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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필, 소설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최승호

작성자박계현(부산)|작성시간14.01.26|조회수438 목록 댓글 0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최승호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를

무슨 무슨 주위의 엿장수들이 가위질한 지도 오래 되었다.

이제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다.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


허공은 나의 나라, 거기서는 더 해 입을 것도 의무도 없으니

죽었다 생각하고 사라진 신목(神木)의 향기 맡으며 밤을 보내고


깨어나면 다시 국도변에 서 있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귀 있는 바람은 들었으리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앙상한 몸통에 매달려 나부끼는 소리,

그 뒤에 내 영혼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봄기운에

대장간의 낫이 시퍼런 생기를 띠고

톱니들이 갈수록 뾰족하게 빛이 나니

살벌한 몸통으로 서서 반역하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여


잎사귀 달린 시를, 과일을 나눠 주는 시를

언젠가 나는 쓸 수도 있으리라 초록과 금빛의 향기를 뿌리는 시를.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어

지저귀지 않아도.

 

- 시집고슴도치의 마을(문학과지성사,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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