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그려나가며
직관이 아니고서는
세상의 결을 담아낼 수 없다고
조용히 침묵을 들여다보던 시간
표정 없는 형상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오래 숨겨 두었던 내면의 것들이
수면 위로 일렁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불쑥 돋아난 낯선 싹 하나
새로운 감각이라 여겼으나
실은 오래전부터
깊숙이 익어가던 감정이었다
정해진 대상도 없이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이
가슴 한편에
오래된 가능성만 품고 살아온
그 기다림
잠시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망설이지만
작디작은 고민들은
파도에 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착각도 아니었고
헛된 꿈도 아니었던 순간
머뭇거리던 눈빛 끝에서
마침내 손길 하나 뻗어 나간다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한 번의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세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세상이 정한 규칙도
조심하라던 목소리도
그 응시 앞에서
천천히 풀려내리고
그 자리에는
따스한 온기가 자라난다
명암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자태
짙어지는 저녁노을이 기대 선 창가에서
서글프게 번져가는 농담의 여운 사이로
빈 여백 하나가
죽비처럼 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경계는 또렷해지는데
드러나지 않던 표정들은
오히려 살아나고
대칭과 비대칭의 아슬한 균형 위에서
낯선 변주가 시작된다
한 번도 배운 적 없기에
끝내 다가서게 된 공간
텅 빈 화폭 위에서
나는 나를 그리듯
처음 보는 나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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