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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sis 칼럼/인터뷰

[인터뷰][City Magazine] 노엘 갤러거,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이야기하다 (下)

작성자자공진|작성시간09.02.04|조회수939 목록 댓글 9

 

혹시 노엘이 팀에 세레나데를 선사하기 위해 키팩스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런 거 없어." 그가 웃는다. "술 마시고 키팩스에 앉아 있다가 노래를 한 곡 시작한 적은 있었지. 아마 이렇게 시작했을 거야. 'Everywhere we go...' 아마 내 작곡의 씨앗은 키팩스 뒤쪽에 앉아 있을 때 뿌려졌을걸. 싱얼롱을 좋아하게 된 게 그때부터거든."

70년대에 키팩스 뒤쪽에서 몸을 흔들던 것이 노엘에게 영감을 주었든 아니든,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당시 북서 지방을 장악하고 있었던 로컬 밴드에서 경험을 쌓은 뒤, 리암의 밴드였던 레인에 합류함으로써 스타덤을 향한 그의 길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1991년에 오아시스를 시작했고, 그 전에 나는 인스파이럴 카펫츠에서 로디를 하고 있었지." 그가 말한다. "그레이엄 램버트를 비롯한 밴드 대부분이 올드햄 팬이었어. 내 기억에 클린트 분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올드햄 팬이란 사실상 맨시티 팬이라고 생각해. 내가 만난 올드햄 팬들 중에 '음, 사실 난 맨시티를 응원하지만, 그 동네에서 너무 멀리 살아.'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 팀이 1부 리그에 있었지만, 뭐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올드햄을 홈에서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졌어.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레논/매카트니를 영웅시하는 그로서는 리버풀 팬이 되는 것도 고려해 보지 않았을까?
"사실 말이야," 그가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리버풀에서 일한 적이 있고 이따금 안필드에도 갔었어. 난 리버풀 팬인 친구도 많고 리버풀 시민들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해야겠지. 리버풀 축구팀은 내 신경에 거슬리고, 특히 지난 10년간은 더 그렇다고.

그들은 계속 돈을 낭비해 왔지만, 제이미 캐러거와 스티븐 제라드라는 두 명의 좋은 선수 덕분에 살았지. 지금은 페르난도 토레스가 있으니 셋이군. 그들만 가지고 리그를 승리로 이끌어 간다고. 이 비호감은 70~80년대에 리버풀이 메인 로드에 오면, 그냥 1-0이나 2-0도 아니고 언제나 4-0으로 우리를 이겼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아. 홈에서 우리를 아주 짓밟아 버렸지."

 

"재미있게도, 몇 년 전 이비사에 갔을 때 케니 달글리시(역주: 리버풀의 전설적인 선수)의 아들을 만났거든. 폴과 나는 그 친구에게 '너희 아버지는 전설이셔.'라고 했고,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할 때 내가 잠깐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었어. 나는 경기 전에 그의 이름이 출전 명단에 뜨는 것을 두려워했었다고 말했고, 케니는 메인 로드에서 경기하는 걸 리버풀 선수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말했어. 경기장이 거대한 데다 근처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나. 분위기는 언제나 끝내줬고 팬들도 환상적이어서 축구하기에는 정말 멋진 장소였고, 그래서 더 이상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수치라고까지 말하더군. 나는 다 좋지만, 맨시티 팬들은 전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지. 우리 팀은 그 경기장에서 뛰는 걸 전혀 마스터하지 못했으니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오아시스가 1996년 메인 로드에서 그들의 어마어마한 공연을 마친 직후 맨시티를 강등시킨 것은 다름 아닌 리버풀이었다.
그 당시, 클럽과 밴드는 서로를 홍보하고 서로에 대해 경의를 표현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 사진 찍기 행사, 공연, 옷차림 등등... 음악과 축구는 하나가 되었고, 바야흐로 오아시스가 세계를 지배하기 일보직전, 그것은 양쪽에게 일종의 정략결혼과 같았다.
"아주 근사했어." 노엘이 말한다. "브라더가 맨시티의 스폰서가 되고, 신문지상에 우리 얼굴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지. 사진기자들은 우리에게 브라더 로고가 새겨진 맨시티 셔츠를 입으라고 끝없이 주문했어. 그때가 클럽과의 진정한 연관이 시작된 시점이었던 것 같아. 우리가 그 셔츠을 입고 있는 유명한 사진을 케빈 커민스가 찍었지.

그러고 나서 첫 일본 투어를 갔는데 모두가 그 옷을 입고 있더라고. 그들은 그게 오아시스 셔츠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중에 내가 프래니 리에게 맨시티 셔츠가 일본에서 얼마나 많이 팔렸냐고 물었더니, 주문이 넘쳐나서 클럽이 계속 메일을 보내는 중이라고 하더군. 공연에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왔는데, 그 중 몇몇은 브라더 로고만 새겨진 커다란 현수막을 만들어 왔더라고. 걔네들은 그게 밴드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걔네들이 셔츠의 클럽 배지에 그려져 있는 배와 붉은 장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무슨 뜻인지 궁금해 했을 거야."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맨시티를 서포트하기로 한 것은 음반을 살 가능성이 있는 대중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염두에 둔 오아시스 공동의 결정이었나?
노엘이 말한다. "처음에는 적어도 맨체스터의 절반(역주: 맨유 팬들을 얘기하는 거겠죠?)이 단번에 멀어질 것을 걱정했어.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그들은 수많은 트로피를 갖고 있지만 우린 아무 것도 없어. 맨시티 팬들은 빈털터리였다고. 그래서 우리는 깃발을 당당히 내걸기로 했지."


노엘과 리암 덕분에 신성한 메인 로드의 잔디로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3부 리그를 향해 자유 낙하하는 클럽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아담스 파크(역주: 위컴의 구장)나 부트햄 크레센트(역주: 요크시티의 구장)에서 사람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노엘이 지적하듯이, 맨시티가 점점 멀리 미끄러져 나갈수록 관중은 점점 많아졌다!

"나는 언제나 그때가 맨시티의 부활 시점이었다고 생각해. 무슨 이유인지 시티 팬들 모두가 스스로를 쇄신시킨 것 같았거든. 나는 우리 팀의 인기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3부 리그에 있는 팀을 4~5살짜리들이 응원하겠어? 학교에 가기만 해도 쪽팔렸을 텐데.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우리가 3부 리그에서 순위가 낮아질수록 관중은 점점 늘어났어. 오아시스가 그것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도 몰라.

당시에는 원정 경기에 많이 갔었어. 난 버킹엄셔에 살았고 맨시티는 위컴, 콜체스터, 레딩 같은 팀들과 경기했기 때문에 가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거든. '좋아, 난 본머스에 가본 적이 없는데 내일 맨시티가 거기서 경기를 한다니, 내 평생 거기 가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야. 그러니까 가야지.' 이런 식이었지."

 

노엘의 영원한 영웅 중 한 명인 조지 킨클라제의 등장 또한 클럽의 순위 하락과 시기가 일치했다.
"킨클라제 같은 선수는 언제나 있었어. 단 하나의 빛나는 천재 말이야. 문제는 그런 선수와 함께 그가 제대로 뛸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여섯 명의 선수가 더 필요하다는 데 있었어. 맨유에는 데이비드 베컴만 있었던 게 아니라 로이 킨도 있었고, 바로 그런 선수가 우리에게 필요했다고. 브라질 출신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받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조지가 처음 나왔을 때가 기억나. 클럽의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걸어, 그루지야 출신의 한 선수와 계약했다고 말했지. 난 그게 누구냐고 물었는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더군. 나는 그가 괜찮은 선수인지 물었고, 전화한 사람은 그루지야와 웨일즈의 경기 비디오에서 그가 상대를 완전히 갈가리 찢어 놓는 모습을 보고 클럽이 그를 사왔다고 했어. 나는 그의 데뷔전이 될 토튼햄 전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갔고, 논평 같은 걸 하고 있던 테리 베너블스(역주: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옆자리에 앉았지."

킨클라제의 데뷔전을 보고 난 뒤 노엘이 한 말은 유명하다. 맨시티가 유로 컵에서 우승하거나, 아니면 4부 리그로 강등될 거라고. 불행히도 그의 말은 거의 맞았다. 그것은 거의 실현될 뻔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처음 킨키를 보았을 때 생각했어. '젠장, 이건 내가 본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이거나 내가 본 가장 멋진 광경이다.'" 그가 웃는다. "어느 쪽인지 판단이 안 되더라고! 맨시티 팬이 아니면 이해 못 해."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알리 버나비아가 왔고, '얘는 누구야?' 싶었지. 지금 내 머리가 좀 지치긴 했지만, 현대 축구에서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알리일 거야. 내 생각엔 그가 션 라이트필립스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어낸 것 같아. 키건 감독 휘하의 알리와 션은 난폭했고, 실내 축구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플레이를 선보였지. 베르코빅, 알리, 라이트필립스, 그리고 션 고터가 있었던 시절의 팀은 내가 본 것 중 최고의 축구를 했어. 물론 하위 리그에서의 얘기지만. 어쨌든 당시의 우리는 놀라운 팀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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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길어서 읽기 힘드시죠;;; 좌우지간 노엘의 맨시티 사랑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97년 당시 맨시티의 클럽 배지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배는 맨체스터 운하를, 장미는 랭커셔 지방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그림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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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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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kimkidong | 작성시간 09.02.04 부라더미싱 이라고 유명했었던거 같은 기억이...
  • 작성자참치마요 | 작성시간 09.02.04 이 비호감은 70~80년대에 리버풀이 메인 로드에 오면, 그냥 1-0이나 2-0도 아니고 언제나 4-0으로 우리를 이겼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아. 홈에서 우리를 아주 짓밟아 버렸지.이 비호감은 70~80년대에 리버풀이 메인 로드에 오면, 그냥 1-0이나 2-0도 아니고 언제나 4-0으로 우리를 이겼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아. 홈에서 우리를 아주 짓밟아 버렸지.이 비호감은 70~80년대에 리버풀이 메인 로드에 오면, 그냥 1-0이나 2-0도 아니고 언제나 4-0으로 우리를 이겼던 것에서 시작된 것 같아. 홈에서 우리를 아주 짓밟아 버렸지.
  • 작성자오동통손가락♡ | 작성시간 09.02.06 ㅋㅋ
  • 작성자이름없는 성직자 | 작성시간 09.02.10 난 리버풀팬 ㅠㅠㅋㅋㅋㅋ
  • 작성자Spring-Cooler | 작성시간 09.02.18 리버풀 부러워 말라구... 이제 호비뉴도 있고 막대한 자금이 있으니 견줄만하잖아 ㅋ 이번시즌 끝나고 대물 몇몇 영입 해서 제대로 사고 한번 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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