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성도님들이 사업차 개업을 할 때에 목사님들을 모셔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런 교회에서 개업선물로 액자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 액자 가운데 성도님들이 선호하는 액자에는 욥기서에 나오는 성구를 좋아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입니다.
바울 일행의 유럽 선교의 시작도 그러했습니다. 성령의 지도하심으로 나아가는데, 첫 번째 선교지는 빌립보였습니다. 12절에 보면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며칠을 머무는 가운데 안식일에 강가에서 몇 사람을 만납니다. 만난 사람은 남자는 없고 몇 명의 여자들이 전부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유럽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에 여인들이 강가에 모여 있었습니다. 왜 강가에 모였을까요? 쉬는 공휴일이라 야유회라도 나왔을까요? 아니면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서 나왔을까요? 우리는 우리 식의 문화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여자들이 강가에 왜 나왔는지를 알려면 14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두아디라 성의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14).
강가에 모인 여자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대교에 호의를 가지고 입교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루디아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루디아와 여인들이 안식일에 강가에 나온 것은 야유회를 위해서 혹은 빌린 빨래를 하기 위해 강가에 나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강가에 나갔을까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기에 바울 일행처럼 안식일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강가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고 많은 장소가 있을 것인데 왜 강가일까요?
왜 하필이면 기도처소로 강가입니까? 산에도 갈 수 있고, 들에도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기도하기 전에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필요했으며, 정결의식을 위해서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기도처소가 된 강가에서 바울 일행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유럽 선교의 첫 열매가 된 루디아를 발견했습니다.
루디아는 어떤 여자입니까?
루디아는 소아시아에있는 두아디라 성 출신으로 자색 옷감을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의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화 [벤허]를 보셨습니까? 거기에 나오는 로마 사람들의 의상을 보면 주로 붉은 색 계통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왕족이나 귀족들은 자색 옷을 입고 나옵니다.
자색옷은 왕족이나 귀족들이 입는 옷이기에 고급 옷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자색 옷을 장사는 루디아는 제법 부유한 사업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이 유럽선교의 첫 열매가 됩니다.
이 루디아를 통해서 유럽의 첫 번째로 세워진 빌립보 교회가 시작됩니다. 루디아는 빌립보교회의 개척멤버입니다. 이 빌립보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루디아는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끝까지 도운, 그야말로 선교에 헌신한 교회였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말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 4:15)
선교여행을 떠나는 바울에게 많은 성도가 있었고, 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선교헌금을 작정한 교회는 빌립보교회 외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 4:16)
고린도전서 8장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헌금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이 빌립보 교회와 같이 하나님 앞에 헌금생활을 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생활을 해야 된다’ 사도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빌립보 교회를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바로 이런 멋진 교회, 모델과 같은 교회의 기초를 놓는, 쓰임 받는 일군이 루디아였습니다. 두아디라의 자주장사가 어떻게 빌립보교회와 세계선교에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이 되었을까요?
1.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현장을 지켰습니다.
루디아는 이방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개종해서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루디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남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 없이 혼자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 없으면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남편이 있으면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남편의 비위를 맞출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나의 남편이요, 나의 소망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에 집중하게 되고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도 더 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공평하십니다. 땅의 것을 좀 덜 가지게 되면 대신에 영적인 것을 더 많이 주시니 말입니다.
반면에 루디아의 신앙에 지장을 줄 만한 요소도 있습니다. 그녀의 직업과 재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사업을 벌릴 만큼 능력도 있고 재산도 있었으니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가 가진 것을 의지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갑질하면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또
“강가에서 여자끼리 모여서 기도하는 거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한 번쯤 안 가도 그만이지. 안식일이라고 모일 만한 회당이 있나, 신앙을 이끌어 줄 지도자가 있나? 사업이나 열심히 해서 돈을 더 버는 게 낫지”
루디아는 이런 식으로 마음을 먹을 수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루디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안식일마다 기도하러 강가에 나아갔습니다. 일상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판을 칩니다. 여기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이 패권주의에 가장 중앙에 서 있는 사람들이 유태인입니다. 유태인들이 미국과 세계를 조정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이 유태인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모든 열 일을 다 제치고 반드시 지켰습니다. 그래서 후에 역사가들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평하기를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훗날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는 시간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지나보니 안식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그들을 지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온갖 핍박과 환란을 경험했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50%를 넘게 유대인들이 받았습니다. 그 동력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14절에 “루디아라는 한 여자 들었는데”라는 문구에서 ’들었는데’라는 표현은 일회적인 용어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듣는 행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루디아는 바울의 말을 한번 듣는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바울 일행이 참석하는 그 안식일 강가에 나가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니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성전 미문에 매일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처럼, 하나님과도, 예배와도 상관없이 구걸하던 그도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을 만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요구하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 날마다 나아갈 때에 때가 되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되어서 성전에서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루디아도 안식일에 기도의 처소에 나아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절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에 주께서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여셨습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요상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락가락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을 하고 확인을 하지만 내 마음 하나를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작은 마음은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심지를 강하게 해 주시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지만 절대로 안됩니다.
한번 우리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똑같이 수십 년 예배를 드려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활짝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신앙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쓰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음이 열려있지 않아서 그 마음이 바뀌지 않습니다. 예배당에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에 꼭 잊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가 되게 하시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 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여셔야 하기에 우리 또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냥 몸만 나와 앉아서 허송세월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선택함을 받았고, 한 사람은 영원히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벨과 가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지만 가인은 영원히 버림을 당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능력에 차이가 있습니까? 재능의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은 그 차이점은 오직 하나라고 합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요약해서 말합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더 나은 제사는 도대체 어떤 제사입니까? 더 비싼 것을 드렸습니까?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추수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기에 자기의 양 새끼를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 앞에 제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창세기4:4에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지 아니하신지라”
같은 이름의 제사,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그렇지 않는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루디아를 보십시오. 15절에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그 마음이 열려 세례를 받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온 가족도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온 가정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을 열고서예배를 드립시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니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전적으로 헌신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루디아를 보십시오 15절을 다시 봅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15)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그의 반응입니다. “당신이 나를 하나님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서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강권했습니다.
루디아는 말씀을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너무나 감동되었습니다. 다음 안식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전도 순례자가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불 일듯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간청해서 바울 일행을 모시려고 했습니다.
이런 권유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초면의 복음 전도자들입니다. 그것도 바울과 실라, 디모데와 누가 – 남자만 4명입니다. 이들을 모시고 대접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자주 옷감 장사를 해서 경제적으로 나을지 모르지만 손님을 모시고 대접하면서 집에서 말씀집회 전도 집회를 계획하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큰 수고가 따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자신이 손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자신이 귀찮게 되기를 각오했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내어놓는 이 결단과 헌신으로 인해서 루디아의 가정은 이후 빌립보 교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유럽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빈들의 기적을 아십니까? 벧세다 들녘에서 5천 명의 사람에게 빵과 고기를 먹이고도 12 광주리의 부스러기가 남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그 누구도 자신의 도시락을 내어놓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의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의 꼬질꼬질한 도시락이 주님 손 안에 들려지고 감사가 될 때에 5천 명이 배불리 먹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모세의 마른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가르셨던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왜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놀라운 사역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부스 목사는 구세군의 창설자입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를 사령관으로 부릅니다. 영혼 구원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군대 시스템을 동원한 것입니다. 부스 목사는 구세군을 창설하고 섬기다가 은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기자들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부스 사령관님, 당신은 어떻게 이 위대한 교단을 창설할 수 있었습니까?”
부스 목사님은 한참을 말없이 침묵하다가 말했습니다. “제 주위에는 저보다 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보다 재산을 더 많이 가진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사실 가진 것도 없고,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것은 단지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드리기로 다짐하며 살아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위대한 교단과 위대한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나 아낌없이 사용하는지 모릅니다. 시간과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10불 20불을 예사로 사용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는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십일조는커녕, 단돈 1불도 헌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예로 많습니다. .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인생을 드리기로 작정하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중한 것들을 투자하시고 맡기십시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루디아는 유럽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가 되는 빌립보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쓰임받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 쓰임에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회복과 헌신이었습니다.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예배를 회복하고 헌신하시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