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계속)
비디아이 멤버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 중의 남자들로 구성된 이 진지한 밴드는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밴드라는 점이다. 그들은 정말로 끈끈해서, 그들이 오아시스의 라인업이 무너져내릴 때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땜빵식으로 하나하나 고용된 멤버들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우린 정말 친해. 남자끼리 친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친하지." 런던의 크라우치 엔드에 있는 한 펍에서 겜 아처가 말한다. 북동부 출신이며 조근조근 말하는 겜은 오아시스와 마찬가지로 앨런 맥기의 크리에이션과 계약을 했던 자신의 옛 밴드, 헤비 스테레오 활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수도로 이사온 후 16년 동안 이 근처에 살고 있다. 겜은 1999년 오아시스에 들어왔는데, 당시 그는 신발 한 켤레밖에 없었다고 순순히 시인한다.
"비디아이가 막 심하게 서로 애정을 표하고 감정표현을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야." 그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많은 걸 겪었지. 우리는 상처 입고 충격도 받았어. 우리가 함께 공유했던 인생의 커다란 부분이 사라졌잖아. 하지만 서로 그걸 이해해주는 멤버들이 있기 때문에 정말로 사라져버린 건 아닌 거 같아. 나는 밴드의 눈으로 그 친구들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 거긴 오직 우리만 알고 있는 것들이 담겨있지. 이 앨범에 그런 것들이 많이 담겨있어. 함께 여기까지 버텨왔다는 형제애 같은 것 말이야."
아처와 앤디 벨은 창단 멤버였던 본헤드와 귁시가 잘린 1999년,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앨범 녹음 이후 오아시스에 영입됐다. 인사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그들이 어떻게 고용됐는지를 이해하기란 쉽다. 그들은 둘 다 성격이 원만하고, 오아시스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형제간 화약고에 추가적인 폭발물을 끼얹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둘은 무조건적인 예스맨은 아니었으며, 각자 상당한 음악적 "과거"가 있었다. 아처의 글램적인 헤비 스테레오는 오아시스의 서포트 밴드로 아레나에 서기도 했다. 앤디 벨은 브릿팝 시대 이전, 라이드라는 밴드로 찬사를 얻은 바 있는데, 그는 라이드를 슈게이징 피드백 팝 밴드에서 갤러거에게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밴드로 바꾸려고 하기도 했다.
앤디와는 할로우웨이 로드에 있는 펍에서 만났다. (인터뷰 이후 우리는 떠오르는 둠메탈 밴드인 Uncle Acid & The Deadbeats의 공연을 보러가기로 했다. "당신이 나는 인디 락만 좋아한다고 생각할까봐." 그가 활짝 웃으며 말한다.) 그는 90년대 중반 오아시스 상승기의 대혼란을 옆에서 쭉 지켜봤다. 라이드가 해체하자 그는 대놓고 오아시스 오마쥬 밴드인 허리케인 넘버 원을 결성했는데, 메이저 밴드로서의 성공에 대한 욕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그의 작곡 실력이 향상된 계기가 되었다. 노엘 갤러거가 그와 겜을 영입했을 때에는, 오아시스를 단순히 매력적인 미장이들이 아닌 진짜 재능있는 뮤지션들로 채우겠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이후 10년간 석 장의 앨범을 냈지만, 그러한 잠재력은 결코 결실을 맺지 못했다. 벨과 아처의 곡은 앨범당 한두 곡씩밖에 실리지 못했다. "대규모 공연과 경제적인 보상 이런 것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 한 사람이 밴드를 좌지우지하면서 다른 사람은 곡을 쓰지도 연주를 하지도 못하게 했었다는 사실만 남게 되지." 리암이 반추한다.
앤디 벨은 갤러거 형제가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09년 8월의 파리 공연 대기실에 함께 있었다. 이후 노엘은 그 사건을 기타와 백스테이지 과일 바구니의 내용물들이 날아다니는 코미디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벨이 싸움을 중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내가 꼼짝 앉고 가만히 앉아있었다는 건 인정해야 되겠지." 앤디가 인정한다. "나는 내가 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예전에도 끼어들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고. 예를 들어 [2000년 해체 직전까지 갔던] 바르셀로나 사건처럼, 예전에는 나도 끼어들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상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 나는 결과에 만족해." 그가 소심하게 미소짓는다. "난 불난 데 기름붓는 것엔 전혀 관심이 없거든."
오아시스의 마지막 투어를 위해, 잭 스타키를 대신해 드러머 크리스 샤록이 임시로 고용됐다. 다른 수많은 공연은 물론이요, 더 라스의 There She Goes에서 드럼을 쳤던 세션 드러머로서, 이 성격좋은 리버풀 남자는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 남몰래 "기분 째졌다"고 한다. 그는 비디아이의 정규 멤버가 되었고, 더이상 일자리를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비디아이를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것은 "치프" 노엘 치하에 있던 시절이라든지 1집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과뿐만은 아니었다. "일상 생활"적인 면도 있었다. 벨은 싱어송라이터인 첫 번째 부인 이다와 2006년 이혼했다. 스톡홀름 근처의 집을 떠난 이후, 그는 크라우치 엔드에 있는 겜의 집 근처로 이사왔다. 지금 그는 햄스테드의 리암 집에서 한 모퉁이만 돌면 되는 곳에 살고 있다.
비록 샤록은 아직도 버켄헤드에서 통근하고 있지만, 비디아이는 엄청나게 똘똘 뭉쳐지낸다. 대형 락밴드들 중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대개는 서로를 싫어해서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임), 이 친구들은 휴가도 같이 간다. 벨은 11년 연속으로 여름 휴가를 겜의 가족과 함께 이비자에서 보냈다. 그 중 한 번은, 겜 부부가 그에게 두 번째 부인인 시아라를 소개해 주었을 정도다.
더이상 대장과 부하들이라는 개념은 없다. "우리는 모두가 대장이야"라고 리암이 말한다. 비록 가끔은 나머지 멤버들 전원이 리암을 돌보고 있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다. "리암과 함께 밖에 나갔을 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돼. 녀석은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잡이' 증후군이 있거든." 겜이 말한다. 그들은 미디어의 공격, 혹은 시민의 공격으로부터 리암을 지원해준다.
앤디와 겜은 마치 귀중한 국보를 설명하는 큐레이터처럼 리암의 목소리에 대해 말한다. BE 앨범의 관건은 9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2010년대에 통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지난 앨범을 냈을 때는..." 여전히 날선 목소리로 리암이 말한다. "다들 내 목소리에 대해 한 마디씩 했지. 보컬에 이펙트를 입혔네, 라이브가 맞네 아니네. 이번에는 '좋아, 보컬에 아무 것도 입히지 말고 정직하고 소박하게 가자'라고 생각했지. '씨x 이게 내 원래 목소리야'라는 느낌으로." 새롭게 열린 사운드의 신세계 속에서, 새롭게 찾은 맑은 보컬은 리암과 그의 밴드가 한물간 보수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게 할 것이다.
"우리는 원래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근데, 데이브 시텍이 우리 안의 그것을 일깨워준 거지." 앤디 벨이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동안 눈가리개를 쓰고 있었던 느낌이야.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평생 앨범을 만들면서 한 번도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 마법적인 요소와 반짝임이 이 앨범에는 담겨있어. 비틀즈 앨범 중에도 그런 마법이 없는 앨범도 있는데 말이야. 매번 그런 마법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만, 이제 우리는 남은 평생동안 그걸 쫓을 거야."
Q 표지 촬영을 위해 우주인 복장을 하면서, 비디아이는 어린 아이들처럼 들떠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걸 못해본다면 밴드를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한다. 오아시스 시절 비싼 야상을 입고 우울한 포즈를 취하던 것은 분명 이제 질린 듯. 그렇다면, 당신은 우주인이 되고 싶은가? d'yer wanna be a spaceman? 안 될 거 있나? 오늘은 그들의 새 투어 베이시스트인 제이 멜러가 합류했다. 그가 카사비안에서 비슷한 포지션에 있다가 그만두고 비디아이의 공백을 메우러 왔다는 사실에 리암은 즐거워한다.
리암은 지금까지 20년 동안 락스타였다. 그 20년 동안 그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의 존경스러울 정도로, 변화를 거부했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에 대해 그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나는 마약과용으로 죽지는 않을 거야." 그가 말한다. "빌어먹을 알콜중독으로 죽지도 않을 거고. 나는 밴드의 멤버로서 살고 숨쉬면서 죽을 거야. 나는 미친 듯이 마약을 빨거나 무식하게 술을 마시다가 죽지는 않을 거라구. 나는 밴드에 너무 빠져서 죽게 될 거야." 팔을 미친 듯 내저으며 그가 결론을 내린다. "나는 밴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을 거야."
우리 질문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뭐, 우리가 이번 앨범으로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또다시 새 앨범을 내게될지는 모르겠어." 그가 말한다. "절대 내가 배관공이 되거나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겠지. 어쩌면 그냥 멀리 배를 타고 떠나서 인생을 즐길 수도 있을 거야. 헤이스팅스의 어떤 여드름 난 꼬꼬마가 앨범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것 대신에 말이야.
하지만 앨범이 나오고 다행히도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평소처럼 비즈니스가 계속 되겠지. 그렇지 않으면, 투어를 다니면서 사람들이 앨범을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고. 만약 그것도 효과가 없다면, 우리는 이렇게 하겠지. [전화거는 시늉을 하며] 노엘?"
그의 비열한 듯 비꼬는 웃음은 이렇게 웅변하고 있다 : "나는 절대 그렇게까지 절박해질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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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아이의 수퍼소닉 스튜디오 기인
밴드의 새 프로듀서 데이브 시텍은 그들을 다른 차원으로 데리고 갔다.
비디아이와 데이브 시텍(사진)의 만남은 행복한 결합으로 판명났지만, 리치몬드의 스테이트 오브 디 아크 스튜디오에 있는 40살의 소리 탐험가에 대한 리암의 첫인상은 불길했다. "그 친구는 간자와 세이지에 파묻혀서 자기 귀에 열중했어. 그는 그런 걸 태워. 아마 그게 악령을 쫓아내나봐. 나는 '음, 당신 그런 거 트럭째로 x나 많이 갖다 놓는 게 좋을 거야'라고 생각했지."
밴드가 그에게 데모 한 뭉치를 보낸 후 그들은 팀이 되었다. "어떤 건 노래라고 할 수도 없었어. 그냥 테레민이나 여러 가지... 우리가 내고 싶은 소리들이었지." 겜 아처가 말한다.
비디아이는 금세 시텍의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 시텍에게 스튜디오는 "공장이라기보다는 사원 같은 곳"이었다. 앤디 벨이 말한다. "곡의 영혼을 찾아내는 작업이었지."
5주 동안 시텍은 밴드에게 20곡을 연주하게 한 다음 제안했다. "소리로 실험을 해봅시다." 그것은 상당한 수준의 재편곡을 한 후 최고의 결과물을 "데이브 월드" - 스튜디오 한 구석에 있는 시텍의 자리를 말하는데, 그곳에서 그가 신서사이저와 각종 이펙트들을 입혔음 - 로 보내는 것이었다.
리암의 노래 중 하나인 Soul Love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상영되는 거대한 스크린 아래에서 리모델링 되었다. 시텍은 이 곡의 어쿠스틱한 맛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돌아오지 않을 우주인이 기타를 친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는 우주선 창문으로 고향별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기타를 치는 거야."
그래서 그는 곡 아래에 다소 불길한 분위기를 깔았다. "나는 밴드가 무조건 이 쓰레기 같은 거 빼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리암이 이걸 최대 음량으로 듣더니, '이 엔딩을 자르자고 하는 놈은 x나 미친 놈이야'라고 말하더라구."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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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Norwegian Wood 작성시간 13.06.24 ㅎㅎ비디아이 멤버들 이번 앨범에 자부심이 느껴져서 제가 다 기분이 좋아요ㅋㅋㅋ뭐 이 사람들이 자부심 없던적도 없지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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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ealgem 작성시간 13.06.24 2000년 바르셀로나 사건이 뭐였는지 설명해주실 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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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Garden grows 작성시간 13.06.24 번역 감사해요!!애정돋는 비디아이ㅜㅜ저렇게 '남자들끼리 친해질수 있는 한 가장 친하게'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랑 일까지 같이 한다는건 정말 어마어마한 복인것 같네요..깔끔한 번역에 감탄연발하며 읽었어요 역시 페퍼민트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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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qhrwltkghl 작성시간 14.03.25 페퍼님 번역은 언제 봐도 정말 매끄러워서 읽기 참 편해요. 번역 정말 감사합니다. 왠지 재결합을 바라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인터뷰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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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프랑드 작성시간 14.06.19 너무 행복해보이네요 해체 이전까지는 치프 치하의 삶이었다 라고 어필하고있는데 무슨말이 더필요한가요
그래도 가슴이 쓰린건 어쩔수없군요 저는 지금도 헛된 희망으로 재결합을 외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