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유래와 역사
2014년 5월 5일은 제92회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들이 자기의 생일만큼 기다리는 날이다. 우리의 어린이날은 가장 어두운 시대에,
그러나 겨레의 희망을 품고 탄생했다. 어린이날 첫 행사가 열렸던 1923년은 우리 나라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기였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온 민족이 굶주리고 짓눌리며
신음하던 무렵이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희망은 나라의 독립이었다.하지만 그것이 아득히 멀어만 보이던
당시에, 선각자들이 앞날의 주인공인 어린이에게서 샛별 같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다.
우리 어린이들을 잘 길러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되찾게 하려는 꿈을 꾼 것이다.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을 알리는 선전 종이에 적힌 글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은 어린이날, 희망의 새 명절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진장섭ㆍ조재호ㆍ윤극영ㆍ손진태ㆍ이헌구ㆍ마해송 씨 등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색동회’가 제정했다.
이들은 우리 동요ㆍ동시ㆍ동화ㆍ동극를 짓고, 이를 부르고 읽고 관람하게 하여,
어린이들에게 우리 얼을 심어 주려는 뜻에서 펼친 어린이 문화 운동에 앞장섰던 분들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것은 이런 문화 운동으로 이뤄진 하나의 결정체였다. 방정환 선생은 이보다
앞서 3월 20일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했다. 또 그때까지 어린이를
얕보는 투의 ‘아이’라는 말 대신 높임의 뜻이 담긴 ‘어린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은 천도교 소년회ㆍ반도 소년회 등을 중심으로 서울 천도교본부
운동장에서 치러졌다. 이 날 어린이들은 어린이날 기를 앞세우고 시가 행진도 벌였다.
5월 5일로 어린이 날이 바뀐 것은 1927년부터였다.그러다 우리 말과 글까지 못 쓰고 할 정도로
일제의 탄압이 발악의 지경에 이르렀던 1937년엔 어린이날도 아예 없어지고 만다. 어린이날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이다. 그 해 5월의 첫 일요일인 5일에 기념식을 열고,
이 날을 어린이날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날은 윤석중 선생이 지은 ‘어린이날 노래’도
처음 전국에 울려 퍼졌다.
어린이날이 공휴일로 쇠게 것은 1975년부터. 소년한국일보는 어린이 단체들과 함께 이 날
하루라도 온 가족이 어린이들과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1972년부터 정부에 건의한 결과,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그 뒤 30 년 가까이 ‘5월 5일 어린이날’은 변함 없이
지켜져 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국무회의에서 어린이날을 공휴일로 하지 않고 5월 5일이 든 주
토요일로 옮기는 방안이 느닷없이 검토되면서 전국의 어린이들과 아동 단체로부터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 검토는 끝내 없었던 일이 되고 어린이날은 현행대로 공휴일로 계속 남았다.
하여튼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은, 겨레의 희망을 상징하는 어린이날은 그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살리고,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자긍심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린이 주일의 유래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근세에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었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어떻게 교육되느냐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과 직결되기에 몇몇 뜻있는 목회자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교회의 특별한 봉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최초로 어린이 주일을 제정한 유니버셜리스트 제일교회의 레오날드(G.H Leonald)목사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한 사람으로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 주를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그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다.
레오날드 목사의 어린이 주일 시행이후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결과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은 다른 교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린이 주일은 교회 절기의 일부분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어린이라는 호칭조차 없던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우리에겐 어린이 주일의 제정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 바른 인식이 더 필요했다. 이러한 때에 방정환, 마해송 등의 어린이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여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편 초창기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이 1927년부터는 5월 첫째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보다 활발하게 지켜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