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21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최고
지지자불여호지자 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
(1) 연말연시가 되면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예상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자!" "금연하자!" "가족을 위해 여행을떠나자!" "외국어를 배우자!" 시간이 지나 또다른 연말이 되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 사람은 계획을 세우긴 하지만 그것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많은 사람이 계획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나간다면 이 세상에 종교나 약물 등의 효력은 줄어들 것이다. 계획이 뜻한대로 이루어지므로 사람은 실패와 좌절로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기 위해 종교에 기대는 일이 줄어 들 것이고 술을 마시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계획을 끝까지 지속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그로 인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게 사람의 숙명일지 모른다.
지속의 힘은 자신의 외부보다 내부에서 크게 생긴다. 외부에서 오는 것은 그 힘(압력)이 강할 때 지속의 동력이 되지만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학창시절 "아, 선생님 온다!"는 말 한마디에 교실이 죽은 듯 조용해지다가 "장난이지!"라는 말에 난장판으로 돌아가는 정경을 떠올려보라. 공자는 내 안의 강력한 우군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2) 공 선생이 알려주었다. "무엇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3) 지 知는 안다, 앎의 뜻이다. 나중에 동사와 명사를 구분하기 위해 지 智가 생겨났다. 주로 지 知는 안다는 동사로, 지 智는 앎의 명사로 쓰인다. 자 者는 ~하는 사람으로 쓰이기도 하고 ~하는 것(경우)으로 명사절을 이끌기도 한다. 둘 다 해석이 가능하므로 어감에 따라 골라서 옮겨야 한다.
호 好는 좋아한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글자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좋아한다는 낱말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좋아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문자를 만든 사람은 여 女와 자 子를 나란히 둬서 '좋아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 사람은 남녀 사이의 사랑을 알았던 것이 틀림없다. 樂은 발음이 많다. 음이 '악'이면 풍류, 악기, 음악의 뜻이고, '락'이면 즐긴다는 뜻이며, '요'면 산과 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락'으로 읽는다.
'불여' 구문은 '~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비교급을 나타내지만 그 차이를 긍정과 부정으로 까지 확대하지 않아야겠다. 못하다는 것은 지속, 강도의 측면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는 낫다는 것이지 못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보면 원래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게 된다.
(4) 공자는 아는 것,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점충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있다. 만약 이 세 가지를 달리 파악한다면 공자와 생각을 달리 하거나 공자의 생각에 반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아러한 순서와 의미 차이에 동의하는냐에 있지 않고 공자가 세 가지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제대로 알면 실천한다'거나 '아는 것이 힘이다' 라고 생각하면, 아는 것은 비교 대상에서 제일 앞이 아니라 제일 뒤로 놓일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지속적인 힘으로 자작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더라도 꼭 그렇게 하지 못하고, 뇌물과 부정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선악이든 호오든 길흉이든 그 무엇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사람을 지속적으로 몰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랑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구별이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이 아는 것이랑 반대되지않고 아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뭔지 알아야 제대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좋아하는 것은 주체가 대상이 가진 속성에 좌우되는 특성을 갖는다. 한 사람이 농구를 좋아한다면 그이는 누구가 가진 어떤 특성으로 인해 그것을 좋아하게된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원래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잃어버리거나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농구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된다. 주체와 대상은 각기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존재로 여전히 구분되고 있다.
반면 즐긴다는 것은 대상이 어떠한 상대와 조건에 있더라도 주체가 그 대상을 긍정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상의 속성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주체는 그것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은 더 이상 다른 것으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예컨데 음악을 즐긴다면 '음악이 없는 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간혹 이런 구분법과 달리 쓰이는 용례도 있다. "무조건적으로 좋아한다'고 할 때 좋아하는 것은 즐긴 것에 가깝다. 또 피서지에서 만난 사람끼리 '하룻밤 즐겨보자'고 할 때 즐기는 것은 좋아하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