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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sis 칼럼/인터뷰

[칼럼]팝 스타의 설전(舌戰)은 내용도 수준급?

작성자치토스|작성시간03.04.01|조회수1,911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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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time: 2003-04-01 / 6:21:07 Copyright ⓒ Since 2001 IZM, Inc.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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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스타의 설전(舌戰)은 내용도 수준급?

이번에는 라이벌 열전이 아니라 라이벌 설전(舌戰)이다. 설전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이성을 뒤로 한 '대화의 극단'을 누가 좋다고 얘기하겠는가. 그러니까 이번 라이벌 스토리는 양질의 작품을 낳게 하는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추악한 말다툼'에 불과하다. 여기 소개하는 설전은 지난해 영국과 미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잇달아 헤드라인을 점한 것이 말해주듯 말싸움의 주체가 팝 역사의 획을 그은 거목들이란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그래서 음악팬들의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ELTON JOHN vs KEITH RICHARDS
초대형 히트곡 Candle in the wind 1997을 둘러싼 설전

설전의 제1탄

주인공은 엘튼 존(Elton John)과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다.

엘튼존엘튼 존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싱어송라이터'고 키스 리처드가 최강의 로큰롤 밴드인 롤링 스톤스를 지휘한 음악감독임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언뜻 두 록의 거장이 시시콜콜한 말다툼을 벌였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발단은 다름 아닌 '기록의 노래'가 된 'Candle in the wind 1997'이 제공했다. 고(故)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장에서 엘튼 존이 불러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반 차트의 '완전 정복'에 성공한 노래이다. 다이애나 사후 열풍을 타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기네스 북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공전의 선풍이 지속되자 키스 리처드가 먼저 시비를 걸고 나왔다. 겉보기에는 비교적 점잖은 어조였지만 속내는 '더 이상 꼴을 못보겠다'는 비수를 들고 있는 듯 했다.

“엘튼 존, 그는 말야 '죽은 금발들'을 위해서만 노래하는 구만. 조금 이상하지 않나?”

하기야 그렇다. 'Candle in the wind'는 원래 73년 엘튼 존의 명반 에 수록된 곡으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죽음을 추도하는 헌정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내 보기에는 당신은 바람 속의 촛불과 같은 인생을 살았어요. 비가 내려도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 지 몰랐어요. 내가 당신을 알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난 어린 애였죠...'

엘튼 존은 다이애나의 죽음을 맞자 선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 곡의 노랫말만을 고쳐 '다이애나 트리뷰트 송'으로 새로운 생(生)을 부여했다. 그런데 하필 먼로와 다이애나 같은 금발일 게 뭐람.

키스리처드키스 리처드가 이 같은 우연한 사실을 꼬투리 삼아 '조금은 속이 보이는' 엘튼 존의 노래 행각(?)에 공세를 취한 것은 분명했다. 죽은 금발 미인을 위해 마이크를 잡고, 그걸 가지고 또 떼돈을 벌고... 그렇게 하는 게 로큰롤 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떳떳한 자세라고 볼 수 있는가.

키스 리처드의 '침묵의 성토' 한마디에 결정타를 얻어맞은 엘튼은 완전 이성을 상실했다. 그는 과거 기자를 '지구상의 깡패'라고 하는 등 그는 입이 걸기로 록계에 정평이 나 있다(리처드가 사람 한 번 잘못 골랐지).

“리처드는 한 마디로 '신체장애가 있는 수령(쉽게 말하면 왕병신?)'이야. 너무 측은해. 불쌍하지 않아? 무대에 그가 서서 젊게 보이려고 하는 걸 보면 관절염 걸린 원숭이나 한 가지라고.”

이건 거의 인신공격성 독설. 별칭 로켓 맨(Rocket Man)답게 반격의 로켓포를 발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좀 너무했다고 여겼던지 그는 곧이어 이렇게 살벌하게 말하는 이유에 대해 이성을 토대로 한 보충 설명을 거르지 않았다.

“난 정말 오랫동안 믹 재거, 찰리 와츠, 그리고 그룹으로서 롤링 스톤스를 존경해왔지. 만약 그들이 10년 전이나 15년 전쯤에 키스 리처즈를 내쫓았다면 스톤스는 아마도 더 훌륭한 레코드를 만들었을 걸. 리처드가 그들을 포로로 억류하고 있었던 거야.”

터진 지뢰보다 지뢰밭을 밟은 자가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추잡해져버린 말싸움의 단초를 먼저 제공한 키스 리처드에게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이전까지 엘튼은 결코 키스와 롤링 스톤스를 비방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극찬과 경배를 아끼지 않았다.

“키스 리처즈와 같은 사람은 정말 철두철미한 로큰롤 맨이다.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

이러한 '순한 양'을 왜 '울부짖는 늑대'로 돌변토록 했는가. 엘튼의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 키스 리처드도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두 사람은 그러나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난 피로(?) 때문인지 더 이상 '언어의 진흙탕'에 빠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둘간에는 종전(終戰)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언쟁은 확전의 불씨를 남기고 있었다.

싸움은 엉뚱한 데로 번졌다. TV 토크쇼의 명사회자 데이비드 레터맨이 '초대받은 손님'도 아닌데 불쑥 설전에 끼여든 것이었다. 그가 손들어 준 사람은 엘튼 존.

“키스는 아직도 자기가 늙은 줄 모르고 젊은 줄 착각하면서 엘튼에게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잇값을 못한다'는 것. 이렇게 나오자 키스 리처드도 이번에는 침묵이 결코 금이 아니라고 판단, 거칠게 맞섰다.

“데이비드는 지금 시샘을 하고 있다. 내가 공연할 때 젊은 여성들이 속옷까지도 벗어 던지는 게 무척 부러웠던 모양이다.”
데이비드와 달리 오아시스(Oasis)의 노앨 갤러거는 리처드와 한 편에 섰다. 노엘의 발언은 키스 최초의 의중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엘튼 존은 '프린세스 오브 웨일즈(Princess Of Wales)'의 죽음을 돈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Candle in the wind 1997'이 훌륭한 트리뷰트라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그 곡을 싱글 B면에 자기 노래를 붙여서 더욱이 자신의 레코드사에서 발표하지 않았는가. 늘 그렇지만 죽음이 레코드를 팔아주는 것 아닌가?”

여기서 싱글 B면의 자기 노래는 엘튼의 신곡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를 가리킨다. 미국에선 A면과 B면의 구별 없이 양면 싱글로 발표되었다. 표면상으로 'Candle in the wind 1997'의 인기에 힘입어 'Something about ...'이 큰 덕을 본 것은 사실이다.

엘튼의 최근 성과가 대단한 것은 틀림없지만 다이애나 죽음에 편승(?)한 'Candle in the wind 1997'이 싱글로 함께 묶이지 않았더라면 신곡 'Something about ...'이 그처럼 가공할 스퍼트를 보이진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 숨어 있는 듯한 약간의 '상혼'을 노엘 갤러거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노앨갤러거이 대목에서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엘튼 존과 노엘 갤러거의 나이 차이다. 68년생의 노엘은 올해 서른 살이고 47년 생인 엘튼 존은 쉰 한 살. 엘튼이 거의 아버지뻘이라 할 수 있다. 우리네 같으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까마득한 후배 가수가 선배의 노래를 겨냥해 죽음을 파느니 뭐니 했다고 상정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후배가 옳다고 하더라도 '위아래도 없는 호로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실로 엄청난 우리와 구미의 문화적 차이를 이 설전에서 엿보게 된다. 우리의 음악계는 자유 의사를 공론화한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그토록 술자리에서의 질펀한 지적과 비판의 얘기들이 좀처럼 공식적으로 표현되지 못한다. 그랬다간 큰일난다.

어쩌면 이것이 문화시대에서 조차 '음악비평문화'가 확립되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떤 톱 가수의 앨범이 기대 이하라 할지라도 국내 평론가들은 신랄하고 후련한 비평을 가하지 못한다. 기술적으로 호평과 비판을 적당히 조화시켜야 한다. 보다 뼈아픈 얘기들은 행간에 감춰져 있다. 여전히 솔직한 비평은 '음지'에서 숨을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후배가 선배더러 막말을 하는 상황의 실현을 염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엘튼을 둘러싼 설전을 통해 우리는 '비판의 자유'를 본다. 하루 빨리 솔직한 비평이 가능한 '음악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음악은 언제나 답보 상태에 머문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비평은 어느 면에서 '감시'역할을 한다.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상당 부분 음악 수요자가 받는다. 때문에 그 설전이 음악 강국의 슈퍼스타답지 않게 옹졸한 요소가 보이더라도 우리 상황에선 못내 부럽기도 하다.

GEORGE HARRISON vs LIAM GALLAGHER

세대 차이 극복(?)한 인신공격의 극치

다시 돌아가 설전 제2화. 오아시스 형제들은 언제나 시끄럽다. 서로 잘났다고 형제들끼리도 싸운다. 그런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가 화려한(?) 두 번째 이야기를 꾸려냈다. 아까 설전에 끼어 든 노엘 갤러거의 동생이다.

조지해리슨먼저 시비를 건 쪽은 전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그는 한 프랑스 신문으로부터 '요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논평을 요구받았다. 비틀즈 시절에 수줍음 때문에 '동생'이라는 이미지로 유명한 조지 해리슨이 어인 일인지 이 때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듯했다. 특히 오아시스에 대한 평가는 상식선을 초월한 것이었다.

“오아시스 음악은 말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rubbish)야. 리암 갤러거가 상황을 나쁘게 하지. 리암이 없다면 오아시스는 훨씬 음악을 잘할 것으로 생각해. 리암은 멍청한 작자(silly one)야.”

충격적이었다. 오아시스가 평소 비틀즈에 대한 존경의 염을 품고 공개적으로 비틀즈 음악을 모방해왔다는 점을 전제하면 더욱 그랬다. 오아시스가 95년에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비틀즈의 앤설로지(Anthology) 앨범 시리즈를 1, 2, 3위로 꼽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더욱이 오아시스의 기념비적 히트곡 'Wonderwall'은 조지 해리슨의 솔로 앨범에서 제목을 빈 것이었다.

리암갤러거언행이 거칠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리암이 가만있을 위인이 아니었다(아무리 대선배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나?). 키스 리처드가 엘튼 존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의 '지뢰밭'을 밟은 꼴이었다.

“난 지금도 조지 해리슨을 비틀즈의 싱어 송라이터로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는 퍼킹 니플(fucking nipple)이다. 그가 내 앞에 있더라도 난 이 말을 할 수 있다.”(니플은 영국 속어로 '백치', '얼간이'를 뜻한다)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볼썽 사납게 '쓰레기'니 '니플'이니 하며 막가파식 언쟁을 하다니. 이건 좀 심했다. 두 사람도 머쓱했던지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갔다. 이성이 헝클어져버린 뒤에 나온 말은 독설로 번지기 십상이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남과 토론할 때 격렬한 언사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이유가 박약함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했다.

리암 갤러거와 조지 해리슨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오아시스 음악을 쓰레기로 비하할 이유가 없고 까마득한 후배 리암이 험악하게 대선배를 백치라고 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는 교훈이 될 게 없다. 하지만 이 설전도 무조건 나쁘게만 비쳐지진 않는다. 우리 입장에서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며, 거기에는 자유 표현의 요소가 배어 있는 듯해 그렇다.

JACKSON BROWNE vs JONI MITCHELL

옛 연인 사이의 아기자기한 신경전

잭슨브라운다음은 조금 아기자기한 설전. 97년에는 참 말다툼도 많았다. 당사자는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과 조니 미첼(Joni Mitchell). 잭슨 브라운은 'The load out', 'Somebody`s baby' 등의 히트곡으로 잘 알려진 지성파 싱어 송라이터며 조니 미첼은 대중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지만 평자들 간에 실력과 공로를 인정받는 전설적 여성 작곡가 겸 가수로 둘은 한 때 연인 사이였다.

두 사람의 갈등은 94년 미첼의 노래 'Not to Blame(책임 없다)'을 두고 빚어졌다. 이 곡은 잭슨이 전에 사귀었던 섹시 여배우 대릴 한나(Daryl Hannah)를 때렸다는 내용을 암시한다 해서 일각에서 화제를 모았었다. 잭슨은 이 곡이 발표된 후 줄곧 '난 그런 일이 없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조니 미첼은 확신을 가지고 잭슨이 대릴을 폭행한 게 분명하다는 코멘트를 하곤 했다.

잭슨 브라운은 <댈라스 모닝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첼의 주장은 백퍼센트 틀린 것이며 정말이지 추잡하다'고 반격을 가했다.

“미첼의 가슴이 매우 쓰라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는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는가 보다.”

물론 잭슨은 자신이 결코 미첼 성토 캠페인을 하자는 의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하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했지. 어찌 이성간 폭력이라는 사회성 이슈를 사랑타령으로 추락시킨단 말인가?). 조니 미첼은 잭슨의 발언이 하도 같지 않아서인지 아예 응전(應戰)을 포기, 첨언을 회피해버렸다.
막심 고리키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욕을 먹은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그러나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자는 욕설을 한 그 사람 자신이다.”

조니미첼상처를 각오하고 라이벌 설전을 전하는 바이지만 음악인들의 말싸움은 자칫 잘못 하다가는 설전과 무관한 '아티스트의 음악 세계'마저 송두리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잭슨 브라운이 조니 미첼을 비난하면서도 '난 미첼의 위대한 작품을 생각하고 싶지, 이 같은 사무친 공세를 생각하고 싶은 건 아니다'라고 토를 단 것은 '설전의 역기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간주된다.

설전은 대부분 위험하다. 조금만 삐끗해도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고약한 심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음악계에서도 그런 설전을 한 번 실컷 보고 싶다'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코자 한다.

설전이 '자유로운 토론'의 원시적 기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고 '어떠한 말싸움도 이득은 있다'는 말이 옳다는 판단 때문에도 그렇다.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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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oel & Liam | 작성시간 03.06.14 리엄이형 너무 개기시는거 아냐.. 조지해리슨 형님께... 그래도 노엘형이 제일 존경한다는 분인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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