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의 신학사상
1.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생애와 저작품
우리 시대의 신학을 과학과 단절시키지 않고 과학과 대화할 수 있는 “이성의 신학”(theology of reason)을 주창한 판넨베르크는, 1964년에 『희망의 신학』을 출판하여 희망의 문제를 우리 시대의 화두로 만든 몰트만과 함께 세계 신학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저명한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1928년 독일의 쉬테틴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서구의 유명한 다른 신학자와는 달리 그는 비기독교적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는 지성적인 모색에 의해서 기독교 신앙에 도달한 냉철한 이성적 지성인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기독교적 교육이나 회심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성적인 탐구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이성의 신학”이라고 명하기도 한다. 판넨베르크는 이성의 입장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1950년에 그는 바르트 밑에서 신학 수업을 받으려고 바젤로 갔다. 그는 바르트에게 감화를 크게 받았으나 전적으로 바르트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와는 달리 신학의 합리성 추구, 즉 신학의 보편적 지평을 강조하였다. 1951년 하이델베르크로 옮겼으며, 그 곳에서 공부할 때 게르하르트 폰 라트 교수의 역사이해로부터 신학이란 결국 역사의 해석이라는 이론에 공감하였다. 그는 후에 “판넨베르크 서클(Pannenberg Circle)”로 알려진 연구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의 토론이 [역사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 1961)라는 제하의 공동 출판물을 낳게 했다. 이를 통해 판넨베르크는 그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20세기 전반부를 휩쓸었던 변증법적 신학 및 실존주의 신학의 약점인 역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결핍을 발견하고 역사를 신학의 새로운 주제로 내세웠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판넨베르크의 “역사로서의 계시”와 더불어 그의 대표적 저서 가운데 하나인 『예수 : 신과 인간』(Jesus-God and Man, 1968)은 현대 그리스도론의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를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게 하였다.
1954년에 “둔스 스코투스의 예정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후 1955년에 신학부의 강사가 되었고, 1958년에 부퍼탈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어 그곳으로 옮겨갔다. 여기서 그는 한동안 몰트만의 동료가 되었다. 1961년에 마인츠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68년에는 현재까지 그가 몸담고 있는 무니히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국에서 얼마동안 교수로도 있었다.(1963년, 1966-1967) 판넨베르크의 기독교에로의 노정은 기독교적인 교육이나 회심의 경험의 노정이기 보다는 지성적인 모색의 여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이 과학의 도전을 완전히 수용하기보다는 거부함으로써 그 보편성을 포기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신학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숙고될 수 있는 바탕 위에 세우고자 한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목적이 신앙의 진리에 대한 이성적 설명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보고,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신학의 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해석의 작업을 시도한 점에서 타 신학자들과 구별되는 신학자라 할 수 있다.
2. 주요 사상
1). 이성의 신학
역사와 이성, 그리고 미래성을 강조하는 것이 판넨베르크 신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신앙은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는 이성적 성격을 지니며 또한 미래적 성격을 지닌다. 판넨베르크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지니는 특수성과 배타성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해명하고자 시도하여 보편 역사를 그의 신학의 기초 개념으로 설정하여, 신학의 과학화에 공헌하였다. “이성의 신학”은 판넨베르크의 전 저작을 덮고 있는 주제이다. 이성의 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가능하거나 또는 놀라운 것처럼 보인다.
루터는 이성을 창부라고 비난하거나 이성의 신학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판넨베르크의 이성의 신학은 루터가 매도한 그런 과거의 무미건조한 여러 이성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은 계시를 답답한 개념적 구조 안에 조직화하려고 한 루터주의적, 칼빈주의적, 또는 토마스주의적 정통주의의 이성주의가 아니다. 이성의 신학은 기독교적 경건에 대하여 아무런 위협을 주지 않는다. 판넨베르크는 한 사람의 크리스천이기 전에 한 사람의 현대인이며 이성적인 인간이다. 그는 자기가 현대인이며 이성적 인간이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신학의 합리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때로는 신앙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이름으로 이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는 신학 때문에 사회학, 생물학, 정치학, 심리학 등이 희생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판넨베르크는 지성적 접근과 더불어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시도한 신학자이다. 그에 의하면 신학이 권위주의적 개념과 계시에만 매달리게 될 때 신학은 학문으로서 소외될 수밖에 없으며, 만약 지성적 책임이 부정된다면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학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판넨베르크는 복음은 명백한 증거에서 출발하여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판넨베르크와 바르트 신학의 차이는 신학은 이성에 순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판넨베르크에게서 신학은 자의성과 주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이 확실성과 결부되기보다는 타당한 가능성에 결부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에 반대하여 예수는 “아래로부터”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나하나 증거를 검토하여 그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과제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언명한다. 그 과제란 일반적인 증거에 의지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진리를 해명하는 것이다.
2). 역사로서의 계시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보편성의 지평으로서 역사의 지평을 강조한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강조 때문에 그의 신학을 “보편사 신학”이라 부른다. 보편사 신학은 역사 과정 전체를 포괄적이며 전체적인 실재로 보고, 그 역사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운명에서 선취된 미래라고 본다. 판넨베르크는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서 출발하여 그 역사가 지니는 신학적 구조, 즉 신의 계시를 해명하려고 한다. 따라서 판넨베르크는 역사적 사실에서 신의 역사를 추출하려는 “역사 이성주의”에 서 있다.
현대 신학은 특히 불트만 학파의 전통에서는 예수의 “의미”와 예수의 역사적 사건을 서로 분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판넨베르크에게 이것은 불가능하다. 판넨베르크 신학사상의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는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책은 그의 이런 입장을 잘 드러내 준다. 판넨베르크의 역사와 계시에 대한 개념은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념이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은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도식으로 진술된다. 모든 사건을 역사라는 틀 안에서 보고자 한다. 판넨베르크는 역사 안의 혹은 역사를 통한 계시보다는 “역사로서의 계시”를 말하고자 한다. 판네베르크는 모든 인간이 참여하고 있는 역사는 계시적이라고 가르친다. 그의 계시는 종래의 계시사상과는 다르게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직접계시 대신 전체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적 행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발생한다.
판넨베르크 신학에서 하나님의 활동무대는 역사이다. 역사는 순수 개별적인 우연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역사의 우연성은 각각의 사건들 사이에서 보편적 의미연관을 갖는다. 신은 역사를 초월해 있으면서 역사의 개별적인 사건들을 가능케 하고, 이러한 개별적 사건들에 의미연관을 부여할 수 있다. 역사로서의 계시는 역상의 시작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서만 파악된다. 왜냐하면 역사의 개별적 사건들은 역사의 궁극적 의미가 아닌 부분적 의미만이 계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의 전체의 의미는 역사의 종말에서만 가능하다.
역사의 종말이 제시되지 않는 한 완전한 계시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역사의 종말을 이해하려고 한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보편해석학적 관점에서 역사의 완성이요 종말의 모형이다. 예수의 삶과 운명 속에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역사의 종말이 선취되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역사의 종말론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학적 열쇠가 된다. 예수의 부활사건이 역사의 종말이 되게 하는 판넨베르크의 해석학적 지평은 종말에서만 마지막 계시와 인간의 부활이 실현된다는 이스라엘의 묵시록의 역사개념에서 이해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수계시가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보편적 계시이다. 역사의 끝에서만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가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부활에서 역사의 끝은 역사 안에서 선취적으로 발생한다. 왜냐하면 역사의 끝에서만 죽은자가 다시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역사의 끝, 즉 역사의 종말이 선취적으로 일어난 역사의 자리가 되며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장이 된다.
판넨베르크의 신학은 신앙의 기초로서 역사적 예수의 계시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것은 신앙에 의해서 선포된 그리스도를 강조한 신정통주의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바르트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신학자”이다. 반면에 판넨베르크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신학자”이다.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신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성육신을 강조한다.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역사적 인간 예수로부터 출발하여 그의 신성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판넨베르크는 시종일관 역사에서 시작하고 역사에 관한 전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에 관하여 미리 어떤 것을 가정하지 않는다. 그는 증명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합리주의자이다. 그는 부활사건을 검토하여 이로부터 예수는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도출해 낸다. 예수의 신성이 인식되고 하나님의 계시가 발생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예수의 부활에서뿐이다. 부활은 역사로 인식되고 역사는 계시로 인식되면서 계시는 역사로서 이해된다. 계시를 역사로 이해하는 판넨베르크는 기독교신앙을 공식적인 증거, 즉 합리성에 비추어 결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해는 “이성의 신학”을 지향하려는 그의 의지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미래의 힘으로서의 하나님
몰트만은 하나님을 “질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분”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을 질적으로 새로운 미래의 약속으로 해석한 것이 몰트만 신학의 특징적인 방법론이다. 판넨베르크도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행동하시는 분으로 이해한다. 판넨베르크와 몰트만은 철저하게 미래에로 정위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양자는 하나님을 미래의 힘으로 해석하며, 신학에서 역사의 위치를 강조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이런 양자 사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몰트만의 강조와 부활의 사실성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강조에서 차이를 느낀다. 몰트만은 부활을 역사의 기대되는 종말로 보는 판넨베르크의 주장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런 차이는 판넨베르크가 미래 또는 미래의 힘으로서 역사적 예수의 부활 사건을 주로 언급하는 반면에, 몰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주로 언급하는 데서 오는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하나님의 현 실재에 대한 우리의 산 경험은 미래의 힘으로서의 경험이다. 하나님의 개념은 미래성에 있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행동하셔서 사람들의 기대와 동경을 미래로 향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미래로서 존재한다. 미래서(Futurity)은 이성, 역사, 계시, 종말, 부활의 개념과 더불어 판넨베르크의 신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개념이다. 예수가 선포한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는 미래가 현재로 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그의 통치적 관점에서 숙고된다.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존재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존재되어 가는 과정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종말에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판넨베르크 신학사상은 과정철학 사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과정철학에서 보는 바와 같이 “되어감(becoming)”만 있고, “존재(being)”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나 오그덴(Schubert M. Ogden)이 “과정 자체”를 강조한다면 판넨베르크는 “미래성”을 강조한다. 전자가 “미래에로의 움직임”이라면 후자는 “미래의 현재에로의 소급”이다. 판넨베르크에게 하나님은 종말에 가서야 계시되지만 과정신학에서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창조된다.
예수의 메시지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에서 도출된 하나님의 개념은 미래의 힘으로 이해된다. 미래는 우연성, 즉 예측불허의 비결정적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연성에 관계하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우연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인격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사건들의 우연성은 우연한 자기표현 배후의 통일성과 결합한다. 이 통일성(unity)은 연속성(continuity)과 일관성(coherence)을 의미한다. 판넨베르크는 삶의 사건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통일성, 연속성, 일관성에 대해서 묻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묻는 것으로 본다. 미래가 유한한 형태로 현재하게 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우연한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님의 미래성이다. 도래하는 하나님은 현재와 과거의 미래이다. 하나님은 창조 이전부터 미래가 아닌 적은 한 번도 없다.
판넨베르크는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하나님의 개념을 미래의 힘으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미래에 고착된 이 궁극적 힘은 하나님이라 불린다. 하나님은 미래의 힘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통치하신다. 예수의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하나님의 미래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는 미래의 힘에 의한 현재의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다.
판넨베르크에게 미래는 과거나 현재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그 성취를 약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는 전적인 미지수이거나 익명의 세력이 아니라 우리를 보살피시는 사랑이신 아버지이시다. 미래의 힘인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보편적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과거에 관계되지만 과거에 갇혀버리지 않는 사랑의 힘이다. 미래의 힘은 사랑의 힘이기 때문에 우리를 과거의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과거의 선을 옹호하고 완전한 인간성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실현시킨다.
판넨베르크의 미래의 힘으로서의 하나님론은 삶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미래의 힘으로서의 하나님론은 신학이 소외되지 않고 세계에 더욱 밀접ㅎ나 관련을 맺도록 하여 현대 지성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4). 종말의 선취로서의 예수의 부활사건
판넨베르크는 불트만과는 달리 부활하신 주(主)의 출현과 빈 무덤 사건을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인정한다. 그는 예수가 생존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들어 예수는 더 이상 죽음 속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예수가 역사적으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신앙과 전도가 헛된 것일 수밖에 없다. 판넨베르크에게는 신앙의 그리스도보다 역사적 예수가 선행한다. 역사적 예수의 부활은 판넨베르크 신학에서 역사의 끝의 선취적 사건이며, 부활 전의 예수의 주장에 대한 소급적인 힘을 실어주는 사건이다. 역사의 끝, 즉 종말에서 인간의 부활이 발생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완전히 죽었다가 완전히 부활한 사건은 없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한 인간이 완전히 죽었다가 완전히 부활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사건이야말로 역사의 끝을 예기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또는 역사의 끝을 선취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수의 부활사건은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의 부활로 그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판명되었다.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예수와 하나님이 계시적으로, 인격적으로, 본질적으로 일치하고 있음이 또한 판명된다. 예수와 하나님과의 이리에 대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는 역사의 끝인 종말에서 발생한다. 종말은 예수의 부활사건에서 선취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는 예수의 부활사건에서 발생한다. 바르트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계시는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에 해당하는 예수의 부활사건은 예수와 하나님이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우리가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예수의 부활을 고려할 때 가능할 말이다.
최종적 진리는 종말에서 나타나며, 사물의 진리는 오직 그 사물의 종말에서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판넨베르크 신학의 명제이다. 예수의 사건은 종말의 때가 우리의 시간 안에 침입하여 미리 일어난 사건의 원형이다.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새 생명에로 부활한 것이 그 증거가 된다. 우리는 선취적 또는 선견적 사건들에 참여함으로써 미래를 예견한다. 역사의 전체의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완전한 지배, 즉 미래에서만 비로소 계시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는 현재를 결정한다. 미래의 선취적 사건인 예수의 부활은 판넨베르크의 그리스도론의 근거가 되고 이 근거 위에서 그의 신학적 사상이 확장되고 전개된다.
3. 맺는 말
이성, 역사, 계시, 종말, 부활, 미래성 등은 판넨베르크 신학의 핵심을 말하는 특성들이다. 판넨베르크의 가장 위대한 공헌 중의 하나는 역사의 중요성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가 이성의 신학자로서 이성을 신앙에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추방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기독교 신앙의 자리로 삼은 것은 기독교 신앙이 미신이나 맹신 또는 경신에 빠지는 것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신학은 “아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자로 오인되기 쉬운 경향도 없지 않지만 그의 과학적 신학을 통해서 도출되는 신학적 결론들은 보수주의 못지않게 매우 복음주의적이다. 따라서 판넨베르크 신학은 신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르트가 자유주의에 있으면서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신정통주의로 나아간 것과 같이, 판넨베르크도 자유주의 에 있으면서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유주의를 통해 복음주의를 더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신학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주요 저서 및 편서
Wolfhart Pannenberg(ed.), Revelation as History, London : Collier- Macmilan Ltd., 1968.(『역사로서 나타난 계시』, 전경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92.)
Jesus-God and Man, London : SCM, 1968.
What is Man?, Fortres Press, 1970.(『인간이란 무엇인가?』, 허 혁 옮김, 성광문화사, 1985.)
Basic Questions in Theology, Vol. Ⅰ, Ⅱ, Ⅲ, 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70, 1971, 1972.
The Apostle's Creed, London : SCM, 1972.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 정용섭 옮김, 한들출판사, 2000.)
Theology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76.
Thelogy and the Kingdom of God, 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이병석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
Antbropology in Theological Perspective, Edinburgh : T & T Clark, 1985.
Metaphysics and the Idea of God, Edinburgh : T & T Clark, 1990.
Systematic Theology, Vol. Ⅰ, Ⅱ, Ⅲ, Edinburgh : T & T Clark, 1991, 1994, 1998.
Toward a Theology of Nature, Ted Peters (ed.), Westminster Press/John Knox Press, 1993.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에 관한 소개서
김영선, 『예수와 삼위일체 하나님』, 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96.
정용섭, 『말씀신학과 역사신학』, 천안 : 한국신학연구소, 1995.
<출처 : 말씀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