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땅에 언제 오시렵니까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목련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남풍 타고 오시렵니까
아니면 산천에 숲이 우거지고
소낙비 내리는 여름 천둥 번개를 타고 오시렵니까
감나무에 감이 익어가고
이 산 저 산불타면
하늘에 천사들과 불 끄러 오시렵니까
온 산천에 흰 눈 소복이 쌓이면
눈 위에 발자국 남기며 오시렵니까
교회마다 촛불 밝히고
기다리는 신도들의 머리위로
누구도 몰래 오시렵니까
되도록 우리모두 깨여 있을때 오시옵소서
/둥근다리 시인
유명한 설교가였던 죠지 휫필드에게 사람들이 ‘내일 주임이 오시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내가 세워 놓은 계획 그대로 심방하고 설교할 것이다’라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신다고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됩니다. 단 하나 전제가 있다면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옥주 목사의 은혜로 교회처럼 피지가 지상낙원이라고 해서 농장을 세우고 집단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선 자리에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있듯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16-17)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오실 주님이 기다려집니다. 우리 선배 되신 목사님은 주님께서 오심이 급박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무실 때에도 의관을 갖추고서 주무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오시는데 나의 흐트러진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렇게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우리 생전이면 이 또한 영광이요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오신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한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죽은 성도는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4)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15)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를 말하기를 ‘자는 자’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잔다는 것은 ‘다시 깨어난다’는 것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언제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입니다. 14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와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을 데리고 오실 땐데, 그 시간까지 자는 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는 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다가 예수 재림 때에 일으킴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 시기를 ‘중간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 안에서 살다가 죽은 자들이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중간기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많은 이론들이 생겨났습니다.
재세례파 같은 사람들은 ‘아예 잔다’고 이야기를 해 버렸습니다. 영혼이 다른 곳에 가지를 않고 깨끗한 상태로 자다가 재림 때에 부활한다고 말을 합니다. 들으면 그럴듯하지요.
또, 오리겐 같은 사람들은, 천당과 재림, 사이의 중간의 ‘어떤 상태가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것을 자꾸 발전 시켰습니다. 이것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상당히 흥미있는 이론입니다.
카톨릭이 말하는 연옥설을 50%는 진리고 50%는 가짭니다. 50%가 진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잘 믿고 세상에서 성자와 같이 산 사람은 죽자마자 그 영혼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 갑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예수 안 믿고 되는대로 함부로 악하게 산사람은 죽자마자 지옥으로 갑니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적당히 다녔고,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사람들은 지옥도 천당도 갈 수 없는 어중간한 사람들로서 중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것이 연옥입니다.
영혼이 천국에 갈 만큼, 천국에 들어갈 만큼 깨끗하지를 못해서, 부정한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죽으면 그 영혼이 연옥에 가서 그 더러운 것이 깨끗이 씻어질 때까지 정하게 하는 불로 연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연옥에서 연단은 개인에 따라서 그 연단 받는 기간은 틀린다고 가르칩니다. 묻은 것이 적은 사람은 빨리 끝날 것이고, 더럽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오래 걸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정하게 하는 연단을 다 받고 그 영혼이 정하게 되면 하나님이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들여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 죽은 어린아이들은 다 이 연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구약의 성도들도 예수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던 성도들도 다 연옥에 들어가서 한번 더 연단을 받고, 깨끗함을 받아서 천당에 들어 갑니다. 또 그 연옥에는 예수를 전혀 몰랐지만, 성자처럼 살다간 쏘크라테스 같은 사람들도 다 들어 간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참 재미있고, 굉장히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영원한 세계에 대한 지식을 분별할 때에 그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의 합리적인 논리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하는 말이 상당히 그럴듯합니다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비교를 해보면, 성경 안에 없는 이야기라는 금방 알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연옥이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안되면 다름 세상에서도 기회가 있으니 얼마나 좋게 들립니까?
이 연옥설이 또 만인 구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만인 구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는다’ 하는 굉장히 낙천주의적인 사람들입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저렇게 높고 크고 위대한데 어떻게 한 사람인들 지옥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듣고 보면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의 그 피의 대가가 얼마나 비싼 것인데, 그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도 한 사람이라도 지옥을 보낸다면 하나님이 무능하신 하나님이 되어 버릴 테니까 한 사람도 지옥으로 보내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인 구원설론자들입니다. 굉장히 매력 있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성경에 비추어 보아서 성경 안에 없는 이야기이면, 또 성경과 상반 되는 것이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연옥설을 좀더 발전 시켜서 주장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으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다 어디로 오느냐 하면, 이 중간기라고 하는 연옥으로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여기에는 세상에서 예수를 잘 못 믿은 사람도 들어 오고, 또 특별히 예수 믿으라고 하는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전부다 이리 들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는 전도의 기회를 다시 한번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굉장히 기분 좋은 이야깁니다. 인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만약에 천당과 지옥을 다 보고, 중간에 서서 예수 믿으라는데 안 믿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만인구원설이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상당히 호감을 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 할 때에, 자주 질문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구원 받지만, 신라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고 얼마나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이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답을 척척합니다. 연옥으로 가서 전도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만약에 이 이론을 따른다고 하면, 세상에서 전도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전도하는 것이 바보짓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세요. 하나님께서 문 밖에 나오셔서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왜 기다리십니까 연옥에 가서 예수 믿으면 될 텐데..., 그런 기회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러서 복음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떠나게 만드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 예수 믿으라는 말 듣고 믿지 아니하면 영원한 멸망입니다.
거기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요한복음 8:21에 보면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또 요한복음 8:24에는 “네가 만일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인 것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리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보지 않고 세상 떠난 사람들은 아깝지 않느냐 그 사람들이 멸망 받는데 대해서는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연옥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잘못 믿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한번 더 주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좋아 보이는 교리라도 우리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기다리느냐 그것은 한마디면 끝납니다.
고리도후서 5:8을 보세요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거하는 그 것이라” 우리가 죽으면 예수와 함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23장에 오른편 강도가 구원 받은 다음에 주님이 약속한 것 있습니다.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다음에 빌립보 넘어가서 1:2에 지금 바울은 감옥에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 사이에-생.사-두 사이에 끼었으니,차라리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욕망을 가지는 것이 더욱 좋다”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죽자 말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디에 계실까요 연옥에 계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천국에 있습니다. 거기에 성도들이 함께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먼저간 성도들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경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준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전부 따라 나옵니다. 이런 면에서 부활은 먼저 죽은 성도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반면에 예수 믿지 않던 자들은 그 영혼이 부자가 간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시에 그들도 몸을 입고 살아 납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활이라고 하지를 않아요 더 죽기 위해서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거 하나는 믿습니다. 영혼이 먼저 가서 대기하는 그 곳(낙원),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누리는 그 축복과 그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한 다음에 우리가 신령한 몸을 다시 입고 그 다음에 누리는 영광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겠습니까 나중의 것이 더 좋겠지요.
영혼만이 누리는 복락보다, 영육이 함께 누리는 복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더 완전하겠지요. 그래서 주님의 재림은 더 기다려 지는 것이고, 우리의 부활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하나의 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봅니다마는, 우리는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 속에 굳게 다시 한번 확인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형제들이 먼저 가든 내가 먼저 가든, 주님이 재림하기 전에 우리가 설혹 육체의 죽음을 죽을 지라도 그것은 잠자는데 지나지 아니합니다. 결국에는 완전한 죽음을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결국 깨어 나게 하실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위로하십시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다르게 삽니다. 감사하고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