세계를 휘어잡은 조선여자 "춤추는 여인" 최승희
<꾼 / 해나>
<최승희-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무용가의 생애와 예술>(정수웅 엮음. 눈빛 간)은 지난 90년대 초부터 10여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미국.러시아.프랑스 등을 돌며 수집한 최승희의 사진과 자료를 모은 것으로, 최승희가 살아간 치열한 삶과 예술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엮은이는 우리 무용사에서 최승희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 던컨이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을 무용으로 재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처럼 최승희는 중국 운강석굴의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석굴암의 벽조>라는 무용을 창작하고 그의 제자들이 실크로드 선상의 <돈황무용>을 천년 만에 재현했다".
일제 때 친일을 했으며, 해방 후 월북을 했기 때문에 남한에서 그에 관한 책은 한때 불온서적 취급을 받았다. 북한에서도 그는 통치이념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말년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탄생 90주년을 즈음으로 최승희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최승희의 묘를 애국열사릉 으로 이장시켜 정치적으로 복권시켰다고 한다. 최승희의 사망시기는 80년대초로 알려졌으나 확실치 않다.
이 자료집에는 20세기 격동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산 현대무용가 최승희의 개인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자료, 무용가로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과 자료 등 보기 드문 자료 등이 다수 수록돼 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1911년 11월 서울 수운동에서 출생한 최승희는 26년 일본 현대무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제자로 들어갔다. 1930년 2월1일 최승희의 신무용발표회가 처음으로 경성공회당에서 열리면서 무용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31년 5월9일 최승희는 스무살의 나이로 와세대대 러시아문학과에 다니고 있던 한 살 위의 안필승과 결혼했다. 안필승은 와세다대 졸업 후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따서 안막(安漠)으로 개명했다.
34년 최승희는 일본 청년회관에서 제1회 발표회를 열었다. 엮은이는 "그때 저명한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고의 무용가가 탄생했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무용을 시작한 지 10년, 조선과 일본의 저명인들이 최승희 후원회를 만들었다. 발기인에는 여운형,마해송,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포함돼 있었다. 36년 최승희는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 손기정과 함께 억압받은 한국인의 우상이 되었다.
37년 최승희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첫 해외공연을 가진다. 그러나 최승희의 공연포스터에 '재퍼니즈 댄서'라는 소개에 자극받은 재미동포들의 반일운동으로 공연은 중단됐다.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갈 수 없었던 최승희는 뉴욕 할렘가에서 1년 가까이 그림 모델 등을 하며 버텼다.
"프랑스는 이상하다. 내가 초립동 춤을 추고 난 지 일주일 만에 파리 전체에 그 초립동 모자가 퍼지더라. 그만큼 유행에 민감한 곳이란다".
프랑스의 <피가로>지는 최승희에 대해 "선이 아주 환상적인 동양 최고의 무희"라고 격찬했다. 당시 파리 공연에서 주목받은 춤은 최승희를 대표하는 춤으로 평가받는 '보살춤'이었다.
유럽 공연의 성공으로 다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최승희는 30년대 후반 유럽,미국,중남미 등에서 1백50여회의 공연을 해 동양의 무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최승희는 41년 12월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만주와 중국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위문공연에 투입되어야 했다. 공연 횟수가 1백회가 넘을 정도로 그는 관동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끌려가 공연을 해야 했다.
최승희는 몽고를 돌아 다른 전쟁터로 이동할 때 운강석굴을 방문했다. 운강석굴은 약 1천5백여년전에 만들어진 중국 최대의 석굴사원이다.
동굴에슨 5만1천개 정도의 불상이 조각돼 있다. 최승희는 이 거대한 불교예술에 큰 감명을 받아 불상의 다양한 자세를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석굴암의 벽조>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45년 8월 해방이 됐으나 중국에 있던 안막은 청년시절부터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있던 처지여서 해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몹시 고뇌했다고 한다.
결국 45년 8월말 안막은 중국내 조선인 공산군과 함께 평양으로 향했다. 한편, 최승희는 이듬해 김백봉을 비롯한 제자들을 데리고 중국 천진에서 조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해방 후 서울에서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됐다. 친일파로 몰린 최승희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정신과 전통을 뺏으려고 할 때, 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북돋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국내에서건 국회에서건 내가 조선의 딸로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승희는 북한에 가 있던 안막으로부터 강력한 요청을 받고 46년 7월 38선을 넘어 북으로 갔다. 최승희는 평양에도착하자마자 김백봉과 함께 김일성을 만나러 갔다.
김백봉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최승희 동무 살러 왔소, 다니러 왔소"라고 물었다. 김일성은"살러 왔다"는 최승희에게 원하던 대로 대동강변 요정이었던 동일관 자리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해 주었다.
북한 무용동맹위원회 위원장이 된 최승희는 50년 6월초 2백명의 대규모 예술단과 역시 단원이었던 딸 성희를 데리고 모스크바에 갔다. 소련 각지를 돌며 공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 터졌다.
최승희에게 매료되었던 주은래는 최승희의 춤 가운데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53년 7월 6.25 전쟁이 끝나자 최승희는 평양으로 돌아갔다. 54년 남편 안막은 문화부 부부장으로 승진되었고, 2년 뒤에는 문화선전부 부부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엮은이는 "최승희 부부의 위세는 마치 뜨는 해와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59년 최승희 가족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북한 정권 내부에서 대규모 숙청이 단행된 것이다. 안막도 이때 숙청당해 강제노동 끝에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승희는 이런 위기상황 아래에서도 무용교재인 <조선민족무용기본>(1957)을 남겼다.
이 교본은 남한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뒤늦게 출판(1991.동문선)되기도 했다. 한국춤의 기본동작을 문자와 그림으로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무용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최승희는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에 비유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다.
최승희-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무용가의 생애와 예술(위). 최승희가 북한에서 숙청당하기 1년전의 마지막 모습(1966)(아래) ⓒ프레시안
브뤼셀,로마,헤이그 등 유럽 순회공연을 끝내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최승희는 대망의 무대인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샤이오에 섰다. 관중 속에는 당시 피카소,장 콕도, 로망 롤랑 등 문화예술계 명사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피가로>지는 최승희에 대해 "선이 아주 환상적인 동양 최고의 무희"라고 격찬했다.
최승희 춤을 대표하는 보살춤 ⓒ프레시안
북한 무용동맹위원회 위원장이 된 최승희는 50년 6월초 2백명의 대규모 예술단과 역시 단원이었던 딸 성희를 데리고 모스크바에 갔다. 소련 각지를 돌며 공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 터졌다. 6.25 전쟁 때 평양이 유엔군에 점령되면서 최승희무용연구소 건물도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최승희는 52년 김일성과 주은래의 배려로 중국 북경에 오게 되었다. 엮은이는 "최승희는 중국 고전무용을 발굴하고 현대화하는 데 힘을 쏟아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무용에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최승희 류"라고 전한다.
53년 7월 6.25 전쟁이 끝나자 최승희는 평양으로 돌아갔다. 54년 남편 안막은 문화부 부부장으로 승진되었고, 2년 뒤에는 문화선전부 부부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엮은이는 "최승희 부부의 위세는 마치 뜨는 해와 같았다"고 말한다.

안익태기념재단이 기증받은 악보들을 검토 중인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악보가 남아있는 안익태 선생의 작품이 10여 편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번에 발견된 악보는 선생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는 기초자료로서 매우 귀중하다"고 평가했다.
두 편 외에 악보가 남아있는 안익태 선생의 작품은 '애국가' 합창이 포함된 대표작 '한국환상곡'을 비롯, 교향시 '논개' '강천성악' 등 12편(편곡작품 제외)이며, '시의 조선' '방아타령' '고종의 승하' '야악'(夜樂) 등의 작품은 제목만 알려져 있다.
안익태기념재단은 올해 안익태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번에 발견된 두 곡을 포함해 그동안 국내에서 연주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로 음악회를 열고, 유품 전시회와 학술 심포지엄, 악보 출판 등도 추진하고 있다.
10여 년 전 유품 일부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은 '애국가'의 저작권을 우리 정부에 헌납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나머지 유품 178점을 안익태기념재단에 기증했다. 재단은 이 가운데 일단 악보를 가져왔으며, 지휘봉과 책, 사진, 편지, 여권, 연주계약서, 태극기 등 나머지 유품은 3월 말 들여올 예정이다.
●교향시란
시적이고 회화적인 내용을 담은 표제음악 성격의 관현악곡으로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시대에 등장했다. 안익태의 스승 리하트르 슈트라우스가 남긴 교향시'영웅의 생애''죽음과 변용'은 걸작으로 평가되며, 안익태가 교향시를 쓴 것도 스승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오미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