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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헛되지 않는 일을 하라(데살로니가전서 2:1-2)

작성자보리떡 5|작성시간18.04.28|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코로만델에 가면 바닷가 모래사장에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유명한 곳이 있습니다. 다 가보셨지요? Hot Water Beach…. 거기에 가면 우리는 삽으로 웅덩이를 파서 몸을 담그며 놉니다. 거기서 하는 놀이 가운데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 모래성을 쌓는 일을 합니다. 튼튼하게 높이 쌓으려고 정성을 모습니다. 파도가 살랑살랑 다가옵니다. 모래성 가까이 옵니다. 그러다가 좀 큰 파도가 밀려오면 심혈을 기우려 만든 성은 한 순간에 허물어져 나갑니다. 그런데도 또 성을 쌓습니다. 허물어질 모래성인줄 알면서도 ……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내가 그토록 힘들이고 노력하는 일들이 모래성과 같이 속절없이 무너질 일을 하고 있다면 …. 그런데 말입니다. 비치에서 모래성 쌓기야 재미 삼아 하는 일이지만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은 재미 삼아 무너지는 일에 정열을 쏟는다면 얼마나 헛된 일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3장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종류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지은 집들이 보통 때에는 이 집이 옳게 지었는지 아닌지를 모르는데 불이 한 번 통과하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지은 집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인생의 집을 짓고 있는가요? 어리석은 자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까? 아니면 지혜로운 자처럼 반석 위에 집을 세웁니까? 이 질문과 함께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1)라고 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일이 헛되지 않은 일인 것을 성도들에게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헛되다라는 말은 아무런 결과(열매)가 없다혹은 실패하다’ ‘무익하다’’비효과적이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데살로니가 방문이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반면에 솔로몬 왕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1:1-3)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헛되도다인생의 헛됨을 말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 성취, 업적은 결국은 헛되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결코 헛되지 않다고 자신이 확신할 뿐 아니라 성도들이 알고 있다고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는 걸음을 걸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1. 고난과 능욕 뒤에 들어갔습니다.

2절에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오기 전에 빌립보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다알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16장에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머물면서 강가에서 옷감 장사 루디아와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거리에서전도를 하였습니다. 이때에 따라 다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였습니다.  따라 다니며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이다라고 바울에게 꼭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전도할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외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 여자는 귀신 들려 점치는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저 귀신 들린 여자처럼 우리도 예수 믿고 저렇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여자가 따라 다니며 외치는 것을 몇 번을 참았습니다. 나중에는 안되겠다 싶어, 이 여자 때문에 복음이 잘못 전해질 가능성이 있다 싶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이 후에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들려 점을 치는 여자가 이제 온전하게 되니, 점쾌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주인들이 수입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귀신들린 여인의 주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을 붙잡아서 관원들에게 고소했습니다. 고소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 점치는 종의 귀신들린 것을 낫게 해 주었습니다라고 사실대로 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사람은 천하를 소요케 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로마 관원들에게서 가장 민감한 문제입니다. 사회를 소란케 하는 정치범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실라가 잡아 어떻게 했습니까? 옷을 벗기우고, 매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발과 손을 전부 착고에 채워 지하감옥에 넣어버렸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극도로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지하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비록 채찍을 맞아 찢기고 상하여 고통속에 있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감격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본래 감옥 안에서는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니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찬양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 가운데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보통 지진이 아닙니다. 왜 보통 지진이 아닙니까? 지진이 나면 그 집이 나면 벽이 쏟아져 내리고 집이 내려 앉는데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대신에 바울과 실라가 차고 있는 착고가 스르륵 풀렸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통 지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 간섭으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에 졸다가 깬 간수가 옥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 간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간수는 너무 겁에 질려 낙심하여 칼을 빼어 가지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너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놀란 간수가 정신을 차리고서 말합니다. 선생들아 우리가 어찌하면 구원을 받겠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전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 임을 알리면서 말하기를 왜 그냥 내어 보내려고 하느냐? 재판을 하지 않고 두드려 팰 때는 언제고, 지금은 살며시 나가라고 하느냐? 그렇게는 안되니 높은 사람들이 직접 와서 나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높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처신을 알고는 죄송하다고 사죄하면서 떠나기를 청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처음부터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고 밝히고 재판을 받았으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힐 일이 없었지 않았느냐고 자신이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전혀 잘못도 아니고 부당한 갑질도 아닌데 말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마땅히 쓸 수 있는 권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절제하며,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의 일가족의 갑질이 문제가 크게 보도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재벌의 회장이나 아니면 큰 권력을 가진 사람만 갑질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요즘 생각하고 반성합니다. 내 자신을 보면서 남편으로서의 갑질, 아버지로서의 갑질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정에서 아내의 갑질, 자식들의 갑질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부분의 권리를 절제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바울은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되어 고난과 능욕을 당하므로 간수가 회심하고 그 가정이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결국은 그 가정을 중심으로 세워진 빌립보교회는 세상의 모든 교회에 모델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열매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전에 텃밭에서 고구마를 캤습니다. 고구마가 얼마나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렸는지, 신기했습니다. 큰 것은 아기 머리보다 큰 것도 있었습니다. 삶아 먹어보았는데, 참 달고 맛도 좋았습니다.

제가 고구마를 심은 것은 지난 겨울에 우리 집 아이들이 말하기를 아빠, 요즘 고구마가 아주 비싼데 고구마를 한 번 심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파킨 세이브에 가서 고구마를 하나 사서 창가에 두어 싹을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봄에 고구마 둥지에서 난 싹을 잘라서 땅 속에 묻었습니다.

그때에 잘려져 땅에 묻혀진 줄기는 땅 속에서 가뭄을 이기고 크고 자라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뿌리에는 고구마 주렁주렁 달린 것입니다. 이 고구마는 한 가날픈 줄기가 원뿌리에서 잘림을 당하고, 그 조그마한 줄기가 땅속에 묻혀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픔과 목마름을 견디고 살아남아 고구마를 맺혔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능욕이 있습니까? 아무런 내 인생에 소득이 되지 못하는 헛사요 낭비가 아니라 성장과 내일의 성숙을 위한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방문한 일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 전파하다가 고난과 곤욕을 당하고 데살로니가로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나도 할만큼 했으니 이제는 편안히 여행이나 하면서 즐기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왜 나만 해야 되는가, 나도 지친다고 …. 앞도 안보이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되느냐고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을 힘입어서’ ….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3주 동안 복음을 전하는데,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인이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습니다( 17:4).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서 시장의 괴악한 사람(깡패)을 동원해서 소동을 일으킵니다. 믿는 사람들의 집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성에 차지 않으니깐 야손이라는 성도를 붙잡아서 읍장에게 가서 고발합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여기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말을 거역합니다. 예수를 저들의 왕이라고 합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입니다.” 라고 고발했습니다.

억울한 고발입니다.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고난이 주어졌습니다. 더 이상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바울을 야반도주를 시켜야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의 삶은 싸움이었습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는 퇴장을 했습니다.

저번에 제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에 서울에서 함께 사역했던 여전도사님을 만나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 서울역 항공 대합실에까지 와서는 여러 옷 가지를 한 가방 전해 주었습니다.

이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해주셨던 말 가운데 제 가슴 속에 늘 담고 있는 말이 목사님, 내 삶 속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버틸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능력 주셔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암말기 환자의 요양원과 십대 소년원 출신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화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쉬고 계시는데, 그 전도사님께서 그 사역을 하신 이야기를 쭉 해주셨습니다. 그 손을 봉여주셨는데,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셨는지, 손가락이 다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었다고 감사해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힘입어서 전쟁하듯이 하루하루 살다가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실패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3주 동안 고난 가운데 전한 복음은 놀라운 열매가 맺혔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낳는 인근 지역사회에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을 내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가 되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여정이 어떠했습니까? 고난의 행군이었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떠했습니까?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힘입어서 오늘을 살아가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로 능력으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아멘. 이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나는 정금같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시편의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마틴 루터가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종교개혁을 시작하고서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찬송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로다.” 아멘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힘 입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십시다.

(1) 하나님, 나에게 이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고난의 기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견디게 하옵소서. 계속 나의 자리를 지키게 하옵소서.

(2) 하나님의 자녀로 마땅히 해야 할 일들, 부모로서, 자녀로서, 학생으로써, 직장인으로써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하여 좋은 결실을 맺게 해 주십시오.

(3) 나의 힘 지혜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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