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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진실은 객관성 속에 있다..."아이 앰 댓" 상권

작성자이니그마|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19. 진실은 객관성 속에 있다..."아이 앰 댓" 상권

문: 저는 지금 화가인데 그림을 그려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영적인 관점에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M: 그림을 그릴 때에 무엇에 대해 생각을 해요?

문: 그림을 그릴 때에는 그림과 제가 있을 뿐입니다.

M: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어요?

문: 그림을 그립니다.

M: 아니지요. 선생은 그림이 진행되는 걸 보는 거예요. 본인은 그냥 지켜볼 뿐이고 나머지 일들은 그냥 발생할 뿐이지요.

문: 그림이 그 자신을 그린다는 겁니까?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어떤 신(god)이나 심층의 "나"가 있다는 겁니까?

M: 의식 자체가 가장 위대한 화가입니다. 전세계가 하나의 그림이니까요.

문: 그러면 세계의 그림을 그리는 건 누굽니까?

M: 그림 속에 그리는 사람이 있지요.

문: 그림이 화가의 마음속에 있는데 그리는 사람은 그림 속에 있고, 또 그림은 그리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데 그 사람은 또 그림 속에 있다 이겁니까? 이처럼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는 건 터무니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면 우리가 마음속의 그림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높이 있는 관찰자가 제일 낮은 관찰자를 지켜보는 무한한 관찰자의 연속과 직면하게 됩니다. 이건 마치 두 개 의 거울 속에 서서 거울 속의 끝없는 상을 보고 놀라는 거나 같지 않습니까?

M: 바로 그겁니다. 선생은 홀로인데 두 개의 거울이 있는 겁니다. 그 둘 사이에서 댁의 형태와 명칭은 무한한 것입니다.

문: 그러면 선생님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M: 나는 그림장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림을 더러는 세계라 하고 그리는 사람을 신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나는 그 둘이 다 아닙니다. 또한 난 뭔가를 만들고 있지도 않고 만들어지지도 않아요. 나는 모든 걸 포함하는데 그 어느 것도 나를 포함하고 있진 않아요.

문: 제가 나무를 보고 얼굴, 일몰 등을 볼 때에는 그림이 완벽합니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마음 속의 영상이 흐리고 안개가 낀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저의 마음이라면 제가 눈을 열어서 사랑스런 꽃을 볼 필요가 뭐 있으며, 눈을 감는다고 해서 그것이 흐릿해지는 까닭이 뭔가요?

M: 그건 선생의 바깥 눈이 내부의 눈보다 더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생의 마음은 전적으로 밖으로 향해져 있어요. 선생이 자신의 정신적(mental) 세계를 보는 것을 배우게 되면 그것이 육체가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색체가 아름답고 완벽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물론 연습이 좀 필요하지요. 그러나 그런 논쟁은 필요치 않아요. 지금 선생은 그림이 그것을 그린 사람에서 생겨나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근원과 원인들을 찾고 있어요. 그러나 인과관계라는 것은 마음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기억이 지속됨이라는 환상을 주고 그것이 반복되면 인과관계에 관한 관념이 생기게 돼요. 여러 가지 일들이 반복적으로 생기게 되면 우리는 그 일들 사이에서 인과적 관련을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이 하나의 정신적 습관을 낳지만 습관이라는 것은 필연성이 아닙니다.

문: 선생님께서 방금 세상이 하나님(God)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M: 말이라는 건 마음의 도구라는 걸 기억해요. 말은 마음에 의해, 마음을 위해 만들어 진겁니다. 일단 하나의 원인을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이 궁극의 원인이고 세계는 그 결과이지요. 그러나 그 둘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분리된 것은 아니에요.

문: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다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M: 세상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세계와 별도로 하나님을 보는 수는 없어요. 세계를 넘어 하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인 세계를 보는 빛이 "내가 있음"이라는 작은 점인데, 겉으로는 너무도 작지만 모든 앎과 사랑의 행위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입니다.

문: 하나님을 보려면 세계를 봐야 합니까?

M: 다른 수가 있나요? 세계가 없으면 하나님도 없어요.

문: 남는 건 무엇입니까?

M: 순수한 존재인 선생의 본래면목이 남지요.

문: 그리되면 세계와 하나님은 어떻게 됩니까?

M: 순수한 존재일 뿐입니다.

문: 그것이 바로 진공(眞空)입니까?

M: 그렇게 불러도 좋겠지요. 하지만 말이란 건 중요치 않아요. 말로써 거기에 이를 수는 없으니까요. 말이란 건 철저한 부정 속에서 참자신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 세상을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단 말이 무슨 뜻입니까?

M: 그건 암실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해요. 암실에서는 손으로 만질 수는 있지만 보이지는 않아요. 색깔도 윤곽도 보이지 않는단 말예요. 그러다가 창문이 열리면 방안으로 빛이 몰려듭니다. 여러 가지 색깔과 형태들이 나타나지요. 이 때에 창문이 빛을 들어오게 해줬지만 창문이 빛의 원천은 아니에요. 빛의 원천은 태양이란 말예요.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보면 물질은 암실과 같은 것이고 의식은(즉 창문은)여러 가지 감각과 지각을 가지고 물질들을 들어오게 합니다. 그리고 초월자(the supreme)가 바로 태양인데 이것이 물질과 빛 모두의 원천이지요. 창문이 열렸든 닫혔든 태양은 언제나 비추고 있어요. 창문은 방에 대해서는 온갖 변화를 주지만 태양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질 못해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내가 있다"라는 아주 작은 점에는 모두가 부차적인 것입니다. 모든 지식이라는 것이 "내가 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있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구속을 낳고 바른 이해는 자유와 행복을 낳는 겁니다.

문: "내가 있다(I am)"는 것과 " --이 있다(there is)"는 것은 같은 것입니까?

M: "내가 있다"는 것은 내면을 지칭하는 것이고 " --이 있다"는 것은 바깥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둘 모두가 같은 존재감(the sense of being)에 기초한 것이에요.

문: 그것이 존재에 관한 체험과 같은 것입니까?

M: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뭔가 하나의 사물, 느낌, 생각, 아이디어 같은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한 모든 존재(existence)는 특별한 것이에요. 단지 있음(being)만이 보편적인 것인데 모든 있음은 다른 모든 있음과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존재는 없어지게 마련이지만 있음은 그렇지가 않아요. 존재는 생성과 변화, 출생, 사망, 출생을 반복하는 것을 뜻하지만 "있음"속에는 조용한 평화만이 있어요.

문: 제가 세계를 창조하는 거라면 왜 나쁘게 만들었을까요?

M: 누구나가 자신의 세계 속에 삽니다. 모든 세계들이 똑같이 좋고 나쁜 것은 아니예요.

문: 차이를 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M: 세상을 구상하는 마음이 자신의 방식을 정해요. 선생이 어떤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낯선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되는 거예요. 싸울 때에는 적이 되는 것이구요. 그가 내게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태도에 달린 것이지요.

문: 저의 세계가 주관적이라는 것은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것이 환상이라는 말이 되나요?

M: 주관적인 한은 그만큼 착각이라는 것이 되지요. 진실은 객관성 속에 있으니까요.

문: 그 객관성이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아까 세계가 주관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객관성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요?

M: 모든 것이 주관적이나 진실만은 객관적인 것이지요.

문: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요?

M: 진리는 기억과 기대, 욕망, 공포, 혐오 등에 의존하지 않아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뿐이지요.

문: 그것이 바로 선생님께서 제4의 상태라고 하시는 겁니까?

M: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그 상태는 견고하고 꾸준하여 변함없고 시작과 끝이 없이 언제나 새롭고 신선하지요.

문: 거기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M: 욕심을 버리고 두려움도 버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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