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전쟁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호메로스의 흉상
원인
프로메테우스(=먼저 생각하는 사람,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 줌)가 독수리에 의해 간을 뜯겨 나가면서까지 지켜왔던 예언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는 일마자 간섭을 하며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눈엣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마땅히 번개를 내리쳐 타르타로스에서 영겁의 벌을 주어야 할 일이지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만이 알고 있는 진실 때문에 그를 함부로 대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대신 주었던 벌이 동쪽의 끝에 있다고 하는 험한 바위산 카우카소스에 묶어놓고 독수리로 하여금 매일같이 간을 뜯어먹게 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매일 다시 자라나기 때문에 그의 고통은 영원한 벌이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과업을 수행하는 도중에 독수리를 활로 쏘아 죽이고, 사슬을 풀어 주었다. 이에 대한 보상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에 말을 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권력 유지에 필요한 하나의 예언을 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네레이스(님프:요정) 중의 하나인 테티스(바다의 여신. 영웅 아킬레우스의 母)의 아들은 그 아비보다 훌륭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테티스는 모든 여신들이 그러하듯이 매우 아름다웠고, 신화 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제우스와 포세이돈(바다의 신) 같은 난봉꾼의 눈에 들어왔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을 전해 들은 최고의 두 신은 이 테티스를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아내로 삼도록 하는데 합의를 했다. 제우스나 포세이돈보다 강한 아들이라면 우주의 지배자는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테티스의 남편으로 낙점된 사람이 펠레우스였다. 펠레우스는 텔라몬과 함께 형제인 포코스를 죽이는 죄를 저질렀지만 신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아스티다메이아라는 여인의 유혹을 물리쳤는데, 이것은 신들이 매우 좋게 평가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당대의 영웅들이 모두 참가한 아르고나우테스의 원정과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에도 참가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펠리아스의 장례경기에서는 여자 영웅 아탈란테에게 레슬링시합에서 지기도 했다. 신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서는 제격이었던 것이다
펠레우스는 신들의 도움으로 테티스와 결혼하게 되었다. 테티스는 다른 바다의 신들이 그러하듯이, 온갖 모습으로 변하면서 펠레우스의 사랑을 피했지만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합의한 내용을 작은 역할의 한 여신이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결혼식을 올리게 된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식장에는 모든 신들이 초대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 결혼하는 유일한 여신이었으며, 이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희망이었으니 모든 신들이 초대될 만 했다
그러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를 받지 못했으니, 이것은 그녀의 신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화의 여신은 스스로 결혼식에 참가하여 황금사과를 식장안에 던져놓고,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이 사과를 놓고 헤라와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주인임을 자청했다. 조정자이며 신들의 지배자인 제우스에게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땅히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주어야 할 일이지만, 질투심 많은 아내 헤라가 눈을 흘기고 있고 사랑스러운 딸 아테나(지혜, 전쟁의 여신)까지 나섰으니 어느 한 여신에게 간단히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이데 산에서 목동일을 하고 있는 파리스에게 이 심판의 결과를 맡겼다
파리스에 의해 심판의 결과를 낳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파리스의 심판'이다

루벤스의 <The Judgment of Paris. 1639년작>
세 여신은 서로 황금사과의 주인이 되기 위해 파리스를 유혹하였는데, 각각 '자신에게 사과를 준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 선물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헤라가 제시한 선물은 아시아의 모든 국가를 통치하는 지배자 자리였으며, 아테나가 제시한 것은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를 약속했다. 아프로디테는 남자들의 이런 욕망보다는 더 실질적인 욕망을 자극시켰는데,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일개 목동이었던 파리스에게 가장 탐스러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마땅히 그 황금사과는 아프로디테에게 주어졌다(때문에 제우스가 젊은남자인 파리스를 지목한 것!)
그런데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제우스의 딸 [헬레네]로서,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이 유부녀를 파리스에게 짝지워주기 위해 모종의 계략을 꾸몄다
먼저 파리스는 트로이의 성으로 돌아가 왕자의 신분으로 받아졌다. 파리스가 태어났을 때,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파리스는 버려졌었던 것이다.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이 살아서 트로이로 돌아왔을 때,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부부는 옛적의 예언을 잊어 버렸는지 파리스를 자신들의 아들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차저차한 일로 해서 스파르타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파리스가 나선 것이다. 그 후 스파르타에 사신으로 도착한 파리스는 그곳의 왕이자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마침 파리스가 남아있을 때, 메넬라오스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카트레우스가 죽었고 메넬라오스는 그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있었던 것이다. 파리스와 헬레네를 남겨두고 말이다. 이에 파리스는 헬레네를 유혹하여 함께 사랑의 도주를 했다(또 헬레네의 저항을 무리치고 납치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아프로디테의 공작에 걸린 헬레네였으므로... 딸까지 버리고 갔다고 한다)
결정적인 문제점! 헬레네는 결혼하기 전에,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었었던 적이 있다. 그리스 지역의 모든 왕들과 왕위 계승자 중에 결혼할 나이가 된 모든 사람들이 모여 든 것이다. 당대의 영웅들도 모두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 많은 구혼자를 보고 헬레네의 아버지인 틴다레오스는 근심에 휩싸였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을 그 대상으로 점찍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근심이었다. 이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오딧세우스(절개로 유명한 페넬로페의 남편. 영웅 중 한 사람)였다
오딧세우스는 틴다레오스에게 구혼자들을 서약을 하게 하여, 헬레나와 그의 남편을 도와 줄 것을 맹세하게 한 것이다. 그 부부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구혼자 모두가 자신들의 힘을 모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서약 때문에 헬레나가 파리스에게 납치되었을 때, 그리스의 대군이 모아진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트로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파리스의 심판과 헬레나의 납치라고 하겠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우스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즉, 여러가지 연유로 인해 많아진 인간 영웅들을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는 비록 제우스의 딸이었음에도 영웅들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며, 그렇게 해서 발발한 전쟁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죽어간 것이다
Francois Boucher의 작품 /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레다를 유혹하는 장면
※[헬레네] :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혹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 사이에 태어났다. 그리스의 여러 왕후(王侯)들로부터 구혼을 받은 끝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었으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유혹하여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갔다. 일찍이 그녀에게 구혼하였던 자들은 일제히 메넬라오스와 협력, 곳곳에서 군사를 일으켜 트로이로 진격함으로써 마침내 10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트로이전쟁이 일어났다. 파리스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자 메넬라오스와 함께 스파르타로 돌아온 헬레네는 평온한 생활을 보내다가 두 사람 모두 행복의 땅인 엘리시온으로 갔다고 한다
제우스가 레다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
/ 제우스, 레다 사이에서 두 명의 남자 쌍둥이(Castor, Pollux), 두 명의 여자 쌍둥이(Hellene, Clytemnestra)가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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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BC2500년경의 지도 / 지중해를 중심으로한 펠로폰네소스 반도
<그림자료: 이중화비뇨기과>
트로이 전쟁
(파리스의 탄생)
Francesco PRIMATICCIO(1504-1570) / [헬레네의 납치]The Rape of Helene, 1530-39
그리스 지역의 강대국 중 하나인 스파르타를 다스리고 있는 왕은 틴타레우스였다. 그의 부인인 레다는 상당한 미인이였는데 지나치게 쾌락을 탐닉하는 여자였다. 그녀에게서 클리템네스트라, 헬레네 두 딸과 카스토르, 폴루크스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서로 배다른 형제자매들이었다. 그러나 틴타레우스는 이를 비밀에 부치고 레다가 네쌍둥이를 낳은 것으로 처리했다. 헬레네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은 그리스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 Louis David /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 The Love of Paris and Helen
스파르타의 틴타레우스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메넬라우스가 왕이 되고, 트로이의 프리아모스는 왕의 사절로 파리스를 스파르타로 보낸다. 스파르타에 도착한 파리스는 메넬라우스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데....
(이피게네이아)
이피게네이아
그리스 연합군은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추대하고, 트로이를 향해 함대를 이끌고 진격하려 했지만, 함대를 움직일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하루, 이틀.. 여러 날이 지나도 바람이 불지 않자 그리스 연합군 내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다신교를 믿고 있었으며 각 지역마다 모시는 최고의 신들이 서로 달랐기에, 여러 신들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 부족들간의 대립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부족들의 불만이 많았다. 아가멤논이 하루는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숲으로 들어가 사냥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르테미스 여신이 노하여 바람을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
그리스 연합군은, 병사들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에 대한 불만으로 반란까지 일으킬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됨을 볼 수 없어 아가멤논을 찾아가 '크리세이스를 돌려 보내고 아폴론 신을 믿는 병사들에게 사죄하라'고 충고를 한다. 아가멤논은 젊은 아킬레우스의 충고에 기분이 상하여, 아킬레우스를 무시하며 격한 말로 아킬레우스의 감정을 건드리자, 오히려 서로 심한 말타툼을 벌이면서 그리스 연합군의 내분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율리시즈와 네스트로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고자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화해하도록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지리멸렬해진 그리스 연합군의 패망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되었다. 헥토르가 대병력을 이끌고 급습한다는 소문에, 그리스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면서 이탈자들이 속출해 가자 아가멤논은 결국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고 아폴론 신에게 사죄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에 대한 악감정은 도저히 누그러트릴 수 없었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 또한 고향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을 내린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비열한 처사에 치를 떨며 브리세이스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며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이제 아가멤논을 위해서는 절대 싸우지 않겠노라"고... 그리스 연합군의 내분은 진정되고 전염병 또한 사그러들었지만, 이후 아킬레우스는 어떤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 비록 아킬레우스가 빠졌지만,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가 살아나자 아가멤논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총공세를 취했고, 헥토르는 성만을 방어하는 소극적인 전략으로는 승산이 없다 판단하고는,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 대응으로 전술을 변화시켰다. 헥토르는 그리스 진영을 초토화 시킬 작정으로 파리스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성문 밖으로 나와 그리스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진영으로 공격해오는 파리스를 보자 더욱 더 강한 복수심이 타올랐다. 오로지 파리스만을 죽이기로 작정을 하고는, 선두에 서서 자신의 병력을 파리스쪽으로 돌려 파리스만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파리스는 자신을 죽이려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메넬라오스를 보자 겁에 질려 성안으로 도망을 치자, 트로이 병사들 또한 후퇴하고 말았다. 헥토르는 파리스의 비겁한 행동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파리스를 심하게 질책했다. 파리스는 자신의 무력함에 심한 자괴감과 창피함을 느끼고는, 메넬라오스와 단 둘만의 결투를 벌여 이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는 메넬라오스에게 일대일의 결투를 신청한다. 그리스의 군사들과 트로이 군사들이 길게 대치한 상태에서, 승자가 헬레나를 차지하고 전쟁을 끝내자는 약속을 하고 파리스와 메넬라오스간의 결투가 벌어졌다. 메넬라오스의 힘에 눌린 파리스는 투구를 빼앗긴 체 가까스로 자기의 진영으로 도망을 치자,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잡으러 길길이 날뛰면서 트로이 진영으로 달려갔다. 이를 보고 있던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쏘아 그를 고꾸라뜨리면서,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디오메데스) 판다로스의 화살에 메넬라오스가 쓰러지자, 아가멤논은 급히 달려가 메넬라오스를 업고는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중상은 아니었지만, 아가멤논은 분노에 치를 떨며 총공격을 지시했다. 트로이 진영 또한 이에 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싸움은 자연 격렬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그리스의 용장 디오메데스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였다. 디오메데스의 칼 아래 트로이의 수 많은 장수들이 죽어 나갔다.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쏜 판다로스 또한 디오메데스의 칼에 쓰러졌으며, 헥토르와 버금가는 트로이이의 용장이자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 또한 중상을 입고는 쓰러졌다. 디오메데스의 맹활약에 트로이의 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본 헥토르는 디오메데스를 저지하고자 디오메데스 쪽으로 사력을 다해 달려나갔다. 비록 적이지만 헥토르의 싸우는 모습과 위용에 반한 디오메데스는 자신이 헥토르 적수가 되지 못함을 느끼고 군사들을 거두고 철수를 한다. (아이아스) 파리스가 헥토르와 함께 성문 앞으로 다시 나오자, 트로이의 군사들은 환호하고 기세를 올리며 반겨주었다. 중상을 입고 도망친 줄 알았던 파리스가 다시 꿋꿋하게 나와 목슴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헥토르와 파리스는 서로 협동하며 그리스 연합군을 밀어 붙이자, 그리스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헥토르는 자신감에 불타 일대일의 대결을 제안하지만 그리스 연합군에서는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메넬라오스는 분통을 터뜨리며 자신이 헥토르와 싸우겠다고 나서자 형인 아가멤논이 이를 말렸다. 모두들 침울한 분위가 되자, 아가멤논은 비록 헥토르의 상대는 되지 못하지만 자신이 겨루겠다고 나선다. 그제서야 많은 장수들이 자기가 싸우겠다고 나서고, 결국 제비뽑기를 하여 아이아스가 당첨되었다. 헥토르는 거대한 아이아스의 늠름한 모습을 보자 약간 움츠러 들었지만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는 아이아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이아스의 무시무시한 힘과 헥토르의 날쎈 동작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해가 질 때까지 막상막하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비록 적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경외감을 갖게 된다. '날이 어두었으니 이제 싸움을 멈추자'고 헥토르가 제안을 하자 아이아스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싸움은 끝이난다. 헥토르는 자신의 청동 단검을 아이아스에게 주고, 아이아스는 자신이 둘렀던 허리띠를 헥토르에게 건네주고는 헤어진다. 아가멤논을 비롯하여 그리스 연합국의 군사들은 헥토르와 당당히 맞서 싸운 아이아스가 돌아오자 환호를 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아이아스의 싸움은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를 높혀 주었다. 아가멤논은 군사들의 사기가 어느 정도 높아지자, 트로이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초반에는 그리스 연합군의 기세에 눌려 트로이 군사들은 속절없이 무너졌으나,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지자 그리스 연합군의 기동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헥토르는 이 기회에 그리스 연합군을 섬멸시키고자 전력을 기울여 그리스 연합군을 몰아부쳤다. 그리스 연합군은 최후의 방어선마저 무너지면서 자신들이 끌고 온 배를 이용하여 간신히 버티고만 있었고, 아이아스는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트로이 군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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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트로이 목마 모형
트로이에는 팔라디온이라는 아테네 여신의 조상이 있었는데, '아테네 여신의 조상이 트로이에 있는 한, 트로이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라는 트로이 병사들간의 믿음이 있었다. 율리시즈와 디오메데스는 변장을 하고 트로이의 성 안으로 들어가 팔라디온을 탈취하는데 성공을 하였지만, 트로이의 성은 여전히 난공불락이었다. |
트로이 성 유적지
(헬레네의 귀향)
그리스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아킬레우스가 여자로 변장을 하여 스키로스 섬에서 숨어 지낼 때, 그 섬의 왕녀 데이다메이아와의 사이에서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낳았는데,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 아킬레우스가 죽자 전쟁에 참가한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바로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피살을 당한다.
트로이가 함락이 되자 메넬라오스는 한 때 자신의 아내였던 헬레네를 죽이려 하였지만, 너무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는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헬레네는 파리스가 죽자 암암리에 그리스를 도와 주고 있었다. 율리시즈와 디오메데스가 트로이의 상징인 팔라디온을 탈취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헬레네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헬레네는 파리스를 극진히 사랑하였지만, 전 남편 메넬라오스에게도 사랑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헬레네는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화해하고는 고국 스파르타로 돌아간다.
(아가멤논의 비참한 최후)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는 남편이 전장에 있는 동안 아가멤논의 사촌인 아이기스토스와 불륜의 사랑에 빠지고,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대신하여 아르고스(미케네)를 다스리고 있었다.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템네스트는 아가멤논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국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가멤논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클리템네스트는,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을 떠나기 전, 바람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의 재물로 바칠 때, 이에 대한 원한으로 아가멤논을 중오하고 있었고, 아이기스토스 또한 아가멤논에 대한 과거의 원한이 있었다.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와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서로 형제간이었지만 서로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아, 아가멤논의 아버지인 아트레우스가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였다. 이로 인해 아이기스토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항시 아가멤논을 죽이기 위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함락하고 약탈물로 받은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와 함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을 하였지만, 그날 밤 클리템네스트는 아가멤논을 목욕탕으로 유인해 도끼로 내리쳐 죽인후, 이어 카산드라 또한 죽인다.
이들은 후환을 걱정하여,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마저 죽이기로 결심을 하는데..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아가멤논과 클리템네스트 사이에는 두 딸과 아들이 한 명이 있었는데, 두 딸은 이피게네이아와 엘렉트라였고, 아들은 오레스테스였다. 엘렉트라는 어머니인 클리템네스트와 아이기스토스의 음모를 알고는 동생 오레스테스를 고모부한테 몰래 보내 숨어 지내게 한다. 오레스테스는 여기서 사촌인 필라데스와 함께 보내는데, 필라데스와 오레스테스는 훗날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장성한 오레스테스는 변장하고 고향인 아르고스로 가서 엘렉트라를 만난다. 오레스테스는 필라데스와 함께, 엘렉트라의 도움을 받아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인 클리템네스트를 죽이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운명의 놀음에 오레스테스는 결국 미쳐 버치고 만다.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필라데스와 함께 여러 나라를 쫒겨 다니다 결국 델포이의 아테네 신전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고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의 법정에서 신들의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에서 유죄와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가 같았지만 최종적으로 아테네 여신이 오레스테스의 무죄에 손을 들어주어 무죄를 선고 받게 된다.(여기서 아테네 여신이 오레스테스의 무죄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비록 여자이지만 어머니가 되어 본 적도 없었고, 자신이 태어날 때도 어머니의 자궁이 아닌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입장보다는 아들의 입장에 편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아테네 여신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죽인 죄에서 해방된 오레스테스는, 아이기스토스의 뒤를 이어 아르고스의 왕이 된 알레테스를 죽이고는 미케네의 왕이 된다. 한편 엘렉트라는 필라데스와 결혼을 한다.
(오딧세이)
율리시즈 이를 그리스어로 오딧세이라고 하는데, 호모의 오딧세이는 율리시즈 즉 오딧세이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노여움으로 자기의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데 10년 이상 걸린 모험담을 그린 서사시다.
오딧세이는 트로이이의 전쟁을 끝내고 귀환하는 중 키콘족과 전투를 벌이고, 외눈박이 식인종 키클롭스족이 사는 섬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 폴리페모스를 만나서는, 그의 눈을 찌르고 간신히 탈출하였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아이올로스 섬이었는데, 이 섬의 왕에게 바람을 다스리는 가죽자루를 선물로 받아, 가죽자루에 해로운 바람들을 모두 담아 가두고는 고향으로 출발을 한다. 오딧세이는 9일 밤낮을 자지 않고 가죽자루를 지키고 있었는데, 고향에 거의 다 와서 깜빡 잠이 들자, 부하들이 가죽자루에 보물이라 들었을거라 생각하고는 가죽자루를 열자 다시 출발했던 섬으로 되돌아 오고만다.
오딧세이는 라이스트리곤이라는 야만족과 싸우고, 아이아이에라는 섬에서는 태양의 딸 키르케의 마법을 물리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텔레고노스를 낳는다. 오딧세이가 자기의 고향으로 떠나려하자, 키르케는 앞으로의 닥칠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알려준다.
오딧세이는 인어인 싸이렌의 유혹 등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고향인 이카다에 도착했다.
오딧세이의 아내 페넬로페는 많은 남자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오딧세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딧세이는 거지로 변장하여 집에 들어가 보니 많은 남자들이 페넬로페와 결혼하려고 소란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페넬로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구혼자들의 재능을 시험하여 자신의 반려자로 삼기로 하고는, 활쏘기 시합을 제안한다. 활을 쏘아 열 두개의 도끼 구멍을 통과 시키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두 실패를 하자, 거지로 변장한 오딧세이가, 자기가 한 번 해보겠다 나서자 모든 사람들이 비웃으며 조롱을 퍼붇는다 . 그러나 그를 알아본 사람이 있어 활을 오딧세이에게 건네 주자, 오딧세이는 단번에 열 두개의 도끼 구멍을 통과시킨다. 그리고는 자기의 아내를 괴롭힌 모든 구혼자들을 활로 쏘아 죽이고, 다시 이카다의 왕으로 추대된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 대하여)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 주면서, '헥토르의 장례식 동안은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우연히 프리아모스의 딸 폴리세네를 보고는 사랑에 빠져, 프리아모스를 찾아가 폴리세네와의 결혼을 부탁한다. 폴리세네 또한 아킬레우스의 사랑에 마음이 동하였는지 그들은 아폴론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이를 본 파리스가 활로 아킬레우스를 죽인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가 사랑한 여인 폴리세네를 아버지의 영혼에 바쳤다.
(아이네이아스) ←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아스"
헥토르와 비견되는 트로이 영웅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하자 식구들과 유민들을 데리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와 인접한 트라키아에 정착할 생각으로 트라키아로 향한다.
트로이의 프리아모스는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쟁 중 막내 아들 폴리도로스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재물과 함께 트라키아의 폴리메스트로왕에게 보냈다. 그러나 트라키아의 왕 폴리메스트로는 재물이 탐나 폴리도로스를 죽였는데, 트라키아에 상륙한 아이네이아스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하지만 곧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네이아스는, 폴리메스트로의 횡폭함에 자신들도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급히 트라키아를 떠난다.
다음으로 상륙한 곳은 델로스 섬이었다. 델로스 섬은 아폴론이 다스리는 곳으로, '너희 옛 어머니를 찾아 그 곳에서 나라를 세우라'는 아폴논의 신탁을 받게 된다. 아이네이아스는 자신들의 조상이 크레타 섬에서 왔다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듣고는, 크레타 섬으로 향했다. 크레타 섬에 정착한 아이네이아스와 그 일행은 밭을 갈고 땅을 일구었지만, 한 알의 곡식도 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역질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아이네이아스는 다시 '서쪽 헤스페리아(이탈리아)로 가라'는 신탁의 계시를 받게된다.
아이네이아스와 일행은 서쪽 이탈리아로 향해 다시 험난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머리는 처녀이고 긴 발톱을 가진 새(하르피아이)들이 살고 있는 섬을 거쳐 에페이로스 땅에 상륙하는데, 놀랍게도 에페이로스는 헥토르의 부인이었던 안드로마케가 다스리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이자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죽인 네오프톨레모스는, 전쟁이 끝나자 헥토르의 부인이었던 안드로마케와, 카산드라와 쌍둥이고 헥토르의 동생이기도 한 헬레노스를 에페이로스로 데려갔다. 그는 안드로마케를 부인으로 받아들이고 이 지역을 다스리다 일찍 죽고만다. 안드로마케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자, 시동생인 헬레노스와 다시 결혼하고는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다. 안드로마케와 헬레노스는 아이네이아스와 일행을 성대히 환대를 하였다.
이후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항해를 계속하여 여러 고난을 겪으며 디도라는 여왕이 다스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까지 가게 되는데..
디도는 페니키아 벨로스 왕의 딸이었다. 벨로스가 죽자, 오빠인 피그말리온이 모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남편을 죽이고 자신까지 위협을 하자, 디도는 아프리카로 도망을 갔다. 디도는 여기에 성을 쌓고는 카르카고를 건설하는데, 디도는 아이네이아스를 보자 곧 사랑에 빠졌다. 디도는 아이네이아스를 붙들고 가지 못하게 만류하나, 아이네이아스는 신탁의 계시를 물리칠 수 없어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아이네이아스는 떠나면서, 디도에게 '나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은 모두 불태워 없애라'고 말하자, 디도는 '내 몸을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면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워 버렸다.
아이네이아스 일행은 마침내 이탈리아 서해안을 북상하여 로마 근처의 해안 라티움에 도착하였다. 아이네이아스는 당시 라티움의 지배세력인 투르누스를 물리치고 로마의 전신인 라비니움을 건설한다.
(라비니움)
아이네이아스가 상륙한 라티움은 라티누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라티누스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나, 라비니아라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라티누스는 이국에서 온 이방인과 라비니아가 결혼하여 그 자손이 세계를 정복할 운명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라티움에 도착한 아이네이아스는 이 지역의 지배자인 라티누스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데, 라티누스는 아이네이아스를 보자마자, 자기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는 아이네이아스를 정중하게 맞이하고는 서로 동맹관계를 맺기로 약정하면서 자신의 딸 라비니아를 주기로 약속한다.
한편 루틀리를 다스리고 있던 투르누스 왕은 라비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해 라비니아에게 청혼을 한 상태였는데, 이방인이 라비니아를 가로챈다는 말을 듣고는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의 양상은 이방인 아이네이아스와 라티움 주변의 동맹 부족들간의 싸움으로 변해갔다.
투르누스 측은 투르누스가 총지휘자가 되어 그 밑으로 메젠티우스와 그의 아들 라우수스 그리고 아마존의 여전사 카밀라가 기마대를 이끌고 참전을 하였고, 아이네아스 측은 투르누스와 사이가 나쁜 아르카디아인의 수령 에반드로스와 바이오, 팔라스 등이 참여하였다.
강 건너에는 에트루니아 인들이 살고 있는데 원래 이곳을 지배한 자는 메젠티우스였다. 메젠티우스는 부족민을 황폭하게 다스렸는데, 이로 인해 쫒겨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아들 라우수스와 함께 투르누스에게 도망을 가서는 호시탐탐 재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에트루니아인의 새로운 지배자 타르콘은 아이네이아스를 도와주기로 한다.
아이네이아스는 전세가 극도로 불리해지자, 에트루니아 동맹군을 데려오고자 부득이 전선을 이탈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네이아스는 부하들에게 '경계만 철저히 할 뿐 절대 싸우지말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에트루니아로 향해 떠났다.
니소스와 에우뤼알로스는 아이네이아스의 귀환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투르누스의 군대는 자만감으로 매일 밤 축연과 음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하면 적의 섬멸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니소스는 무작정 아이네이아스만을 기다릴 수 없다 판단을 하고는, 자신이 적진을 뚫고 아이네이아스를 불러오기로 결심을 하였다. 니소스는 친구인 에우뤼알로스에게 이런 자신의 의중을 말하자, 에우뤼알로스는 니소스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따라 나선다. 이들은 적군에 발각되어 결국 죽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우정에 관한 이야기들은 자뭇 감동적이다. 떠나기 전, 에우뤼알로스가 동료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 적군에게 발각되어 죽는 순간까지 이들이 보여 주는 우정 등등...
아이네이아스가 에트루니아의 동맹군을 데리고 오자 본격적인 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아이네이아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마구 도륙하고 있는 메젠티우스를 죽이기 위하여 그를 향해 달려 갔다. 마침내 양 진영 최고의 용사인 두 사람이 마추치게 되었지만, 메젠티우스는 아이네이아스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메젠티우스가 아이네이아스의 창에 맞고 쓰러지자. 메젠티우스의 아들 라우수스가 아이네이아스를 가로 막았다. 이때 투르누스의 군사들은 부상당한 메젠티우스를 구출하였지만, 라우수스는 아이네이아스의 칼에 숨을 거두고 만다. 메젠티우스는 자기의 아들이 아이네이아스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시 아이네이아스와 결투를 벌이지만 그 또한 아이네이아스의 창에 죽고 만다.
다른 곳에서는 투르누스와 젊은 팔라스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팔라스는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투르누스의 창에 죽게 된다. 투르누스는 젊은 팔라스의 용기와 용맹에 감복하여 수급을 적군에게 돌려 주고, 단지 팔라스가 두른 띠만을 가지고 간다. 또한 투르누스의 지원병으로 가세한 카밀라의 무용 또한 놀라웠으나, 카밀라는 에트루니아인의 기습에 숨을 거두고 만다.
결국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간의 최종 결투가 벌어졌다. 투르누스는 가급적 일대일의 대결을 피하려 하였지만 이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승부는 쉽게 끝났다. 투르누스의 살려 달라는 애원에 아이네이아스는 마음이 흔들렸으나, 팔라스의 띠를 본 순간 분노가 솟으면서 팔라스의 이름으로 그를 죽인다.
라티움을 정복한 아이네이아스는 라비니아와 결혼을 하였다. 그가 건설한 국가의 이름을 신부의 이름을 따 라비니움이라 불렀다.
<아름다운미술관/정암>
트로이 유적지
(터어키 에게해 히살리크 언덕)
<2005년 1월>
신화로만 여기던 트로이 전쟁을 역사 속으로 편입시킨 사람은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에 트로이의 성터가 있음을 확신하고 집요하게 발굴을 했다. 발굴을 해보니 매우 복잡했다.
유적은 총 9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은 시대별로 형성된 도시 문명이다. 최하층인 제1층부터 이미 성벽을 만들고 금속 문화가 있었으며, 기원전 3천년 대 후반에 형성된 제2층은 높이 120m의 높고 견고한 성벽을 갖고 있었다. 길과 집터, 신전 터,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원형의 성벽은 규모가 작지만 견고하고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성이었다.
현재 트로이는 일리아드 속 트로이 전쟁의 도시로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 천년 동안 에게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레스보스 섬, 소아시아 각지와 교류하는 문명의 중심 도시였다. 처음 발굴 당시 슐리만은 제2층을 트로이 유적이라 생각했으나 1930년대 미국의 블레겐이 재조사를 시행한 결과 기원전 125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7층을 트로이 유적으로 여기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피터스 정원-트로이인들이 쓰던 옹기와 수도관

도시성벽-좁은 성곽길을 따라 들어가면 굽은 길 끝에 성문이 있어 통나무로 깰수 없었다고 함

최초의 성벽


슐리만 참호-트로이 1시기(기원전 3000년)의 거주지로 추정

무화과나무

시기별 유적층(1시기~ 9시기)

경사로-트로이 2시기의 대리석 길

트로이 성역-소나 양을 잡아 제단에 바치고 피를 2개의 우물로 흘려보냈다고 함

난공불낙의 도시 성벽

로마시대의 유적지

오데이온-9시기에 만들어진 로마 극장




난공불낙의 성벽 - 그 당시의 무기 체계로는 깰수 없었다고 함

보수중인 트로이목마 형상
<사진자료: 박용환님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