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과 핍박 중에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
- 북한의 지하교회
1945년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교회를 말살하려는 핍박을 가해왔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에서 기독교를 핍박한 북한의 악랄함은 근대 세계 역사상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성도들의 믿음을 환란이나 핍박이 결코 무너뜨릴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믿음을 지키며 고난 당하는 북한 성도들과 교회는 어떤 상황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교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근 모퉁이돌 선교회에 모여진 1950년부터 2005년까지의 15,657명의 순교자 자료를 보면 혼자, 가족과 함께, 그룹으로, 그리고 네트웍을 형성하며 지하교회가 유지된 성도들의 귀한 간증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핍박받는 교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 보며 통일을 예비하고자 고난 가운데 있는 다양한 교회구조의 유형을 정리하며 그들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1. 혼자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복음을 철저히 제한하는 북한의 상황에서는 혼자서 믿음을 지키는 유형이 가장 많다. 그러나 순교자의 숫자는 예상보다 적은 209명에 불과하다. 이는 예수 믿는 것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죽음을 염두에 둬야 하는 북한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대체로 혼자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이 믿음을 갖게 된 동기는 스스로 혹은 전도 그리고 부모로부터 신앙유산을 물려받은 방법 등이다. 보통은 가족이나 이웃의 전도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조부나 부모님이 믿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스스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우연한 기회에 방송 채널을 돌리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받은 성경을 받아 읽다가 직접 성령의 감동에 의해 스스로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게 된다.
실제로 평양에서 정치장교로 활동하던 심주일 장교는 1995년 1월, 외사과에 있는 친구가 중국에 다녀와 건네준 성경을 받아 읽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혼자 성경을 읽다 하나님을 믿게 된 심주일 장교는 북한에서 속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 겉으로는 노동당의 정치장교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을 늘 긴장하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 하나님의 이야기를 꺼내게 될까봐 두려웠다. 이러한 어려움은 북한에서 믿음을 지키는 모든 성도들이 느끼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당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속사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혼자 믿음을 지키는 것은 자신만 조심하면 안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믿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줄 믿음의 동역자가 없어 건강한 믿음 생활을 유지해 가는 것이 힘든 것이다.
중국에 와서 예수를 믿고 북한으로 돌아간 성도들이 가장 먼저 호소하는 어려움이 중국에서처럼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못하고, 믿음과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동역자가 없어 힘들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한에서 혼자서 은밀하게 믿음을 지키는 북한의 성도들에게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서 서로를 위로하고, 세워주면서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형성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섬기는 일들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나아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도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성경과 성경공부에 필요한 교재와 찬양집 등과 북한 상황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방송을 통해 북한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예배하면서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공급과 섬김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더욱 힘을 얻고 건강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게 될 것이다.
2. 가족이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
가족이 모이는 믿음의 공동체는 두 가지 유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해방 전부터 예수를 믿었던 분들이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면서 지금까지 가족구성원들이 예수를 믿는 경우이다.
북한은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2년간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을 실시하여 이른바 불순분자 색출·처단이란 명분하에 대거 숙청했다. 이를 계기로 전체주민에 대한 성분을 조사하고 출신성분에 따라 주민을 분류하는 계급정책을 수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단행하여 대다수의 성도들이 발각되어 추방 당하거나 처형을 당한 순교한 성도들이 많았다. 그런 고통 속에서 자녀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어 적어도 가족들이 모여 예배하며 살아가게 하였다.
북한에서 조상들이 기독교를 믿었던 후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명예와 유익함을 빼앗기는 것을 의미한다. 산간오지로 추방을 당하고, 직업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으며, 탄광같은 곳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그 후손들 또한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상급학교로 진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런 사회체제에서 믿음을 지켜오는 이들의 고초를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자녀세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 있다. 이 믿음이 65년이 넘는 세월동안 북한에서 계속되고 있다.
두 번째는 1995년을 전후해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왔었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돌아가 가족에게 전하여 생겨난 믿음의 공동체이다. 탈북해 복음을 듣고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들 가운데 적극적인 복음의 투사로 헌신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과정에서 복음이 활발하게 전해지고 확장된다. 이렇게 복음전하는 과정에서 고발이나 발각되어 순교를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 등에 갇히는 성도들이 많다.
2003 자강도에 사는 김순옥(가명)은 아들, 딸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중국에 건너와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성경공부를 하다 발각되어 23살의 딸아이가 잡혀 북송되었다. 곧 바로 24살의 아들도 북한에 복음을 전할 결심을 하고 돌아가 얼마되지 않아 잡혀 감옥에 갔다.
아들은 2년의 감옥생활 중 거의 죽게 되자 병보석으로 풀려나 남동생 가족을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아들은 다시 동생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
이 소식을 듣고 김순옥 성도는 “하나님, 내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아들이 감옥에서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죽게 하여 주시고, 살아 감옥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며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지금 북한의 OO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다. 북한에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성도들을 통해 더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갇혔는데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켜 주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마치 예루살렘에 가서 당할 어려움을 알면서 그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사도바울과 같은 복음의 전사들이다.
오늘도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이들이 흘리는 순교의 피와 수고로 북한에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단했던 사무엘과 같이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의 공동체가 북한 안에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무릎으로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엎드려 기도할 때 주께서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행하라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며 실행해야만 한다.
3. 그룹의 교회공동체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유무는 한국교회 안에서 논쟁을 일으켜온 화두였다. 이러한 논쟁이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탄압과 감시가 철저한 북한에서 교회공동체의 존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은 그 모든 불가능을 뛰어 넘어 북한 안에 교회공동체가 있음을 오래전부터 확인시켜 주고 있다. 모퉁이돌 선교회가 1985년부터 ‘북한선교’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그 시기에 북한선교의 필요와 사명에 대해 한국교회에 외칠 수 있었던 것도 살아있는 믿음의 성도들을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1986년 9월에 북한을 방문했던 한 일꾼이 있는 친척을 방문했다가 백두산 기슭에 있는 성도들의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산을 따라 2시간을 걸어가니 움막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18명이 모여 예배하고 있었다.
81세된 할머니가 예배를 인도하는데 성경도 없었고, 찬송도 읊조리듯 작은 소리로 불렀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하는 일꾼에게 할머니는 27명의 성도들 이름이 적힌 쪽지를 주시면서 “우리를 기억하며 기도해 달라요.”라고 말씀하셨다.
일꾼은 떨리는 손으로 그 쪽지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이런 모임과 함께 최근 복음을 듣고 돌아간 탈북자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공동체는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대체로 가족에서 친척으로 이웃과 인근지역으로 그 범위와 규모가 확장되는 형태로 교회가 형성된다.
자신의 신앙을 가족에게조차 말하기 쉽지 않은 북한의 상황에서 복음 전함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성도들을 통해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교회공동체가 북한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 일은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매순간 가슴 졸이며 떨리는 마음과 두려움으로 복음 증거하는 성도의 순종을 통하여 교회공동체가 북한 땅에 세워진다.
우리는 지금 북한에 이러한 교회공동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에도 중국교회와 같은 역사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모든 선교사들이 쫓겨났고, 교회는 핍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혹독한 문화혁명의 시련기를 지나면서 심지어 삼자교회까지 문을 닫고야 말았다.
이것을 본 세계교회는 “이제 중국에서 교회는 사라졌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끝나고 1978년 12월에 개최된 ‘제 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를 통해 1979년부터 등소평이 주창한 개혁개방정책 이후, 교회가 문을 열었을 때 지하에 숨어 자생하며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이 약 2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본 세계교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독한 고난 속에서 믿을 수 없는 교회부흥이 중국교회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비밀한 은혜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중국교회와 같은 부흥을 고난 중에 있는 북한교회를 통해서도 능히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그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는 그림자를 지금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이다.
4. 네트웍으로 된 교회공동체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하나님은 북한에서 개인에서 가족 그리고 한 지역의 교회공동체에 멈추지 않고 네크웍을 형성하는 교회로의 확장을 증명하고 계신다. 이러한 교회는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 북한의 상황에 합당한 방법들을 통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한 마을이나 지역을 넘어 네트웍으로 교회가 형성된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 4월, 북한에서 온 성도를 만나서이다. “1996년 당시, 나는 함경북도 청진에 살았슴다. 우리 집이 먹고 살기 어려운 것을 알게 된 자강도의 작은 어머니가 ‘네가 혜산에 와야만 살 수 있으니 꼭 오라’고 당부해 찾아갔슴다. 처음 작은 어머니를 만났는데 어찌나 확신에 차서 힘 있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지 그 자리에서 단번에 예수를 믿는 영접기도를 했슴다. 혜산에 갔다가 돌아 올 때면 작은 어머니가 편지를 써 주시며 청진의 OO에게 갖다 주라고 해서 심부름을 했는데, 후에 그것이 성경말씀을 손으로 베껴 쓰고 성경공부 할 내용을 적어서 보낸 것이었슴다.”
정순성도는 장사를 하면서 혜산의 작은 어머니를 찾아가 말씀을 배우고 돌아와 제일 먼저 남편에게 복음을 전했다.
“내가 믿음이 확고하고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 5가정나 되었슴다. 하루는 작은 어머니가 ‘정순(가명)아 너와 같이 모이는 사람들이 여러 곳에 있다. 혜산(7명), 길주(숫자 정확히 모름), 청진A(8명), 청진B(8명), 함흥(약15명)에 있어’라고 했슴다. 그 때 작은 어머니는 지위도 대단했고, 배짱도 대담하게 복음을 전했슴다. 그런데 1999년 작은 어머니 집에 있는 성경책 등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슴다. 나도 공범으로 같이 잡혔는데 작은 어머니는 온 몸이 으스러지고 피가 터지도록 고문 당하면서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를 받을 때 마다 신앙고백을 자세히 적어서 핍박하는 보안원들을 전도하고자 했슴다.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아직까지 그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없슴다.”
여기까지 말한 자매의 목소리가 떨리며 눈가에 눈물이 그득하였다. 정순자매는 작은 어머니가 여러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대담하게 복음을 전하는데 높은 지위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하나님은 북한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이러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특심있는 신앙열정을 부어주시고,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셨다. 놀라운 것은 각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 네트웍을 형성하는 교회들이 세워짐을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안에 변화에 따라 통일을 준비하며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동하는데 자유로운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면서 그들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성도들의 네트웍이 형성되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지역에서 네트웍을 형성하는 교회 공동체는 복음으로 인해 감옥과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아니함을 북한의 지하교회성도들은 증명한다.
지금도 순교의 피가 뿌려지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의 고난의 뒤에 있는 주님과 여러 지역을 뛰어넘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굶주림의 한계상황에 달해 오직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북한주민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초대교회와 같이 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모든 것을 통용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얼어붙은 그 땅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게 하는 놀라운 역사이다.
위에서 북한의 성도들이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켜가는 여러 유형들에 대한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북한성도들만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를 믿으며 가족에게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형제로부터 들었던 “저도 카타콤에서 살아요!”라는 말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을 고집하는 집안에서 예수 믿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부모님과 몇 년째 힘겹게 싸움하는 중이라 하였다.
어찌 이 형제 뿐이랴! 고난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북한의 성도들을 통해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도 소망 중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통일에 합당한 교회가 북한에 폭발적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준비함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모퉁이돌 선교회를 통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와 함께 많은 성도들의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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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돌 선교회 : http://www.cornerstone.or.kr
<출처: 주님 오시는 발자국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