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회사(세계)

성경의 장묘문화에 대한 고찰

작성자靑野|작성시간11.04.30|조회수250 목록 댓글 0

 

 

성경의 장묘문화에 대한 고찰

 

  김중은 교수(장신대 구약학)
 
                      

           

   신구약 성경 본문에는 장묘(葬墓)문화에 관해 상세하고 체계적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여러시대의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에서 주어지는 단편적인 정보들로써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한편 지난 19세기말부터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성서 고고학 발굴의 결과로 성경의 역사현장인 가나안 지역과 고대 중동지역에서 수많은 무덤들이 발굴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스라엘인들의 무덤과 이방인들의 무덤이 확연히 구별될 만큼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 지역의 무덤, 유해나 유골의 형태, 부장품들을 보아서 그 민족이나 종교적 특성을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고고학적인 지식만으로는 이스라엘 장묘문화의 특징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성경의 이스라엘은 자신의 야훼 유일신 신앙과 큰 갈등 없이 가 시대마다 고대 가나안과 그 인근지역에서 행해지던 장묘문화에 동참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성경본문이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정보에서도 알 수 있는 바 나름대로 신앙생활과 연관하여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장묘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신 14:1 이하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 또 신약시대에는 “유대인의 장례법”이 있었고, 예수의 시신도 이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장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요 19:40 참조; “... according to the burial custom of the Jews", NRSV).

유대교에서는 역사적으로 오늘날까지 나름대로의 장묘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 글에서는 신구약 성경본문에 나타나는 장묘문화를 중심으로 살표보는 데에 국한하기로 한다. 그러나 먼저 성경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각 시대에 보편적으로 공유했다고 생각되는 장묘문화에 관해 성서 고고학적인 견해를 요약해서 살표본 후, 성경본문에 나타나는 장례문화의 내용을 간추려 정리해 보고자 한다.

 

 


I. 성경시대의 보편적 장묘문화

         

  전통 민속신앙과 근대로 오면서 유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의 상례(喪禮)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장묘문화의 방식과 절차를 볼 수 있다: 1)초종(初終) 2)습(襲): 소렴(小殮)과 대렴(大斂) 3)성복(成服) 4)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 5)치장(治葬)과 천구(遷柩) 6) 발인(發靷)과 반곡(反哭) 등 여기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다양한 제사절차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의 신구약 각 시대에 이러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장례법은 재구성할 수 없다. 다만 고고학적인 시대구분에 따라 각 시대에 나타나는 장묘문화를 이스라엘도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공유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1. 구석기 시대

 

팔레스틴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장례는 중기 구석기 시대(주전 15,000년경 이전)의 것으로 갈멜산의 지하 동혈들에서 발견된다. 시신을 지하 구덩이에 넣고 그위에 돌들을 얹어 놓는 형식이며, 시신은 무릎과 양손이 가슴에 닿도록 웅크린 자세이다.


2. 중석기 시대(주전 15,000-8,300 년경)

 

역시 지하 동혈들을 사용하였고, 시신은 옆으로 눞여 웅크린 자세가 나타나며, 두개골만 매장한 경우도 있다. 매장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피장자가 여성일 경우는 조개껍질, 뼈, 돌로 가공된 장신구들이 함께 드러난다. 무덤위에는 돌을 세워 표시를 해 두었다.


3. 신석기 시대(주전 8,300-4,500 년경)

 

고인돌(dolmen) 무덤 양식이 출현한다. 또 여리고 지역에서는 가옥의 터 아래에 유골들을 매장했다.


4. 동석기 시대(주전 4,500-3,100 년경)

 

팔레스틴 해안지역에는 새로운 장묘문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토기로 가옥구조를 본떠서 만든 뼈상자(일종의 골호)이다. 유골을 이 토기골호에 담아 사암(砂巖) 벽에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동굴에 보관했다. 또 큰 옹기에 시신을 넣어 가옥의 터 밑에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5. 초기 청동기 시대(주전 3,100-2,200 년경)

 

무덤이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진다. 이 시대 무덤은 주로 팔레스틴의 석회암 층에서 지면으로부터 수직갱도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옆으로 원형 또는 사각형의 묘실에 이르는 구조를 보여준다. 부장품으로 다양한 토기그릇들이 있고, 그릇에는 음식물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다.  


6. 중기 청동기 시대(주전 2200-1550 년경)

 

여러 형태의 무덤 양식들이 있다. 초기 청동기 시대를 이어 여전히 지상에서 석회암에 수직갱을 뚫고 다시 옆으로 묘실을 만든다. 시신은 돗자리 같은 깔개나 나무 판자위에 반듯이 뉘었다. 비녀 머리핀(toggle pins)들이 발견되며, 다양한 일상 도구들(화장품을 담는 도구, 빗, 장식상자, 바구니 등)도 볼 수 있다. 또 바위를직접 파서 묘실을 만들기도 했다. 보통 한 무덤에 40구 까지 사용할수 있으며, 새로 매장할 때 자리가 없으면,이전의 시신 유골은 한쪽 으로 모아 쌓아 두었다. 이 시대 특이한 것은 봉분을 갖춘 무덤양식(tumulus)도 나타났다. 시신을 매장한 뒤 흙과 돌로써 높이와 지름이 각각 3-4m 되는 봉분을 쌓았고, 다수의 토기들과 무기류가 부장품으로 드러났다.


7. 후기 청동기 시대(주전 1,550- 1,200 년경)

 

수직 또는 경사진 계단식 갱도를 입구로 하여 묘실로 연결되는 무덤양식이 보편화되었다. 하나의 묘실은 계속해서 사용되었고, 많은 토기류가 드러난다.


8. 철기시대(주전 1,200-600년경)

 

과거에 사용되던 자연 또는 인조 동혈이나 석실묘가 재사용되었다. 이 시대의 새로운 발전은 여러개의 방을 갖춘 묘실이다: 지상에서 지하로 계단을 만들어 전실(前室)에 이르고 여기서 여러 묘실들로 연결된다. 묘실은 그 벽면의 둘레에 유해를 안치하는 대를 만들었고, 어떤 묘실에는 대 대신 벽을 파서 그곳에 유해를 안치했다. 이러한 석실묘 형태가 제2 성전시대 가장 일반적인 무덤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일반 평민들은 석실묘를 사용하지 못하고, 평토장을 했다고 본다.


9. 바벨론 포로기, 페르시아, 헬라, 로마 시대(주전 600-주후 70년경)

 

바벨론과 페르시아 시대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고, 부장품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알 수 있다. 주전 3세기 헬라시대 부터는 카타콤(the catacomb) 방식의 무덤형태가 새로 나타나며, 여기에는 무덤비문과 벽화 장식도 등장한다. 로마시대 이후 예루살렘 주변 무덤들에서는 석회암으로 만든 수많은직육면체 유골함들(ossuaries)이 드러나며, 이것은 유해의 살이 다 내린 다음 유골을 수습하여 보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피장자의 이름과 함께 단순한 기하학적 장식 무늬가 새겨져 있다.


   화장(cremation)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이전 시대에 게제르(Gezer, 게셀)과 예루살렘에서 나타난다(“Burial", Dictionary of the Bible, ed. by J.L. McKenzie, Macmillan, 1965, 108쪽 참조).

구약시대 전염병이 돌때는 비상조치로서 화장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암 6:10).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보은하는 뜻으로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수습할 때 살과내장은 불태우고 그 유골만 매장한 것으로 이해된다(삼상 31:11이하). 그러나 이러한 장례방식은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신화장의 금지사상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도 있다(암2:1). 일찌기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화장이 행해졌으며, 셈족과 페니키아인도 일부 화장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은 미개지역에서는 드물고 고도의 문화지역과 계급사회에서 성행되었다. 그리스, 로마에서도 화장과 토장이 병용되었으나, 주후 200년 경 부터는 화장제도가 폐지되었다. 화장 선호의 이유로는, 시체 부패에 따른 불쾌한 모습을 보이지않기 위함, 영혼이 시체에서 빨리 빠져나갈 수 있게하기 위함, 영혼의 옛 거처를 파괴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일에 자극을 주기위함 등이 거론된다 (”화장“, 학원대백과사전, 32권, 306-7쪽 참조). 모세 율법의 사형 방법으로 불태워 죽이는 것이 있으며(레20:14; 비교, 참38:24; 수7:25), 죽은 자에게 분향하는 것은 화장과는 상관 없다(렘34:5; 대하16:14; 21:19 등). 이스라엘 시대 팔레스틴에서는 많은 무덤들이 발굴되었으나 시신을 불에 태운 화장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성경시대 가장 일반적인 장례는 석회암에 형성된 자연동혈이나 인조 석실묘를 사용한 것이다. 한 동굴에서 필요에의해 확장이 생겨났고, 새로운 석실을 파서 사용하는 데로 발전했다. 이러한 동굴묘실의 무덤형태가 성경시대 전체에 걸쳐 사용되었다.그러나 석실묘는 그 비용문제 때문에 주로 상류층에서 사용했고, 일반 평민들의 장례는 땅을 얕게 파서 묻는 평토장이었다. 무덤은 일반적으로 주거지나 성읍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진 장소에 사용했다. 유해는 보통 반드시 누운 자세이다. 가나안과 이스라엘 시대를 일관하여 무덤에서는 부장품이 드러나며, 여기에는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모든 종류의 가재도구들이 있다(다량의 토기그릇 종류, 무기류, 인장, 부적 등). 유해는 평상복을 입혀서 매장한 것으로 본다(머리핀, 장신구와 함께). 왕과 상류층 귀족은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물품들이 발견된다. 장례의 부장품은 내세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II. 성경본문에서 보는 장묘문화

 

   구약에서는 두 집단에 관해서만 규칙적으로 그들의 장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첫째는 족장들의 장례에 관한 것이고(창25:8-10; 35:29; 49;29-32 등),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의 장례에 관한 것이다(왕상14:31; 16:28등). 모세 율법에서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었으며(레22:4; 민9:6-7,10; 민19:11-22 참조), 제사장들과 특히 대제사장은 시체에 접촉해서는 않된다(레21:1, 11 이하).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성경의 교리이다(창3:19).

 


1. 무덤의 종류

 

1) 가족묘. 아브라함의 가족묘인 헤브론의 막벨라 굴은 자연 동혈을 이용한 것으로서 중기 청동기 시대의 무덤양식이다. 기드온(삿8:32),  삼손(삿16:31), 아사헬(삼하2:32), 아히도벨(삼하17:23), 기스(삼하21:14) 등의 가족묘(왕상13:22 참조)가 언급되었다.    

 

2) 그러나 일반 평민은 평지에 토장했다. 예루살렘의 경우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에 매장했다(왕하23:6; 렘26:23; 쿰란의 경우 등 참조).

 

3)왕들의 묘실은 수도 성읍안에 썻다(유다의 경우: 왕상2:10; 11:43 등; 이스라엘의 경우: 왕상16:6, 28; 22:37; 왕하10:35등; 비교, 대하 16:14; 21:20; 24:25; 28:27; 느3:16; 행2:29 등).

 


2. 무덤의 위치: 일반적으로 거주지 밖에 있다.

 

1)동굴(창23),

 

2)나무 밑(창35:8, 상수리나무 아래; 삼상 31:13, 에셀나무 아래), 

 

3) 성읍내, 평지 밭(수24:30, 32),

 

4)집터 아래(삼상25:1).

 

이사야는 바위에 새 무덤을 파놓은 셉나를 경고했다(사22:16).예수님의 무덤은 골고다 근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정원에 파 놓은 묘실이었다(마27:60; 요19:41; 20:5).입구는 돌을 굴려 닫는 식이고(막15:46), 시신을 안치하는 석상을 설치하였다(막16:5-6; 요20:12 등).

 


3. 장례식:

  

1) 죽은 자의 눈을 아들이 손으로 감게한다(창46:4). 애굽식의 미이라 장례는 야곱과 요셉에게서만 나타난다(창 50:1-14; 50:26). 야곱은 막벨라에 묻혔으나, 요셉(수24:32)과 라헬(창35:20)은 각기 다른 곳에 묻혔다.

 

2) 시신은 일종의 들 것 상여에 실어서 무덤으로 운반한다(삼하3:31;눅7:12).

 

3)피장자는 평상복을 입힌다. 수의(마27:59; 요11:44; 19:40 등)는 로마시대부터 사용되었다(“Begraebnis", von G.Fohrer, BHH, 1962, 212쪽).

 

4)압살롬은 죽기전에 자신의 기념비를 세웠다(삼하18:18). 야곱은 라헬의 묘에 비석을 세웠다(창35:20). 웃시야 왕의 돌로된 뼈상자나 셉나의 바위 묘실에는 피장자의 이름을 새기고 “열지 말라”는 경고문이 새겨져있다.

 

5) 애곡: 가족과 특히 여자들, 전문 애곡인이 동원 되었다(암5:16-17; 렘9:17-22 등). “키나”(3+2)율에 따른 애가(조가)를 불렀다(삼하1:19-27; 3:33이하; 대하35:24-25 등). ①애곡기간 30일(신34:8), 7일간(삼상31:13) 등 ②옷을 찢음(창37:34) ③상복 착용(왕하6:30) ④두건과 신발 벋음(겔24:17) ⑤수염을 가림(겔24:17) ⑥얼굴을 가림(삼하19:5) ⑦머리에 흙먼지를 뿌림(수7:6) ⑧머리털과 수염을 깍음(암8:10) ⑨자해(렘16:6) ⑪칠일 금식(삼상31:13) ⑫ 상가 음식(렘16:7).

 

6) 장례식은 가능한한 임종 당일에 행해진다. 구약시대 우리가 아는한 시신에 대한 특별한 매장 준비는 없었다. 범죄자도 처형후 장례를 허락했다. 매장되지 못하는 것은 저주받은 것으로 여겼다(신28:26; 왕상21:23이하; 사34:3; 66:24; 렘7:33 등). 신약시대에는 시신을 씻었다(행9:37). 예수의 시신은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따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고, 기름과 향유를 발랐다(요19:39이하; 눅23:52-56 등).

 

7) 일반적으로 관을 사용하지않았다(입관은 창50:26에서 보는바와 같이애굽 풍속이다).그러나 팔레스틴에서 (특히 페니키아 지역)에서 석관이 사용된 경우가 있으며, 불레셋 지역에서는 사람의 형태의 토관을 사용했다. 어린이의 시신은 옹관묘에 매장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점차 시신을 관에 넣은 경우가 증가하며, 대략 1년후 살이 내리면 유골을 모아 석기 골함에 넣어 보관했다.

 


4. 화장

 

화장은 비이스라엘 주민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팔레스틴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시체를 불태워 훼손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며(암2:1), 제단을 훼손할 때(왕상13:2) 나타난다.다만 범죄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경우가 있었다(fp20:14; 21:9; 창38:24; 수7:25 등).

 


5. 죽은자에 대한 제사와 분향:

 

죽은자(주로 조상)을 위한 제사가 실제 어느 정도로 행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신26:14; 시106:28; 집회서30:18; 토빗서4:17 등). 그러나 미신과 연관된 조상제사나 조상의례(또는 사자의례)는 성경적 신앙의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죽은 왕들과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일이 있었다(렘34:5; 대하16:14등).

 


 

 

참고문헌:

 

1.“Burial", The Archaeological Encyclopedia of the Holy Land, 3rd ed., ed, by

 A.Negev,Prenyice Hall Press,1990, 68-73쪽.

2."Begräbnis", G.Fohrer, BHH, 1962,211-212쪽.

3.“상례(喪禮)”, 학원세계대백과 사전15, 학원출판공사, 1994, 568-570쪽.

4.“화장(火葬, cremation)”, 학원세계대백과사전 32, 306-7쪽.

5.“Grab", Lexikon zur Bibel, hrsg.von F.Rienecker, 519-522쪽.

6.“Bestattung", TRE 5, 734-743쪽.

7. “Burial", Dictionary of the Bible, ed. by J.L.McKenzie, Macmillan,1965, 108-110쪽.

8. 김중은, “조상제사문제에 대한 성경적 조명”, 교회와 신학(2000, 가을호 제 42호), 12-24쪽.

 

 

<출처: 철마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