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 Abraham Lincoln
| 출생 | 1809년 |
|---|---|
| 사망 | 1865년 |
| 국적 | 미국 |
1860년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남북전쟁의 불씨를 키웠고, 결국 그의 임기 중에 남부연합이 떨어져 나가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1865년 4월 14일, 저녁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영국에서 일리노이 주로 이주해온 가난한 이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한 까닭에 별다른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를 사랑했던 새어머니의 후원으로 어려서부터 수많은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책 한 권을 빌리기 위해 수 킬로미터 떨어진 이웃 마을까지 가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훗날 "어린 시절에 배움을 자극하는 것은 전무했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청년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주로 가게 점원으로 일했으며, 한때는 선원으로 배를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가기도 했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도 링컨은 늘 책을 가까이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고 동네 사람들의 후원과 사랑을 얻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그는 주의회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말았다. 경험도 재력도 학력도 없던 그가 선거전에서 승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 그는 변호사 공부에 몰두하여 불과 2년 만인 183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1837년 링컨은 뉴셀럼보다 변호사 일이 더 많은 일리노이 주의 주도(州都) 스프링필드로 이사했고, 1844년부터는 윌리엄 H. 헌던과 함께 일했다. 두 사람의 동업은 더할 수 없이 완벽했다. 스프링필드로 옮겨온 지 몇 년 만에 링컨은 주지사나 순회판사의 연봉보다 많은 연간 약 1,500달러의 돈을 벌었다. 링컨은 철도회사, 은행, 금융회사 등 회사와 관련된 소송부터 특허신청, 형사소송까지 모두 다루었다. 20년 후, 그는 정치적 사건을 변론하면서 치밀함과 상식, 소송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일약 일리노이 주에서 가장 저명한 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정직함과 공정성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그는 1834년부터 1840년까지 일리노이 주의 휘그당 의원으로 네 번 당선되었다. 주의회 의원으로 있는 동안 철도, 고속도로, 운하 등 대규모 건설계획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1837년의 공황과 그로 인한 경기침체로 계획은 대부분 무산되었다. 그 후로도 링컨의 정치생활은 계속되었다.
1854년, 경쟁자인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은 루이지애나 주의 노예제를 합법화하고,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준주(準州)에서도 노예제 도입 여부를 해당 지역민들에게 맡기는 법안이었다. 이는 옛 노스웨스트 지역의 주들의 반대를 불러일으켰고, 휘그당의 해체와 공화당의 등장을 불러왔다. 링컨 역시 해체된 휘그당원 수천 명과 함께 공화당에 입당했다.
당시 노예 문제는 가장 큰 정치적 이슈였으며, 이에 대해 링컨과 더글러스는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더글러스는 준주에는 노예경제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준주로 노예제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법안을 굳이 제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지만, 링컨은 준주에 노예제가 도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858년, 그는 더글러스와 맞붙어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 선거 연설에서 그는 당시 최대의 논점이었던 노예제도에 대한 의견을 당당하고 정확하게 피력했다.
"정부는 반은 노예이고 반은 자유인인 현 체제를 영구히 지탱해나갈 수는 없다. 이제 선택의 때가 왔다. 모두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자유인이 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선거전에서 그는 더글러스에게 패했지만,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1860년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룬 미국은 영토나 인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독립할 당시 13개 주에 불과했던 영토는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지방을 구입한 것을 필두로 플로리다, 텍사스, 오리건이 추가되어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서부의 수많은 미개척지가 이주민들의 노력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영토로 편입되었다. 아울러 경제체제도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변모해 나갔다. 이에 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해야만 했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변화를 둘러싼 각종 이권경쟁도 복잡하게 일어났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계층은 남부의 대농장 지주층이었다. 노예를 부려 대농장을 경영하는 지주층은 미국의 정치계를 장악하고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대항하는 신흥 세력들이 등장했으니 이들이 바로 북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산업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이 표면적인 대립양상을 보이게 된 문제는 단연 노예제도였다. 1619년 아프리카 흑인들이 버지니아에 처음 수입되면서부터 만들어진 흑인 노예는 남부의 농장을 운영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노동력이었다. 특히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갈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흑인 노동자가 필요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북측의 사람들이 모두 노예폐지론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남부는 노예제도 폐지에 반대하고, 북부는 노예제도 폐지에 찬성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남북전쟁을 파악하곤 하는데 실제 사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했다. 북측에서도 노예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다가 봉변을 치르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같은 국가를 남북으로 갈라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끈 것일까? 지역 간의 경제적인 이권 싸움이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무역을 시행할 것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남북의 대립이 노예제도의 찬반보다 더욱 극렬하게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산업적인 성격이 강했던 북부는 상공업 발전을 위해 보호무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농업이 중심이었던 남부는 원료 생산자의 입장에서 자유무역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이런 경제적인 갈등이 폭발 일보 직전에 이르렀을 때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는 속속 연방에서의 이탈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따로 아메리카 연방을 구성해 데이비스를 남부 지방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전쟁은 찰스턴 항구의 섬터 요새에서 남부연합의 발포로 시작되었다. 링컨의 원래 목적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연방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전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단기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링컨은 초기까지만 해도 노예제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400만 명에 이르는 흑인 노예들이 자유민이 되어 미국의 정치·사회생활에 개입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완전히 노예제를 폐지할 경우 경계주(境界州, 남부 노예주 중 연방 탈퇴보다는 타협으로 기운 주)들이 남부연합에 합류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1863년 최종적으로 노예해방령을 발표했다. 노예해방령의 골자는 재정적 보상을 통한 점진적 노예해방이었다. 각 주는 노예를 소유한 주에게 보상을 하고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고,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방정부가 관련 주와 나누어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해방된 노예는 해외로 집단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안은 경계주들은 물론 흑인들에게도 거부를 당했다. 노예들이 해외 이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히 단기전으로 끝나리라고 생각했던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채 4년이 지난 1865년 막을 내렸다. 승리는 링컨이 이끄는 북측의 것이었다. 수정헌법 13조에 의해 노예제도는 영구히 폐지되었고 모든 정치적 권력은 남에서 북으로 이양되었다.
비로소 링컨은 남북을 통일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의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여러 가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링컨은 타고난 능력으로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더 나은 통합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불행히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인 1865년 4월 14일 저녁, 그는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중에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당해 다음 날 아침 사망했다. 그가 그토록 꿈꿔왔던 미국,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위대한 미국의 건설은 그 기초 공사만을 닦았을 뿐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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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백과>
링컨의 어머니 성경책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링컨대통령 어머니의 성경책-
-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
링컨의 전기 작가는 링컨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그에게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만을 주셨을 뿐이다"
라고 기록했단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 링컨은 황무지 개척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척박한 자연 환경과 싸우며 가난한 시골 생활을 견뎌냈다.
그녀의 삶은 하루 종일 농사일과 허드렛일로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자녀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관찰력이 뛰어났던 그녀는 링컨을 데리고 숲 속이나 강가를 거닐면서
링컨으로 하여금 신기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에 눈뜨게 했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사고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들 링컨의 마음 속에 '신앙'과 '꿈'을 심어 주고자,
한가로운 오후나 저녁 식사 후엔 찬송가를 불러주고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때로는 분주한 대도시의 이야기도 해주었다고 한다.
링컨의 어머니는 외진 시골 마을에 살고 있어서 학교에 다니기 어려웠던
링컨남매를 학교에 보내는 교육에 대한 집념이 강한 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링컨이 10살 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녀는 링컨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된 링컨대통령 어머니의 성경책-
"사랑하는 에이브야! 이 성경책은 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일거 많이 낡았지만 우리 집안의 값진 보물이란다.
나는너에게 100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에이브야! 너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약속할 수 있겠니?"
링컨은 비록 나이 어렸지만,
어머니의 유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링컨은 그의 친한 친구에게 어머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고 한다.
"내가 아직 어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성경을 읽어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네.
통나무집에서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리고 있네.
나의 오늘,나의 희망, 나의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 22:6)
-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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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읽으며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한 구절 떠올랐다.
정안수 떠 놓고 기도한 자식은 어긋나지 않는다는....
삶이 고단하고 힘든 시절,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자급자족을 해야 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었을 터인데도,
이른 아침 한잔의 정안수를 떠놓고 자식을 위해 두손을 모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정성에 또한번 고개가 수그려진다.
링컨의 어머니도 힘든 삶이었지만 자식의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물려준 정말로 현명한 어머니였던 것 같다.
안락한 삶이 아니라 늘 노력하고 자식들을 위해 먹이고 입히는 것 이외에
삶의 지혜를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
자식을 위해 결단을 내릴 때 결단을 내리는 강한 어머니였다.
그녀에겐 삶의 기준이 있었다. 신앙이라는. 그녀의 유언은 몇 마디였지만...
그 몇 마디는 성경을 통해 더욱 살아 움직이며 링컨을 일평생 지켜주었다.
한번 쓰면 없어지는 물질이 아니라 삶이 아무리 무너져도 희망을 주는 신앙의 힘을
그녀는 링컨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링컨 또한 그러한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자란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늘 언제나 일치하지 않았을 텐데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링컨이었던 것 같다.(옮겨온글)
나에겐 이러한 덕목들이 있는가? 내 아이들은 나를 어찌 바라볼까?
-오바마대통령이 선서때 손을 올려놓은 책이 릴컨대통령어머니의 성격책-
<출처: 블로그 바다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