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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마루

안압지(雁鴨池) 야경

작성자yyii|작성시간10.08.02|조회수14 목록 댓글 0

경주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더니 경주를 거쳐 간 술집 아가씨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경주 토박이인 소천(小泉·63) 선생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20대 팔팔한 시절에 경주에서 한 시절 살아본 술집 여종업원들이 경주를 떠나 전국의 술집을 돌아다니다가 나이 들어 정년퇴직을 하면 다시 돌아가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경주를 꼽는다는 이야기였다.

경주가 주는 그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천년 도읍지였다는 경륜에서 오지 않나 싶다. 1000년 세월 동안 권력도 잡아 보았고, 화려함도 누려 보았고, 시끌벅적도 경험해 보았고, 망해도 보았고, 망한 뒤의 적막감도 맛본 도시가 아닌가. 천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모두 겪어본 뒤에 도달하는 그 어떤 초연함과 담담한 기운이 도시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경륜이다.

시내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작은 동산만한 고분(古墳)들의 존재가 또한 차분함을 준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동거라고나 할까. 죽음이 바로 집 옆에 있고, 그 죽음이 평화스러운 광경을 연출한다. 대략 150개가 넘는 이 왕릉들을 오고 가면서 자주 보다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든다. 생존이 주는 고통과 흥분을 거대한 묘지들이 다독거려 주는 것이다.

엊그제 경주의 지인들과 함께 밤 9시쯤 안압지 야경을 보러 갔었다. 안압지 주변에는 거대한 연(蓮) 방죽이 조성되어 있었고, 그 연꽃 밭에서 풍겨져 나오는 연향(蓮香)이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삼복더위에는 산들거리는 바람과 함께 코로 맡는 연향이 보약이다. 보약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코로도 들이마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안압지의 압권은 연못 물에 반사되는 임해전(臨海殿)의 단청 모습이었다. 임해전 밑에 설치된 조명을 받고 전각의 푸른색과 붉은색이 배합된 단청의 모습이 사진처럼 연못에 비치고 있었다. 실제 임해전의 단청보다도 밤에 불빛을 받아 출렁거리는 연못 물에 반사되는 그 광경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물에 반사된 임해전의 모습은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결국 물에 비추이는 그림자, 즉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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