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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성도 맞습니까?(빌립보서 1:1)

작성자보리떡 5|작성시간19.02.16|조회수271 목록 댓글 0

며칠 전에 일찍 저녁을 먹고는 산책을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길을 걷다가 제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이 길을 걷고 있는가?라고 .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공부하고 교회를 섬기던 내가 어떻게 이 뉴질랜드 산골짜기까지 와서 살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이 저녁에 이 길을 산보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 1차 선교여행지를 다시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마게도냐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심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번째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성은 그 당시에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여기서 며칠을 유하게 되었고, 안식일이 되자 기도처를 찾았는데 강가에서 여자 몇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강가에서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있었습니까?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6:13). 바로 자주 장사 루디아입니다. 이 여인은 자주 장사, 비단 옷감을 파는 여자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청종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와 그 집의 모든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받은 바 은혜가 크기에 자신의 집에 바울이 청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을 유하도록 강하게 권하였습니다. 이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작점입니다. 루디아를 비롯한 여성들은 빌립보 교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교회의 특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민을 온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처음 올 때에 공항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처음 와서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을 때에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은 자신의 집 주변에 살 집을 얻어주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 학교도 정해지고, 먹고 사는 직업 문제도 가이드 해 주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정착해 가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바울과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의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주후 63-64년에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빌립보 교회에도 전해졌습니다. 이때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다른 교회 교인들처럼 또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 되었데.라고 하면서 기도만 하고 있었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얼마나 추우실까”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얼마나 외로우실까하는 마음이 막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교회의 주도적인 멤바가 여성들이기 때문에 이런 여성스러운 섬세한 마음 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는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감옥에 있는 바울 사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의논하는 가운데 옥바라지를 위한 위로금을 헌금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의 젊은 일꾼이 에바브로디도를 선정하여 로마에 보내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옥바라지 하면서 돌보아 드리고 봄에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빌립보 교회의 배려와 섬김에 대하여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4:18)라고 했으며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4:15)라고 편지에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세운 교회가 한 둘이 아니라 많이 있지만 정작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할 만한, 일들을 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 빌립보 교회의 따듯한 사랑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이에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또 편지를 쓰게 되는 다른 동기가 있습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옥바라지를 위해 파송 받은 에바브로디도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옥바라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만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아주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위해 파송 받아 온 사람이 몸져누운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일이 잘못되어 에바브로디도가 죽기라도 한다면 빌립보 교회에 얼마나 미안한 일입니까?

그런가 하면 빌립보 교회는 교회대로 어떠했겠습니까? 옥바라지를 위해 파송한 에바브로디도가 도리어 병을 얻게 되니 교회는 큰 걱정이었습니다. 바울을 위로하러 보냈는데 위로하기는커녕 더 큰 짐을 바울에게 지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위해 열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인은 죽는 것은 괜찮는데,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에바브로디도를 낫게 해주셨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건강을 회복하자 바울은 좀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그를 다시 빌립보로 돌려보냅니다. 한시바삐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걱정에서 해방시켜 주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에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써 보낸 서신이 이 빌립보서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가리켜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착하고 귀한 종이라고 칭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빌립보 교회의 섬김에감사하고,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챙기는 따듯함으로 기쁨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를 읽고 공부해 보면 우리가 어떤 성품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를 배우게 합니다. 그리고 참 기쁨의 본질이 무엇이며, 감사가 어디서부터 나오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누리는 한 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보십시다. 1절에는 바울이 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편지의 수신인입니다. 누구입니까?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모든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편지를 받는 사람은 성도입니다. 헬라어로 하기오스입니다. 영어로 세인트(saint)입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어 사용하는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표현하자면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도(세인트)라는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역사에서 잘못 사용되고 오해되어 온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데서 찾는다면 천주교에서 이 단어를 어떤 특수한 사람들, 어느 정도 높은 성화(聖化)에 이른 사람(성인)에게 그 칭호를 붙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인트 누구누구라고 해서 거의 숭배의 반열에까지 높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이 말을 쓸 때에 그렇게 구분해 놓지를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하기오스라는 말은 거룩하다는 뜻인데, 소극적으로 분리하여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는 분리된 그것이 어느 것을 향해서 드려지고 바쳐진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했을 때에 소극적으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분리된 사람,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께로 드려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행실이나 도덕성의 정도에 따라서 붙여진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시고 부르신 것에 강조점을 두고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론 성도가 된 사람이라면 도덕성이나 윤리에 있어서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2에 보면 성도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사람입니다. 둘째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게 된 사람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성도라는 말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 은혜로 하나님께로 이끌림 받은 구원 받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성도들의 집단이요 공동체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성도를 두고서 무엇이라 했습니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성도들입니다. 여러분의 성화의 정도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명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부르심에 따라 이미 주어진 명칭이 성도입니다.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이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도 적용됩니다. 가령,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교회당을 무엇이라 합니까? 성전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전’ ‘거룩한 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 앞에 놓인 탁자를 성구라고 합니다. 거룩한 기구라는 말입니다.

왜 나무로 지어진 집이 거룩한 집이 되고, 가구점에 만들어진 이 탁자가 거룩한 물건이 됩니까? 다른 집이나 다른 물건과는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가 되니 성전이 됩니다. 교회당 안에 있으며 예배 드리는 도구가 되니 거룩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구별되어서 하나님께 특별히 드려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다 둘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여 구분하였습니다. 때가 되어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별해 놓았을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구별해 내셨습니다. 그러니깐 일차적으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고 분리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속세를 떠나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홀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 속에 살아도 구별되면 됩니다. 바로 구별된 생각, 구별된 목적, 구별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니깐 성도란 하나님 편으로 구별된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삶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감독과 집사는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를 앞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감독은 교회를 치리해 나가는 목사와 장로들을 말합니다. 집사는 하나님의 교회의 살림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오늘날의 집사와 권사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편지를 받는 성도들과 감독들, 집사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입니다. 교회 전체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빌립보에 살 뿐만 아니라 어디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소속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그리스도 예수를 믿는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구원자로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죽는 삶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으로 인해서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성도 맞습니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분시켜 불러주심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성도다운 구별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도다운 삶, 성도다운 거룩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습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더러워지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어느 날 예고 없이 그 쫄병의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 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대왕은 말했습니다. 내가 알렉산더라지” “, 그렇습니다.”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그래서 그 이름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라.지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고 계실지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 성도이십니까? 성도답게 거룩한 삶이 있습니까?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라 합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코 한 순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영성입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다 자란다고 합니다. 호박은 3개월이면 다 자랍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아주 값나가고 좋은 참나무와 같은 인물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귀히 쓰시길 원하는 사람마다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정금 같이 쓰시기 위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했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쓰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존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실수록 거룩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키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신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 거룩을 완성하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거룩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이라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은 은혜의 수단인 영성 훈련으로 완성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16)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룩에 대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성도 맞습니까? 그렇다면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작정하고, 거룩한 사람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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