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그리스 작품을 본뜬 로마의 흉상(BC 3세기)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이것이 그당시나 비슷한 시기에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언급한 것 중 남아 있는 것의 전부이다. 5세기 후 그리스의 의사 소라누스가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에 대해 썼지만, 내용이나 말년의 생애는 대체로 전설적인 이야기이거나 상상에 의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일생동안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며 의술을 행했고 코스 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출생과 사망 일자는 대체로 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의학의 발달과, 의사의 이상·윤리에 불변의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의사였다.
<백과사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B.C.460~B.C.370)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인류,종교,국적,정다,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중 -
의사가 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위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낭독하는 것이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에
그리스의 이름난 의사 가문에서 태어나 의사로서 진료도 하며 후학들을 양성했다.
그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하뎐 시기의 많은 의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능수능란한 말솜씨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인간의 질병을 특정한 신과 연결시켜 설명하며 대중의 무지와 두려움을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 외에도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을 만큼 박식한 철학자였다.
그는 질병이란 인체를 구성하는 물체들의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 보면 상당히 획기적인 것이었다.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주의적 치료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수술을 잘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유지하고 보호하고 강화하는 힘을 가지는데 그 힘이 바로 '생명력'이며,
의술은 이러한 생명력이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생약과 좋은 햇빛 그리고 특이한 것으로 '마사지 요법'을 사용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의술은 인도주의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문에 독점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의술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그 대신에 그의 제자가 되려는 의사 지망생들에게 인도주의적 의사가 되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요구했는데,
이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였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이 명언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보통 인간 존재는 유한하지만 인간이 창조한 예술은 영원하다는 뜻이다.
예술의 위대함을 말해 주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 멋있는 말을 한 사람은 2500년 전에 살았던 의사이자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는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 학파라고 알려진 의사들의 지도자였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는 원래
"우리 의사들의 인생은 짧지만 우리 집단의 의술은 계속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시대와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물론 당시에는 히포크라테스 외에도 유능한 의사가 있었다.
그들이 더 환영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히퍼크라테스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을 강조하였지만 다른 의사들은 질병의 즉각적인 치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는 다른 집단의 의사들의 말과 글을 포함해서 당시 의학에 관한 기록들이 남아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그는 이런 뜻에서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고 말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버드나무 껍질은 아스피린의 원조
오늘날의 수많은 의약품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많이 사용되는 의약품 가운데 하나인 아스피린을 예로들어 간단히 살펴보자.
2500년 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버드나무 겁질을 달인 물을 해열. 진통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다른 의사들과 달리 미신을 배척하고, 철저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우리 몸과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성분을 알아내어 그것을 환자 치료에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버드나무 껍질을 진툥. 해열제로 사용했지만 그 약효가 버드나무 속에 들어있는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에 의한 것이라고 19세가애 밝혀졌다.
1897년 독일의 유명한 제약회사인 바이엘 사는 버드나무 껍질에 들어 있는 살리실산 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약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의 효과가 얼마나 좋았던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해열.진통제의 대명사'가 되었다.
원래 자연에서 얻어지는 살리실산은 냄새가 고약하고 구역질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었다.
바이엘 사는 살리실산에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을 섞어 맛을 좋게 한 신약을 만들고 아세트산과 버드나무의 학명을 합성하여
'아스피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아스피린에는 명의 히포크라테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약효가 또 들어 있었다.
우리 몸은 수 많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 혈관이 한곳이라도 막히면 큰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혈관이 막히는 것을 미리 막아 뇌졸증. 심근경색. 협심증 등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아스피린의 성분에 들어 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아스피린은 '심혈관 질환 예방 의약품' 이라는 명성을 새로 얻었다.
1915년부터는 먹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날과 같이 알약으로 만들어졌다.
장수한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유산
히포크라테스는 장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09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술의 신 아스플레피오스의 19세손이다.
그의 집안은 아스클레페이온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의사 집안이었기 때문에 히포크라테스는 어려서부터 의술을 배우며 자랐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고르기아스에게서 수사학을 배우는 등 다양면에 걸쳐 많은 공부를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후 그리스인들은 인체까지도 자연과학의 탐구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인류로 하여금 질병에 대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질병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블로그 greenrose>
왜 의학의 아버지인가?
고대그리스를 대표하는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습니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이전에 사람을 치료하던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의학의 역사의 시작에 히포크라테스가 있을까요? 특히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했던 4체액설은 지금의 현대의학에서 보면 허무맹랑한 이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포크라테스를 의학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사가 됨에 있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의학 지식의 자산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과 달리 고정관념을 깬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 시대의 주술 및 신비주의적 치료 개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죠. 질병이 하늘이 내린 벌이란 생각에서 벗어나 인체와 주변 환경에 따른 변화로써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물론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의학적 지식도 대단했습니다. 그 전에는 없었던 의학서적을 집대성하는 일도 히포크라테스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72권의 히포크라테스 전서가 그것인데요, 사실 히포크라테스가 혼자 쓴 것은 아니고 후대 의사들이 마무리를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앞서 말씀 드렸듯, 4체액설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당시 주장들은 지금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현대 의학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는 했지요.
그렇다면, 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것일까요? 히포크라테스 전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의사가 됨에 있어 ‘양심선언’ 쯤 될 것입니다. 이 선서는 당시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병자와 약자 중심의 의술, 의사의 숭고한 인격을 본받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실제로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처럼 히포크라테스 이후의 후학들이 만들었고 그 것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대에 따라 그 내용도 조금씩 변해서 의과대학마다 걸린 동판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고 하네요. 오늘날의 의대생들이 졸업할 때 선서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줄인 축약본입니다. 이는 1948년 세계 의사협회에서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제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인데 당시 개최지인 제네바의 이름을 따서 ‘제네바선언’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최초의 졸업식은 1804년 몽펠리에 의과대학 졸업식이였습니다. 이 선언을 하기 시작한지가 불과 200년 남짓인 셈이네요. 하지만 이러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지금과 같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환자 중심의 의학 발전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단순히 환자를 위하면 된다는 생각보다 더 구체적인 의료윤리들이 제정되고 의학연구에 있어 규제로 적용되니까요.
<출처: korean healthlog>
히포크라테스 전집
히포크라테스 시대를 지나면서부터는 관련서적에 '히포크라테스'의 저작들이 전거로 인용되었고 이 전통은 계속되었다. 고대에 히포크라테스가 쓴 것으로 알려진 저서의 수는 약 70권이지만 남아 있는 것은 60권 정도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 Corpus Hippocraticum〉이라고 알려진 이 저서들 중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10세기경에 씌어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저서라고 추정되는 것이 모두 실제로 그의 저서가 아니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진서'(眞書)를 가려내려는 시도가 이후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늦어도 2세기경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어왔다. 그의 저서들은 길이·문체·의견, 대상에 있어서 크게 다르다. 일부는 전문적인 의사용으로, 일부는 조수나 학생용으로, 일부는 일반독자용으로 썼으며, 철학적인 저서도 있다. 책 내용과 그밖의 증거를 통해 일부 논문은 출간일을 대강 짐작할 수 있는데, 가장 초기와 가장 후기의 작품 사이에 적어도 1세기(더 길 수도 있음)의 기간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한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모든 작품이 그리스의 학문 언어인 이오니아어로 씌어졌다는 것이다(→ 이오니아-아티카어).
<E. A. Underwood 글 / 백과사전>

<히포크라테스 - 출처 : Flickr>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
고대 그리스의 의사인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의료의 윤리강령.
수세기에 걸쳐 의료인들의 행위의 지침으로 채택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의학 교육기관의 졸업식에 인용되고 있다. 비록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또한 실제로 그가 그당시에 이 이름을 사용한 유일한 의사였는지도 알 수 없지만 〈히포크라테스 전집〉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본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의학적 문제들에 대한 정보 외에도 의학교수와 그 학생들을 위한 행동원칙에 대한 강령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강령 또는 그 일부분은 다양한 형태로 수세대에 걸쳐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서의 내용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단락은 의사가 의학도들에게, 그리고 학생이 스승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제시하고 있고, 둘째 단락에서는 의사의 맹세로서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행할 것이고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으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전문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과사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비밀
고대 그리스에서 활약한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가
'의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의술의 중심을 신에서 사람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이전에는 질병에 걸리면 신에게 낫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전부였지만
'질병이란 인체 내부에 발생한 문제 또는 인체와 외부 환경과의 부조화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 히포크라테스는
인체 내부와 외부 환경을 잘 조절함으로써 질병을 고치려고 했다.
실제로 흉막염 환자 치료를 위해 흉박을 뚫고 고름을 빼낼 관을 삽입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알고 있지만,
예술을 의미하는 'Art'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과 글을 참고로 한다면 '예술'보다는 '의술'이라 해야 타당하다.
물론 당시는 학문적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니 '의술'이 옳고 '예술'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의학도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으면서 의사로서 마음의 다짐을 한다.
이 전통은 1804년에 프랑스 몽펠리에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처음 선서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각 의과대학 건물 한편에 붙어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이 모두 같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약 2400년간 전해 내려온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후대 사람들이 여러 번 선서를 고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뒤에 모순된 내용이나 의사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도 있다.
이 선서가 높이 평가받는 것은 의사들의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잇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만해도 전쟁 포로를 마음대로 다루고 역적은 삼족을 멸할 정도로 윤리의식이 희박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는 이와 다르게 "사람을 해치는 약은 누구의 부탁이 있더라도 투여하지 말 것이며,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은 비밀로 할 것이다."라며 윤리를 강조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길이가 길어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사용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었다.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는 길이를 줄여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제정했으며,
의과대학 건물에 새겨진 동판은 이 내용을 더 줄인 것이 대부분이므로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울산문학사랑모임터>

- 2500년만에 다시 만나는 의학의 근본정신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우리가 흔히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알고 있는 선서문이다.
매년 수천명의 의대 졸업생들은 졸업식장에서 이 선서를 낭독하며 의사가 되는 작은 의식을 행한다. 그러나 이 선서는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일부에 있던 '선서'를 바탕으로 1948년 세계의사협회가 제네바에서 만든 제네바 선언이다.
저자는 위의 제네바 선언이 아닌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쓰여진 '선서'에 대한 탐험으로 책을 엮어가고 있다. 그 선서에 담긴 의미와 역사적 맥락,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현대에서의 적용, 그리고 반성으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것이다.
선 서
1.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 휘기에이아, 파나케아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의 이름으로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2.나는 이 의술을 가르쳐 준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나의 삶을 스승과 함께하여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나의 것을 그와 나누며 그의 자손들을 나의 형제로 여겨 그들이 의술을 배우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보수나 계약없이 의술을 가르칠 것이며 내 아들들과 스승의 아들들, 그리고 의료 관습에 따라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들에게만 교범과 강의와 다른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3.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돕기 위해 섭생법을 처방할 것이며 환자들을 위해나 비행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4. 나는 어떤 요청을 받아 치명적인 약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그 효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여성에게도 낙태용 페서리(거친 페서리)를 주지 않겠습니다.
5.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준수하고 경건하게 지켜가겠습니다.
6. 나는 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결석 환자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기겠습니다.
7. 나는 어느 집을 방문하든지 환자를 돕기 위해 갈 것이며 고의적인 비행과 상해를 삼가고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여자들이나 남자들과 성적 접촉을 삼가겠습니다.
8. 내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또는 진료 과정 이외 그들의 삶게 관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비밀로 지키고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9. 이제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어기지 않는다면 내가 나의 삶과 나의 의술에 대해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원한 명예를 얻게 하시고, 만약 내가 선서를 어기고 위증한다면 나에게 그 반대를 주소서.
제네바 선서와 비교해 볼 때 보다 구체적이며 논리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상당한 의구심이 생긴다. 저자는 선서에 대한 궁금증을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여러 학설과 지식들을 바탕으로 상세하며 알기 쉬운 문체로 해설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6항 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결석 환자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다는 내용은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도록 만든다. '외과의사는 그럼 의사가 아니란 말인가?'
혹은 '그렇다면 의사 외에 다른 사람이 또 수술을 한단말인가?'
위의 질문에 대해 저자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근본 정신(자연치유력. 약이나 수술등의 방법들보다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고 그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과 자기의 능력을 벗어나는 환자를 보다 나은 의료진에게 보냄으로 끝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고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을 지지하고 있는 두 기둥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휴머니즘과 자연주의, 그리고 합리주의 정신에 입각한 진료 행위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것을 의사의 의무로 본다. 이러한 의사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보상은 명예이며 경제적인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속한다.
그래서 선서의 마지막 항목에 의사 자신의 삶과 의술에 대한 명예를 신에게 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한국의 의료 현실과 의사들의 모습을 날카롭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의대생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에서 관행적으로 선서를 낭송할 뿐, 선서에 담긴 히포크라테스의 이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진료 현장을 향한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정신에 담긴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과 합리주의, 자연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환자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인 환경을 고려한 총체적인 학문으로서의 의학에 대한 이해 없이 의사들이 의료전문가가 아닌, 의료 자본가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현재의 의료수가 체제 아래에서 점점 메이저과들이 현실적인 마이너 과가 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 목적으로서의 환자가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환자가 되어가는 그러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만물유랑비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