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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인물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작성자靑野|작성시간09.06.25|조회수605 목록 댓글 3

 

 

                                             헬렌 켈러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 6월 27일~1968년 6월 1일)는 시각과 청각 장애가 있는 미국의 작가 겸 활동가 겸 교육가이다.

생애

유년기와 학창 시절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헬렌 켈러는 앨라배마주의 투스컴비아에 있는 아이비 그린이란 저택에서 1880년 6월 27일에 예비역 장군이자 지방신문사

편집자였던 아서 H. 켈러와 케이트 애덤 켈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청각 장애인이 아니었다. 생후 19개월 후 당시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생각되는 병을 앓아

위장과 뇌에 심한 출혈이 생겼다.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시각과 청각을 잃고 말았다.

7살까지는 약 60개가 넘는 수화를 만들어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886년 어머니인 케이트 켈러는 찰스 딕킨슨의 《American Notes》에 나온 시청각 장애인 로라 브링맨의 성공적인 교육

대한 글을 읽고 감동해서, 조언을 얻으러 볼티모어의 특수 의사를 찾아갔다.

그녀는 당시 청각 장애인 치료 전문가이자 전화 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만났는데, 벨은 보스턴에 있는 펄킨스

시각 장애 학원을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그 학원에서 당시 겨우 20살이며 시각 장애를 가진 졸업생 앤 설리번특수교육 선생님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헬렌 켈러와 설리번의 49년간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보스턴 퍼킨스 학교와 뉴욕 라이트-휴머슨 학교에 졸업한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입학했다.

1904년 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으며, 미국 역사 최초로 학사학위를 취득한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다.[1]

 

좌파 사회운동

헬렌 켈러라고 하면 흔히 설리번 선생의 인내와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사회주의 지식인이었다.

헬렌켈러는 29세 때인 1909년 미국 사회당(1901년 창당)에 입당하였으며, 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발표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라고 선언하자,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도덕주의(Moralism)가 얼마나 표리부동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할 정도로

헬렌 켈러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고발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 사형 폐지 운동, 아동 노동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실천했다.[2]

그녀의 이러한 활발한 사회참여에 대해 보수주의 언론들은 “헬렌 켈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라며 비난했는데, 이에 대해

헬렌은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빈민가에도 방문했다. 볼 수 없을지라도…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참여를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3]

하지만 헬렌 켈러의 사회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당원으로 활동한 미국 사회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당은 1913년 1월, 11만 당원 중 2만 명이 빌 헤이우드 집행위원에 대한 제명 조치에 반발, 탈당할 정도로 엄청난

내분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헬렌 켈러는 일치하여 민중의 편을 들어야 할 사회당이 두 파벌로 갈라져 서로 비열한 싸움을

벌인다고 비판했지만,[4] 결국 내분을 막지 못했다.

 

<자료: 위키백과>

 

 

 

 

 

켈러의 연표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출생

1882년 1월 열병을 알고 난 후에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못하게 됨

1887년 애니 셜리번 선생이 헬렌의 가정 교사로 온 뒤에,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 닫게 되고 이것을 통해 헬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림, 7월부터 점자 공부를 시작 함

1888년 5월 26일에 퍼킨스 맹아 학교에 입학함

1890년 3월 26일에 보스턴의 농아 학교 플러 선생님으로부터 발성법을 배워 말을 할 수 있게 됨

1891년 벙어리이며 귀머거리인 소년 토미를 위해 자선 모금 운동을 하여, 1600 달러의 돈 을 모아 토미를 보스턴의 퍼킨스

학원 유치원에 보냄

 
1893년 모금 운동을 벌여 터스컴비아에 도서관을 세움

1894년 뉴욕의 라이트휴메이슨 농아 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공부함

1896년 7월 8일, 세인트클레어에서 열린 전국 농아 교육 협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강연을 함, 10월에 케임브리지 여학교에

입학함

1899년 래드크리프 대학의 입학 시험에 합격

1903년 잡지사 숙녀 화보에서 헬렌의 전기를 연재함

1904년 영문학에서 우등상을 받으며 래드크리프 대학을 졸업

 
1906년 주지사의 추천으로 매사추세츠주의 맹인 교육 위원회의 위원이 됨

1910년 화이트 선생님에게 발성법을 다시 배움

1913년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강연회를 개최함

1916년 네브레스카, 캔자스, 미시시피 등을 다니며 전쟁 반대 강연을 함

1918년 자신이 쓴 책이 영화화되어, 스스로 주연 배우로 출연

 
1920년 각지에서 강연을 하여, 그 수입을 불행한 이웃에게 기부함

1928년 두 번째 자서전 '중류(철학과 종교에 관한 문제를 다름)'를 완성함

1931년 템불 대학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32년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의 부상병 구제 운동을 전개함

1964년 9월 14일에 미국의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음

1968년 88세의 나이로 6월 1일에 코네티커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남

 

<자료: 강나루>

 

 

 

헬렌켈러의 일화

 

어느 날 헬렌은 정원에서 꽃 한송이를 꺾어서 설리반 선생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설리반은 헬렌의 손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헬렌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사랑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리반은 헬렌의 손을 잡아 헬렌의 가슴에 대고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글을 썼습니다.

설리반 선생은 헬렌의 말을 마음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꽃의 향기와 같습니까?" 헬렌의 물음에 설리반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헬렌의 집에는 아침부터 먹구름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태양은 가려져 어두운데다가, 바람이 불어 오후까지 내내

음울한 분위기가 계속 되었습니다. 헬렌은 그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헬렌은 기뻐하며 물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까?" 설리반 선생은 헬렌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한참동안 써내려 갔습니다.

 
"헬렌, 사랑이란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은 것이란다. 구름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지. 너도 비를 맞아

보았지? 햇볕을 쬐고 난 뒤 비가 내리면 땅위의 나무들과 꽃, 풀들은 너무나 기뻐한단다. 비를 맞아야 쑥쑥 자라거든.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예 선생님."

 

"사랑이란 손에 잡히지 않은 것이지만 그것이 사람에게 부어져 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란다.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단다."

 
헬렌은 이렇게 진실한 설리반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사랑을 배우게 되었고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정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겠죠.

기쁨이란 자체도 없을거고요. 헬렌켈러 여사는 아무 것도 없는 암흑에서 단지 설리반 선생의 따뜻한 손길로 쓴 손바닥

글씨에 하나에 사랑이 전달되어 누구보다도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헬렌 켈러의 명언 

 

*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헬렌 켈러

 

*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헬렌 켈러

 

*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 -헬렌 켈러

 

*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헬렌켈러

 

* 나는 종종 성인(成人)들이 단 며칠간만이라도 맹인과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귀머거리가 되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 낙천(樂天)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헬렌 켈러

 
* 말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사상이다. -헬렌 켈러

 
* 불구자라도 노력하면 된다. -헬렌 켈러

 

* 선조들 중에서 노예를 가지지 아니한 왕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선조들 중에서 왕을 가지지 아니한 노예도 하나도 없다.

-헬렌 켈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 켈러

 

*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합니다. -헬렌켈러

 

* 신은 용기있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헬렌 켈러

 

*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헬렌 켈러

 

* 여러분이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

 

*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삶에, 아니 타인의 삶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헬렌 켈러

 

* 우리는 선과 악을 모두 알지 못하고는 스스로를 위한 바른 길을 자유롭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없다. -헬렌 켈러

 

* 이 세상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너무나 많은 악(惡)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속에는 크나큰 선(善)도 있다.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노력하면 삶의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헬렌 켈러

 

* 인간의 성격은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 시련과 고생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은 단련되고 또한 어떤 일을

똑똑히 판단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며 더욱 큰 야망을 품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헬렌 켈러

 

* 인생의 불모지를 친절로 열매가 풍성한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상종하라. 당신의 마음속에 천국의 비전을 담고 다녀라.

그리고 그 비전에 부합되도록 개선시켜라. -헬렌 켈러

 

* 자기본위와 불평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지고 흐려지듯 사랑도 사랑의 기쁨 때문에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헬렌 켈러

 

* 자기 연민은 최대의 적이며, 거기에 굴복하면, 이 세상에서 현명한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헬렌 켈러

 

*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삶이란 헛갈리고 이간질하는 것으로 죽음보다 더 잔인한 것이다.

반면에 죽음은 헛갈렸던 것이 모이고 타협하는 영원한 하나의 삶인 것이다. -헬렌 켈러 수상록

 

*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너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헬렌켈러

 

*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도 없다. -헬렌켈러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헬렌 켈러가 어느 날 숲 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 친구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눈 뜨고도 두 귀 열고도 별로 특별히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고,

할 말 조차 없다니..

 

그래서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약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제목으로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1월 호에 발표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글은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을 잔잔히 위로했습니다.

그래서 리더스다이제스트는 이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습니다.

 


내가 사흘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 헬렌켈러

-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3월호에 실린 글 -

 

"첫째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삶을 가치있게 해준 설리번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 먼동이 트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종일 인간이 진화해 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영화관에 가 공연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 속에서 마주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는 모른다.

아니 잊고 산다.

그래서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이면 귀가 안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되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120년 전에 찍은 헬렌켈러와 스승 앤 설리번 사진

 

헬렌 켈러(왼쪽)가 8살이던 지난 1888년

매사추세츠주 모래톱 반도인 케이프 코드의 브루스터에서

여름 휴가중 가정교사 앤 설리번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를 가르치기위해 켈러가에 도착했을 때

인형 하나를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내내 많은 인형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들 인형가운데 하나를 안고 찍은 사진은

아마도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AP 연합>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ANN SULLIVAN)

 

 

 

 

  

 

 

 

 

보스턴의 한 보호소에 앤(Ann)이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앤의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빠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다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앤은 충격으로 미쳤고 실명까지 했습니다.    
앤은 수시로 자살을 시도하고 괴성을 질렀습니다.  
결국 앤은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 독방에 수용되었습니다.  

 

모두치료를 포기했을 때 노(老)간호사인 로라(Laura)가 앤을 돌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그냥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지만 앤은 담벼락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앤을 위해 가져다 준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로라는 앤 앞에 놓아준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용기를 얻고 로라는 계속 책을 읽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앤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이며 가끔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얘기했고,  
그 얘기의 빈도수도 많아졌습니다.    
마침내 2년 만에 앤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아 학교에 입학했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밝은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 후, 로라가 죽는 시련도 겪었지만  
앤은 로라가 남겨준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에도 성공했습니다.   

 

 

수술 후 어느 날, 앤은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앤은 그 아이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못 가르친다고 했지만 앤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결국 사랑으로 그 아이를 20세기 최대 기적의 주인공으로 키워냈습니다. 

 

  


그 아이가 ' 헬렌 켈러 '이고, 그 선생님이 앤 설리번(Ann Sullivan)입니다.    
로라는 앤과 함께 있어주고 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앤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냈고,  

앤도 헬렌과 48년 동안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헬렌이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는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습니다. 헬렌은 말합니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충고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한 마음은 충고를 주기보다 자신을 줄 때 아뭅니다.    

좋은 충고보다 좋은 소식이 중요합니다.     

  

 

 

앤 설리반 (ANN SULLIVAN)

헬렌켈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나 그녀의 스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삼중고를 안고있는 헬렌켈러를 

전세계가 놀라게한인물로 만든 사람이 바로앤 설리반 (ANN SULLIVAN)이다.

 

 

 헬렌켈러를 가르칠수있는 방법은 감각기관 뿐이었다.
헬렌켈러는 손가락으로 상징적인 터치를 통하여 말하는법을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여박사도 되고 영감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앤 설리반은 늘 되풀이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시작하고 실패하는것을 계속하라.실패할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것이다.
네가 원하는것을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것을 얻게되리라.

시작하고 실패하는것을 계속하라.

 

 

헬렌 켈러 (1880 ~ 1968)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켈러.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큰 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귀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입으로는 말도 할 수 없는 '삼중고'의 가련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의 기적이란 칭호까지 받는 놀랄 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찌보면 나무토막 같은 그녀를, 전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아닌 그녀의 스승인 앤 설리반입니다.

7세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행동하던 헬렌 앞에 나타난 설리번 선생은, 사랑과 인내로써 어둠 속을 헤매던 헬렌에게

말과 글은 물론 인생의 참의미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20세때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헬렌 켈러에게 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1937년 우리 나라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그녀는 힘들고 긴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사람도 감히 쓸 수 없는 <나의 회상록>,

<내가 살고 있는 세계>, <믿음을 가지고> 등의 유명한 저서까지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맨 처음 '물'이라는 말 한마디를 배우는 데 7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시련 극복의 의지로 최고 학부까지 나오게 되었고, 희랍어, 라틴어, 불어 등에 통달하게 되어

온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헬렌은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장애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 속에 빛을 갖는 일입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세요."

헬렌 켈러는 자신의 불행에 꺾이지 않고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 애쓰다가 1968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TIME 지는 20세기의 위대한 100명의 인물에 '기적의 헬렌 켈러'라는 제목과 함께 헬렌 켈러를 포함시켰고

그의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원망하며 비관과 반항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불행앞에 굴복하지 말고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보다 더 비참하고 나쁜 상황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헬렌 켈러처럼 말입니다

 

-= IMAGE 1 =-

 

<출처: 언제나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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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양성곤 | 작성시간 09.10.23 참으로 감동깊게 읽어 봤읍니다 감사하며 내 자신이 부끄럽고 왜소해 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靑野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23 그러셨군요. 저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 작성자랍오니 | 작성시간 10.09.18 헤렌켈러여사님은저의삶의멘토가되십니다.앤설리번여사님도너무훌륭하십니다.좋은자료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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