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제 92편
======92:1-3
찬양하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메르'(* )는 '악기(특히 현악기)를 '연
주하다' 혹은 '(그러한 악기를 동반하여) 노래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원문상으로는
'십현금, 비파, 수금' 등이 1-3절의 끝에 위치해 있으나 개역 성경에서 여기에 삽입한
까닭은 바로 이 용어의 성격을 고려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에...밤마다 - 이스라엘의 구전법(oral law)인 미쉬나(Mishna)에 의하면 본 시
편은 안석일 아침에 부르도록 정해져 있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본 시는 안식일을
위한 시편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날 아침 이 시편을 부르면서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는
먼저 어린양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 드리는 존제(尊祭)로서 포도주를 부었다(민 28
장). 반면, 저녁 제사 때에는 출 15 : 1-18과 민 21 : 17-20 중의 하나를 노래했다.
그리고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성전에서 불렀던 노래로서는 첫쨋날 24편,
둘쨋날 48편, 셋쨋날 82편, 넷쨋날 94편, 다섯쨋날 81편, 여섯쨋날 93편 등이었다고
한다.
좋으니이다(* ,토브) - 본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문
맥에 따라 그 의미를 규정해야 할것이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 때 피조 세계가 그의 의
도와 목적에 부합됨을 보고 이를 '좋게'(* , 토브) 여기셨다(창 1 : 4, 10,
12).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지존자이신 그분의 계획과 일치한다는 사실
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이해된다( 33 : 1). 한편, 시편 기자의 정서적 측
면으로 보면, 찬양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에 따른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진정
한 기쁨의 표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Perowne). 본절에 나오는 악기들에 관해서는
서론 '시편과 음악'을 참조하라.
=====92:4
여호와여...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 원문에 보면 본 구절 서두에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 )가 있다. 따라서 본절은 1-3절에 언급된 바, 여호와께 대한 찬양의
근거를 제공하는 부분(14, 15절)의 서론격에 헤당하는 샘이다.
주의 손의 행사 - 혹자는 본 시편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안식일을 위한
시편인 사실을 강조하여 이를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국한시킨다. 그러
나 본 구절의 용례를 볼 때(28 : 5 ;사 5 : 12) 그리고 본절 하반절이 다루고 있는 내
용을 볼 때, 기자는 본 구절을 통하여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의 구원 혹은 그 구원
을 가져온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7-11절)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2:5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 이 표현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 및 우주 통
치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성, 인간의 이해를 넘는 그 계획의 방대함, 그리고 지혜
의 깊이 등을 인식함과 아울러, 그 사실에 대한 인간의 망각을 탄식하는 심정이 함께
곁들어져 있다. '인간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사역을 잊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깊이
를 헤아려 보는 일을 중단하는가! 얼마나 빨리 그분의 위대성을 헤아려 보기를 포기하
는가'(Barnes) ! 본 구절과 유사한 표현으로는 106 : 2 ; 112 : 2 등이 있다.
주의 생각 -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획들 그리고 그 방법들을 뜻한다.
과거에 기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공의를 의심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제 그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신실
하시며 전적으로 의지할 만한 분이라는사실을 깨닫고 있다(Anderson). 한편 주의 행사
의 위대하심과 그 생각의 깊고 오묘함에 대해서는 다윗(40 : 5), 이사야(사 55 : 9),
바울(롬 11 : 23 )등도 찬탄한 바 있다.
=====92:6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 '우준한 자'의 히브리어는 '이쉬 바아르'(* )
이며, '바아르' 그 자체만은 49 : 10 ; 73 : 22 ; 잠 12 : 1 ; 30 : 2 등에 나오지만
'이쉬 바아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온다. '바아르'가 집합적 개념으
로 쓰이고 '잔인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바아르'에서 유래한다는 사실 때문에, 영역본
KJV는 '이쉬 바아르'를 맹수처럼 '사나운 사람들'(brutish man)로 번역하고 있다. 그
러나 지금 시인은 기질적으로 사나운 사람에 관해서 혹은 어느 학자의 주장처럼 단순
히 아이큐가 낮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여호와 경외에 뿌리
를 두는 참다운 지혜를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잠 1 :
7). 여호와 경외가 없어 참다운 지혜가 없는 자란, 이 세상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
의에 의해 통치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자를 뜻한다.
무지한 자(* , 케실) - 본 용어의 의미는 동일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다른
시편의 문맥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
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 : 1).
=====92:7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 - '풀'(* ,에세브)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풀'이지만
창조시의 푸른 식물 곧 모든 수목들 그리고 각종 꽃들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우기(雨期) 때 한차례 비가 내리고 나면 온 들이 푸른 나무들과 각종 꽃들
로 아름다운 정원올 이루게 되는데, 본 기자는 바로 그 장면을 염두에두고서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악인도 일시적으로는 비내린 뒤의 들의 상황과 같이 번성하여 평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의인과의 차이점은 그 시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10 : 4)라고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나는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10 : 6)라고 교만을 부린
다는 사실이다.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 이미 기자가 상반절에서 악인의 땅위에서
의 번영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악인이 땅위에서 다시 망하리라는 사실
에 강조점이 숨어있는 표현으로 보면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여기
에는 종말론적 성격이 숨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즉, 악인이 땅 위에서 번영하여 행복
을 누리나 그 행복이 이생을 마친후에도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악인도 이 땅 위에서 번영할 수 있다. 그 번영의 정도는 의인이 시험에 빠질
정도로 대단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은 이 땅 위에서 뿐이요 결국 그
들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는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의인과 달리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3편).
=====92:8
지존하시니이다 - 여기서의 '지존'(* , 마롬)을 직역하면 '높은 곳에'인데,
하나님에 관한 묘사를 함에 있어서 이처럼 부사를 사용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70인
역(LXX)은 '마롬'의 일상적인 용례와 같이 '높은 곳에'가 아닌 '높은 분'으로 번역하
여 '높은 곳에 계시나이다'가 아니라 '높은 분이십니다'로 번역하였다. 본절은 비록
짧지만 시편에 담긴 모든 교리가 의존하는 위대한 중심 진리를 말하고 있다. '영원히
계시는 초월자 하나님',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의 대들보가 된다
(Calvin).
=====92:9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다 흩어지리이다 - 직역하면 '보
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대적들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대적들이 소멸할 것이
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행자들이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이다. 이 같은 표현
은 우가릿 본문(Ugaritic texts)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오 바알신이여 보소서 당신의 대적들을 당신이 쪼개버릴 것입니다. 보소서 당신은 당
신의 대적들을 멸망시킬 것입니다'(Dott). 시편 기자가 이 같은 가나안 예식서에 대해
익숙해 있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예식서의 내용을 빌어왔다고 결론
지어서는 안 된다. 기자의 관심은 이방 신 바알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 오로지 진정한
능력자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악행자들이 멸망당하고 말 사실일 뿐이다.
=====92:10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 성경에서 '들소의 뿔'이란 가공할 만한 힘을
상징한다(22 : 21 ; 욥 39 : 9). 따라서 하나님이 시인의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엄청
난 용기와 활력, 힘을 공급하셨음을 뜻한다. 대비가 되는 바로 앞절에 악인의 멸망 사
실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은 시인의 번영, 명
예 회복 등으로 보면 무난하겠다.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 여기서 '신선한 기름'(* , 쉐멘 라아난)
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기름'인데 이것은 최고 품질의 기름을 뜻한다. 원래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대제사장이나 왕으로 선택한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의식 중의 중요한 순서이다(출 29 : 7 ; 삼상 10 : 1 ; Eaton). 그러나 문맥
상 여기서는 시인이 기쁨으로 충만했던 사실에 대한 암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방에
서 축제일을 맞이하여 값비싼 양질의 기름을 서로 머리에 붓는 것은 잘 알려진 관습이
다(23 : 5).
=====92:11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 '원수'에 해당하는 '슈르'(* )는 구
약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단어이다. 그 유사한 분사형으로 민 35 : 32 ; 렘 17 : 13 ;
미 2 : 8 등에 나타나는 '피한 자', '(여호와를) 떠나는 자', '(전쟁을 피하여 평안
히) 지나가는 자들' 등의 의미를 고려할 때, 상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숨어서 기다리
는 자'로 번역하면 되겠다. '눈으로 보며'는 대적의 멸망을 분명히 목격한다는 것인데
숨어있던 대적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멸망당한다는 사실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본절의 의미를 강조해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본절은 대적의 징벌당하는 장면
을 득의 양양하게 비웃으며 감상한다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공의
가 아주 명백하게 집행되는 것을 바라본다는 데에 그 초점이 있다.
=====92:12
종려나무...백향목 - 저자는 악인의 멸망과 대비를 이루는 의인의 승리를 말하기
위하뗘 이 두 나무의 이름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두 나무의 특성과 같은 측복은 당시
뿐 아니라 기자와 동일한 믿음에 참여하는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혜택이
다. 이 두 나무는 푸르름, 무성한 생산력, 다함이 없는 왕성한 힘 및 영원성 등과 같
은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어느 학자는 이 두 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여
름의 열기 속에서 뿐만 아니라 겨울의 냉기속에서도 종려나무는 연중 내내 그 푸르름
을 유지한다. 그리고 백향목은 연수로 그 나이를 세지 않는다. 백향목은 세기
(century)로 그 나이를 센다'(Tholuck). 기자는 늘 푸르고 늘 과실을 맺는 종려나무를
의인에 비유한 반면, 곧 시들고 말 풀을 악인에 비유한 바 있다(7절). 이외에 구약 성
경에서 종려나무를 다른 무엇에 비유한 구절은 단 두 군데뿐인데 아 7 : 7은 '키가 훤
칠한 신부에', 대조적으로 렘 10 : 5은 '꼿꼿하게 서있는 우상'에 각각 비유하고 있
다.
=====92: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 52 : 8에도 유
사한 표현이 등장하는 바, 의인이 여호와의 집에 심기운 그리고 궁전 경내에서 무성하
게 자라는 나무에 비유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집에서 받
은 축복을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물질적인 축복과도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욥 42 : 12). 한편, 본절의 묘사가 실제로 성전 뜰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
습으로부터 따온 것인지를 규명하기란 어렵다. 어떤 학자는 본절의 묘사와 애굽 의식
중 신상 앞에 나무가 심겨져 있었던 사실을 연관시키려 한다(Kraus). 그러나 시편 기
자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묘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92:14
늙어도 결실하며 - 이스라엘 백성 역시 장수하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소망하
였는데, 그 최고의 모범은 죽을 때 그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
이 쇠하지 않은 모세였다(신 34 : 7). 그와 유사하게 여겨진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나
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은 다윗이었다(대상 29 : 28). 저자는 여기서 경
건한 자는 늙어서까지도 원기와 생산력이 있는 삶을 살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바, 아마
도 그의 마음속에는 모세와 다윗이라는 표본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 익으면 개당
평균 무게가 100kg, 최대로는 200kg까지 나가는 종려나무 열매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다(Perowne).
=====92:15
여호와의 정직하심 - '정직하심'에해당하는 '야솨르'(* )는 다른 사람을 상대
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기본적인 뜻은 '평평하다',
'곧다'이며 기자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통치가 공평하고 의로울 것을 밝힘으로써 본
시편을 끝맺고 있다. 범죄하는 악인의 융성은 잠시뿐이나(7, 9, 11절) 의인의 기쁨과
번영은 영원할 것인데, 그 까닭은 바로 하나님이 공평하고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자가 하나님을 횬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존재로 삼고 그분을 신뢰하는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이 진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시인은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부
정의 부정을 사용하여 본 시편을 맺는다. (119 : 3).
곤경들로부터의 구원 혹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종국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
에까지 인도되는 영원한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그는 땅 위에
서 하나님과 친구로서 영화롭게 살아갈 뿐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는 축복 상태로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칼빈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