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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작성자정의영 목사(경기 동탄)|작성시간22.10.30|조회수69 목록 댓글 0

 ☞11월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성숙하는 달

온전(穩全)하게 행(行)하는 자가 의인(義人)이라. 그의 후손(後孫)에게 복(福)이 있느니라

35:4-9)                               하나님의 집짓기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짓는 것입니다. 이 성전의 위력(偉力)을 가장 톡톡히 본 사람은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하나를 건축함으로써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래 솔로몬은 모세나 자기 아버지 다윗과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모세는 애굽에서 열 가지 기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한 자였고. 아버지 다윗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복(福)을 받고, 가장 큰 영화(榮華)를 누렸던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짓는 일이 그만큼 큰 축복(祝福)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위대함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대궐(大闕)을 짓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대궐(大闕)을 지어서 자기의 세력을 자랑하고.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聖殿)은 단순히 집이 크고 화려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헤롯이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성전의 돌이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고. 다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이 중요한 이유는 곧 그 성전의 기능(機能)때문입니다. 성전에는 사람의 죄(罪)를 사(謝)하는 능력(能力)이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죄(罪)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사람의 죄(罪)를 깨끗이 도말(塗抹)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祈禱)는 하나님의 응답(應答)이 있다는 것입니다. 막11:17절)....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물론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회적 책임과 자기가 살기 위해서 화려한 집을 짓기도 하고 병원 건물이나 큰 대학을 짓고 이름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임하고, 죄(罪) 용서(容恕)가 있는 성전을 짓는 이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마다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경쟁적으로 많이 짓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할 때, 유명해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성공적인 교회(공동체)의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고 화려한 건물은 사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전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벽돌이 되는 성전인 것입니다. 즉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아주 귀한 성전을 건축(建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을 짓는 일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전의 가치(價値)를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식 자체를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중심은 두 돌비(十誡命), 즉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성전 중심에 우상(偶像)으로 두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칫하면, 하나님의 성전을 짓지 못하고, 그대로 광야(廣野)에서 멸망(滅亡)할 뻔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抛棄)하려고 하셨습니다. 즉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이토록 싫어하는 자들에게 억지로 하나님을 믿게 할 것인가? *이토록 구원받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 억지로 성전을 짓게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과 며칠을 참지 못해서 금송아지(偶像)를 만든 자들에게 어떻게 앞으로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을 맡길 수 있겠는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세대(世代)를 버리려고 생각하셨습니다. 즉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진멸(殄滅)하고, 모세 한 사람을 통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엉터리로 빨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잘못된 것은 모두 버리고, 부수어서 새로 시작해서라도 바르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작은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곧 모세의 기도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잘못된 이스라엘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백성들이 잘못되었더라도 지도자 한 사람이 똑바로 서려고 애쓸 때, 이것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지도자가 영적(靈的)으로 깨어 있고, 그 안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시키려는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셔서 다시 엄청나게 귀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금송아지(偶像)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은혜(恩惠)를 주셔서 성전을 짓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아놓고,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바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材料)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즉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표면에 예배당을 지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충분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材料)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성전의 설계(設計)나 구조(構造)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모든 재료(材料)나 제작(製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으로 지어지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협력(協力)으로 지어지는 성전이었습니다.

 

Ⅰ.마음에 자원하는 심정

35:4-5절)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우선 하나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을 때,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성전이라는 것은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생활이 안정된 후에 짓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루하루 이동(異動)하는 중에 있고, 대단히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특히 하나님은 이동식(移動式) 텐트로 된 성전을 짓게 하셨는데, 차라리 이럴 바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좋은 나무로 성전을 짓자고 할 이스라엘 백성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동식(移動式)이라도 좋으니까 광야에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집이라면, 하늘의 재료(材料)로 짓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의 음식인 만나도 먹게 하셨는데, 기왕이면, 세상에는 전혀 없는 천상(天上)의 재료(材料)들을 주셔서 성전을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것을 바치게 하셔서 그것으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바치는 사람은 억지로 바칠 필요는 없고, 자원(自願)하는 마음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곧 하나님이 세우시는 성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생활이 안정된 후에 성전을 짓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짓는 것은 안정(安定)되었기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곧 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존재(存在)하는 자들이었고, 그들 자신이 곧 이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성전을 이스라엘과 함께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建築)에 참여함으로써 이 성전은 그들의 성전이 되는 것이며, 즉 남이 지은 성전이 아니라, 자기들의 성전이기 때문에 마음껏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위대한 성전을 짓는 일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은 이 하나도 없는 분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에 필요한 재료(材料)들을 가지고 나와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축복(祝福)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다음에 성전을 짓는 세대는 무려 오백 년이 지난후인 솔로몬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자손(子孫)들을 축복(祝福)의 통로(通路)로 쓰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금송아지(偶像)를 보고, 그 계획을 취소하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달려들어서 다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선(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하더라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만약 이스라엘 자손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지 않겠다고 반대했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그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이 일을 위해 먼저 택(擇)함을 받았던 그들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백성들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성전 짓는 것을 거부하면,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이 세상에서 아무쓸모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存在)하는 자들은 다 나름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쓸모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맛을 잃은 소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救援)을 위해 택(擇)하셨는데, 자기 욕심(慾心)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더는 이 세상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존재(存在)해야 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祝福)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不順從)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들을 버리시고, 다른 사람들을 쓰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소금이 희고, 이 난다 해도 맛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올바른 신앙을 갖는 것이고 올바른 성전을 짓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다 함께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이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억지로 종교생활을 한다거나, 혹은 맛을 잃고 외모로만 번드르르해질 때, 반드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성전을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성전을 새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본질(本質)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라는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하나도 아낌없이 무엇이든지 다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장연구원 학자들은 *그 사람의 믿음을 자로 측정하는 방법은 돈 주머니가 얼마나 열려있느냐?* 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짠돌이자는 절대로 재물을 쓸 줄 모르고 결국 죽을 때. 남에게 모두 빼앗기고 마는 악한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전6:2 참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중에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진정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변화된 자들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들 중에 반드시 함께하시며, 우리들을 통해 이 세상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Ⅱ.하나님의 성전에 필요한 것들

35:5-9절)......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 품과 분양할 향을 만드는 향 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에 필요한 물건들은 이런 것들이라고 하시면서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으시고, 당당하게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대개 부모도 자식에게 과 관계되는 말을 해야 할 때, 입이 쉽게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당당하게 *이런. 이런 물건들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이런 것들을 바치는 것이 전혀 부끄럽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이상적(理想的)으로만 생각해서 헌금(獻金)바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物質)이나 시간(時間)을 부끄러워하거나 어색(語塞)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에 필요한 재료(材料)들을 가져오게 하신 것을 통해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음으로써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하나님을 다른 민족이나.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서 레바논의 재료(材料)들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자르고, 운반하는 일은 이방인들이 하고, 성전을 짓는 일은 이스라엘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히람 이라는 사람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솔로몬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외국의 재료(材料)와 외국 사람들의 노동(勞動)과 기술(技術)로 성전을 지은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려서 그들은 이방신(異邦神)들의 전(殿)을 짓고, 이방신(異邦神)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공짜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신앙(信仰)이 곧 나의 신앙(信仰)이 되고, 이 귀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게 하려면, 반드시 희생(犧牲)을 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을 미안해하고, 모두 사양(辭讓)하는 이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자녀는 *부모가 이런 사랑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서 아예 사랑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부모를 섬기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처음에는 자녀를 성가시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그들의 마음속에 부모(父母)라는 존재(存在)의 소중(所重)함은 사라지고 맙니다.

 

부모(父母)가 무엇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녀에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기 위해 부모를 섬기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즉 어렸을 때, 학교에 갔다 오면, 시간표(時間表)에 꼭 *심부름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어른을 공경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복(福)이 되는지 모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절)

사람은 자기 물건(物件)이 사용되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도 마6:21절)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재물(財物)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성전을 지으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 성전에 애착(愛着)을 갖도록 하기 위해 성전 전체(全體)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것으로 짓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진정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교회 부흥의 중요한 이유로 네비우스(Nevius, J.L.)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젊고 경험이 적은 내한(來韓)선교사들이 교회 문제를 자문(自問)하기 위해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한 *네비우스*라는 노(老)선교사를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네비우스가 제안(提案)한 것 중, 하나가 한국교회로 하여금 성경공부를 많이 하게 하는 것과 재정적(財政的)으로 교회가 자립(自立)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다른 데서 원조(援助)받지 않고, 교회가 재정적(財政的)으로 자립(自立)할 때, 성도들은 *자기 교회*라는 애착심(愛着心)과 책임감(責任感)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에게 헌금(獻金)의 중요성(重要性)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인데, 그렇지 않다면 자기의 소유(所有)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애착(愛着)이 생기고, 하나님의 일이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곧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지금 이스라엘 자손들이 갖고 있는 재산(財産)은 그들이 애굽을 떠나면서 애굽인들로부터 받은 것들입니다. 애굽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異蹟)들을 보고, 너무나 놀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많은 패물(佩物)을 주면서 그들을 애굽에서 떠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빈손으로 떠나지 않고, 많은 금(金)과 은(銀)과 패물(佩物)과 다른 진기(珍奇)한 물건(物件)들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노예 생활한 것에 해당되는 보수(報酬)를 받아 애굽을 떠났습니다.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축복하고 지지하던 정권과 토개공이 평생 모은 전 재산과 교인들을 완전 강탈하고 빈털털이로 내보내는 무식한 배신자들과는 정반대 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임금(賃金)이요, 퇴직금(退職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공짜로 일 시키시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예(奴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수고한데는 반드시 대가(代價)가 따릅니다.

 

사람들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 주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일한 대가(代價)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겁 없이 덤벼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25:4절)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는 구악의 율법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굶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떠날 때, 모두 부자(富者)가 되었는데 그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재산(財産)은 많은데, 쓸 데가 없는 것입니다. 즉 광야에서 이동하면서 그처럼 많은 금(金)과 은(銀)과 가축(家畜)들을 어디에 쓰이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 겨우 금송아지(우상)이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죄 짓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이중으로 죄 짓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못 쓴 것도 죄(罪)이지만, 그것으로 우상(偶像)을 섬기는데 썼다는 것은 더욱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그 을 어디에 쓰느냐? 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만약 이것으로 을 퍼마신다든지, 좋지 않은 영화(映畫)를 보는데 쓴다면. 그것은 이중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처럼 많은 재물(財物)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짓는데,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보석(寶石)은 금송아지의 눈에 박힌 것이 아니라, 제사장(祭司長)의 앞 조끼에 달려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 때는 반드시 선(善)한 용도(用途)가 있을 것임을 생각해서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성전에서 많은 기적(奇蹟)을 행하시지만, 이 일을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고, 또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시며, 그들의 모든 죄(罪)를 사(謝)하시는 것은 놀라운 신비(神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하십니다. 그래서 성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또 자고 나니까 하루 사이에 천사가 와서 지성소(至聖所)를 짓고 그 다음날 자고 나니까 성소가 지어지는 식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재료(材料)를 자져오게 하고, 또 일하는 자들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물건(物件)들을 바치는 마음은 성령의 마음이었습니다. 또 그들이 가져온 재료(材料)들을 작업(作業)하는 손은 성령의 손길이었습니다. 기독교에는 많은 신비(神祕)가 있으나. 신비주의(神秘主義)는 아닙니다.

 

신비주의(神秘主義)라는 것은 모든 것을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방법에 의지해야 하며,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방법에 의하지 않는 것은 신앙(信仰)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 신비주의(神秘主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태양(太陽)을 만드셨고, 온 우주(宇宙)를 만드셨으며, 또 모든 것을 정상적(正常的)인 방법으로 운전(運轉)하십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神祕)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오천 명을 먹이실 때, 하늘에서 떡이 내려오게 하지 않고, 소년이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奇蹟)을 행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광야에서 사탄(詐誕)이 예수님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을 때, 거절(拒絶)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이 내가 붙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아무리 적은 것도 기적(奇蹟)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인(知人)권사님의 어려운 생활비를 아껴서 드린 *선교헌금*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교갱원을 설립*하고 *그의 가정*에 *만 배로 축복주시기*를 매일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학2:8절)금(金)도 내 것이요. 은(銀)도 내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적은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은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과시(誇示)하는 마음이나. 사람에게 인정(認定)받으려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 시대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인정(認定)받을 마음으로 재산(財産)을 바쳤다가 즉사(卽死)하고 말았습니다. 정상적인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성전이 자연스럽지 않고, 신비(神祕)스럽기만 하다면, 죄인들은 겁이 나서 하나님께 제대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헛된 호기심(好奇心)을 자극(刺戟)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아름다움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聖殿)은 신비(神祕)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곁을 지극히 정상적인 옷으로 입히셔서 어느 누구도 거기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복음(福音)은 하나님의 신비(神祕)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신비(神祕)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복음(福音)의 표현(表現)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곧 다른 사람들을 진리(眞理)로 초청(招請)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갖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모아서 그것으로 성전(聖殿)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성전 안에서 나타나는 역사와 영광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능력(能力)이요, 축복(祝福)이었습니다.

 

Ⅲ.하나님의 용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성전에 필요한 것을 바치라고 하시면서 무조건 아무것이나 많이 갖고 오라는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이 바칠 수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5:5-7절)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성전의 구조(構造)를 가지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하나님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금과 은 또는 보석이 어디에 사용될지 정확한 그림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위대(偉大)하심을 나타내려면, 성전이 무지무지하게 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결코 그렇게 거대한 건물(建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전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規模)가 아니라, 구조(構造)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병(病)이 낫는 것이며, 사업(事業)이 잘되는 것이며, 빚이 해결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罪)가 해결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 있는 마음이 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곧 여기에 초점(焦點)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성전은 정확하게 설계(設計)되어 있고, 거기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체적인 계획(計畫)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바친 모든 물건들이 정확하게 들어갈 자리와 용도(用度)가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많은 것을 갖고 있다 해도 성전에서 그런 것이 필요 없으면, 그것을 바쳐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共同體)를 말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모임 자체가 성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든지 옮겨 다닐 수 있는 텐트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진정한 성전은 너희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의 공동체가 곧 *성령이 거하시는 전(殿)*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오늘의 성전을 짓는 것일까? 우선 셀(cell)공동체는 생명의 말씀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1:23절)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즉 살아 있는 복음(福音)이 증거 되는 그곳에는 거듭난 사람이 생깁니다.

 

이런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으로 연합(聯合)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되는 것이 성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 거듭난 자들이 계속 생기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마18:20절)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결속(結束)시키는 힘이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구원(救援)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모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기쁨을 알고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들이 곧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받은 구원만 기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일 때, 그 가운데 성령을 부으셔서 계속적으로 구원(救援)의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죄인(罪人)들이 죄(罪)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며, 이미 믿는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욱더 그리스도에게 깊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교회(공동체)를 견고하게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겸손(謙遜)이요, 서로의 신뢰(信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변화(變化)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교만(驕慢)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따라서 겸손(謙遜)할 때,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진실(眞實)하고, 정직(正直)해야 합니다.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의심(疑心)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자란다는 것은 서로 간에 이런 신뢰(信賴)가 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신뢰(信賴)는 정직(正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하여 진실(眞實)을 말하는 이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진실(眞實)을 말할 수 없다면, 그 공동체(共同體)는 곧 *모래 위에 지은 집*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서로 물질(物質)로 나누는 이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交際)라는 것은 많은 경우에 어려운 교회를 물질(物質)로 돕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물질(物質)의 나눔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그 사역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異邦)교회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흉년(凶年)이 들었을 때, 꼭 헌금(獻金)을 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헌금(獻金)이 유대인 교회를 하나가 되게 했고. 특히 그 어려움에 동참함으로써 이방인(異邦人)교회들이 더욱 중요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올바른 성전을 짓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아직 이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의 말씀으로 예수 믿고, 변화(變化)되는 것이 성전을 세우는 것인 줄 모르고, 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복음(福音)을 분명히 전해서 공동체(共同體)의 영적(靈的)인 상태를 계속 점검(點檢)해야 합니다. 즉 복음(福音)을 선포할 때, 거듭나지 못한 자는 *아 내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뿐 아니라, 이미 거듭난 사람도 *아 내가 거듭났다고 하지만 참으로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있었구나*라면서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전은 견고(堅固)해 지면서 성령으로 충만해 집니다. 그리고 우리 안의 신뢰(信賴)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정직(正直)하고, 진실(眞實)하려고 각자가 애를 쓸 때, 이루어집니다.

 

그저 재능(才能)이 있다고 교회(공동체)에서 활개를 치고, 날뛰는 것으로는 신뢰(信賴)가 생기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뢰(信賴)관계를 팽개쳐 버리는 것은 마치 여인이 순결(純潔)을 포기(抛棄)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는 성령의 공동체(共同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진실(眞實)을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해 정직(正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이 그 안에 함께하시며, 교회(공동체)밖에 있는 자들이 이들의 신실(信實)한 모습을 보고, 교회(공동체)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서로 신실(信實)한 사랑으로 연합(聯合)할 때, 하나님은 주님이 믿는 형제자매들의 입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성전의 어느 부분에 필요한 재료인지를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으면, 모든 것을 자기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나의. 용도(用度)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아직 온전한 나의. 용도(用度)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성전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救援)으로 초청(招請)되도록 하는 것이 성전의 용도(用度)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각 셀(cell)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선포되는지를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오늘의 묵상

*.......이 집은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 예배 10월 30일(주일)

주일 예배와 헌금 봉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천국시민된 특권과 은혜헌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절) 
순서 : ☆사도신경으로 시작하여 ☆성경 :  본문 읽기와 생명의 양식 공유, ☆찬송 : 삽입된 찬송, ☆헌금 : 헌금과 봉헌기도, ☆교갱원 설립을 위한 합심기도와 주기도문으로 끝내십시요. 
◈후원금 외 헌금은 전체의 10/1을 교갱원 설립비로 ▽입금하고▽ 나머지는 성도간 교제비, 애경사, 새신자 환영, 전도비 등으로 사용하십시요.                       
             =========================================             
▣알림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알림 내용을 적극 협조할 때   

(1)추계(秋季)은 년중 순종 행사로(11월초-12월말)축복대심방(국내-국외)스마트폰으로 (지역. 장소.날짜.시간을 조정하여 초청하는 셀(cell)가족 순으로 출장 시행합니다.(댓글 이메일, 또는 전화로 초청시간은 30분이내로 후계자 정현흥 목사가 동행하며.냉수 한 잔 외는 부담을 주지않습니다.  

 

(2)후반기는 필(必) 행정보고서를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 셀(cell)로 구별하여 새 출발 할 수 있습니다(비소속 가명 스파이 멋튀는 제외). 

(3)소속 조건 ▽        

행정보고.정착완료.양식보존.새벽기도.교갱원설립후원.()()심방.신뢰로 실명.소통

                             보물을 하늘에 쌓을 創立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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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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