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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간증

십자가에 대한 예화

작성자靑野|작성시간11.01.08|조회수2,55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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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그 숲속 작은 새>

 

 

 

   십자가에 대한 예화 모음

 

 〈성구와 금언〉
 
  ★ 우리는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롬 6 : 6).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 : 20).
  ★ 또 십자가로 이 둘은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 : 16).
  ★ 갈 5 : 24, 6 : 14,
  ★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고 했다(윌리암 펜).
  ★ 나는 어떤 날 죽었다. 세상이나 친구들의 칭찬이나 책망에 대하여도 죽었다(죠지 물러).
  ★ 십자가의 신학은 빛의 신학이다(루터).
  ★ 중생한 성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난자다(막스웰).

 

 

〈실 화〉

 

★ 캐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할 때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택사스에서 성회를 인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왔었다.
  그러나 그 성회는 역사가 없었다.
  이유를 알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데 독일에서 찾아온 자기가 잘 아는 평신도 한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왜 역사가 없었는줄 아십니까? 오늘 설교에는 십자가가 빠졌습니다." 이때부터 빌리 그레함은 결심하기를 설교에는 십자가를 증거하기로 했다.

 

  ★ 옛날 로마시대에는 죄인을 잡아서 사형을 시킬 때는 이상한 방법으로 사형을 시킨다. 어떤 방법인가하면 죄인을 말뚝에다 팔과 다리를 묶어 놓고 난 다음 죽은 시체를 갖다가 정면으로 마주 대어 묶어 놓는다. 즉 입과 코, 눈 가슴 할 것 없이 마주 묶는 것이다.
  그래서 놓아주면 죽은 사람의 독이 옮겨져 산사람이 죽게 된다고 한다.
  이 방법은 십자가와 같이 가장 악날한 방법의 하나이다.

 

  ★ 서울에서 어떤 30대 된 노처녀가 결혼을 하여 잉태된 아이가 이상이 있어 산부인과에 가보았더니 복개수술을 해야 아기고 살고 산모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피검사를 해보니 보통있는 혈액형이 아니고 이상한데 이런 피를 가진 사람은 만 명에 하나정도 밖에 없는 희귀한 혈액형이었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광고를 했으나 타나지지 않았다. 8군에서 발간하는 미군신문에서 광고를 본 한 미군병사가 달려와 피를 검사하니 같은 형의 피였다.
  미군병사는 여자에게 자기 피를 빼서 수혈하라고 허락하였다. 그런데 미군이 죽었다. 미군병사의 피를 받은 여자는 살고 어린애도 살았다.
  예수님의 피는 인류를 구원하는 피이다.

 

  ★ 옛날 중세기에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십자군이 회교군에게 쫓기어 어느 통나무 다리위로 피래 갈 때에 다리가 오래돼서 썩은 나무 한 토막 때문에 무너질 위기에 있음을 발견한 한 병사가 내려가서 자기 다리를 통나무 대신 끼워놔서 많은 사람이 무사히 건너가고 그 병사는 다리가 찢기고 문드러져 죽었다.
  이 병사는 동료들을 위해 진 십자가였다.

 

  ★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자로 존경받은 성 까일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본래 아덴의 한 왕자로서 태어났지만 주를 믿는 다음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직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사랑하던 암사슴 하나만은 자기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 가서 다닐 때도 이 암사슴과 같이 다니고 또 암사슴의 젖을 짜서 먹고 초극목피로서 생활을 하면서 산에서 깊이 기도생활을 했다.
  그때 마침 불란서의 어떤 왕이 사냥을 하기 위하여 깊은 산 속에 들어갔는데 한 골짜기에 가보니까 바위아래 사슴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이 사슴을 향하여 겨누어 쏘았다. 그때 까일스가 조용히 묵상을 하고 있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어른 눈을 떠보니 자기가 사랑하는 사슴을 향하여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손을 들어 막았으나 손을 뚫고 나가 사슴에게 얕게 박히었었다.
  그래서 사슴은 약한 상처를 입었을 뿐이었다.  불란서 왕이 이런 것도 모르고 사슴이 죽었거니 하고 헐떡이면서 뛰어왔다.  와보니 어떤 남루한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데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왕은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을 연상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사과하고 다시는 사냥을 안 했다고 한다.  이 왕은 피 흘리는 손을 보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만행을 뉘우쳤다는 것이다.

 

  ★ 크리스챤 버나드 박사는 심장이식 수술을 창안한 사람으로 어떤 환자가 자기의 낡은 심장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만일 심장이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을 생각하고 자기의 낡은 심장을 들여다보다가 버나드 박사를 바라보면서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몸에 관련된 것이나 영혼에 관련된 것이나 우리에게 심장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심장이 약하면 피 순환이 잘 안되고 피 속에 노폐물을 걸러낼 수가 없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맑힐 수 없는 것이다. 곧 십자가에 흘린 피이다.

 

  ★ 로버트 지리 박사는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면서 맨 처음 갈보리를 찾아갔을 때 느꼈던 경험을 매우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다. 그는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안내자를 따라가다가 갈보리 언덕에 오를 때는 먼저 올라갔다. 그가 정상에 올라가 예수님이 피를 쏟으신 곳에 섰을 때 위대한 설교자의 감정이 복받쳐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안내원이 뒤따라와서 선생님 전에 한번 이곳에 왔던 일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대답 없이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리 박사는 마음속으로 예 약 2천년 전에 이곳에 왔던 일이 있지요 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 이곳에 오셨지요 어리석은 자들에게 끌려서 말입니다.

 

  ★ 한 소년이 의사로부터 자기의 누이동생에게 약간에 피를 제공하여 주면 위독한 누이동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6살 난 누이동생은 매우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소년은 수년 전 바로 지금 동생이 앓고 있는 그 병에 걸렸다가 나은 일이 있다. 그러므로 누이동생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은 면역성을 가진 오빠의 피를 받으면 된다고 한다.
  두 형제는 같은 혈액을 가졌으므로 오빠의 피를 받을 수 있고 동생에게 피를 헌혈할 수 있게 되었다.
  곧장 두 어린이는 수혈을 하게 되었다. 오빠는 창백하게 되지고 동생은 핏기가 발그레하게 올라왔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눈이 마주 치자 싱긋 웃었다.
  오빠인 소년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사 선생님 나는 언제쯤 죽게 되나요." 하자. 동생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오빠에 생명을 내가 빼앗는구나하고 소년은 자기의 생명을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콘스탄티 황제에게 나타난 십자가
  로마제국은 주 후 64년부터 313년까지 기독교인을 핍박하였다.
  주 후 313년에 데오크레틴 황제가 죽자 각지방에 있던 총독들과 왕자와 정권싸움이 일어났다. 이때 황제의 아들인 콘스탄틴이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갔을 때 그는 환상 중에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한다. 그 십자가 아래는 분명히 라틴말로 "너는 십자가의 깃발로 승리하리라."는 글을 보았단다.
  그 때 그는 거기서 엎드려 회개하고 부왕이 핍박하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전쟁은 10년 간 계속된 끝에 승리하여 대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이때가 바로 주 후 313년 로마제국을 통일한 첫 사업으로 핍박당하던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정하였다. 이는 그가 본 환상의 십자가의 승리였다.

 

  ★ 얼마 전에 필자는 한 선교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케냐 그들의 선교병원에 발에 상처를 입고 찾아온 한 소년이 지혈을 시키지 않고 먼길을 걸어와서 핏자국이 땅위에 남게 되었다.  병원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마침 도착하였다.
  조금 후에 어머니가 급히 찾아 오셨는데 어머니는 그 아들의 핏자국을 보고 몸조리며 뒤따라 온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일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으나 그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것은 그의 핏자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발자국만 딛고 가면 주님을 만날 수 있다.

 

  ★ 필리핀에 한 성도가 기도하기를 자기 병만 고쳐주시면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해 보겠습니다. 하고많은 재산을 모아 가지고 예수님 십자가 그대로 만들고 30관 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면서 쓰러지면 옆에 로마군병과 같이 채찍으로 때리게 하고 상처를 당하면 의사에 치료를 받으며 못을 손에 박고 발에는 노끈으로 맷다. 그리고 십자가에 높이 올려놓았는데 20초가 되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내리게 하여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9시간동안 고통을 당하시고 운명하였었다. 그 고통이 얼만 심하였을까?

  ★ 강원도에 도지사로 있었던 유성준씨가 내가 예수를 믿고 보니 진리가 밤송이 같다고 하였다.
  그 뜻은 십자가의 도를 상징한 말인데 처음 밤송이는 가시가 있기 때문에 누가 얼른 취하려고 생각지 않으나 다 익어서 저절로 벌어지면 누구나 그 밤을 취하여 껍데기를 벗기면 고수한 맛을 보는 것 같이 십자가의 도가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되나 믿고 보면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영생의 도리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 남미의 에콰도로 나라에는 미개하여 복음을 전해도 이해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20년 전에 다섯 명의 선교사가 가서 선교하다가 살해되었다.
  그런데 그 후 몇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게 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지금은 원주민들 가운데 그리스도께로 적지 않게 돌아와 예수 믿게 되어서 선교사들이 희생된 피의 댓가는 헛되지 않았고 살해된 그곳에는 예배당을 세웠다고 한다.

 

  ★ 안악골 망나니였던 김익두가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 믿고 구속의 진리를 깨달았다.
  하루는 「김익두 ○월 ○일에 죽어서 장사지냅니다.」하고 부고장을 돌렸다.  부고장은 받아본 사람들이 모두 못된 놈 죽었으니 잘됐다고 좋아했다.  김익두의 과거 불량자가 새사람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리 위함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교회 갔다 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죽은 김익두가 모질어서 귀신이 살아왔나? 의아스럽게 여겨 "당신 어떻게 된 거요?" 하고 물었더니  "예전에 못된 깡패가 죽고 예수 믿어 변화된 새사람 김익두 입니다." 하고 대답하더란다.

 

  ★ 어거스틴은 원래 방탕하였던 자이나 예수를 믿고 변화 받은 다음부터 전에 지은 죄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참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길을 가다가 옛날에 놀던 창녀를 만났단다. 여인은 어거스틴을 보자 따라오면서 "여보세요 당신이 어거스틴 아니요. 왜 요사이는 놀러 오지 않습니까?" 하고 유혹의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돌아보지도 않고 네가 전에 부르던 어거스틴은 이미 죽고 지금의 나는 예수님과 같이 사는 어거스틴이라고 마음속으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감사
미국의 흑백갈등이 깊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기차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백인이 칼을 던져 흑인을 죽이려 할 때 옆에 있던 백인 목사가 손을 들어 칼을 막아주었다. 칼은 목사의 손에 꼽혔고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싸움은 멈추어졌고 흑인은 목사의 희생으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느낀 흑인은 일생동안 그 목사의 곁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돕게 되었다. 종종 일에 싫증이 나면 흑인은 불평과 원망을 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목사는 칼맞은 자신의 손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 흑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는데 그 손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원한 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해야 한다. 그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상실하는 교회
내가 알고 있는 시골 교회의 발전과정을 보면서 나는 가끔 요즈음의 교회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그 교회가 세워진 것은 6.25전쟁을 어수선하던 때이고, 교회를 세운 주역들도 전쟁통에 피난온 피난민들이었다. 그들의 처지와 교회의 모습은 서로 비슷했다. 그때에 그 교회는 찬송 곡조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전도사님이 시무했다. 그의 설교는 자장가와 비슷했고 설교의 격식도, 내용도 빈약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바로 이 교회의 능력이었다.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교 인들은 정말 어리석을 정도로 단순한 십자가의 신앙을 붙들고 있었다. 토담 초가집에 멍석을 깐 예배당에 무릎을 꿇고 소리치며 기도하는 소리가 4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제 그 교회는 웅장한 예배당을 세우고, 격식에 맞는 설교와 예배가 있고, 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그 마을의 유지가 되었지만 지금 그곳에 가면 그 때의 힘이 없다. 그때의 능력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의 입은 성공 사례와 교회의 부흥과 거대한 예배당 건물을 이야기하지만 기도의 소리는 죽었고 그들의 눈은 생기를 잃었다. 나는 텅빈 예배당 구석에 앉아서 하나의 대답을 얻었다. 그들은 이제 유대인의 종교성도 찾았고, 헬라인의 지혜도 찾았으나, 그 대신 '오직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만을 알기로 하던 그 신앙'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교인들은 이제 격식에 맞는 설교와 예배와 거대한 예배당과 수많은 잘난 교인들에 가리워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잃었
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잃어 가는 어리석은 한국 교회는 차라리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진정 성령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예수님만을 외치는 교회로 다시 서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목수의 십자가 

어느 목수의 십자가 독실하게 예수를 잘 믿는 어떤 목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으로만 구원 받기에는 무엇인가 미흡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는 하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확실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 그위에 나의 공로와 선한 행위가 따라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말씀을 제시하며 설명해 주어도 어쩐지 믿음으로만 구원받기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출입문짝을 그 목수에게 맞추었습니다. 목수는 하나님의 집에서 쓸 성물이라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문이 다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목수를 찾아갔습니다. 완성된 문짝을 한참 바라본 목사님은 목수의 솜씨를 칭찬하더니 문득 생각이 난 듯 문작 위에다 사과 궤짝을 덧붙여 못을 잘 박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목수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잘 만들어 드렸는데 문짝에다 왜 사과 궤짝 나무판을 붙인단 말입니까?" 이때 목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걸작품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더하거나 감하여도 안됩니다. 다만 십자가를 믿으면 인간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내게 맞는 십자가
상점을 경영하는 한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자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상점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네 마음대로 십자가를 골라 보아라.”
그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골랐습니다. 한 십자가는 매우 아름다운 금십자가였는데 너무 무거웠습니다. 다른 것은 가볍기는 한데 표면이 매우 거칠어서 어깨에 상처를 입히기 십상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고르던 끝에 그는 방구석에서 자기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십자가 하나를 골랐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것은 바로 그가 처음부터 지고 있던 십자가였습니다.
고난은 성스러운 것입니다. 고난은 작은 부스러기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지워진 십자가에 대해 불평하지 마십시오.

 

붉은 십자가 외에는
에드워드 하이머씨는 유명한 조각가인 동시에 알프스 산의 등반가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마티호온이란 험한 정상을 오르지 못해 늘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이태리 등반대들과 함께 그 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등반대는 네 명의 등반가와 세 명의 안내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예정대로 모든 것 이 잘되어 그들은 드디어 그 정상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하이머 씨는 그 자신의 생애에 최고의 환희를 느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밧줄을 타고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두의 안내자가 먼저 밧줄을 몸에 감고 발 디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던 한 등반가가 비명을 지르며 선두 안내자에게로 덮쳐 내렸습니다. 이에 놀란 그 뒤의 두 등반가도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산장에 남아있던 두 안내자와 하이머씨는 밧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다시 중심을 잡도록 밧줄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밧줄이 힘없이 끊어지면서 네 사람은 4천 피트나 되는 빙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붉은 줄이 들어간 규격품의 알프스 클럽의 밧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무서운 사고를 일으킨 것처럼 우리의 구원에도 다른 대용품이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 어떤 밧줄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런 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끊어져 버림으로 구원을 잃게 합니다. 당신은 붉은 줄을 섞어 만든 밧줄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줄로 말미암아 분명히 거듭나야 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피가 나를 살리셨음을 믿습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날마다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비행기 사고와 십자가
오래 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산중턱에 비행기가 추락하여 여섯 명의 희생자를 내는 사고가 있었다.사고현장 가까이에
는 교회훈련센터가 있음을 알리는 68피트 높이의 철탑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AP통신이 전한 사고의 원인은 그 철제십자가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는데 그날 따라 그 십자가의 전등불이 꺼져 있었다
는 것이다.그 지역을 운항하는 항공기들은 십자가탑이 밝혀주는 불빛을 보고 그곳을 지나곤 했는데 그날은 불이 꺼져
있던 탓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불꺼진 십자가와 피없는 십자가는 언제나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다.예를 들면 십자군 전쟁도 그 중에 하나이다.도시마
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저 십자가들,도시를 뒤덮는 저 높은 십자가들,그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는 메시
지여야 하며 민족 구원의 등불이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피묻은 십자가의 원색이 바래고 장식용으로 전락한다면 십자가 때문에 존재하는 교회는 설자리를 잃고 말
게 될 것이다.고난주간에 즈음하여 십자가가 더욱 그리워진다.

 
십자가 위의 비둘기
다음의 이야기는 어느 목회자의 경험담이다.
어느날 밤 오십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 단순하게 춧점을 맞추어 함십기도로 집중해서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몇 시간인가가 흐르고 새벽무렵이 되었을 때 목사가 일어나 찬송을 시작하려는데 난데없이 강당 중앙의 십자가에 한 마리의 흰 비둘기가 날아와 앉았다.
의아한 목사가 이 비둘기가 웬 것이냐고 물었고 한 성도가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니 주님께서 보내신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모였던 다른 성도들도 입을 모아 "아멘!"하였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기쁨으로 들뜨게 되었고 목사 자신도 더 생각할 겨를없이 스스로 신령한 목사가 된 듯하고 기분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얼마전 중이 되겠다고 머리를 깎았던 한 청년이 일어서더니 "내가 집에서 갖고 와서 예배당에 날렸던 비둘기입니다."라고 하더니 다시 비둘기를 붙잡아 들고는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그 청년이 속인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속아 하나님과는 별개로 그날 밤을 기쁨에 젖어 보냄을 성도들은 서로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고 그 자리는 한참동안 어색한 채 지나갔다.

 

십자가
  
토마스 아 켐피스의 명저[그리스도를 본받아]에 이런 글이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대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를 볼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 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의 십자가의 고통을 좇을 것이니라"
 일본의 기무라라는 목사가 예수가 당한 그 고난을 보다 잘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교인들에게 밝혔다.
 그리고 못과 망치를 준비해 놓고 기도를 하는 중에, 어느교인이 그것을 치워버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외에도 예수의 고난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시도는 많았다. 어느 서양 청년은 실제 손에 못을 박고 매달려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무모한 짓이다.
 손바닥에 못을 한번 박아 보고 또 매달려 본다고 해서 그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을 알 수 있겠는가?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 다리
 
히 10:20; 골 1:20; 시 34:1; 갈 6:10
 
 가족과 함께 스위스에 살고있는 루이스는 어느 날 근처의 얼어붙은 호수를 어린 동생과 가로질러 가다가 얼음이 갈라져 틈이 생긴 곳에 이르렀다. 그 틈은 어린 동생이 건널 수 없을 만큼 폭이 넓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루이스는 자신의 몸을 엎드려 다리를 만들었다.
 어린 동생은 루이스의 몸 위를 걸어 그 틈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곤경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다리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의 다리가 되기를 요구받으면, "이것은 사랑의 행위지만 너무나 지독한 요구다."라고 항변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넘을수 없는 틈을 다리를 놓놓고자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십자가 다리처럼 커다란 희생은 할 수 없어도 수시로 작은 손길, 작은 다리를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다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십자가 사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우주 최대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 (love story)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고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 성서는 사랑의 편지, 성령은 사랑의 영, 우리는 그 사랑의 삼일성속에 빨려 들어온 사람들이다.
 성도의 기도란 사랑의 밀어, 전도는 사랑의 전달, 사랑의 중매, 찬송은 사랑의 노래, 그리고 십자가는 사랑의 드라마의 절정, 사랑의 고백, 사랑의 심장파열 사건이다.
 십자가는 예수가 하나님과 나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다가 죽은 곳, 예수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곳이 십자가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자
  
예수님과 그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있거니와 이 땅위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고자하는 사람은 많이 있으나 그와 함께 고난을 받고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읍니다. 그와 함께 만찬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금식을 같이 하고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기적에 경탄하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에게 핍박과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는 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 자기 자신을 숨기시거나 저들에게서 위로를 거두어 가시면 그들은 곧장 불평을 말하거나 낙담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다만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특별한 민족이나 위안을 위하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환난과 마음의 고통 가운데서도 최상의 위로와 기쁨을 누리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분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그들에게 위로를 전혀 내려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항상 주님을 찬양하고 언제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십자가 속의 보화
 
여러 해 동안 늙고 병든 부인을 신실하게 정성껏 돌봐준 간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부인의 모든 재산은 그 부인의 유언대로 아주 먼 친척에게까지 분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원의 희생적인 봉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간호원은 다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죽은 노부인이 남긴 크고 검은 나무 십자가를 전해받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간호원은 실망해서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곳에 치워놓았습니다. 그것은 별로 귀한 나무로 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후 어느 날 집안을 청소하던 중에 그녀는 그 나무십자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 십자가를 주워들고 과거를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 그녀는 그것에 열쇠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십자가는 열고 닫게 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녀는 노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왜 자기에게 작은 열쇠를 주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열쇠는 너무 작아서 맞는 자물쇠가 없었습니다. 그 간호원은 열쇠를 찾아서 십자가의 열쇠구멍에 맞춰보니 놀랍게도 꼭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 크고 검은 나무 십자가는 열려졌습니다. 그때 그녀의 눈앞에는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보석들은 이미 법적으로 그녀의 것이 되었으므로 그녀는 자기가 바랐던 것보다 훨씬 큰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십자가가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히 말해 줍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는 검고 추하고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아주 심한 중병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등이 그러한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또는 가정의 문제나 직장에서의 갈등.
 우리를 언짢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동료들이 검고 추한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에는 보배들이 숨겨져 이제 남은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여기에는 고통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십자가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형국의 고통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그분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이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다.이 십자가야 말로 그리스도의 사명이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
 
고 A.W.토저 박사에 의하면 한 젊은 신자가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으로 오래 믿은 신자에게 접근하였다. 그 성숙한 신자는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것은 세가지를 뜻한다. 첫째,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둘째, 그는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세째, 그는 자신의 앞으로의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세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첫째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크리스챤들이 한꺼번에 두가지 방향을 대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두마음이다. 그들은 천국엘 가기 원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 그들은 롯의 부인과 같다. 그들은 한 길을 달리고 있으나 또 다른 것도 바라보고 있다. 둘째로. 못박힌 자들은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그에게 끝이다. 커텐은 드리워졌다. 드라마는 끝났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의 종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그의 옛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끝난 것이다. 셋째로 못박힌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없다. 그는 더 큰 집이나 더 좋은 차를 꿈꾸지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끝낸 것이다. 그의 쇠사슬은 모두 끊어졌고 그 매력도 다 가버렸다. 이러한 세가지 면에서 당신은 십자가에 못박혔는가?

 

 십자가의 능력 
 검투사 시합을 보려고 콜로세움으로 몰려가는 군중들을 보기 위해 어느 날로마에 도착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텔레마쿠스?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날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는 무리에 휩쓸려 떠밀려갔습니다. 그는 두 명의 검투사가 한 사람이 죽기까지 싸우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두 사람이 더 나왔습니다. 텔레마쿠스의 영혼은 혐오감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경기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멈추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군중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검투사들은 그를 옆으로 밀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끼어들어서 그만두라고 애원했습니다. 군중들은 화가 나서 검투사들에게 그를 찔러 버리라고 소리쳤습니다. 검 하나가 번쩍이더니 무방비상태인 텔레마쿠스는 운동장에 쓰러지고 경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텔레마쿠스의 피가 주변의 땅을 물들이자 콜로세움의 맨 꼭대기 층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서 가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떠나가서 마침내는 그 큰 콜로세움이 텅비어 버렸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 경기장에서는 한 번도 다른 검투사 시합이 열린 적이 없습니다. 텔마쿠스가 죽었던 자리에는 이런 말이 쓰여진 십자가가 하나 서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영혼속에 온 세상의 소망이 놓여 있습니다.”

 

 십자가의 다리
  
여러 차례의 강도 상해죄를 저지른 두명의 범죄자들이 한 은둔자의 도움으로 회개하게 되었다. 그 두사람은 은둔자에게 자신들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어떻게 삶을 살면 좋을 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은둔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성지순례를 할 것을 권했다. 두 사람은 곧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어 길을 떠났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십자가의 무게가 대단했지만, 아직 그 정도를 짊어질 힘은 충분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어깨가 붓고 저려왔다.
 두 사람은 십자가를 변형시킬 생각을 해냈다. 그들은 어느 마을 목공소로 들어갔다. 한 사람은 십자가의 긴쪽을 잘라냈다.
 "자 이제 훨씬 짧아졌지만, 그래도 십자가는 십자가지."
 또 한 사람은 십자가의 두께를 반으로 쪼개어 두 개의 십자가를 만들더니 그 중에 하나는 바닥에 내려 버렸다.
 "자, 이제 훨씬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엄연한 십자가지."
 두 사람은 이제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먹을 것조차 찾기 힘든 사막 지역에 들어서자, 사정은 또 다시 악화되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사흘 동안 사막을 헤매었다.
 나흘째 되던 날, 그들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 도시를 발견하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그들은 예기치 않은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앞에 깊은 골이 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널 만한 다리는 아무 데도 없었다. 한 사람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리 십자가로 임시 다리를 놓읍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십자가는 길이가 너무 짧았고 또 한사람의 십자가는 길이는 맞았지만 두께가 너무 얇아 약했다. 그래서 그 두사람은 그 자리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우리도 가끔 우리의 십자가를 줄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가볍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는 것

 30년 동안 연극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맡은 안톤 레이지라는 유명한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형적인 미국 여행가들 중에서 모든 카메라 장비를 짊어진 어느 부인이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어 옮기는 자기 남편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보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그 부부가 무대에 접근하여 남편은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지만 그 십자가를 들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십자가를 가지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그 유명한 배우 레인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 여행가는 그에게“이것은 연극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사용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배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만일 내가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내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과 주님과 교회에서도 그와 같습니다. 내가 그러한 일에 아무런 값도 치루지 않는다면, 내가 피와 땀과 수고와 고통을 그 일에 쏟지 않는 다면 나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만일 내가 그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면 내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염두에 두어야 할 희생이며 값입니다. 그 희생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손과 하나님의 손에 먼지와 재로 돌아올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
 
가가와 도요히꼬가 어느 날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설교를 마친 다음 밖으로 나오는데 두 학생이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나는가가와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상 오늘 그분의 말을 듣고 좀실망했어. 별로 말을 하지 않더군.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보니 성경을 눈앞에 바짝 대고 겨우 읽더군.” 이 말을 들은 다른 학생이 말하였습니다.“자네는 그가 왜 성경을 그처럼 눈에 바짝 대고 읽는지 아나? 몇 년전 그가 고베의 빈민굴에서 살 때 한 거지가 그에게 하룻밤 잘 곳을 청했지. 가가와는 그 거지를 자기 오두막에 데려와 함께 자다가 그 거지가 갖고 있던 트라코마라는 눈병에 전염된 거야. 이 병 때문에 그는 거의 소경이 될 뻔했지. 그리고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에는 별로 많은 말이 필요없다고 생각해.” 가가와는 고아였습니다. 그가 폐병으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선교사의 도움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진실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대한 명상」이라는 책을 쓰면서 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된다”고 가가와는 말합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삶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삶이야말로 바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제목:십자가의 표준
 
잠 22:2; 룻 3:10; 시 49:2; 계 13:16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룻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22:2).
 이 성경의 진리는 어느 날 워싱턴 D.C.의 갈보리 침례교회에서 새교인을 받아들인 일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설명된다. 그 교회의 담임자인 그린 목사는 어느 주일아침예배 때 귀족이며 고위 법관인 찰스 에반스 휴즈와 함께 중국인 한 사람과 세탁부로 일하는 여자 한 사람을 새 교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기 앞에 어색하게 서있는 그들을 보고 그린 목사가 말했다.
 "친구 여러분,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맨 밑의 땅이 언제나 표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료: 한서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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