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장 강해
히브리서 6장에 이어 히브리서 7장은 예수께서 혈통에 따라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은 대 제사장임을 천명하면서 먼저 1절에서 10절에 보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의 신비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1절에서 28절 말씀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계승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필요성과 우월성을 증명함으로써 거듭 예수님은 구약을 계승한 분이면서도 구약의 제사장보다 훨씬 우월한 신앙의 대상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에 규정된 레위 제사장직만을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주어진 제사장직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은 이미 완전한 제사장직의 모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지극히 거룩한 제사장 멜기세덱입니다.
소돔 땅에 거하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대적들에게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재물까지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삼백십팔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대적들을 다 추격하여 마침내 그들을 쳐서 파하고 조카 롯과 그의 가족과 재물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리세덱의 영접을 받았으며 멜기세덱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14:1-20) 이렇게 멜기세덱은 이방인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특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창세기 외에 시편 110편 4절에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가 멜리세덱을 예수님과 비교한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러면 이 멜기세덱이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와 비교되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구약에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욱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첫째,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십니다.
저자가 멜기세덱에 대해 ‘의의 왕’ 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창세기 14장 18절에서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평가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의로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멜기세덱은 실제로 살렘의 왕이었기에 의(살렘)의 왕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멜기세덱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다는 사실에서 의의 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7절)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축복할 수 있는 것처럼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의에 있어서 뛰어난 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멜기세덱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의를 나누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의롭게 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지신 의를 통하여 심판을 행하시고 심판 후에는 의로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둘째, 멜리세덱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평안은 육체적 안락과 근심걱정에서의 해방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평강은 매우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영원히 지속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안식을 가져옵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강은 얽메이기 쉬운 모든 죄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사망의 공포와 마귀의 위협에서도 벗어나게 해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평강의 왕으로 표현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원한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때 사단의 세력은 완전히 멸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서 성도는 모든 위협과 유혹에서 해방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멜기세덱이 ‘영원한 제사장이란’ 표현은 시편 110편 4절에서 언급됩니다. 영원한 제사장이란 표현은 제사장직이 끊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영원한 효력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멜기세덱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기록이 없음에도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면서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레위인이 아니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자신을 바쳐 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넷째, 멜기세덱은 시작과 끝이 비밀에 속해 있던 제사장입니다.
인간은 시작과 끝을 가졌기 때문에 비밀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이시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인간으로서의 일생을 마치신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기에 시작과 끝에 대해서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는 인간은 죽은 후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석가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시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40일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어 영원한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한 후에는 이땅에 다시 오셔서 영원한 심판의 주로 서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전부터 계셨고 영원까지 계시면서 우리가 영생복락의 은혜속에서 살도록 영원끝까지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 믿음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에 의한 제사제도가 불완전함을 증거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님의 제사제도가 완전함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고 레위보다 훨씬 먼저 세상에 왔으며, 예수님도 유다지파에서 나셨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의한 제사장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중보자로써 대 제사장이 될 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직권으로 제사장이 된 것처럼 하나님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실 레위 계통으로 세워진 제사장은 그 수가 많습니다. 세워진 제사장이 죽고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변할 필요가 없는 제사장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님을 인류를 구원할 영원한 중보자이신 대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항상 제사장으로 계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니 우리는 주님을 통해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늘 간구하시니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변치 않는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7장 26절에서 28절은 앞의 내용과는 다르게 찬송시입니다.
이 부분을 성서학자들은 '그리스도 찬송' 이라고 부릅니다. 주제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는 제사장이라는 말을 썼으나 여기서 부터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유대인의 대제사장과 비교함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직이 얼마나 우월한가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7장 26절에서 28절까지 다시한번 우리의 대 제사장 예수가 왜 위대하신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죄하심으로 자신을 위한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천년전 갈보리 언덕에서 단번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구약에서 죄지은자가 짐승을 잡아서 반복적으로 제사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를 드려 우리를 단번에 구원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율법을 따라 세워진 불완전한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적인 말씀으로 세우신 아들로서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를 속죄하시고 우리를 위해 영원히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원한 중보자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높여 드리며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영원한 대 제사장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높이며 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