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우후 鷄口牛後
[유래] 전국시대의 모사 謀士 소진 蘇秦 은 합종책 合從策
으로 출세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나라 혜왕,
조나라의 재상인 봉양군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했다.
그는 다시 연나라로 문후 文侯 를 만나, 연나라가 조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했
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 韓 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 宣惠王 을 만나 진나라
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기회
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 東進 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
는 되지말라 (寧爲鷄口無爲牛後)고 했습니다." 선혜왕은 소
진의 청을 받아들였고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예문] 계구우후라는 말처럼 대기업에 들어가 말단 사원노릇
을 하느니 분연히 창업해 사장이 되겠다.
[출전]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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