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마르다(요 19:28-30)
제가 시골로 이사간 지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여러 동물들을 기르면서 생명과 죽음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1년 사이에 닭은 13마리에서 30마리가 넘습니다. 자연 부화로 병아리가 태어났습니다. 알파카도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또 산에 살던 들염소도 목장으로 들어와서 10 마리 가까이 되기도 했지만 여러 마리가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 중에 4마리가 죽어 땅에 묻어주기도 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숱한 생명들을 직접 대하면서 깨달은 것은 생명을 가까이 대하는 것은 그만큼 죽음도 가까이서 대한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가까이에 있고, 서로 대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았다는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삶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삶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거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에 고통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워합니다. 이 길을 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가야 할 길이요 우리 모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반드시 갑니다.
이 죽음의 길에 선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의 구세주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십자가 형입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호령하는 대제국이 되었을 때에 로마제국에 도전하는 정치범을 사형할 때에 사용하는 극형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동산에서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에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6천 개의 십자가가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 되었습니다. 바로 로마의 노예들이 검투사 출신 스파르타쿠스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대항하다가 실패하여 십자가 극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그때에 십자가 위에 달려서 7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가상7언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 하나인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입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시던 예수님께서 신음소리로 “내가 목마르다”고 애타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는 주님의 말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1. 예수님의 이 목마르심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미 예수님께서 목말라 하실 것에 대하여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 시편 22편에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시편 22:15).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하실 때 지키고 보초를 서던 로마 군인이 어떻게 합니까? “거기 신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댔다”(요19:29)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69편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 초로 마시웠나이다”(시 69:21)
예수님의 목말라하심이 이미 예언되어 있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은 로마제국을 흔드는 정치범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행 가운데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청하신 것이 있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행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그의 마지막 순간에 목말라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말라 하심으로 구약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2. 목말라 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의 육체적 고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십자가에 달려보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위에서 죽어간다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다..
(1)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2) 이때에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는 손과 발에 못박고, 심장과 머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3) 그런 가운데 6시간이나 오래 동안 십자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못 박힌 손과 발에 난 상처는 붓고 아프고 썩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4) 체중을 이기지 못하여 상처가 찢어지고, 동맥이 끊겨 피를 많이 흘려 내립니다.
(5)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의 신음과 동반되는 갈증 때문에 받는 고통은 아주 심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될 때에 살이 찢기고 터져서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 때에 피가 끊임없이 줄줄 흐르기 때문에 극심한 갈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갈증으로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친 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고난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여정을 되새겨 봅시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고뇌에 찬 기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땀방울이 피 방울처럼 떨어지는 기도시간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자 배반자 유다가 입을 맞추었고 폭도들이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1) 한밤 중에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아침까지 쉬지 못하고 시달렸습니다. 자신들이 사형선고를 할 수 없으니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2)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끌려가 공판을 받았습니다.
(3) 또 헤롯 앞에 끌려 갑니다. 거기서 조롱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4) 다시 빌라도 앞에 끌려가서 채찍질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했습니다. “유대인의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5)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지쳐서 쓰러지기를 거듭했습니다. 골고다 정상에서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고 세워졌습니다.
(6) 예수님은 오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여섯 시간을 매달려 있습니다. 그의 생명은 고통으로 찢겨졌으며, 그의 입은 바짝 말라붙었습니다. 그의 목구멍은 활활 불탔습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외쳤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면 마지막에는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쳐야 했겠습니까?
3.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다고 외친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언제 목말라 보셨습니까? (1) 운동이나 사우나로 땀을 많이 흘리면 목마릅니다. (2) 또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그렇습니다. (3) 허기진 상태에서 음식을 많이 먹으면 갈증이 생깁니다. (4) 좀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당뇨같은 병이 있을 때에 갈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5) 또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할 때에 갈증이 옵니다. 이것은 생리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현상에서 오는 목마름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이런 목마름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습니다. 그는 말하고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거닐기도 했고, 죽은 자를 살리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배고파하시기도 했으며 슬퍼서 우시기도 했으며 피곤하여 주무시기도 하셨던 인간이었습니다.
또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죽어가는 한편 강도에게 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십자가 위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절규하시는 연약한 인간이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말라 하신 것은 참 인간이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갈증을 느끼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사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목말라 하신 것은 참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언제 목말라 해 보셨습니까? 육체적인 요인으로 갈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목마름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안정을 잃으면 그렇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 속에 평화가 없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분석합니다.
(1)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고 , (2) 지나친 욕망이 일어나 채우지 못하고, (3) 질투심이 가득할 때입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은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질투하고 있는 한 평안할 수 없습니다. (4)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고, (5) 교만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복수, 욕망, 질투심, 분노, 교만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불안합니다. 마음에 편안을 누리지 못해 항상 목이 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면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한다”(계 7:16) 우리가 지금 목마른 것은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은 갈급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갈증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을 찾아 헤메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명예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지식을 찾아 헤메고, 어떤 이는 세상의 일락을 찾아 헤메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찾아 헤메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목말라 하던 사마리아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른다”(요 4:13)
세상의 물은 잠시의 갈증을 면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목마를 뿐입니다. 왜냐하면 목마름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의 갈증은 이 세상의 방법으로는 면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4:14).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족과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갈함을 해소해 줄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광야의 샘물이었습니다. 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풍성케 하셨습니다. 목마른 백성을 위하여 쓴물을 단물 되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갈함을 면케 해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지금도 팔을 벌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찬송가 316장을 부르겠습니다.
1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2 이 샘에 나는 물 강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이 분별이 없이 다 와서 쉬고 또 마시겠네
3 신기한 샘물을 마신 자마다 목 다시 갈하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하리
4 이 샘의 이름은 생명의 샘물 저 수정 빛같이 늘 맑도다 어린양 보좌가 근원이 되어 생명수 샘이 늘 그치쟎네
예수님은 우리 위하여 목마르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품에 안김으로 참 만족과 편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나를 위해 목마르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생수를 누리시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