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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는 누구인가...아이 앰 댓 상권

작성자이니그마|작성시간26.06.11|조회수90 목록 댓글 0

21. 나는 누구인가...아이 앰 댓 상권

문: 우리는 인격화된 진리, 그러니까 하나님이라든가 완전한 인간을 숭배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생각으로는 잘 잡히지 않으니까 추상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것을 숭배하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M: 진리라는 건 단순한 것이고 모든 이에게 알려진 것이오.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듭니까? 진리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정화하고 있어요. 어렵고, 조심조심해야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언제나 뭔가를 요구하고 기대합니다. 거짓된 것이기 때문에 공허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정을 받으려 드는 거지요. 그래서 그것은 꼬치꼬치 캐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약하고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을 지지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붙잡는 겁니다. 그러나 뭘 얻든 간에 잃게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념이 없게 되는 겁니다. 선생께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래요. 심지어는 죄악과 덕망, 장점과 결합이라는 것들도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라요.

보통 선과 악이라는 것들도 그 낱말들이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기피되거나 환영을 받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 역시 인습이나 관습 등의 통념에 따라 정해져 있으니까.

문: 좋고 나쁜 욕망, 높고 낮은 욕망이라는 게 있지 않은지요?

M: 모든 욕망이 나쁜 것입니다. 물론 그 중 더 나쁜 게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욕망을 추구하든 언제나 어려움을 야기할 뿐입니다.

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도 그렇습니까?

M: 왜 또 욕망인가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자유를 주진 못해요. 그 무엇도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욕망없는 맑은 눈으로 자신을 보세요. 그러면 그걸로 끝입니다.

문: 자신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M: 어떻게 시간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요. 시간이란 건 순간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매순간이 무(無)로부터 나왔다가 무(無)로 사라지는 것이며 결코 다시 나타나는 법이 없어요. 그처럼 덧없는 것 위에 어떻게 집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문: 그러면 영원한 것을 무엇입니까?

M: 영원한 것을 구하려면 자신을 돌이켜 봐야지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자기 내면의 참된 것을 찾아보세요.

문: 어떻게 하면 저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까?

M: 발생하는 모든 것이 선생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행위자는 선생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으로서의 자신이 이루는 모든 것의 주체를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문: 그러면 제가 다른 어떤 것일 수가 있습니까?

M: 찾아봐요. 내가 "당신은 관찰자야, 조용히 바라보는 이임에 불과해"라고 말하더라도 선생께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찾는 길을 발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문: 제가 여쭙는 것은 자신의 본성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M: "내가 누군가?"라는 질문을 빼고는 다른 모든 질문을 포기하세요. 결국에 선생께서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내가 있다"라는 사실 뿐입니다. "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가 이것"이라고 할수는 없어요. 진실에 있어서 자신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노력해 보세요.

문: 저는 지난 60년간 그 일밖에 한 게 없습니다.

M: 노력하는데 뭔가 잘못이 있나 보군요. 왜 결과를 구하려 합니까? 노력하는 그 자체가 바로 선생의 본성인데요.

문: 노력한다는 건 고통스럽습니다.

M: 결과를 구하니까 고통스럽지요. 결과를 구하지 말고 노력하는 힘만 기울이면 됩니다. 탐욕이 없이 노력해야 해요.

문: 왜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M: 어느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나님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라는 건 그 힘에 의해서 선생이 질문하시는 바로 그 빛이 아닌가요? "내가 있음"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구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에요. 그렇게 구하는 속에는 자신이 몸도 마음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생명 속에 있는 자아를 위한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은 하나입니다. 선생의 내면에 있는 의식과 저의 내면에 있는 의식은 외적으로는 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됨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문: 그 사랑을 어떻게 하면 발견할 수 있습니까?

M: 지금은 사랑을 어떻게 하세요? "내가 있음"이라는 느낌, 선생의 가슴과 마음을 거기에 몽땅 쏟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선 아예 생각을 하지 말아 보세요. 노력없이 자유스럽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높은 상태입니다. 그 속에서는 사랑 그 자체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자 사랑받는 자입니다.

문: 모든 사람이 살기를 바라고 생존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요?

M: 모든 욕망은 자아 속에 그 근원이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언제나 바른 욕망을 선택하는데 관한 문제입니다.

문: 무엇이 옳고 그르냐 하는 문제는 습관과 관습에 따라 항시 변하고 기준도 사회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M: 모든 기준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위선자들의 것입니다. 오직 선생을 욕망과 공포, 그리고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만이 훌륭한 것입니다. 나쁜 일, 좋은 일에 대해 염려하는 한 평화는 오지 않아요.

문: 저는 선악이라는 것이 사회의 규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선악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영적이라고 하는 말은 절대적인 어떤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입장에서의 선악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M: 선악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만 관련된 것입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없다면 선악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절대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라는 것조차 없어요. 순수한 자각의 바다는 선과 악의 어느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까 선악이라는 것은 불가피하게 상대적일 수밖에 없어요.

문: 그럼 제가 그런 불필요한 개념들을 없앨 수가 있는 건지요?

M: 자신을 인간으로 여기는 한 안돼요.

문: 제가 선악을 넘어섰을 때에는 뭘보고 확인할 수가 있습니까?

M: 욕망과 두려움, 그러니까 한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나쁜 사람"이라든가 "나는 죄가 없다"라는 식의 생각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자신을 어느 특정한 것과 동일시 하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이지요. 사적(私的)이 아닌 것이 영원하고 참된 것이며 개인적인 것은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은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개인의 상(相)입니다. 개인은 상대적인 것이고 순수한 존재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문: 확실히 순수한 존재라는 것은 의식이 없지도 않고 분별력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 선악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도대체 본성은 지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M: 그런 모든 질문들이 선생께서 자신을 인간으로 믿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적인 면을 넘어서 보세요.

문: 선생님께서 한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하실 때에 그 뜻이 정확하게 어떤 것입니까?

M: 난 선생이 존재하기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난 단지 자신이 태어나고, 부모가 있고 육신이 있으며, 죽을 것이라는 등등의 "상상을 그만두라"고 말할 뿐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그냥 시작을 해보면 그건 생각만큼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문: 자신을 개인으로 여기는 것이 비개인적인 것의 죄입니다.

M: 다시 인간적인 관점을 말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개인적인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선악개념으로 어지럽히고 있어요? 그런 생각은 결코 근본에 적용될 수 없어요. 비개인적인 것은 선악의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건 절대적인 존재요, 지혜요, 사랑입니다. 거기엔 죄악을 논할 여지가 없어요. 그리고 미덕이라는 것도 죄악의 반대말에 불과합니다.

문: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신적인 미덕을 말하는게 아닙니까?

M: 참된 미덕이라는 것은 신성한 미덕을 말하는 겁니다. 자신의 참모습이야말로 자신의 미덕이지요. 그러나 선생께서 미덕이라고 부르는 죄악의 반대말은 두려움에서 나온 복종의 마음에 불과해요.

문: 그러면 선(善)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할 필요가 뭡니까?

M: 그래야먄 게속 움직일 수가 있어요.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신을 발견할 수가 있고, 그리되면 신이 자기 속으로 수행자를 데리고 가서는 자신처럼 만들어 주지요.

문: 같은 행동이 한 곳에서는 옳은 것으로 여기지고, 한 곳에서는 죄악으로 여겨집니다. 왜 그런지요?

M: 보다 나은 지식에 반대되게 행하는 행동은 모두 죄가 돼요.

문: 지식은 기억에 근거하는 게 아닙니까?

M: 자신의 참자아를 기억하는 것이 미덕이요, 그것을 잊어 버리는 것이 죄악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영혼과 물질간의 정신적 심리적 연결고리에 귀착되는데, 그것이 개발되지 않은 원시상태에 있을 때에는 조잡한 여러 환상에 종속됩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폭과 감수성이 커감에 따라 순수한 물질과 순수한 영혼사이의 완전한 연결고리가 되고, 그래서 물질에는 의미를 영혼에는 표현을 주게 됩니다.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하면 그 사이에 우주적 마음이 있는데 이는 우주적 가슴이기도 하며 현명한 사랑으로서 이 두 세계를 하나로 만듭니다.

문: 세상에는 바보도 있고 똑똑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이들의 심성구조 (psyche)에 놓인 셈인데 성숙한 심성구조는 더 많은 경험을 지닌 셈입니다. 아이가 먹고 마시고 자고 노는 일을 통해 성장하듯이 사람의 심성구조도 그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위에 의해 형성되며, 그래서 결국 영혼과 육체사이의 다리로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집니다. 다리가 두 지역 간의 교통을 가능케 하듯 심성구조라는 것도 근원과 그것의 표현을 연결시켜줍니다.

M: 그것을 사랑이라하면 좋겠지요. 그 다리가 바로 사랑이에요.

문: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경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그 모든 것이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경험자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이 둘, 즉 경험자와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경험자만이 경험인 것이지요. 하지만 경험자는 경험이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영혼과 육체는 하나입니다. 둘로 보일 뿐이지요.

M: 영혼에게는 두번째라는 것이 없어요.

문: 그러면 두번째라는 것은 누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원성이라는 것은 심성구조의 불완전 때문에 생긴 착각인 것 같습니다. 심성구조가 완전하면 이원성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M: 그건 그래요.

문: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악을, 차별을 낳는 것은 누구입니까?

M: 몸을 지닌 사람은 몸으로 죄를 짓고 마음을 지닌 사람은 마음으로 죄를 짓는
겁니다.

문: 마음과 몸의 과정 자체가 죄를 짓도록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필시 그 뿌리에 제3의 요소가 있을 겁니다. 저는 자꾸만 죄악과 미덕의 문제로 되돌아 옵니다. 왜냐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툭하면 죄같은 건 없으니 괜히 결벽증을 피울 필요가 없고 순간의 욕망을 따라야 한다고들 말하면서, 전통이나 권위를 따르려 하지 않고 단지 자신에게 이익 되는 생각만 따르려고 합니다. 그들이 행동을 삼가하는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 아니고 경찰이 무서워서입니다.

분명 그들이 말하는 것 속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가치라고 하는 것이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하니까 말입니다. 요즘에는 전쟁에서 사람을 잘 죽이는 것이 대단한 자랑인 것처럼 여기지만 다음 세기에서 보면 무서운 죄악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M: 지구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은 반드시 낮과 밤을 모두 체험하겠지만, 태양과 함께 머무르는 사람은 어둠을 알 수 없어요. 나의 세계는 선생의 세계와는 달라요.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 모두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어요.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 선생이 말씀하는 온갖 문제들도 몹시 허황하구요.

문: 저희들은 자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선생님께서 해 주실 수 있는 일은 없습니까?

M: 지금하고 있어요. 선생의 꿈같은 상태 속에 들어가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과 타인들을 해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마시오. 깨어나시오."

문: 그런데 왜 저희들은 깨어나질 않습니까?

M: 깨어나게 될 거예요. 난 방해받지 않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꿈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면 깨어나는 건 머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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