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_lNsH3mAvjI?t=32
씨 뿌리는 사람.
-柳達永(1911~2004)-
날더리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명화(名畫)에서 단 한 장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나는
밀레의 “씨 뿌리를 사람” 제 1작을 서슴치 않고 가리킬 것이다.
겨울날 해질 무렵 황막(荒漠)한 대지에 붉은 자켓과 푸를 바지를 입은 젊은 농부가
씨앗 자루를 걸머메고, 바른손으로 씨앗을 흩뿌리면서 당당한 보조로 걸어가는
그림이다. 등 뒤에는 주린 새떼들이 어지럽게 날으면서 따라오건만, 태연하게 걸어가
는 걸음걸이에 어지러움이 조금도 없다. 화면에 크로즈업된 한 사람의 농부의 모습과
휘어진 지평선의 대지는 보람있는 인생의 깊은 함축이다. 여기에 크나 큰 사상이 들어
있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밀레가 1850년에 바빌종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 당시 밀레는 파리의 상류계급
과 화단(畫壇)의 비위를 맞추는 그림을 단념하고, 빈곤 속에 살면서 고적한 벽촌에서
농민과 흙을 그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당시 바빌종에는 교회도, 학교도, 우편국도,
공동묘지도, 매점, 여인숙조차 없는 곳이었다. 잡초로 황무한 땅과 우거진 숲에 싸여 사는
몇 집의 빈농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그는 여기서 27년 동안을 죽을 때까지 무서운
빈곤과 싸우면서 한결같이 농민과 흙을 그렸다. 이 ‘씨를 뿌리는 사람’의 제1작도 이
고장에서 그린 첫 대작인 것이다.
겨울이 눈 앞에 다가온다. 모든 수목들은 잎이 지기 시작한다. 벌레소리 구슬픈 대지에 해가 저물어간다. 배 주린 흰입부리의 까마귀 떼가 무수히 날아온다. 그러나 힘차게
씨를 뿌리면서 걸어가는 농부를 바라보면, 하늘도 땅도 이로 인해서 생동하는 듯하다.
땅에 떨어진 씨는 반드시 싹이 틀 것이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무럭무럭 자라서,
여름에는 가이없는 보리밭은 황금 물결을 이룰 것이다. 농부가 걸어가는 살벌한
초겨울 대지에서 이미 싹이 자라나는 푸른 벌판과 황금 물결이 일어나는 들판을
우리는 바라볼 수가 있어야 한다.
저 씨를 뿌리는 농부이 그림은 한낱 양식을 준비하는 가난한 농부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무릇 사상이나 종교나 학술이나 예술이나 간에 확고한 신념으로 개척해 가는
모든 사람들에 전개될 앞날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 알씩 떨어져 흙 속에 묻히는 씨들의
앞날을 생각해보면, 음산한 초겨울도, 해지는 황혼도 또 주려서 물려드는 까마귀떼들
도 문제가 안된다. 이 황무한 역사의 들에 씨를 뿌리며 힘차게 걷는 모습을 생각하면
희망이 벅찬다.
이 그림이 처음 파리의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에는 큰 파문을 일으켰었다. 이 그림은
상류 계급의 포학(暴虐)에 들고 일어나는 가난한 민중의 반항을 상징하는 사회주의자
적 혁명적 사상의 표현이라고 비난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위협적인
초상’가운데 공공연하게 신과 인간을 거리끼지 않고, 한 주먹 탄환을 하늘로 던지는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를 본다고 하여서 법석했다. 이런 것은 제멋대로 당치않게 해석
한 견해려니와, 하여간 우리는 이 그림에서 무한의 발전과 희망을 안고 씨를 뿌리면서
걸어가는 개척의 상징인 농부와 인류의 영원의 품인 흙의 위대한 신성을 느낀다.
밀레는 자기의 일관한 예술 정신으로 인해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고, 또 극심한
빈곤이 쓰라림과 병고의 아픔을 맛본 사람이었다.
어느날 그는 난롯불도 꺼지고 촛불도 없는 방에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친구가
약간의 돈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에, 밀렌는
“참 고마우이, 우리는 꼭 이틀 동안을 굶었었네”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한때 여러
가지 심신의 고통으로 자살하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이 완강히
이것을 거부했다. 세워 놓은 화가(畫架) 아래 죽어 넘어진 화가(畫家)를 한 여인이
놀라움으로 바라보면서, “자살은 남자의 치욕이요” 하고 부르짖고는 있는 그림이
스케치북에 그려 있는 것은, 이 시절의 밀레의 심정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소년 소녀들도 잘 알고 있는 “이삭 줍기” “만종”
“양치는 사람”를 비롯하여 “감자 심는 사람” “접목하는 사람”, “첫걸음” “애기 먹이는
어머니” 등등 영원히 인류의 가슴에 감명을 주는 그림들이 이 바빌종에서 그려진
것들이었다.
내가 몇 해 전 파리에 갔을 때에, 파리의 화가들은 밀레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밀레의 화첩을 사러 파리의 서점들을 두루 찾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밀레는 오늘에는 3류 화가쯤 될것이라고 혹평하는 것을 듣고
한심스러워했다.
내가 바빌종에 찾아가서 그곳의 자연을 바라보고, 아직도 소박한 그 고장 농민들을
만나 보았을 때, 밀레를 사모함이 간절했다. 그리고 인류의 가슴에 사랑과 진실이
있는 한, 자연과 전원이 있는 한 밀레의 생명은 영광 속에 계속할 것이다.
어찌 밀레뿐이랴. 인생의 모든 광영(光榮)은 언제나 가시밭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