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 신중?... 언어로 다 표현 안 되는 ‘나의 성향’...이런 거 왜 하나요?
혈액형에 따른 성격, 별자리 어쩌구 저쩌구, 요즘은 MBTI 이런 거 많이 하죠? 그리고 아이큐 검사라든가.. 이런 거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똑똑하고 영리합니다. 다만 자기가 관심 가진 분야에서만 이 똑똑하고 영리함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인간은 계속 변해갑니다. 자기의 경험과 내부의 성향 그리고 의지에 따라서 변해갈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타고납니다. 의지에 따라서 소심한 성격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또 활달한 성격에서 조용한 성격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이 스스로 좋다고 여겨질 정도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이십여년 전에 어떤 여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고등학교 1학년 당시 반에서 시험을 보면 거의 꼴등이었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서 결국 3학년이 될 무렵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상태에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게 이런 걸 묻더군요. "그래서 난 내가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이니그마님 명상 글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원래 자기가 머리가 좋지 않은데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라고 묻더군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제가 쓰는 명상 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너무나 쉽게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쓰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쓰는 글을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건 진짜 어렵거나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못 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개념 때문일 겁니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아닌 일반인이 제가 쓰는 명상글을 보게 된다면 관련된 개념이 전무하다고 보아야죠. 각각의 언어에 대한 개념이 있다면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니사르가다타의 "아이 앰 댓" 역시 사람들이 읽고 너무 어렵다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개념 때문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말이 어렵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전혀 아닌 겁니다.
암튼 전 아래 기사에 나온 것 같은 거.. 관심도 없고 한번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사람 등급을 나누는 아이큐 검사도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 시험도.. 대체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가 있고 관심있는 걸 하면 다 잘 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 날 새는 줄 모르고 하잖아요? 하지만 하기 싫은 거 하면 죽기보다 더 싫은 겁니다. 하기 싫은데 뭔 생각인들 나겠습니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32986?sid=102
소심? 신중?... 언어로 다 표현 안 되는 ‘나의 성향’
조선일보 : 박준 시인2025. 10. 4. 00:33
[아무튼, 주말]
[박준의 마음 쓰기]
심심할 때 한번 해보라면서 친구가 웹사이트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에니어그램(Enneagram)’이라는 검사. 수십 개 문항에 답을 하면 내 성격 유형과 해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9를 뜻하는 ennear와 도형을 뜻하는 grammos의 희랍어 어원답게, 이 검사는 인간의 성격을 총 9개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친구는 에니어그램 결과가 이미 알고 있던 자신의 MBTI 유형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MBTI는 마이어-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입니다. 스위스 출생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응용해 인간의 성향을 총 16개의 유형으로 나눕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가볍게 대화를 시작할 때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주고받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별자리가 뭐예요?’라거나 ‘혈액형은 어떻게 되세요?’ 같은 그간의 질문을 완벽히 대체한 것입니다.
일러스트=유현호
재미 삼아 에니어그램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이어진 결과와 해설 내용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체계적이고 신뢰감 있는 내용과 문장으로 나를 거울에 비춰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새롭거나 신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제 성향의 큰 특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어려서부터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소심하냐는 핀잔을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제게 신중하다는 평가를 해줬습니다. 이것은 상반된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신중하다’는 매우 조심스러움을 뜻합니다. 반면 ‘소심하다’는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음을 뜻하는 것이고요. 그러니 저는 매우 조심스러움과 지나치게 조심스러움 사이를 오갔을 뿐입니다.
스스로 꼽는 몇 가지 장점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고 말지 타인이 불편한 것은 못 보겠다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말을 최대한 고르고 상대의 눈빛을 살피고 불필요한 감정 표현을 자제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함입니다. 타인의 실수보다는 나의 실수에 더 괴로워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러니 내가 가진 조심성은 선(善)의 가치를 의식한 것이 아닌 오히려 온전한 내 이익만을 따른 결과입니다. 과거는 물론 오늘과 내일도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성향은 다양합니다. 대범하다, 느긋하다, 시원시원하다, 차갑다, 고집스럽다, 사교적이다, 예민하다…. 언어로 다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불변하거나 고정된 채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마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내가 지닌 기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내가 아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타인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