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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배꼽 - 강애나 (세계일보 2020-10-12)

작성자書瑛강애나(Anna)|작성시간23.08.26|조회수28 목록 댓글 0
오늘의 시(詩)


[박미산의 마음을 여는 시] 배꼽 - 강애나 (세계 2020-10-12)




배꼽참외를 먹다가
내 배꼽을 보니 꼭 톨스토이 얼굴 같은 거라

어릴 적 쓸어주는 할머니 손길
배꼽에서 아픔이 울었던 거라

할머니는 가셨어도
따듯한 사랑은 내 몸 안에 열꽃으로 피어있고
그때 그 손길이 저승에서 채화되고 있을 건가

간혹 못생긴 톨스토이를 쓰다듬으며 아팠던 배를 보면
할머니 온기가 모락모락 쑥 향으로 퍼져오는 거라
그 향기 차곡차곡 슬픔과 그리움으로
기억의 창고에서 사라지지 않는 거라
2000년도에 한 달 동안 인도를 배낭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는 워낙 땅이 넓어서 다음 목적지로 갈 경우 하루가 넘게 걸리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동할 때는 바나나난을 사서 가거나 역에 잠시 정차할 때 짜이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습니다. 그러니 위장이 탈이 날 수밖에요.
사트나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밤기차에서 자리가 없는 인도 여인들을 제 자리에 앉혔습니다.
한 사람이 앉는 자리에 다섯 명이 비좁게 앉아 잠이 들었습니다.
모두 잠든 한밤중에 갑자기 복통이 일어났습니다.
인도 여인들은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봤습니다. 안경을 쓴 가냘픈 파티마라는 여인이 밤새 주문을 외우며 내 배를 쓸어줬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그녀의 정성어린 손길로 복통이 사라지고 내 배꼽에선 열꽃이 피어났습니다.
거친 그녀의 손길은 우리 할머니의 손길과 똑같았습니다.
배꼽참외를 먹다가 기억의 창고에서 건져 올린 할머니와 그녀가 그립습니다.
/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태그#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강애나시인




강애나의 약력


1983년 호주 시드니 이민
서울 디지털대학 문학창작과 학사 졸업
시집:시크릿 가든, 어머니의 향기, 오아시스는 말라가다,
        밤별 마중범종과 맥파이  다수 사화집(NY Anthologe- 상사화, 지혜의 봄)
         
한국시인협회회원, 한국작가회의
현재 시드니 새움한글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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