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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인물

플라톤 / 철학의 스승

작성자靑野|작성시간08.11.04|조회수2,684 목록 댓글 0

 

 

 

 

 

플라톤(Platon)

(BC 428/427 그리스 아테네(또는 아이기나)~BC 348/347 아테네).

 

BC 428년경 아테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리스톤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인 코드로스의 후손이며, 외가 쪽으로는 초기 그리스의 입법가인 솔론과 연결된다.

어머니 페릭티오네는 플라톤이 어렸을 때 남편과 사별한 뒤 페리클레스의 지지자였던 그녀의 삼촌 피릴람페스와 재혼했다.

플라톤은 BC 404년의 과두정권을 이끌었던 외숙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소크라테스를 알게 되었다.  BC 399년 민주정권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메가라로 잠시 피신한 뒤 몇 년 동안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플라톤은 시라쿠사의 통치자인 디오니시오스 1세의 처남 디온을 만나 그와의 정신적 교류를 시작했다.

청년 플라톤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의 생애와 저술  

 

  플라톤은 페리클레스가 죽은 지 1년 뒤인 기원전 428, 혹은 427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소크라테스는 이미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있었고, 아테네는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플라톤의 가계(家系)는 아테네의 저명한 가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는 당시의 그리스 문화를 주도하던 아테네의 예술, 정치, 경제, 철학 등과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문화와 그 정신을 두루 섭렵했으리라는 점은 거의 분명하다. 그의 부친은 자신의 혈통을 고대 아테네의 왕들에게까지 소급시켰고, 더 거슬러 올라가 포세이돈(Poseidon)에 이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한편 그의 모친인 페릭티오네(Perictione)는 카르미데스(Charmides)의 여동생이었고, 크리티아스(Critias)의 사촌이었는데, 그 두 사람은 펠로폰네소스 전쟁(431 - 404 B. C.)시 아테네가 몰락한 후 생겨난 과두 체제에서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이렇게 저명한 인사들, 또는 위대한 입법가, 또는 집정관이나 최고 행정관을 배출한 가계(家系)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의 가문은 오랫동안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가문의 분위기 속에서 플라톤이 상류계급이 지녀야 할 예절과 학식, 품위, 상식, 그리고 윤리적 의무 등에 관한 사항을 배웠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정치적 사명감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플라톤의 아테네 민주정(民主政)에 대한 태도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막바지에서 그 자신이 경험했던 것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는,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의해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이 합법적으로 처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면서부터, 민주제란 우민정치(愚民政治)의 하나라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 자신이 품었던 정치적 사명감, 혹은 포부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처단하기 위해 마련된 부정한 재판(자세한 것은 소크라테스 최후편에 기술되었음)에서 그를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 그의 보석금을 낼 의향을 표시하기도 했음 - 아테네의 민주적 법정에서 그를 구해낼 수 없었다. 아테네의 붕괴와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민주제에 대한 절망감을 플라톤에게 안겨 주었고, 따라서 그는 권위와 지식이 적절히 함유된 정치제를 구상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플라톤은 배(船)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선원의 권위가 그의 항해에 대한 지식에 의존해야 하는 것과 같이 국가라는 배는 적합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 의해 운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제는 [국가론]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플라톤은 아테네에 팽배했던 다양한 형태의 철학을 두루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그 가르침이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와의 우정을 통해 철학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였다. 플라톤에게 있어 철학이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문화된 기술적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이었다. 철학은 과학과 인간 행동의 영역에 공히 적용되기 때문에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품격도 요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플라톤에게 있어 모든 지식의 분과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이 우주의 전체계와 조화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인간은 철학적 활동 즉, 정신의 부단하고 정열적인 활동을 통하여 그 자신을 세계에 관련시킬 수 있고 전인적(全人的)인 힘과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였다.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플라톤 역시 완전한 지식이나 절대적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식에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변증법(dialectics)이라는 확신만을 갖고 있었다. 변증법이란 대화의 기술로서, 한 가정(假定)이나 가설을 끊임없이 반대 주장과 대비시키는 기술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기술인 동시에 그의 삶이었다. 겸허하고 포용력 있게 소크라테스는, 선한 삶을 이룰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하고 그에 순응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비록 그가 실제로 "제자"들을 거느린 적은 없고 작품을 남긴 적도 없었지만, 그는 바로 플라톤의 철학적 삶을 위한 지표가 되었으며, 플라톤의 저술에 의해 거의 완전한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술들을 대화의 형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을 보존했고,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와 자연 및 실재론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관심을 승화시켰다.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들을 거의 완성하던 시기, 즉 기원전 387년경에 아테네 근교에 아카데미아 학원을 세웠다. 그때 그의 명망은 정점(頂點)에 있었고 그의 나이도 마흔에 이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학원은 서구의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대학이었다. 플라톤은 20년 동안 그 곳의 학장으로 여러 가지 일을 관장했다. 아카데미아의 주요 목적은 본원적인 탐구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플라톤의 주요 관심은 정치가들의 교육에 있었지만, 정치가들의 교육은 엄격한 지적 훈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에게 수학, 천문학, 화성학(和聲學) 등을 포함한 과학적 탐구 방식을 교육하였다.

 아카데미아의 과학에 대한 강조는 동시대의 이소크라테스(Isocrates)의 활동과 날카롭게 구별된다. 그 역시 젊은이들에게 공공 생활에 대해 교육하였지만, 그는 과학의 유용성을 거의 부정했다. 즉, 그는 순수한 학문적 탐구욕은 실용적 가치나 인문주의적 관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그는 명확하고 효과적인 표현과 설득의 기술을 교육함으로써,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지배적인 의견들이나 특수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었다. 그러나 플라톤은 수학을 교과 과목의 중심에 위치시켰고,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준비는 진리나 과학적 지식의 사심 없는 추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정신은 속견(俗見)과 감정을 배제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하며, 엄격한 사유를 통해 실재를 직시하고 지식에 입각하여 판단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수학과 과학적 연구에 대한 플라톤의 엄격한 강조로 인해, 소피스트들의 허구적인 접근 방식은 이미 논박되었고 몇몇 유능한 사상가들이 아카데미아로 찾아오게 되었다. 아카데미아에 참여했던 뛰어난 학자 집단은 이전의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학적 지식을 능가하는 훌륭한 진보를 이룩하엿다. 또한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저명한 수학자 유독소스(Eudoxos)와 같은 이는 자신의 학파로부터 아테네로 건너와 아카데미아에 합류하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20편이 넘으며, 이는 하나의 광대한 저작이었다. 초기 저작 중 대부분은 윤리학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통상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이라 불린다. [변명], [크리톰], [카르미데스], [라케스], [유티프론], [유티데무스], [크리틸루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데아론과 형이상학 이론이 제시되고 있는 두 번째 시기의 대화편에는, [메논], [향연], [파에돈], [국가론], [파에드로스]가 포함된다. 플라톤은 생의 후반에 자연의 구조를 다룬 기술적인 대화편을 저술했다. 그것은 어떤 문제들에 대해 많은 시간을 사색했던 사람들의 견해와 종교적 신념을 심화시킨 하나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데아이테토스], [파르메니데스], [소피스트], [정치가], [필레부스], [티마이오스], [법률론]이 포함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좌절하게 했고,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어떠한 정치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지식이야말로 지도자의 훈련을 위해 가장 적절한 것임을 누차 강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커다란 명성을 획득했으며, 시라쿠스(Syracuse)로 초빙되어 젊은 전제 군주였던 디오니시우스 2세를 교육하기도 하였으나, 그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디오니시우스에 대한 교육이 너무 늦게 시작된 데다 플라톤의 성격 또한 모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플라톤은 만년에도 끊임없이 저술 활동을 지속했고, 아카데이아에서 뛰어난 명민성을 보이던 청년, 아리스토텔레스를 주목하면서 여든 살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플라톤의 전작품은 하나의 철학 체계를 구성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플라톤 자신은 그의 사상을 그렇게 명료한 체계로 조직화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체계의 수립이란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많은 대화편은 하나의 충실한 철학 체계의 요소들을 내포함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그의 사상에 대해 체계적인 정리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플라톤은 정신의 자유가 보존되기를 원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그에게 새로운 생각이 찾아들면 자신의 개념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주제에 관해 서술했었다고 해서 그 주제에 관한 그 이후의 논의의 여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대화편들은 그의 지적 발전 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강조와 통찰력에 있어서의 변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작품들에는 명확한 주제들과 그 주제들을 취급한 독특한 방식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고 접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주요한 주제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 주요한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인식과 이데아 및 도덕과 정치 목록에서 살펴볼 생각이다.

 

 

플라톤의 철학개요(哲學槪要) 

 

최초의 철학자들인 밀레토스 학파는 주로 물질적인 자연의 구성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도덕의 기초에는 관심이 없었다.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역시 실재(實在)란 하나의 변화하지 않고 단일한 실재, 즉 유일자(有一者)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와는 다르게 피타고라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는 항상 변화하고 유전(流轉)하는 것으로 파악했고, 또한 그 실재가 다양한 사물들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은 물질적인 자연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 대신 철학을 도덕의 영역으로 개편하였다. 플라톤의 위대한 바는 그 모든 관심을 하나의 통합된 사상 체계로 포섭했다는 점에 있다.

  플라톤은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상식적인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수많은 사물들의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은 우선 이 현상적인 사물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이를 위한 시도를 통해 사물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세계를 채택하였다. 그것은 사유(思惟) 및 이데아들의 세계, 즉 과학의 세계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물질적인 사물들은 정신을 물리학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대한 지적 이해가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사물들-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모든 사물들 -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은 우선 사물들이 그것들의 활동에서 준수하는 원리들과 규칙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칙들에 관한 사유의 모델이 수학이었다. 왜냐하면 수학은 개별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고도 사유(思惟)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플라톤을 형이상학의 영역에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물리학이 현상(現象)의 세계로부터의, 즉 가시적 사물들의 위에 혹은 배후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에로의 정신의 유입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면, 이 단계에서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이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하는가 혹은 실재하는가의 문제이다. 실로 상식과는 반대로, 플라톤은 가장 실재적인 것이 바로 이 이데아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사과는 사라져도, 사과라는 이데아, 둘이라는 이데아는 초시간적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플라톤은 진리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는 그들이 이 두 세계를 혼동하는 데서 연유한다고 주장했다. 현상계(現象界)가 속견(俗見)만을 낳는다면, 초시간적인 이데아의 세계는 참된 지식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에 대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계승했다. 어떤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은 획득될 수 없다는 소피스트들의 주장은 학문과 지식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도덕적 상대주의를 거부했고, 자신의 인식론은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에 이르는 확고한 다리를 놓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만일 우리가 사물의 참된 본성인 실재(實在)- 인간의 참된 본성을 포함하는 -에 대해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동시에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처음에는 한 개인의 문제였다가 그 다음에는 동료들을 포함하는 문제가 되며, 결국에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관한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러한 인간의 관심의 세 측면은 윤리학, 정치학, 종교라는 세 가지의 분리된, 그러면서도 서로 연관된 분야들에 의해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인식론을 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종교 문제, 그리고 예술론과 결합시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탐구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인식론을 그만큼 신중하게 접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구인의 정신을 기초하였다. 서구 문명의 도덕 철학과 과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이 이룩한 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철학은 거대했고 긴 생명력을 발휘하였다.

 

<출처 : http://www.sang1475.com.ne.kr>

 

 

 

 

플라톤이 시인을 추방하려한 이유는 정치적 힘때문

데일리서프 | 기사입력 2006.12.18 09:00 /

류가미(소설가) / 1999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오늘은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여기서 시인은 비극 작가를 말합니다. 그러나 먼저 왜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는가를 알아보기 전에, 테세우스의 이야기 한 토막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그리스 전역의 영웅이었다면,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입니다. 사실 헤라클레스가 보편적인 영웅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면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자기 죄를 씻기 위해서 했던 12가지 노역은 인간의 보편적인 투쟁을 보여줍니다. 헤라클레스가 싸웠던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역을 모두 해결하고 나중에는 불멸성을 얻어 신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반면 테세우스는 아테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영웅입니다. 그가 싸웠던 것은 바로 크레타의 미노스왕, 에게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절대왕권을 휘두르는 독재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테세우스는 다분히 정치적인 영웅이었던 셈입니다. 테세우스는 특정한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테네인의 기질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죠.

테세우스는 아폴론 신의 도움으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인질들을 구해내고 아테네로 돌아옵니다. 고고학자들은 미노스왕이 기원전 2000년경에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로 봅니다. 그렇다면 테세우스가 인질들과 함께 30개의 노가 달린 배를 타고 아테네에 돌아온 것도 그때쯤의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아테네 시민들은 테세우스가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를 가졌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테세우스가 크레타에서 타고 돌아온 배를 앞세워 아폴로 신이 사는 델로스 섬까지 해상 행렬을 벌였던 거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보면 테세우스의 배가 기원전 3세기 경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테세우스의 배가 기원전 3세기까지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나무로 만든 배가 썩지 않고 천년이상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테세우스의 배가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테네 사람들이 해마다 배의 손상된 널빤지들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속 낡은 널빤지들을 새로운 널빤지로 갈다보면 애초에 배를 만들었던 나무 널빤지는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널빤지로 대체된 이배는 원래의 테세우스 배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배인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은 identity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identity는 우리말로 정체성 혹은 동일성으로 번역됩니다. identity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다른 것과 구별해주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본질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존재들은 물질적 조건이 변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해버린 존재를 그 전과 동일한 존재로 봐야할까요 아니면 다른 존재로 봐야할까요? 예를 들어, 시간에 흐름에 따라 우리 몸은 태어났다 성장하고 늙고 죽어갑니다. 육체가 이렇게 변해가도 우리는 같은 존재일까요 아니면 다른 존재일까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러한 질문에 고민했지만 그들이 내놓은 해답은 세 가지 범주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첫째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물질적 측면이 바뀌어도 그 존재의 정신적인 측면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는 같은 존재다라는 입장입니다. 말하자면 테세우스의 배의 널빤지가 바뀌어도 그 배가 설계된 원안을 유지한다면 그 배는 같은 배라는 입장입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육체적 조건이 바뀌어도 인간의 정신(영혼)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플라톤 이후, 19세기까지 서양철학을 지배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물질적 조건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원래의 설계 도면을 이데아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 입장은 물질적 측면이 바뀌면 존재의 정신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은 배의 널빤지를 가는 작업을 거치는 동안 테세우스의 배는 설계되었을 때의 원래 모습을 잃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육체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정신(영혼)도 영향을 받아 변하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유물론의 입장입니다.

세 번째 입장은 존재를 물질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으로 나누기 힘들다고 봅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존재는 항상 같은 존재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존재는 뭐라고 논리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지요. 이것이 바로 불교와 도가(道家) 그리고 서양 신비주의의 입장입니다.

플라톤이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그 물질적인 조건이 아니라 정신적인 설계도인 이데아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여기서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이야기를 접을까 합니다. 그러면 다시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왜 플라톤은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해야한다고 했을까요?

플라톤이 시인 추방론을 주장한 것은 그의 저서 '국가(politeia)'에서입니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펼칩니다. 플라톤은 시인이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의 적'에서 플라톤을 열린 민주주의 사회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우러러 찬양하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혐오했습니다. 사실 그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플라톤은 대대로 아테네 정계를 주름잡던 귀족 가문의 출신입니다. 그런데 무장한 아테네 시민들이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해 승리로 이끌자,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거세어집니다. 더군다나 페리클레스가 귀족들의 회의인 아레오파고스를 견제하기 위해 시민들의 회의인 50인 평의회를 강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시민들도 대대로 귀족들만 맡아오던 최고 집정관(아르콘)직에 오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정치적인 특권을 누리던 귀족들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아테네 귀족들이 자신의 조국이 아니라 스파르타의 편에 섰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친스파르타 정부를 세웁니다. 이렇게 해서 아테네의 또 하나의 과두정권이 세워집니다. 이때 스파르타의 힘을 입어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바로 그 악명 높은 30인의 참주들입니다. 30인의 참주들은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싫어, 전쟁 중에 스파르타 편을 든 아테네 귀족들이었습니다.

30인의 참주들은 페리클레스가 귀족들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었던 모든 법을 폐지합니다. 또한 30인의 참주들은 민주파에 속하는 자신의 정적을 모조리 죽이는 공포정치를 실행했습니다. 1년 남짓 지속된 이들의 정권 동안, 그들에 의해 처형된 사람이 무려 15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죽은 아테네 시민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습니다.

30인 참주 중에서 가장 극렬한 반민주파가 바로 크리티아스와 그의 사촌 카르미데스입니다. 그런데 이 크리아티스와 카르미데스는 플라톤의 외가 쪽으로 당숙이 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30인 참주정치를 반대하는 민주파의 반정이 일어났고 크리아티스와 카르미데스는 민주파에 의해서 처형됩니다.

그 후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도 크리아티스와 카르미데스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민주파에 의해서 기소되어 처형됩니다.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파에 의해 사랑하는 친척들과 스승을 잃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던 아테네보다, 아테네의 적이었던 스파르타에 훨씬 가깝습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달리, 소수의 정복민이 다수의 피정복민을 다스리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또한 아테네가 상업과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스파르타는 계급구조의 동요를 가져오는 변화를 막기 위해서 상업과 교역을 막는 자급자족의 농업국이었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란 엄격한 신분적 질서 아래, 각각의 계급이 자신의 미덕을 충분히 발휘하는 나라였습니다. 플라톤은 철학자인 통치자 계급, 군인인 방위 계급, 다수의 시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자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계급에는 그에 맞는 미덕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통치자가 이성에서 나오는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고 군인들이 기개에서 나온 용기로 나라를 지키고 생산자 계급이 정욕에 빠지지 않고 절제할 때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시인(비극작가)들이 이러한 미덕을 증진시키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비극 작가들은 실재인 이데아를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데아의 모방물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최초로 존재했던 것은 그가 이데아라고 불렀던 관념적인 세계였습니다. 이데아는 물질적인 형태가 없는 일종의 설계도면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설계 도면에 따라, 다시 말해 이데아를 모방해서 물질적인 세계가 형성됩니다. 플라톤의 입장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인 세계는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비해 조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볼 때, 시인들은 이데아를 모방해서 만들어진 이 세상을 모방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듭니다. 말하자면 플라톤에게 예술품은 이데아의 작퉁인 이 세계를 모방한 짝퉁의 짝퉁인 셈입니다.

비극작가들은 이성으로 파악될 수 없는 진정한 실재인 이데아가 아니라 희로애락에 물든 허구의 세계에 더 관심을 두고 있고 개인의 이성과 미덕의 증진 보다는 신과 합일되는 열광을 강조합니다. (잠시 여기서 비극이 상연되었던 디오니소스 축제가 술과 도취의 향연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봅시다.)

사실 명정한 이성을 강조하는 플라톤에게 있어서 격정은 때마다 뽑아주어야 할 잡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극은 격정들을 말려 없애버리는 대신에 그것을 먹이고 물주며, 격정이 이성을 지배하도록 한다. 그러나 인류의 행복과 미덕을 증대시키 위해서는 반드시 이 같은 격정들은 억제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비극이 해롭다는 것을 모르고 비극에 열광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극을 쓰는 시인들이 인간사뿐만 아니라 신들의 일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선생님으로 모십니다.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시인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상 국가에서 시인들을 내쫓을 수밖에요.

그러나 제 생각에 플라톤이 시인들을 추방해야한다고 했던 것은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힘 때문이었습니다. 전 시간에도 말했듯이, 비극 경연은 디오니소스 축제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또한 디오니소스 축제는 파종과 추수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축제이자, 신과 화해를 꿈꾸는 종교적 행사였고 또한 사회구성원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정치적인 행사였습니다.

특히 플라톤이 살았던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는 무엇보다 아테네 시민들의 단합 대회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축제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단결하듯, 아테네 시민들은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통해서 하나로 단결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경연되는 비극들은 상당한 교육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러한 비극을 보면서 자기가 사는 사회와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 아버지 페리클레스는 축제기간 동안 국가에서 가난한 시민들도 공연을 볼 수 있게 일당을 지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시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성공과 실패는 시민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변동이 없는 엄격한 계급사회를 꿈꾸는 플라톤에게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나 비극 경연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교육받은 시민들은 통치자에 그저 복종하는 대신 비판의 눈길을 보낼 것이고 축제를 통해 하나가 되었던 시민들은 언제고 정치적인 문제로도 단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닫혀있는 계급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시인을 추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열려있는 민주사회는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단결시킬 시인들을 요구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시인들을 배출했습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소포클레스가 나왔고 르네상스 시대에 보카치오가 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나왔고 프랑스 혁명전야에 루소가 나왔습니다. 저는 또 이 시대에 또 한명의 위대한 시인이 나와 주기를 고대합니다.

 

 

 

 

 플라톤의 <파이돈> 

-죽음과 철학 / 최성환(중앙대철학과교수)  

 

1. 현대 사회와 죽음: 왜 다시 <파이돈>인가?


   현대 사회는 기술과 과학 그리고 제반 사회적 조직들에 의해 움직여 나가는 ‘관리되어지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우리의 깊은 경험들을 평준화하고 일반적인 기록의 대상으로 표면화한다. 그런 연유로 인간의 죽음 마저 거의 사망 명부의 대상, 사망 시간으로서만 보이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배적인 의식에,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상응하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음이란 생물학적으로 조건지어진 그리고 동시에 삶의 절대적인 종말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1)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과연 어떤 기회를 가질 수 있는가! 이 글의 주제인 플라톤의 <파이돈>을 통해서 전설처럼 들리는 경이로운 기억과 희미해진 모습들을 현재화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펼치는 사고의 유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희망이 부재한 현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따라서 철학적 반성이란 시대의 통념들과 대결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거리두기’는 철학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전통에 대한 성찰을 통해, 모범적인 방식에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전통은 현재의 가능한 교정방식”이 될 수 있다.2) 이것은 철학이 과학적으로 관리된 세계의 자명성을 분석하고, 그것을 철학사에 제시된 물음의 조명 아래 검토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먼저 우리는 과학이 죽음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하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과학은 외적인 요소로서의 죽음, 타자들의 죽음을 다루는 것이지, 예컨대 과학자 자신의 죽음, 실존적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탐구되어지는 것은 결코 종말을 선취하는, 그를 통해 당혹해진 그리고 이 당혹감을 소화하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아니다. 죽음은, 그것이 우리의 고유한 죽음에 해당된다면, 우리 모두가, 과학자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순간에서 가지는 바로 그런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과학의 이러한 태도는 우연히 생겨난 거부(Versagen)가 아니라, 방법적 강요의 결과이다. 경험과학의 방법(경험, 관찰, 실험, 가설, 이론 그리고 검증 등)은 과학적 지식의 방법적 요소들이고, 이것들은 왜 죽음이 외부로부터의 접근이외의 방식으로 주제화될 수 없는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죽음의 내면은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고찰방식에 대해서 굳게 닫혀있다. 이 방식은 의식의 경험으로서 죽음과, 죽음이 가지는 현실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밝혀낼 수 없다. 비록 경험과학이 생명을 특정한 한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생명과 죽음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서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3)

   그렇다면 철학이 과연 이 물음에 있어서 과학의 제한성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인식대상으로서의 영혼의 개념은 이미 선험적 논과에 대한 칸트의 주장을 통해(형이상학의 종말에 대한 역사철학적 주장과 무관하게) 효과적으로 비판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인간의 절대적인 무상성만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이성의 상황은 무엇인가? 칸트를 통해서, 그리고 또한 관념론 이후의 철학적 전개를 통해 정당화된 인식이 남아 있다: 인간 이성은 유한하고 한계 내에 머물러 있다. 이 한계가 인간 이성에게 절대자와 초월자의 차원에로의 (인식적으로 완수될 수 있는) 접근을 방해한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명된 것인가? 진정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만약 인간 이성이 제한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또한 적어도 과학이 스스로를 잘못 이해하고 과대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면, 형이상학의 종말이라는 주장도 내적인 자기모순 때문에 너무 성급한 것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절대적 무상성에 관한 주장도, 철학이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할 ‘이성의 월권’(eine Anmaßung der Vernunft)이 아닌가? 그래서 인간의 절대적인 무상성에 관한 표현은 불멸의 영혼실체에 관한 표현과 똑같이 과잉된 것이며 비판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죽음에 대해서도 단지 무지함을 고백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끊임없는 사색적인 모색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플라톤의 ꡔ파이돈ꡕ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그 교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죽음은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인 사유를 통해 온전히 해명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끊임없이 새롭게 물어져야할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둘째, 죽음은 실존적인 상황에서만 진정한 대화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건이며, 이 마주함에서 결국 개인의 선택을 통해 죽음과 화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성적) 한계이자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2. 실존적 죽음과 철학적 성찰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즉 그가 죽음을 직면해서 그의 제자(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를 담고있다. 대화 상대자는 테베 출신인 피타고라스 학파의 심미아스와 케베스이고, 사건의 보고자는 고향 엘리스로 돌아가던 파이돈이다. 그는 귀향 중에 플리우스에 들러 역시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하는 에케크라테스에게 대화의 전말을 알려준다. 영혼불멸에 대한 논쟁은 소크라테스가 케베스를 통해 에우에노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기를 청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러니까, 케베스, 이 말을 에우에노스에게 해주고, 잘 있으라고도 말해주게. 또한, 만약 그 삶이 건전한 마음 상태에 있다면, 되도록 빨리 나를 쫓아오라고 일러주게나(...).”(61)4) 이 말을 들은 대화 상대자들의 놀라움을 향해 소크라테스는 “에우에노스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이 반문에는 철학은 그 본질상 반드시 죽음에의 각오를 함축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대화 상대자들의 반론들과 특히 심미아스의 간청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소신에 대해 변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그의 소신은 다음과 같다: “진정으로 철학과 함께 생애를 보낸 사람은 내가 보기에 죽음에 임하여 확신을 갖고 있으며, 자기가 죽은 뒤에는 사후세계(하데스)에서 최대의 좋은 것들을 얻게될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을 것이 당연하다(...).”(63/64)

   이러한 <파이돈>의 첫 장면에서 우리는 영혼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주장이 임박한 죽음의 실존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다른 철학적 정리(定理)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에의 각오와 그 각오에 깔려있는 피안의 삶에 대한 희망을 해명하고, 그 각오를 가능한 반론으로부터 방어하려는 이론적 시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미 언급한 죽음에 대한 경험과학의 이해와 연관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한 심미아스와 케베스를 상대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피타고라스 학파와 더불어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종교적 연대와는 무관하며, 수학적 탐구, 음악적 이론 그리고 우주론적 인식의 대표자였고, 그 시대의 자연과학, 생물학 그리고 의학에 정통했다. 이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파이돈>의 저자인 플라톤이 피타고라스 학파, 특히 자연주의적(유물론적)으로 발전해온 전통과의 결별을 시도하며, 그를 통해 하나의 비판적 의도를 관철시킨다는 점이다.5)  

   또 다른 하나의 해석은 영혼불멸에 대한 이성적 접근의 한계를 대화 참여자 모두가 자기 성찰적으로 공감한 내용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107a, 114c) 대화 참여자들, 특히 심미아스와 케베스가 제시했던 관점들이 만약 당시의 학문적 수준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한계를 표출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래서 모두  죽음에 대한 당시의 통념을 나타낸 것이라면, (아스클레피오스에데 닭을 바치고자 하는) 마지막 장면으로의 전환은 이성에게 새로운 길의 모색이라는 과제를 안겨다준다. 죽음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화(이성적인 논의)가 죽음에 연루되지 않은 관점에서 말해진 것이라면, 즉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존재의 진정한 드러남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그냥 지껄이는 말(Gerede)이라고 한다면, 죽음에 직면한 소크라테스의 실존적 의식에게 죽음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말을 걸어오게’ 되고, 이것이 용해되어 마침내 그의 마지막 표현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배를 마시기 전 욕실로 향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해진 운명이 나를 이제 어느새 부르고 있네. 비극의 주인공이 함직한 말이겠지만 말일세(..).(115a)

 

3. <파이돈>의 논증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신념을 변명하는 출발점은 철학의 본질에 대한 규정이다. ‘죽음의 연습으로서의 철학’은 단지 죽음이 육체와 영혼의 근원적인 분리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 전제가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방해를 벗어나 이데아에 대한 순수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결국 죽음 이후에서야 비로소 철학의 목표는 완전하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플라톤이 사용한 철학 개념, 이른바 참된 존재자에로의 추구가 영혼, 이데아 그리고 불멸뿐만 아니라 죽음의 사건에 대해 내적인 유사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6)

   그러나 케베스는 곧바로 죽음이 영혼의 해방이라는 전제를 문제시 삼는다. 그의 주장은 어쩌면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빠져나온 직후, 마치 숨(pnuema)이나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져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70a) 이제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죽음에서 그리고 죽음을 넘어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먼저 두 가지 논증을 펼치나 상대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이어진 세 번째 논증도 두 사람을 완전히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그들의 반론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논증을 제시하며, 이것이 <파이돈>의 마지막을 형성한다.

    첫 번째 논증계열(70d-72e)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신화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전통과 연관되며, 이것은 불멸적인 우주적 생명과 우주 순환의 원형의 상징인 디오니소스의 신화에서, 죽음을 벗어난 ἄπειρον(무제약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영원한 생명의 불, 그리고 ἀρχὴ(원질)까지를 총망라하고 있다.7)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윤회라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표상을 기억해낸다. 이 표상은 영혼이 사후에 지하세계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다른 육체에 태어나기 위해 지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연관을 소크라테스는 오래된 정리(定理), 즉 생성(출생, genesis)을 갖는 모든 것은 그것의 대립물(ta enantia)로부터 생성한다는 주장을 통해 정초한다.(70d/e) 대립물의 모든 쌍에는 두 가지 방식의 생성이 상정된다. 따라서 상응하는 대립물로서 생명과 죽음 사이에는 이중의 생성을, 즉 생명이 있는 것으로부터 죽음이,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된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첫 번째의 것은 그 자체로 분명해 보이고, 두 번째 것은 우주적 순환에 대한 직관에서 근거된다. 그러나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이끌어내는 귀결은 다음과 같은 암묵적인 전제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즉 무조건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이 되고,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음과 살아있음이 기체(Substratum, ὑποκείμενον)의 상태로서 간주되어야 하고, 따라서 기체 자체는 관련이 없어야만 한다. 바로 이 기체가 영혼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과 죽음의 대립에 선행하며, 육체적 출생과 육체적 죽음이라는 이중적 발전과정으로부터 보존되어 남는 실체이다. 이 첫 번째 논증에 상응하게 죽음과 생명은 상이하고 서로 교대하는 상태들이다. 그러나 이 논증은 아직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과연 이 논증을 통해 이 상태의 변화에서 보존되어 남는 영혼이 더 자세히 규정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자연철학적으로 근거된 사고가 자신의 고유한 죽음에 직면한 철학자를 위안할 수 있고, 논증을 통해 정당화될 그의 죽음에의 각오를 해명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또한 다른 물음이 제기된다: 정말 그것이 죽은 자의 영혼인가 또는 그것이 우리가 왜 영혼이라 불러야하는지를 아직 제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실체 일반인가? 이런 근거에서 대화 상대자 케베스는 “기억”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표어를 도입한다.(72e) 이 표어는 명백히 대화편 ꡔ메논ꡕ과 그 안에서 논의된 상기설 (Anamnesislehre)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메논>, 80d). 이제 상기설을 통해 위에서 주장된 인간 영혼의 새로운 재생이 논증되어야 한다. 상기설의 도입은 지금까지의 논의의 맥락에서 관건이 되는 것이 단순한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적인 영혼(이성혼)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이어지는 논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감각세계의 사물들은 서로 유사하거나 또는 동일하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선하고, 아름답고, 정의롭다는 것, 이것들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세계 자체에서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아마 이것들을(동일함 자체, 정의로운 것 자체, 선한 것 자체 등등) 이미 알고 있었고, 감각세계의 대상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예를 들어 수학에서 필연적이고 보편 타당한 지식을 갖고 있고, 감각적으로 지각된 관계에서 이끌어낼 수 없는 합법칙성을 인식한다. 이런 배경에서 플라톤은 ꡔ메논ꡕ에서 이런 종류의 지식을 우리가 그대로 인정하면서 이해할 수 있다면 다음의 사실을 받아들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인식적인 영혼이 태어나기 이전에 어떤 지식을 가졌었는데, 출생하면서 이것을 잃어버렸다가, 지금의 현존에서 다시 기억한다는 것이다. 상기설은 우리의 인식이 인간 영혼의 선재(Präexistenz)를 통하여 선천적 조건들을 가지며 보편타당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관계를 밝혀준다. 결론적으로 상기설에 근거하여 타당한 인식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의 영혼의 선재는 같은 방식으로 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다.8)

   그러나 대화 상대자들은 상기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이 이론이 영혼이 사후에도 지속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여전히 영혼이 사후에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77b) 비록 소크라테스가 앞선 두 논증의 연관성을 제시하면서, 즉 상기설과 자연의 순환 정리(das Theorem des Kreislaufes der Natur)에 의해 출생 이전과 똑같이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대화 상대자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자신도 만족시키지 못한다.(77b/77e) 그 까닭은 순환 정리가 이런 물음을 해명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식적인 영혼(이성혼)이 사후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주지 못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성혼이 보편적인 영혼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으로, 즉 인식적인 영혼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것은 특히 영혼의 이성적 특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데아와 영혼의 관계에 대한 (<파이돈>의) 핵심논증이 전개된다. 분해(소멸)되는 것은 단지 부분으로 구성된 것이다. 단순한 것은 분해될 수 없다.(78c) 이데아는 자기 자신에게 근거하고,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지속적인 형태이며 불변적이기 때문에 단순하며 따라서 소멸될 수 없다. 영혼은 자신의 인식을 통해 감각세계(κόσμος ὁρατός)가 아니라 비가시적인 예지적 세계((κόσμος νοητός)를 향하기 때문에 육체와는 반대로 스스로 이데아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것은 영혼이 인식에 있어서 감각을 신뢰하게 되면 가변적이고 감각세계의 동요로 내몰아지며 미혹된다는 사실이 또한 말해준다.(79c) 그 반대로 영혼은 영원하고 불변적인 이데아에 속함으로써, 즉 영혼에게 고유한 인식대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오류로부터 벗어나고 안정을 찾으며, 이 상태를 바로 지혜(phoronẽsis)라 부른다.(79d) 육체와는 반대로 영혼이 불변적이고 영원한 이데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신적인 것, 불멸적인 것, 이성을 통해 인식 가능한 것과의 유사성에 근거해서 영혼은 “완전히 또는 거의 소멸하지 않는”(80c) 것이어야만 한다.9)

   이제 이어서 피안에서의 영혼의 운명과 철학적 삶의 형식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죽음을 통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육체는 사멸되고 영혼은, 육체에서의 그의 삶이 더렵혀지지 않았다면, 자신이 유래한 비가시적이고 신적이며 영원한 이성의 왕국으로 간다. 어떤 경우이든 죽음은 육체의 무상함으로부터의 영혼의 해방이다. 철학은 이러한 해방된 분리를 위한 준비이다. 이는 철학을 통해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자신에게 돌아가며, 이데아를 조망하고 인식함에 있어서 자신의 참된 존재에 도달함으로써 성취된다. 이를 통해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것(80e/81a), 더 나아가 대화의 출발점을 형성했던 이해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의 태도도 정당화된다. 또한 순수한 영혼과 순수하지 못한 영혼에 대한 구별을 통해서 단지 순수하지 못한 영혼만이 죽음과 재생의 순환에 빠져들며, 철학자의 순수한 영혼은 재생의 수레바퀴를 떠나 이성의 영원한 세계에 돌아가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신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모든 영혼은 파괴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불멸한다. 그러나 육체로부터 그리고 감각세계로부터의 최종적인 해방은 단지 철학적인 영혼에게만 부여된다. 그것은 이 영혼이 육체의 삶 속에서 이데아의 조망을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영혼이 불멸이지만 구원은 단지 철학자에게만 가능하다.10)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해서 영혼 불멸의 문제가 모두 해명된 것처럼 보이나 대화상대자들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을 표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둘에게 질문과 반론을 제시할 것을 권한다.(85b) 이제 제시되는 대화 상대자의 반론들은 소크라테스의 지금까지의 논증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는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당연히 영혼이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며, 아름답고, 신적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특히 케베스는 더 나아가, 영혼이 한번 육체에 존재한다면 선재해야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 존재해야하는 것으로 사유되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사람에 따르면 결코 영혼이 절대적으로 무상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 아니며, 여전히 영혼이 아주 멈추어 불처럼 꺼져버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먼저 심미아스의 주장은 악기의 방식에 따라 영혼이 조화(화음)로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조화를 만들어내는 악기가 파괴되면 조화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된다는 결론이 나온다.(85e/86d) 따라서 조화(영혼)는 악기의 나무나 현(육체)보다 우월할지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악기의 성질에 따라 변한다. 이런 발상은 한편으로 하나의 비유로서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으로 정위된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상당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장, 즉 그것의 본질에 따라 육체로부터 해방된 그리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혼에 대한 사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심미아스의 표현법에서는 조화사상이 거의 자연주의화되었으며, 육체에 종속된 기능적 크기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펼쳐지며 그것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조화사상은 이미 심미아스가 수용한 상기설과 모순관계에 놓인다. 영혼이 육체에 종속적인 조화라는 생각은 육체로 들어가기 앞서서 영혼이 이미 존재한다는 생각에 모순된다.(91e/92b) 둘째, 조화사상은 이성이 육체의 욕구를 거부하고, 그렇게 거부의 능력(Nein-Sagen-Können)에 따라 지도기관의 기능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해명할 수 없다.(94b/d) 마지막으로 육체적인 기체에 종속적인 조화는 “다소”라는 등급적인 차이를 허용한다. 만약에 기능적이고 종속적인 조화의 표상을 확고히 한다면, 하나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 비해서 ‘다소간의’ 영혼이 되어야만 하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로부터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결론을 도출한다: 조화사상은 영혼에 적용될 수 있지만 그것의 실체적인 본질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단지 가능한 질적인 관계의 규정으로만 적용 가능하다.(93a 아래)

   인간 영혼의 단순한 기능적 이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에는 영혼 불멸의 근거로 작용하게 되는 인간의 도덕적인 자명성과 인간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 해석은 이성을 통해 규정된 의지의 가능한 지도능력과 인간 행위의 도덕적 평가에 관한 것이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연주의화된 피타고라스학파의 전개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사람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능적, 즉 육체적 또는 생리적 원인으로 돌아가서 해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11)

   그러나 케베스에 의해 제시된 주장은 지금까지의 논의과정의 기초에 관여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86e/88b) 이미 케베스는 영혼이 선재하며 사후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그는 영혼이 힘과 시간적인 지속에서 육체를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수용한다. 그러나 그는 과연 오래 산다는 것과 불멸한다는 것을 동일시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윤회를 거듭하며 이루어지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그는 직공과 옷의 관계에 대한 비유를 통해 제시한다. 어떤 직공이 자신이 짠 옷을 많이 입어서 그것들이 모두 소멸하고 난 후에도 살 수 있어도, 그가 죽기 전에 짠 어떤 옷보다도 그가 먼저 죽는다면 그는 결코 옷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런 일이 영혼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육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불멸에 대한 주장은 영혼이 근본적으로 불사한다(ἀθάνατος)는 것, 죽음이 없고 무상하지 않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케베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의 핵심은 영혼이 본질적으로 생명의 형상(εἶδος)에 관여하고 있고12), 따라서 생명의 원천으로서 무상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특히 그는 생성소멸을 물질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자연주의적 입장을 부정하고, 사물의 궁극 원인으로서 이데아의 존재를 가정하여 영혼불멸에 관한 주장을 펼친다. 그의 근거지음은 이데아설의 두 가지 전제에 연결된다. 먼저 어떤 이데아도 그것의 고유한 대립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생명의 형상이 죽음의 형상과 어떠한 공통점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은 대상의 본질적인 특성은 이 특성과 대립하는 특성들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 본질적으로 영혼에 속하면(그 까닭은 단지 영혼만이 생명을 가지고, 반면 육체는 단순히 살아있는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죽음의 형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단지 벗어나도록 강요될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영혼은 이중적 의미에서 불사적이다(ἀθάνατος): 죽음이 없다(todlos), 왜냐하면 영혼은 생명의 형상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상하지 않다(unvergänglich), 왜냐하면 이 형상에 비본질적으로(per accidens)가 아니라, 본질적으로(per se) 관여하기 때문이다.(105e)

   이제 우리는 <파이돈>의 논증의 마지막 지점에 서 있다. 영혼이 본질적으로 생명의 형상에 관여함을 통해 영혼은 죽음 자체의 형상을 결코 가질 수(또는 취할 수) 없으며, 따라서 불멸한다. 영혼이 파괴될 수 없는 현존을 가진다는 것은 영혼의 본질개념으로부터 이끌어진 하나의 존재론적 증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로 남는 것은 인식적인 영혼, 인식원리로서의 영혼이 아니라 생명원리로서의 영혼, 우주론적인 원리로서의 영혼이 논증의 결말과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두 영혼개념이 연관되는지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남게된다.13)        


4. <파이돈>의 논증의 문제점들


   지금까지 전개된 논증들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야기된다. 먼저 전제된 영혼개념과 연관해서 볼 때 지금까지의 논증들이 통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명원리로 이해된 영혼 불멸에 대한 증명이 동시에 인식적인 본질로서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증명을 포함하는지 여부도 여전히 의심의 대상이다. 또한 이데아 세계에 대한 영혼의 인식관계가 과연 이성혼의 불멸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의심스러워 보인다. 둘째, 지금까지의 논증에서는 (엄밀하게 사유된) 영혼의 개별적인 항존은 근거되지 않았다. 재육화(再肉化)의 이념은 인격적인 정체성의 표상과 너무 분명하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우리가 플라톤에게서 (윤회에 근거된) 영혼의 도덕적 평가가 인격성을 도덕적 개별성으로부터 사유하는 최초의 그리고 중요한 전진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모든 영혼의 육화에서도 동일한 것으로서 경험될 수 있는, 즉 영혼의 인격적 정체성을 위해 본질적인 자기관계가 결여되어 있다.14) 셋째, 플라톤에게 있어서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분리로서 윤회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덧없는 사건이다. 죽음은 영혼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관계한다. 죽음은 자신의 최상의 질과 형태를 철학자의 죽음에서 획득한다, 그것도 이 죽음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 한에서. 철학자의 죽음은 순환으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키고 참된 것, 선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의 조망에서 자신의 안식을 찾는다. 모든 다른 죽음은 참된 삶으로 해방되는 이 최상의 죽음을 위해 죽어간다.

   이런 문제점과 함께 우리는 논증계열의 마지막 부분에서 행한 발언들을 음미해볼 수 있다. 심미아스는 지금으로서는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논증을 아직 의심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논의들이 다루고 있는 것들의 중대성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약점”에 의거해서 모든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심지어 심미아스에게 동의를 표한다. 더 나아가 그는 애초에 타당한 것으로 간주된 가정들도 한층 더 명확하게 검토되어야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후에서야 비로소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고 말한다.(107a/b)

   분명히 소크라테스는 그의 마지막 논증을 엄격한 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논증은 한계에 도달했고, 불멸성에 대한 어떠한 증명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잠정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할 것은 ‘유한한 인간이성’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영혼불멸설에 대한 명백한 논박도 똑같이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인 해명에 근거한 만연된 회의가 결코 인간 삶의 깊은 차원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자연과정에 대한 증가한 과학적 통찰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계속 사유의 길을 재촉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은 종교적인 확신에 대한 어떠한 심급(Instanz)도 될 수 없는 것이다.15) 

   이런 맥락에서 앞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와 심미아스의 대화는 유한한 인간 이성이 나아갈 길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심미아스는 영혼 불멸에 대해서 확실히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서 아마도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노력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 칸트식으로 표현하면 ‘게으른 이성’이 하는 방식이라 말한다. 그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하는 데, 그것은 “사실이 어떤 지를 배우거나 알아내야만 하거나, 또는, 이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인간의 주장들(hoi anthropoi logoi) 가운데서 최선의 것이되 가장 논박하기 힘든 것을 취하여, 마치 뗏목처럼, 그 위에 실리어서 모험을 하며 삶을 항해해 나가야만 하거나”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최선의 선택이라고 심미아스는 첨언한다: “한결 더 견고한 배에 올라, 곧 신적인 이치(logos theios tis)에 의존해서 더 안전하고 덜 위태로운 항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85d) 이에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동의를 표한다.(85e)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모든 논증들은 영혼이 불멸한다는 가정의 논박불가능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논증들은 하나의 믿음을 근거하는 것이지 하나의 지식을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스클레피오스에 바칠 닭에 관한 부탁의 장면과 함께 ꡔ파이돈ꡕ의 종착점에 도달했다. 이 장면은 상징적으로 철학적 사변이 영혼의 불멸을 가능한 것으로 사유할 수 있고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모든 모순되는 심급들을 제거하는 방식에서 근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단지 종교적인 방식에서만 더 적절하게 이 희망을 표현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파이돈>의 증언이며, 칸트에게까지 그리고 칸트를 지나서까지(예를 들어 K. 포퍼) 타당성을 가지는 표현이다.16) 


5. Exkurs: 철학자로서의 소크라테스의 실존적 죽음


   이제 <파이돈>의 마지막 장면들을 “<파이돈>의 시적인 설득력이 논증의 논리적 증명력 보다 훨씬 강하다”라는 가다머의 주장에 의거해서17) 다시 한번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파이돈>은 죽음을 눈앞에 둔 소크라테스가 펼치는 최후의 철학적 논변을 담고 있다. 그 주제 또한 철학의 중심문제(Kardinalfrage)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불멸)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는, 물론 플라톤의 각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육체적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 그다지 많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가 개인적으로는 평생 동안 유지해온 신념이자, 동시에 고대 그리스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관에 대한 철학적 평결이라고 할 수 있다. 육신에 대한 사형선고는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그 평결의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그 수수께끼를 소크라테스 생애의 최후의 순간에서 풀도록 해보자.

   먼저 소크라테스가 바치는 닭 한 마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의 최후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오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려나.”(118a) 왜 소크라테스는 이 빚을 최후의 순간에 기억했을까? 독배를 들고 마시려는 순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기억해보자: “오오 에케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아주 태연히 조금도 떨지 않고 또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잔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에게 드리는 뜻으로 한 방울 떨어뜨려도 되나요? 안 되나요? 어떻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오오 소크라테스, 여기서는 마실 만큼 밖에 갈지 않습니다.” “알았소. 그러나 저 세상에 가는 여행을 잘 하도록 내가 기도드릴 수는 있을 테지. 또 드려야만 되고. 내 기도대로 이루어지리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잔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기쁜 낯으로 그 약을 마셨습니다.(117b/c)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여기서는’, ‘여행’, ‘기도’, ‘조용히 기쁜 낯’. 먼저 ‘여기’는 당연히 감옥을 뜻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중적인 감옥 속에 갇혀있다. 육체라는 감옥과 현실적인 감옥. 결국 ‘여기’는 현실세계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 이해될 수 있다. 이 현실세계는 ‘신에게 드리는 뜻으로 한 방울’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교만하고 무지몽매한 인간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움직여나가는 세계이며, 칸트가 말하듯이 ‘믿음의 자리’가 확보되지 못한 인간이성의 월권의 장이다. 소크라테스의 표현은 현실세계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으며, 인간들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둘째, ‘여행’이라는 표현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의 표출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운명에 대한 감사인가, 다가 올 죽음에 대한 불안인가? 심미아스가 말한 ‘뗏목 위의 항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공감을 기억해 보라! 이제 남은 선택은 기도밖에 없다. 그리고 기도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은 정말 간절해 보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보다 더 진솔한 인간적 표현이 있는가?18)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붙여진 죄목과는 달리 믿음이 두터웠고, 자신의 삶에 신이 함께 한다고 생각한 사람으로 전해진다.19) 그래서인지 소크라테스는 확신에 차 있다. 이를 나타내주는 것이 “조용히 기쁜 낯”이라는 표현이다.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혹시 죽음이 가장 큰 선이 아닐는지는 아무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가장 큰 해악임을 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29a)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신의 가호가 있다는 것이며, 이는 지적 통찰에 의해 인도되는 도덕적 행위가 궁극적으로 신학적 차원도 포함한다는 것을 뜻한다.20)

   그러나 지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하데스에로의 여행을 “정해진 운명”이라 부른다.(115a)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말한 사후세계에서의 영혼의 삶에 대해서도 “이것들이 내가 이야기한 그대로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는 것은 지각 있는 사람에게 전혀 적절치 못하다”(114d)고 말한다.21) 결국 그에게 있어서 다른 선택은 부질없는,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삶과 신념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운명에 순응한다.(64a/116e/117a) 또한 아테네 시민으로 향유한 일흔이라는 그의 나이가 결코 갑자기 닥쳐오는 죽음과는 다르게 이미 삶의 종착점을 바라보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타인)의 죽음은 여전히 슬픔의 대상이다.(117d/e) 또한 죽음의 선택은 소크라테스의 몫이라고 해도 죽는 일에 대해서는 그도 여전히 초보일 수밖에 없다. 그가 형리(刑吏)의 도움을 받아 아마도 덜 고통스럽게(아니면 제대로) 죽는 길을 택하려 했다는 점은(117a/b)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인다.

   철학자가 아니었더라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 분명하다. ‘생사라는 이름의 유희’를, ‘큰 모험’을 함부로 시도하는 것이 철학자에게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안겨주는가를 실감나게 해주는 대목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정당화하려는 고귀한 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니체와현대>

 

 

 

 

 

 

플라톤의 <향연>

 

아가톤의 집에서 벌어진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

 

아리스토파네스(희극시인), 아가톤(비극시인, 잔치 연 사람), 소크라테스, 파이드로스(히포콘드리-심기증, 즉 스스로 큰 병에 걸렸다고 느끼는 신경쇠약 증세, 문필가) 파우사니아스(아가톤연인), 에릭시마코스(희극시인), 알키비아데스((재기발달하고 방종으로 악명높은 아테네 권세가)

아폴로드스가 잔치에 관해서는 아리스토데모스로부터 들었고, 글라우콘에게 야기를 전하고 있다.)

 

에릭시마코스가 파이드로스가 사랑의 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찬미의 노래를 드리지 않았으니 마링되느냐, 위대한 신을 소홀히 하다니 하면서 늘 분개했다고 말을 꺼내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한 사람씩 사랑의 신을 찬미할 것을 제안했다. 

소크라테스 청에 의해 파이드로스가 맨 먼저 사랑의 신을 찬미하기로 했다.

 

파이드로스;

태토에 카오스가 생겼고 대지와 에로스가 생겼다.(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에로스를 신들 중 가장 오래된 신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신은 우리에게는 최대의 복리의 근원이다.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훌륭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에로스, 사랑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과 야심이 없으면 국가나 개인이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성취하기 어렵다. 남을 위해서 죽은 일, 이것은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결심할 수 있는 것이다.

 

파우사니아스;

에로스는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나이 많은 쪽은 우라노스의 딸로서 어머니가 없으며 우리가 천상의 아프로데테라 부르는 여신이고, 나이가 어린 쪽은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 우리가 세속의 아프로데테라 부르는 여신이다. 세속의 에로스와 천상의 에로스라 불러야만 한다. 무릇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것도 아니요, 추한 것도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행해지는가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에로스가 다 아름답고 찬미할 만한 것은 아니며 오직 올바르게, 그리고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을 고무하는 에로스만이 아름답고 찬미할 만한 것이다.

세속의 아프로디테에 속하는 에로스는 저속한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이다. 영혼보다 육체를 사랑한다. 이 에로스가 다른 여신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리고,  또 그 출생에도 여성과 남성이 다같이 관여한 여신의 소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천상의 에로스는 여성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오직 남성만이 관여한 여신이다. 나이가 많아 방종에 흐르는 법이 없고 이 에로스의 기운을 받은 사람들은 남성에게로 향한다.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법이다. 너무 빨리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추악하다. 돈이나 정치적 권력 때문에 사랑을 허락하는 것도 추악하다.

 

에릭시마코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있다. 육체의 본성 속에는 두 가지 에로스가 있다. 건강체 속에 있는 사랑이 하나 있고 병든 몸 속에 있는 사랑이 따로 하나 있다. 의술이란 충족과 배설을 둘러싸고 체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랑의 현상에 관한 인식이다. 이런 여러 가지 현상 가운데서 아름다운 사랑과 추한 사랑을 잘 구별하는 사람이 가장 완전한 의사이다. 그것들 중에 변화를 일으켜 두 가지 종류 가운데 한 가지 사랑을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과,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없을 경우 그 사랑을 넣어 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명의이다. 이런 사람은 체내에서 서로 가장 불화한 것들을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 속에 사랑과 화합을 집어 넣어 주는 방법을 아스클레피오스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기술을 창건했다. 그러니 의술은 전적으로 에로스 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체육과 농사도 음악도 그렇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언제나 항쟁하면 화음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화음이란 교향이며, 교향은 일종의 합치이다. 리듬도 빠른 것과 느린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나중에 합치하게 된다. 음악이나 의술에서나 지상과 천상의 모든 일에서 우리의 힘이 미치는 한두 가지 에로스를 다같이 잘 보살펴야 한다. 두 가지가 다 있으니까. 1년 4계절도 이 둘로 충만하여 상호간에 단아한 사랑을 가져 조화와 적절한 융합을 얻으면 좋은 계절이 찾아와 사람과 동물들, 그리고 야채외 식물에 건강을 주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에로스는 하나의 전체로 볼 때 위대한 힘, 아니 전능의 힘을 가지고 있다. 에로스야말로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온갖 행복을 마련해 주며, 우리로 하여금 평화스런 사회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아리스토파네스;

에로스는 신들 가운데서 인간을 가장 사랑하는 신으로 인간을 도와주며 인간의 온갖 고뇌를 치유해 그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의사이다. 옛날에는 인간의 성이 세 가지였다. 남성과 여성, 이 둘을 가지고 있는 제3의 성이 있었다. 남성이란 것이 맨 처음에 태양에서 생겨났고, 여성은 지구에서, 남성과 여성을 다 가지고 있던 남녀성은 달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무서운 힘과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야심 또한 대단했다. 그들은 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우스와 다른 신들은 회의를 열었다. 거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번갯불로 그들을 쳐서 인류를 전멸시키는 것도 안되고 그렇게 하면 인류가 자기들에게 바치던 예배도 희생 제물도 없어져 버릴테니까.

제우스는 그들 몸을 두 조각으로 쪼개고 아폴론에게 상처를 아물게 하라고 했다. 배곱과 배 주변에 있는 주름살 만은 몇 개 남겨 두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상기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본래의 몸이 갈라졌을 때, 그 반쪽은 각각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고 했다. 본래의 몸뚱이의 부분을 다시 한데 모아, 둘이 하나가 되게 하여 인간의 본성적 구조를 회복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우리들 각자는 한 인간의 부신(자손들이 서로 알아 볼 수 있도록 뼛조각이나 동전 등을 반으로 쪼개서 나누어 가졌던 풍습)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의 다른쪽 부신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성이라 하는 사람을 쪼개서 생긴 남자는 모두가 다 여자를 좋아한다. 간부들은 대개가 이 성에서 나오고, 남자한테 미친 모든 여자와 간부들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온전한 것에 대한 욕망과 그것에 대한 욕구를 에로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온전한 하나였지만, 지금은 악행 때문에 신이 우리를 찢은 것이다. 이런 여거 가지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신을 경외해야 한다고 우리가 권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온 인류가 행복하게 되는 길은,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사람마다 그 자신의 소년을 얻어 우리가 본래 지녔던 본성으로 되들아가는 것이다.

 

아가톤;

에로스는 본성적으로 노년을 싫어하며, 거기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청년과 사귀며 벗한다. 그가 깃들여 있는 곳은 바로 신들과 인간들의 마음과 영혼이다. 굳은 마음을 가진 영혼에서는 곧 떠나며, 부드러운 영혼 속에만 자리잡는다. 우아한 것은 에로스의 특징이다. 육체 안이나 영혼안 그 어디라도 꽃이 없는 곳과 꽃이 진 곳에는 에로스가 머물지 않으며, 꽃이 있고 향기로운 곳이라야 좌정하며 머무는 것이다. 에로스는 부정한 일을 하지도 않고 부정한 일을 당하지도 않는다. 공정하고 절제심이 많다. 어떤 쾌락도 에로스보다 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용기에 있어서는 아레스도 에로스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이 신은 현명한 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도 시인이 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에로스가 훌륭한 시인, 곧 모든 예술적 창작에 우수한 제작자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에로스의 지혜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태어난다. 신들의 세계도 에로스가 들어가서 질서가 잡히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

에로스도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에도 향하지 않은 사랑인가?

에로스가 그 사랑의 대상을 욕구하는가 아닌가?

에로스는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고,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인가?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란 말이지?

에로스에게는 아름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에로스에게 아름다운 것이 없고,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니 에로스에게는 또한 좋은 것들도 없다는 것이다.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 한테서 들은 에로스에 관한 얘기를 하겠다.(소크라테스와 디오티마의 대화)

옳은 의견은 참 지식과 무지의 중간물이다. 에로스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없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없는 이것들을 욕구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선한 것들을 전혀 가지지 못한 그가 신일 수 있는가?

에로스는 때가 되면 반드시 죽는 인간적인 것과 영원히 죽지 않는 신적인 것의 중간자이다. 하나의 큰 영이다. 영적인 것은 모두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중간에 있는 것이니까.

인간이 신에게 올리는 말을, 또 신이 인간에게 주는 말을 통역하며 전달하는 것이다. 온갖 점성술, 희생, 밀의, 주술, 사제의 모든 기술, 예언과 마술...이러한 영은 그 수가 많고 종류도 여러가지인데 그 중의 하나가 에로스이다.

아프로디테가 출생했을 때 신들이 잔치를 벌였는데, 그 자리에 분별의 신 메티스의 아들과 풍요의 신 포로스도 있었다. 식사가 끝날무렵 페니아가 구걸하러 와서, 문 앞에 있었는데 포로스는 신들의 술을 많이 마셔서 제우스신의 정원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페니아는 너무 궁핍했으므로 포로스에게서 자식을 하나 얻을 속셈으로 곁에 누워 에로스를 잉태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프로데테의 시중꾼이요, 종이 되었다. 에로스는 포로스와 페니아의 아들인 까닭에 운수도 이들에게서 얻어 항상 가난하였다. 에로스는 빈궁하지도 부유하지도 않다.

그는 지혜와 무지의 중간에 있다. 신들은 이미 지혜로운 자이니까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어하는 신은 없다. 또 무식한 사람은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철학자란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에로스도 그렇다. 지혜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고, 또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니가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출생 때문이다. 그가 지혜롭고 부유한 아버지와 가난하고 무지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국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이다. 좋은 것을 사랑하는 자는 좋은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항상 같은 것을 사랑하고 있다면, 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사람은 사랑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들 말할까?

그 이유는 그건 우리가 여러 가지 사랑 가운데 한 가지만을 뽑아내어 이것에다 사랑이라는 전체의 이름을 붙여 놓고, 다른 종류의 사랑에는 다른 엉뚱한 이름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반쪽을 찾는 것도 아니고 전체를 찾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반쪽이니 전체니 하는 것이 자기에게 어떤 좋은 것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사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손이나 발도 스스로 잘라 버릴 것이다. 그것이 해롭다고 생각된다면 말이다.

종합하면 사랑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육체적로나 마음으로나 잉태하고 있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우리의 본성은 자식 낳기를 원한다. 잉태하여 자식을 낳는 것은 신적인 일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것 속에 있는 불멸의 어떤 것이다. 그것은 부조화한 것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추한 것은 신적인 것과는 어떤 것이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가진 자는 해산의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 잉태하고 자식을 낳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잉태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잉태하여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죽지 않는 신적인 존재에게는 영구한 불멸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불멸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무엇이 사랑과 욕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동물을 막론하고, 그들이 잉태하고 싶어할 때는 굉장한 흥분 상태에 빠진다. 이점에서는 새들이나 다른 짐승들이나 모두 같다. 그들은 병적으로 애욕에 사로잡혀 처음에는 교미하려 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새끼들을 위햐여 먹을 것을 얻을까 염려한다. 그리고 새끼들을 위해서는 가장 약한 자도 가장 강한 자를 상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 한다.

애욕에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인간의 경우와 같이 동물의 경우에도 생명이 유한한 것의 본성은 항상 그 힘이 미치는 데까지 죽지 않고 영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잉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잉태란 낡고 늙은 것 대신에 새롭고 젊은 것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생명체 하나하나가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부단히 새로워지고 있다.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신적인 것처럼 언제나 그냥 그대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해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늙어서 사라져 버리는 자가 과거의 자기와 같은과거의 자기와 같은 어떤 새로운 것을 뒤에 남기고 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이 불멸의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불멸이야말고 이 모든 열심과 사랑이 추구하는 것이다.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예지는 나라와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관계하는 것으로, 우리가 절제 또는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속에 자기 자식을 잉태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를 교육해 보려 한다.여러 나라와 여러 시대에, 또 그리스 사람으로서나 이방인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고 온갖 덕을 쌓은 사람은 참으로 많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의 이름으로 많은 전당이 세워졌다. 육신의 자식들로 인하여 이렇게 존경을 받은 사람은 아직 없다. 누구든지 올바른 소년애를 통하여 이러한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다른 아름다움으로 올라가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는 마침내 그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디오티마가 한 말이다.

에로스만큼 인간의 본성을 더 잘 도와주는 존재는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알키비아데스;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겠다.

소크라테스는 실레노스(디오니소스 친구로 늘 취해 있고 쾌활하며 예언 능력이 있으며 넓적한 코에 나귀를 타고 다녔으며 외모는 볼품 없어도 내면에 지혜를 지닌 신)와 사티로스이 하나인 마르시아스(디오니소스 친구로 뾰족한 귀, 산양의 꼬리, 넓적한 코, 갓나온 뿔을 가진 염소처럼 생긴 반인반수로 온갖 관능에 탐닉했다. 실레노스나 올림포스와 마찬가지로 피리를 처음으로 만든 신으로 여겨진다. 아폴론에게 피리 불기로 도전했다가 패해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했다)를 닮았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이나 부나, 또 그 밖에 세상 사람들이 매우 대단하게 여기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나는 심한 독사에게 물렸다. 철학 논의가 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유혹에 육신의 눈이 둔해지면 마음의 눈은 시력이 예리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함께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버지나 형과 잔 때와 조금도 다름없었다. 노예나 다름없이 남에게 마음을 바친 일은 없었다. 소크라테스 만큼 잘 참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술에 취한 것을 볼 수가 없다. 한번은 이른 아침에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그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태양을 향해서 기도를 드린 다음 어디론가 가버렸다.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그는 오히려 내가 표창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전투에서 패전할 때도 태연했다. 그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사람과 닮은 데가 없다는 것, 옛날에는 물론 현재에도 그와 비슷한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거야말로 가장 놀라운 일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고, 다만 실레노스나 사티로스들하고나 비교할 수 있다. 그 인간성이나 이야기하는 것이 말이다.

 

갑자기 많은 주정뱅이들이 몰려왔다. 질서도 무너졌으므로 자연히 술을 많이 마시게 됐다. 에릭시마코스와 파이이드로스와 몇 사람을 밖으로 나가 버렸고 그 자신은 깊이 잠들었는데 달이 울어 일어났더니,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와 소크라테스만이 아직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큰 사발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면서 소크라테스가 그들과 변론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파네스가 잠들고 다음날 날이 완전히 밝았을 때 아가톤도 잠들었는데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편히 눕히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리스토데모스는 그의 뒤를 따랐다. 소크라테스는 리케이온에 가서 목욕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그 날 하루를 보내고는 저녁에 집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출처 :강원미래농원>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대화자들;

소크라테스, 그의 친구

대화속 나오는 인물;

히포크라테스(아테네 청년), 프로타고라스(유명한 소피스트), 알키비아데스(나중에 그리스 정치, 군사에 크게 공헌한 사람, 청년), 칼리아스(아테네 부호, 소피스트들의 후원자), 크리티아스(소피스트), 히피아스(소피스트)

 

소크라테스와 히포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온 이유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왔다.

어떠한 성과를 거둘지 말해다오.

자네가 내게서 학문을 배운다면 하루하루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어떤 면에서 뛰어나게 되며 어떤 것이 발전한다는 이야기인가?

국가나 사회의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이 직접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 까닭을 밝히겠다. 아테네 사람들은 의회를 열 때, 국가에서 토목이나 건축 사업을 해야 할 경우에는 건축가들을 불러서 건물에 대한 논의를 한다. 배를 만들어야 할 경우에는 조선 기술자를 부른다. 그 외에도 배우고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을 부르게 된다. 만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의견을 제출한다면, 그 사람의 용모가 아무리 훌륭하고 재산이 많으며 문벌이 좋을지라도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일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할 경위 누구나 저마다 의견을 제출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도 못한 자가 주제넘게 의견을 제출한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무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백성들 가운데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덕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것이다. 덕을 가르치기란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당신의 말에 긍정하고 싶어진다. 당신께서 틀림없이 덕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가르쳐 달라.

소크라테스 나는 주저하지 않겠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는 옛말을 인용하며 설명하기로 했다.

 

아득한 옛날에는 신들만이 있었다. 죽어야 할 종족이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러다 종족이 태어날 시기가 되어 흙과 불과 물로 생명을 가진 종족을 만들었다. 신들은 프로메테우스(미래를 염려하는 신)과 에피메테우스(후환을 두려워하는 신)에게 능력을 주도록 했다. 에피메테우스가 자신이 능력을 나눠주고 프로메테우스가 검사를 하기로 했다. 어떤 종족에게는 속도를 주지 않는 대신 힘을 주고, 힘이 약한 것에게는 속도를 주고, 어떤 종족에게는 연장을 주지 않는 대신 몸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능력을 주면서 가장 유의한 것은 어떤 종족도 멸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에피메테우스는 그리 슬기롭지 못해 동물들을 위해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해 버리고 말아 사람이란 종족은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능력 분배 상황을 살펴보았더니 사람만이 옷도 없고 신발도 없으며 무기도 받지 못한 채 남아 있어 프로메테우스는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려고 아무리 궁리를 하였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에게서 지혜와 불을 훔쳐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삶을 위한 지혜는 전해지게 되었지만, 나라나 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혜는 주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제우스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있는 아쿠론포리스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도움으로 인류에게 생존할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인간은 신의 성품을 다소나마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게되고, 수많은 동물들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신을 예배하고, 신을 위해 제단을 쌓고 성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여러 가지를 만들었지만 사회를 이루는 정치적인 기질을 갖질 못해, 충돌하고 싸우기를 되풀이 하였다. 

이것을 본 제우스가 헤르메테우스를 인간에게 보내 정의와 분별의 지혜를 나누어 주게 되었다. 이 ?몌로 인해 인간은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랑으로 뭉치게 되었다. 그 때 헤르메테우스는 인류에게 정의와 분별을 어떻게 나눠주는게 좋은지 물었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준다면 나라는 평화롭게 될 것이다. 정의와 분별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의 화근이 되는 이런 사람을 뿌리뽑기 위해 법률을 정해야 한다.

인간은 원레 누구나 그 덕을 분배받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사실은 어떻게 되었든 자기를 올바른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덕을 갖추었다면, 그것은 의식적인 관심에서 얻어진 것이다.

나라나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덕성을 어긴다는 것은, 즉 부정이나 경건하지 못한 것은 일종의 악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경우에 모든 사람들이 옳지 못한 사람에게 노여워하거나 책망하는 것은 분명히 그와 같은 덕성이 노력과 배움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징계를 하는 사람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덕이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준 가장 근본이 되는 덕성에 대해서는 왜 가르치지 못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겠다. 정의와 절제와 경건은 사람이 지녀야 할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필수 조건이다. 사람이 무엇을 배우거나 행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이 덕을 바탕으로 행해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는 자식을 가르친다. 조금 자라면 스승에게 맡긴다.피리를 잘 부는 사람의 자식은 피리를 잘 불지 못하고, 반대로 피리를 잘 불지 못하는 사람의 자식이 피리의 명수가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남에게 덕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덕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특별히 돋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데 있어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내가 요구하는 보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소크라테스가 질문했다.

대체 덕이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덕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부분이 있고, 정의라든가 절제라든가 경건이라는 것이 제각기 여러 가지 이름이 붙게 된 것인지를 얘기해달라.

예컨대 얼굴의 각 부분에 있는 눈과 귀는 저마다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또 그 기능과 성격은 모두 다르다. 이와 마찬가지로 덕의 부분에 있어서도 그 기능이나 성격이 저마다 다른 부분과 통할 수 없다. 지금 예로 볼 것 같으면(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덕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지혜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오직 지혜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의나 용기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이나, 절제나 경건과 같은 성격을 지닌 것도 제각기 그 자체밖에 없다는 말씀인가?(소크라테스)

경건이란, 경건한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건하지 못한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 만약 경건의 덕이 경건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경건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럴 경우, 덕은 부분과 부분의 관계에 있어서 그 하나의 부분은 제각기 다른 부분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소크라테스)

하나에 대해 반대가 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주장인가? 아니면 지혜와 절제는 모두 덕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서로 다르며, 마치 여러 가지 얼굴이 그 자체로 보나 그 기능으로 보나 전혀 다르다는 또 하나의 주장인가? 우리는 어느 쪽을 취해야 하는가?

 

시모니데스가 크레온의 아들 스코파스에게 바친 시구가 있다.

 

뛰어난  인간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을

행실과 마음이 하나같이 흠없는-

 

뛰어난 인간으로 있기란 어렵다는

어진 피타코스의 말은 잘못이니.

 

(오직 하느님만이 그것을 갖고 계시리.)

 

프로타고라스는 이 시구 앞뒤과 모순이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프로타고라스의 말대로 소피스트들과 같은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백성들은, 다른 그리스 인들보다 뛰어난 것은 지혜의 힘에서 온 것임을 숨기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뛰어난 것은 싸움과 용기로 얻어진 것이라고 남에게 인식시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뛰어난 원인을 자세히 알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갖추려고 애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모니데스는 지자로서의 명성을 얻으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피타코스의 명언을 능가할 수 있다면 바로 명성을 얻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피타코스의 격언을 과녁으로 삼아 그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그같은 시와 노래를 지은 것이다.

뛰어난 인간으로 있기란 어렵다란 피타코스의 말에 피타코스여,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사람으로 있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손도 발도 마음도 온전히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라고 시모니데스는 말했다.

즉, 뛰어난 인물이 된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힘든 것이다. 어느 기간 동안은 분수를 지킬 수 있지만 언제난 그 상태를 지속하여 뛰어난 사람으로 있기란 매우 어려우며, 그것은 오직 신의 은총을 입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출처 :강원미래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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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멜레토스가 제기한 죄상은 소크라테스라는 자는 땅 밑과 하늘의 일을 탐구하여 약한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따위의 부질없는 짓을 하고, 또한 남에게도 그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이레폰은 델포이 신탁에서 다음과 같은 신탁을 구한 적이 있다. 즉, 그가 나보다 더 지혜 있는 사람이 없는가를 물었더니, 거기에 있던 무녀가 더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신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며, 무슨 수수께끼를 걸고 계시는 것일까? 나는 큰 일에서나 작은 일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못된다고 스스로 깨닫고 있다. 신이 그런 나를 가장 지혜롭다고 한 말씀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다. 거짓말이란 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나는 그 자신이 지혜가 있는 듯 믿고는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히려고 애썼다. 그 사람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반면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바로 그 조그만 점에서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의 명령에 따라 살펴보니 가장 유명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오히려 사려가 부족하고, 그와 반대로 가장 미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그 점에서는 오히려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신탁은 결국 뒤집힐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나는 갈수록 태산 같은 나의 고생스러웠던 편력에 관해 말해야겠다. 정치가 다음으로 비극작가, 디티람보스(디오니소스 제례 때 피리 반주로 춤을 추면서 부르는 열광적인 합창)작가, 많은 작가들을 찾았다. 그들은 그럴듯한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말하는 것의 참뜻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재주가 있는 장인들을 찾았다. 그들은 자신이 기술에 능하기 때문에 그밖의 다른 중대한 일에 관해서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런 편견이 그들의 지혜를 가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무엇을 가르쳐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답이 막히고, 자기들이 궁지에 빠진 것을 감추기 위하여 아무것도 모르면서 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낡아빠진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멜레토스가 공격했고 아니토스와 리콘이 공격했다.

 

멜레토스 자네는 말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말을 잘 길들이는데, 누군가 한 사람만 나쁘게 만든다는 말인가? 또는 그와 반대로, 말을 잘 길들일 수 있는 것은 한 사람뿐이거나 아니면 소수이고, 대다수 사람들은 말과 함께 있거나 말을 부리면 도리어 나쁘게 만든다는 것인가?...젊은이들에 관해서 단 한 사람만이 그들을 타락시키고 그밖의 사람들은 모두 다 그들을 이롭게 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겠나.

 

내가 어떤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 세상에 말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말에 관계되는 일은 믿는 사람이 있을까? 또 피리 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피리 부는 사람에 관계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있을까? 신령에 관계되는 일은 믿으면서 신령이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만약 신령이 신들과 님프나 또는 전설상의 다른 여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라고 해 보세. 그렇다면 신들의 자손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신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신께서 명령하시기 때문인데...내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란 다름 아닌 여러분 중에 노인이건 젊은이건 누구에게나  내 힘이 미치는 데까지 훌륭한 정신을 가지도록 열심히 마음을 써야 하고, 신체나 재물에 마음을 써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아무리 재물을 쌓아올려도 거기서 훌륭한 정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물 또는 사람에게 좋은 그밖의 모든 것들은 공사간에 훌륭한 정신에서 생긴다고 여러분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신이 이 나라에 보낸 것인데, 이 나라는 마치 덩치가 크고 혈통이 좋은 말과 같이 크고 둔하기 때문에 깨어 있으려면 무엇인가 따끔한 등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디든지 따라가서 여러분과 마주앉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서 온종일 그침없이 타이르고 나무라도록 하려고 신께서 나를 이 나라에 그 등에처럼 붙여놓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바로 신께서 이 나라에 보낸 사람이라는 것은 다음의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여러 해 동안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둔 채 아무에게나 사사로이 다가가서 마치 아버지나 형처럼 정신을 훌륭히 하는 데에 마음을 쓰도록 타일렀다. 이렇게 언제나 여러분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내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의 가난이다.

 

내가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이 두려워 정의를 어기면서까지 굽히지는 않은 것이지만...해전이 끝난 후 10명의 장군들이 파도에 휩쓸린 사람을 구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여러분은 동시에 재판할 것을 의결했었다. 그러나 의원 중에 오직 나 혼자만이 국법을 어기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내가 만약 정당히 받아야할 것에 맞는 적합한 대우를 받는다면, 나는 영빈관에서 접대를 받아야 마땅하다.

...덕이나 그 밖의 것들에 관해서 날마다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에게는 최대의 선이며...죽음을 면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비굴함을 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나에게 유죄 투표를 한 여러분에게 예언해 두고 싶다. 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여러분, 나를 죽인 바로 다음에 여러분은 내게 내린 사형보다, 제우스 신께 맹세코, 훨씬 더 괴로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죽음이 과연 이런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이득이라고 말한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내 자식들이 장성해서 덕성보다도 재산이나 그밖의 것에 더 마음을 쓰는 듯하거든, 내가 여러분을 괴롭힌 것과 똑같이 그 애들을 괴롭혀서 보복을 해주기 바란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어느 편이 더욱 좋은 일을 만날지 그건 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출처: 강원미래농원> 

 

 

 

 

 플라톤의 미학

-예술론을 중심으로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활동 중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무용, 시, 소설, 연극, 영화, 사진, 애니메이션, 비디오 아트... 이런 각기 다른 인간의 활동들을 우리는 예술이라는 하나의 개념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 이해하고 있지요. 그런데 고대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예술 개념, 말, 체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예술이라고 부르는 활동들은 고대에도 존재하고 있었죠. 물론 영화, 사진, 애니메이션, 비디오 아트, 컴퓨터 아트 같은 것은 없었지만요.

 

통상 예술이라고 번역되는 "art"라는 영어단어는 라틴어 "ars"에서 나왔고, "ars"는 희랍어 "techne"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techne"라는 말은 영어의 "techniqu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대 희랍인들이 사용했던 "techne"라는 말은 "기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테크네"가 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는지 알아봅시다.

우선 한마디로 말하자면 "테크네"는 "합리적인 규칙에 따른 인간의 제작활동 일체"를 의미합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1) 테크네는 인간이 하는 활동입니다. 신 혹은 자연이 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2) 인간의 활동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테크네라고 불리는 활동은 무언가를 생산(produce) 혹은 제작(make)하는 활동입니다. (3) 테크네는 기술(skill) 혹은 솜씨에 의존하는 활동입니다. 특정한 테크네를 하려면 그것을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즉, 기술을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 테크네입니다. 또한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에게 가르칠 수 있겠죠. 이렇듯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학습과 교육이 가능한 것이 테크네입니다. (4) 테크네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하기 위한 일반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의 체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체계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고서는 테크네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해되었던 테크네라는 활동에는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활동도 포함되지만, 우리가 기술이라고 부르는 활동, 그리고 학문(science)라고 부르는 활동도 포함되었습니다. 예컨대 목수의 기술, 의사의 기술, 장사꾼의 기술, 항해술, 웅변술 등이 모두 테크네라고 불리웠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술에 포함하는 모든 활동을 테크네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테크네에 속하는 예술은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은 시각예술로, 시, 음악, 무용, 연극 등은 테크네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테크네의 이러한 의미가 "art"라는 말에 그대로 이어지며, art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 방식은 르네상스 시기까지 계속됩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은 예술 개념은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성립된 것입니다.

 

플라톤도 이와 같은 테크네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테크네를 우선 두종류로 분류했는데, 획득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획득적인 테크네는 자연에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장사꾼이 돈벌이를 하는 기술은 여기에 속합니다. 장사꾼의 활동을 통해 이익이라는 것이 창출되지만 이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아닙니다. 생산적인 테크네는 자연에는 없는 것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구를 만드는 목수의 기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기술은 모두 여기에 속하겠지요. 플라톤은 생산적 테크네를 다시 실제적 대상의 생산과 상(image)의 생산으로 나눕니다. 건축가가 집을 짓는다면, 그것은 실제적 대상을 생산하는 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화가가 집의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실제 대상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인의 관념에서는 회화와 조각은 비슷한 부류의 활동으로 이해되었지만, 건축은 전혀 다른 종류의 활동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대체로 건축가들은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았습니다. 건축은 실생활에 필수적인 유용한 기술이니까요. 이와 달리 고대 사회에서 화가나 조각가들은 보다 천한 계층의 사람들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테크네를 플라톤은 모방적 테크네라고 불렀습니다. 이미지 혹은 모방 (Mimesis)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것이 원형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칼을 그린 그림이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원래의 칼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칼의 속성 혹은 본질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칼이 무엇입니까? 날카롭고 예리해서 무언가를 썰거나, 전쟁시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도구죠. 하지만 그림 속에 그려진 칼은 칼의 외양만 모방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모방적 테크네를 다시 진정한 유사성(eikon)의 모방과 외형적 유사성(phantasma)의 모방으로 구분합니다. 진정한 유사성의 모방이란 모델의 참된 크기, 비례, 색채 등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진적 사실주의(photographic realism)에 의해서나 가능하겠죠. 반면에 외형적 유사성의 모방은 사물이 보이는 방식만을 본뜨는 일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회화나 조각을 "모방적이다" 라고 비난조로 말했을 때, 이는 화가나 조각가가 바로 phantasma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였습니다. 플라톤의 견지에서 화가나 조각가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화가나 조각가들은 사물이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방 혹은 재현(representation) 행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의도적인 왜곡을 해야만 오히려 원래의 모델과 더 유사해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공화국>에서 플라톤은 화가가 목수의 침대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느 한 시점에서 "보이는 대로" 모방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견지에서 화가의 그림은 목수의 설계도만도 못한 것입니다. 설계도는 비록 침대의 외형적 유사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침대의 현실적 구조를 기록하고 전달해 줍니다. 그러나 침대의 그림이 보여주는 침대의 닮음꼴은 환영적이어서, 실재는 물론 현실성조차도 잘못 모방합니다. 결국 플라톤에게 있어서 회화나 조각은 기만적인 눈속임 혹은 지각적 환영(illusion) 제작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리를 전달해 주지 못하는 회화나 조각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 됩니다.

플라톤의 이러한 비난의 이면에는 그의 형이상학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존재론적 이원론을 상정하고 있는바, 그는 세계의 구조를 이상계라고 할 수 있는 본체계와 현상계, 즉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현실세계로 이분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현상계를 초월해 있는 이상계는 원형의 세계이고,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metaphysical) 세계입니다. 이곳은 미 그 자체 혹은 미의 이데아(Idea)가 존재하는 세계이며,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의 원형들(prototypes)이 거주하는 세계입니다. 이데아의 본성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순수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반면 현상계는 이데아의 세계의 그림자로, 감각적이고 일회적이고 가변적이며 순수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physical) 세계인 현상계는 한마디로 허망한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계의 사물들은 이상계의 이데아를 모방함으로써 존재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현상계에는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남자, 여자, 어른, 아이... 같은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인간들은 동일한 이데아 - '인간'의 이데아, 즉 인간의 보편적 형상(eidos) - 를 모방한 결과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서로 다른 모든 인간들이 '인간'이라고 불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상계의 사람들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죽고 맙니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에도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늘상 변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데아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동일하게 유지되는 추상적인 속성입니다. "인간은 이성적이다, 인간은 두 눈과 하나의 코를 가졌다.." 등과 같은 인간의 속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순수합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들의 세계가 보다 진정한(real) 세계라고 보았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현상계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말했듯이 현실의 인간은 인간의 이데아를 모방하여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인물을 그린 그림을 생각해 봅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체계 내에서 바라볼 때, 그림 속의 인물은 이데아의 모방인 현상계의 사물을 다시 한번 모방한 결과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방의 모방이요,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며, 형상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화가가 아무리 날카로운 칼을 모델로 그림을 그릴지라도, 칼의 속성을 결여하고 있는 그림 속의 칼은 무 하나도 벨 수가 없습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회화는 현실계보다 한단계 아래에 있고, 실재(reality), 즉 이데아의 세계보다는 두단계나 떨어져 있어, 존재론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별로 없는 존재가 되고 있지요.

앞서 언급하기를, 테크네에는 시각예술, 즉 회화, 조각, 건축은 속해 있었지만, 시, 음악, 무용, 연극 등은 속해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예술에 속하지 않는 시, 음악, 무용, 연극에 대해서는 고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발생 초기에 시, 음악, 무용, 연극은 상호 미분화된 활동으로서, 고대인들이 "코레이아" (choreia)라고 부른 일종의 제식(ritual) 행사의 일환으로 나타났습니다.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원시 민족의 집단적 제사 행위를 떠올리면 됩니다. 주술사를 중심으로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원시적 행위는 제식과 축제(fest)가 분리되지 않은 집단 행사입니다.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이처럼 제식과 축제가 결합된 "코레이아"와 같은 행위는 인간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습니다.

코레이아와 같은 종교적-예술적 활동에서 사제가 신의 메시지를 접수하기 위해 신과 교감할 수 있는 신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고대 희랍인들은 "엔토우지아스모스"(enthousiasmos)라고 했습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말은 영어의 "enthusiasm"의 어원입니다. 다시말해 신적인 상태란 다름아닌 열광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제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제로부터 신의 메시지를 전달받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사제처럼 신에 열광된 상태에 빠져야 합니다. 코레이아는 사람들을 그러한 상태로 인도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이러한 발생학적 배경에서 시인의 활동을 "예언력" 혹은 "영감"(inspiration) 같은 종교적 상태와 관련시켜 파악했습니다.

 

플라톤 역시 당시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시인 외부의 어떤 신적인 존재, 즉 뮤즈(Muses) 여신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로 보았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일종의 광기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도 "신들렸다" 혹은 "신명난다"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상태를 일컫는 것인데, 고대 희랍인들은 시인의 활동의 원동력을 그러한 상태에서 찾았습니다. 즉, 시인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적인 힘 - 그것이 예언력이건, 영감이건, 직관이건 간에 - 에 의존한다는 얘기지요. 또한 고대의 제식이 그러했듯이, 시인이 낭송하는 시를 듣는 - 혹은 연극을 보는 - 관객들 또한 신에 사로잡힘 당하는 열광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렇다 할 때, 시(poetry)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지식에 대해서 두 가지의 다소 상반된 시각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1) 신적인 능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시는 인간적인 활동을 통해 경험적으로 축적되는 지식 - 예컨대, 테크네 - 보다 더 높은 단계의 정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를 우리는 합리적인 혹은 이성적인 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지닌 정신성은 인간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얘기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보다 우월하니까... (2) 그런데 시가 지닌 비이성적인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플라톤입니다. 시인은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시를 읊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시를 청종하는 관객들 역시 시인과 비슷하게 정신이 나간(out of mind)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가 지닌, 사람을 사로잡고(possess) 홀리게 하는(enchant) 힘은 마땅히 이성적이어야 할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격정을 불러 일으켜서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시인은 무익할뿐더러 해악한 존재라고 판단, "시인추방론"을 역설합니다.

정리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고대인들은 화가의 활동과 시인의 활동을 동류의 것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가의 활동은 테크네, 즉 art라고 생각한 반면, 시인의 활동은 테크네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가 테크네의 중요한 속성들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시는 물질적 의미에서 제작(making)도 아니요, 규칙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화가 모방의 소산이라면, 시는 창조력의 소산이며, 회화가 기술 혹은 솜씨에 의존한다면, 시는 영감에 의존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대인들은 이 두가지 종류의 활동을 같은 범주에 넣어 생각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플라톤에 의해 회화와 시는 모두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회화를 그림자의 그림자, 모방의 모방이라고 평하면서 존재론적 서열에서 최하위에 위치시킴으로써 그의 형이상학의 입장에서 비난하였습니다. 한편 시인이 전달하는 지식은 이성적인 소산이 아니므로, 플라톤은 그것을 참된 지식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신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닌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순에 차 있고, 비합리적이라고 하면서 플라톤은 인식론적 입장에서 시를 비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견해는 오늘날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예술에 대한 평가가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플라톤이 예술의 본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찌보면, 플라톤은 시가 가진 "매혹하는"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금지를 주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회화를 "기만적 눈속임"이라고 했을 때에 플라톤은 이미지가 가진 환영적 속성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즉, 회화가 세계의 모방이라면, 하나의 그림은 어디까지나 원래 모델과 외양이 닮은 유사물, 즉 이미지입니다. 이미지의 본성은 그것이 본질을 결여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술모방론은 그런 의미에서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와 유사한 관계를 예술작품과 세계 간에 설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 예컨대 "개"라는 단어 - 문자 - 는 개라는 대상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세계내의 대상으로서 개를 지시하지만, 개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의 실체는 결여하고 있습니다. 모방론의 입장에서 바라본 회화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죠. 일찍이 플라톤은 그러한 회화, 즉 이미지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겁니다.

 


플라톤의 미학2 - 미의 대이론

 

지난 시간에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세계는 영원하고 순수한 원형들의 세계로서 이상계와 그러한 이상계의 그림자인 가변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현실계로 이분되어 있습니다. 미에 대한 플라톤의 사고 역시 이원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 현실계에 존재하는 수 많은 아름다운 사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미, 즉 아름다움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미의 이데아로서, 절대적인 미요, 완전한 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감각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마음으로만' 즉 개념적으로만 파악됩니다. 감각의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의 아름다움은 한 때 존재했다가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계의 조건 하에서는 완전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사물들에 공통된, 그것이 없이는 아름다울 수가 없는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현실계에 수많은 사물들이 아름다운 것은 이것들의 원인이 되는 아름다움의 원형이 이상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름다운 사물들은 - 비록 그것이 감각적인 세계에 속해 있어 불완전하긴 하지만 - 참된 미의 원형을 모방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미의 이데아를 어렴풋하게나마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플라톤은 우리가 현상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미의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기 전에는 이상계에 속해 있었고, 그러므로 미의 이데아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테(망각)의 강을 건너 현실계에 태어나면 이데아의 세계에서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우리가 본체계를 상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신체가운데 있으면서 미의 이데아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본래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플라톤은 '에로스'(eros)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사랑으로, 광기에 가까운 강렬한 파토스적 충동입니다. 이 충동으로 인해 우리는 처음에는 보다 쉬운 대상, 즉 남녀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점차 분별력을 갖춤에 따라 정신적인 미를 사랑하게 되고, 제도와 법률의 미를 거쳐 학문의 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본질적인 미, 즉 미의 이데아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론을 "상기설"이라고 하며, 플라톤이 말한 바의 신적인 사랑, 즉 "에로스"를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합니다.

이상에서와 같이 플라톤은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는 한편, 아름다운 사물들이 지닌 속성에 대해 논하기도 합니다. 그는 "적당한 척도(measure)와 비례(proportion)를 유지하는 대상은 항상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하고, "적당한 척도가 결여되면 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해 논하면서 척도와 비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미를 상당히 수학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한 개념의 미는 보다 멀리 피타고라스에게까지 소급될 수 있습니다. 통상 고대의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음악에 대한 이론을 정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질서와 비례는 아름다운 것이고 적합한 것"이며, "수 때문에 모든 사물은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의 용어 중에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해 사용하는 "아름답다" (beautiful)란 말이 없었습니다. 고대 희랍어 중에서 이에 가까운 용어로 볼 수 있는 "칼론" (kalon)이란 술어는 단지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우리의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많은 대상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미는 "유용한 즐거움"이었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미 개념에 보다 가깝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미 개념은 시각이나 청각에 속하는 형상, 색 또는 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습관과 행위, 법률과 도덕, 과학과 진리에까지 적용되는 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진, 선, 미의 가치들이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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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클레이토스, <창을 멘 사람>
BC 450년 경]

다시 피타고라스주의자에게로 돌아가서 논의를 계속하자면, 음악에서 오늘날의 "아름다움"라는 용어를 대신하는 용어는 "하모니아" (harmonia)였습니다.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하모니아는 "수와 척도와 비례에 입각하고 있는 수학적 배열"입니다. 그는 음들의 조화에 주목하고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현악기의 줄은 그 길이가 간단한 숫자들과 관계되어 있을 때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는 팽팽한 현의 길이의 비율이 1:2일 때는 8도 음정을, 2:3일 때는 5도 음정을, 3:4일 때는 4도 음정이 됨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음악에서의 미에 대한 사고는 시각예술에로 확대됩니다. 음악의 하모니아에 해당하는 개념이 시각예술에서는 "시메트리아" (symmetria)였습니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시메트리아"는 비례, 곧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간의 균형잡힌 조화로운 배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메트리아"를 이루기 위해 시각예술에서 지켜야 하는 형식 혹은 일반적 규칙이 "카논(kanon)" (오늘날의 "canon")입니다. 예컨대 신전을 건축하는 데에 있어서 각 부분들 간의, 그리고 각 부분과 전체간의 복잡한 비례 체계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인체 조각에 있어서도 7등신 혹은 8등신 같은 카논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미 개념 - "미는 곧 비례다" - 을 핵심으로 하는 미론을 흔히 "미의 대이론(the Great Theory)"이라고 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이러한 미 개념은 18세기를 거치며 차츰 퇴조하기 전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미의 대이론은 보통 이성적, 양적 성질, 형이상학적 토대, 객관성, 높은 가치 등의 명제들과 관련되어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1) 우리가 감각이 아닌 정신, 즉 이성을 통해 진정한 미를 파악한다고 하는 첫번째 명제는 대이론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었습니다. 다시말해 18세기에 이르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아름다움이 이성으로 인식되고 판단될 수 있는 속성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2) 미가 성질상 수적이라고 하는 피타고라스적 전통에 속하는 명제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중세의 철학자 그로시테스트는 "모든 복합적인 사물들에서의 구성과 조화는 1,2,3,4라는 네 수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섯가지 비례에서만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3) 미의 형이상학적 토대는 피타고라스의 수적인 본질에 기초한 우주론과 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은 지난 시간에 언급한 바 있죠. 피타고라스는 음악이란 귀로 들을 수 있는 우주의 조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별들의 거리는 조화로운 수적 비율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 비율관계가 미시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 곧 음악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소우주라는 것이었습니다.

(4) 미의 대이론은 미는 아름다운 사물들의 객관적인 속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례나 배열은 그것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 관조자의 흥미를 끌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상대주의가 배격되었는 바, 아름다운 비례를 지닌 대상이 때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미의 객관성에의 주장은 일찍이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에게서도 보여지며, 르네상스 시대의 알베르티에게서도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5) 마지막으로 미의 대이론은 미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라는 명제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를 하나의 커다란 혜택으로 보는 사고는 모든 시대에 걸쳐 일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인생이 만약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미를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고, 어거스틴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5가지 명제와 결합되어 있던 미의 대이론은 앞서 말했듯이 오랜 세월 서구인들의 미의식을 지배했고, 이러한 미 개념이 도전되는 것은 18세기 근대에 이르러서 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미 개념은 고대이래의 대이론과는 상이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이론의 전제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우리의 미의식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출처:강미정교수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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