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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참된 제자의 길

작성자꽃터|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하나님 나라와 참된 제자의 길

1-4

 

마가복음 10장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참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 재물보다 주님을 우선하는 헌신, 섬김과 희생의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바디매오를 통해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결국 마가복음 10장은 하나님 나라를 받는 사람과 참된 제자의 길을 가르치는 장입니다.

[1-2]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혼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가르침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논쟁과 위험에 빠뜨리려는 의도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한 해석이 학파마다 달랐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지지해도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모세가 무엇을 명하였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 주고 이혼을 허락했다고 대답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인간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주어진 제한적인 허용일 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신명기의 규정이 아니라 창세기의 창조 질서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언약입니다.

결국 본문의 핵심은 이혼의 조건을 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허용된 예외 규정보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결혼의 본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한 몸을 이루어 살아가는 언약적 관계이며, 성도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5-1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예수님은 이혼 문제를 단순한 율법 논쟁으로 다루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결혼의 본래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모세가 이혼을 허용한 것은 하나님의 이상적인 뜻이 아니라 인간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가리키며, 이혼 규정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 주어진 제한적 허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세기를 인용하시며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이며,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삶과 인격, 사랑과 책임이 하나 되는 전인격적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결혼의 참된 주례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을 함부로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동일한 도덕적 책임을 적용하심으로써 결혼의 신실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이혼의 조건을 묻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의 거룩함과 언약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결혼을 하나님이 주신 언약으로 여기며 사랑과 신실함으로 지켜 가야 합니다.

[13-16]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을 받게 하려고 어린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당시 어린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지위나 권리가 없는 연약한 존재였으며,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으며 꾸짖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크게 노하시며, 주님께 나아오려는 자들을 막는 일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어린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능력이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부모를 신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연약한 자들을 사랑으로 받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결국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17-2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진지하고 열심 있는 사람이었지만, 영생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행위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참으로 선하시다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 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초청하셨습니다. 문제는 재산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영생을 원했지만, 자신의 우상을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재물 사이에서 재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본문은 부자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우상을 드러내시고 참된 제자의 길로 부르셨습니다.

결국 영생은 인간의 선행으로 얻는 상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부자 청년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리스도를 놓쳤고, 제자들은 많은 것을 버렸지만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최고의 복이시며, 그분을 얻는 것이 곧 참된 영생입니다.

 

[23-27]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 청년이 떠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물 자체를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인간의 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재물은 안정감과 만족을 주지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복의 증거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묻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결국 본문의 핵심은 부자의 문제를 넘어 모든 인간의 문제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인을 찾아오시고 구원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이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합니다. 아멘.

 

[28-31]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부자 청년이 떠난 후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생업과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제자도의 핵심은 무엇을 버렸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따르는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들을 말씀하시며, 참된 제자도의 기준은 희생의 크기가 아니라 예수님과 복음을 향한 헌신에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그런 자들에게 현세에서 "백 배"의 은혜를 약속하셨는데, 이는 물질적 보상보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풍성한 은혜와 영적 가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시에 박해도 함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길은 영광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걷는 자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며, 최고의 상급은 하나님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교제입니다.

결국 본문의 중심은 보상이 아니라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산을 붙들고 예수님을 놓쳤지만, 제자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큰 복이며, 현세의 은혜와 내세의 영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입니다.

 

[32-34]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세 번째로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마가는 이 장면에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결연한 의지와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앞장서서 걸어가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배신과 조롱,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반면 제자들은 다가올 위험만을 바라보며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르시고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침 뱉음, 채찍질을 당한 후 죽임을 당할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선포하시며 부활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고난만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너머에 있는 구원과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예수님이 예기치 못한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정확히 아시고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신 구원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이는 단순한 수난 예고가 아니라 죄인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결연한 사랑의 선언입니다.

[35-40]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 가운데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영광과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높은 자리를 구했습니다. 반면 바디매오는 같은 질문 앞에서 보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영광은 원했지만 그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도 장차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길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좌우편의 영광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예비된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과 영광은 인간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집니다.

결국 이 본문은 참된 제자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참된 제자는 높은 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영광은 십자가를 건너뛰어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위대함은 높아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겸손히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아멘.

 

[41-45]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 가운데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영광과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야고보와 요한은 높은 자리를 구했습니다. 반면 바디매오는 같은 질문 앞에서 보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영광은 원했지만 그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도 장차 고난을 겪으며 주님의 길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좌우편의 영광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예비된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과 영광은 인간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집니다.

결국 이 본문은 참된 제자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참된 제자는 높은 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영광은 십자가를 건너뛰어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위대함은 높아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겸손히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아멘.

 

[46-48]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마가는 치유받은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하며 바디매오의 믿음이 참된 제자도의 본이 됨을 보여 줍니다. 바디매오는 맹인이자 거지로서 당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 속했습니다. 그는 "길 가에" 앉아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위치 설명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주변부에 밀려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공로나 자격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만을 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꾸짖으며 침묵시키려 했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방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이 모습은 야고보와 요한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제자들은 높은 자리와 영광을 구했지만, 바디매오는 긍휼을 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그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바디매오는 멀리 있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결국 본문은 참된 시력이 육신의 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가장 큰 기적은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멘.

 

[49-5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맹인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중요한 순간에도 한 영혼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라"고 하시자, 바디매오를 꾸짖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바디매오는 즉시 자신의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겉옷은 거지에게 가장 중요한 소유물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미련 없이 내려놓았습니다. 이는 재물을 붙들고 떠난 부자 청년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곧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강조하는 핵심은 치유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고 기록합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뜨자마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십자가의 길을 따랐습니다. 결국 참된 믿음은 기적을 경험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결국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아멘.

결론 요약

마가복음 10장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의나 재물, 지위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바디매오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영적인 눈을 뜨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참된 제자의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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