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來【추래】-가을밤에-李賀【이하】
桐風驚心壯士苦【동풍경심장사고】오동나무에 불어온 바람에 놀란 마음, 사나이 마음도 괴로운데
衰燈絡緯啼寒素【쇠등락위제한소】희미한 불빛 아래 귀뚜라미는 차가운 달빛 비단 위에서 울어댄다.
誰看靑簡一編書【수간청간일편서】누가 죽간에 엮은 한편의 시집을 읽어
不遣花蟲粉空蠹【불견화충분공두】좀 벌레가 책을 가루내어 공연히 좀먹지 않게 할까.
思牽今夜腸應直【사견금야장응직】생각이 끌려 오늘밤 창자 곧추서는데
雨冷香魂弔書客【우냉향혼조서객】밖은 비 내려 차가운데 여자 귀신은 찾아와 시인을 위로한다.
秋墳鬼唱鮑家詩【추분귀창포가시】가을 무덤 속 귀신은 포조의 시를 노래하며
恨血千年土中碧【한혈천년토중벽】한스러운 피는 천년을 땅 속에서 푸르리라.
이하는 중당시대의 특이한 시인으로 그의 시【詩】는 낭만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에 의하여 회화성과 상징성이 강한 화려한 환상적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초자연적 시적 제재【題材】와 자신이 어휘를 만들어 쓰는 생경한 시어사용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간 설정 등 비논리적 시의 구성 등으로 중국문학상의 특이한 작가로 주목 받았다.
이러한 그를 사람들은 <귀재【鬼才】>라고 불렀다.
이하는 몰락한 왕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변방의 낮은 관리를 지냈으나 일찍 죽었으며, 자신은 아버지의 이름이 당시의 황제 이름과 같다는 소위 휘를 범했다고 하여 진사 시험에 낙방하는 좌절을 맛보았다.
이러한 좌절이 그의 염세적 작풍을 형성하고 나아가 27세에 요절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본다.
1,2 구절을 보자
여기서는 이 시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작가의 심리적 정황이 조성된다.
桐風驚心壯士苦【동풍경심장사고】오동나무에 불어온 바람에 놀란 마음, 사나이 마음도 괴로운데
衰燈絡緯啼寒素【쇠등락위제한소】희미한 불빛 아래 귀뚜라미는 차가운 달빛 비단 위에서 울어댄다.
<桐風>은 <오동나무【梧】에 부는 바람【風】>이다, 대표적 낙엽 관목인 오동나무는 차가운 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단풍지고 떨어지는 나무다. 여기에 바람이 부니 오동나무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만물이 조락해가는 계절인 가을이 온 것이다.
<驚心>은 <놀란【驚】 마음【心】>이다. 오동나무가 바람에 떨어지는 그것은 생물로서는 <죽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놀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즉, 생의 마지막을 의식하는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
<壯士苦>은 <장사의 마음이 고통스럽다>이다. 장사는 <한 창 때의 남자>이다. 가을은 이러한 혈기 왕성한 남자의 마음까지도 슬프게 하는 계절이라는 말이다
<衰燈>은 <꺼져가는【殘】 등불【燈】>이다. 이는 인가의 밤이 깊어 감을 나타낸다. 잠이 오지 않아 켜 놓은 불이 이제 그 기름이 다 타서 꺼져가는 상황이다.
<絡緯>은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등의 가을 풀벌레>이다. 이 역시 가을을 생각하게 하는 벌레다
<寒素>는 <차가운【寒】 흰 비단【素】>이다. 이는 결국 <은은한 달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絡緯啼寒素>은 <가을 풀벌레【絡緯】는 차가운 달빛【寒素】 아래 운다【啼】>이다. 이는 달밤에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로서 쓸쓸한 가을밤을 나타낸다. 풀벌레도 가을바람과 차가운 날씨에 쫓겨 가는 처지인 것이다.
1,2 구절을 종합하자
오동나무 잎을 떨어뜨리며 부는 바람에 놀라 장년의 남자들마저 애상에 빠져들고, 등잔불도 희미하게 꺼져가는 깊어가는 이 밤에 풀벌레는 은은히 비치는 달빛 아래서 울음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금 외롭고 잠 못 들어 가을밤에 홀로 깨어있다. 즉 1,2 구에서는 작가가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과 작가의 심정적 정황이 조성된 것이다.
3,4 구절을 보자
여기서는 작가가 처한 작가의 현실적인 갈등이 제시된다.
誰看靑簡一編書【수간청간일편서】누가 죽간에 엮은 한편의 시집을 읽어
不遣花蟲粉空蠹【불견화충분공두】좀 벌레가 책을 가루 내어 공연히 좀먹지 않게 할까.
<誰看>은 <누구【誰】가 읽는가【看】>이다. 이는 결국 도대체 그 누가 읽어줄 것인가. 곧 <현실적으로 누구도 읽어주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절망과 좌절을 나타낸다.
<靑簡>은 <푸른【靑】 대쪽【簡】>이다. 종이가 없었던 옛날에는 대쪽에 글을 적었다. 따라서 <글을 적는 종이>를 뜻한다.
<一編書>은 <여러 대쪽으로 엮은【編】은 하나【一】의 글【書】>이다. 이는 결국 <여러 글을 엮은 책>을 나타낸다.
따라서 <靑簡一編書>는 <대쪽에 적은 글을 모은 책>이다. 여기서는 문인이나 저자의 <시문집>을 뜻한다.
<不遣>은 <하지 못하게 하다>이다
<花蟲>은 <종이를 좀먹는 벌레>이다
<粉空蠹>은 <가루로 만들어【분】 공연히【空】 좀먹다【蠹】>이다.
3,4 구절을 종합하자
1,2 구절에서 조성된 <외롭고 잠 못 자라서 가을밤에 홀로 깨어있는 공간과 시간>에서, 작가는 지극한 외로움에 빠져있음을 안다. 이러한 정황에서 그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구체화 된다.
즉 작가의 내면적 생각과 느낌을 적어둔 시집을 읽어서 자신을 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제발 몇 사람이라도 내 시집을 읽어서 책이 부서져 가루가 되거나 좀먹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현실의 좌절과 고통을 작품화하여 시집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낙마하고 좌절한 자신과 같은 불우한 사람의 시집을 읽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불우한 글을 이하의 글이라고 가정할 때, 이하는 자신의 글이 당시의 글과는 전혀 다른 문체를 가진 글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시가 당시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종의 앞선 귀재【鬼才】 내지 천재【天才】였던 것이다.
5,6 구절을 보자
여기서는 하나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있는 자신에게도 하나의 위로와 구원이 이를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思牽今夜腸應直【사견금야장응직】생각이 끌려 오늘밤 창자 곧추서는데
雨冷香魂弔書客【우냉향혼조서객】밖은 비 내려 차가운데 여자 귀신은 찾아와 시인을 위로한다
<思牽>은 <생각【思】이 이끌리어온다【牽】>이다. 이는 <작가를 잠 못 이루게 하는 온갖 생각이 실타래처럼 자꾸 나온다는 뜻>이다. 그것은 주로 그의 현실에서 좌절을 겪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말한다. 그는 몰락한 왕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국경의 하급 관리로 있다가 일찍 죽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의 이름자가 당시 황제의 이름자와 비슷하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벼슬길이 좌절된 자신의 처지 등이 될 것이다. 현실은 바로 이러한 인간들이 살고, 그들이 승리하는 사회인 것이다.
<今夜>는 <오늘【今】밤【夜】>이다. 곧 오동잎에 바람 부는 밤이며 밤늦도록 은은한 달빛 아래 풀벌레 울음을 토하는 밤이다.
<腸應直>는 <창자【腸】가 응당【應】 곧다【直】>이다. 창자가 왜 곧게 서는가. 이는 작가가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이를 해소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이를 해소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급기야는 실어증 증세에까지 이른다.
<雨冷>는 <비【雨】가 차갑다【冷】>이다. 왜 비가 차갑게 느껴졌는가. 물론 가을밤이기 때문이다.
<香魂>은 <향기로운【香>】 영혼【魂>】>이다. 이는 아름다운 영혼, 또는 여자의 혼을 의미한다.
<書客>은 <글【書】 쓰는 나그네【客】>이다. 곧 문인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는 작가 자신을 뜻한다.
<香魂弔書客>은 <향혼【香魂】이 서객【書客】을 도우다【弔】>이다. 아름다운 귀신이 현실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우한 자신과 같은 문인을 도울 것이라는 것이다.
5,6 구절을 종합해보자
좌절된 현실의 일들이 실타래처럼 끓어오르자 몸이 경직되는 것이다. 몸의 어디서부터 경직되는가. 그 곳은 창자부터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더듬고 급기야는 신경성 소화불량 증세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밖에는 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비는 차가웠다. 이 순간 작가는 이미 자신이 사회에서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리는 차가운 가을밤의 비를 타고 귀신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하는 것이다. 작가는 귀신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귀신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을 알아주는 향기로운 귀신, 반가운 귀신인 것이다.
그 귀신은 자신과 같은 처지 의 여자귀신일 수도 있다. 여자는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도 못해보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 오히려 어느 면에서 자기처럼 뛰어난 재주를 가졌기에 모함을 받은 것처럼, 뛰어난 미모와 재주 때문에 질투 받아 죽은 여자 귀신은 자신에게 동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귀신이 가을비를 타고 와서 자신과 같은 불우한 문인을 도와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외로움과 절망에 빠져있는 자신에게도 하나의 위로와 구원이 이를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을비를 타고 온 귀신인 것이다. 그러나 귀신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니 얼마나 절망적인가.
7,8 구절을 보자
여기서는 현실에서 좌절한 자신의 대응방법으로 포조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영혼을 위로받겠다는 작가의 심정을 보여준다.
秋墳鬼唱鮑家詩【추분귀창포가시】가을 무덤 속 귀신은 포조의 시를 노래하며
恨血千年土中碧【한혈천년토중벽】한스러운 피는 천년을 땅 속에서 푸르리라.
<秋墳>은 <가을【秋墳】 무덤【秋墳】>이다.
<鬼唱>은 <귀신【鬼】은 노래한다【唱】>이다.
<鮑家詩>는 <포조가 지은【鮑家】 시【詩】>이다. 남송의 포조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노래한 여러 시를 남기고 있는 사실을 의미한다.
<鬼唱鮑家詩>는 <귀신【鬼】은 포조의 시【鮑家詩】를 노래한다【唱】>이다.
<恨血>은 <한 맺힌【恨】 피【血】>이다. 이는 <현실에서 좌절한 생명>을 뜻한다.
<土中碧>은 <흙 속【土中>】의 푸른 옥【碧>】>이다. 이는 주나라의 장홍【萇弘】이 억울하게 죽어 그의 피가 죽어서 3년이 되어 푸른 옥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곧 결코 <현실의 꿈을 버리지 못한 영혼>을 뜻한다.
7,8 구절을 종합해보자
현실에서 자신은 몸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이미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현실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억울하게 현실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는 포조의 글을 혼자만의 방, 즉 자신의 죽은 영혼의 무덤에서 읽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좌절한 자신의 영혼은 천년동안을 영원히 현실을 도피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현실의 좌절을 달래고 있겠다는 자신의 심정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몸은 살아 있지만 자신의 영혼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되지 못하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