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수 선수는 한 손이 없는 장애를 딛고,
상단세로 전국 검도대회 4강 (2002. 7월) 등... 아름다운 전설을 이룬 선수입니다.
아래 글은 김종수 선수가 쓴 글입니다. 좀 길지만....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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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우연히 검도라는 운동을 보았다.
나한테는 너무 생소하고 전혀 접할수 없을 것 같은 운동 검도....
난 20살때 일을 하다 왼손 손목까지 잘리는 사고를 당한 장애인이다.
나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하지않고 산다.
"왜? 그냥 왼손만 없지.. "
모든걸 정상인과 같이 하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것이 싫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남들이 못하면 노력을 안한 것이고 내가 못하면 장애인이기 때문이란 소리가 너무나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처음 검도와 나와의 인연이 만난 날이다. 처음 검도장 이란 곳을 방문하였다.
송우리 검도 교실 (그당시에는 선무관 이였다.다른곳에도 선무관이란 도장이 있어서 1999년도에 송우리 검도 교실 로 이름을 바꿨다.) 나를 검도 중독자로 만든 곳이다.
지금은 내 인생에 검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검도 인생에 많은 스승님을 만났지만, 2명의 은사님을 이곳에서 만났다.
첫번째는 장문영 관장님 (지금 남양주 시청 검도 선수로 계신다. 그래도 나한테는 관장님 이시다.) 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상단세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다.
언제나 첫 만남은 소중하고 많이 생각나는가 보다.
도장에 첫 발을 딛고 인사를 하고 검도를 배우고 싶다고 문의를 하였다. (그때까지 검도가 왼손의 비중이 큰 운동이란걸 몰랐었다.)
내가 왼손이 다쳤는데 검도라는 운동을 배우고 싶은데 할수 있습니까? 하고 말이다.
장문영 관장님은 너무도 쉽게 할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난 오른손으로 후리기라는 것을 배웠다.
2~3일 후리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손바닥의 피부는 다 벗겨지구 진물이 물 흐르듯 흐르며 너무 쓰라리고 아파 포기할까 생각을 했었다.
(이때는 하루에 2~3시간씩 운동을 했었다.)
후리기, 3동작, 2동작,1동작, 빠른 동작, 타격대 치기 이렇게 시간은 지나 1달이 조금 넘자 호구를 쓰게 돼엇다.
호구를 처음 쓴 느낌이 시야는 좁아지구 숨이 너무 가빠지고, 무게가 만만치가 않은 것이 아닌가................
남들은 처음에 중단세를 배우는데 난 상단세를 배웠다.
지금도 중단세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남들 하는거 보고 자세만 잡을 정도다.
호구 입구 머리치기를 하는데 타격대는 타격 부위가 평평한데 호면은 둥글둥글하여 머리를 칠때 죽도가 흘러 많이 고생했었다.
장문영 관장님께선 나중에 시합을 하게 되면 상단은 찌름을 많이 당하니까, 그것에 맞는 훈련을 많이 해주셨다.
난 관장님의 머리를 치고 관장님은 찌름을 하시고..............
그 훈련이 지금 시합에 나가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는 검도의 매력을 잘 모르고 중독도 덜 되어 운동을 많이 빼먹었어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도 되고 장문영 관장님께 너무 죄송하다.
그러다 장문영 관장님께선 남양주 시청 선수로 들어가시고, 난 일 때문에 운동을 쉬게 되었다.
1999년 6월, 지금의 송우리 검도 교실 이경훈 관장님을 만났다.
그 당시 검도를 그만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운동을 안할 때 관장님이 바뀌신 거였다.
주말이었을까..
친구들과 밤늦은 시간까지 놀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같이 운동하는 형한테 전화가 왔다.
급히 오라는 것이다.
난 너무 늦어 그냥 집에 간다구 하는데 빨리 오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만날 장소로 이동을 했다.
거기에 그 형과 전에 운동하시는 분 그리고 낯선 한분이 계신거였다.
나이는 많이 들어보이시지 않아서 관장님 이실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같이 운동하시는 형이 소개를 시켜주는데 새로오신 관장님 이시란다.
그 형이 내 이야기를 했는데 관장님이 한번 가르치고,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전화로 급히 오라 했고, 그게 인연이 되었다.
이경훈 관장님을 만난 것이 나의 검도 인생에 많은 변화를 준 계기가 됐다.
전에는 내가 할수 없는 운동을 한다는 그 자체로 자기 만족에 살고 있는 나를 한번 더 일깨 어 주신 분이다.
시합을 나간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봐었다.
급,단은 말하것도 없이 나의 실력에 딴다는 것을 생각을 못했었다.
이경훈 관장님이 오시고 2달후 8월 남양주 시장기 시합이 있다는 것이다.
난 시합 얘기 듯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나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 였다구 생각 했기 때문이다.
운동시간이 끝나구 관장님이 제 옆에 오시던이 시합에 출전하란 것이 아닌가.
믿어지기 않는 소리였다.
우리 도장에 성인부원도 많은데 나보구 출전하라니 그것도 개인전 단체전을.......
난 할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경훈 관장님은 괜찮다고 할 수 있다구 말씀하시면서 한번 출전해보라는 것이다.
하루를 생각했다.
개인전은 나혼자 하는 시합이라 부담이 적은데, 단체전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관장님은 날 단체전 중견에 넣으신거다.
다른 자리도 중요하지만 중견이라는 자리는 팀의 허리인데 내가 과연 잘할수 있을까?
난 팀원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
그렇게 시합날이 다가 왔다.
나에게는 첫 시합경험의 날이다.
개인전 먼저 시합을 하게 돼었다.
개인전 첫 시합.
체육관 천장이 노랗게 보이고 상대선수 몸집은 왜 그렇게 커보이던지..............
난 아무생각없이 코트에 들어선 순간 저 멀리 관장님이 보였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긴장해서 들리지가 않아다.
첫 시합을 이겼다.
두 번째 시합도 세 번째 시합도 관장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8강 첫 시합에서 8강까지 올라간 것이다.
내가 실력이 좋아서 이긴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상단과 많이 시합을 해보지 않아서 내가 유리했고 운도 좋았던 것 같다.
8강 시합 상대선수는 관록이 보이고 상단과 많은 시합을 해본 것 같았다.
여지 없이 2 대 0 으로 나의 완패였다.
단체전 첫 시합 개인전서 8강에서 나에게 패배를 맛보게한 사람이랑 맞붙게 되었다.
첫 포인트는 선취했다.
상대는 장외 반칙까지 있었다.
이길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의 역전패.....
시합이 끝나고 서로 상견례 그 사람과 악수를 하는데 다음에 한번 다시 좋은 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때 당시 너무 분했다.
가슴속에 승부욕이 너무 강했던 것인가?
아니면 장애인이라서?......
시합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를 분한 마음만이 자리 잡았다.
다음번에는 꼭 이기리라 생각하면서...
그 분 성함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시합에 계속 출전할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그 후부터 관장님과 나와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중단의 기술을 상단에 맞게 변형시키시는 것이 관장님의 몫이고, 나는 그 기술들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잘 치는 반대쪽 허리 또한 관장님의 생각이었다.
또한 시합에서 시작할 때 중단세로 시작하는데 난 왼손이 장애인 관계로 다른 사람과 반대로 잡는다.
모르는 상대쪽 관계자가 이의 제기를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관장님이 해명 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신다.
그런 관장님께 보답하는 길은 고맙습니다 란 말보다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뿐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2달후 10월 나의 2번째 시합이다.
개인전 긴장감은 첫 시합때보다 덜했지만 마음은 첫시합의 연장이였다.
첫판은 부전승을 타지만 ? 번째판부터 너무 강적들 이었다
8강 우리 도장 후배를 만난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다른 시합보다 힘들었다.
연장전 비김, 다시 연장..............
결국 나의 손목한판 승이었다.
4강도 연장..................
결승 연장에서 너무 힘들고 아무 생각도 않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장애인이 결승까지 올라온것만두 휼륭한거라 메아리 친다.
져도 나한테 뭐라 그럴 사람 없을거야 자꾸 내 자신이 약해지는 것이다.
너무 힘들다.
마직막 젖먹던 힘까지 짜내 한칼을 던졌다.
상대의 손목에 적중했다.
심판들의 기가 전부 올라갔다.
손목~~~~~!!!.
나의 승리 였다.
눈물이 날것 같고 다리 힘이 풀렸다.
오른팔의 떨림은 멈추질 않고 물을 먹고 싶은데 오른팔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관장님은 아무말 없이 나의 오른팔을 만져주시면서 수고했다는 그말 목이 메어 아무 말두 할수 없었다.
이 시합이 끝나고 나는 검도 인생에 한분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스승님 이경훈 관장님의 스승님인 김 석순 (8 단) 선생님 이다.
관장님이 말씀을 하셔서 유심히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김석순 선생님은 항상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시합에서 있어선 공평한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시합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못거두거 몸이 이래서 여기까지인가보다 생각들때 따끔하게 노력을 안해서 그런거라고 혼내주신다.
그런 말씀이 나의 검도인생에 힘들다고 생각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그 후로 많은 경기에 나가 입상을 많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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